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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히브리서Hebrews
베들레헴 히브리서Hebrews는 그리스도의 충만을 버리고 옛 생활의 공허 속으로 돌아가려는 유대인 신자들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구원받은 사람들은 그들의 영적 유산 가나안에 들어가 주의 평안을 누릴 특권이 있다. 이런 시가 있다. 실 _월리엄 스태포드 네가 따르는 한 가닥 실이 있다 그 실은 변화하는 것들 사이로 지나간다 하지만 그 실은 변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네가 무엇을 따라가는지 궁금해 할 것이다 너는 그 실에 대하여 설명해야 한다 그러나 사람들에게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 실을 붙잡고 있는 한 너는 길을 잃지 않는다 비극은 일어나기 마련이고 사람들은 상처입거나 죽는다 그리고 너는 고통 받고 늙어간다 시간이 하는 일을 너는 어떻게도 막을 수 없다 그래도 그 실은 절대로 놓지 말라 히브리서가 강조하는 것은 우리의 삶에서 절대 놓아서는 안 될 실 같은 '믿음으로by faith'이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받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믿음으로 살기도 해야 한다. 히브리서 1장 1절과 2절은 이렇게 말씀한다. 하나님께서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번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시고 이 마지막 날들에는 그의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은 천국에 올라가는 것의 표상이 아니다. 그것은 적을 정복하고 믿음으로 당신의 영적 유산을 요구하는 것의 비유이다. 그러나 너무도 많은 사람이 구약의 이스라엘인들처럼 불신앙의 광야에서 방황을 하고 옛 생활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스펄전 목사가 이런 말을 했다. 진리의 실들을 가지고만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그 실들을 가지고 영광의 겉옷을 짜셨다. 그는 그 옷을 입으시고 하나님의 모든 진리를 주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다. 우리는 그 말씀에 응답해야 한다. 우리의 응답이 우리가 사는 삶의 종류를 결정하고 우리가 요구하는 영적 유산의 분량을 결정한다. 이 심오한 편지를 묵상할 때 스스로 이렇게 물어야 한다. 나는 옛 생활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가. 나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나의 유산을 믿음으로 열심히 요구하고 있는가. 나는 불신앙의 광야를 방황하고 있는가. 아니면 주의 성취하신 일과 신실하신 말씀 안에서 평안을 누리고 있는가. 2025-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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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강진상 목사 초 한 대의 삶
거룩한 태양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푸른 바닷속으로 뜨겁게. 바닷가에 선교사 두 사람이 앉아 있었다. 흑발의 젊은이와 백발의 늙은이가. 늙은이는 생각하고 있었다. 언젠가 나도 저 은혜로 쉬게 되리라. 이렇게 편안히. 젊은이도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죽을 때도 저 영광의 광채가 내리기를. 이렇게 황홀하게. 로마 가톨릭교회의 사제이자 작가, 신학자 로마노 과르디니(Romano Guardini, 1885년 2월 17일 - 1968년 10월 1일)는 말했다. "삶과 나이에 따르면, 모든 하루하루는 단 한 번밖에 오지 않기에 다른 무엇과 바꿀 수 없는 소중함을 얻는다. 존중받지 못할 순간도 의미 없이 지나가는 순간도 없다. 순간의 존엄함을 아는 사람은 지금 여기의 삶을 온전히 누리려는 강렬한 긴장을 느낀다. 이런 긴장 없는 삶은 단조롭고 지루하게 다가온다. 때론 상실감과 후회 속에서 공허와 절망의 나락에 떨어질 위험도 있다." 또한 로마 가톨릭교회의 사제이자 작가, 신학자 과르디니(Romano Guardini, 1885년 2월 17일 - 1968년 10월 1일)는 인생엔 여러 단계가 있다고 말했다. "우리 인생 여행은 유년, 청년, 성년, 중년, 노년, 말년의 단계를 밟아 죽음에 이른다. 시기마다 반드시 해결할 과제가 있고 이룩할 가치가 있으며 넘어야 할 위기가 있다. 하나의 시기를 완전히 살아내지 못하면, 즉 주어진 과제를 해결하고 가치를 성취하며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면 좋은 삶은 불가능하다. 과거가 현재의 발목을 잡기 때문이다... 물러남을 받아들이고 평생 이룩한 가치를 지켜낼 때, 노년의 삶은 완성을 향해 달려간다. 진정한 것과 덧없는 것, 순간적인 것과 영원한 것을 분별하는 지혜 속에서 통찰, 용기, 평정, 자존 같은 고상한 가치를 실현하는 현자의 삶을 살 수 있다. 좋은 삶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고통을 견디고 위기를 건너며 가치를 이룩하지 않으면 누구도 삶의 달콤함, 그 눈부신 기쁨을 알 수 없다." 1968년 10월 1일 로마노 과르디니는 83세로 지인들 기도 속에 영원히 잠들었다. 다음날 지인들이 모여 그의 부고 문구에 어떤 호칭을 사용할지 논의했다. 그는 가톨릭 사제, 대학교수, 신학자, 종교철학자, 교육자, 청년운동 지도자, 전례개혁자였다. 하지만 그 어느 호칭도 그의 활동과 인물됨을 모두 담아낼 수 없었다. 오랜 논의 끝에 지인들은 '로마노 과르디니-주님의 종(Diener des Herrn)'으로 결정했다. 한평생을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받들어 모시며 살았던 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호칭이었다. 2023년 3월 15일 오후 4시 무렵 양산의 평산교회 카페 비 마이 프렌드(Be My Friend 나의 친구가 되어라)에 앉아 있었다. 쾌적한 카페의 창가 햇살을 받으며 핫초코를 홀짝였다. 아파트 단지 초입 대로변에 세워진 평산교회는 4면이 각기 다른 모습을 내는 독특한 구조로 건축됐다. 정형화되고 고착화된 교회 이미지를 탈피하고 주민들에게 거부감 없는 교회로 다가서기 위한 세심한 관심이 없다면 쉽지 않은 일이었다. 평산교회는 교인들에게 필요한 시설은 물론 지역사회를 위한 배려도 있다. 그것은 교인과 지역 이웃을 향한 목회자의 애정과 사랑이 교회건축을 통해 나타난 것이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누구든 언제나 교회시설을 이용하거나 지나갈 수 있도록 사방이 열려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교회 바로 뒤편 아파트단지 주민의 주차장 이용과 교회시설 이용 편의를 돕기 위해 교회 마당과 아파트를 잇는 계단도 별도로 설치했다. 교회 후문을 통해 1층 교회 건물 내부로 들어오면 바로 오른쪽에 황토찜질방이 있다. 성인 10여 명이 동시에 들어갈 수 있는 황토찜질방은 여느 찜질방 못지않은 좋은 황토와 탈의실 등으로 꾸며져 있다. 주민들이 휴식하며 교제할 수 있는 카페도 마련돼 있다. 일천 명이 예배드릴 수 있는 규모로 지어진 본당은 극장식 의자가 설치되어 있다. 이는 교인들에게 편안한 예배와 기도 목적 외에도 평일에는 지역주민을 위해 결혼식장과 발표회 등의 공간으로 제공하기 위해서다. 3층 유아실은 아이들이 편히 사용할 수 있는 어린이 전용 화장실과 모유 수유를 위한 별도의 수유실도 마련했다. 4층에는 헬스장도 있다. 이 역시 지역주민을 위한 체력단련장으로 무상 제공되고 있다. 강진상 목사는 교회 설립 당시 평산교회의 존재 목적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지역을 품는 교회 사명을 위해 문화와 복지와 같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도입해 지역을 섬기는 노력 이상으로 선교와 전도를 위한 교회의 본질을 놓치지 않겠습니다." 2023년 3월 15일 오후 5시 강진상 목사와의 대담 시간이 돼 카페를 나와 교회에 들어서니 당회장실로 안내를 받았다. 평산교회는 3월 18일 토요일 교회 장로 은퇴식과 직분자 임직식을 앞두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은퇴식에 강진상 목사도 포함되어 있는 줄로 착각하고 있었다. 그의 은퇴는 아직 3년이나 더 남아 있었다. 강진상 목사의 은퇴가 아니라 목회에 대한 대담을 나누게 되었다. 부산과 울산 두 개의 광역시를 사이에 둔 경남 양산시에 지역 최대 규모의 교회가 있었다. - "와서 보니 목사님 큰 역사를 이루셨네요." 강진상 목사 - "아니 뭘." - "장로 은퇴식과 직분자 임직식을 앞두고 있는데 목사님 은퇴식으로 잘못 알고 미리 찾아뵙게 됐습니다. 지금 평산교회에 몇 년 되신 겁니까." 강진상 목사 - "올해 35년 됐습니다." - "아. 그러시구나. 그럼 평산교회만 35년 되신 거죠." 강진상 목사 - "네 그렇습니다. 이 교회 개척을 35년 전 1988년에 했습니다." 강진상 목사는 겸손한 웃음을 지었다. - "총신 몇 회세요." 강진상 목사 - "저는 총신을 좀 늦게 공부를 했습니다. 그래서 86회입니다. 제 또래 목사들은 76회죠. 저는 10년 늦게 시작한 거죠." 사모님이 차를 내오셨다. - "어떻게 평산에 평산교회를 시작하시게 됐습니까." 강진상 목사 - "제가 본래 여기 있기 전에 월평이라는 곳에 있었습니다. 여기서 버스로 두 정거장 떨어진 곳인데 교회가 없는 지역이었습니다. 저는 부산의 전포중앙교회 오세광 목사님 그분이 담임으로 계실 때 제가 전도사로 있었습니다. 오 목사님이 저희 집에 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강 전도사 선교에 대한 열정도 있는데 이 지역에 교회가 없어서 마음이 아프다.' 그래서 그분이 그런 도전적인 말씀을 하셔서 계기가 된 것입니다. 5년 뒤 주인이 집을 내달라고 하고 그린벨트이고 수원지 보호지역이라 더 이상 있을 수가 없어 이쪽으로 오게 된 겁니다." 그는 1988년 1월 전도사 시절, 양산군 정관면 월평리 280번지 허름한 시골집 셋방에서 월평중앙교회라는 이름의 교회를 개척했다. 1992년 2월 24일 현재의 양산시 평산동으로 교회 건물을 신축·이전하면서 이름을 평산교회로 바꿨다. 부산시 전포동 소재 전포중앙교회의 오세광 목사의 권면과 후원으로 시작됐다. 평산교회는 개척 초창기부터 제자훈련을 실시하며 알찬 성장을 거듭했다. 또한 교인 구성원 70% 이상이 초신자들의 회심으로 이뤄져 있을 정도로 건강한 교회상을 세웠다. 강진상 목사의 목회관은 예배하는 공동체, 선교하는 공동체, 교육하는 공동체, 봉사하는 공동체이다. 그래서 지난 2013년 9월 1일, 한국일보가 주최한 ‘2013 대한민국 자랑스런 한국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양산시 인재육성장학재단에 장학금 기부, 지역봉사 활동 등 지역공동체를 실천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으로, 너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는 주님의 말씀처럼 주님의 종으로서의 헌신적인 목회를 일관했다. 강진상 목사는 기도로 교회를 세우고 한평생 나눔과 섬김을 실천했다. - "신학을 늦게 하셨다고 했는데 그 전에 다른 일을 하셨습니까." 강진상 목사 - "돌아가셨지만, 아버님이 강희성 목사님이셨고 저는 좋은 평신도 지도자가 되고 싶어서 부산의 모 교회 안수집사로 있다가 신학을 하게 됐습니다. (아들은 군목 중령으로 연무대교회 담임목사이고 딸은 결혼해 미국 워싱턴장로교회 출석하고 있다.) 늦게 교회를 개척하면서 제자훈련을 했습니다. 평신도를 훈련해 사역을 같이 했습니다. 지역을 섬기는 사역을 많이 해왔습니다. 노인대학, 지역아동센터, 장애아 사역, 교회 앞 카페도 기아대책(飢餓對策, Food for the Hungry, FH), 공정무역(개발도상국의 농가에게 덤핑가격이 아닌 정당한 가격을 지불하여 해당 국가의 농민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 사회 운동) 카페 3호점 ‘비마이프렌드’(Be My Friend 나의 친구가 되어라)입니다. 선교사들 파송해서 커피콩을 거두어 오면 우리가 공정무역 패어 트레이드(fair trade)라고 해서 팔아서 남는 이익금을 선교하는 목적으로 카페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지역 행사들이 있으면 저희 교회에서 후원을 많이 합니다. 양산이 불교가 강한 지역이라 불교권 파송 선교사라는 마음가짐으로 사역하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목회밖에 모르고 목회만 계속 해왔습니다. 그런데 노회장을 하고 교회 연륜이 있다 보니까 노회도 섬겨야 되고 총회도 섬기게 됐습니다. 그러다보니까 총회도 가게 되고 총대가 아니라도 영남지역 총신 운영이사로 갔을 때입니다. 우리 노회에 유명한 분들 많이 계시잖아요. 정연철 목사님, 배광식 목사님, 이성택 목사님, 다 총회 일하신 분들 가서 총회 일 하시도록 보내드리고 우리는 노회 섬기고 그랬습니다." 강진상 목사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을 이었다. "결정적인 것은 총신 운영이사장을 하게 되면서 총회를 섬기게 된 것이었습니다. 양산이 불교가 강한 지역이었기 때문에 교회에 대해 지역 정서도 부정적이라서 교회나 목사의 존재는 뭐랄까 무시하고 하찮게 생각하는 것에 대해 마음속에 의분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뭔가 불교와 다른 차별화 스님과 목사가 뭐가 다른가. 교회 다니는 권사님과 장로님하고 절에 다니는 보살이 뭐가 다른가. 좀 차별화를 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우리가 열심히 기도하고 전도하고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지만 전통적인 교회에서 하기 힘든 지역봉사를 참 많이 해왔죠. 교회나 목회자에 대해서 인식을 새롭게 할 일을 많이 했습니다." 1988년 허름한 시골집 셋방에서 월평중앙교회라는 이름을 달고 기도로 교회를 시작한 그에게 가장 큰 어려움은 역시 불교 영향력이 큰 지역이라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을 주님께로 인도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더욱이 이미 타 교단에서 몇 번이나 교회를 세웠다가 철수를 하는 어려움을 겪었던 지역이라 지역 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기가 더욱 어려웠다. 강진상 목사는 25년 전 불모지와 같던 경남 양산 월평리에 내려와 부부가 가장 먼저 했던 일은 마을 주민이 되는 것이었다. 사모님은 남편 신대원 학비를 벌기 위해 할머니들과 밤늦게까지 채소를 다듬으며 농촌 지역의 주민으로서의 삶을 살아야 했고 이 마을에 살고 있었던 강진상 목사는 어른들을 만나기에 바쁜 하루를 보내야 했다. 그래서인지 마을 주민이 된 부부에게 다행히 마을 어르신들은 안 나와도 아이들이 교회 다니는 것은 크게 반대하지 않았다. 이때부터 교육하는 공동체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92년 선교원을 시작으로 처음 사역이 어린이 전도였다. 당시 월평초등학교 전교생 80명 중 72명이 교회에 나올 정도였다. 그때 주일학교 아이들이 지금의 젊은 세대를 이루어 청년부를 이끌었다고 한다. 잠시 알프스에서 자라는 13가지 허브 추출물이 들어있다는 맛이 깔끔한 리콜라 허브차를 나누었다. - "실례지만 교세가 얼마나 되십니까." 강진상 목사 - "코로나로 좀 침체됐지만 장년은 7백 명 정도이고 주일학교는 3백 명 정도입니다. 교세가 천 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많이 회복은 됐지만 저희 교인 70프로는 전도돼서 오신 분들입니다. 수평 이동이라기보다는 대부분 전도해서 오신 분들이 많습니다." - "처음 보고 규모에 깜짝 놀랐는데 여기에 터를 잡으신 건 언제입니까." 강진상 목사 - "네 번 옮겨 여기까지 오게 됐습니다. 2005년 본당을 짓고 입당을 했죠. 땅은 주차장까지 해서 2천 평입니다. 2013년에 비전센터를 지었습니다." 2005년 본당을 지은 뒤 2013년 평산교회 비전센터의 완공은 지역사회를 위한 봉사 활동에 더욱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120평을 지역사회에 기부해 2~3층에서 강의실과 지역사회를 위한 결혼식장, 주민자치공간이 자리 잡고 있다. - "총회를 섬기신 일을 소개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강진상 목사 - "총회를 위한 일이라면 총신 운영이사회를 10년 넘게 섬겼습니다. 다 아시겠지만 운영이사회 이사 노회 1년 분담금이 그 당시 3백만 원이었습니다. 그걸 낼만한 교회가 많지 않았습니다. 우리 노회에서 지원해주지 않거든요. 자비 부담해야 되는데 선배 목사님들이 저한테 총신 운영이사회 좀 섬기라고 등 떠미는 바람에 떠밀려 하게 된 겁니다. 이사로 섬기다 이사장도 맡게 됐습니다. 요즘 총회를 위해 하는 일은 정치부 부장입니다. 총회다음세대운동본부 서기를 맡고 있습니다. 그리고 올해 처음 생겼지만 세계개혁주의부흥협회 위원장도 맡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개혁주의 신앙을 갖고 있는 교단과 교류하고 세계교류협회가 있지만 친선관계라면 우리 교단이 갖고 있는 개혁주의 신학을 지속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정보를 주거나 함께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기구입니다." - "우리 총회를 위해서 정말 매우 중요한 부분들인데 총신운영이사장이라든지 중요한 직책을 잘 감당해주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강진상 목사 - "미력하지만 그래도 호불호가 있지만 권순웅 총회장님 이번 3월 18일 토요일 오셔서 설교하십니다. 그분은 총신(김영우가 총회와 총신을 분탕질하던 2010년대) 문제 때문에 ('하나님 말씀이 삶에서 실현될 때 개혁이 되는 것이며 부흥이 되는 것'이라 외친 제102회 총회) 서기였고 제가 총신운영이사회 이사장이라 그때부터 같이 비전과 꿈을 갖고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총회장 되시면서 제가 정치부서기를 맡게 됐죠." - "권순웅 목사님 그 당시 참 열정적으로 뛰어다니셨죠." 강진상 목사 - "돌이켜보면 민감한 부분이지만 그 당시 개인 돈을 써가면서 TF팀을 30회 이상 모였습니다. 저는 그 당시 SRT 고속열차 한 달 요금이 2백만 원 정도였습니다. 일주일에 이틀씩 울산역에 주차하고 서울 올라가서 일보고 내려오고 했습니다. 맡은 일에는 책임을 다해야 하는 성격이라서 그랬는데 전계헌 총회장이 항상 외부에 갔다오면 하신 이야기가 교단 쪼개진다고 걱정할 정도로 사실 위기였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총신이 그대로 가면 자칫하면 교단 쪼개질 뻔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총신을 정말 사랑하셨습니다." - "총신이 사유화되는 거였습니다." 강진상 목사 - "결론적으로 그 당시 (김영우를 상대로 한) 총신 문제는 계란으로 바위치기라고 했습니다. 절대 안 된다고 했죠. 여러 가지 과정이 있었지만 총신이 그대로 있고 총회가 갈라지지 않은 것은 하나님 은혜였습니다." 사실 당시 김영우 목사가 총회 부총회장 출마를 안 했거나 아니면 총장 사표라도 냈다면 총신 사유화 되는 거였다. 난공불락의 꾀돌이가 박무용 목사에게 건넨 제 꾀에 빠져 법정 구속되는 바람에 무너지고 말았다. 강진상 목사 - "역사가 훗날 평가하겠지만 참고로 말씀드리면 나라를 위해 전장에 나가 이기고 돌아온 장군을 역적으로 모는 경우가 있습니다. 화해한다고 남들은 다 풀어 영웅으로 만들어 놓고... 사실 잘 아시겠지만 총신에 임시 이사가 들어오는 건 맞지만 정관이 살아 있으면 우리 교단의 목사 장로로 이사를 세울 수밖에 없어요. 사분위(사립학교에서 구성원 간 분쟁 등으로 인해 학교법인의 기능이 마비되는 경우 교육부에서 임시이사를 파견한 후 정상화하여 정이사 체제로 환원하는데 그 과정에서 임시이사의 선임과 해임 등을 심의하는 정부 기관)도 그 정관을 넘어설 수 없거든요. 그런데 우리 앞에 있었던 구 이사들(김영우 지지 이사)이 김영우와 정관을 개정하면서 교단의 목사 장로 조항을 개혁주의 신학을 가진 자로 바꾸자 여자 이사가 들어오게 되고 아무나 이사가 될 수 있게 됐습니다. 개혁주의 신학이라는 문구가 이사 선정 기준이 되니 너무 모호하잖아요. 그런 것들이 (우리의 정체성을 부정하게 되는) 문호를 열어버리게 된 겁니다. 모든 책임은 운영이사회가 지게 됐죠. 사실 제 입장에서 너무 억울하죠. 그것은 운영이사회에서 만든 것이 아니고 정관을 고쳤기 때문이죠. 그래서 사분위가 그 정관대로 이사회를 구성하게 된 거죠." - "사실 김영우 목사가 주도한 거죠. 어쨌든 김영우 총장 체제가 무너지고 이렇게 된 것은 합력해서 선을 이루게 된 거죠." 강진상 목사 - "무엇보다도 당시 학내 소요로 신학생들이 양분되어 있었잖아요. 김영우 반대하고 수업 거부하며 데모한 학생들 또 수업받는 학생들. 그래서 그때 제가 수원 라비돌에서 칼빈, 대신, 광신 학생들까지 모아놓고 했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엄마 아빠가 사이좋게 살다가 헤어졌다. 큰아들은 아빠 따라가고 작은아들은 엄마 따라갔다. 그건 자식들 책임이 아니다. 총신 사태도 마찬가지다. 김영우 목사를 반대하는 학생 측이 있고 찬성하는 측도 있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훗날 졸업하면 같은 기수 동창생인데 친일파, 반일파처럼 서로 상처를 가지게 될 것 같더군요. 그래서 전부 라비돌에 모아놓고 후원도 받고 자체 경비로 해결하면서 먹이고 재우면서 화합을 촉구했습니다. 학생들이 정치적인 희생양이 되지 않도록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2년 동안 고시부에 들어가서 그 학생들 다 강도사 고시 보고 목사 고시 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습니다. 왜냐하면 총신에 가서 학생들 만나면 총회 못 믿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총회 믿고 싸우다 희생 당하면 책임지겠느냐는 겁니다. 제가 데모를 충동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총회를 믿으라고 말했습니다. 총회가 책임질 것이다. 그 말에 대한 책임을 내가 져야겠더라고요. 그래서 고시부에 지원해 들어가서 고시부에서도 안 된다는 학생들을 실력이 아나라면 정치로는 불이익을 줘서는 안 된다고 강력히 변호했습니다. 영웅 대접할 필요도 없지만 역적 대접할 필요도 없다고 했습니다. 학생들에게도 말했습니다. 지금은 모르지만 먼 훗날 졸업하고 단독 목회를 하게 되면 기수가 동기라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 느끼게 될 것이다. 여기서부터 서로 반대하고 상처받고 나가면 치유 받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당시 111회, 112회 목사 된 사람들 가끔 만나요. 만나면 그들이 먼저 인사하고 그때 고마웠습니다, 합니다. 총회장은 1년이고 총장은 계속 있으니 학생들은 총회 믿을 수 없다 하는 겁니다. 그런 말을 입버릇처럼 했죠." 목사 강진상은 평산교회와 양산 주민을 위한 주님의 종인 것처럼 주님의 종이 될 총신 졸업생들을 위해 헌신한 주님의 종도 됐었다. 평산교회는 지난 2021년 4월 18일 캄보디아 장로교신학교 씨엠립 분원 건축을 위해 2천만 원의 헌금을 전달했다. 신학생들의 안정적인 교육을 위해 장학금 5백만 원도 별도로 지원했다. 캄보디아 장로교신학교(총장 김재호 목사)는 144개 교회, 292개 기도처, 7899명의 청장년 성도, 1만8436명의 어린이로 구성된 캄보디아장로교 독노회가 운영하는 신학교다. 캄보디아 북부의 중추 도시인 씨엠립의 목회자 양성과 훈련을 위해 장로교신학교 지난 2017년 9월 27일에 분원을 개교했다. 총회군선교회는 제23차 정기총회를 2022년 5월 26일 서울 서초동 사랑의교회(오정현 목사)에서 갖고, 신임회장에 강진상 목사를 선출하는 등 새 임원진을 조직했다. 강진상 신임회장을 비롯한 총회군선교회 회원들을 대한민국 전 부대에 복음을 전파하겠다는 사명 아래 군선교에 더욱 진력하기로 다짐했다. 2022년 10월 25일 세계개혁주의부흥협의회가 첫 번째 회의를 총회회관에서 열고 사업 방향을 논의했다. 임원 조직으로는 위원장에 강진상 목사가 세워졌다. 회의에 참석한 제107회 총회장 권순웅 목사는 말했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 교단은 가장 큰 장로교회로 성장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를 세계교회와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오순절이 은사 중심이라면 우리 개혁주의는 말씀과 기도, 전도 중심 운동으로 전 세계를 섬길 수 있습니다. 이 일의 적임자가 바로 위원장 강진상 목사님이십니다.” 제자훈련에 있어 양육과 교육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그래서 평산교회는 교육공동체로서 행복아카데미와 제자대학 그리고 주일학교가 활성화 되어 있다. 확신하는 삶, 회복의 삶, 행복한 삶, 축복의 삶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평산노인대학은 지역내에서 유명세를 탈 만큼 많은 노인들이 참여하고 있다. 사회적 통합 증진을 위한 소외계층 평생교육 프로그램으로 교육인적자원부와 함께 저소득자, 저학력자, 고령자, 장애자 등 취약계층에 대한 자활기회 부여와 삶의 질 향상을 도모하고자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농촌의 특성상 노인들이 많다는 점에서 평산노인대학은 다른 지역에서도 벤치마킹하고자 할 만큼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평생학습도시 만들기를 희망하는 기초자치단체와 지역교육청과 협조, 그동안의 노하우를 컨설팅해주기도 하고 있으며 우수한 평생학습 프로그램을 발굴, 지원하는 일로 이를 타 지역에도 보급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평산교회의 또 다른 주력 사역으로는 봉사하는 공동체로,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활동이다. 바로 지역 섬김을 실천하는 것으로 5년 전부터 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지역 내 돌봄이 필요한 아동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교육시켜 건강하게 자라도록 돕기 위한 일로 비전센터를 세우면서 29명을 50명까지 확대했다. 토요일 전면 휴무제가 시행되면서 사각지대에 놓인 결손가정 아이들을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 토요창의학교도 운영 중이다. 여기에다 2010년부터는 행복한 나눔가게도 운영, 웅산 지역에 이어 두 번째로 탄생한 평산점을 오픈하였다. 기증받은 물품들을 지역민들에게 싸게 공급하고 그 수익금으로 해외 굶주린 이웃과 지역사회를 돕는 기아대책에 지원하고 있다. 어려서부터 목회자 자녀로 가난하지만 영성과 섬김의 정신을 배운 강진성 목사는 말한다. “인간의 행복과 불행은 만남에서부터 시작되며 가장 본질적인 만남은 하나님과의 만남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강진상 목사는 2025년 1월18일 양산 복음화를 위해 바친 38년의 목회 사역을 마무리하고 평산교회 원로목사로 추대되며 말했다. “제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은 광야의 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광야에 길을 내시고 사막에 샘물을 나게 하신 것처럼 그저 불도저처럼 앞만 보고 왔습니다. 주민들은 나를 가리켜서 인간 승리라고 하지만 하나님이 승리하신 겁니다. 무모할 수 있던 교회 건축도 믿음으로 따라준 직분자와 성도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개입이었고 섭리였습니다. 이제 그 뒤를 이어 갈 담임목사와 성도들 앞의 또 다른 시대적 사명들이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로 훌륭하게 열매를 맺길 바랍니다.” 살면서 좋은 부모를 만나는 것도, 훌륭한 배우자를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도, 사회적으로 훌륭한 스승을 만나는 것도 모두 중요한 부분이지만, 인생의 길을 안내받고 또한 영혼구원을 위해서는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인생의 방황은 하나님과의 만남으로 끝이 나고 신앙의 방황은 평신교회를 만남으로 끝을 맺게 된다는 주님의 종 강진상 목사. 시인 소강석 목사가 사랑하는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른 윤동주 시인의 시 '초 한 대'가 주님의 종 강진상 목사의 삶을 기리는 것 같다. 내 방에 풍긴 향내를 맡는다. 광명의 재단이 무너지기 전 나는 깨끗한 제물을 보았다. 염소의 갈비뼈 같은 그의 몸, 그의 생명인 心志까지 백옥 같은 눈물과 피를 흘려 불살라버린다. 그리고도 책상머리에 아롱거리며 선녀처럼 촛불은 춤을 춘다. 매를 본 꿩이 도망가듯이 암흑이 창구멍으로 도망한 나의 방에 풍긴 제물의 위대한 향내를 맛보노라. 1934.12.24. 성경은 말씀한다.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주의 종에게 알게 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위하여 집을 세우리라 하신고로 주의 종이 이 기도로 구할 마음이 생겼나이다 주 여호와여 오직 주는 하나님이시며 말씀이 참되시니이다 주께서 이 좋은 것으로 종에게 허락하셨사오니 이제 청컨대 종의 집에 복을 주사 주 앞에 영원히 있게 하옵소서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사오니 주의 은혜로 종의 집이 영원히 복을 받게 하옵소서 하니라 삼하 7:27-29 2023-04-04 수정 2025-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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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기승전결의 가치
‘벤허: 그리스도의 이야기’는 미국의 변호사, 주지사, 남북 전쟁 때의 북군 장군, 정치인, 저술가 루이스 월리스(Lewis Wallace, 1827년 4월 10일 ~ 1905년 2월 15일)가 1880년 쓴 모험 역사소설이었다. 그러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를 벤허는 지니고 있다. 원제는 Ben-Hur로, 실제 아말렉과 싸울 때 두 팔을 받쳐 모세를 도운 아론과 훌의 자손이기도 하다. 영어로는 벤허지만 히브리어 발음으로는 벤-후르. 개역한글판 표기법으로 하면 벤-훌이 된다. 의미는 성경의 모세의 동역자 '훌의 아들(Ben-Hur)'. 참고로 이름(First name)은 '유다'로, 풀네임은 히브리어식으로 유다 벤 훌(Judah Ben-Hur), 영어식으로 주다 벤 허이다. 걸작이다 보니 영상화도 여러 번 되어서 할리우드에서만 4차례나 영상화되었다. 사실상 영화가 소설보다 더 유명한 경우로, 사람들이 얘기하는 벤허는 대부분 1959년에 개봉한 윌리엄 와일러 감독(William Wyler, 1902년 7월 1일 ~ 1981년 7월 27일)의 영화판이다. 2004년 미국 국립 영화 보존 위원회는 벤허를 미국 의회도서관의 미국 국립 필름 등록부에 등재 했다. 그 이유를 '문화적, 역사적, 심미적으로 가치가 큰 작품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가끔 나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나 될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이 지구상의 60억 인구를 제일 값비싼 사람에서부터 제일 값싼 사람의 순서대로 세워 놓는다면 나는 몇 번째쯤이나 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보기도 하고 궁금해하기도 하지만 사람의 가치를 정확하게 계산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므로 이러한 질문과 궁금증은 의미가 없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들의 실제 생활 이야기는 좀 다른 것 같다. 즉 어떤 방식에 의하든, 어떤 이유에서든, 나는 사람들의 평가를 받고 있다. 연간 소득, 은행 잔고, 직업, 옷, 타고 다니는 차의 종류, 학벌, 신분, 출석교회 등이 나의 가치를 평가하는데 즐겨 쓰이는 기준들임에 틀림이 없다 사실 이런 것들은 나라는 사람의 진실 된 가치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것들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나 자신보다는 나를 둘러싼 포장지의 재질과 디자인과 색상에 더 관심을 갖고 있다. 브랜드 컨설팅회사 밀워드 브라운이 2016년 9월 7일(현지 시간) 홈페이지(http://www.millwardbrown.com)를 통해 발표한 올해 '브랜드Z 톱100'에 따르면, 구글의 브랜드 가치는 2290억 달러(약 264조 원)를 기록하며 1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1위인 애플은 브랜드 가치가 8% 줄어든 2280억 달러로 2위를 기록했다. 작년까지 애플이 3년간 1위 자리를 차지했는데, 구글의 브랜드 가치가 상승하며 순위를 역전시키는 데 성공했다. 우리나라 화폐 가치로 환산하면 1조가 넘는 금액이 된다. 한국 기업 가운데는 삼성이 유일하게 48위로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삼성의 브랜드 가치는 194억9천만 달러로 평가됐다. 그렇다면 내 이름 석 자가 지니고 있는 가치는 얼마나 될까 생각해 볼 때 나의 가치는 그리 커 보이지 않다. 목사로서의 가치는 그만두더라도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가치조차도 형편이 없다. 나는 바울 사도처럼 항상 기뻐하지도 않았고, 감사하지도 않았다. 나는 베드로처럼 주님을 사랑하지도 않았다.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복음에 대한 열정도 없다. 주기철 목사님처럼 불의에 담대하지도 않다. 존 칼빈이나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처럼 말씀에 대한 은사도 없다. 한 마디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사업에 공헌할 수 있는 재산 가치도 거의 없는 무능 그 자체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이러한 가운데서도 위로가 되고 감사한 것은 부족하지만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과 지금도 사용하고 계시다는 것이다. 그저 감사할 뿐이다.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핏값으로 이 땅에 교회를 세우시고 자기의 백성들을 불러모으신다. 일찍이 초대교회는 젊고 유능한 스데반과 같은 집사가 있었다. 초대교회는 스데반으로 인해 이제 막 전도의 불꽃이 피어오르기 시작한 중요한 시점에 하나님은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도록 내버려 두셨다.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달랐다. 스데반이 순교함으로 더 빠르게 복음이 전파되게 하셨다. 그리고 그 현장에 바울도 있게 하셨다. 이러한 성경의 사건들은 나의 존재 가치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내 기준에 의하면 나는 별 볼일 없는 무능하고 무가치한 존재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보통 사람이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이 천하보다 더 귀하고 100조 원의 코카콜라보다 더 가치 있다고 말씀하신다. 그 이유가 있다면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다 쏟으시고 나를 사셨기 때문이다. 주님의 사랑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 우리 모두는 자부심을 갖고 살자. 기죽지 말자. 세상적인 가치로는 보잘것없어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귀하게 여기신다. 일그러진 우리의 자화상을 회복하지 못하고 세상적인 가치와 판단으로 살아간다면 우리는 순간순간 낙심하게 되고 좌절하게 된다. 더 이상 일그러진 자화상을 회복하자. 그 길은 나를 둘러싼 포장지를 벗겨내고 내 마음 깊숙한 곳에 심겨진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데 있다. 비록 내 모습은 질그릇에 불과할지라도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나를 사용하시기에 나의 가치는 천하와도 바꿀 수 없을 정도로 귀한 것임에 틀림이 없다. 그렇다고 교만하거나 자만하지 말자. 그저 하나님의 은혜임을 기억하고 감사하자. 벤허는 미국 영화를 대표하는 장르의 하나인 기독교적인 호화 스펙터클 영화의 견본으로 꼽힌다. 제작 당시 기준으로 역대 가장 거대한 규모의 세트장에서 촬영된 동시에 가장 많은 제작비(1517만 5천 달러)가 투입되었다. 의상 제작자 엘리자베스 해펜든은 영화 내 의상 제작자 100명,·조각상 제작자 200명으로 구성된 워크숍을 통솔했다. 촬영은 1958년 5월 18일 시작되어 1959년 1월 7일까지 진행되었고 주 6일, 하루 12~14시간 작업하였다. 사전제작은 1957년 10월 무렵 시작되었으며 후반 작업에는 6개월이 걸렸다. 1만 명 정도의 엑스트라, 낙타 200마리, 말 2500마리가 촬영에 동원되었다. 그 유명한 해전(海戰) 장면은 캘리포니아주 컬버시티의 MGM 스튜디오 내 야외 촬영부지에 거대한 물탱크를 설치하고 거기에서 찍었다. 작품 중 나오는 9분 분량의 벤허와 메살라의 전차경주 신은 영화사에 있어 매우 유명한 장면으로 남아 있다. 이렇듯 많은 돈이 투자되고 엄청난 물량이 동원돼 큰 성공을 거둔 이 영화의 가장 귀한 가치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유다 벤 허와 그 가족이 구원받고 회복되는 것을 보여주고 전하는 데 있을 것이다. 가격과 가치에는 차이와 공통점이 있다. 가격은 벤허의 제작비나 규모처럼 눈에 보이는 숫자로 물건의 가치를 돈으로 나타낸 것이다. 반면 가치는 눈에 보이지 않으며, 대상이 지니고 있는 쓸모를 의미한다.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따라 민감하게 움직이지만, 가치는 무엇과 비교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가끔 사람들은 가격(Price)과 가치(Value)란 단어를 혼동해서 쓰곤 한다. 가격과 가치가 괴리되기 쉬운 또 하나의 원인은 가격(價格)은 눈에 보이는 숫자인 반면, 가치(價値)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1만 원과 1만5천 원의 가격표를 보고 어느 것이 싸다, 비싸다를 쉽게 파악한다. 숫자를 배운 사람이라면 누구나 1만 원이 싸고 1만5천 원이 비싸다고 이야기할 것이다. 숫자 그 자체가 기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치는 보이지 않는 것이기에 매우 상대적이다. 무엇과 비교하느냐에 따라 그 가치는 다를 수밖에 없다. 많은 경험을 통해 가치판단의 기준점이 형성되었을 때 가치를 판단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는 반대로 경험이 부족하여 가치판단의 기준점이 없다면 잘못된 기준점으로 가치판단의 오류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치인의 평가가 단기적으로는 인기투표와 감성에 의해 좌우되지만 장기적으로는 역사적 맥락에서 평가되는 것과 비슷한 것처럼 말이다. 기승전결의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 마 13:44-46 2025-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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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기승전결의 착각
우연의 일치인지 피노키오 모험의 작가 콜로디(본명 카를로 로렌치니 Carlo Lorenzini, 1826년 11월 24일 ~ 1890년 10월 26일)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동화 《피노키오의 모험》의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가 의도한 건지 모르겠지만 피노키오와 예수 그리스도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 두 아버지의 직업이 목수이고 둘 다 이름이 요셉이다. 예수의 아버지는 나자렛의 성 요셉. 제페토 할아버지의 이름은 이탈리아 이름 주세페인데(제페토는 주세페의 이탈리아 지방 토스카나식 애칭이다), 주세페가 바로 요셉을 이탈리아식으로 발음한 이름인 것이다. 이러한 공통점 때문에 생겨난 이런 착각 우스개가 있다. 토스카나의 유명한 목수 안토니오가 식탁 다리를 만들기 위해 잣나무 토막을 주워왔다. 그런데 나무를 깎기 시작하자마자 나무토막이 마구 떠들어댔다. 놀란 안토니오는 그 나무토막을 때마침 찾아온 자신의 친구 제페토에게 주었다. 제페토는 입에 풀칠이라도 하기 위해 나무 인형을 만들어 거리에서 인형극을 하려고 나무토막을 얻으러 안토니오에게 찾아간 것이었다. 죽은 영혼들이 천국으로 갈지 지옥으로 갈지 결정하는 성 베드로가 잠시 자리를 비우게 되어 예수께서 대신 그 업무를 맡아 보셨다. 그러던 중, 익숙한 얼굴을 한 노인의 차례가 되었다. 예수께서 그의 이름을 물었다. "이름이 뭐죠?" "제페토입니다." "혹시 직업이 뭐였죠?" "목수 일을 했었습니다." "아들이 하나 있죠?" "예." "그 아들은 당신에게서 태어나지 않았지요?" "아니 그걸 어떻게..." "그리고 그 아들의 팔목과 발에 못자국이..." "그렇소만..." 예수께서 눈물을 글썽이시며 노인에게 다가갔다. "아버지! 아버지..." 노인은 의아해하며 어리둥절하다 감격에 겨워 답했다. "아니 그럼 네가 바로 그 피노키오란 말이냐!" 현대인들은 저마다 색안경을 끼고 있다. 그러다 보니 착각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모두가 공주이고 왕자다. 이 세상에서 가장 쉬운 것 같아도 가장 어려운 일이 있다면 그것은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안다는 것이 무척이나 어렵지만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삶을 살펴보면 어려움이 없는 사람이 없다. 어떤 사람은 먹는 문제, 입는 문제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자식 문제, 사업 문제 등 일상적인 삶 때문에 당하는 고통이 있다. 인격자는 인격자대로 자기가 누리고 있는 그 인격과 자유에 대한 고민이 있다. 지성인은 지성인으로서의 고민이 있다. 현대 지성인의 고통 가운데 가장 큰 것은 실망이라고 하는 고민이다. 실망은 기대가 있고 믿는 바가 있었기에 실망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실망은 진실의 반대에서 생겨난다. 그런데 이런 실망 가운데 가장 큰 실망은 자기 자신에 대한 실망이다. 내가 무엇이 있는 줄 알았는데 없다. 큰 사업을 한다고 분주하게 정신없이 바삐 살았는데 지금 살펴보니 아무것도 없다. 있는 줄 알았는데 아무것도 없다. 많이 번 줄 알았는데 손해였다. 무엇인가 손에 움켜쥐었는데 손에 잡힌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내가 무엇이 된 줄로 알았는데 된 것이 아무것도 없다.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력자다. 무엇을 좀 안다고 설쳤는데 지금 보니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다. 내가 지혜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세상에 이렇게 어리석을 수가 없다. 내 딴에 진실하게 살아보려고 몸부림 쳤지만 세상에서 나 같은 위선자가 없다. 이처럼 우리는 착각 속에 살아왔다. 나는 부자다, 부족한 것이 별로 없다, 나는 많은 것을 가졌다고 자랑하며 살아왔는데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가난하다. 초라하다. 없는 것이 너무 많다. 그런데도 우리들은 이런 사실을 모른 채 살아가고 있다. 나 자신의 무지를 모르고 있다. 거짓 부자이고 나 자신을 속인 허구에 속아 살고 있다. 모르면서도 아는 줄로 착각하고 있다. 아무것도 없으면서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 이제 착각에서 벗어나자. 나의 나 됨을 인정하자. 나의 실상을 진솔하게 인정하며 살자. 우리는 눈뜬장님처럼 살아가고 있다. 어떤 장님이 밤길을 가는데 자기는 밤이나 낮이나 마찬가지지만 눈뜬 사람들이 자기를 못 보고 부딪칠까 하는 생각에서 등불에다 불을 켜 들고 길을 떠났다. 한참을 가다가 어떤 사람과 부딪혀 넘어지고 말았다. 그때 장님이 화가 나서 "이 사람아 이 등불이 안 보이는가" 하며 호통을 쳤다. 그러자 상대편 사람이 말했다. "여보세요. 당신이 든 등불은 불이 꺼진 지 이미 오래된 것 같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 장님처럼 살아가고 있지는 않을까? 어서 눈을 떠야 할 것이다. 그래야 나의 부족함을 깨닫게 된다. 나 자신을 바로 볼 수가 있다. 눈을 뜨지 못하면 부끄러움을 모른다. 우리는 명예, 위신, 지식, 돈 체면 등을 굉장히 위한다. 그러나 쓸데없는 일이다. 진실해져야 한다. 나 자신의 잘못과 수치를 인정해야 한다. 내가 얼마나 가난하고 무식하며 위선자고 장님인가를 알아야 한다. 인정해야만 한다. 형편없는 죄인임을 고백해야 한다. 그래서 바울 사도를 통해 기승전결의 살아 있는 성경이 말씀한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롬 7:24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위선과 허무에 매여 살지 말아야 한다. 사느냐 죽느냐가 아니라 우리는 이미 죄와 허물로 죽었던 자들이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처럼 날마다 죽어야 한다. 죽은 사람에게 아무것도 필요 없다. 필요한 것이 있다면 진실을 찾아야 한다. 곧 믿음을 소유해야 한다. 나의 나 됨을 잘 알 수 있는 길은 믿음의 길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 앞에 서야 나의 참된 모습을 알 수 있다. 이제까지 내가 알고 있는 나, 다른 사람이 보아 준 나의 모습은 진짜 나의 모습이 아닐 수 있다. 좀 더 진실해지자. 하나님이 은혜로 깨우쳐주신 나의 모습이 참된 나 자신임을 깨달아야 한다.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하려고 혈기 등등해 다메섹으로 가던 사울이 주님의 은혜를 받고 주님을 따르고 전하는 사도 바울이 되었다. 이제 우리도 이기적인 편견과 선입관의 색안경을 통해 보이는 착각에서 벗어나 기승전결의 살아 있는 성경을 통해 지혜와 인도를 구해야 될 것이다. 기승전결의 알파와 오메가 되시는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나는 진리와 빛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4:6 2025-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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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김문기 장로 '신기루' 인생 '촛불' 사명
전국장로회 회장 강의창 장로 종소리같은 복음송 김문기 장로 전국 장로와 신자의 복음 가수라고 말해 소강석 목사의 복음과 목회생태계 사절(使節) 김문기 장로 찬양 앨범 2집 ‘신기루 인생’ 3집 '촛불' 발매 김문기 장로 2018년 한 해만 97회의 찬양간증 간증 시간 모자랄 정도 하나님 사랑 넘치고 또 넘쳐 찬양 신기루 인생 서용봉 작사/장욱조 작곡 고해같은 힘든 인생 될 줄 알고 뛰었건만그럴수록 거품처럼 부서지는 내 인생아주님 없는 인생길 신기루가 아니던가광야같은 세상에서 예수님만 의지하니잡초같은 내 인생에 이제 꽃이 피어나네 의지할 이 주님이라 두 손 들고 주께 왔네무거운 짐 내려놓고 예수님만 의지하리주님 없는 인생길 신기루가 아니던가광야같은 세상에서 예수님만 의지하니잡초같은 내 인생에 이제 꽃이 피어나네 소망의 길 승리의 길 하나님이 같이하네길과 진리 생명이신 우리 주님 인도하네주님 없는 인생길 신기루가 아니던가광야같은 세상에서 예수님만 의지하니잡초같은 내 인생에 이제 꽃이 피어나네 목사의 꿈을 가지고 있었지만 집안 사정으로 목사의 길을 포기한 김문기 장로는 어느 날 교회의 종탑을 보고 소리를 내는 저 종처럼 하나님의 쓰임을 받게 되리라 깨달았다고 한다. 사라졌지만 잊지 못하는 것. 갔지만 남는 것. 그것은 사랑이고 은혜다, 그리고 신기루 인생의 기억이고 세월이다. 꽃 필 때는 피는 꽃처럼 오고 잎 질 때는 지는 잎처럼 가는 그 사랑과 은혜는 오래된 미래다. 미래의 과거다. 나뭇잎이 떨어져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사라진다 해도 여름이어서 빛났고 가을이어서 서늘했다. 이 서늘한 가슴에 살아남는 것은 세월보다 신기루 인생의 기억이다. 종탑 아래 그 교회 유리창 빛에 어른거리던 그 은혜의 밤을 잊지 못한다. 그러나 그 은혜의 순간은 가고 믿음만 남는 '신기루' 인생 그리고 '촛불' 사명. 세계적인 교회로 성장한 새에덴교회(소강석 목사) 대외협력국장으로 교단과 교계, 복음과 목회생태계 사도(使徒) 소강석 목사 사역을 받드는 복음송 사역자 김문기 장로의 발길은 언제나 그의 노래가 함께한다. 교회의 종소리처럼 울리는 그의 노래를 전국장로회 회장 강의창 장로는 전국 장로와 신자를 일으키는 복음 가수라고 말한다. 소강석 목사의 복음과 목회생태계를 위한 열정과 헌신을 전하는 사절(使節) 김문기 장로는 믿음의 노래를 겸하여 부르다 2017년 2집 ‘신기루 인생’ 2019년 3집 '촛불'을 냈다. 김문기 장로는 말했다. 특히 이번 앨범의 ‘신기루 인생’은 유명 가수 겸 작곡가인 장욱조 목사가 작곡자이면서 제작은 물론 김문기 장로의 음악 지도까지 맡아 했다. ‘저 산마루 깊은 밤 산새들도 잠들고 우뚝 선 고목이 달빛 아래 외롭네 옛사람 간 곳 없다 올리도 없지마는 만날 날 기다리며 오늘이 또 간다...’ 1980년 크게 히트했던 가요 ‘고목나무’. 40/50대라면 지금도 몇 소절쯤은 읊조릴 수 있는 노래다. 이 노래의 작사 작곡자이자 가수였던 장욱조 씨(일산 한소망교회 선교목사)는 세상에 젖어 살던 유명 가수 시절 보다 교도소 병원 군부대 교회 전도 집회를 매월 20차례 이상 다니며 바쁘게 살고 있다. 장욱조 목사는 한창 잘나가던 가수로 가요순위 프로그램에서 17주 동안이나 1위를 차지하고 ‘상처’(조용필) ‘아니야’(조경수) ‘기다리게 해놓고’(방주연) ‘내 젊음의 빈 노트’(유미리) 등 히트곡의 작사 작곡자로 명성을 떨칠 때보다 지금 목사로 사는 삶이 더 행복하다고 고백한다. 장 목사가 주님 앞에 무릎을 꿇은 것은 1986년 3월 30일이다. 그의 가족들은 이날을 집안 기념일로 지키고 있다. 먼저 믿은 아내가 교회에 가자고 졸라도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마다했다가 그 날 하는 수 없이 교회를 나갔다. 그런데 인기도 예전 같지 않고 운영하던 업소도 어려워져 절망의 벼랑 끝을 헤매고 있었던 때라 교회의 따스한 분위기가 왠지 맘에 들었다. 장 목사는 그때를 그렇게 회상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완전히 항복할 때 까지 기다려주시더군요.” 1년이 지난 어느 날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심령을 갈라놓았다. “하루는 연예인 선교단을 따라 찬양집회를 갔는데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이란 찬양을 부르면서 마음에 이상한 감정이 치솟아 올랐습니다. 그 전부터 알던 찬양이었는데 그 날따라 왜 그렇게 눈물이 쏟아지는지 알 수가 없더라구요.” 그때부터 그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믿음이란 자기 목숨까지 하나님께 내어놓는 것이란 것을 깨달았다. 하나님께 죄인이란 사실을 고백하자 마음에 뜨거운 감동이 일었다. 인기가수로 무대에 서서 환호를 받을 때도 맛볼 수 없었던 감동이었다. 그 감동이 복음성가로 터져 나와 ‘할 수 있다 하신 주’ ‘주님 나의 동산’ ‘하늘나라 여는 문’ ‘전하세’ 등 100여 곡을 지었다. 전국 교회와 신자의 복음가수 김문기 장로의 2집 앨범은 장욱조 목사의 신곡 ‘신기루 인생’ 외에 ‘할 수 있다 하신 이는’ ‘나를 구원하신 아버지’ 등 12곡이 담겼다. 김문기 장로의 노래 열정에 날개를 달아준 이가 장욱조 목사다. 우연히 간증집회에서 만난 장 목사와 의기투합해 1집 앨범에 이어 2집 앨범까지 만들게 됐다. 신곡 ‘신기루 인생’도 장욱조 목사의 작품이다. 김문기 장로는 이 찬양이 자신의 인생을 말해주는 것 같아 특히 애정을 갖고 있다고 한다. 그 노래를 처음 들은 나도 그랬다. 그래서 취재를 하게 된 전국 장로와 신자의 복음 가수 김문기 장로는 전라도 억양으로 구수하게 말했다. “예전에는 주님을 떠나 광야의 잡초처럼 살았지만 주님을 만나고 난 뒤 내 인생에 꽃이 핀다는 가사입니다. 그 가사가 저의 삶을 그대로 투영한 것 같아 애착이 갑니다. 원래는 작사가가 부르려던 곡이었어요. 그런데 그분에게는 잘 맞지 않아 하나님의 은혜로 저한테 기회가 왔습니다. 부르면서 저도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곡에는 원 주인이 있다더니 저에게 딱 맞는 맞춤 곡이였죠. 작곡자 장욱조 목사의 배려에 말로 다할 수 없는 고마움을 느낍니다. 특별히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소강석 담임목사님의 사랑은 더 말할 수가 없죠.” 신기루(蜃氣樓)는 바다 위나 사막에서 빛이 밀도가 다른 공기층을 통과하면서 굴절하여 생기는 현상을 말한다. 그 제목의 노래 ‘신기루 인생’이 우리 인생을 되돌아보게 한다. ‘고해같은 힘든 인생 될 줄 알고 뛰었건만 그럴수록 거품처럼 부서지는 내 인생아 주님 없는 인생길 신기루가 아니던가 광야같은 세상에서 예수님만 의지하니 잡초같은 내 인생에 이제 꽃이 피어나네’ 장맛비가 산골을 후비는 2016년 7월 4일 오후 3시 정선군 고한읍 하이원리조트 컨벤션홀에서 제38회 전국장로회연합회(회장 김성태) 하기수련회가 3000여명이 모여 개회됐다. 소강석 목사가 은혜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그 집회에서 김문기 장로가 “주여 이 죄인이” 라는 복음의 노래를 절절하게 열창해 ‘존경받는 장로가 되자’는 기치 아래 모인 장로들에게 깊은 감동을 안겨 주었다. 세상에서 방황할 때 나 주님을 몰랐네내 맘대로 고집하며 온갖 죄를 저질렀네예수여 이 죄인도 용서 받을 수 있나요벌레만도 못한 내가 용서 받을 수 있나요 ... 내 모든 죄 무거운 짐 이젠 모두 다 벗었네우리 주님 예수께서 나와 함께 계신다오내 주여 이 죄인이 무한 감사드립니다나의 몸과 영혼까지 주를 위해 바칩니다 소망의 길 승리의 길 하나님이 같이하네길과 진리 생명이신 우리 주님 인도하네주님 없는 인생길 신기루가 아니던가광야같은 세상에서 예수님만 의지하니잡초같은 내 인생에 이제 꽃이 피어나네 김문기 장로는 2집 '신기루 인생'에 이어 2019년 3집 '촛불'을 발매했다. 2017년 2집을 1만장 제작한 데 이어 3집으로 하나님께 더 큰 영광을 돌린다는 포부다. 3집 앨범은 신곡 2곡을 포함해 총 15곡을 수록했다. 그 중 타이틀 곡 '촛불'은 대한민국 문단의 공인받은 문학상 수상 시인이자 대한민국 대표적 설교자와 목회자인 소강석 목사가 작사·작곡한 곡이다. 교단의 대표적 복음송 가수 김문기 장로는 말했다. “이 찬양에 ‘사랑할수록 부족하고 드릴수록 목마르기에…’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소강석 목사님이 목회자로서 하나님과의 관계 사이에 느끼는 감정을 표현한 것인데, 나도 부르면서 그 감동과 기쁨에 넘쳐 눈물을 흘렸습니다. 젊었을 때 가수가 되고 싶었지만 이루지 못했던 꿈을 70대의 나이에 이뤘어요. 앨범을 내고, 저를 필요로 하는 곳에 가서 간증하며 찬양을 부르는 지금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제 목소리로 복음의 은혜를 전파할 수 있다는 것이 빛이신 하나님의 은혜이고 약하고 부족한 제게 촛불 같으신 소강석 목사님의 후원 덕이죠...” 성경은 말씀한다. 할렐루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 나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찌니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 146:1-5 2025-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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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옥한흠 목사 교회 갱신 은혜의 걸음
믿음에 사는 동안 다 말 못 할 말들을 믿음은 저마다의 가슴속에 품고 산다 꼭 믿어야 할 때 믿기 어려워 믿으면 주님은 침묵으로 튼튼해진 그의 두 팔을 벌려 나의 믿음을 품어주신다 주님이 별이시라면 나는 주님 옆에 뜨는 작은 별이고 싶다 주님이 노을이시라면 나는 주님 뒷모습을 비추어 주는 저녁 하늘이 되고 싶다 주님이 나무시라면 나는 주님의 발등에 덮인 흙이고자 한다 오, 주님이 이른 봄 숲에서 우는 은빛 새이시라면 나는 주님이 앉으실 수 있는 한창 물오르는 싱싱한 가지이고 싶다 판단이라는 것은 데이터와 분석뿐만 아니라 신탁(神託), 직관(直觀)까지 포함된다. 작은 일은 데이터만 가지고 판단해도 되지만 큰일은 신탁이 있어야 한다. 고대 지중해 세계에서 국가의 존망이 걸린 전쟁을 앞두고 델피 신전에 가서 신탁을 구했던 것도 고도의 의사 결정 과정이라고 보아야 한다. 트럼프나 이재명은 여러 재판 판결을 앞에 두고 점괘를 물어볼 신탁소나 점장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국가 간 전쟁은 뉴욕의 부동산 투자나 대장동 개발과는 차원이 다른 결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믿는 사람들은 주기도문에 나오는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구절을 때마다 외우지만 그때마다 깊은 믿음이 솟는 이유다. 만사가 하늘에서 먼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의 섭리와 뜻이 조짐으로 미리 나타나고 그다음에 현실 세계에서 보게 된다. 마치 일기예보와 같다. 인공위성에서 고기압과 저기압의 배치를 보고 일기를 예보한다. 예컨대 고기압과 저기압의 배치를 미리 보는 일이 '하늘에서 먼저 이루어지는 것'을 앞서 보는 일이다. 그것이 바로 징조와 계시의 하나인 것이다. 이 징조를 감지하는 일이 원래 동양에서는 국사(國師)나 왕사 또는 도사가 담당했다. 서양에서는 왕 측근의 성직자 또는 선지자나 예언자 몫이었다. 풍수도참과 주역 그리고 꿈이나 환상이 요셉이나 에스겔의 경우처럼 하늘의 조짐을 미리 짐작하게 해주는 도구였기 때문이다. 기업 경영에서 도사들의 판단을 활용하는 경영의 원조는 삼성의 이병철 전 회장이다. 대한민국을 지금의 인터넷 강국으로 만드는 기초를 놓은 이병철 회장은 도사들에게 대접도 후하게 했지만 한 사람 말만 믿지 않고 여러 도사의 점괘를 크로스 체크하는 노련함도 있었다고 한다. 그래도 인간의 생로병사는 그 누구든 피하지 못한다. 1996년 3월 7일 140명의 교단 소속 목회자들이 창립 제안자 옥한흠(玉漢欽, 1938년 12월 5일 ~ 2010년 9월 2일) 목사의 사랑의교회에서 △목회자 영성 회복 △교회갱신 △교단발전 △한국교회에서 교단의 올바른 자리매김 등을 위해 노력한다는 취지로 ‘교회갱신을 위한 목회자협의회(교갱협)’를 창립했다. 그 후 교단 내 금권선거를 뿌리 뽑기 위해 직선제를 폐하고 총회 임원 제비뽑기 선거제도를 정착시켰다. 세월이 흘러 교갱협 25주년 행사가 2020년 8월 17일 10시 30분 새로남교회에서 열렸다. 12시 20분 새로남교회 강단에 마련된 좌담회 석상에서 1명의 사회자(조성민)와 5명(고동훈, 김경원, 김찬곤, 이건영, 이재윤)의 패널 가운데 옥한흠 목사를 바로 이은 교갱협 2대 회장(2007. 8-2013. 8) 김경원 목사(서현교회 원로 2대 교갱협 대표회장 2007. 8-2013. 8)가 좌담회에서 발언하고 있었다. 주제는 ‘교갱협 25년 회고와 전망’이었다. “... 아까 교갱 있냐 없냐 말한 분이 있는데 지금 없어져도 아무도 아쉬워하는 사람 없어요. 그렇게까지 존재감이 없어져 가고 있지 않느냐 하는 위기를 저는 느끼고 있어요. 고동훈 목사가 교갱협에 대해서 얘기하면서 목회적, 목양적 견지에서 젊은이를 끌어안고 뭘 해야 되겠다, 교단 정치는 어떻게 해야 되겠다 했는데 내가 지금 말하고 싶은 이야기예요. 지금 현재도 해야 돼요. 그러나 안 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문제가 큰 겁니다. 절대적으로 변함이 없어야 할 교갱의 정신이 있습니다. 목회자 자기 갱신 교단을 세우는 갱신 이것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가져야 될 거예요. 그리고 가변적인 정신이 있어야 되요. 그것이 뭐냐, 다음 세대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 시대적인 상황 속에서 목회적인 상황 속에서 키워야 되요. 그리고 세워야 되요. 그리고 목회자 갱신을 계속합시다.(톤을 높이며) 그런 논리 아닙니까 이거. 예를 들어서 소리가 좋았다. 왜 지금은 소리 안 질러요? 왜 성명서 발표 안 해요? 미안합니다만 안 하는 건 지금 당신들 책임이야. 해야 될 건데 안 하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어요? 그렇잖아요. 교단의 큰 비리라든지 차별금지법이다 동성애다 총신 문제 많다 말입니다. 소리 질러요. 왜 안 지르느냐 이거요. 우리 스스로 지금 비판하면서 우리 존재감이 뭐냐? 소리 안 지르는데 무슨 존재감이 있느냐? 지금 그렇습니다.(사회자 한숨 쉰다) 교단의 문제도 그래요. 지금 젊은 목회자들이 비판하듯이 교갱을 정치적인 발판을 위해 도구로 삼으려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게 문제예요. 절대로 자기 정치적인 교단 안의 입지를 구축하기 위해서 교갱협을 도구나 발판으로 삼아 이용하려는 사람이 있어요. 그건 안 되는 겁니다. 그렇잖아요. 이게 옥한흠 목사님이 함께 시작했던 정신입니다. 들어가려 하지도 않았어요. 그런데 지금 그걸 이용해서 들어가려고 해요. 그래서 목회자들이 전부 실망하는 겁니다.(톤이 높아지며) 이런 건 막아야 돼요. 막았으면 좋겠습니다가 아니라 현재 있는 사람들이 막아야 됩니다. 안 막으니까 내가 답답하다는 겁니다. 옛날 이야기하면 젊은 사람들 싫어하겠지만 우리 교갱 임원들 수련회 하려고 일본까지 갔어요. 3박 4일. 제주도도 갔어요. 전부 비행기 타고. 일본 갈 때는 배 타고 왕복했지만. 설악산도 갔어요. 그런 가운데 외침이 나올 수 있었어요.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가 아니예요.(톤을 높이며) 하라는 거예요. 왜 안 합니까? 내 말은... (사회자 박수를 유도한다. 일동 박수) 존재감을 살려야 돼요. 25년 전을 다시 한번 살려보자. 어떻게 살리느냐... 살려 가지고 좀 제대로 해보자. 그런 다짐으로 하는 것이 25주년의 의미가 아니겠는가. 전도사님들 젊은 목회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교단에 두려운 존재도 되고 우리 자신의 목양적인 어떤 사명을 하고 그것은 구호가 아니라 실질적인 교갱을 통해 이루어가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사회자가 말을 받는다. “제가 볼 때는 목사님께서 원로를 떼시고 다시금 현역으로 들어오셔야 될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박수합시다. (일동 박수) (사회자 패널들을 향해) 왜 안 합니까? (김경원 목사 허허 웃는다) 하시란 말이예요. 이제 우리 김찬곤 목사님이 답변하셔야 되는데 엄청 부담이 될 것 같습니다. 바로 옆에서 보고 ‘왜 안 하느냐?’ 말씀하시기 때문에 잘 말씀해 주시기를 부탁합니다.” 김찬곤 목사(안양석수교회 5대 교갱협 대표회장 2019. 8-)가 말을 이었다. “그래서 부담입니다. (사회자 너털웃음. ‘우하하하.’) 아. 뭐. 맞습니다. 해야죠. 해야 되고 저도 이제 해야 된다 라는 당위성을 알아야 해요. 어떻게 할 것인가는 우리가 논의해야 되는 논제라고 봅니다. 아. 진짜 당부하고 같이 합의해야 할 것 중의 한 가지는 말씀드렸는지 모르지만 지금 교갱은 상임 회장이 공석입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거든요. 있을 수 없는 일이 현재 벌어져 있고 사실은 다음 차기 대표회장이 될 사람이 준비해 같이 움직여져야 하는데 이 자리가 공석이라는 자체가 그 한 가지입니다. 이것은 누구도 뭐 다른 어떤 자리들은 돈을 내고라도 나갈 수 있는 자리인데 여기는 누구도 주지도 않지만... (좌중 웃음) 나오려고 하지도 않고 하려고 하는 사람도 없다는 것... 우리 중 몇 분이라도 내가 하겠다고 해서 시켜주지도 않겠습니다만 (일부 웃음) 그래도 그런 부분에 관한 관심과 헌신을 같이 해야 되지 않겠나. 그래야지 연결 고리를 계속 내려갈 수 있지 않겠나. 사실 뭐 교갱협 대표나 임원은 보기에 굉장히 근사하지만 굉장히 힘든 자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미 있는 자리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들 중에서 오늘 총회 안 할 거 아닙니다만은 일부분 다루어져서 좀 정리가 되어지고 새로운 사람들이 세워지는 부분이 위임이 준비되어지는 과정들이 꼭 필요하고 다음 분들도 같이 혹시라도 좀 더 깊이 일하고 싶은 분이 있으면 노크를 해주십시오. 우리 그런 적 한 번도 없었지만 노크를 하면 그래도 좀 대화를 하면서 뭔가를 할 수 있지 않겠나... 아니면 대표부 쪽에서 요청을 하고 이야기를 하면 거의 대다수의 사람들이 사양을 합니다. 사양을 못하는 마음 약한 사람들만 지금 이 자리를 지키는 겁니다. 그런 부분들이 없잖아 있기 때문에 관심을 더 적극적으로 하는 우리... 김경원 목사님의 그 고언은 우리가 진짜 가슴 속 깊이 되새기면서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못해서 우리가 반성해야 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현실 속에서 우리 동역자들에게 좀 더 적극적으로 협의회에 대한 관심과 우리 내부 안에서도 좀 쓴소리가 나와져서 임원들이 좀 단단해지는 부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 누구든지 조금 더 관심을 깊이 있게 가져줬으면 합니다. 교갱협이 진짜 기준이 되고 정신이 되고 진짜 심장이 되어지는 원리가 우리 후배들에게 계속 흘러갈 수 있도록 이 자리에 계신 분이라도 힘을 모으면... 옥한흠 목사님이 10주년에 사데 교회 설교를 하시면서 얼마나 비판을 했는지 몰라요. ‘우리가 그 사데 교회 지도자들이 아니냐.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데 교회 선한 사람들이 있다’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몇 사람만이라도 힘을 모으면 이것은 절대로 문제가 되지 않고 이겨낼 수 있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옥한흠 목사님이 돌아가신 지 10주년이 됐습니다. 올해가 10주년인데 그 정신이 이어져가고 있으니까 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 더 되새겨 봅시다. 이 자리에 오신 분들은 그 심장을 가지고 오신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힘을 모아간다면 귀한 목사님의 고언이 우리 현실 속에서 열매로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사회자가 말을 이었다. “오늘 마지막 찬양은 25주년 됐기 때문에 ‘생일 축하합니다’ 이 노래보다는 ‘원할 때 바라고 기도합니다’ 찬양이 있습니다. 후렴에 보시면 ‘하나님의 성품이 성령님의 능력이’ 다시 한번 우리 교갱협에 불일 듯 일어나기를 원하는 그런 마음을 담았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도 다 일어나시죠. 일어나셔서 마지막 이 찬양을 하고 난 다음에 케이크를 절단하겠습니다.” 피아노 반주에 합창이 울렸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나의 힘을 의지할 수 없으니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 것은 주께서 참 소망이 되심이라 하나님의 꿈이 나의 비젼이 되고 예수님의 성품이 나의 인격이 되고 성령님의 권능이 나의 능력이 되길 원하고 바라고 기도합니다... 이어서 이사장 이건영 목사(인천제2교회 교갱협 3대 대표회장 2013. 8-2017. 8)의 사회로 교갱협 25주년에 걸맞는 정기총회가 진행돼 안건 및 결의사항을 처리했다. 이건영 목사는 우리 총회를 힐렐 같은 믿음과 지혜로 이끌어 가고 있는 지도자이다. 교갱협의 정신과 정관 목적에 딱 맞는 인물이고 옥한흠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의미 은혜의 걸음 은보(恩步)를 이어받은 어거스틴 같은 목회자이다. 이건영 목사 이전이나 이후 위대한 설교자나 목회자는 더러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말씀을 깨우치고 실천하는 힐렐 같은 지혜자 마음 지닌 이건영 목사 같은 지도자는 드물 것이기 때문이다. 교갱협 25주년에 그가 있어 은혜의 걸음 은보(恩步) 옥한흠 목사가 제창한 교갱협 정신이 계승되고 현현된 느낌이다. 20년 전 2003년 12월 15일 옥한흠 목사는 에스더가 이방땅에서 환난을 당할 유대인을 살린 것처럼 교단 기관지 기독신문을 살린 박에스더 국장과의 대담에서 사랑의교회 개척 25주년 회고와 은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박에스더 - 옥한흠 목사님 반갑습니다. 사랑의 교회를 개척하고 25년 동안 사역했던 사랑의교회에서 은퇴하시면서 느끼는 감회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옥한흠 목사 - 사실 지금 굉장히 행복합니다. 은혜로 달려온 25년이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일하던 동역자 가운데는 여러가지 이유로 도중 하차한 분들도 참 많은데, 이렇게 은퇴를 생각할 나이까지 목회를 할 수 있도록 지켜주신 하나님이 너무 감사합니다. 또한 사랑의교회 성도들을 보며 더욱 행복합니다. 지금 사랑의교회는 정점에 와있습니다. 오정현 목사를 후임자로 정하고 성도들의 표정이 달라졌음을 느낍니다. 더욱 활기차졌고 찬양하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몇 달 사이에 교회 평균 성장률에 비해 3000명 이상 성장하는 것을 보며 제가 은퇴하고 젊은 목회자에게 자리를 내 준 것이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박에스더 - 25년전 사랑의교회를 시작할 당시 목사님의 교회개척의 변을 지금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옥목사 - 사실 당시에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여러 선교단체들 다시 말해서 파라 처치(para-church)에 기성 교회 청년들이 흡수되어 청년부가 교회마다 지리멸렬하고 있었습니다. 교회 청년지도가 위기였고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그때 왜 청년들이 교회를 빠져나가 파라 처치로 흡수되는지 배경과 원인을 분석하고 사람 키우는 일이 중요하다고 보고 제자훈련에 착안했습니다. 젊은이들 가슴에 복음의 열정 비전을 심어주는 일이 필요하다고 본 겁니다. 미국 유학 후 돌아와 바로 제자훈련 프로그램으로 사람 키우는 일-복음의 열정을 심어주고 비전을 품게 하는 이 일이 제 목회의 본질이 된거지요. 사람을 키워 예수 제자 되어 열심히 일하도록, 열린 리더십을 갖고 평신도와 함께 일하는 풍토를 만든 겁니다. 박에스더 - 목사님께서 4반세기 동안 제자훈련과 사랑의교회 목회, 그리고 한국교회갱신운동과 한목협을 통한 연합운동의 물꼬를 튼 일들을 짚어볼 수 있습니다. 사랑의교회 은퇴라는 시점에서 지금까지 목사님이 일생을 걸고 해오신 이런 사역들이 영향을 받지 않을까요. 옥 목사 - 사랑의교회 목회는 하나님께서 제자훈련에 대한 비전과 신념을 주셨고 지역교회 하나를 맡아서 그 비전을 실천하는 평범한 목회였습니다. 이후 자의 반 타의 반 교회갱신과 교단 연합운동까지 왔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지금 물러가는 것이 70이 되어 은퇴하는 것보다 훨씬 좋다고 생각합니다. 아직은 힘이 있고 제가 사역할 마당이 있습니다. 사랑의교회 담임은 은퇴하지만 제자훈련 사역에 더욱 매진할 것이고 교갱협과 한목협 사역도 계속 이어나갈 것입니다. 이 말을 한 7년 뒤 2010년 8월 8일 새벽부터 폐렴으로 인한 고열과 호흡곤란 증세로 서울대병원 중환자실로 옮겨져 집중치료를 받았다. 그러나 2006년 폐암 진단을 받고 투병해온 옥 목사는 2010년 9월 2일 아침 8시 43분 사랑의 주님 품에 안겼다. 옥한흠 목사는 사랑의교회와 교회갱신협의회(초대 대표회장 1996. 3-2007. 8) 설립자이다. 그의 호는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의미로 은혜의 걸음 은보(恩步)이다. 코로나19와 태풍 마이삭이 제주와 원산 시내를 강으로 만든 맹위를 떨친 2020년 9월 2일이 옥한흠 목사의 10주기였다. 그는 성균관대학교 문리대학 영문학과와 1971년 2월 총신대 신학대학원(총신연구원 64회)을 졸업했다. 총신 신대원 재학시절 서울 은평교회에 전도사로 부임한 그는 100명이었던 주일학교를 500명까지 성장시켰다. 1970년 4월 김희보 목사의 요청으로 서울 회현동 성도교회 사역자로 부임하고 총신 학장으로 부임한 김희보 목사 뒤를 이은 김성환 목사의 성도교회에서 그는 그의 인생의 분수령이 된 대학부를 맡았다. 그는 성도교회에서 부목사로 대학생을 지도하던 중 제자훈련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는 교회에서 젊은이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데 비해 대학생 선교단체들엔 젊은이들이 모이는 현상을 탐구하던 중 그 비결이 제자훈련에 있음을 깨닫고 그는 대학생들이 기성 교회에서 빠져나가 선교단체로 모이는 이유에 대해 궁금해했다. 그러다 선교단체에는 있지만 기성 교회에는 없는 세 가지를 깨닫게 된다. 그것은 바로 복음, 훈련, 비전이었다. 1972년 35세에 수도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은 그는 대학생 12명과 함께 성도교회에서 ‘복음과 비전’을 갖게 하는 제자훈련을 시작해 1975년 미국 유학을 떠나기까지 당시로는 중형 교회의 신자 수에 버금가는 200여 명의 부흥을 달성했다. 1972년 총신대 재학 시절의 나도 성도교회 중등부 교사로 봉사할 때 옥한흠 전도사의 대학부 집회에 간혹 참석해 설교와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 스타일을 경험하곤 했다. 옥한흠 목사는 1975년 유학을 떠나 1977년 5월 칼빈신학교에서 신학석사 학위를 받고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로 자리를 옮겨 목회학 박사과정을 밟았다. 그리고 필라델피아 웨스트민스터 구내 서점에서 독일 출신 가톨릭 사제 신학자 한스 큉(Hans Küng, 1928년 3월 19일 ~ 2021년 4월 6일)은 스위스의 천주교회 사제이자 저명한 기독교 신학자의 ‘교회란 무엇인가(DIe Kirche)’를 발견했다. 그는 천주교 내부에서 '기존의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과연 무오류인가?(Infallible?)"라는 책을 내서 교황 무오류 교리를 비판하는 등 교권과 계속 마찰을 빚었다. 결국 1979년 12월 15일 교황청의 신앙교리성에서 공표문을 발표하여 큉은 공식적으로 천주교 신학을 가르칠 수 없게 되었다. 옥 목사는 그를 통해 평신도를 왜 제자로 키우고 깨워야 하는지에 대한 확고한 신학적 답을 얻었다고 한다. 한스 큉은 교회의 근원을 예수가 전한 하나님의 나라로 보고 있다. 즉 교회의 근원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며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신앙공동체가 교회라는 것이다. ‘교회란 무엇인가’는 총 11장으로 되어있으며 이 책은 원래 한스 큉의 ‘교회(Die Kirche)’를 짧고 이해하기 쉽게 축약하였다. 한스 큉은 이 책에서 교회의 본질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교회의 모든 역사적 양상에는 이 비본질이 마치 그림자처럼 본질을 따라다닌다. 교회의 참 본질은 비본질 안에서 나타난다. 우리는 교회의 어두운 비본질을 처음부터 고려하고 들어가야 한다. 교회의 악한 비본질을 통하지 않고서는 교회의 선한 본질을 분별할 수도 없다.” 가톨릭 내 신학적 반정통 교리적 진보파나 에큐메니컬 계열 개신교에서 관심을 보이는 신학자 한스 큉(Hans Küng, 1928년 3월 19일 ~ 2021년 4월 6일)은 교회 안에 성도가 의인이자 죄인이기에, 교회의 역사는 곧 정의의 역사이자, 죄의 역사라고 말한다. 그렇기에 교회 내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 성도들은 너무 속상할 필요가 없다. 그 비본질적인 문제를 통해 교회의 참된 본질이 밝히 드러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옥한흠 목사는 기성 교회로 가고 싶은 유혹을 끊기 위해 1978년 6월 귀국하자마자 서둘러 그해 7월 23일 주일 오후 3시 강남 서초동 유스호스텔 앞 3층 짜리 건물 2층에서 강남은평교회 창립 예배를 드렸다. 1981년 9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 4:8)라는 말씀 안에 내포된 십자가 의미를 좋아했던 그는 ‘사랑’이란 단어에 ‘의’라는 소유격을 붙여 ‘강남은평교회’를 ‘사랑의교회’로 이름을 바꾸었다. 미국에서 집중적으로 공부해 1986년 사랑의교회에서 시작한 신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아가는 신앙생활을 하도록 이끄는 첫 제자 반은 김영순 사모 혼자만 남고 실패로 끝났다. 부유하고 신앙연수만 오래된 이들에게 원색적인 말씀으로 도전하니 훈련생들은 얼굴이 빨개지며 쩔쩔매기 일쑤였다고 한다. 그러나 다시 시작한 여자 제자 반은 영적으로 큰 변화를 맛보았다. 옥 목사는 교회 밖의 모든 모임이나 집회 요청을 거절하고 제자훈련에 완전히 집중했다. 여자 제자 반이 성공하자 1979년 남자 제자 반을 처음으로 시작했다. 옥 목사의 설교와 제자훈련을 통해 배출된 순장들의 전도로 교인이 500여 명으로 증가하자 교회건축을 결의하고, 1985년 1월, 성전 입당예배를 드렸다. 그는 일주일에 제자반, 사역반 3개, 순장반 2회, 교역자 훈련, 주일설교 3회, 또 1년 3차례 돌아오는 CAL세미나 인도에 자신의 모든 진액을 쏟았다. 급기야 그는 1989년에 탈진하여 개척 12년 만에 하와이에서 1년간 안식년을 가져야 했다. 그는 1주일의 숙식훈련에 이어 목사 제자 훈련과 평신도 사역 훈련을 1년씩 하는 이 훈련을 통해 성장한 사랑의교회 교세를 알 수 있는 대담을 기독신문과 했다. “세례교인 수를 한 명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집계했습니다. 3만500여 명 재적 교인 중, 세례교인은 1만5247명이라 그대로 냅니다. 총회 본부와 총회 신학교 그리고 여러 산하 기구들이 21세기형으로 체질개선 하는데 전향 적으로 투자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총회 재정 운용의 합리성과 투명성이 확보돼야 합니다. 정책 수립과 집행에 대해 신뢰할 수 있는 체질개선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성경은 말씀한다.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그들과 결산할새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마 25:19-21 2025-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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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2025년 흘러가는 것
1963년 강원도 사천에서 출생, 강원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1989년 『문예중앙』 신인상에 당선되어 시단에 등단한 시인 박용하의 ‘동해안 포구를 위하여’에서 한 구절을 빌려 말하자면, ‘흘러간 것은 물이 아니라 흘러간 물’이다. 우리는 우리가 변화시킨 세계에 의해 이만큼 흘러왔다. 흘러간 물은 돌이킬 수 없을지 모르지만 여전히 물은 흐르고, 흘러야만 한다. 흐르지 못하면 썩는다. 그것이야말로 우습지조차 않은, 지독한 일이다. 통렬하고 질박한 언어로 날 것의 일상을 한 줄로 새기는 시인 박용하가 2010년 1월부터 2014년 12월까지 쓴 5년 치 일기를 엮은 책 ‘시인일기’를 냈다. “일기는 지금의 미래다. 살았지만 다시 살게 될 미래. 나는 타인이 되었다가 다시 타인이 되어 돌아온다.”(‘2014년 7월 25일 일기’ 중) 2025년 1월 25일 햇수로 12년 전인 2013년 더굳뉴스를 창간하고 제98회 수원 라비돌 총회 현장에 빌린 카메라를 들고 처음 발을 디뎠다. 그렇듯 요즘 나훈아까지 손가락으로 들썩이는 좌우 이데올로기조차 반박되거나 패배하는 것이 아니라 추레해지고, 무시되고, 따분하고 지겨운 것이 되고, 그래서 시들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하나님의 뜻을 잊었거나 잃어버린 세대들... 시인 박용하는 산맥 동쪽의 바다 앞에서 “떠났고 도주했고 망가졌고 찢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언제나 창세기일 것만 같은 바닷가에서 유한을 탐하듯 그대를 원했다”고 말한다. 끼니만큼 가까이 있었던 슬픔 앞에서 바다는 지상의 모든 물을 다 받아주는 장소였던 셈이다. 폭설의 밤은 도처에서 ‘우지끈’ 거렸다고 한다. 글로만 보던 역사의 무게란 것이 이런 것인가 하는 생각도 한다. 하나님 앞에서 두려운 느낌이 든다. 일제강점기 시인 윤동주(1917~1945)는 일본에 유학하여 공부하다가 귀향을 앞둔 시점에 항일운동 혐의로 1943년 7월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복역 중 1945년 2월에 옥사한다. 그의 유해는 고향 북간도의 용정(龍井)에 묻혔다. 주기철(1897년~1944) 목사는 일제 강점기에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를 거부하고 반대운동을 하여 일제로부터 10년형을 선고받아 복역 중 순교했다. 자기 희생을 통한 신앙실천을 강조하는 일사각오(一死覺悟) 설교로 기독교 신앙실천과 배일사상 그리고 독립정신을 고취하면서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를 거부했다. 복역 중 고문으로 인한 건강 악화로 48세에 순교했다. 겨울의 감방 온도는 보통 영하 20도 정도였다. 지금 시대를 사는 우리는 당시 이들에게 어떤 믿음과 용기가 필요했는지 알기 어렵다. 책상 앞에 앉으며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그저 부끄러울 따름이다. 기독교 교계는 물론 우리 교단에서도 아주 약한 '더굳뉴스'라는 기독교 언론이 13년째를 맞는 날 기자로서 교단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를 생각한다. 교단 언론이 멋진 글을 써야 하는 것도 아니고 교인을 모으는 설교문을 써야 하는 것도 아니다. 총대들을 솔깃하게 하는 소문을 써야 하는 것도 아니고 총대들이 반기고 좋아할 내용만 써야 하는 것도 아니다. 총회 실세의 마음에 드는 글을 써야 하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그 자체가 목적도 아니다. 필자가 13년간 쫓아다닌 것, 지금도 혼자 매일 찾으러 다니는 것, 아무리 노력해도 찾기 힘든 것, 찾아냈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 아닌 것, 왜 찾아다니느냐고 손가락질당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렇게 어렵게 찾았더니 믿음과 전혀 다른 것이기도 하다. 찾아내 보니 고약한 자를 분노케 해 고소당하는 것이기도 하다. 어떤 집단이나 세력의 증오를 사는 것, 때로는 총대의 요구와 다른 것, 어떤 경우에는 매우 위험하기까지 하지만 그것은 사실(事實·fact)이라는 것이다. 더굳뉴스의 13년은 한 줄로 줄여 말하면 믿음에 근거한 사실을 찾다가 성공하거나 실패한 기록이다. 한 줄만 덧붙이자면 그러다 박수받기도 하고 비난당하기도 한 기록이다. 대부분의 사실은 숨겨져 있다. 몇 겹 껍질 아래에 숨어 있는 경우도 있다. 필자의 기자 생활 전부는 이 껍질을 벗기는 일이었다. 성공도 있었다. 하지만 못 찾아낸 것, 잘못 찾은 것이 더 많았다고 고백한다. 때로는 납골당 같이 백일하에 드러나지만 곁길로 흐르는 사실도 있다. 누구나 보고 있다. 그런데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믿음에서 벗어나거나 믿음을 왜곡하는 권력의 위압 때문일 수도 있고 진실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행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언론은 이때 말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쉽지는 않다. 글로써 가장 어렵고 힘든 일은 사실로 위장한 것들과 벌이는 싸움이다. 위장 사실, 가짜 사실은 인터넷을 타고 커다란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광우병 괴담, 천안함 괴담, 사드 전자파 괴담, 수돗물 괴담, 미네르바 괴담(2008년에 미네르바라는 필명으로 인터넷 논객으로 활동한 '박대성'과 그에 관계된 여러 사건을 가리키는 말), 대부분 그 뒤에는 정치 세력이 있다. 언론이 괴담을 만들기도 하고 규모가 커지면 다른 언론들이 편승하기도 한다. 그런 일들로 세상은 성경이 지적하는 진실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많은 경우 사실은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화나게도 한다. 이익을 챙긴 자에게 좋으면 사실이고 아니면 거짓이라고 한다. 돈을 사랑하는 자가 솔깃해하는 사실은 허구인 경우가 더 많다. 정말 목말라하는 정치인이 하나도 없다고 할지라도 진실을 추구하는 성경적 사실은 그러나 결국 교회뿐만 아니라 세상 역사도 움직인다. 진리를 알면 그 진리가 우리를 자유하게 한다는 사실과 다른 길을 가는 무뢰배가 맞을 결과는 명백하다. 사실 정의란 전투에서 패할 수는 있어도 전쟁에서 지는 법은 없다. 어둠이 빛을 덮을 수 없고 마귀의 거짓이 하나님의 진실을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모두가 반기지 않아도 반드시 알아야만 하는 이 사실을 찾는 일은 힘들지만 보상도 없다. 그래서 언론이 없으면 사실도 없다. 그것은 내가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하는 대한민국과 총회를 위한 나의 사명(使命)이자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른 소명(召命)이기도 할 것이다. 필자의 더굳뉴스에 대한 소망은 사실은 사실일 것이라고 총회 총대와 소수라도 독자들이 믿는 언론이고자 한다. 물론 지금은 못 미친다. 하지만 그 목표를 향해 1㎝씩이라도 하나님과 함께 믿음으로 나아가려 한다. 마라톤의 40㎞ 지점을 선수들이 저력을 발휘해야 할 승부처라고 할 때 세상의 저력은 막판에 발휘하는 뒷심 뚝심의 의미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의 저력은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진짜 힘이라는 의미이다. 평소 갈고닦은 힘, 꼭 필요할 때 발휘되는 힘, 쉽게 얻어지지 않지만 결코 없어지지 않는 본연의 힘이라는 말이다. 사슬의 강도는 가장 약한 고리만큼만 강하다는 격언이 있다. 마찬가지로 개인이건 집단이건 결정적 순간에 발휘하는 힘만큼만 힘이 있다고 또는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의 근본 힘이 총회와 총대의 저력이며 위기의 순간에 그 저력을 극대화하는 능력이 총회 지도자의 자격이자 책무이다. 2013년 창간해 13년째 되는 2025년에 하나님 앞에서 드리는 기도 제목이다. 그러기 위해 늘 이 말씀을 되뇐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16-18 2025-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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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기승전결의 행복
케임브리지 대학의 바바라 사하키안(Barbara Sahakian) 교수는 말했습니다. "인간은 하루에 무려 3만 5천 번이나 결정을 내린다고 해요. 하나하나의 결정, 예를 들어 저녁으로 무엇을 먹을지, 퇴근 후 마트에 가서 무엇을 살지 등등. 그런데 그런 선택은 하루가 지나면 거의 잊어요. 잊어야 살 수 있습니다. 잊어야 기억할 수 있지요. 인공지능은 인간의 이런 망각력을 흉내조차 못 낼 겁니다. 망각력을 높여가다 보면 지금까지 있었던 분노나 미움도, 혹은 방금 일어났던 화도 6초 만에 사라져요. 하룻밤 자고 나면 더 희미해지겠죠. 생각해 보면 잊는 힘 덕분에 여태껏 중요한 인간관계도 깨지지 않고 이어올 수 있었어요. 망각력이 마음을 가볍게 해주고 삶을 긍정적으로 바꿔준 거죠. 분노와 질투 같은 인생의 중요하지 않은 80퍼센트의 일은 잊어버리고, 20퍼센트의 중요한 일을 기억하려고 노력하며 살아왔어요. 지금도 아버지가 말씀하신 ‘약자를 잊지 말라’는 당부를 잊지 않으려고 의료지원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중에는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물질적으로 가난하면 불행하다고 생각하고 물질적으로 부요하면 행복하다고 대답합니다. 그러나 돈이 많아 물질적으로 부요하면서도 불행한 사람도 많이 있기 때문에 돈이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 일어나고 있는 수많은 문제들, 곧 가정과 사회와 국가 간에 얽히고설킨 복잡한 인간관계에서 생기는 여러 문제들로 인하여 심한 갈등과 대립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극한적인 대립으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왜 이런 극단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야만 하는가? 사람들이 대화를 하지 아니하고 극한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극한적인 대립과 힘으로 쟁취한 것이 아니라 서로 간에 이해하며 사랑의 대화가 있는 삶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나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심을 극복해야 합니다. 천국과 지옥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물론 여러 가지로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지옥의 삶은 자기밖에 모르는 삶을 사는 사람들의 모임이 곧 이 땅의 지옥일 것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의 이익만을 위하여 몸부림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의 최후의 삶은 자기 자신도 비참함으로 끝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극단적인 생각을 말과 행동으로 옮길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 모습이 가정에서 부부간에 나타나고 부자지간에도 그렇고, 직장과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과의 대인관계에서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들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하여 심한 갈등과 위기의식을 안고 살아갑니다. 이처럼 우리들의 가정과 직장과 사회와 교회에서 대인관계를 깨뜨려 대립양상으로 치닫습니다. 그러므로 행복보다는 불행의 결과를 가져오는 요인들이 무엇인가를 찾아야 합니다. 그것들은 크고 거창한 문제와 사건보다도 극히 평범하고 사소한 문제들로부터 생겨난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사소한 것들이 큰 문제로 발전되기 전에 미리 대화로 문제를 풀어가야 갈등에 휩싸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터놓고 대화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열등감 곧 자격지심 때문일 때가 많이 있습니다. 외모, 주변 환경, 가정생활, 자신의 내적 요소, 의지력 등의 한계로 인하여 갖는 열등감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열등감을 극복하려고 하기보다는 열등감에 사로잡혀서 열등감의 피해를 보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의 약점인 열등감을 다른 사람에게 드러내기를 원치 않고 혹시나 다른 사람이 자기의 열등감을 건드리면 극한적인 방법으로 비방하고 헐뜯고 중상모략(中傷謀略)합니다. 그 결과 대립의 양상으로 발전되어 자기를 방어하고 합리화하며 자기변명으로 일관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책임을 지는 사람이 없습니다. 저마다 누구누구 때문이라고 책임을 전가시키며 살게 됩니다. 이러한 집단과 가정과 교회와 국가에서는 행복을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행복하게 사는 길은 화해하고 서로 사랑하며 사는 길입니다. 이러한 화해가 이루어지려면 저마다 양보가 필요합니다. 화해자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무조건 적이고 희생적인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사랑을 우리의 힘으로는 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사랑이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우리들과 화해시켰을 뿐 아니라 이웃과 이웃의 관계를 화해시켰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의 가정에 생겨난 여러 가지의 이유와 이기심 때문에 생겨난 갈등을 치유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화해의 중보자로 인정하고 우리 자신을 그분께 맡겨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행복한 가정을 만들고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화해자로 삼고 하나님의 사랑을 공급받아 그 사랑을 실천할 때 가능하게 됩니다. 그리고 가족의 열등감을 건드릴 것이 아니라 열등감을 보호해 주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 행복한 삶을 살아 봅시다. 그 길은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아가 믿음으로 무릎 꿇고 열등감을 치유하는 데서 출발할 것입니다. 기승전결의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마 5:9 2025-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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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윤석열 변호인 조대현 신앙고백
하나님께서 내 모든 명예를 내려놓으라고 (이런 일을) 하게 하시나봅니다 로마의 황제 첫 번째 칭호 로마의 제일 시민 전 헌법재판관 조대현 장로 신앙을 따른 대한민국 제일 법관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대리인단으로 조대현(74) 전 헌법재판관 합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법연수원 7기 동기 친목 모임인 ‘8인회’의 일원 조 전 재판관은 서울민사지법 판사로 임관해 2004년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끝으로 법원을 떠난 그해 노 전 대통령 탄핵 심판에서 대통령 측 변호인을 맡아 탄핵 기각을 이끌어 내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두 번째 공개 변론이 2025년 1월 16일 오후 2시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렸다. 윤 대통령의 불출석으로 4분 만에 끝난 첫 변론과 달리, 이날 야당이 주도하는 국회 탄핵소추단과 윤 대통령 측 대리인단은 비상계엄 선포의 위헌·위법성, 탄핵소추의 정당성 등을 두고 3시간 20여 분간 열띤 공방을 벌였다. 윤 대통령 측 조대현 전 헌법재판관은 젖은 눈으로 변론했다. “공산주의 좌익 세력이 국회의 과반수 권력을 탈취하고 자의적으로 휘두르며 입법권과 탄핵소추권 등을 남용해 국가 기능을 마비시켰습니다. 윤 대통령은 헌법 질서 회복을 위해 헌법에 따라 비상대권을 행사한 것입니다. 야당의 탄핵소추는 대통령을 끌어내려 정권을 탈취하려는 목적에서 비롯됐다고 봐야 합니다.” 이도 저도 마땅치 않은 겨울 끝물. 때 아닌 천둥소리에 놀라 내린 눈발에 철 지난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그냥 있어볼 길밖에 없는 내 곁에 부엉이바위에서 뛰어내린 그분처럼 저도 말없이 그냥 조용히 내려 잊히지 않는 뇌리 속에 그냥 있다. 생각하면 고맙다.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기 때문일까. 그저 마음의 정처가 없는 것인가. 모든 일이 꽉 막혀 손 써볼 방도가 없는 것인가. 그냥 있음은 아주 힘없는 상태 같기도 하고, 무언가 참기 힘든 걸 참고 있는 뜨거운 견딤의 시간 같기도 하다. 이러고 있을 수밖에 없다는 맥 놓은 이 순간에 미묘한 서글픔이 어린다. 피가 빠져나가 버린 듯 이 쓸쓸한 믿음에 어떤 말도 손길도 부질없는 염려일 것 같다. 그저 슬며시 내려앉는 것, 그 또한 그렇게 있어 볼 길밖에 없어 그냥 있는 믿음의 ‘있음’만이 그 마음의 믿음에 어울리리라. 노무현(盧武鉉 1946년 9월 1일 ~ 2009년 5월 23일)은 대한민국의 제16대 대통령이었다. 그는 부산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막노동에 뛰어들었다가 독학으로 1975년 4월 30세에 제17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였다. 1975년 3월 27일자 경향신문 맨 왼쪽 아래 제17회 사법고시 합격자 명단 60명 중 한 사람으로 ‘고졸=노무현’ 바로 위에는 당시 이화여대 89년사에 첫 사법고시 합격생인 ‘이화여대=전효숙’의 이름도 그리고 서울대를 졸업했지만 단국대학원의 지원을 받아 적을 두고 사시에 합격한 ‘단국대학원=조대현’의 이름이 적혀있다. 17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수료해야 하는 2년의 사법연수 시절 고졸 출신 사법연수생으로 서울 서소문 사법연수원에 들어간 노무현은 명문 고등학교도 마땅한 대학교도 내세울 게 없어 어울릴 사람이 없었다. 그때 조대현이 노무현을 자신이 좌장격인 7명이 모이는 토론회 멤버로 끼워주었다. 그렇게 사법연수원 시절 같은 반의 비슷한 자리에 앉았던 사람들이 노무현 대통령 당선 후 언론에 의해 ‘8인회’로 명명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조대현과 노무현의 인연은 노 대통령이 집권 이전부터 사석에서 동기 중 가장 존경하는 법조인이라는 얘기를 서슴없이 했다. 노 대통령은 나중에 자서전에 "얼마나 고마웠던지 연수원 시절 내내 가깝게 지냈고, 지금까지도 가끔씩 만나며 친하게 지내고 있다"고 적었다. 조대현은 법관 시절 조용하면서도 강직한 성품으로 선ㆍ후배들의 존경과 두터운 신망을 샀으며 변호사 개업 후에도 사건을 가려서 맡을 정도로 자기관리에 철저한 법조인으로 알려졌다. 서울경제신문 주필을 지낸 후배 김인모가 한국일보 청와대 출입기자 시절이다. 그가 용산고 동창 조대현 판사의 청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날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 있잖습니까. 조 판사야말로 어떤 경우에도 그럴 정도로 청렴하신 바로 그런 분입니다.” 전 헌법재판관 조대현은 유명한 법조인이었고 지금은 존경받는 법조인이다. 그러나 내게는 그가 장로이기에 목사들의 소식지 ‘더굳뉴스’에 소개할 마음이 생겨 인터뷰 요청을 하고 세상에 대해 겸손한 그가 쾌히 허락을 했다. 2017년 1월 22일 주일 그가 장로로 시무하는 일원동의 개포감리교회(당시 담임 안성욱 목사)에서 만났다. 11시 예배가 시작되기 전 개포교회 사무실에서 만나 용산고 20회 동기 동창 사이라 격의 없이 신앙생활에 대해 말을 나누었다. 조대현 장로는 87년 말 망우동 살 때 금란교회 다니다가 일원동으로 이사 와서 개포교회를 다니게 됐다. 개포교회는 1985년 1월 6일 안성옥 목사가 대신교회 개포 구역을 중심으로 일원1동 654-2호에서 첫 예배를 드리고 같은 해 1월 20일 일원1동 677-1 소재 건물 지하 35평을 얻어 창립 예배를 드렸다. 1977년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후 육군 법무관을 마치고 1980년부터 서울민사지법에서 판사 생활을 시작한 조대현 장로는 판사가 된 지 5년째일 때 교회가 설립된 지 2년 된 개척교회에 다닌 초창기 교인인 셈이다. 그로부터 대법원장 비서실장, 대전고법 부장판사, 법원 행정처 인사관리실장 등 법원 내 요직을 두루 거치고 헌법재판관 재직 중인 24년 뒤 그는 2009년 12월 6일 감리교 교회 권사에서 장로로 피택을 받아 장로안수를 받았다. 그는 2018년 1월 9일 자신의 신앙생활의 변환기에 대해 행한 간증에서 이렇게 말했다. “장로가 되어 헌법재판관 임기가 끝나기 두 달 전인 2011년 5월 초 아내에게 끌려서 처음으로 기도원에 가서, ‘헌법재판관 임기를 마치면 무슨 일을 할까요’하고 기도했는데 두 말씀이 제 마음에 박혔습니다. 첫날 저녁에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는 갈라디아서 2장 20절 말씀이었고 다음날 새벽에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섬겨라’는 여호수아 24장 14절 말씀이었습니다. 저는 판사로 일하기 시작한 뒤 1981년 서른 살이 넘어서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1주일에 60시간 이상 판사 일을 했기 때문에, 주일 예배만 간신히 참석할 뿐, 성경을 읽지도 못했고 성경공부모임에 참석하지도 못했습니다. 그 동안 공직 업무에 바쁘다는 핑계로 신앙생활을 소홀히 했으니 이제는 열심히 믿으라고 하시는 당연한 말씀이네라 생각하고 별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퇴임 후 여행을 다니기로 하고 첫 번째로 2011년 8월 터키 여행을 갔습니다. 그런데 허리가 아프고 다리가 저려서 1시간이상 걸을 수가 없어 정작 그렇게 원하던 여행을 제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귀국하자 허리 치료를 받느라고 잔뜩 세웠던 여행계획을 모두 접어야 했습니다. 그 때 생각이 났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인도하시려고 이제는 제대로 믿으라고 일깨우는 말씀을 2011년 5월 기도원에서 석 달 전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내가 무시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내 마음대로 세운 인생계획을 수정하도록 몰아가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허리를 치료하느라 돌아다니지 못하니 기도원에서 은혜 받은 말씀을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점점 생각이 깊어졌습니다. 제대로 믿는 게 뭐지. 믿는다는 게 뭐지. 무얼 믿는 거지. 왜 믿어야 하지. 그런데 평생 법관을 지낸 제가 아무 것도 대답할 수가 없더군요. 그래서 성경을 읽고 신앙서적을 읽으며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2년 남짓 공부하던 중 2012년 2월 말경 예수전도단 김지태 대표님으로부터 시니어 DTS(Discipleship Training School: 12 주간의 강의와 가르침으로 시작하여 약 12주의 전도여행으로 이어지는 그리스도인을 위한 예수전도단의 집중적인 제자훈련 프로그램) 학교가 3월 5일 개학한다는 말을 듣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아내와 함께 시니어 DTS학교에 지원했습니다. 60세 이상 성도들이 8개월간 예수제자훈련을 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시니어 DTS학교에 가서 그곳에서 일하는 간사님들이 여호수아 24:14 말씀대로 하나님을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섬기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진정한 제자의 모습을 보고 배우게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시니어DTS학교에서 말씀 묵상과 하나님의 음성 듣는 훈련을 받게 하셔서, 하나님의 인도를 제대로 받는 방법을 배우게 하셨고, 2012년 8월 10일간의 전도여행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구체적으로 인도하시는 것을 체험하게 하셨습니다. DTS의 전도여행은 여행계획을 미리 세우지 않고 지갑과 휴대폰 없이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살아가는 훈련입니다. 어디로 갈지, 며칠간 머물지, 무엇을 할지 등을 그때그때 하나님께 여쭙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훈련입니다. 그 후 기도를 많이 하는 아들이 2014년 2월부터 3월 복음학교에 가라고 강권했습니다. 복음학교에 가서 내 생각이 옳다는 생각을 버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2014년 6월 2일부터 7일까지 순회선교단 복음학교에 가서 복음 공부를 했습니다. 김용의 선교사님 혼자서 하루 15시간씩 강의를 하시더군요. 성령이 충만한 하나님 일꾼은 저런 분이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강의 내용은 단순하고 강력했습니다. ‘오직 예수, 십자가 복음만이 살 길이다. 십자가에서 죽고 다시 태어나라. 제대로 믿어라. 세상의 가치에 이끌려서 생명의 길에서 벗어나지 말아라.’ 복음학교를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2014년 6월 11일 제가 형사피고인으로 기소되었습니다. 공직에서 퇴직한 제가 대한감리회 재판위원으로 봉사하던 중 2013년 9월 감독회장 당선이 무효라고 판결했습니다. 그리고 그 판결에 불복한 당선자가 그 판결이 무효라고 법원에 소송을 제기해서, 제가 감리회의 당선무효판결은 정당하다는 답변서를 작성하여 제출하였습니다. 그 답변서를 작성하면서 감리회 직원이 저의 요청과 감독회장 직무대행의 지시로 감독회장 부하인 행정실장의 사무실 책상 위에 있던 증거서류를 꺼내왔다는 이유로, 그 직원과 감독회장 직무대행과 제가 공모하여 행정실장 사무실에 무단침입을 했다는 죄목이었습니다. 제가 기소되자, 모든 신문과 방송이 크게 보도했습니다. ‘재판관이 재판받다.’ 빅 뉴스였죠. 그 결과 제가 평생 쌓은 명예가 산산조각 나버렸습니다. 제가 기소된 사실은 범죄가 되지 않는 사실이었습니다. 평생 법조인으로 살아온 저로서는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억울하다고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참새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말씀(마 10:29)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제 아들이 하나님께서 드디어 아버지를 손대기 시작했으니 기뻐하고 감사드리라고 말했습니다. 아들의 말과 같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라고 생각하니, 불평하는 마음이 사그라지고 마음이 평안해졌습니다. 그러자 비로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네가 법관의 경력과 명예를 나에게 내놓으려 했느냐.’ 저는 판사와 헌법재판관으로 지내면서 저의 명예를 아주 소중하게 여겼습니다. 제가 판사와 헌법재판관으로 일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경력이나 명예를 제가 자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 것임을 망각하고 나의 공적이라고 내세우는 짓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네가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에서 거주하며 네 소유가 풍부할 때에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신 8:12-14)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신 8:17) 하나님의 은혜로 인생살이가 형통할 때 교만의 죄에 빠지기 쉬우니 조심하라고 경고하시는 말씀인데 제가 바로 거기에 걸린 것입니다. 이것을 깨닫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저를 형사피고인으로 세우시고 언론에 대서특필되게 하신 것이었습니다. 제가 아끼는 세상 명예는 하나님 앞에서 아무런 가치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이라고 생각하니, 형사피고인 처지에서도 마음이 평안해졌고, 기자들이 심경을 물을 때에도 하나님께서 내 명예를 내려놓게 하신 것이라고 대답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복음학교의 가르침에 따라 가장 가치 있는 것, 하나님, 그리스도 구원의 복음,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것을 깨닫고자 노력했습니다. 성경 말씀을 읽으면서 묵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성령님의 깨우치심이 저를 행복하게 했습니다. 새벽 기도 시간에 앉아 있으면, 목사님을 통하여 필요한 말씀과 교리를 가르쳐 주시기도 하고, 제가 찾던 성경 말씀이 저절로 생각나기도 하고, 제가 알지 못하던 진리가 떠오르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루 종일 컴퓨터에 앉아 원고 정리 하는 것이 참으로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저의 신앙생활이 너무 부족하고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합격 판정을 받으려면 아직도 멀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을 전 헌법재판관 조대현 장로가 자신의 소속 감리교 교단 교권 다툼 끝에 피소되어 법정에 서게 되었다. 2014년 7월 3일 오전 11시 올곧은 법관 조대현이 서울법원종합청사 522호 법정 피고인석에 섰다고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모든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나중 무죄가 되었지만 그 때 그는 담담한 표정으로 심경을 묻는 신문기자에게 전 대통령 이명박 장로와 달리 한국 교회 신앙 역사에 남을 말을 했다. “하나님께서 내 모든 명예를 내려놓으라고 (이런 일을) 하게 하시나봅니다.” 개포교회 장로(長老) 조대현(曺大鉉, 1951년 2월 11일 ~ )은 대한민국의 법조인이다.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지냈다. 1951년 충청남도 부여군에서 태어났다. 용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를 졸업하였고 단국대학교 대학원 재학 중 1975년 17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판사가 되었다. 1977년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후 육군 법무관을 마치고 1980년부터 서울민사지법에서 판사 생활을 시작한 조 변호사는 대법원장 비서실장, 대전고법 부장판사, 법원 행정처 인사관리실장 등 법원 내 요직을 두루 거쳤다. 수학 교사로 시작해 서울 언주중학교 교장을 지낸 헌신적 사랑과 눈물의 기도로 평생 내조한 서외순 권사와 두 아들을 두었다. 조대현 장로가 그 바쁜 법관 생활 속에서도 어릴 적부터 책상을 마주하고 직접 가르친 쌍둥이 아들 둘 다 직업도 쌍둥이 법조인(변호사)으로 활동 중이다. 로마의 황제 첫 번째 칭호는 princeps 즉 제일(第一) 시민(市民)이다. 그렇듯 전 헌법재판관 조대현 장로는 그의 법관 경력이나 기독교 신앙이나 세상 삶에서 대한민국 제일(第一) 법관(法官)이라 말해도 그를 아는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2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3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창 1:1-5 2018-02-25 2025-01-2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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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강진상 목사 초 한 대의 삶
거룩한 태양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푸른 바닷속으로 뜨겁게. 바닷가에 선교사 두 사람이 앉아 있었다. 흑발의 젊은이와 백발의 늙은이가. 늙은이는 생각하고 있었다. 언젠가 나도 저 은혜로 쉬게 되리라. 이렇게 편안히. 젊은이도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죽을 때도 저 영광의 광채가 내리기를. 이렇게 황홀하게. 로마 가톨릭교회의 사제이자 작가, 신학자 로마노 과르디니(Romano Guardini, 1885년 2월 17일 - 1968년 10월 1일)는 말했다. "삶과 나이에 따르면, 모든 하루하루는 단 한 번밖에 오지 않기에 다른 무엇과 바꿀 수 없는 소중함을 얻는다. 존중받지 못할 순간도 의미 없이 지나가는 순간도 없다. 순간의 존엄함을 아는 사람은 지금 여기의 삶을 온전히 누리려는 강렬한 긴장을 느낀다. 이런 긴장 없는 삶은 단조롭고 지루하게 다가온다. 때론 상실감과 후회 속에서 공허와 절망의 나락에 떨어질 위험도 있다." 또한 로마 가톨릭교회의 사제이자 작가, 신학자 과르디니(Romano Guardini, 1885년 2월 17일 - 1968년 10월 1일)는 인생엔 여러 단계가 있다고 말했다. "우리 인생 여행은 유년, 청년, 성년, 중년, 노년, 말년의 단계를 밟아 죽음에 이른다. 시기마다 반드시 해결할 과제가 있고 이룩할 가치가 있으며 넘어야 할 위기가 있다. 하나의 시기를 완전히 살아내지 못하면, 즉 주어진 과제를 해결하고 가치를 성취하며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면 좋은 삶은 불가능하다. 과거가 현재의 발목을 잡기 때문이다... 물러남을 받아들이고 평생 이룩한 가치를 지켜낼 때, 노년의 삶은 완성을 향해 달려간다. 진정한 것과 덧없는 것, 순간적인 것과 영원한 것을 분별하는 지혜 속에서 통찰, 용기, 평정, 자존 같은 고상한 가치를 실현하는 현자의 삶을 살 수 있다. 좋은 삶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고통을 견디고 위기를 건너며 가치를 이룩하지 않으면 누구도 삶의 달콤함, 그 눈부신 기쁨을 알 수 없다." 1968년 10월 1일 로마노 과르디니는 83세로 지인들 기도 속에 영원히 잠들었다. 다음날 지인들이 모여 그의 부고 문구에 어떤 호칭을 사용할지 논의했다. 그는 가톨릭 사제, 대학교수, 신학자, 종교철학자, 교육자, 청년운동 지도자, 전례개혁자였다. 하지만 그 어느 호칭도 그의 활동과 인물됨을 모두 담아낼 수 없었다. 오랜 논의 끝에 지인들은 '로마노 과르디니-주님의 종(Diener des Herrn)'으로 결정했다. 한평생을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받들어 모시며 살았던 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호칭이었다. 2023년 3월 15일 오후 4시 무렵 양산의 평산교회 카페 비 마이 프렌드(Be My Friend 나의 친구가 되어라)에 앉아 있었다. 쾌적한 카페의 창가 햇살을 받으며 핫초코를 홀짝였다. 아파트 단지 초입 대로변에 세워진 평산교회는 4면이 각기 다른 모습을 내는 독특한 구조로 건축됐다. 정형화되고 고착화된 교회 이미지를 탈피하고 주민들에게 거부감 없는 교회로 다가서기 위한 세심한 관심이 없다면 쉽지 않은 일이었다. 평산교회는 교인들에게 필요한 시설은 물론 지역사회를 위한 배려도 있다. 그것은 교인과 지역 이웃을 향한 목회자의 애정과 사랑이 교회건축을 통해 나타난 것이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누구든 언제나 교회시설을 이용하거나 지나갈 수 있도록 사방이 열려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교회 바로 뒤편 아파트단지 주민의 주차장 이용과 교회시설 이용 편의를 돕기 위해 교회 마당과 아파트를 잇는 계단도 별도로 설치했다. 교회 후문을 통해 1층 교회 건물 내부로 들어오면 바로 오른쪽에 황토찜질방이 있다. 성인 10여 명이 동시에 들어갈 수 있는 황토찜질방은 여느 찜질방 못지않은 좋은 황토와 탈의실 등으로 꾸며져 있다. 주민들이 휴식하며 교제할 수 있는 카페도 마련돼 있다. 일천 명이 예배드릴 수 있는 규모로 지어진 본당은 극장식 의자가 설치되어 있다. 이는 교인들에게 편안한 예배와 기도 목적 외에도 평일에는 지역주민을 위해 결혼식장과 발표회 등의 공간으로 제공하기 위해서다. 3층 유아실은 아이들이 편히 사용할 수 있는 어린이 전용 화장실과 모유 수유를 위한 별도의 수유실도 마련했다. 4층에는 헬스장도 있다. 이 역시 지역주민을 위한 체력단련장으로 무상 제공되고 있다. 강진상 목사는 교회 설립 당시 평산교회의 존재 목적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지역을 품는 교회 사명을 위해 문화와 복지와 같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도입해 지역을 섬기는 노력 이상으로 선교와 전도를 위한 교회의 본질을 놓치지 않겠습니다." 2023년 3월 15일 오후 5시 강진상 목사와의 대담 시간이 돼 카페를 나와 교회에 들어서니 당회장실로 안내를 받았다. 평산교회는 3월 18일 토요일 교회 장로 은퇴식과 직분자 임직식을 앞두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은퇴식에 강진상 목사도 포함되어 있는 줄로 착각하고 있었다. 그의 은퇴는 아직 3년이나 더 남아 있었다. 강진상 목사의 은퇴가 아니라 목회에 대한 대담을 나누게 되었다. 부산과 울산 두 개의 광역시를 사이에 둔 경남 양산시에 지역 최대 규모의 교회가 있었다. - "와서 보니 목사님 큰 역사를 이루셨네요." 강진상 목사 - "아니 뭘." - "장로 은퇴식과 직분자 임직식을 앞두고 있는데 목사님 은퇴식으로 잘못 알고 미리 찾아뵙게 됐습니다. 지금 평산교회에 몇 년 되신 겁니까." 강진상 목사 - "올해 35년 됐습니다." - "아. 그러시구나. 그럼 평산교회만 35년 되신 거죠." 강진상 목사 - "네 그렇습니다. 이 교회 개척을 35년 전 1988년에 했습니다." 강진상 목사는 겸손한 웃음을 지었다. - "총신 몇 회세요." 강진상 목사 - "저는 총신을 좀 늦게 공부를 했습니다. 그래서 86회입니다. 제 또래 목사들은 76회죠. 저는 10년 늦게 시작한 거죠." 사모님이 차를 내오셨다. - "어떻게 평산에 평산교회를 시작하시게 됐습니까." 강진상 목사 - "제가 본래 여기 있기 전에 월평이라는 곳에 있었습니다. 여기서 버스로 두 정거장 떨어진 곳인데 교회가 없는 지역이었습니다. 저는 부산의 전포중앙교회 오세광 목사님 그분이 담임으로 계실 때 제가 전도사로 있었습니다. 오 목사님이 저희 집에 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강 전도사 선교에 대한 열정도 있는데 이 지역에 교회가 없어서 마음이 아프다.' 그래서 그분이 그런 도전적인 말씀을 하셔서 계기가 된 것입니다. 5년 뒤 주인이 집을 내달라고 하고 그린벨트이고 수원지 보호지역이라 더 이상 있을 수가 없어 이쪽으로 오게 된 겁니다." 그는 1988년 1월 전도사 시절, 양산군 정관면 월평리 280번지 허름한 시골집 셋방에서 월평중앙교회라는 이름의 교회를 개척했다. 1992년 2월 24일 현재의 양산시 평산동으로 교회 건물을 신축·이전하면서 이름을 평산교회로 바꿨다. 부산시 전포동 소재 전포중앙교회의 오세광 목사의 권면과 후원으로 시작됐다. 평산교회는 개척 초창기부터 제자훈련을 실시하며 알찬 성장을 거듭했다. 또한 교인 구성원 70% 이상이 초신자들의 회심으로 이뤄져 있을 정도로 건강한 교회상을 세웠다. 강진상 목사의 목회관은 예배하는 공동체, 선교하는 공동체, 교육하는 공동체, 봉사하는 공동체이다. 그래서 지난 2013년 9월 1일, 한국일보가 주최한 ‘2013 대한민국 자랑스런 한국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양산시 인재육성장학재단에 장학금 기부, 지역봉사 활동 등 지역공동체를 실천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으로, 너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는 주님의 말씀처럼 주님의 종으로서의 헌신적인 목회를 일관했다. 강진상 목사는 기도로 교회를 세우고 한평생 나눔과 섬김을 실천했다. - "신학을 늦게 하셨다고 했는데 그 전에 다른 일을 하셨습니까." 강진상 목사 - "돌아가셨지만, 아버님이 강희성 목사님이셨고 저는 좋은 평신도 지도자가 되고 싶어서 부산의 모 교회 안수집사로 있다가 신학을 하게 됐습니다. (아들은 군목 중령으로 연무대교회 담임목사이고 딸은 결혼해 미국 워싱턴장로교회 출석하고 있다.) 늦게 교회를 개척하면서 제자훈련을 했습니다. 평신도를 훈련해 사역을 같이 했습니다. 지역을 섬기는 사역을 많이 해왔습니다. 노인대학, 지역아동센터, 장애아 사역, 교회 앞 카페도 기아대책(飢餓對策, Food for the Hungry, FH), 공정무역(개발도상국의 농가에게 덤핑가격이 아닌 정당한 가격을 지불하여 해당 국가의 농민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 사회 운동) 카페 3호점 ‘비마이프렌드’(Be My Friend 나의 친구가 되어라)입니다. 선교사들 파송해서 커피콩을 거두어 오면 우리가 공정무역 패어 트레이드(fair trade)라고 해서 팔아서 남는 이익금을 선교하는 목적으로 카페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지역 행사들이 있으면 저희 교회에서 후원을 많이 합니다. 양산이 불교가 강한 지역이라 불교권 파송 선교사라는 마음가짐으로 사역하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목회밖에 모르고 목회만 계속 해왔습니다. 그런데 노회장을 하고 교회 연륜이 있다 보니까 노회도 섬겨야 되고 총회도 섬기게 됐습니다. 그러다보니까 총회도 가게 되고 총대가 아니라도 영남지역 총신 운영이사로 갔을 때입니다. 우리 노회에 유명한 분들 많이 계시잖아요. 정연철 목사님, 배광식 목사님, 이성택 목사님, 다 총회 일하신 분들 가서 총회 일 하시도록 보내드리고 우리는 노회 섬기고 그랬습니다." 강진상 목사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을 이었다. "결정적인 것은 총신 운영이사장을 하게 되면서 총회를 섬기게 된 것이었습니다. 양산이 불교가 강한 지역이었기 때문에 교회에 대해 지역 정서도 부정적이라서 교회나 목사의 존재는 뭐랄까 무시하고 하찮게 생각하는 것에 대해 마음속에 의분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뭔가 불교와 다른 차별화 스님과 목사가 뭐가 다른가. 교회 다니는 권사님과 장로님하고 절에 다니는 보살이 뭐가 다른가. 좀 차별화를 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우리가 열심히 기도하고 전도하고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지만 전통적인 교회에서 하기 힘든 지역봉사를 참 많이 해왔죠. 교회나 목회자에 대해서 인식을 새롭게 할 일을 많이 했습니다." 1988년 허름한 시골집 셋방에서 월평중앙교회라는 이름을 달고 기도로 교회를 시작한 그에게 가장 큰 어려움은 역시 불교 영향력이 큰 지역이라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을 주님께로 인도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더욱이 이미 타 교단에서 몇 번이나 교회를 세웠다가 철수를 하는 어려움을 겪었던 지역이라 지역 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기가 더욱 어려웠다. 강진상 목사는 25년 전 불모지와 같던 경남 양산 월평리에 내려와 부부가 가장 먼저 했던 일은 마을 주민이 되는 것이었다. 사모님은 남편 신대원 학비를 벌기 위해 할머니들과 밤늦게까지 채소를 다듬으며 농촌 지역의 주민으로서의 삶을 살아야 했고 이 마을에 살고 있었던 강진상 목사는 어른들을 만나기에 바쁜 하루를 보내야 했다. 그래서인지 마을 주민이 된 부부에게 다행히 마을 어르신들은 안 나와도 아이들이 교회 다니는 것은 크게 반대하지 않았다. 이때부터 교육하는 공동체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92년 선교원을 시작으로 처음 사역이 어린이 전도였다. 당시 월평초등학교 전교생 80명 중 72명이 교회에 나올 정도였다. 그때 주일학교 아이들이 지금의 젊은 세대를 이루어 청년부를 이끌었다고 한다. 잠시 알프스에서 자라는 13가지 허브 추출물이 들어있다는 맛이 깔끔한 리콜라 허브차를 나누었다. - "실례지만 교세가 얼마나 되십니까." 강진상 목사 - "코로나로 좀 침체됐지만 장년은 7백 명 정도이고 주일학교는 3백 명 정도입니다. 교세가 천 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많이 회복은 됐지만 저희 교인 70프로는 전도돼서 오신 분들입니다. 수평 이동이라기보다는 대부분 전도해서 오신 분들이 많습니다." - "처음 보고 규모에 깜짝 놀랐는데 여기에 터를 잡으신 건 언제입니까." 강진상 목사 - "네 번 옮겨 여기까지 오게 됐습니다. 2005년 본당을 짓고 입당을 했죠. 땅은 주차장까지 해서 2천 평입니다. 2013년에 비전센터를 지었습니다." 2005년 본당을 지은 뒤 2013년 평산교회 비전센터의 완공은 지역사회를 위한 봉사 활동에 더욱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120평을 지역사회에 기부해 2~3층에서 강의실과 지역사회를 위한 결혼식장, 주민자치공간이 자리 잡고 있다. - "총회를 섬기신 일을 소개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강진상 목사 - "총회를 위한 일이라면 총신 운영이사회를 10년 넘게 섬겼습니다. 다 아시겠지만 운영이사회 이사 노회 1년 분담금이 그 당시 3백만 원이었습니다. 그걸 낼만한 교회가 많지 않았습니다. 우리 노회에서 지원해주지 않거든요. 자비 부담해야 되는데 선배 목사님들이 저한테 총신 운영이사회 좀 섬기라고 등 떠미는 바람에 떠밀려 하게 된 겁니다. 이사로 섬기다 이사장도 맡게 됐습니다. 요즘 총회를 위해 하는 일은 정치부 부장입니다. 총회다음세대운동본부 서기를 맡고 있습니다. 그리고 올해 처음 생겼지만 세계개혁주의부흥협회 위원장도 맡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개혁주의 신앙을 갖고 있는 교단과 교류하고 세계교류협회가 있지만 친선관계라면 우리 교단이 갖고 있는 개혁주의 신학을 지속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정보를 주거나 함께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기구입니다." - "우리 총회를 위해서 정말 매우 중요한 부분들인데 총신운영이사장이라든지 중요한 직책을 잘 감당해주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강진상 목사 - "미력하지만 그래도 호불호가 있지만 권순웅 총회장님 이번 3월 18일 토요일 오셔서 설교하십니다. 그분은 총신(김영우가 총회와 총신을 분탕질하던 2010년대) 문제 때문에 ('하나님 말씀이 삶에서 실현될 때 개혁이 되는 것이며 부흥이 되는 것'이라 외친 제102회 총회) 서기였고 제가 총신운영이사회 이사장이라 그때부터 같이 비전과 꿈을 갖고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총회장 되시면서 제가 정치부서기를 맡게 됐죠." - "권순웅 목사님 그 당시 참 열정적으로 뛰어다니셨죠." 강진상 목사 - "돌이켜보면 민감한 부분이지만 그 당시 개인 돈을 써가면서 TF팀을 30회 이상 모였습니다. 저는 그 당시 SRT 고속열차 한 달 요금이 2백만 원 정도였습니다. 일주일에 이틀씩 울산역에 주차하고 서울 올라가서 일보고 내려오고 했습니다. 맡은 일에는 책임을 다해야 하는 성격이라서 그랬는데 전계헌 총회장이 항상 외부에 갔다오면 하신 이야기가 교단 쪼개진다고 걱정할 정도로 사실 위기였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총신이 그대로 가면 자칫하면 교단 쪼개질 뻔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총신을 정말 사랑하셨습니다." - "총신이 사유화되는 거였습니다." 강진상 목사 - "결론적으로 그 당시 (김영우를 상대로 한) 총신 문제는 계란으로 바위치기라고 했습니다. 절대 안 된다고 했죠. 여러 가지 과정이 있었지만 총신이 그대로 있고 총회가 갈라지지 않은 것은 하나님 은혜였습니다." 사실 당시 김영우 목사가 총회 부총회장 출마를 안 했거나 아니면 총장 사표라도 냈다면 총신 사유화 되는 거였다. 난공불락의 꾀돌이가 박무용 목사에게 건넨 제 꾀에 빠져 법정 구속되는 바람에 무너지고 말았다. 강진상 목사 - "역사가 훗날 평가하겠지만 참고로 말씀드리면 나라를 위해 전장에 나가 이기고 돌아온 장군을 역적으로 모는 경우가 있습니다. 화해한다고 남들은 다 풀어 영웅으로 만들어 놓고... 사실 잘 아시겠지만 총신에 임시 이사가 들어오는 건 맞지만 정관이 살아 있으면 우리 교단의 목사 장로로 이사를 세울 수밖에 없어요. 사분위(사립학교에서 구성원 간 분쟁 등으로 인해 학교법인의 기능이 마비되는 경우 교육부에서 임시이사를 파견한 후 정상화하여 정이사 체제로 환원하는데 그 과정에서 임시이사의 선임과 해임 등을 심의하는 정부 기관)도 그 정관을 넘어설 수 없거든요. 그런데 우리 앞에 있었던 구 이사들(김영우 지지 이사)이 김영우와 정관을 개정하면서 교단의 목사 장로 조항을 개혁주의 신학을 가진 자로 바꾸자 여자 이사가 들어오게 되고 아무나 이사가 될 수 있게 됐습니다. 개혁주의 신학이라는 문구가 이사 선정 기준이 되니 너무 모호하잖아요. 그런 것들이 (우리의 정체성을 부정하게 되는) 문호를 열어버리게 된 겁니다. 모든 책임은 운영이사회가 지게 됐죠. 사실 제 입장에서 너무 억울하죠. 그것은 운영이사회에서 만든 것이 아니고 정관을 고쳤기 때문이죠. 그래서 사분위가 그 정관대로 이사회를 구성하게 된 거죠." - "사실 김영우 목사가 주도한 거죠. 어쨌든 김영우 총장 체제가 무너지고 이렇게 된 것은 합력해서 선을 이루게 된 거죠." 강진상 목사 - "무엇보다도 당시 학내 소요로 신학생들이 양분되어 있었잖아요. 김영우 반대하고 수업 거부하며 데모한 학생들 또 수업받는 학생들. 그래서 그때 제가 수원 라비돌에서 칼빈, 대신, 광신 학생들까지 모아놓고 했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엄마 아빠가 사이좋게 살다가 헤어졌다. 큰아들은 아빠 따라가고 작은아들은 엄마 따라갔다. 그건 자식들 책임이 아니다. 총신 사태도 마찬가지다. 김영우 목사를 반대하는 학생 측이 있고 찬성하는 측도 있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훗날 졸업하면 같은 기수 동창생인데 친일파, 반일파처럼 서로 상처를 가지게 될 것 같더군요. 그래서 전부 라비돌에 모아놓고 후원도 받고 자체 경비로 해결하면서 먹이고 재우면서 화합을 촉구했습니다. 학생들이 정치적인 희생양이 되지 않도록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2년 동안 고시부에 들어가서 그 학생들 다 강도사 고시 보고 목사 고시 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습니다. 왜냐하면 총신에 가서 학생들 만나면 총회 못 믿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총회 믿고 싸우다 희생 당하면 책임지겠느냐는 겁니다. 제가 데모를 충동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총회를 믿으라고 말했습니다. 총회가 책임질 것이다. 그 말에 대한 책임을 내가 져야겠더라고요. 그래서 고시부에 지원해 들어가서 고시부에서도 안 된다는 학생들을 실력이 아나라면 정치로는 불이익을 줘서는 안 된다고 강력히 변호했습니다. 영웅 대접할 필요도 없지만 역적 대접할 필요도 없다고 했습니다. 학생들에게도 말했습니다. 지금은 모르지만 먼 훗날 졸업하고 단독 목회를 하게 되면 기수가 동기라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 느끼게 될 것이다. 여기서부터 서로 반대하고 상처받고 나가면 치유 받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당시 111회, 112회 목사 된 사람들 가끔 만나요. 만나면 그들이 먼저 인사하고 그때 고마웠습니다, 합니다. 총회장은 1년이고 총장은 계속 있으니 학생들은 총회 믿을 수 없다 하는 겁니다. 그런 말을 입버릇처럼 했죠." 목사 강진상은 평산교회와 양산 주민을 위한 주님의 종인 것처럼 주님의 종이 될 총신 졸업생들을 위해 헌신한 주님의 종도 됐었다. 평산교회는 지난 2021년 4월 18일 캄보디아 장로교신학교 씨엠립 분원 건축을 위해 2천만 원의 헌금을 전달했다. 신학생들의 안정적인 교육을 위해 장학금 5백만 원도 별도로 지원했다. 캄보디아 장로교신학교(총장 김재호 목사)는 144개 교회, 292개 기도처, 7899명의 청장년 성도, 1만8436명의 어린이로 구성된 캄보디아장로교 독노회가 운영하는 신학교다. 캄보디아 북부의 중추 도시인 씨엠립의 목회자 양성과 훈련을 위해 장로교신학교 지난 2017년 9월 27일에 분원을 개교했다. 총회군선교회는 제23차 정기총회를 2022년 5월 26일 서울 서초동 사랑의교회(오정현 목사)에서 갖고, 신임회장에 강진상 목사를 선출하는 등 새 임원진을 조직했다. 강진상 신임회장을 비롯한 총회군선교회 회원들을 대한민국 전 부대에 복음을 전파하겠다는 사명 아래 군선교에 더욱 진력하기로 다짐했다. 2022년 10월 25일 세계개혁주의부흥협의회가 첫 번째 회의를 총회회관에서 열고 사업 방향을 논의했다. 임원 조직으로는 위원장에 강진상 목사가 세워졌다. 회의에 참석한 제107회 총회장 권순웅 목사는 말했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 교단은 가장 큰 장로교회로 성장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를 세계교회와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오순절이 은사 중심이라면 우리 개혁주의는 말씀과 기도, 전도 중심 운동으로 전 세계를 섬길 수 있습니다. 이 일의 적임자가 바로 위원장 강진상 목사님이십니다.” 제자훈련에 있어 양육과 교육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그래서 평산교회는 교육공동체로서 행복아카데미와 제자대학 그리고 주일학교가 활성화 되어 있다. 확신하는 삶, 회복의 삶, 행복한 삶, 축복의 삶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평산노인대학은 지역내에서 유명세를 탈 만큼 많은 노인들이 참여하고 있다. 사회적 통합 증진을 위한 소외계층 평생교육 프로그램으로 교육인적자원부와 함께 저소득자, 저학력자, 고령자, 장애자 등 취약계층에 대한 자활기회 부여와 삶의 질 향상을 도모하고자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농촌의 특성상 노인들이 많다는 점에서 평산노인대학은 다른 지역에서도 벤치마킹하고자 할 만큼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평생학습도시 만들기를 희망하는 기초자치단체와 지역교육청과 협조, 그동안의 노하우를 컨설팅해주기도 하고 있으며 우수한 평생학습 프로그램을 발굴, 지원하는 일로 이를 타 지역에도 보급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평산교회의 또 다른 주력 사역으로는 봉사하는 공동체로,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활동이다. 바로 지역 섬김을 실천하는 것으로 5년 전부터 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지역 내 돌봄이 필요한 아동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교육시켜 건강하게 자라도록 돕기 위한 일로 비전센터를 세우면서 29명을 50명까지 확대했다. 토요일 전면 휴무제가 시행되면서 사각지대에 놓인 결손가정 아이들을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 토요창의학교도 운영 중이다. 여기에다 2010년부터는 행복한 나눔가게도 운영, 웅산 지역에 이어 두 번째로 탄생한 평산점을 오픈하였다. 기증받은 물품들을 지역민들에게 싸게 공급하고 그 수익금으로 해외 굶주린 이웃과 지역사회를 돕는 기아대책에 지원하고 있다. 어려서부터 목회자 자녀로 가난하지만 영성과 섬김의 정신을 배운 강진성 목사는 말한다. “인간의 행복과 불행은 만남에서부터 시작되며 가장 본질적인 만남은 하나님과의 만남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강진상 목사는 2025년 1월18일 양산 복음화를 위해 바친 38년의 목회 사역을 마무리하고 평산교회 원로목사로 추대되며 말했다. “제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은 광야의 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광야에 길을 내시고 사막에 샘물을 나게 하신 것처럼 그저 불도저처럼 앞만 보고 왔습니다. 주민들은 나를 가리켜서 인간 승리라고 하지만 하나님이 승리하신 겁니다. 무모할 수 있던 교회 건축도 믿음으로 따라준 직분자와 성도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개입이었고 섭리였습니다. 이제 그 뒤를 이어 갈 담임목사와 성도들 앞의 또 다른 시대적 사명들이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로 훌륭하게 열매를 맺길 바랍니다.” 살면서 좋은 부모를 만나는 것도, 훌륭한 배우자를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도, 사회적으로 훌륭한 스승을 만나는 것도 모두 중요한 부분이지만, 인생의 길을 안내받고 또한 영혼구원을 위해서는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인생의 방황은 하나님과의 만남으로 끝이 나고 신앙의 방황은 평신교회를 만남으로 끝을 맺게 된다는 주님의 종 강진상 목사. 시인 소강석 목사가 사랑하는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른 윤동주 시인의 시 '초 한 대'가 주님의 종 강진상 목사의 삶을 기리는 것 같다. 내 방에 풍긴 향내를 맡는다. 광명의 재단이 무너지기 전 나는 깨끗한 제물을 보았다. 염소의 갈비뼈 같은 그의 몸, 그의 생명인 心志까지 백옥 같은 눈물과 피를 흘려 불살라버린다. 그리고도 책상머리에 아롱거리며 선녀처럼 촛불은 춤을 춘다. 매를 본 꿩이 도망가듯이 암흑이 창구멍으로 도망한 나의 방에 풍긴 제물의 위대한 향내를 맛보노라. 1934.12.24. 성경은 말씀한다.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주의 종에게 알게 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위하여 집을 세우리라 하신고로 주의 종이 이 기도로 구할 마음이 생겼나이다 주 여호와여 오직 주는 하나님이시며 말씀이 참되시니이다 주께서 이 좋은 것으로 종에게 허락하셨사오니 이제 청컨대 종의 집에 복을 주사 주 앞에 영원히 있게 하옵소서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사오니 주의 은혜로 종의 집이 영원히 복을 받게 하옵소서 하니라 삼하 7:27-29 2023-04-04 수정 2025-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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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김문기 장로 '신기루' 인생 '촛불' 사명
전국장로회 회장 강의창 장로 종소리같은 복음송 김문기 장로 전국 장로와 신자의 복음 가수라고 말해 소강석 목사의 복음과 목회생태계 사절(使節) 김문기 장로 찬양 앨범 2집 ‘신기루 인생’ 3집 '촛불' 발매 김문기 장로 2018년 한 해만 97회의 찬양간증 간증 시간 모자랄 정도 하나님 사랑 넘치고 또 넘쳐 찬양 신기루 인생 서용봉 작사/장욱조 작곡 고해같은 힘든 인생 될 줄 알고 뛰었건만그럴수록 거품처럼 부서지는 내 인생아주님 없는 인생길 신기루가 아니던가광야같은 세상에서 예수님만 의지하니잡초같은 내 인생에 이제 꽃이 피어나네 의지할 이 주님이라 두 손 들고 주께 왔네무거운 짐 내려놓고 예수님만 의지하리주님 없는 인생길 신기루가 아니던가광야같은 세상에서 예수님만 의지하니잡초같은 내 인생에 이제 꽃이 피어나네 소망의 길 승리의 길 하나님이 같이하네길과 진리 생명이신 우리 주님 인도하네주님 없는 인생길 신기루가 아니던가광야같은 세상에서 예수님만 의지하니잡초같은 내 인생에 이제 꽃이 피어나네 목사의 꿈을 가지고 있었지만 집안 사정으로 목사의 길을 포기한 김문기 장로는 어느 날 교회의 종탑을 보고 소리를 내는 저 종처럼 하나님의 쓰임을 받게 되리라 깨달았다고 한다. 사라졌지만 잊지 못하는 것. 갔지만 남는 것. 그것은 사랑이고 은혜다, 그리고 신기루 인생의 기억이고 세월이다. 꽃 필 때는 피는 꽃처럼 오고 잎 질 때는 지는 잎처럼 가는 그 사랑과 은혜는 오래된 미래다. 미래의 과거다. 나뭇잎이 떨어져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사라진다 해도 여름이어서 빛났고 가을이어서 서늘했다. 이 서늘한 가슴에 살아남는 것은 세월보다 신기루 인생의 기억이다. 종탑 아래 그 교회 유리창 빛에 어른거리던 그 은혜의 밤을 잊지 못한다. 그러나 그 은혜의 순간은 가고 믿음만 남는 '신기루' 인생 그리고 '촛불' 사명. 세계적인 교회로 성장한 새에덴교회(소강석 목사) 대외협력국장으로 교단과 교계, 복음과 목회생태계 사도(使徒) 소강석 목사 사역을 받드는 복음송 사역자 김문기 장로의 발길은 언제나 그의 노래가 함께한다. 교회의 종소리처럼 울리는 그의 노래를 전국장로회 회장 강의창 장로는 전국 장로와 신자를 일으키는 복음 가수라고 말한다. 소강석 목사의 복음과 목회생태계를 위한 열정과 헌신을 전하는 사절(使節) 김문기 장로는 믿음의 노래를 겸하여 부르다 2017년 2집 ‘신기루 인생’ 2019년 3집 '촛불'을 냈다. 김문기 장로는 말했다. 특히 이번 앨범의 ‘신기루 인생’은 유명 가수 겸 작곡가인 장욱조 목사가 작곡자이면서 제작은 물론 김문기 장로의 음악 지도까지 맡아 했다. ‘저 산마루 깊은 밤 산새들도 잠들고 우뚝 선 고목이 달빛 아래 외롭네 옛사람 간 곳 없다 올리도 없지마는 만날 날 기다리며 오늘이 또 간다...’ 1980년 크게 히트했던 가요 ‘고목나무’. 40/50대라면 지금도 몇 소절쯤은 읊조릴 수 있는 노래다. 이 노래의 작사 작곡자이자 가수였던 장욱조 씨(일산 한소망교회 선교목사)는 세상에 젖어 살던 유명 가수 시절 보다 교도소 병원 군부대 교회 전도 집회를 매월 20차례 이상 다니며 바쁘게 살고 있다. 장욱조 목사는 한창 잘나가던 가수로 가요순위 프로그램에서 17주 동안이나 1위를 차지하고 ‘상처’(조용필) ‘아니야’(조경수) ‘기다리게 해놓고’(방주연) ‘내 젊음의 빈 노트’(유미리) 등 히트곡의 작사 작곡자로 명성을 떨칠 때보다 지금 목사로 사는 삶이 더 행복하다고 고백한다. 장 목사가 주님 앞에 무릎을 꿇은 것은 1986년 3월 30일이다. 그의 가족들은 이날을 집안 기념일로 지키고 있다. 먼저 믿은 아내가 교회에 가자고 졸라도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마다했다가 그 날 하는 수 없이 교회를 나갔다. 그런데 인기도 예전 같지 않고 운영하던 업소도 어려워져 절망의 벼랑 끝을 헤매고 있었던 때라 교회의 따스한 분위기가 왠지 맘에 들었다. 장 목사는 그때를 그렇게 회상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완전히 항복할 때 까지 기다려주시더군요.” 1년이 지난 어느 날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심령을 갈라놓았다. “하루는 연예인 선교단을 따라 찬양집회를 갔는데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이란 찬양을 부르면서 마음에 이상한 감정이 치솟아 올랐습니다. 그 전부터 알던 찬양이었는데 그 날따라 왜 그렇게 눈물이 쏟아지는지 알 수가 없더라구요.” 그때부터 그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믿음이란 자기 목숨까지 하나님께 내어놓는 것이란 것을 깨달았다. 하나님께 죄인이란 사실을 고백하자 마음에 뜨거운 감동이 일었다. 인기가수로 무대에 서서 환호를 받을 때도 맛볼 수 없었던 감동이었다. 그 감동이 복음성가로 터져 나와 ‘할 수 있다 하신 주’ ‘주님 나의 동산’ ‘하늘나라 여는 문’ ‘전하세’ 등 100여 곡을 지었다. 전국 교회와 신자의 복음가수 김문기 장로의 2집 앨범은 장욱조 목사의 신곡 ‘신기루 인생’ 외에 ‘할 수 있다 하신 이는’ ‘나를 구원하신 아버지’ 등 12곡이 담겼다. 김문기 장로의 노래 열정에 날개를 달아준 이가 장욱조 목사다. 우연히 간증집회에서 만난 장 목사와 의기투합해 1집 앨범에 이어 2집 앨범까지 만들게 됐다. 신곡 ‘신기루 인생’도 장욱조 목사의 작품이다. 김문기 장로는 이 찬양이 자신의 인생을 말해주는 것 같아 특히 애정을 갖고 있다고 한다. 그 노래를 처음 들은 나도 그랬다. 그래서 취재를 하게 된 전국 장로와 신자의 복음 가수 김문기 장로는 전라도 억양으로 구수하게 말했다. “예전에는 주님을 떠나 광야의 잡초처럼 살았지만 주님을 만나고 난 뒤 내 인생에 꽃이 핀다는 가사입니다. 그 가사가 저의 삶을 그대로 투영한 것 같아 애착이 갑니다. 원래는 작사가가 부르려던 곡이었어요. 그런데 그분에게는 잘 맞지 않아 하나님의 은혜로 저한테 기회가 왔습니다. 부르면서 저도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곡에는 원 주인이 있다더니 저에게 딱 맞는 맞춤 곡이였죠. 작곡자 장욱조 목사의 배려에 말로 다할 수 없는 고마움을 느낍니다. 특별히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소강석 담임목사님의 사랑은 더 말할 수가 없죠.” 신기루(蜃氣樓)는 바다 위나 사막에서 빛이 밀도가 다른 공기층을 통과하면서 굴절하여 생기는 현상을 말한다. 그 제목의 노래 ‘신기루 인생’이 우리 인생을 되돌아보게 한다. ‘고해같은 힘든 인생 될 줄 알고 뛰었건만 그럴수록 거품처럼 부서지는 내 인생아 주님 없는 인생길 신기루가 아니던가 광야같은 세상에서 예수님만 의지하니 잡초같은 내 인생에 이제 꽃이 피어나네’ 장맛비가 산골을 후비는 2016년 7월 4일 오후 3시 정선군 고한읍 하이원리조트 컨벤션홀에서 제38회 전국장로회연합회(회장 김성태) 하기수련회가 3000여명이 모여 개회됐다. 소강석 목사가 은혜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그 집회에서 김문기 장로가 “주여 이 죄인이” 라는 복음의 노래를 절절하게 열창해 ‘존경받는 장로가 되자’는 기치 아래 모인 장로들에게 깊은 감동을 안겨 주었다. 세상에서 방황할 때 나 주님을 몰랐네내 맘대로 고집하며 온갖 죄를 저질렀네예수여 이 죄인도 용서 받을 수 있나요벌레만도 못한 내가 용서 받을 수 있나요 ... 내 모든 죄 무거운 짐 이젠 모두 다 벗었네우리 주님 예수께서 나와 함께 계신다오내 주여 이 죄인이 무한 감사드립니다나의 몸과 영혼까지 주를 위해 바칩니다 소망의 길 승리의 길 하나님이 같이하네길과 진리 생명이신 우리 주님 인도하네주님 없는 인생길 신기루가 아니던가광야같은 세상에서 예수님만 의지하니잡초같은 내 인생에 이제 꽃이 피어나네 김문기 장로는 2집 '신기루 인생'에 이어 2019년 3집 '촛불'을 발매했다. 2017년 2집을 1만장 제작한 데 이어 3집으로 하나님께 더 큰 영광을 돌린다는 포부다. 3집 앨범은 신곡 2곡을 포함해 총 15곡을 수록했다. 그 중 타이틀 곡 '촛불'은 대한민국 문단의 공인받은 문학상 수상 시인이자 대한민국 대표적 설교자와 목회자인 소강석 목사가 작사·작곡한 곡이다. 교단의 대표적 복음송 가수 김문기 장로는 말했다. “이 찬양에 ‘사랑할수록 부족하고 드릴수록 목마르기에…’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소강석 목사님이 목회자로서 하나님과의 관계 사이에 느끼는 감정을 표현한 것인데, 나도 부르면서 그 감동과 기쁨에 넘쳐 눈물을 흘렸습니다. 젊었을 때 가수가 되고 싶었지만 이루지 못했던 꿈을 70대의 나이에 이뤘어요. 앨범을 내고, 저를 필요로 하는 곳에 가서 간증하며 찬양을 부르는 지금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제 목소리로 복음의 은혜를 전파할 수 있다는 것이 빛이신 하나님의 은혜이고 약하고 부족한 제게 촛불 같으신 소강석 목사님의 후원 덕이죠...” 성경은 말씀한다. 할렐루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 나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찌니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 146:1-5 2025-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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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윤석열 변호인 조대현 신앙고백
하나님께서 내 모든 명예를 내려놓으라고 (이런 일을) 하게 하시나봅니다 로마의 황제 첫 번째 칭호 로마의 제일 시민 전 헌법재판관 조대현 장로 신앙을 따른 대한민국 제일 법관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대리인단으로 조대현(74) 전 헌법재판관 합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법연수원 7기 동기 친목 모임인 ‘8인회’의 일원 조 전 재판관은 서울민사지법 판사로 임관해 2004년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끝으로 법원을 떠난 그해 노 전 대통령 탄핵 심판에서 대통령 측 변호인을 맡아 탄핵 기각을 이끌어 내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두 번째 공개 변론이 2025년 1월 16일 오후 2시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렸다. 윤 대통령의 불출석으로 4분 만에 끝난 첫 변론과 달리, 이날 야당이 주도하는 국회 탄핵소추단과 윤 대통령 측 대리인단은 비상계엄 선포의 위헌·위법성, 탄핵소추의 정당성 등을 두고 3시간 20여 분간 열띤 공방을 벌였다. 윤 대통령 측 조대현 전 헌법재판관은 젖은 눈으로 변론했다. “공산주의 좌익 세력이 국회의 과반수 권력을 탈취하고 자의적으로 휘두르며 입법권과 탄핵소추권 등을 남용해 국가 기능을 마비시켰습니다. 윤 대통령은 헌법 질서 회복을 위해 헌법에 따라 비상대권을 행사한 것입니다. 야당의 탄핵소추는 대통령을 끌어내려 정권을 탈취하려는 목적에서 비롯됐다고 봐야 합니다.” 이도 저도 마땅치 않은 겨울 끝물. 때 아닌 천둥소리에 놀라 내린 눈발에 철 지난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그냥 있어볼 길밖에 없는 내 곁에 부엉이바위에서 뛰어내린 그분처럼 저도 말없이 그냥 조용히 내려 잊히지 않는 뇌리 속에 그냥 있다. 생각하면 고맙다.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기 때문일까. 그저 마음의 정처가 없는 것인가. 모든 일이 꽉 막혀 손 써볼 방도가 없는 것인가. 그냥 있음은 아주 힘없는 상태 같기도 하고, 무언가 참기 힘든 걸 참고 있는 뜨거운 견딤의 시간 같기도 하다. 이러고 있을 수밖에 없다는 맥 놓은 이 순간에 미묘한 서글픔이 어린다. 피가 빠져나가 버린 듯 이 쓸쓸한 믿음에 어떤 말도 손길도 부질없는 염려일 것 같다. 그저 슬며시 내려앉는 것, 그 또한 그렇게 있어 볼 길밖에 없어 그냥 있는 믿음의 ‘있음’만이 그 마음의 믿음에 어울리리라. 노무현(盧武鉉 1946년 9월 1일 ~ 2009년 5월 23일)은 대한민국의 제16대 대통령이었다. 그는 부산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막노동에 뛰어들었다가 독학으로 1975년 4월 30세에 제17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였다. 1975년 3월 27일자 경향신문 맨 왼쪽 아래 제17회 사법고시 합격자 명단 60명 중 한 사람으로 ‘고졸=노무현’ 바로 위에는 당시 이화여대 89년사에 첫 사법고시 합격생인 ‘이화여대=전효숙’의 이름도 그리고 서울대를 졸업했지만 단국대학원의 지원을 받아 적을 두고 사시에 합격한 ‘단국대학원=조대현’의 이름이 적혀있다. 17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수료해야 하는 2년의 사법연수 시절 고졸 출신 사법연수생으로 서울 서소문 사법연수원에 들어간 노무현은 명문 고등학교도 마땅한 대학교도 내세울 게 없어 어울릴 사람이 없었다. 그때 조대현이 노무현을 자신이 좌장격인 7명이 모이는 토론회 멤버로 끼워주었다. 그렇게 사법연수원 시절 같은 반의 비슷한 자리에 앉았던 사람들이 노무현 대통령 당선 후 언론에 의해 ‘8인회’로 명명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조대현과 노무현의 인연은 노 대통령이 집권 이전부터 사석에서 동기 중 가장 존경하는 법조인이라는 얘기를 서슴없이 했다. 노 대통령은 나중에 자서전에 "얼마나 고마웠던지 연수원 시절 내내 가깝게 지냈고, 지금까지도 가끔씩 만나며 친하게 지내고 있다"고 적었다. 조대현은 법관 시절 조용하면서도 강직한 성품으로 선ㆍ후배들의 존경과 두터운 신망을 샀으며 변호사 개업 후에도 사건을 가려서 맡을 정도로 자기관리에 철저한 법조인으로 알려졌다. 서울경제신문 주필을 지낸 후배 김인모가 한국일보 청와대 출입기자 시절이다. 그가 용산고 동창 조대현 판사의 청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날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 있잖습니까. 조 판사야말로 어떤 경우에도 그럴 정도로 청렴하신 바로 그런 분입니다.” 전 헌법재판관 조대현은 유명한 법조인이었고 지금은 존경받는 법조인이다. 그러나 내게는 그가 장로이기에 목사들의 소식지 ‘더굳뉴스’에 소개할 마음이 생겨 인터뷰 요청을 하고 세상에 대해 겸손한 그가 쾌히 허락을 했다. 2017년 1월 22일 주일 그가 장로로 시무하는 일원동의 개포감리교회(당시 담임 안성욱 목사)에서 만났다. 11시 예배가 시작되기 전 개포교회 사무실에서 만나 용산고 20회 동기 동창 사이라 격의 없이 신앙생활에 대해 말을 나누었다. 조대현 장로는 87년 말 망우동 살 때 금란교회 다니다가 일원동으로 이사 와서 개포교회를 다니게 됐다. 개포교회는 1985년 1월 6일 안성옥 목사가 대신교회 개포 구역을 중심으로 일원1동 654-2호에서 첫 예배를 드리고 같은 해 1월 20일 일원1동 677-1 소재 건물 지하 35평을 얻어 창립 예배를 드렸다. 1977년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후 육군 법무관을 마치고 1980년부터 서울민사지법에서 판사 생활을 시작한 조대현 장로는 판사가 된 지 5년째일 때 교회가 설립된 지 2년 된 개척교회에 다닌 초창기 교인인 셈이다. 그로부터 대법원장 비서실장, 대전고법 부장판사, 법원 행정처 인사관리실장 등 법원 내 요직을 두루 거치고 헌법재판관 재직 중인 24년 뒤 그는 2009년 12월 6일 감리교 교회 권사에서 장로로 피택을 받아 장로안수를 받았다. 그는 2018년 1월 9일 자신의 신앙생활의 변환기에 대해 행한 간증에서 이렇게 말했다. “장로가 되어 헌법재판관 임기가 끝나기 두 달 전인 2011년 5월 초 아내에게 끌려서 처음으로 기도원에 가서, ‘헌법재판관 임기를 마치면 무슨 일을 할까요’하고 기도했는데 두 말씀이 제 마음에 박혔습니다. 첫날 저녁에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는 갈라디아서 2장 20절 말씀이었고 다음날 새벽에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섬겨라’는 여호수아 24장 14절 말씀이었습니다. 저는 판사로 일하기 시작한 뒤 1981년 서른 살이 넘어서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1주일에 60시간 이상 판사 일을 했기 때문에, 주일 예배만 간신히 참석할 뿐, 성경을 읽지도 못했고 성경공부모임에 참석하지도 못했습니다. 그 동안 공직 업무에 바쁘다는 핑계로 신앙생활을 소홀히 했으니 이제는 열심히 믿으라고 하시는 당연한 말씀이네라 생각하고 별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퇴임 후 여행을 다니기로 하고 첫 번째로 2011년 8월 터키 여행을 갔습니다. 그런데 허리가 아프고 다리가 저려서 1시간이상 걸을 수가 없어 정작 그렇게 원하던 여행을 제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귀국하자 허리 치료를 받느라고 잔뜩 세웠던 여행계획을 모두 접어야 했습니다. 그 때 생각이 났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인도하시려고 이제는 제대로 믿으라고 일깨우는 말씀을 2011년 5월 기도원에서 석 달 전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내가 무시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내 마음대로 세운 인생계획을 수정하도록 몰아가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허리를 치료하느라 돌아다니지 못하니 기도원에서 은혜 받은 말씀을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점점 생각이 깊어졌습니다. 제대로 믿는 게 뭐지. 믿는다는 게 뭐지. 무얼 믿는 거지. 왜 믿어야 하지. 그런데 평생 법관을 지낸 제가 아무 것도 대답할 수가 없더군요. 그래서 성경을 읽고 신앙서적을 읽으며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2년 남짓 공부하던 중 2012년 2월 말경 예수전도단 김지태 대표님으로부터 시니어 DTS(Discipleship Training School: 12 주간의 강의와 가르침으로 시작하여 약 12주의 전도여행으로 이어지는 그리스도인을 위한 예수전도단의 집중적인 제자훈련 프로그램) 학교가 3월 5일 개학한다는 말을 듣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아내와 함께 시니어 DTS학교에 지원했습니다. 60세 이상 성도들이 8개월간 예수제자훈련을 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시니어 DTS학교에 가서 그곳에서 일하는 간사님들이 여호수아 24:14 말씀대로 하나님을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섬기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진정한 제자의 모습을 보고 배우게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시니어DTS학교에서 말씀 묵상과 하나님의 음성 듣는 훈련을 받게 하셔서, 하나님의 인도를 제대로 받는 방법을 배우게 하셨고, 2012년 8월 10일간의 전도여행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구체적으로 인도하시는 것을 체험하게 하셨습니다. DTS의 전도여행은 여행계획을 미리 세우지 않고 지갑과 휴대폰 없이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살아가는 훈련입니다. 어디로 갈지, 며칠간 머물지, 무엇을 할지 등을 그때그때 하나님께 여쭙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훈련입니다. 그 후 기도를 많이 하는 아들이 2014년 2월부터 3월 복음학교에 가라고 강권했습니다. 복음학교에 가서 내 생각이 옳다는 생각을 버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2014년 6월 2일부터 7일까지 순회선교단 복음학교에 가서 복음 공부를 했습니다. 김용의 선교사님 혼자서 하루 15시간씩 강의를 하시더군요. 성령이 충만한 하나님 일꾼은 저런 분이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강의 내용은 단순하고 강력했습니다. ‘오직 예수, 십자가 복음만이 살 길이다. 십자가에서 죽고 다시 태어나라. 제대로 믿어라. 세상의 가치에 이끌려서 생명의 길에서 벗어나지 말아라.’ 복음학교를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2014년 6월 11일 제가 형사피고인으로 기소되었습니다. 공직에서 퇴직한 제가 대한감리회 재판위원으로 봉사하던 중 2013년 9월 감독회장 당선이 무효라고 판결했습니다. 그리고 그 판결에 불복한 당선자가 그 판결이 무효라고 법원에 소송을 제기해서, 제가 감리회의 당선무효판결은 정당하다는 답변서를 작성하여 제출하였습니다. 그 답변서를 작성하면서 감리회 직원이 저의 요청과 감독회장 직무대행의 지시로 감독회장 부하인 행정실장의 사무실 책상 위에 있던 증거서류를 꺼내왔다는 이유로, 그 직원과 감독회장 직무대행과 제가 공모하여 행정실장 사무실에 무단침입을 했다는 죄목이었습니다. 제가 기소되자, 모든 신문과 방송이 크게 보도했습니다. ‘재판관이 재판받다.’ 빅 뉴스였죠. 그 결과 제가 평생 쌓은 명예가 산산조각 나버렸습니다. 제가 기소된 사실은 범죄가 되지 않는 사실이었습니다. 평생 법조인으로 살아온 저로서는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억울하다고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참새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말씀(마 10:29)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제 아들이 하나님께서 드디어 아버지를 손대기 시작했으니 기뻐하고 감사드리라고 말했습니다. 아들의 말과 같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라고 생각하니, 불평하는 마음이 사그라지고 마음이 평안해졌습니다. 그러자 비로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네가 법관의 경력과 명예를 나에게 내놓으려 했느냐.’ 저는 판사와 헌법재판관으로 지내면서 저의 명예를 아주 소중하게 여겼습니다. 제가 판사와 헌법재판관으로 일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경력이나 명예를 제가 자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 것임을 망각하고 나의 공적이라고 내세우는 짓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네가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에서 거주하며 네 소유가 풍부할 때에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신 8:12-14)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신 8:17) 하나님의 은혜로 인생살이가 형통할 때 교만의 죄에 빠지기 쉬우니 조심하라고 경고하시는 말씀인데 제가 바로 거기에 걸린 것입니다. 이것을 깨닫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저를 형사피고인으로 세우시고 언론에 대서특필되게 하신 것이었습니다. 제가 아끼는 세상 명예는 하나님 앞에서 아무런 가치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이라고 생각하니, 형사피고인 처지에서도 마음이 평안해졌고, 기자들이 심경을 물을 때에도 하나님께서 내 명예를 내려놓게 하신 것이라고 대답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복음학교의 가르침에 따라 가장 가치 있는 것, 하나님, 그리스도 구원의 복음,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것을 깨닫고자 노력했습니다. 성경 말씀을 읽으면서 묵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성령님의 깨우치심이 저를 행복하게 했습니다. 새벽 기도 시간에 앉아 있으면, 목사님을 통하여 필요한 말씀과 교리를 가르쳐 주시기도 하고, 제가 찾던 성경 말씀이 저절로 생각나기도 하고, 제가 알지 못하던 진리가 떠오르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루 종일 컴퓨터에 앉아 원고 정리 하는 것이 참으로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저의 신앙생활이 너무 부족하고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합격 판정을 받으려면 아직도 멀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을 전 헌법재판관 조대현 장로가 자신의 소속 감리교 교단 교권 다툼 끝에 피소되어 법정에 서게 되었다. 2014년 7월 3일 오전 11시 올곧은 법관 조대현이 서울법원종합청사 522호 법정 피고인석에 섰다고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모든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나중 무죄가 되었지만 그 때 그는 담담한 표정으로 심경을 묻는 신문기자에게 전 대통령 이명박 장로와 달리 한국 교회 신앙 역사에 남을 말을 했다. “하나님께서 내 모든 명예를 내려놓으라고 (이런 일을) 하게 하시나봅니다.” 개포교회 장로(長老) 조대현(曺大鉉, 1951년 2월 11일 ~ )은 대한민국의 법조인이다.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지냈다. 1951년 충청남도 부여군에서 태어났다. 용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를 졸업하였고 단국대학교 대학원 재학 중 1975년 17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판사가 되었다. 1977년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후 육군 법무관을 마치고 1980년부터 서울민사지법에서 판사 생활을 시작한 조 변호사는 대법원장 비서실장, 대전고법 부장판사, 법원 행정처 인사관리실장 등 법원 내 요직을 두루 거쳤다. 수학 교사로 시작해 서울 언주중학교 교장을 지낸 헌신적 사랑과 눈물의 기도로 평생 내조한 서외순 권사와 두 아들을 두었다. 조대현 장로가 그 바쁜 법관 생활 속에서도 어릴 적부터 책상을 마주하고 직접 가르친 쌍둥이 아들 둘 다 직업도 쌍둥이 법조인(변호사)으로 활동 중이다. 로마의 황제 첫 번째 칭호는 princeps 즉 제일(第一) 시민(市民)이다. 그렇듯 전 헌법재판관 조대현 장로는 그의 법관 경력이나 기독교 신앙이나 세상 삶에서 대한민국 제일(第一) 법관(法官)이라 말해도 그를 아는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2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3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창 1:1-5 2018-02-25 2025-01-2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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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어린 왕자 소강석 목사
프랑스 공군 비행사이자 작가인 생텍쥐페리(Antoine Marie Jean-Baptiste Roger de Saint-Exupery, 1900년 6월 29일~1944년 7월 31일 추정)가 1943년 발표한 소설 '어린 왕자'(Le Petit Prince)는 아동 소설이자 유작이기도 하다. 아주 작은 소행성에서 살고 있던 어린 왕자는 매일 아침, 별을 구석구석 청소하고 꼼꼼하게 살폈다. 장미와 구별해서 바오밥나무의 싹을 뽑아내는 일은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나무가 자라 뿌리를 깊이 내리면 별이 파괴될 수도 있었다. 귀찮았지만 하루도 쉬지 않고 나쁜 싹을 골라낸 덕에 어린 왕자는 별을 지킬 수 있었다. 반면 어느 게으름뱅이의 별은 바오밥나무로 뒤덮이고 말았다. 어린 왕자는 경고한다. ‘바오밥나무를 조심해!’ 정직이 최선의 계책(計策)'이라는 서양 격언도 이 땅에 건너오면 바보들이나 믿는 말이 된다. 법에 훤하고 그런 법 지식을 악용하는 무리 탓이다. 영국의 배우, 코미디언, 영화감독이자 음악가로 무성 영화 시기에 크게 활약한 찰리 채플린(Charlie Chaplin, 1889년 4월 16일 ~ 1977년 12월 25일)은 말했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사람의 마음에는 장미 씨앗이 있고 바오밥나무의 싹도 있다. 괜찮겠지, 하며 일찍이 골라내지 못한 나쁜 씨앗들이 맹렬히 자라 지금 우리의 터전을 무섭게 집어삼키고 있다. 2024년 연말 소강석 목사가 겪은 사고를 2025년 1월 12일 새에덴교회 주보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에 실렸다. 아포리즘(aphorism)이란 깊은 진리를 간결하며 압축된 형식으로 표현하는 짧은 글의 형식이다. 제가 지난 12월 2일 저녁에 잠자다 오른쪽 발뒤꿈치가 전기장판에 저온화상(저온이라는 용어 때문에 일반 화상보다 경각심이 낮지만, 초기 증상만 경미할 뿐 오히려 장시간에 걸쳐 조직 손상이 깊은 곳까지 이뤄지면 피부조직 괴사, 가피 형성, 궤양 등 심각한 손상을 입을 수 있다)을 입었습니다. 그날 저는 저온화상인지도 모르고 주일 낮 예배와 5부 예배 성찬식까지 다 인도했습니다. 전기장판에 화상을 입을 줄이야 저도 몰랐고 주변 사람들도 몰랐습니다. 나중에 화상인 출 알고 연고를 바르고 항생제와 소염제를 먹었습니다. 약간의 차도가 있는 듯했지만, 저는 계속해서 박순애 전도사님 초청 집회 시간마다 무릎을 꿇고 기도했고, 이후로 교역자 연말 정책 수련회와 루체비스타 성탄절 행사를 준비하고 이끌어야 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CBS 설립 70주년 및 여러 교계 행사 모임에도 다 참석을 했습니다. 집사람은 빨리 화상 전문병원으로 가보라고 했지만 조금씩 좋아지는 것 같아서 가지를 않았습니다. 그때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습니다. 만약 화상 전문병원에서 입원하라고 했더라면 교역자수련회나 루체비스타 성탄절을 이끌지 못했을 것입니다. 어쩌면 성탄절 예배와 송구영신 예배도 이끌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니. 신년 축복 성회도 감당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물론 사이사이 나름 드레싱을 하고 연고를 바르고 약도 처방하여 먹었습니다. 그러다가 모든 집회가 끝난 후 1월 5일, 첫 주일 저녁 예배를 마치고 이재훈 목사님을 오시게 해서 화상을 입은 뒤꿈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자 이 목사님께서 화상 전문시스템을 잘 갖춘 대학병원에 연락했고. 저는 다음 날 오전 11시 응급 처치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강제 입원을 하고 말았습니다. 화상 전문 성형외과 선생님은 저한테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환자분님, 큰 교회를 섬기고 목회하는 분으로 들었습니다. 이 발뒤꿈치를 앞으로도 10년 아니 20년 이상을 써야 할 텐데 왜 이렇게 방치하셨습니까?" “저는 이렇게 말씀을 드렸죠. ‘교수님, 나름 드레싱을 하고 연고도 바르고 약도 먹었습니다.’ 그러자 그분은 다시 말씀하시는 거예요” "왜 이렇게 병을 키워 갖고 오셨어요? 처음에 바로 왔으면 간단하게 처치할 수 있는 것을 왜 이렇게 먼 길을 돌아왔습니까?" 그러자 또 제가 이렇게 말씀을 드렸죠 “어느 교회든지 연말연시는 다 바쁩니다. 특별히 저는 더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자 그분이 화를 내시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한 해만 목회하시려고 하십니까? 앞으로 10년, 20년 일을 하셔야 하는데요? 조금만 늦게 오셨으면 뒤꿈치를 절단할 수도 있었을 텐데 이런 시급함을 모르신다는 말입니까?“ 병실에 누워 있자 얼마나 답답하고 하루가 긴지요. 아무리 기도를 하고 성정을 봐도 하루하루가 길게 느껴졌습니다. 매일매일 반복적으로 염증 부분을 잘라내는 아픔, 억지로 피를 나오게 해서 생살이 돋아나게 하는 처치의 시간은 참으로 고통스럽고 가슴 저리기까지 하였습니다. 3일째가 되자 그토록 엄격하고 원칙적인 주치의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피부 이식 수술은 안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잘 치료하면 빨리 새살이 돋아날 것 같습니다." 금요일 오후에는 국소 마취를 하여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염증을 제거하였습니다. 제가 휠체어를 타고 가서 설교하면 안 되냐고 했더니 그분은 말했습니다. "절대로 안 됩니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입니다. 이번 주를 잘 참아내면 다시 후회 없이 발바닥을 회복하게 될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병실에 앉아서 생각해 보니 아쉬운 부분이 많이 있었습니다. 다른 일정을 다 취소하고 일찍 화상병원에 갈 수도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그러나 그때 당시로서 저는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쉬운 마음이 있는 건 분명하지만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이 병실에서 오직 하나님을 생각하고 성도 여러분을 생각하며 인생의 새로운 또 다른 페이지를 써가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신년집회가 끝나면 쉬고 치료를 받으려고 했는데 하나님께서 더 엄격하게 강제적으로 치료를 받게 하시네요. 성도 여러분에게 심려를 끼쳐서 죄송하고 제가 더 새롭고 신선한 얼굴로 뵙겠습니다. 여러분 모두를 사랑하며 축복합니다 “나를 길들여 줘, 부탁이야!”라며 어린 왕자에게 특별한 존재의 소중함을 가르쳐준 사막의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말했다. “만약 오후 4시에 네가 온다면, 나는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새에덴교회 성도들에게도 소강석 목사는 언제나 그런 ‘어린 왕자’일 것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요일 4:7-8 2025-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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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부산 아우구스티누스 허은 목사
지난 2017년 대통령 선거 막바지에 민주당의 공동선대위원장인 이해찬씨는 말했다.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다음에는 안희정·이재명·박원순 같은 사람이 이어서 쭉 장기 집권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보수 세력을 완전히 궤멸시켜야 한다.” 보수 진영으로서는 ‘싸가지 없는 소리’였겠지만 이제 윤석열 정권이 들어선 지 2년 반이 지난 이 시점에서 어쩌면 이해찬씨의 말은 그냥 흘려버릴 말이었던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말한 세 사람 가운데 사법 위기에 허덕이는 이재명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무들은 먹은 것도 없이 겨우내 버틴 몸으로 꽃까지 피워내야 하는 것이 봄이다. 새싹이 온몸으로 흙을 밀어 올려야 하는 것도 봄이다. 그건 정말이지 하나님이 모든 생명이 아무도 모르게 잠들 수 있도록 이마를 쓰다듬어 주시는 은총이다. 인간의 공로보다 하나님의 은총을 강조한 아우구스티누스(354년 11월 13일 ~ 430년 8월 28일)가 말했다. "사랑이 있고 소망이 있어야 없는 것을 본다. 소망이 없으면 눈에 안 보이는 것을 보지 못한다." 아우구스티누스라는 이름은 '작은 아우구스투스'라는 뜻으로 로마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에게서 따온 이름이다. 427년 반달족(게르만족의 한 민족)이 북아프리카를 쳐들어왔을 때 피난민들이 전쟁을 피해 아우구스티누스 감독(bishop)이 살고 있던 히포에 쏟아져 들어왔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감독이었으므로 안전한 곳으로 찾아가거나 교회에 은둔할 수도 있었지만, 기꺼이 피난민들을 위해 봉사했다. 결국, 아우구스티누스 감독은 430년 8월 28일, 반달족이 히포를 점령하기 얼마 전(반달족의 히포 점령은 431년의 일) 피난민들을 돌보다가 걸린 열병으로 76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그는 이 땅의 삶을 끝내는 순간까지도 전쟁으로 두려움에 빠진 난민들을 돌보며 피난처를 제공하였다. 이는 "우리의 이웃이 하나님께 관심을 가질 때 그들에게 자비롭게 대하는 행동은 우리를 불행에서 벗어나게 해 주고 행복에 이르게 한다"는 자신의 신념에 따른 것이었다. 그는 '고백록'에서 말했다. "물체는 제 중심에 따라서 제 자리로 기웁니다. 중심이란 꼭 밑으로만 아니고 제 자리로 기웁니다. 불은 위로 향하고 돌은 아래로 향합니다. 제 중심을 향해 움직이면서 제 자리를 찾습니다... 그런 질서가 덜한 곳에는 불안하고 질서가 잡히면 평온해집니다. 제 중심은 저의 사랑입니다. 사랑으로 어디로 이끌리든 그리로 제가 끌려갑니다. 주님 은사로는 저희가 불타오르고 위로 이끌려갑니다. 타오르면서 갑니다." 2023년 3월 16일 오후 2시 부산 연제구 연산 8동에 있는 동현교회의 주민을 위한 무료 카페에서 지용길 목사와 함께 허은 목사와 대담을 나누었다. 지형적으로 저지대에 위치해 도로여건이 열악하고 인근 주민과의 관계성이 낮아 지속적인 인구 유출과 고령화로 인한 사회적 쇠퇴가 가속화되고 있는 곳이다. 2022년 5월 21일 입당 감사예배 및 헌당식을 드린 산등성이 동네 한가운데 있는 지상 4층, 지하 1층의 예배당은 아늑했다. 연산동을 아우르는 연건평 511평의 예배당은 주변 개발지역과는 달리 지형적인 한계로 인해 소외받았던 연산8동과 어울려 아담했다. -여기는 언제 자리 잡으셨습니까. "지난해 5월에 입당했습니다. 아직 1년이 되지 않았습니다. 제가 총회 부서기 마치고 그해 2021년 12월에 공사 시작해 서기 임기 중(2022년 5월)에 완공이 됐습니다." -많이 바쁘셨을텐데. "네. 교회 일과 총회 일이 겹쳤습니다. 교회 장로님들, 집사님들 많이 수고하시고 정말 은혜중에 잘 마쳤습니다. 이 지역은 주로 서민들이 많이 삽니다. 주택가 한가운데 있고 도로변에 있지 않아서 불리한 면이 있는데 오히려 동네 가운데 있어 조용하고 지역 주민들하고 가깝게 지내니까 좋습니다. 이 카페는 무료 카페입니다. 누구나 자기 마음대로 차 빼서 마시고 우리 교회 교역자 집사님들이 순번을 맡아 봉사를 합니다." -이런 교회 카페는 못 본 것 같은데요. "여기는 어려운 분들, 독거노인들이 많아 지난해 5월에 입당하면서 전체 100개 가정에 쌀, 라면을 동사무소를 통해 전달했습니다. 지난 연말 성탄절에 2백 가정에 한 상자에 105만 원 상당의 생필품을 전달했습니다. 그야말로 지역에 있는 교회로서 지역민과 함께하려고 합니다. 우리 사회가 초고령화 사회로 가니까 교회 안에도 어르신이 많고 교회 주변 이웃에도 어르신이 많습니다. 다음 세대도 잘 키워야 하지만 이 어르신들에게 천국 기실 때까지 여러 가지 책임을 져주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장기적으로 집이 나고 교회가 살 여력이 되면 이런 어른들을 1인 1실, 혹은 2인 1실로 30분 정도 천국 가실 때까지 모셨으면 합니다. 그래서 제가 사회복지학도 전공해 사회복지사 자격증도 땄습니다. 요양보호사 자격증도 따고 요양시설을 운영하면 외부 시설장을 모셔야 되는데 제가 자격증을 따니까 경비도 줄이게 되죠. 그런데 교회가 작지만 아담하게 세워지니까 주변 지역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 있어 여기로 보내셨구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전에도 그랬습니다만 최근에도 우리 장로님들께서 '목사님 꿈꾸고 계시는 그 일을 현실화시켜봅시다. 교회 짓고 1년도 안 됐으니까 준비가 되면 옆에 있는 건물 하나 사 가지고 우리 형편에 맞게 부속건물 지어 청소년, 아이들, 청년들 교회 와서 마음껏 공부하고 놀 수 있게 자리 만들어줍시다. 그 위에는 어르신들을 모시고 우리가 평생 책임져주고 하는 일을 생각하고 준비해가고 있습니다. 작지만 아담하게 지역민과 함께하는 그런 교회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동현교회는 개척하셨나요, 부임하셨나요. "제가 2대 목사입니다. 1대 목사님이 다른 교회를 섬기다가 나오셔서 성도 30여 명하고 한 가정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다 그 어려운 시절에 소금공장도 하시고 빌려서 예배드리셨습니다. 제가 보니 전월세를 일곱 군데나 다니셨습니다. 그러다가 작은 주택을 하나 매입해 예배당을 짓고 IMF가 올 당시 빚이 상당했습니다. 저를 후임으로 오라 했습니다. 당시 목사님이 협심증으로 건강이 많이 안 좋으셨습니다. 숨이 차서 설교를 잘못하셨습니다. 그때 제가 담임목사로 부임을 하고 1년 뒤 다 물려받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전임 목사님이 인천 길병원에서 수술하고 좋아지셨습니다. 건강이 좋아지시니 3년 동안 안 물려주시는 겁니다. 3년 뒤 위임투표를 해 물려받긴 했습니다. 물려받은 뒤 있던 교회를 매각하고 다른 교회를 사서 리모델링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교회는 우리에게 부담이 됐습니다. 그러다가 그 교회가 너무 도시 중앙이고 환경이 유흥가라 장기적으로 볼 때 어렵겠다는 판단이 섰습니다. 코로나 시국인데 장로님들과 뜻을 모으게 됐습니다. 그리고 마침 여기 집 네 채가 한 날, 한 시 동시에 계약이 됐습니다. 그 네 집을 한 필지로 묶어 헐어내고 건축을 했습니다. 그리고 2021년 12월에 공사 시작해 총회 서기 임기 중인 2022년 5월에 완공이 됐습니다." -은혜롭고 순적하게 성전 건축이 됐군요. "그런데 막상 와보니 없는 사람이 많은 동네라 교회가 제대로 되겠나 싶은 생각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안 좋아하시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것이라 믿었습니다. 예배당을 건축하고 옥상에 올라가 보니 왜 이곳으로 하나님이 보내셨는지 환하게 이해가 됐습니다. 주변에 대단지 아파트가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습니다. 성벽처럼 싹 둘러싸고 있고 딱 우리 교회가 서 있는 주변에 서민들이 사는 고만고만한 건물만 좍 있는 겁니다. 그 가운데 우리 교회가 서 있는 겁니다. (나중에 올라가 보니 정말 그랬다.) 어려운 분들 사는 가운데 교회가 있고 그 주변에는 대단지 아파트가 병풍처럼 좍 서 있는 겁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곳에 교회를 세우셨는가. 그래 이분들 섬기라고 하나님께서 이곳에 교회를 세우셨구나 하는 생각으로 받아들이고 말씀을 들을 때 성도들의 생각이 이제 많이 바뀌었습니다. 그러라고 하나님께서 교회를 이곳에 세워주셨다. 그렇게 해서 작지만 차근차근 우리 힘에 맞게 지역도 섬기고 또 우리 노회 장로회에서 해외 개척 선교를 하겠다 해서 단독으로 하기에는 좀 버거운 게 있고 해서 우리 교회하고 노회장 노회하고 절반씩 힘을 보태 캄보디아에 교회를 하나 세웁니다." 그 관련 기사가 '기독신문'에 다음과 같이 실렸다. 동부산장로회 임원들은 부산 동현교회(담임 허은 목사) 성도들과 함께 2023년 2월 27일부터 3월 2일까지 캄보디아를 방문하고, 천준상, 이숙영 선교사가 사역하는 바탐방지역을 탐방했다. 이 지역에서는 약 20평 규모의 비전교회 예배당을 신축하고 이 일대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중고대학생 52명이 생활할 수 있는 EDM선교센터를 증축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동부산장로회와 동현교회는 이 공사에 들어가는 비용 4천만 원을 함께 감당하기로 했다. 허은 목사는 지난 2021년 9월 제106회 총회 서기 직무를 시작하면서 다짐했다고 한다. “총회 서기는 총회 소속 노회와 교회의 분쟁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해야 하는 직분이지만 법과 원칙을 지키며 어떤 외압에도 바르게 섬기겠다.” 부산 아우구스티누스 허은 목사는 제107회 총회선거관리워원회 서기로서 제107회 총회 불꽃 권순웅 총회장의 클린개혁을 떠받칠 제108회 총회 임원과 상비부 선거를 깨끗하고 투명하고 공정한 선거를 관리해야 되는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했다. 낳아주신 어머님, 길러주신 어머님을 다 같이 진심으로 섬겼던 효심을 그리고 이 땅의 삶을 끝내는 순간까지도 자신의 신념을 따른 아우구스티누스처럼 동현교회와 총회를 섬길 것이라 믿는다. 그리면 제104회 총회장 이승희 목사가 총회 석상에서 "당신 같은 사람이 총회장이 되어야 한다"고 한 예언이 이루어질 것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히 11:1-3 2024-11-29
G.MI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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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옥한흠 목사 교회 갱신 은혜의 걸음
믿음에 사는 동안 다 말 못 할 말들을 믿음은 저마다의 가슴속에 품고 산다 꼭 믿어야 할 때 믿기 어려워 믿으면 주님은 침묵으로 튼튼해진 그의 두 팔을 벌려 나의 믿음을 품어주신다 주님이 별이시라면 나는 주님 옆에 뜨는 작은 별이고 싶다 주님이 노을이시라면 나는 주님 뒷모습을 비추어 주는 저녁 하늘이 되고 싶다 주님이 나무시라면 나는 주님의 발등에 덮인 흙이고자 한다 오, 주님이 이른 봄 숲에서 우는 은빛 새이시라면 나는 주님이 앉으실 수 있는 한창 물오르는 싱싱한 가지이고 싶다 판단이라는 것은 데이터와 분석뿐만 아니라 신탁(神託), 직관(直觀)까지 포함된다. 작은 일은 데이터만 가지고 판단해도 되지만 큰일은 신탁이 있어야 한다. 고대 지중해 세계에서 국가의 존망이 걸린 전쟁을 앞두고 델피 신전에 가서 신탁을 구했던 것도 고도의 의사 결정 과정이라고 보아야 한다. 트럼프나 이재명은 여러 재판 판결을 앞에 두고 점괘를 물어볼 신탁소나 점장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국가 간 전쟁은 뉴욕의 부동산 투자나 대장동 개발과는 차원이 다른 결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믿는 사람들은 주기도문에 나오는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구절을 때마다 외우지만 그때마다 깊은 믿음이 솟는 이유다. 만사가 하늘에서 먼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의 섭리와 뜻이 조짐으로 미리 나타나고 그다음에 현실 세계에서 보게 된다. 마치 일기예보와 같다. 인공위성에서 고기압과 저기압의 배치를 보고 일기를 예보한다. 예컨대 고기압과 저기압의 배치를 미리 보는 일이 '하늘에서 먼저 이루어지는 것'을 앞서 보는 일이다. 그것이 바로 징조와 계시의 하나인 것이다. 이 징조를 감지하는 일이 원래 동양에서는 국사(國師)나 왕사 또는 도사가 담당했다. 서양에서는 왕 측근의 성직자 또는 선지자나 예언자 몫이었다. 풍수도참과 주역 그리고 꿈이나 환상이 요셉이나 에스겔의 경우처럼 하늘의 조짐을 미리 짐작하게 해주는 도구였기 때문이다. 기업 경영에서 도사들의 판단을 활용하는 경영의 원조는 삼성의 이병철 전 회장이다. 대한민국을 지금의 인터넷 강국으로 만드는 기초를 놓은 이병철 회장은 도사들에게 대접도 후하게 했지만 한 사람 말만 믿지 않고 여러 도사의 점괘를 크로스 체크하는 노련함도 있었다고 한다. 그래도 인간의 생로병사는 그 누구든 피하지 못한다. 1996년 3월 7일 140명의 교단 소속 목회자들이 창립 제안자 옥한흠(玉漢欽, 1938년 12월 5일 ~ 2010년 9월 2일) 목사의 사랑의교회에서 △목회자 영성 회복 △교회갱신 △교단발전 △한국교회에서 교단의 올바른 자리매김 등을 위해 노력한다는 취지로 ‘교회갱신을 위한 목회자협의회(교갱협)’를 창립했다. 그 후 교단 내 금권선거를 뿌리 뽑기 위해 직선제를 폐하고 총회 임원 제비뽑기 선거제도를 정착시켰다. 세월이 흘러 교갱협 25주년 행사가 2020년 8월 17일 10시 30분 새로남교회에서 열렸다. 12시 20분 새로남교회 강단에 마련된 좌담회 석상에서 1명의 사회자(조성민)와 5명(고동훈, 김경원, 김찬곤, 이건영, 이재윤)의 패널 가운데 옥한흠 목사를 바로 이은 교갱협 2대 회장(2007. 8-2013. 8) 김경원 목사(서현교회 원로 2대 교갱협 대표회장 2007. 8-2013. 8)가 좌담회에서 발언하고 있었다. 주제는 ‘교갱협 25년 회고와 전망’이었다. “... 아까 교갱 있냐 없냐 말한 분이 있는데 지금 없어져도 아무도 아쉬워하는 사람 없어요. 그렇게까지 존재감이 없어져 가고 있지 않느냐 하는 위기를 저는 느끼고 있어요. 고동훈 목사가 교갱협에 대해서 얘기하면서 목회적, 목양적 견지에서 젊은이를 끌어안고 뭘 해야 되겠다, 교단 정치는 어떻게 해야 되겠다 했는데 내가 지금 말하고 싶은 이야기예요. 지금 현재도 해야 돼요. 그러나 안 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문제가 큰 겁니다. 절대적으로 변함이 없어야 할 교갱의 정신이 있습니다. 목회자 자기 갱신 교단을 세우는 갱신 이것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가져야 될 거예요. 그리고 가변적인 정신이 있어야 되요. 그것이 뭐냐, 다음 세대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 시대적인 상황 속에서 목회적인 상황 속에서 키워야 되요. 그리고 세워야 되요. 그리고 목회자 갱신을 계속합시다.(톤을 높이며) 그런 논리 아닙니까 이거. 예를 들어서 소리가 좋았다. 왜 지금은 소리 안 질러요? 왜 성명서 발표 안 해요? 미안합니다만 안 하는 건 지금 당신들 책임이야. 해야 될 건데 안 하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어요? 그렇잖아요. 교단의 큰 비리라든지 차별금지법이다 동성애다 총신 문제 많다 말입니다. 소리 질러요. 왜 안 지르느냐 이거요. 우리 스스로 지금 비판하면서 우리 존재감이 뭐냐? 소리 안 지르는데 무슨 존재감이 있느냐? 지금 그렇습니다.(사회자 한숨 쉰다) 교단의 문제도 그래요. 지금 젊은 목회자들이 비판하듯이 교갱을 정치적인 발판을 위해 도구로 삼으려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게 문제예요. 절대로 자기 정치적인 교단 안의 입지를 구축하기 위해서 교갱협을 도구나 발판으로 삼아 이용하려는 사람이 있어요. 그건 안 되는 겁니다. 그렇잖아요. 이게 옥한흠 목사님이 함께 시작했던 정신입니다. 들어가려 하지도 않았어요. 그런데 지금 그걸 이용해서 들어가려고 해요. 그래서 목회자들이 전부 실망하는 겁니다.(톤이 높아지며) 이런 건 막아야 돼요. 막았으면 좋겠습니다가 아니라 현재 있는 사람들이 막아야 됩니다. 안 막으니까 내가 답답하다는 겁니다. 옛날 이야기하면 젊은 사람들 싫어하겠지만 우리 교갱 임원들 수련회 하려고 일본까지 갔어요. 3박 4일. 제주도도 갔어요. 전부 비행기 타고. 일본 갈 때는 배 타고 왕복했지만. 설악산도 갔어요. 그런 가운데 외침이 나올 수 있었어요.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가 아니예요.(톤을 높이며) 하라는 거예요. 왜 안 합니까? 내 말은... (사회자 박수를 유도한다. 일동 박수) 존재감을 살려야 돼요. 25년 전을 다시 한번 살려보자. 어떻게 살리느냐... 살려 가지고 좀 제대로 해보자. 그런 다짐으로 하는 것이 25주년의 의미가 아니겠는가. 전도사님들 젊은 목회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교단에 두려운 존재도 되고 우리 자신의 목양적인 어떤 사명을 하고 그것은 구호가 아니라 실질적인 교갱을 통해 이루어가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사회자가 말을 받는다. “제가 볼 때는 목사님께서 원로를 떼시고 다시금 현역으로 들어오셔야 될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박수합시다. (일동 박수) (사회자 패널들을 향해) 왜 안 합니까? (김경원 목사 허허 웃는다) 하시란 말이예요. 이제 우리 김찬곤 목사님이 답변하셔야 되는데 엄청 부담이 될 것 같습니다. 바로 옆에서 보고 ‘왜 안 하느냐?’ 말씀하시기 때문에 잘 말씀해 주시기를 부탁합니다.” 김찬곤 목사(안양석수교회 5대 교갱협 대표회장 2019. 8-)가 말을 이었다. “그래서 부담입니다. (사회자 너털웃음. ‘우하하하.’) 아. 뭐. 맞습니다. 해야죠. 해야 되고 저도 이제 해야 된다 라는 당위성을 알아야 해요. 어떻게 할 것인가는 우리가 논의해야 되는 논제라고 봅니다. 아. 진짜 당부하고 같이 합의해야 할 것 중의 한 가지는 말씀드렸는지 모르지만 지금 교갱은 상임 회장이 공석입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거든요. 있을 수 없는 일이 현재 벌어져 있고 사실은 다음 차기 대표회장이 될 사람이 준비해 같이 움직여져야 하는데 이 자리가 공석이라는 자체가 그 한 가지입니다. 이것은 누구도 뭐 다른 어떤 자리들은 돈을 내고라도 나갈 수 있는 자리인데 여기는 누구도 주지도 않지만... (좌중 웃음) 나오려고 하지도 않고 하려고 하는 사람도 없다는 것... 우리 중 몇 분이라도 내가 하겠다고 해서 시켜주지도 않겠습니다만 (일부 웃음) 그래도 그런 부분에 관한 관심과 헌신을 같이 해야 되지 않겠나. 그래야지 연결 고리를 계속 내려갈 수 있지 않겠나. 사실 뭐 교갱협 대표나 임원은 보기에 굉장히 근사하지만 굉장히 힘든 자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미 있는 자리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들 중에서 오늘 총회 안 할 거 아닙니다만은 일부분 다루어져서 좀 정리가 되어지고 새로운 사람들이 세워지는 부분이 위임이 준비되어지는 과정들이 꼭 필요하고 다음 분들도 같이 혹시라도 좀 더 깊이 일하고 싶은 분이 있으면 노크를 해주십시오. 우리 그런 적 한 번도 없었지만 노크를 하면 그래도 좀 대화를 하면서 뭔가를 할 수 있지 않겠나... 아니면 대표부 쪽에서 요청을 하고 이야기를 하면 거의 대다수의 사람들이 사양을 합니다. 사양을 못하는 마음 약한 사람들만 지금 이 자리를 지키는 겁니다. 그런 부분들이 없잖아 있기 때문에 관심을 더 적극적으로 하는 우리... 김경원 목사님의 그 고언은 우리가 진짜 가슴 속 깊이 되새기면서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못해서 우리가 반성해야 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현실 속에서 우리 동역자들에게 좀 더 적극적으로 협의회에 대한 관심과 우리 내부 안에서도 좀 쓴소리가 나와져서 임원들이 좀 단단해지는 부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 누구든지 조금 더 관심을 깊이 있게 가져줬으면 합니다. 교갱협이 진짜 기준이 되고 정신이 되고 진짜 심장이 되어지는 원리가 우리 후배들에게 계속 흘러갈 수 있도록 이 자리에 계신 분이라도 힘을 모으면... 옥한흠 목사님이 10주년에 사데 교회 설교를 하시면서 얼마나 비판을 했는지 몰라요. ‘우리가 그 사데 교회 지도자들이 아니냐.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데 교회 선한 사람들이 있다’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몇 사람만이라도 힘을 모으면 이것은 절대로 문제가 되지 않고 이겨낼 수 있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옥한흠 목사님이 돌아가신 지 10주년이 됐습니다. 올해가 10주년인데 그 정신이 이어져가고 있으니까 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 더 되새겨 봅시다. 이 자리에 오신 분들은 그 심장을 가지고 오신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힘을 모아간다면 귀한 목사님의 고언이 우리 현실 속에서 열매로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사회자가 말을 이었다. “오늘 마지막 찬양은 25주년 됐기 때문에 ‘생일 축하합니다’ 이 노래보다는 ‘원할 때 바라고 기도합니다’ 찬양이 있습니다. 후렴에 보시면 ‘하나님의 성품이 성령님의 능력이’ 다시 한번 우리 교갱협에 불일 듯 일어나기를 원하는 그런 마음을 담았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도 다 일어나시죠. 일어나셔서 마지막 이 찬양을 하고 난 다음에 케이크를 절단하겠습니다.” 피아노 반주에 합창이 울렸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나의 힘을 의지할 수 없으니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 것은 주께서 참 소망이 되심이라 하나님의 꿈이 나의 비젼이 되고 예수님의 성품이 나의 인격이 되고 성령님의 권능이 나의 능력이 되길 원하고 바라고 기도합니다... 이어서 이사장 이건영 목사(인천제2교회 교갱협 3대 대표회장 2013. 8-2017. 8)의 사회로 교갱협 25주년에 걸맞는 정기총회가 진행돼 안건 및 결의사항을 처리했다. 이건영 목사는 우리 총회를 힐렐 같은 믿음과 지혜로 이끌어 가고 있는 지도자이다. 교갱협의 정신과 정관 목적에 딱 맞는 인물이고 옥한흠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의미 은혜의 걸음 은보(恩步)를 이어받은 어거스틴 같은 목회자이다. 이건영 목사 이전이나 이후 위대한 설교자나 목회자는 더러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말씀을 깨우치고 실천하는 힐렐 같은 지혜자 마음 지닌 이건영 목사 같은 지도자는 드물 것이기 때문이다. 교갱협 25주년에 그가 있어 은혜의 걸음 은보(恩步) 옥한흠 목사가 제창한 교갱협 정신이 계승되고 현현된 느낌이다. 20년 전 2003년 12월 15일 옥한흠 목사는 에스더가 이방땅에서 환난을 당할 유대인을 살린 것처럼 교단 기관지 기독신문을 살린 박에스더 국장과의 대담에서 사랑의교회 개척 25주년 회고와 은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박에스더 - 옥한흠 목사님 반갑습니다. 사랑의 교회를 개척하고 25년 동안 사역했던 사랑의교회에서 은퇴하시면서 느끼는 감회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옥한흠 목사 - 사실 지금 굉장히 행복합니다. 은혜로 달려온 25년이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일하던 동역자 가운데는 여러가지 이유로 도중 하차한 분들도 참 많은데, 이렇게 은퇴를 생각할 나이까지 목회를 할 수 있도록 지켜주신 하나님이 너무 감사합니다. 또한 사랑의교회 성도들을 보며 더욱 행복합니다. 지금 사랑의교회는 정점에 와있습니다. 오정현 목사를 후임자로 정하고 성도들의 표정이 달라졌음을 느낍니다. 더욱 활기차졌고 찬양하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몇 달 사이에 교회 평균 성장률에 비해 3000명 이상 성장하는 것을 보며 제가 은퇴하고 젊은 목회자에게 자리를 내 준 것이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박에스더 - 25년전 사랑의교회를 시작할 당시 목사님의 교회개척의 변을 지금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옥목사 - 사실 당시에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여러 선교단체들 다시 말해서 파라 처치(para-church)에 기성 교회 청년들이 흡수되어 청년부가 교회마다 지리멸렬하고 있었습니다. 교회 청년지도가 위기였고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그때 왜 청년들이 교회를 빠져나가 파라 처치로 흡수되는지 배경과 원인을 분석하고 사람 키우는 일이 중요하다고 보고 제자훈련에 착안했습니다. 젊은이들 가슴에 복음의 열정 비전을 심어주는 일이 필요하다고 본 겁니다. 미국 유학 후 돌아와 바로 제자훈련 프로그램으로 사람 키우는 일-복음의 열정을 심어주고 비전을 품게 하는 이 일이 제 목회의 본질이 된거지요. 사람을 키워 예수 제자 되어 열심히 일하도록, 열린 리더십을 갖고 평신도와 함께 일하는 풍토를 만든 겁니다. 박에스더 - 목사님께서 4반세기 동안 제자훈련과 사랑의교회 목회, 그리고 한국교회갱신운동과 한목협을 통한 연합운동의 물꼬를 튼 일들을 짚어볼 수 있습니다. 사랑의교회 은퇴라는 시점에서 지금까지 목사님이 일생을 걸고 해오신 이런 사역들이 영향을 받지 않을까요. 옥 목사 - 사랑의교회 목회는 하나님께서 제자훈련에 대한 비전과 신념을 주셨고 지역교회 하나를 맡아서 그 비전을 실천하는 평범한 목회였습니다. 이후 자의 반 타의 반 교회갱신과 교단 연합운동까지 왔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지금 물러가는 것이 70이 되어 은퇴하는 것보다 훨씬 좋다고 생각합니다. 아직은 힘이 있고 제가 사역할 마당이 있습니다. 사랑의교회 담임은 은퇴하지만 제자훈련 사역에 더욱 매진할 것이고 교갱협과 한목협 사역도 계속 이어나갈 것입니다. 이 말을 한 7년 뒤 2010년 8월 8일 새벽부터 폐렴으로 인한 고열과 호흡곤란 증세로 서울대병원 중환자실로 옮겨져 집중치료를 받았다. 그러나 2006년 폐암 진단을 받고 투병해온 옥 목사는 2010년 9월 2일 아침 8시 43분 사랑의 주님 품에 안겼다. 옥한흠 목사는 사랑의교회와 교회갱신협의회(초대 대표회장 1996. 3-2007. 8) 설립자이다. 그의 호는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의미로 은혜의 걸음 은보(恩步)이다. 코로나19와 태풍 마이삭이 제주와 원산 시내를 강으로 만든 맹위를 떨친 2020년 9월 2일이 옥한흠 목사의 10주기였다. 그는 성균관대학교 문리대학 영문학과와 1971년 2월 총신대 신학대학원(총신연구원 64회)을 졸업했다. 총신 신대원 재학시절 서울 은평교회에 전도사로 부임한 그는 100명이었던 주일학교를 500명까지 성장시켰다. 1970년 4월 김희보 목사의 요청으로 서울 회현동 성도교회 사역자로 부임하고 총신 학장으로 부임한 김희보 목사 뒤를 이은 김성환 목사의 성도교회에서 그는 그의 인생의 분수령이 된 대학부를 맡았다. 그는 성도교회에서 부목사로 대학생을 지도하던 중 제자훈련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는 교회에서 젊은이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데 비해 대학생 선교단체들엔 젊은이들이 모이는 현상을 탐구하던 중 그 비결이 제자훈련에 있음을 깨닫고 그는 대학생들이 기성 교회에서 빠져나가 선교단체로 모이는 이유에 대해 궁금해했다. 그러다 선교단체에는 있지만 기성 교회에는 없는 세 가지를 깨닫게 된다. 그것은 바로 복음, 훈련, 비전이었다. 1972년 35세에 수도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은 그는 대학생 12명과 함께 성도교회에서 ‘복음과 비전’을 갖게 하는 제자훈련을 시작해 1975년 미국 유학을 떠나기까지 당시로는 중형 교회의 신자 수에 버금가는 200여 명의 부흥을 달성했다. 1972년 총신대 재학 시절의 나도 성도교회 중등부 교사로 봉사할 때 옥한흠 전도사의 대학부 집회에 간혹 참석해 설교와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 스타일을 경험하곤 했다. 옥한흠 목사는 1975년 유학을 떠나 1977년 5월 칼빈신학교에서 신학석사 학위를 받고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로 자리를 옮겨 목회학 박사과정을 밟았다. 그리고 필라델피아 웨스트민스터 구내 서점에서 독일 출신 가톨릭 사제 신학자 한스 큉(Hans Küng, 1928년 3월 19일 ~ 2021년 4월 6일)은 스위스의 천주교회 사제이자 저명한 기독교 신학자의 ‘교회란 무엇인가(DIe Kirche)’를 발견했다. 그는 천주교 내부에서 '기존의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과연 무오류인가?(Infallible?)"라는 책을 내서 교황 무오류 교리를 비판하는 등 교권과 계속 마찰을 빚었다. 결국 1979년 12월 15일 교황청의 신앙교리성에서 공표문을 발표하여 큉은 공식적으로 천주교 신학을 가르칠 수 없게 되었다. 옥 목사는 그를 통해 평신도를 왜 제자로 키우고 깨워야 하는지에 대한 확고한 신학적 답을 얻었다고 한다. 한스 큉은 교회의 근원을 예수가 전한 하나님의 나라로 보고 있다. 즉 교회의 근원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며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신앙공동체가 교회라는 것이다. ‘교회란 무엇인가’는 총 11장으로 되어있으며 이 책은 원래 한스 큉의 ‘교회(Die Kirche)’를 짧고 이해하기 쉽게 축약하였다. 한스 큉은 이 책에서 교회의 본질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교회의 모든 역사적 양상에는 이 비본질이 마치 그림자처럼 본질을 따라다닌다. 교회의 참 본질은 비본질 안에서 나타난다. 우리는 교회의 어두운 비본질을 처음부터 고려하고 들어가야 한다. 교회의 악한 비본질을 통하지 않고서는 교회의 선한 본질을 분별할 수도 없다.” 가톨릭 내 신학적 반정통 교리적 진보파나 에큐메니컬 계열 개신교에서 관심을 보이는 신학자 한스 큉(Hans Küng, 1928년 3월 19일 ~ 2021년 4월 6일)은 교회 안에 성도가 의인이자 죄인이기에, 교회의 역사는 곧 정의의 역사이자, 죄의 역사라고 말한다. 그렇기에 교회 내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 성도들은 너무 속상할 필요가 없다. 그 비본질적인 문제를 통해 교회의 참된 본질이 밝히 드러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옥한흠 목사는 기성 교회로 가고 싶은 유혹을 끊기 위해 1978년 6월 귀국하자마자 서둘러 그해 7월 23일 주일 오후 3시 강남 서초동 유스호스텔 앞 3층 짜리 건물 2층에서 강남은평교회 창립 예배를 드렸다. 1981년 9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 4:8)라는 말씀 안에 내포된 십자가 의미를 좋아했던 그는 ‘사랑’이란 단어에 ‘의’라는 소유격을 붙여 ‘강남은평교회’를 ‘사랑의교회’로 이름을 바꾸었다. 미국에서 집중적으로 공부해 1986년 사랑의교회에서 시작한 신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아가는 신앙생활을 하도록 이끄는 첫 제자 반은 김영순 사모 혼자만 남고 실패로 끝났다. 부유하고 신앙연수만 오래된 이들에게 원색적인 말씀으로 도전하니 훈련생들은 얼굴이 빨개지며 쩔쩔매기 일쑤였다고 한다. 그러나 다시 시작한 여자 제자 반은 영적으로 큰 변화를 맛보았다. 옥 목사는 교회 밖의 모든 모임이나 집회 요청을 거절하고 제자훈련에 완전히 집중했다. 여자 제자 반이 성공하자 1979년 남자 제자 반을 처음으로 시작했다. 옥 목사의 설교와 제자훈련을 통해 배출된 순장들의 전도로 교인이 500여 명으로 증가하자 교회건축을 결의하고, 1985년 1월, 성전 입당예배를 드렸다. 그는 일주일에 제자반, 사역반 3개, 순장반 2회, 교역자 훈련, 주일설교 3회, 또 1년 3차례 돌아오는 CAL세미나 인도에 자신의 모든 진액을 쏟았다. 급기야 그는 1989년에 탈진하여 개척 12년 만에 하와이에서 1년간 안식년을 가져야 했다. 그는 1주일의 숙식훈련에 이어 목사 제자 훈련과 평신도 사역 훈련을 1년씩 하는 이 훈련을 통해 성장한 사랑의교회 교세를 알 수 있는 대담을 기독신문과 했다. “세례교인 수를 한 명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집계했습니다. 3만500여 명 재적 교인 중, 세례교인은 1만5247명이라 그대로 냅니다. 총회 본부와 총회 신학교 그리고 여러 산하 기구들이 21세기형으로 체질개선 하는데 전향 적으로 투자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총회 재정 운용의 합리성과 투명성이 확보돼야 합니다. 정책 수립과 집행에 대해 신뢰할 수 있는 체질개선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성경은 말씀한다.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그들과 결산할새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마 25:19-21 2025-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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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김종준 목사 축복 비결
1986년 그 당시 김종준 전도사 어린이 교육 선교 재원 위해 자기 피 팔아 그 경비 조달 2016년 20,000여명 등록 교인 매주일 11,000여명 출석 교회로 성장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총회장이 있다. 어디로 가야 할지는 아는데 어떻게 가야 하는지를 모르는 총회장도 있다.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다 아는데도 일을 시작할 동력(動力)을 만들지 못하는 총회장도 있다. 헤매는 목사 총회장은 크게 봐 이 3가지 분류법으로 나눌 수 있다. 이 분류법을 넘어선 총회장이 있다. 그는 제104회 정금 총회장 김종준 목사! 2000년 전 화산재에 묻혔던 폼페이의 유적들은 발굴 200년이 지나도록 현대인들을 매료시킨다. 이 비극의 고도(古都)에 가면 폼페이 시민들의 절망과 함께 그들의 일상을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일 게다. 잿빛 화산재 속에서 정지된 시간을 보낸 유적들은 당시 로마인들이 어떻게 먹고 마시며 사랑하고 슬퍼했는지 고스란히 보여 준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룬 업적을 기념하는 성공이란 한 분야에 삼십 년쯤 종사한 후에 찾아오는 것일 것이다. 그러니까 성공이란 일류대학에 입학했다거나 사법고시에 합격했다거나 땅값이 올라 큰 부자가 되었다는 따위가 아니라 김종준 목사같이 한 분야에 삼십 년쯤 종사한 후에 온다는 얘기일 것이다. 반짝 빛나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 은은하고 끈기 있고 한결같은 것 악천후도 견뎌낸 든든한 믿음 같은 것일 것이다. 죄를 벗어나 세상을 이기고 축복받는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104회 정금 총회장 김종준 목사는 제시했다. 그것은 주일성수, 십일조, 전도, 세 가지 의무를 실행하는 것이다. 전두환 시대든 문재인 시대든 윤석열의 개혁 시대든 철부지 살인자 김정은 모험이든 그것을 이기는 해결책은 하나님 명하신 주일성수, 십일조, 전도를 성실히 지켜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서 바로 살면 축복의 삶을 누리게 된다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이에게 삼십 년 복음을 전한 그 기념으로 한 교회를 개척해 삼십 년 목회한 그 기념으로 그 교회에서 온 몸으로 설교하고 기도한 삼십 년 그 기념으로 빛나는 면류관 하나씩 또 마련되는 것 아니겠는가. 그래서 오랜 세월 말없이 교회를 위해 봉사한 성도들에게도 더불어 꽃은 한 송이 또 곱게 피어나는 것 아니겠는가. 2016년 6월 25일 오전 11시 서울 상계동 꽃동산교회(김종준 목사) 본당에서 ‘창립30주년 및 임직 감사예배’를 드렸다. 본당 3개 층은 성도들과 국민의 당 대표 안철수 의원과 노원구 구청장 김성환 등의 하객들로 빈자리 하나 없이 꽉 찼다. 1부 예배에서 제100회 총회 총회장 박무용 목사는 사무엘상 19:18-24 본문에 “이런 교회가 되게 하소서!”라는 제목으로 교회의 본질에 관한 감동적인 설교를 전했다. 꽃동산교회는 1986년 6월 15일 서울 중구 신당동 402-13번지의 건물 64평을 임대해 김종준 전도사가 개척을 했다. 개척 당시 당회장이었던 서기행 목사(제89회 총회장)가 이날 3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전달한 격려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올해 창립 30년인데 제 나이 50살에 꽃동산교회 당회장이었습니다. (교인들이 감탄의 소리를 냈다.) 김종준 그 당시 전도사께서 어린이 교육 선교에 재원이 없어 자기 피를 팔아서 그 경비를 조달했다는 말을 듣고 특별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렇게 큰 교회가 되었습니다...” 이날 축사를 전한 제83회 총회 총회장 길자연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의 방법은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이제 서기행 목사는 10년 전에 은퇴하셨다고 하는데 저는 3년도 안 됐습니다. 목회를 하면서 가장 힘든 일은 사람과의 접촉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 말씀과 기도에 전무하면 성격도 변하고 생활도 변합니다. 양심적인 사람이 지도자가 되면 사회와 교회가 양심적이 됩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람이 그 자리에 서면 교회도 흔들리고 가정도 흔들리고 사회도 흔들립니다. 대한민국 목회자 가운데 가장 올바른 지표를 정하신 분이 김종준 목사입니다. 김종준 목사는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오게 생기셨습니다. (교인들 웃음) 왜 그러나 했더니 피 뽑아서. (교인들 손뼉을 치며 파안대소) 저는 오늘 축사 초청을 받고 놀랬습니다. 나를 어떻게 알고 이 자리에 초청을 했는가. 한 가지 중요한 것을 생각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객관적으로 이 교회 담임 김종준 목사를 볼 때 그는 흠이 없고 목회에 전념하는 일사각오의 목회자이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임직자 여러분과 교회 성도들이 이 목사만 따라가면 잘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지도자 목사에게 순종하고 잘 따라가면서 꽃동산교회 안에서만 사시기를 바랍니다. 밖으로 나가면 위험합니다. (교인들 웃음과 박수) 이 말로 축사를 갈음합니다.” 꽃동산교회는 30년 역사 가운데 2004년 12월 16일 김종준 목사는 학교법인 천호학원(위례정보산업고등학교, 서울외국어고등학교) 이사장에 취임했다. 그리고 2016년 6월 15일 현재 대지 700평에 지하 3층, 지상 11층, 연건평 3,300평의 성전에서 교역자 87명, 장로 47명, 안수집사 350명, 권사 752명, 서리집사 3,854명의 직분자들이 있으며, 20,000여명의 등록 교인 가운데 매주일 11,000여명이 출석하여 예배를 드리는 교회로 성장하여 어린이 선교를 통한 세계 복음화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날 임직식을 통해 꽃동산교회는 7명의 장로와 46명의 안수집사, 99명의 권사를 직분자로 세웠고 이외에 10명의 성도를 명예권사로 추대했다. 이날 장로로 장립된 김민규 장로는 임직자 대표로 인사를 하며 겸손하게 성도들과 교회를 섬길 것을 다짐했다. “직분자는 대접받기 위한 자리가 아니라 섬기는 자리에 있는 사람인 것을 알기에 가장 낮은 위치에서 섬기고 교회를 돌보며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려 합니다. 힘들지라도 여호수아와 갈렙 같은 믿음으로 기도하며 달려가겠습니다.” 이날 김종준 목사는 예배를 마치고 나눈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조그만 단칸방 같은 데서 여섯 명이 시작한 꽃동산교회가 오늘날 이렇게 크게 번창해 시대적인 사명을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저희 교회가 그동안 어린이 선교를 통해서 세계를 복음화하려는 소명을 가지고 어린이 교회로 시작을 했습니다. 어린이 전도를 열심히 하다 보니까 하나님께서 더불어 많은 장년도 보내 주셔서 큰 교회가 되었습니다. 이제 30살 먹은 청년의 교회가 되었습니다. 이제부터 더 힘 있게 남은 사역을 감당하려고 합니다. 이제는 우리 교회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곳 저곳에 꽃동산교회와 같은 비전과 신앙을 가진 많은 교회를 세워서 이 땅에 어린이선교를 실현하고자 합니다. 이미 지금도 아홉 군데 지역에 꽃동산교회 지교회를 세워 사역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지역에 꽃동산교회를 세워 죽어가는 많은 어린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데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영문학에 있어 낭만주의를 개창하는데 기여한 영국의 중요한 낭만주의 시인 워즈워드(William Wordsworth, 1770년 4월 7일 ~ 1850년 4월 23일) 그의 삶은 검소했지만 생각은 고상했다. 걷는 것은 영적인 행위라는 생각으로 구불거리는 언덕을 걸으며 풀, 꽃, 새, 냇물, 구름, 나비, 하늘과 숲을 관찰했다. 그리곤 호숫가에서 무지개를 볼 때마다 자신의 글을 하나씩 매듭을 지어 나갔다. 특히 해 질 무렵의 산책을 즐겼는데, 이는 곧 시(詩)와 연결된다고 생각했다. 시를 “평온함 속에서 회상되는 정서”라고 믿었고, 기교적인 단어를 사용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다분히 일상적인 시어(詩語)를 선택해서 사용하는 걸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렇게 평생 30만 킬로의 거리를 산책하며 지은 시 ‘나비에게’, ‘데이지에게’, 그리고 워즈워드자신의 인생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드러낸 자전적인 시 ‘서곡’(The Prelude or, Growth of a Poet's Mind; An Autobiographical Poem)은 영국 문학의 한 획을 그은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특유의 고요함 속 쓸쓸함을 더해주는 늦가을 호숫가 정취는 아름답다. 그는 어린이를 사랑한 김종준 목사처럼 '무지개'를 통해 어린이를 찬양한다. 하늘의 무지개를 볼 때마다 내 가슴은 한없이 뜁니다. 내 어릴 때 그러했고 어른이 된 지금도 그러한데, 나이 더 들어 늙어서도 그러하리라 믿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차라리 죽기를 원합니다.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입니다(The Child is a father of the Man). 따라서 내 삶이 자연의 경건함으로 채워져 매일매일 이어져나가길 바랍니다. 성경은 말씀한다. 예수께서 그 어린 아이들을 불러 가까이 하시고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눅 18:16 2024--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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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참 이스라엘 사람 윤남중 목사 기념 제9회 신학 세미나
한강 작가가 2024년 10월 10일에 노벨문학상을 받기 며칠 전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저는 언제나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그리고 산다는 게 대체 무엇인지에 대해 자꾸 생각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 고민을 매번 다른 방식의 소설들로 다루고 싶어 했습니다.” 2년 전 2022년 10월 20일 총회 양심의 버팀목 윤희원 목사가 대를 이은 전주효성교회당에서 열린 제7회 신학 세미나에서 총회를 조용히 섬기는 박재신 목사(양정교회. 제103회 회록서기)가 이런 축사를 했다. "우리 교단에 총회장님들이 많으신데 기념사업회를 하는 총회장은 없으신 것 같아요. 그러나 우리 윤남중 목사님이 총회장은 안 하셨어도 기념사업회가 있는 것은 우리 전북지역의 많은 목사에게 정신적 총회장을 하신 겁니다." 전북노회 윤남중(1920년~2015년) 공로목사는 생전에 "바른 목회를 하라. 바른 목사가 되라"고 후배 목사들에게 훈계하셨다. 그를 기리는 기념사업위원회가 2024년 11월 12일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5시까지 호남지역 개신교의 모태인 전주서문교회당(담임 김석호 목사)에서 제9회 신학 세미나를 개최했다. 개회 예배는 기념사업위원회 위원장 이영익 목사의 인도로 회계 허일 장로 기도, 감사 신경식 목사 요 19:25-27 성경 봉독, 강동현 목사 ‘당신의 아들 네 어머니’란 제목으로 설교, 전북노회장 이민규 목사 환영사, 전북신학교 이사장 서현수 목사 축사, 전북신학교 명예이사장 유웅상 목사 축사, 참 이스라엘 사람 윤남중 목사 기념사업회 장학금 수여식 후 총회의 거울 윤희원 목사가 감사 인사를 전했다. "이렇게 다시 아홉 번째 기념세미나에 참석해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벌써 시간이 10년 지났네요. 세월은 빛바래기도 하지만 빛나게 하기도 하는 것이 세월인 것을 알게 됩니다. 이 기념사업회의 많은 신학 세미나가 세월이 지나가면서 빛바랜 세미나가 아니라 빛나는 세미나가 될 수 있도록 여러분이 더 많이 기도해주시고 후원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늘 특별히 김인철 목사님을 모시고 세미나를 하는데 저는 잘하는 것이 없어요. 그런데 제가 잘하고 있는 것이 하나 있어요. 여러 책을 많이 본다는 겁니다. 김인철 목사님이 총신연구원 시절 저는 총신 대학부 학생이었습니다. 그리고 기독교문학회라는 동아리를 통해 같이 만나고 지금까지 교제를 나누고 있습니다. 김인철 목사님이 책을 많이 쓰시는 줄은 알았지만, 그 책들을 읽어보면서 생각을 했습니다. 이렇게 성경의 원어적이고 문학적이고 역사적인 것들을 동시적으로 잘 보면서 성경을 잘 해석하고 그런 지침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래서 저희 세미나에 모시게 됐습니다. 목사가 목회할 때 필요한 성경 읽기와 큐티에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는 유익한 강의가 되리라 믿습니다. 경청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전북노회장 이민규 목사의 축도로 예배를 마쳤다. 취재하러 갔다 은혜와 깨우침을 받게 된 세미나 주제는 '예레미야 애가-슬픔에서 희망을 긷는 지혜'로 김인철 목사(예수아성서연구원 대표)가 강연했다. 예레미야애가의 개요와 본문해설을 중심으로 세 차례의 강의와 질의응답이 진지하게 진행됐다. 말씀에 대한 관심과 애정에서 일어난 질문은 깊은 이해에 닿게 한다. 물음의 문을 무뚝뚝하게 닫지 않아야 될 이유다. 강사로 나선 예수아성서연구원 대표 김인철 목사는 예레미야애가에 대해 ‘뒤집어진 세상에서 부르는 노래’라고 정의하면서 운문(시)이자 지혜서로서의 성격을 유념하며 본문을 읽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실제로 본문을 읽고 체험하는 과정을 세 시간에 걸진 세 번의 강의로 머리와 마음에 쏙 박히게 진행했다. 김인철 목사는 말했다. “예레미야애가에 표현되는 참상과 이로 인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심리적 공황상태는 ‘하나님의 부재’(abscence of God)’라는 주제에서 극에 달합니다. 하나님의 부재는 정신적 기반의 붕괴를 의미하며 신학의 재정립이라는 과제를 수행하도록 뼈저린 반성을 요구합니다.” 10년째를 맞이한 이번 신학 세미나에서는 윤남중 목사의 유고 설교 세 편과 함께 장로교회의 역사와 직제(윤희원 목사·전주효성교회), 성경 묵상(QT)의 문제점과 한계 그리고 개선방안에 대한 제안(임진남 목사·한국개혁신학연구원 총무), 성경 속의 애굽과 성경 밖의 애굽 역사와 문화(최용만 목사·이서제일교회)에 대한 논문을 교재에 함께 수록해 배부했다. 그 교재에 생전에 윤남중 목사께서 요한복음 1:47-51 본문으로 '참 이스라엘 사람'에 대해 이렇게 설교하셨다. "예수님은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십니다.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예수님은 나다나엘이 가장 이스라엘 사람다운 사람이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는 '예수'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21에 보면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말씀하십니다. 메시아이신 예수를 기다리고 사는 자가 참 이스라엘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메시아 대망 신앙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요 지금으로 말하면 참 신자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신앙, 그 대망의 신앙이 없으면 참 신자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대망의 신앙을 가진 자는 정직한 자라서 간사한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새날을 주셨습니다. 우리 모두 살랑살랑 간사함으로 꼬리 치며 유혹하는 사탄으로 살지 말고 기둥 같은 정직함으로 바위 같은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며 믿음의 싸움을 정직함으로 싸우면서 삽시다." 그런 사람이 이 세상에서 알곡이고 고귀한 인류이고 영원한 빛이고 다름 아닌 목사라고...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반발한 의대생 대부분이 휴학한 가운데 본과 4학년이 내년 1월 치르는 의사 국가시험 필기시험에 304명만 접수했다고 한다. 의사의 일반적 윤리 제3조(의사의 사명과 본분)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의사는 고귀한 사람의 생명과 건강을 보전하고 증진하는 숭고한 사명의 수행을 삶의 본분으로 삼아 모든 의학 지식과 기술을 인류의 복리 증진을 위하여 사용하여야 한다. 그런데 모자라는 신규 의사 증원 정책에 대한 반발로 매년 3000명가량 배출되던 신규 의사가 의사 파업 투쟁으로 내년에는 10분의 1 수준만 배출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윤리강령 규정을 무시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도둑이 도리어 매를 든다'는 적반하장(賊反荷杖)의 표현을 우리는 이런 경우에 쓸 수도 있겠다. 어쨌든 무슨 일을 하든 인생이란 매번 흔들리면서도 나만의 중심을 찾는 과정이다. 의사와 의학도들의 본분이 아닌 이권에 집착하는 것 같은 근자의 행태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간사한 것이 없는 참 이스라엘 사람을 전하고 가르치고 실천하신 윤남중 목사의 설교가 세상이나 우리 교계에 새삼 절실해지는 시절이다. “저는 언제나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그리고 산다는 게 대체 무엇인지에 대해 자꾸 생각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라는 한강 작가의 말처럼... 성경은 말씀한다. 하늘에 올라갔다가 내려온 자가 누구인지 바람을 그 장중에 모은 자가 누구인지 물을 옷에 싼 자가 누구인지 땅의 모든 끝을 정한 자가 누구인지 그의 이름이 무엇인지 그의 아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너는 아느냐 잠 30:54 2024-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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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전주서문교회 역사관과 총회 생존 목적
호남지역 개신교의 모태인 전주에서부터 전북지역 투어는 시작된다. 호남 최초의 교회인 전주서문교회 역사관은 초창기 미국남장로교선교부의 호남선교가 어떤 모습으로 전개됐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1893년 교회 설립에 전력하다 1908년 1월 2일 43세로 소천한 전위렴(W.M. Junkin)을 기리는 예배당 앞마당의 종탑 안내문은 놓치지 말아야 할 대목이다.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서는 ‘민주주의’라는 대담한 실험이 시도된다. 왜 민주주의가 ‘대담한’ 실험이었다는 걸까? 인간은 이기적 유전자를 따르지만, 동시에 다른 이들과의 협업을 통해서만 생존이 가능한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서로 역설적인 두 가지 본능을 가진 인간에게 민주주의는 너무나도 어려운 방식이라는 말이다. 신석기시대 농사와 정착을 시작으로 다양한 시도들이 시작된다. 가장 힘센 자가 모든 결정을 독점하는 방식, 힘센 여러 명의 공동 정권, 신의 선택을 받은 자의 지배…. 결과적으로 모두 극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고대 아테네의 민주주의만은 달랐다.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 것이 아닌, 다수의 결정을 통해 공동체의 미래를 결정하자는 놀라운 방식이었다. 물론 문제도 많았다. 여성과 노예는 투표할 수 없었고 비효율적이었다. 51%의 ‘다수’가 49% ‘소수’의 의견을 무시할 수 있었다. 우유부단(優柔不斷)한 김종혁의 제109회 총회는 목회자 70세 정년 연장보다 장기적으로 반드시 필요한 불편한 선택보다는 당장 편한 선택만을 추구하는 적당주의가 판치기도 했다. 진리는 절대적이고 유일하다고 여기기 쉽지만 마치 코끼리와 같아서 수많은 다른 면을 보여준다. 우리가 어떤 부분을 만지느냐에 따라 코끼리의 형태를 이해하는 한계가 있듯이 어떤 사고방식도 진리 전체를 모두 파악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니 어쩌면 각각의 사고방식 한계를 인정하고 진리를 찾고자 한다면 복잡한 세계를 이해하기에 지금보다 조금은 더 낫지 않을까 싶다. 현대 신학은 여전히 어두운 방에서 진리를 찾아 헤매고 있고 신학자는 나름대로 구원의 의미를 성경으로 보여주는 구도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고대로부터 마치 다시 태어나듯 허물을 벗는 뱀은 치유와 지혜의 상징이었다. 마태복음에 따르면 예수께서도 제자들에게 뱀처럼 지혜로울 것을 주문하셨다. 자기를 바로 보며 반성하면 성찰이고 도취하면 허영이다. 영리한 머리를 남을 위해 쓰면 지혜가 되나 자기만을 위해 쓰면 교활해진다. 총회 전체 측면에서도 일상의 행정을 넘어 새로운 것들을 지속적으로 실행해보는 조직을 두어야만 생존의 위기를 넘을 수 있다. 이것이 자연에서 배우는 초 생존의 원리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어느새 1000일. 겨울 닥친 전선에서 벌이는 피의 소모전, 한 계절 더 돌지는 않기를... 성경은 말씀한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사람들을 삼가라 그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그들의 회당에서 채찍질하리라 마 10:16-17 2024-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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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오범열 목사 ‘경찰 수호성인’
많은 전쟁을 치른 이스라엘의 행복 지수가 높고, 출산율 또한 높은 이유는 신앙 덕분이다. 종교는 공동체를 형성하고 사람들에게 소속감을 주며 외로움 또한 치유한다. 인간의 삶에 신앙이 꼭 필요한 이유다. 가톨릭에서 기리는 ‘크리스토포로스’라는 성인이 있는데 '크리스토폴'이라 하기도 한다. 이름은 고전 그리스어 크리스토스와 포로스가 합쳐진 것으로 '그리스도를 어깨에 짊어진 사람'이라는 뜻이다. AD 251년경의 인물로 추측되고 실제 이름은 '레프로보스'였다고 한다. 그는 원래 힘센 거인이며 이교도였다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자기보다 힘센 자를 만나면 섬기기로 하고 처음에는 왕, 다음에는 악마를 찾아갔으나 실망하고, 악마도 구세주를 두려워하니 그리스도가 가장 힘이 센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도를 섬기기 위해 그가 있는 곳을 찾아다녔다. 그러다 홀로 산속에서 수행하던 한 수도자를 만났다. 그는 수도자에게서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이런 말을 들었다. “그리스도의 진정한 강함은 가난하고 약한 이들을 돕는 데 있습니다. 당신도 그렇게 사세요.” 그 말에 따라 단순한 레프로보스는 강가에서 돈이 없어 배를 타고 가지 못하는 순례자나 여행객들을 자기 어깨에 올려 태우고 건네주는 일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어린아이를 어깨에 얹고 강을 건넜다. 그러나 그는 그 아이가 점점 무거워져 도저히 강을 건널 수가 없었다. 마치 온 세상을 짊어지고 가는 것같이 무거워서 그 힘센 레프로보스마저도 평소에는 쓰지도 않던 지팡이에 의지하며 간신히 강을 건널 수 있었다. 레프로보스가 이상하게 생각하며 아이를 강 건너에 내려놓고 나서 말했다. “그것참! 그동안 많은 사람을 짊어지고 강을 건너면서 이렇게 무거운 경우는 없었는데... 너 참 무겁구나.” 그러자 그 아이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레프로보스야, 잘했다. 너는 지금 온 세상을 옮긴 것이다. 나는 바로 네가 찾던 세상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라네.” 그 말이 끝나자 물에 닿은 레프로보스의 지팡이에 푸른 잎이 돋아나고 땅에 뿌리를 내려 나무가 되는 기적이 일어났다고 한다. 그 이후 레프로보스는 그리스어로 ‘그리스도를 짊어진 사람’을 뜻하는 ‘크리스토포로스’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 이름에서 유래한 남성 영어 이름이 크리스토퍼(Christopher)라고 한다. 축일은 가톨릭의 경우 7월 25일, 동방정교회의 경우 5월 9일이며, 예수를 모시고 강을 건넜으므로 여행자들과 운전자들의 수호성인이며 짐꾼들과 육체 노동자의 수호성인이기도 하다. 이후 기독교인으로 살다 순교한 크리스토포로스는 오늘날에도 가난한 여행자들의 수호성인으로 여겨진다. 물 위를 걸으실 수 있는 예수께서 굳이 그의 어깨를 빌려 강을 건너셨으니 이보다 믿음직한 수호성인이 또 있겠는가. 바로 그런 인물이 한국 교회의 ‘그리스도를 업은 크리스토포로스’로 ‘경찰 수호성인’이 된 오범열 목사이다. 경찰은 국민의 생명 신체 및 재산의 보호와 범죄의 예방 진압 및 수사, 치안정보의 수집, 교통의 단속 기타공공의 안녕과 질서유지를 그 임무로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이런 중요한 임무를 부여받은 경찰조직은 원활한 임무 수행을 위하여 효율적인 인사제도 및 조직을 구성하여 발전되어 왔다. 경찰 마크는 1987년 6월 5일 제작된 것으로 국립경찰의 표상인 참수리와 태극을 감싸고 있는 무궁화 꽃과 잎의 조화 속에 ‘중앙’이라는 글자를 넣어 국가를 보위하고 올바른 법 집행으로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경찰조직을 상징하고 있다. 해방 후 미 군정 시기에는 경무국장(警務局長)이라 불렸고 경무부장(警務部長)으로 호칭이 바뀌었다가 정부 수립이 되면서 내무부 치안국장(治安局長)이 되었다. 그러다 1974년에 치안본부장(治安本部長)이 되었고 1991년에 경찰청이 외청(外廳)으로 독립하면서 경찰청장이 되었다. 그 조직의 수장 경찰청장은 수사기관의 특성상 검찰총장과 마찬가지로 임기는 2년으로 보장되며 중임할 수 없다. 경찰청장의 2년 임기가 2003년 도입되고 임기를 마치고 퇴임한 역대 경찰청장은 13대 이택순, 19대 강신명, 20대 이철성, 21대 민갑룡, 23대 윤희근 총 5명이다. 이어서 2024년 7월 17일, 차기 24대 경찰청장 후보자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조지호(趙志浩, 1968년 4월 30일~) 서울경찰청장을 임명 제청했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경찰청장 임명 제청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조지호 대한민국의 제24대 경찰청장 후보자가 현장 치안은 물론 기획과 인사, 정보 등 정책 총괄 기능을 갖춘 적임자라고 소개했다. 56세의 그는 뛰어난 업무 추진력과 높은 조직 장악력으로 정평이 나 있다. 강력한 리더십과 기획력을 바탕으로 정권 후반기를 안정적으로 책임질 적임자로 평가받았다는 해석이 나온다. 2024년 7월 30일, 국회에서 조지호 후보자의 청문보고서가 채택되었고 8월 10일, 윤석열 대통령으로부터 경찰청장으로 최종 임명받고 치안총감으로 승진하여 제24대 경찰청장으로 취임하였다. 제23대 경찰청장 윤희근 제24대 경창청장 조지호를 만나 10월 7일 축복 기도한 ‘경찰 수호성인’ 오범열 목사가 2024년 10월 21일 경찰의 날에 ‘경찰조직 활성화와 복음화를 위한 공로’로 대통령 훈장과 표창을 받았다. 17개 광역시 227개 시군 기독교총연합회 대표 총회장 오범열 목사의 15만 경찰 선교를 목적으로 설립된 교회와경찰중앙협의회(교경협)의 경찰행정업무 지원을 통해 국가 사회 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야곱은 바로 왕을 처음 만났을 때 축복하고 돌아서 나오면서도 축복했다. 놀라운 것은 야곱이 이집트 제국 지배자 바로에게 아무런 부탁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마디도 요구하는 것이 없었다. 오범열 목사도 그 누구에게나 축복을 하지만 부탁이나 요청을 하지 않는다. 그런 오범열 목사가 17광역시도 227개 시군구 기독교총연합회 대표 총회장으로서 전국교회와 성도에게 동성애 관련 악법 저지를 위한 2024년 10월 27 오후 2시 광화문 대회 참석 요청을 했다. 천千일의 연습을 단(鍛)이라 하고, 만萬일의 연습을 련(鍊)이라 한다. 이 단련(鍛鍊)이 있어야 능력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오범열 목사의 축복기도는 바로 그런 단련을 거친 축복을 지닌 능력의 기도일 것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활 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적개심을 가지고 그를 쏘았으나 요셉의 활은 도리어 굳세며 그의 팔은 힘이 있으니 이는 야곱의 전능자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네 아버지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깊은 샘의 복과 젖 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리로다 창 49:22-25 2024-10-25
G.SER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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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황정길 목사의 칭의론
생전에 폭넓은 학식과 뛰어난 언어 능력, 그리고 빼어난 작문 실력까지 지닌 그는 종교 서적, 역사서, 에세이 등 다양한 글들을 집필함으로써 수많은 중세 신학자들과 철학자들에게 깊은 영향을 끼쳤다. 그중 대표적으로 히브리어, 그리스어, 그리고 아람어로 쓰인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해 훗날 가톨릭 라틴 예법의 국제 표준 번역 성경으로 자리 잡게 된 불가타를 탄생시켰다. 또한 그는 성별 상관없이 신앙심을 가진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인으로서 무릇 따라야 할 기본적인 윤리를 가르쳤고, 특히 배우자를 잃은 여성들에게는 성경 공부와 수도 생활 방식을 교육했다. 이러한 업적으로 그는 서방교회에서는 교부, 동방교회에서는 존엄한 증거자라는 칭호와 함께 많은 이들로부터 큰 존경을 받고 있다. 영어 이름으로 알려진 제롬(라틴: Eusebius Sophronius Hieronymus; 347~ 420, 9월 30일)은 4세기 수도원 운동이 낳은 위대한 성직자이다. 제1차 니케아 공의회 이후의 초대교회 신학자이자 서방 교회의 4대 교부 중 한 사람으로서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한 불가타의 번역자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라틴어 이름 히에로니무스는 ‘신성한 사람’을 뜻한다. 성지를 순례하는 사람들이 어김없이 찾아가는 곳이 베들레헴이다. 그리고 아기 예수님이 태어나셨다는 예수탄생교회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곳이 있다. 그곳은 제롬이 성경을 연구하고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한 교회 지하의 서재이다. 그는 그곳을 평생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정신으로 성경을 연구한 목회자가 있다. 그는 서울반석교회의 황정길 원로목사이다. 그의 가르침이 지금의 한국교회에 더욱 필요하다는 생각에 그의 글을 다시 실어 널리 전하고자 한다. 그는 말한다. "한국교회는 그간 사도 바울의 이신칭의만 가르친 결과 삶이 없는 교인들을 양산했습니다. 믿음은 말씀의 순종을 동반한 삶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바로 이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습니다. 어거스틴과 루터로 이어지는 가르침은 법정적 칭의를 강조했습니다. 나는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이 아닌 신학의 산물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신학의 안경을 벗고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 결과 참회하는 심정으로 믿음과 순종의 삶을 전하려 합니다.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태복음 7:23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대로 살려고 몸부림을 쳐야 합니다. 구원의 확신에는 두 가지 증거가 필요합니다. 내적 증거와 외적 증거입니다. 내적 증거는 하나님이 내 구원이 되심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외적 증거는 내 옆의 사람이 이 사람은 정말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는 증언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삶으로 믿음을 나타내야 합니다. 이제 내 글이 그런 삶을 실행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진리의 말씀을 잘못 이해하여 삶(행함)이 없어도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 것으로 대다수의 성도들이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이렇게 된 것은 한국교회의 목회자들 가운데 전도를 강조하는 많은 분들이 입술의 고백 중심의 믿음에 의한 구원을 가르치는가 하면, 전도폭발이나 사영리 책자를 통해 전도를 받고 영접기도를 한 후 순간적인 입술의 고백에 의한 신앙을 통해 구원을 받은 것으로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새신자들을 위한 양육 프로그램이 있으나, 구원의 현재적, 미래적 측면이 소홀히 여겨 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의미의 전도는 진지하게 복음을 전하여 그들로 하여금 인격적으로 예수님을 만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도록 안내하고 인도하는 것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들이 인용하는 성경은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1:12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롬 10:13)란 말씀으로 누구든지 예수님을 주로 시인하고 예수님을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요 1:9ㅡ11절까지를 잘 살펴보셔야 합니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은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하고 말씀하고 있는 것을 주의하셔야 합니다. 즉 세상이 그(예수님)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은 그(예수님)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왕으로 왔으나)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않았으나 예수님을 왕(王)으로, 주(主)님으로 알아보고 그 예수님을 왕(王)으로, 주(主)로 영접하고 왕의 통치에 순종하는 백성으로 순종의 삶을 사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서 영접한다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를 왕(王)으로 주(主)로 받아드린다는 뜻이며 이를 또한 믿는다 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는다는 것은 순종한다는 것입니다. 요한 3:36절 말씀에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있느니라 이 말씀에서 믿는다는 말을 순종한다는 말로 표현한 것으로 보아 믿는다는 말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삶까지 내포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행위(순종)는 믿음과 대립되는 것이 아닌 보이지 않는 믿음을 드러내는 믿음의 결과입니다. 즉 행위로(순종으로) 자신의 믿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롬 1:5절에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케 하나니 ..... 롬 16:26절에서 모든 민족으로 믿어 순종케 하시려고 .... 라고 믿음 = 순종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상에서 살핀 대로 믿는다는 말은 단순히 입으로 고백하는 “믿습니다.” 가 아니라 자아(自我)가 주인 되어 살던 삶을 청산하고 예수님을 주(主)로 모시고 예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의(義)라하며 불순종하는 것을 불의(不義) 곧 죄(罪)라 합니다. 지금까지 아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내 뜻과 내 욕심대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의 삶을 살았던 삶을 회개하고 예수님을 주(主)로 모셔 드리고 그 뜻에 순종하며 살겠다고 고백하면서 그분의 통치 아래로 들어가서 주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언약관계에 신실한 순종의 삶은 사는 것을 믿음이라 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을 의(義)라 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반드시 행함(순종)이 동반되는 삶이지 단순한 입술의 고백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이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셨다는 지식으로 아는 입술의 고백적인 믿음만으로 구원을 얻는 것으로 생각하고 나는 구원을 얻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교리는 종교 개혁자들이 중세 타락한 가톨릭교회의 성례전 주의와 공로주의 구원론, 면죄부 판매 등 잘못된 전통을 개혁하는 개혁신학의 주제(主題)였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은 한국 교회 안에 순종하는 삶(행함)이 없이도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값싼 복음이 전파되게 하는 주범이 되고 말았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는다는 진리는 예수님과 연합의 진리와 함께 바울신학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 어느 서신에서도 순종하는 삶(행함)이 없이도 구원을 얻는다는 진리를 가르친 적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가르친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는다는 진리와 오늘날 한국교회가 믿고 있는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 진리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예수님을 주(主)라 고백하는 것은 단순히 지적 동의나 입술의 고백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예수님을 주라 고백하는 것은 예수님이 주(主)냐 로마의 황제, 가이사가 주(主)냐 하는 결단하는 문제이었습니다. 그 결단은 목숨을 건 심각한 결단이었습니다. 오늘날 모슬렘권에서 예수님을 주(主)라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 선택의 결과 공민권을 박탈당하고 공동체에서 추방을 당하고 옥에 갇히고 심지어 생명까지도 위협을 받는 순간에 선택하는 결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위협도 없고 부담도 없고 책임도 없는 지적(知的) 동의(同意) 만인 입술의 고백으로 하는 “믿습니다.” 라는 오늘의 우리의 고백과는 전혀 다른 원초(原初)적인 믿음의 고백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시 확인하거니와 믿음은 반드시 행함(순종)이 동반되는 삶이어야 합니다. 또한 신학교에서 구원론을 강의 하는 교수들 가운데 일부 교수들을 제외한 대다수의 교수들이 우리의 구원을 시간상의 순서로 칭의(稱義), 성화(聖化), 영화(榮華)로 구원의 순서(order of salvation)를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 개인이 구원을 받은 순서로 칭의(稱義) = 구원의 과거, 죄의 형벌로부터 구원. 성화(聖化) = 현재 구원, 죄의 세력으로부터 구원. 영화(榮華) =미래 구원, 죄의 오염으로부터 구원으로 보고 있습니다.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한국 장로교 신학계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친 조직신학자 (박형룡 교의신학 구원론 5권, p.279, 356)에서 “칭의(稱義)”는 신자가 구원을 받기 시작하는 시점으로 과거적 구원을 말하고 (단회적이며) “성화(聖化)”는 현재적 구원으로 구원의 지속을 뜻하며 (점진적으로 일어나며) “영화(榮華)”는 신자가 궁극적으로 도달하게 될 미래적 구원을 (미래에 일어날 일)의미 한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의 구원은 칭의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단번에 완성되고 성화는 그 이후에 점진적으로 이루어진다고 함으로써 시간상의 순서로 가르쳐왔습니다 또한 당시 한국 교회의 목회자들에게 많이 읽혀졌던 이상근 박사의 로마서 주석에서 “이 부분(롬3:21-8:39)은 바울의 구원론, 즉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대(大)진리를 설명한 곳으로 로마서의 중심부이다 ...이 부분을 대별하면 먼저 믿음으로 말미암아 순간적으로 의인(義認)의 교리를 밝히고(3:21-5:21) 의인(義認)을 받은 자가 계속적으로 힘쓸 성결(聖潔)의 생활을 강조한(6:1-8:17)후, 성도가 미래에 받은 영화에 이르고 있다.”(8:18-39)고 가르쳤고, 21세기 복음주의 조직신학자 에릭슨(M.J.Erickson)도 “칭의는 한 순간에 완성되는 순간적인 사건이지만, 반면에 성화는 완성을 위하여 전 생애를 필요로 하는 하나의 과정이다.” (복음주의 조직신학(하), p.153)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상에서 살핀 대로 칭의, 성화, 영화를 구원의 시간적 순서로 보고 칭의(稱義)는 순간적이고, 단회적이며 성화(聖化)는 점진적으로 볼 때 성화 없는, 즉 윤리적 삶이 없이도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저도 이와 같이 배웠고 죄송하게도 한 동안 이렇게 가르치고 설교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말씀을 깊이 연구하고 묵상하던 가운데 이 순서가 잘못되었으며 성경의 가르침이 아닌 신학의 산물인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참회하는 심정으로 남은 생애 이 성경 진리를 전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 잘못된 구원론으로 인하여 오늘의 한국 교회는 영원한 가치를 위한 자기 부인의 삶이 없는 기복종교로 전락하고 말았으며, 삶(행함)이 없는 구원, 윤리가 실종된 기독교로 오늘의 교회의 윤리의식의 수준은 부끄러울 정도의 수준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스텐리 존스가 지적한 대로 교회 안에 있는 자의 2/3는 회심(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 돌이킴의 삶을 사는 순종의 삶을 사는 삶)이 필요한 자들이며, 안성모씨가 지적한 대로(시사 저널, 2011년 2월23일) 오늘날의 교회는 윤리가 실종된 맛을 잃은 부패한 교회가 되어 사회의 지탄을 받는 교회가 되고 말았습니다. 속지 맙시다. 거룩함을 이루지 않고는 아무도 주님을 만나지 못할 것입니다 히12:14 그러면 과연 칭의(稱義)와 성화(聖化)가 시간적 순서이며 칭의(稱義)는 단회적(單回的)이고 순간적(瞬間的)이며 성화(聖化)는 점진적인가? 칭의(稱義)와 성화(聖化)는 분리되는 것인가?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는지를 아브라함의 예를 들어 살펴보고자 합니다. 신약 성경에서 칭의(稱義)를 말할 때 아브라함이 종종 등장하기 때문입니다(롬 3:21-4:25, 갈 3:6-14, 약 2:21-24).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믿음으로 말미암은 칭의(稱義)를 말할 때 아브라함을 등장 시키고 있습니다(롬 3:21-4:25). 바울은 롬 3:21-26절에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義)를 말하고 롬 4장에서 아브라함의 예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롬 4:3절에서 성경이 무엇이라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義)로 여겨진바 되었느니라하고 아브라함이 믿으매 하나님께 의(義)로 여겨진바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의(義)로 여겼다는 말씀은 창세기 15장6절을 인용한 말씀으로 이때 아브라함은 칭의(稱義)를 받았습니다. 창1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기를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고 말씀하시자 아브라함은 그 약속을 믿고 순종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도 자식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창 15장에 보면 하나님이 환상 중에 아브라함에게 아브람아 두려워 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고 말씀하시자 아브람이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나에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라고 말하자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밖으로 나오라 하시고 하늘의 뭇 별을 셀 수 있나 보라 하시고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고 말씀하시자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義)로 여기 셨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그 때 아브라함은 몇 살이었습니까? 아브라함이 가나안을 향해 가려고 화란을 떠날 때의 그의 나이가 75세라고 했고(창12:4)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은 때가 86세라 했으니(창16:16) 창세기 15장의 아브라함의 나이는 아마 75세와 86세의 중간 인 80세라고 가정해 보고 아브라함은 80세에 칭의(稱義)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롬 4:19-22절에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이 견고하여 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義)로 여겨졌느니라 하고 아브라함이 또 칭의(稱義)를 받는 것이 나옵니다. 이 구절은 창세기 17-18장의 내용으로 아브라함이 99세 때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행하라 하시면서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하고 내가 네 아내 사라에게 복을 주어 그가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시자 아브라함이 속으로 웃으며 백세 된 사람이 어떻게 자식을 낳을까? 사라가 90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하고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서 살기를 원하나이다. 라고 아브라함이 말하자 하나님께서 아니다 네 아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하시며 말씀을 마치시고 떠나자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자기에게 지시하신 대로 자기 집의 모든 남자에게 할례를 행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90세나 된 사라가 이삭을 낳을 것을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의(義)로 여기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은 80세에 칭의(稱義)를 받고 또 100세에 칭의(稱義)를 받으므로 두 번 칭의(稱義)를 받은 것이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칭의(稱義)를 얻는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자손을 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였는데 주시지 않다가 아브라함의 나이가 100세나 되었고 사라의 나이는 90세로 자손을 가질 수 없는, 즉 생산능력이 없는 죽은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내년 이맘때에 사라가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말씀하시자 그 약속을 믿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은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으로 죽은 태를 열어 생명을 가질 수 있게 하시는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으로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믿음을 보시고 의로 여기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롬4:23-24절에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 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우리도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시키신 능력의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부활시키신 것과 같이 예수님을 주(主)로 믿는 나도 부활시키실 것이라는 부활신앙의 확신을 가지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순종하는 믿음만이 의롭다함을 받을 수 있는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롬8:11 그러므로 부활 신앙을 소유한 믿음만이 칭의(稱義)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믿었던 그 믿음과 우리가 믿는 믿음이 유전자 상으로 같아야 아브라함의 자손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갈3:7 그런데 야고보서에 보면 또 다시 아브라함이 칭의(稱義)를 받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이에 성경에 이른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약2:21-23)하고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로 바친 내용은 창세기 22장에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모리아 산으로 데리고 가서 번제로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산으로 가서 번제로 드리려고 하자 여호와의 사자가 급히 아브라함을 부르시며 이삭에게 손을 대지 말라 하시며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 아노라 하시고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으니 천하 만민이 네 씨로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드린 행위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다고 말씀하신 것을 보아서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대한 자신의 믿음을 행함으로 나타내 보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의(義)로 여기셨습니다. 이때의 아브라함의 나이는 대략 115세로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100세에 낳았고 이삭이 번제에 쓸 나무를 지고 모리아 산으로 갔으니(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가져다가 그의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창 22:6)) 이때 이삭의 나이가 대략 15세 전후는 되었을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은 115세 때 또 칭의(稱義)를 받습니다. 종합하여 보면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창15장에서 자식이 없는 80세인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별과 같이 네 자손이 많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을 때 의롭다 여기심을 받았고, 창 17-18장에서 아브라함의 나이 100세요 사라의 나이가 90세가 되어 생산 능력이 없는 죽은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내년 이맘때 네가 아들을 낳을 것이다. 라는 말씀을 믿을 때 의롭다 여기심을 받았고, 창22장에서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라 하실 때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실 수 있다고 믿고 이삭을 제물로 드림으로 의롭다 여기심을 받았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내용으로 보면 아브라함의 생애 가운데 세 번 칭의(稱義)를 받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나이 80세,100세,115세,) 이와 같이 아브라함의 생애로 보면 칭의(稱義)는 단회적이 아니요 반복적이며 점점 더 믿음이, 즉 하나님을 신뢰하며 순종하는 삶이 깊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칭의(稱義)는 단회적(單回的)이 아닌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칭의(稱義)와 성화(聖化)는 구별된 것이 아니라 떨어질 수 없는 하나이며 시간적 순서로 볼 것이 아니라 논리적 순서로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롬 5:1절에서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라고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고 하였고, 롬6:7절에서는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하고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음으로 성화(聖化)없는 칭의(稱義)는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죄 된 생활에서 벗어나 구별된 삶(성화(聖化))을 살며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믿음)을 살 때 의롭다 하심(칭의(稱義))을 얻습니다. 그러므로 성화(聖化) 없는 칭의(稱義)는 없는 것이며 성화(聖化) 없이도 칭의(稱義) 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이론은 성경적인 이론이 아닙니다. 또한 칭의(稱義)는 종말론적입니다. 칭의(稱義)를 전문적으로 연구했던 맥그라스(A.E.McGrath)는 그의 저서 '하나님의 칭의론'(pp.45-46)에서 “바울 자료에서 칭의는 성도로서의 삶의 시작과 최종적인 완성이 모두 연관된 것이므로 과거만이 아니라 미래 또한 언급합니다(롬 2:13, 8:33; 갈 5:4-5). 마찬가지로 성화 또한 과거의 사건(고전 6:11)과 미래의 사건(살전 5:23-24)을 언급할 수 있다” 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칭의(稱義)가 과거의 어떤 한 시점만이 아니고 최종적인 종말론적인 칭의(稱義)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갈5:5절 말씀에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라고한 말씀과 같이 의의 소망을 기다리며 딤후4:6-8절 말씀에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主)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하신 말씀과 같이 주님의 부르심을 받는 그 순간까지 선한 싸움을 싸우며, 믿음을 지키며, 달려갈 길을 다 마치고 의로우신 재판장 되신 주님으로부터 최종적인 의의 선언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살전 5:23-24절 말씀에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너희를 부르신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는 말씀과 같이 우리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우리의 영혼과 육체가 거룩하고 흠 없게 보전되기를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을 믿고 오직 주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상에서 살핀 대로 칭의(稱義)는 단회적이고 즉각적인 것이 아니며 반복적이요 종말론적이며 칭의(稱義)와 성화(聖化)는 시간상의 순서가 아니라 논리적인 순서이며, 칭의(稱義)와 성화(聖化)는 분리된 것이 아닌 하나로 구원의 양면성을 말하고 있으며, 평생 칭의(稱義), 평생 성화(聖化)를 이루어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아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까지 자라나 종말론적 칭의(稱義)를 얻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제 개혁주의 신학의 중심에 서있는 칼빈은 칭의(稱義)와 성화(聖化)를 어떻게 보았는지에 대하여 그의 [기독교 강요]와 [창세기와 로마서 주석]을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성령은 죄인된 우리들을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연합시켜 믿음을 통하여 의롭다 함(칭의(稱義))과 거룩하게 됨(성화(聖化))을 얻게 하신다.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고전1:30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라 고전 6:11 그러므로 칼빈에 의하면 칭의(稱義)와 성화(聖化)는 논리적으로는 칭의(稱義)가 성화(聖化)에 앞서지만 이 두 가지는 성령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얻어지기 때문에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구별은 되지만 분리될 수 없는 성령의 이중 사역(고전 1:30, 6:11)으로 성도들 안에서 평생토록 함께 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기독교강 Ⅲ.ⅰ.1). 그것은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지체된 성도들과의 신비한 연합을 통해서 가능케 되는 것 입니(기독교강요, Ⅲ.ⅰ. 10).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칭의의 은혜를 매일 매일 평생토록 죽는 순간까지 이루어가며 가슴 깊이 감사하며 하나님 앞에서 (Coram Deo)의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칭의(稱義)와 성화(聖化)가 다 같이 상호 구별은 되나 분리될 수 없고 동시적인 것(「기독교강요」Ⅲ.ⅹⅵ .1)과, 참된 믿음은 순종의 삶으로 증명하게 된다는 것(기독교강요, Ⅲ.ⅹⅶ .12)과 그리고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자에게는 그리스도가 그 안에 항상 살아계신다 갈 2:20는 것(기독교강요, Ⅲ.ⅱ.13)을 고려할 때, 성화(聖化)와 함께 한 칭의(稱義)는 법정적 선언적인 점에서는 단번에 되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의가 회복되는 데는 한 평생이 필요한 (기독교강요, Ⅲ.ⅲ.9)것으로 칭의(稱義)는 성격상 일평생을 필요로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칭의(稱義)의 수단인 믿음과 칭의(稱義)의 근거인 그리스도와의 연합 그리고 칭의(稱義)와 불가분하고 동시적인 성화(聖化)가 평생의 과정인 점에서 칭의(稱義)는 단순히 과거적 일회적 사건이 아닌 종말론적이라는 것입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믿음을 온전히 지켰을 때 의의 면류관이 주어진다는 바울의 말씀(딤후 4:8)에 의하면 칭의(稱義)는 사실상 종말에 되어질 것이 미리 선언된 것이라는 것입니다. 칭의의 직접적인 목표는 하나님의 의로우심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요(기독교강요, Ⅲ.ⅹⅰ ⅴ.17), 구원론적인 목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 거룩하고 영화롭게 되는 것이며(롬 8:29-30), 궁극적인 목표는 하나님의 은혜의 나라에 들어가 그의 영광을 보며 즐거워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롬 5:1,2).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稱義)교리는 칼빈에게 있어서 기독교 교리의 중심점이기에 이 교리가 왜곡되는 경우 기독교의 구원론에 치명적인 결함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칼빈은 기독교강요와 창세기 및 로마서 주석 등에서 특별하고도 섬세하게 다루었습니다. 칼빈에게 있어서 칭의(稱義)와 성화(聖化)는 둘 간(間)에 구별은 있으나 분리가 있을 수 없고 사실상 동시적인 것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칼빈에게 있어서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삶을 살면서 불신앙과 육체적인 정욕과 평생토록 싸우는 것이요, 온갖 장애물들을 인하여 평생토록 연단 받는 가운데서 죽는 순간까지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의 부르심의 상을 향하여 달리는 경주였습니다. 회개는 하나님의 자비와 용서를 평생토록 구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자 열심을 다하는 것이었습니다(기독교강요, Ⅲ.ⅲ.9). 이 믿음과 회개로 말미암는 칭의(稱義)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하여 하나님 앞에서 의인이 되고 그리스도를 마음의 중심에 모시고 죽기까지 평생토록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누리며 영원히 사는 것이며 성화(聖化)는 죄에 대하여 죽고 또한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는 훈련 속에서 그리스도를 점진적으로 닮아 죽을 때까지 거룩함을 이루어 가는 것 입니다. 요약하자면, 평생 믿음과 평생 회개를 통한 평생 칭의(稱義)와 평생 성화(聖化)를 누린다는 것입니다(나용화 박사 “믿음과 칭의에 대한 칼빈의 이해 ”). 이와 같은 칼빈의 칭의론이 오늘날 교회 안에서 잘못 가르쳐져 칭의(稱義)가 법정적 선언이요 신분의 변화로서 과거적 일회적 사건이기에 시간적으로 칭의(稱義)가 완료된 이후 성화(聖化)가 점진적으로 이루어진다고 가르쳐 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왜곡된 구원론으로 인하여 말씀에 순종하는 삶(믿음)이 없어도 믿기만(지적 동의로 입술의 고백) 하면 구원을 받는다고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잘못된 구원론으로 인하여 오늘의 한국 교회는 윤리적 삶이 실종된 기복종교로 전락(轉落)했습니다. 또한 세상에 빛이 되지 못하고 거룩한 영향력을 상실한 머리털이 깎이우고 두 눈 뽑힌 삼손이 되어 한국 사회로 부터 신뢰를 상실한 부끄러운 우리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디모데에게 부탁한 말씀처럼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하신 말씀과 같이 진리의 말씀을 바로 분별하고 우리 자신이 바른 삶을 살고 바르게 가르쳐서 거룩성을 회복하여 빛의 삶을 살아 하나님의 더렵혀진 이름을 회복하는 운동이 일어나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가르치는 복음 진리의 말씀을 우리 자신의 삶이 배반하지 않도록 살아야 하겠습니다. 가르치는 자는 가르침을 받는 자의 삶의 모델이 되어야 하고 삶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교사의 영성과 성숙의 깊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하여 하나님 앞에서 묵상하는 시간의 길이와 비례합니다. 늘 말씀의 거울 앞에서 자신을 성찰하는 교사가 되어 한 말씀이라도 순종하는 삶을 살려고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며 성화(聖化)를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까지 자라가야 하겠습니다. 2020-04-09 수정 2025-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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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영남협의회 부총회장 장봉생 목사 예배자
한번 툭 대면 그대로 터져버릴 일촉즉발(一觸卽發)의 위기감이 팽배한 요즘 지구촌과 한국 정치판이다. 영남협의회가 제7회 정기총회를 열고 박영만 목사(경동노회, 경주서부교회)를 신임 대표회장으로 선출했다. 이와 함께 영남지역 109회기 총회 임원 당선자 축하 순서를 진행했다. 정기총회는 2024년 12월 4일 대신대학교(총장 최대해 목사)에서 개최했다. 1부 예배는 직전 대표회장 김장교 목사 사회로 손원재 장로(상임회장) 기도, 총회부총회장 장봉생 목사가 '예배자' 제목을 말씀을 잔잔한 위엄으로 전했다. 로마서 11장 36절 말씀이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For from him, and through him, and to him, are all things: to whom be glory for ever. Amen. '예배자'란 제목으로 장봉생 목사가 입을 열었다. "개혁주의 신학 포럼에 설교하러 간 적이 있습니다. 신학자들이 모여 늦게까지 토론을 하는데 제 기억으로 예배 시간이 20분이었습니다. 당황하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15분 만에 끝났으니까요. 그날 포럼 주제는 ‘개혁주의 예배’였습니다. 그런데 비스듬하게 앉아서 예배를 드린다고 찬송을 부르고 기도하는데 돌아다니고 발표할 강의안을 보는 교수들을 보며 그 모습이 제대로 예배드리지 않는 자신의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50년 불교를 믿는 어느 여성이 그냥 지나가다가 주일예배에 참석했습니다. 그냥 지나가다가 어떤 힘에 이끌려 들어왔다고 하는데 뒷자리에서 계속 1시간 내내 눈 뜨고 지켜보다가 깜짝 놀랐다는 겁니다. 찬양하는 사람들 옆에 대표 기도하는 사람, 저 뒤에 설교하는 사람 뒤에 누군가 같이 있는 게 보였다고 합니다. 사람 같지 않은 사람. 아! 이 교회 뭐가 있다. 갑자기 신령기가 발동해 좀 더 지켜봐야겠다 생각했다는 겁니다. 한번 참석하고 두 번 참석하더니 그게 계기가 되서 참석하면서 이게 복음입니까, 이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까, 두려움으로 감사함으로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분이 식당을 경영하는데 얼마 전 가보니 '이제 아버지를 만나고 아버지 사랑을 받으며 몇 년을 아버지와 함께 살았으니 이제 아버지 집에 갈 때가 된 것 같아 정리를 하려고 합니다' 하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머리가 쭈뼛 서고 뒷골이 당기고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개혁주의 신앙을 대표하는 오늘 본문에 헬라어 전치사 3개 ‘에크’ 주에게서 나오고, ‘디아’ 주로 말미암고, ‘에이스’ 주에게로 돌아가리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을지어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를 아는 사람은 예배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아는 사람은 예배합니다. 성령과 동행하는 사람은 예배합니다. 복음적 삶을 마무리하는 로마서의 마지막 구절도 송영으로 끝납니다. 이 복음으로 너희를 견고하게 하실 지혜로우신 하나님에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 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간절한 음성으로) 아멘. 우리 선배님들 목사 장로님들 나이 들어가면서 영원히 예비 된 그 자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예배자로 체질을 만드시고 연습 많이 하셔서 영원한 예배의 자리에 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목사로 섬기고 장로로 섬기는 교회가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동행하시는 성령으로 인하여 감격의 예배를 드리는 교회 될 수 있도록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은퇴한 지 오랜 선배를 찾아 ㅤㅂㅚㅆ더니 말하십니다. 은퇴하니까 영력이 필요 없더라. 뭐가 필요합니까 물었습니다. 돈이 필요하지. 영성은 필요하지 않습니까, 물었습니다. 살면서 예배는 해야 되고 죽어 천당 가서도 예배는 해야 되니 영성은 필요하지. 최소한의 최소한의 영력은 차치(且置)하고 최소한의 예배는 할 수 있는 영성 관리는 우리가 해야 되겠습니다. 예배조차도 감격스럽게 드리지 못하는 그 정도 영성 가지고 목사 한다고 장로 한다고 왔다 갔다 하고 명함 내고 출판물에 이름 올리고 하는 그런 일은 없어야 되겠다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남협의회 우리 목사님 장로님들 뭐가 필요하십니까. 돈이 필요하십니까. 아니면 자리가 필요하십니까. 아니면 영성이 필요하십니까. 최소한의 예배를 드리기 위한 영성은 교회를 더 예배하기 위한 자리로 만들기 위한 영력은 얼마나 더 필요로 하십니까. 지난 토요일에 우리 총회장님이 너무 바쁘셔서 하셔야 할 자리를 부총회장인 제가 대신 섬기는 몇 번의 기회가 있었는데 그 자리에 가서 설교를 제가 했습니다. 자존심을 지킵시다. 적어도 내가 이 자리, 이 협의회에 함께한다는 그리고 내가 사람들 앞에 명함 내밀 수 있는 자부심을 가졌다고 스스로 자부한다면 최소한 자존심은 지킵시다. 우리가 대단한 성인군자는 못 돼도 하나님 앞에 예배자는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간다는 고백 가지고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리는 제대로 지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회중 아멘) 화려한 재능 있는 교인들 별로 없어도 그래도 복음을 아는 복음의 감격을 가진 하나님의 사람답게 나도, 우리 교회도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예배자를 만들어 놓고 설 수 있는 그런 우리 협의회의 일꾼들 될 수 있기를 (간절한 음성으로)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회중 아멘) 수고하시는 회장님과 수고하실 회장님, 임원님들 귀한 협의회를 통해서 영남지역협의회에 하나님의 예배자들이 불같이 일어나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우리 교단을 만들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한반도 땅을 만드는 일에 쓰임 받으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회중 아멘)" 2부에서 총회 당선인을 축하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영남지역은 이번 109회기에 총회장 김종혁 목사를 비롯해 서기 임병재 목사, 회계 이민호 장로, 기독신문 이사장 장재덕 목사, GMS 이사장 양대식 목사, 고시부 부장 김성환 목사 등 선관위원, 재판국원, 기관장으로 28명이 선출됐다. 3부 정기총회 회무에서 한 회기를 이끌어 갈 신구 임원 교체가 이뤄졌다. 대표회장에 선출된 박영만 목사는 말했다. “지난 6회기까지 잘 이어와 주신 임원들에게 감사 인사드립니다. 협의회가 창립할 때 정신 다시 한번 기억하며, 협의회 목사 장로들의 단합과 연대를 통해 영남지역 사역이 확장되는 계기를 만들고자 합니다.” 우리가 한동안 잊고 지냈던 도전과 따뜻함, 그리고 우리의 옛 모습을 다시금 일깨웠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총회를 지키고 발전시키는 메시지의 진정한 힘은 부총회장 장봉생 목사가 전한 성경 말씀에 있었다.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For from him, and through him, and to him, are all things: to whom be glory for ever. Amen. 성경은 말씀한다. 23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요 4:23-24 2024-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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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함성익 목사 노인 전도론
번개로 부러진 거목은 숲지기에게 불운이지만 좋은 목재를 찾아 나선 목수에게는 행운이다. 결혼 생활 역시 지겨움으로 보면 고통이지만 익숙함으로 보면 안락함이다. 많은 일에는 관점과 해석이 있을 뿐이다. 그것이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스토아학파의 체계적 창시자인 제논(제논 호키티에우스, 기원전 335년경 ~ 기원전 263년경)이 “배는 난파했지만 항해는 성공적이었다”고 말한 힘이었다. 보이지 않던 게 보이고 들리지 않던 게 들릴 때 우리는 세상 많은 것에 감사할 수 있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삶을 알기 위해 아침마다 죽음을 묵상한 지혜로운 중세의 성직자들처럼. 무엇을 얼마나 오래 하느냐보다 중요한 건 ‘자주’ 하느냐이다. 반복이 곧 습관이기 때문이다. 천성은 바꿀 수 없다. 하지만 습관은 바꿀 수 있다. 스토아적 사고 역시 마음의 습관이다. 좋은 습관이 결국 좋은 삶이다. 폭우가 친다고 먹구름이 꼈다고 천둥과 번개를 지목하며 나쁜 것을 제거하려 드는 하늘은 없다. 하늘은 그저 하늘일 뿐, 날씨의 좋고 나쁨은 없다. 2024년 12월 2일 총회회관에서 열린 제109회 전도부(부장 최효식 목사) 총회전도정책포럼에서 세계적 지휘자 함신익의 형 함성익 목사(전도부 서기)가 우리 교단 칼빈주의 정체성을 회복시킬 수 있는 성경적 노인 전도론에 대해 입을 열었다. "... 65세 이상 노인 연간 자살자 수가 평균 3500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기가 막힐 일입니다. 이건 인구 십만 명당 39.9명으로 OECD(Organiz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 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 17,2명보다 두 배 이상 많은 수치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한평생 수고와 고생이 끝난 인생 말년에 자살로 마감을 한다는 건 충격적이지 않습니까. 삶의 마지막에 자살을 생각한다는 건 참 슬픈 일입니다. 보건복지부 자살실태조사에서 자살을 생각해본 적 있느냐는 설문조사에 응답한 노인 가운데 그 이유가 자신의 연약함, 부족함 때문에 내가 이렇게 살아 뭐 하냐는 생각이라 합니다. 그래서 죽음으로 해결하려는 그런 의식이 강하다고 합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10조에 보면 이렇게 명시하고 있습니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노인복지법 제2조에 보면 이렇게 명시하고 있습니다. 노인은 후손의 양육과 국가 및 사회의 발전에 기여하여 온 자로서 존경받으며 건전하고 안정된 생활을 보장받는다. 법으로는 이렇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마저 누리지 못하고 노인복지법에 규정된 존경과 안정된 생활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과거 전통사회에서 노인은 그의 경험과 연륜만으로도 어르신으로 공경과 우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급격한 과학기술 발전과 정보화 사회로의 전환은 노인의 가치가 추락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렇다면 이 초고령화 시대에 교회 모습은 어떻습니까. 첫째 세대의 불균형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같은 세대 간에는 자연스럽게 한 편이 되는 동질감을 갖는 반면, 다른 세대에 대해서는 적대감을 가지게 됩니다. 작년 목회데이터 연구소 조사에서 나타난 세대 차이를 가장 크게 느낀 항목은 '의사소통 방식'이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저 같은 경우 전통적인 목회자 가정에서 자랐고 또 저 자신 전통적인 목회를 해온 사람입니다. 최근에 어떤 교회에서 목사님이 넥타이 안 매고 티셔츠 입고 남방 하나 걸치고 설교단에 서기도 합니다. 저는 보수적인 교회에서 자라고 목회해서 그런지 그런 모습이 썩 좋아보이지가 않습니다. 좀 외람된 말이지만 저는 늘 정장을 하고 예배를 드리는 게 편하고 익숙합니다. 그러나 지금 세대는 이런 게 못마땅한 겁니다. 우리 교회 장로님 한 분이 주일 대표 기도를 하는데 청바지에 자켓을 걸치고 나타나 단상에 올라가려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내려가세요, 장로님' (청중 웃음) 했습니다. 그리고 그분 시험 들더라고요. 저는 그게 이해가 안 돼요. 고인이 되신 박기품 목사님이 시무하시던 우이중앙교회가 있습니다. 제가 주일날 콤비 양복(상의와 하의가 다른 복장)을 입고 갔습니다. 목사님이 저를 보고 눈살을 찌푸리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목사가 콤비를 입고 다니다니!' 그래서 그 목사님이 생각나서 저는 지금도 설교단에서 콤비를 입지 못합니다. (청중 웃음) 저 같은 노인들 불통 때문에 3040 세대들이 교회를 떠난다는 겁니다. 교회는 점점 고령화되어 가고 젊은 세대의 이탈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중직자 은퇴에 따른 직분자가 감소하고 있습니다. 2012년도에 우리 개신교는 사실 국민 22.5%가 교인이었습니다. 1146만 명이 개신교인이었습니다. 예전에 1200만 명이라고 했죠. 그러나 코로나 이후 2022년도에는 774만 명 크리스챤이 인구 대비 19%가 채, 안된다고 하지 않습니까. 20대 30대 감소가 현저하게 나타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교세 축소와 함께 원래 중직자들의 고령화로 인해서 은퇴, 소천으로 일꾼은 점점 줄어들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들이 교회 직분자들의 고령화가 매우 빠르게 진행되고 있음을 인식하고 대처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금번 제109회 총회에서 정년 연장에 관한 안건 토론이 여럿 있었습니다. 저도 그 토론에 참여해 정년 연장 주장했다가 아주 힘들었습니다. 두 달이나 지났지만 아직도 제 자리를 찾지 못하고 휘청거리고 있습니다. (청중 웃음) 이 목회자의 정년 연장에 대해 이야기할 때 목회자 정년 연장 문제만이 아니라 앞으로 중직자들의 은퇴 문제도 함께 고민했던 겁니다. 앞으로 목사님들이 70에 은퇴하지만 앞으로 장로님들을 포함한 많은 교회 중직자들이 70에 은퇴해버리게 되면 교회가 어떻게 될 것인가. 그 또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일입니다. 그만큼 교회의 다수가 고령 수준에 진입했고 그 모든 분들이 은퇴 나이가 돼버린 탓에 교회 성도들은 있으나 교회 일꾼은 찾을 수 없는 현상이 앞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지금도 웬만한 교회는 그런 상황을 외면할 수 없습니다. 이제 교회는 이런 상황의 변화를 발 빠르게 보고 해결책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바로 오늘부터 시작해야 된다고 봅니다. 그런데 초고령화 시대에 또 한가지 교회의 모습은 무엇입니까. 교회가 고령화되니까 재정이 말라요. 돈이 없어요. 교회 일할 사람도 줄어들고 성도 나이가 많아지니까 봉사 활동에 참여하는 수도 그만큼 줄어들죠. 그러니 경제활동의 미비와 수입이 거의 없는 노년 세대로 인해 교회 재정이 문제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도 노인 세대 부양비를 적잖게 느끼는데 교회도 그 문제를 무시할 수는 없겠죠. 헌금을 재정으로 사용하는데 초고령화 시대 교회가 할 일은 무엇이겠습니까..." 함성익 목사는 초고령화 시대의 문제의 실천 가능한 성경적 해결책을 이렇게 제시했다. 첫째, 노인의 권익을 보호해야 한다. 그것을 위해 노인에 대한 성경적 이해로 세대 간의 갈등을 해소할 수 있다. 십계명의 제5계명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출 23:15-17)이다. 부모는 보이는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부모이시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보이는 하나님이신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자는 보이지 않는 부모이신 하나님을 공경할 수 없기 때문이다. 둘째, 노인의 주체적인 역할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 노인에 의한 노인을 위한 노인의 학교를 운영해야 한다. 노인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장수를 누리는 존재로 존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109년을 맞은 총회의 지혜자 함성익 목사는 모세처럼 말한다. "세상의 사람들도 100세 시대를 준비하고 있는데 교회가 100세 시대를 대비하지 않는다면 사회를 품지 못할 것입니다. 아무리 오래 살아도 유한한 인생입니다. 하지만 인생의 노년을 맞는다는 것은 행복한 축복입니다. 그리고 그 노년을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보낼 수만 있다면 내세를 소망하며 살아가는 의미 있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 할 수 없는 것을 내려놓고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할 때 마음은 날씨를 탓하지 않는 하늘의 평정심을 닮는다. 로마 제국 시대의 정치인, 사상가, 문학자이고 로마 제국의 황제인 네로의 스승으로도 유명한 세네카(Lucius Annaeus Seneca, 기원전 4년~65년 4월)는 말했다. "중요한 건 목적지가 아니다. 그곳에 도착했을 때, 당신이 어떤 사람인가다." 그처럼 중요한 건 70이니 80이니 노인이 된 것이 아니라 노인으로서 어떤 사람이 되어 있느냐가 아닐까. 성경은 말씀한다. 모세가 죽을 때 나이 백이십 세였으나 그의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모압 평지에서 모세를 위하여 애곡하는 기간이 끝나도록 모세를 위하여 삼십 일을 애곡하니라 모세가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였으므로 그에게 지혜의 영이 충만하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여호수아의 말을 순종하였더라 신 34:7-9 2024-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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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소강석 목사의 한 장 성경
정호승 시인의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인간에게는 다 빛과 그림자가 있다는 겁니다. 그늘이 없는 사람은 절대로 사랑하지 않는다고 정호승 시인은 우회적으로 비판합니다. 우리 가운데 보면 은근히 의로운 척하고 자기는 전혀 잘못이 없어요. 법에 하자가 없어요. 그런 사람을 정죄합니다. 시인은 에둘러서 이런 사람을 싫어하고 사랑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늘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다 그림자가 있고 그늘이 있죠. 그런가 하면 도정환 시인 우리와 정치적으로 입장이 다를 수 있습니다. 이분이 정치하기 전에 이런 시를 썼어요. ‘흔들리며 피는 꽃’이라는 시입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한 장으로 된 성경이 있습니다. 거기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다만 네 승낙이 없이는 내가 아무것도 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너의 선한 일이 억지같이 되지 아니하고 자의로 되게 하려 함이로라 저가 잠시 떠나게 된 것은 이를 인하여 저를 영원히 두게 함이니 이후로는 종과 같이 아니하고 종에서 뛰어나 곧 사랑받는 형제로 둘 자라 내게 특별히 그러하거든 하물며 육신과 주 안에서 상관된 네게랴 그러므로 네가 나를 동무로 알찐대 저를 영접하기를 내게 하듯 하고 저가 만일 네게 불의를 하였거나 네게 빚진 것이 있거든 이것을 내게로 배상하라 빌레몬서 1:14-18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인생의 꽃이 어디 있고 그늘이 없는 인생이 과연 어디가 있겠습니까. 오늘 성경 본문에 소개되는 오네시모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오네시모가 빌레몬 집안에 노예라는 사실 너무나 잘 알고 있죠. 그런데 이 빌레몬 집사는 오네시모를 아주 총명하게 생각해 신실하게 관리를 잘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오네시모의 삶에도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내가 부인을 얻고 자식을 낳아도 역시 내 가정 내 후손은 노예가 될 텐데. 그 바람에 흔들려 오네시모는 도망을 치고 말았습니다. 자신의 주인 돈까지 훔쳐. 어디로 도망을 갔습니까. 한 1600킬로 이상 되는 로마로 갔습니다. 여러분 그런데 세상이 왜 그렇게 좁습니까. 거기서 누구를 만났느냐. 친구의 꼬드김으로 여러분 바울 사도를 만나게 됩니다. 바울은 그때 1차 투옥 시기입니다. 당시 감옥에서 사람들을 영접하고 만날 수 있는 자유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네시모도 바로 바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무슨 얘기를 들었겠습니까. 예수님의 사랑 이야기,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 이야기를 들었을 게 아닙니까. 오네시모는 눈동자에 빛이 났습니다.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가 너무나 달콤해 ‘예수님의 제자가 되겠다’고 ‘나는 당신의 옥바라지가 되겠다’고 서원했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이상한 것은 복음을 깊이 들으면 들을수록 양심에 가책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내가 빌레몬의 노예였는데 도망을 쳐 나왔다’고 바울에게 고백합니다. 그렇게 고백을 하며 오네시모는 이제 빌레몬의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합니다. 여러분 바울도 잠시나마 입을 열지 못하고 생각했을 겁니다. ‘저렇게 훌륭한 나의 동역자, 저렇게 훌륭한 지혜자, 총명한 사람을 내가 놓치다니. 내가 모른 척하고 저 오네시모를 데리고 있어도 되는데. 그가 양심에 못 이겨 돌아간다니.’ 당시 노예가 주인 몰래 물건까지 훔쳐 도망갔다면 화인(火印)은 물론이고 4대까지 벌을 받을 겁니다. 그러니 내가 눈물로 편지를 써 보낸다고 해도 아무리 빌레몬이 내게 복음을 받고 제자훈련을 받았어도 오네시모를 용서할 수 있을까. 바울은 떨리는 손으로 편지를 썼을 겁니다. 바울은 먼저 빌레몬에게 오네시모가 어떤 사람인가를 소개합니다. 이것은 빌레몬서 1:8-10에 나와 있는 내용입니다. ‘이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아주 담대하게 네게 마땅한 일로 명할 수도 있으나 도리어 사랑으로써 간구하노라 나이가 많은 나 바울은 지금 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갇힌 자 되어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 사도 바울은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용서해달라고 간곡히 부탁합니다. 빌레몬서 1:10-12 말씀은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 그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 네게 그를 돌려보내노니 그는 내 심복이라’ 말씀합니다. 내가 낳았고 내게 없어서는 안 될 심복(心腹), 매우 요긴해서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오네시모야 말로 하나님 나라를 위해 꼭 필요한 사람이니 ‘종 이상으로 곧 사랑받는 형제로 둘 자라’ 말합니다. 그러니 그를 내게 머물러 있게 하여 내 복음을 위하여 갇힌 중에서 네 대신 나를 섬기게 하고 싶다. 네 승낙이 없이는 내가 아무것도 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의 선한 일이 억지로 되지 아니하고 자의로 되게 하려 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사실 불가능한 일입니다. 당시 통념으로 도저히 안 되는 일입니다. 빌레몬서 1:10-14 내용입니다. 이뿐입니까. 다음은 빌레몬서 1:17-21까지 똑같은 말을 계속해 오네시모를 용서할 수 없겠느냐고 재삼 빌레몬을 설득합니다. 오네시모는 이 편지를 가슴에 품고 빌레몬의 집으로 돌아갑니다. 로마에서 골로새까지는 약 1600킬로 한 달 이상을 걸어가야 할 것입니다. 오네시모는 걸어가면서 가슴속에 읽고 또 읽고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는 생각했을 것입니다. ‘내가 감히 빌레몬 집사님의 신의를 배반하다니. 그는 내게 얼마나 잘해주셨는가. 그런 빌레몬 집사님을 내가 배신했으니 나는 도대체 어찌 될 것인가. 바울 사도의 편지를 받고 용서해 줄 것인가, 아니면 내 이마에 화인을 칠 것인가. 아니면 손목을 자를 것인가.’ 아마 탕자가 집에 돌아오면서 별생각을 다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탕자도 고백하지 않습니까.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눅 15:19). 이 말을 얼마나 많이 연습했겠습니까. 아마 오네시모도 별의별 말 별의별 생각을 다 하며 연습했을 겁니다. 그러는 가운데 마침내 골로새에 도착했습니다. 빌레몬이 골로새에 살았거든요. 전설에 의하면 라오디게아에서 낙농업을 하면서 엄청난 부자가 되고 상업 도시인 에베소에 가서 새로운 사업을 하러 가는 길에 두란노 서원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칼칼한 목소리로 인생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갈 것이며 여러분 예수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외치는 사도 바울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어디서였든지 빌레몬이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받았습니다. 오네시모가 골로새에 나타나니 사람들이 ‘저런 쳐죽일 놈이 있는가’ 요즘 말로 하면 인터넷 언론 할 것 없이 (회중 웃음) 그냥 뭐 오네시모를 조져대는 겁니다.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인격적으로 대해 주었는데 물건을 훔친 저 두 손목을 자르든지 도망을 친 저 두 발목을 잘라 버릴거야, 모두가 수군거렸을 겁니다. (묶인) 오네시모는 고개를 푹 숙이고 엎드려 빌레몬 앞에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이때 동행한 두기고에 대해 골로새서는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두기고가 내 사정을 다 너희에게 알려 주리니 그는 사랑받는 형제요 신실한 일꾼이요 주 안에서 함께 종이 된 자니라 내가 그를 특별히 너희에게 보내는 것은 너희로 우리 사정을 알게 하고 너희 마음을 위로하게 하려 함이라 신실하고 사랑을 받는 형제 오네시모를 함께 보내노니 그는 너희에게서 온 사람이라 그들이 여기 일을 다 너희에게 알려 주리라 골 4:7-9 두기고가 발언권을 신청합니다. ‘빌레몬 집사님, 오네시모가 도망친 로마에서 친구의 도움으로 사도 바울을 만나 복음을 듣고 크게 회개하고 거듭나서 사도 바울의 옥바라지도 얼마나 잘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오네시모는 이제 바울의 심복 중의 심복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네시모는 인자한 주인을 떠난 것을 가슴 아파하고 양심 고백을 했습니다. 그래서 죽으면 죽더라도 복음을 들은 양심대로 살아야 한다고 여기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그래도 오네시모는 아무 말도 않고 부들부들 떨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두기고가 발언권을 요청합니다. ‘존경하는 빌레몬 집사님. 저 오네시모의 가슴 속에 사도 바울이 친필로 쓴 편지가 숨겨져 있습니다.’ 두기고가 오네시모의 가슴 속에 든 바울 서신을 빌레몬에게 전달했습니다. 빌레몬이 보니 바울의 친필 서신입니다. 빌레몬은 ‘우리 은사 사도 바울이 눈이 어두우셔서 대필로 편지를 쓰시는 데 나를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셨으면 친필로 서신을 감옥에서 보내셨을까’하고 감격을 합니다. 그 순간 빌레몬이 그 자리에서 내려와 무릎을 꿇고 기도합니다. 하나님. 제가 그토록 믿음과 정을 주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한 인간적 노여움을 누르고 용서한다는 것은 오늘 이 시대와 사회가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 비난을 제가 어떻게 감당하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사도 바울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친필 서신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으로 변했다는 오네시모를 용납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제 오네시모의 몸도 흔들리고 있지만 빌레몬도 흔들리며 피는 꽃이 되어가고 있을 것입니다. 아무리 사도 바울을 영적 은사(恩師)로 삼았던 빌레몬이라 할지라도 오네시모를 바라보면 속이 끓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여러분, 아무리 흔들리는 꽃도 제자리를 잡게 되어 있습니다. 그는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선언했습니다. ‘내가 직접 사도 바울을 섬기지 못하면 내가 섬길 자를 뽑을 사람도 누구를 뽑았겠느냐. 바로 저 오네시모를 뽑아 보냈을 것이다. 성령께서 내 소원을 이렇게 응답하시고 연로하신 사도께서 육필로 권고하심이 이처럼 망극할 수가 있겠는가. 내가 누구관대 연로하신 사도님을 거스를 수 있겠습니까. 나 역시 만 가지 죄악을 용서받은 사람이 아닙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회개하고 스스로 찾아온 오네시모의 모든 허물을 용서하노라. 그리고 이 자리에서 오네시모의 노예 증서를 불태우고 자유 시민이 될 것을 선포하노라. (회중 아멘) 여러분 빌레몬이 뚜벅뚜벅 걸어가서 묶인 오네시모의 사슬을 풀어줍니다. 그 모습을 본 많은 사람이 감탄합니다. 빌레몬은 무릎 꿇은 오네시모를 안아주면서 말합니다. ‘너는 이제 자유인이다. 사업을 하느라 복음을 전하지 못했는데 나를 대신해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고 위대한 사도 바울의 제자가 되기를 부탁한다. 이제 자유인이 되었으니 떠나시오. 한시가 급하오. 바울 사도의 건강이 걱정되오.’ 여러분, 이 교회가 성장해 골로새 교회가 되었고 이 골로새 지역은 빌레몬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교회가 크게 부흥했다고 합니다. 오네시모는 자신이 훔쳤던 것보다 몇 배나 더 많은 선교비를 가지고 바울을 더 잘 섬기기 위해 로마로 갑니다. 그리고 바울의 복음의 제자가 됩니다. 말씀과 영성 훈련을 받아 교회 전설에 의하면 오네시모는 당시 가장 큰 교회의 감독이 됩니다. 자 이게 발단이 돼 그 유명한 폴리캅이 노예 신분에서 벗어나 서머나 교회의 감독이 됐고 이그나티우스도 노예에서 해방을 받아 안디옥 교회의 감독이 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훗날 오네시모로 인해 이 빌레몬서가 한 장밖에 없지만, 신약성경 정경이 되어가는 과정에 포함이 된 것이 복음의 혁명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 성경을 읽을 때 사람들이 변화되고 관대와 관용이 있고 용서와 자비와 사랑이 가득한 삶을 살게 되지 않겠습니까. (회중 아멘) 어디까지나 교회 전설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우리가 인생을 살아갈 때 그림자와 그늘이 생길 수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 그림만 보고 누가 잘했다더라,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말입니다. 꼭 꽃이 피려면 바람이 불어요. 바람이 불면 꽃이 아름답게 보이고 그 바람을 통해 꽃향기가 멀리멀리 진동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우리 합동 포럼이 부디 이런 모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회중 아멘) 저도 그림자가 있고 그늘이 있습니다. 어떻게 그늘이 없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림자가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여러분 우리 합동포럼에서는 그림자가 있고 그늘이 있다 하더라도 오늘 빌레몬서와 같은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비록 작은 모임이지만 큰 역사를 행하는 위대한 역사를 이루는 모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회중 아멘) 오늘 대표회장에 취임하시는 우리 고광석 목사님, 저보다 IQ가 50 이상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저분의 언변을 감당할 사람이 없습니다. 얼마나 스피치가 좋으신지. 저도 논쟁을 좀 하기는 하지만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합동포럼이 말로만 섬기는 것이 아니라 빌레몬과 같은 아름다운 섬김의 역사를 이루면서 더 부흥하고 발전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회중 아멘)” 우리가 이처럼 거침없는 기인(奇人) 소강석 목사가 읽는 시나, 전하는 말씀을 감동 있게 듣는 것은 사도들이 본보기로 보여준 그들의 신앙과 진지함 때문이고 진리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는 그들의 명백한 의지 때문일 것이다. 삶뿐만 아니라 믿음도 사랑하는 한, 우리는 시인이고 기인인 소강석 목사 같은 그런 사역과 삶에 감동을 받으며 희열을 느낀다. 그런 믿음의 삶에 경의를 표한다는 점에서 우리 교단에 소강석 같은 기인이 존재함을 인정하는 것이 될 것이다. 2005년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졸업생들에게 축사하면서 스티브 잡스가 생전에 인용했던 말 중 가장 유명해진 말이 있다. (굶주린 것처럼) 계속 추구하고, (미련한 것처럼) 계속 시도하라. 이는 잡스가 연설에서도 언급했던 Whole Earth Catalog의 1974년 판에 쓰여있던 말이다. 즉 '무식하면 용감하듯이' 계속 시도해서 얻으라는 말이다. 스티브 잡스의 경영 철학은 다음과 같다. 경영은 기존 질서와 철저히 다르게.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선정해 직접 몸으로 뛰어라. 항상 새로운 것에 주의를 기울이고 포기하지 마라. 기술력을 과신하기보다 소비자 눈높이에 맞춰라. 간단하고 단순하게 하라. 성경은 말씀한다. 오 형제여! 나로 주 안에서 너를 인하여 기쁨을 얻게 하고 내 마음이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하게 하라 나는 네가 순종함을 확신하므로 네게 썼노니 네가 나의 말보다 더 행할 줄을 아노라 빌레몬서 1:20-21 2024-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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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장창수 목사 대명교회 설립 109주년 기념 추수감사주일
믿음을 따라갔네. 작은 오두막이었네. 소망과 사랑 둘이 살고 있었네. 소망이 집을 비울 때는 사랑이 집을 지킨다고 하였네. 어느 하루 찬바람 불던 날 슬적 가 보았네. 작은 마당에는 붉은 감 매달린 나무 한 그루 서성서성 소망을 줍고 있었고 위에 있던 십자가, 날개를 펴고 있었네. 날개를 퍼덕이며 십자가는 말했네. "어서 오게, 그대 집으로..." 하늘이 보내준 은혜의 열매들. 아무렇게나 매달린 잎새들의 자유. 작은 마당은 산그늘에 덮였고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밤송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장창수 목사는 자신의 설교 십계명을 통해 세상 떠나는 날까지 주님이 기뻐하시는 메신저로 살려는 간절한 바람을 지니고 있다. 그는 2024년 11월 3일 주일, 한복을 입고 강단에 섰다. 대명교회(1915년 11월 7일) 설립 109주년 기념과 1908년 한국교회가 정한 추수감사절 예배를 기리기 위해 시편 103:1-8 본문에 놀라운 은혜(Amazing grace)라는 제목의 설교를 전했다. "20세기 최고의 극작가인 오스카 와일드의 단편 <그날 이후>라는 제목의 작품이 있습니다. 물론 작가가 꾸며 낸 이야기지만 인간이 얼마나 하나님의 은혜를 쉽게 잊어버리고 사는지를 생각해 볼 만한 이야기입니다. 내용을 살펴보면 이러한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지상에 계실 때 특별한 은혜를 베푼 자들이 시간이 지나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살펴보시기 위하여 지상에 내려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일으키셨는데 막상 큰 은혜를 받은 그를 찾아가 보니 완전히 술주정뱅이가 되어 있었고 손발을 덜덜 떨며 지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네가 도대체 어떻게 해서 이 지경이 되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제가 앉은뱅이 때는 구걸하면서 살 수가 있었고 얻어먹을 수가 있었는데 오히려 정상이 돼서 걷게 되니까 구걸하여 얻어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마음에 맞는 직장도 없고 이것저것 방황하다가 인생을 원망하다가 이렇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로, 예수님께서 갈릴리를 향해 가시는데 이번에는 한 불량자가 피투성이가 되어서 다른 불량자와 싸우고 있습니다. 지금 싸우고 있는 불량자는 이전에 예수님께서 진흙을 발라 눈을 뜨게 한 바로 그 소경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눈을 뜨게 되었는데 왜 이렇게 불량자로 살아가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눈을 뜨고 보니까 세상의 돌아가는 꼴이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었습니다. 정말 이 세상이 어떻게 이 모양이냐? 이런 생각을 하다가 화가 나서 화풀이를 하다가 이렇게 되었습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참 가슴 아픈 현대인의 자화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본문 말씀 시편 103편 2절은 우리에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시인은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은택을 잊지 말라고 말하는데 이 구절이 의미하는 것은 우리가 입술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속의 간절함과 진실함으로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benefit 恩澤 은혜와 덕택)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은택이라는 이 단어는 좀 특이한 단어입니다. 은택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게물’이라는 말인데, 보상, 공적, 행위라는 뜻도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의 주석가 반즈(Albert Barnes 1798 12. 1 - 1870 12. 24)라는 분은 이 ‘은택’에 대한 해석을 이렇게 합니다. ‘은택은 여호와 하나님이 나에게 베푸신 모든 자비로운 사역을 총칭할 때 쓰는 <게물>이라는 단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을 잊어버리고 살지만, 숨 쉬고 살아가며 이 땅에서 지금까지 온 것과 오늘 이곳에 찾아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모든 것들이 은택입니다. 하나님이 다른 사람이 아닌 나에게 베푸신 모든 사역을 말할 때 쓰는 단어가 바로 ‘은택’인 것입니다. 오늘 시편 기자는 그 은택을 잊지 말라고 합니다. 여기서 ‘잊지 말라’는 단어는 히브리 동사 ‘샤카흐’입니다. 잊지 말라는 동사 ‘샤카흐’라는 말은 단순히 우리 속에서 기억이 떠나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단어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베푸신 놀라운 은혜를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말을 지칭할 때 하는 말이 바로 ‘샤카흐’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더 쉽게 설명을 해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베푸신 은혜는 산과 바다와 온 우주와 같이 넓고 크지만 우리는 그 자체를 기억조차 하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서 감사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것들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어떤 상황에도 우리를 보호하시지만, 우리는 그 하나님의 은택을 거부하면서 살아갈 때가 참 많습니다. 더 심각한 경우는 자신을 죄인이라고 말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신앙이 뿌리라면 감사는 열매와 같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감사의 크기와 내용을 보면 그 사람의 믿음의 수준을 알 수가 있습니다. ‘저 사람은 신앙생활을 수십 년 했어. 저 사람은 참 거룩하게 보여 저 사람은 중직을 맡았어. 심지어 저 사람은 목사야.’ 이것은 그분의 믿음의 수준이 아닙니다. 삶의 실생활 속에서 그분이 얼마나 많은 감사의 열매를 맺느냐가 그 사람의 신앙의 수준입니다. 에베소서 5장 20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영어 단어 중에 ‘overflowing’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이 단어의 뜻은 ‘넘친다’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지나칠 정도로 넘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잔에 물이 있는데, 가득 찼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부어서 넘치는 것을 말합니다. 홍수가 나서 물이 완전히 제방을 넘는 것을 표현할 때 사용할 수 있는 단어입니다. 저는 ‘overflowing’이라는 단어가 신앙생활에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잔에 물이 넘치거나 홍수가 나서 물이 둑을 넘는 것처럼 우리 삶에도 감사가 지나칠 정도로 가득 넘쳐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항상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살아가며 그 은혜가 마음속에 가득 차 흘러넘치는 모습이 바로 진정한 성도의 모습입니다. 존 맥스웰(John Maxwell)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가장 행복한 사람은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가장 불행한 사람은 원망과 불평 속에서 사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가장 멋진 노인은 감사함을 넘치게 하는 노인입니다. 남들이 보기에 이렇습니다. 저 할아버지는 감사하는 것이 좀 지나친 것 같아! 아니 저 할머니는 좀 과하게 감사를 해!’ 이게 정상이라는 겁니다. 그는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멋진 노인은 감사의 사람’이라고 정의를 합니다. 오늘 저희는 교회 설립 109주년 기념 주일과 또한 이 한 해의 추수 감사 주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보통 전 세계에서 추수 감사 주일은 11월 셋째 주일입니다. 그렇지만 저희 교회는 지금으로부터 109년 전 대명교회가 바로 첫 설립 예배를 드렸던 날이 11월 첫째 주일이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면서 첫째 주일을 감사 주일로 드리고 있습니다. 이날은 또한 한 해 동안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와 보호하심에 감사하는 뜻깊은 날입니다. 오늘은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감사를 드리고 온 교회가 함께 그분의 은혜를 고백하는 소중한 기회입니다. 온 교회가 모여 감사 예배를 드림으로써,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공동체 안에서 행하신 일들을 서로 나누고 감사의 기쁨을 함께 나누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를 살려 주시고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시편 103편 5절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본문의 말씀처럼 우리의 소원을 만족하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는 날입니다. 첫째, 대명교회를 지난 109년 동안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모든 성도는 깊은 감사를 해야 합니다. 대명교회가 설립된 1915년 그 당시 1910년대는 조선의 암흑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제 치하였습니다. 구한말 1905년에 을사조약이 있었고, 1910년 8월 22일 강압적으로 한일합방이 되어 진짜 미래를 알 수 없는 절망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오히려 그 절망의 시간에 하나님께서 선택한 백성들을 사랑하셨습니다. 한국의 선교 역사를 보면 우리가 1800년대 말부터 선교사들이 조선에 가장 많이 들어왔습니다. 가장 많이 선교사들이 들어왔던 때가 바로 일제 치하 속에서도 제일 힘들었던 때입니다. 많은 선교사가 미국, 캐나다, 호주, 러시아, 영국 등 세계 각국의 수많은 벽안(碧眼)의 선교사들이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절망의 땅, 흑암의 땅인 조선에 와서 복음을 전합니다. 그들이 복음을 전함으로 우리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었던 것입니다. 바로 그때 우리 교회 역사가 시작됐습니다. 우리 교회는 1915년 11월 6일에 역사적인 첫 설립 예배를 드렸습니다. 『대구 경북 지역의 경상도 장로교회사』라는 책에 보면 그 당시에 우리 교회의 기록이 조금 남아 있습니다. 당시 동산병원의 2대 병원장으로 부임한 의료 선교사이자 목회자였던 아치볼드 플레처(Archibold D. Flecher-한국명:별리추)라고 하는 선교사님이 제중원(지금의 동산병원)의 2대 병원장으로 부임해 오셨습니다. 이분은 목사이자 의사이자 선교사였습니다. 평일은 열심히 의사로서 환자를 돌보고 그들에게 복음을 증거 했습니다. 업무가 토요일 오전까지 계속되었는데 키가 2미터 가까이 되는 분이 그 피곤한 육신에도 불구하고, 매주 토요일 오후가 되면 자신의 왕진 가방에 각종 연고와 많은 의료 약품을 가지고 무료 진료와 전도를 나갔습니다. 당시 기록을 보면 염증 하나가 생기고 고름이 생기는 곳에 연고만 잘 발라도 나을 수 있는데, 이 간단한 조치나 약이 없어서 팔을 자르고 심각한 육신의 생명까지 잃어버리는 경우가 있었다고 합니다. 플래처 목사님이 동산병원에서 가까웠던 대명동 지금의 계명대 근처에서 서부 정류장에 이르기까지(지금의 대명동과 성당동 일대) 열심히 전도하며 진료를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선교사님이 이러한 사역을 계속해서 하자 사람들 사이에 소문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키가 2M나 되는 선교사가 나누어주는 약을 바르면 낫는다. 병을 치료해 주더라.’ 많은 사람들이 선교사님을 찾았고 선교사님은 치료와 함께 그들에게 복음을 증거 했습니다. 이때 전도 활동을 통해 한 사람을 만나는데 이 분이 바로 박덕일이라는 분입니다. 이분은 대명교회에서 전도사로 계셨고 나중에는 동산병원에 근무하시다가 목사님이 되는데 플래처 목사님은 박덕일 조사와 함께 매주 토요일 전도 활동을 계속했습니다. 드디어 전도의 결실로 7명의 성도를 얻었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이 예배드릴 장소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예배 장소를 놓고 기도했고 아마 전도 받고 처음 예배 장소가 없어서 4년에서 5년 동안은 대명교회 최초의 집사였던 최복암 집사님 집에서 예배를 드렸던 것 같습니다.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는 안타까운 소식을 듣고 플래처 목사님은 동산병원으로 돌아가 거기에 근무하는 몇 의사분들과 간호사들에게 기도를 부탁합니다. 그들은 대명리 근처에서 복음을 받아들인 분들이 예배를 드릴 장소가 없다는 소식을 듣고 헌금을 해서 예배 장소를 마련합니다. 그들이 헌금한 액수가 당시 돈으로 80원인데 이 돈으로 초가집 한 동을 매입합니다. 8칸의 초가집을 매입하고 교회를 정식으로 설립을 합니다. 1915년 11월 첫 주에 플래처와 박덕일 조사와 성도들이 모여서 역사적인 첫 설립과 감사 예배를 드립니다. 이어서 교회의 설립자는 플래처 선교사로 하고, 최초의 당회장으로는 브루엔(Henrry Munro Buruen) 선교사님이 맡으셨습니다. 그렇게 대명교회가 첫 설립이 되어서 오늘 109년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자신의 집을 첫 예배의 장소로 제공한 최복암 씨가 최초의 집사가 되었고 1918년 1월에 배석주 전도사님이 대명교회 최초의 목회자로 부임을 했습니다. 1920년에 김도현 씨가 영수로 선출이 되었고 1921년에 우리 대명교회가 다음 세대 교육을 위하여서 일반 학교를 설립합니다. 1922년에 첫 부흥회를 하고 1932년에 우리 대명교회가 정상적으로 조직이 되었습니다. 목회자인 전도사가 있고 교역자와 장로님의 역할을 하는 영수가 있었고 집사를 임명합니다. 여전도회를 조직하고 이때 네 분의 집사님을 세우는데 그 집사님 중의 한 분이 서대암 집사님이란 분이 계십니다. 이 분은 나중에 저희 교회 장로님이 되셨는데 서대암 집사님이 바로 현재 저희 교회 장은환 장로님, 전무중 장로님 두 분 원로 장로님의 외할아버지가 되십니다. 우리 교회가 1938년까지 지속적으로 교회가 안정적인 부흥을 하고 1938년 11월에 정상용 장로님이 최초로 장로로 취임을 하며 당회가 조직이 됩니다. 이때 우리 대명교회는 남자와 여자가 커튼을 쳐서 서로 분리해서 예배를 드렸고 이 당시에 장년 35명, 그리고 주일학교가 40명이 넘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1938년은 안타까운 해입니다. 바로 우리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가 말도 안 되는 일제의 우상숭배인 신사참배를 가결합니다. 신사참배가 하나의 예의에 해당된다고 하면서 신사참배를 하기로 가결하고 대표하는 목사와 장로들이 평양에 있는 신사에 가서 절을 하는, 하나님 앞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짓게 됩니다. 일제는 구체적으로 이때 탄압으로 황국신민 서사 제창, 그리고 그들의 황국 시민으로서 황제와 그들의 조상들에게 절을 시키는 이런 종교 행위, 우상 숭배행위를 시켰습니다. 교회마다 엄청나게 협박하며 공출이라는 미명 아래 너희들이 이 위대한 일에 동참하라고 돈이나 쇳덩어리나 쌀을 다 빼앗아 갔습니다. 그때에 우리 대명교회도 가슴 아픈 사연이 있습니다. 한 분밖에 없었던 정상용 장로님이 끌려가서 고문을 당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얼마나 심하게 고문을 당했는지, 교인들에 대한 압박이 있자 우리 교회 종을 자진해서 수레에 싣고 경찰서에 갖다 주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 교회에 아픔이 있었음에도 대명교회 성도들은 끝까지 신사참배 동방요배를 반대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고난과 핍박에도 굴하지 않고 신앙의 절개를 지키겠다고 각오를 하면서 교회 안에 걸려있는 동방요배를 위한 휘장을 찢어버립니다. 이것 때문에 1939년부터 엄청난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대명교회 성도들은 신앙의 지조를 지키고 동방요배를 하지 않고 휘장도 걸지 않자 1943년부터 45년까지 일본 경찰은 대명교회 당회를 강제로 폐쇄를 시켰습니다. 이때 일제의 핍박으로 축소된 교회도 많고 이상하게 변질된 교회도 많지만, 하나님의 극적인 은혜로 오늘 초가집에서 시작됐던 교회가 이렇게 아름다운 교회로 변화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셨고 7명의 성도가 3000여 명의 성도로 하나님은 부흥을 시켜주셨습니다. 저희 교회 주차장 출구 쪽에는 ‘Grace Chapel’이라고 하는 아주 작은 교회가 서 있습니다. 교회 조경이나 장식으로 만든 것이 아닙니다. 주차장에서 차를 출차 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대명교회에 주신 은혜를 기억하고, 나에게 주신 은혜를 다시 한번 기억하자는 의미로 작은 교회를 지은 것입니다. 초대교회인 초가집을 짓지 못하고 적벽돌 작은 교회를 지었지만, 힘들고 어려웠고 첫 시작의 미약함 속에 지금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그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신앙의 지조를 지켰고 눈물과 헌신으로 달려온 신앙 선배들의 그 지조와 희생을 우리가 기억하고 하나님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자는 의미입니다. 일제의 핍박과 시대를 달려 오며 수 많은 교회가 사라지거나 감소하였지만, 우리 대명교회는 109년이 지난 지금 100주년이 되던 해 교회 이전은 물론 대구를 대표하는 교회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계속 성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신앙의 선배들에 베풀어주셨던 은혜에 감사할 수밖에 없고 그 신앙의 유산들을 여전히 우리 대명교회가 이어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말씀과 같이 추수 감사 주일인 오늘 우리 교회와 개인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는 다시 한번 기억하길 바랍니다. 둘째로, 우리의 가정과 우리 자신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됩니다. 제가 대명교회를 부임하고 지난 20여 년 얼마나 많은 감사 주일을 보내었습니까? 설교만 해도 40회 가까이 감사 주일을 지키면서 말씀드린 것은 여전히 첫 번째 개인적 감사는 “나같은 죄인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죽어서 하나님 앞에 섰을 때도 가장 큰 감격은 어떻게 나 같은 죄인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냐는 것입니다. 지난주 수요일 어린이 예배 때도 제가 아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치면서 가슴이 뭉클한 경험을 하였습니다. 창세 전부터 하나님이 너희들을 선택하셨다는 교리를 가르치는데 감동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은 나 같은 죄인을, 문제 있는 나를 지명하여 부르셨습니다.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그 기쁘신 뜻 가운데 저와 여러분들을 부르셨다는 사실입니다. 이 구원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감사를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본문 3절에도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4절에서는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 4절의 파멸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쇼트’인데, 구약에서 23번이 나옵니다. 그 뜻은 ‘죽음, 무덤, 구덩이, 함정, 지옥’ 등의 다양한 말로 번역이 됩니다. 하나님이 죽음에서 우리를 살려주셨고, 우리를 구덩이에서 건져 주셨고, 우리를 지옥에서 살려 주셨습니다. 죽음과 지옥의 형벌에서 구원하여 영생과 천국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가장 무서운 것이 인생을 짓누르는 죄입니다. 죄의 무게로 지옥에 빠질 인생이 예수를 믿고, 예수의 십자가의 보혈로 정결함을 얻습니다. 죄의 짐을 벗고 영원한 하늘나라 백성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부활의 축복을 누리고 영생을 누립니다. 이것을 가슴에 새길 때마다 눈물이 나고, 감사의 마음이 충만해집니다. 제가 미국 탈봇 신학교(Talbot Theological Seminary)에서 공부를 할 때에 도서관 비디오실에서 Amazing Grace 찬양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이 비디오는 찬양 ‘나 같은 죄인을 살리신’ 그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가 지금도 여전히 흐르고 있음을 말해주었습니다. 미국 소년 교도소, 흉악범들이 있는 심지어 남미에 있는 포악한 수용소 속에서도 그들을 변화시키고 그들을 감사와 감격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합니다. 바로 나 같은 죄인도 주님이 살려주셨다는 그 찬양을 부르며 곳곳의 교도소에서 눈물로 찬양하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이 곡을 쓴 존 뉴턴(John Newton, 1725~1807)은 노예를 팔아먹던 아버지를 따라다니면서 온갖 나쁜 짓을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이 찬양의 영어 가사 가운데 이런 부분이 있습니다. I once was lost, but now I'm found Was blind, but now I see 과거의 나는 생명을 잃어버린 자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찾았습니다! 과거의 나는 눈먼 자였으나 이제는 볼 수 있습니다! 로마서 8장 1-2절에서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말씀합니다. 많은 찬양을 작사한 패니 제인 크로스비(Frances Jane van Alstyne, 1820년 3월 24일 - 1915년 2월 12일)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분은 1820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생후 6주 때의 눈병 치료를 하는데 가짜 의사에게 맡겼다가 각막이 손상되고 평생 앞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어릴 때는 분노와 저주, 원망과 불평으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신실한 외할머니를 통해 예수님을 만납니다. 그때 이후로 그녀는 단 한 번도 불평한 적이 없다고 고백합니다. 평생 감사였습니다. ‘인애하신 구세주여,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 등 수많은 찬송을 작사했습니다. 어느 날 그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앞을 볼 수도 없고 평생 불편하게 살아가는데, 어떻게 원망과 불평 없이 감사로 살아가느냐?’ 그녀가 대답합니다. ‘감사의 조건들은 아주 많습니다. 제가 그리스도인이라는 단 한 가지 이유만으로도 저는 충분히 평생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로마서 4정 7절에서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뿐만이 아니라 병을 고쳐주시고 생명을 연장시켜주시는 은혜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과 자비로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올 한 해도 주의 은혜로 어려움 가운데도 안전하고 무사하게 지켜주셨고 수십 번 위험한 고비도 넘어가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깨닫지 못할 뿐이지 하루에도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는 40번 이상의 위험한 일들을 맞닥뜨린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으로 자녀들을 초라한 죄인의 모습이 아닌 존귀와 영화로 관을 씌우신다는 겁니다. 인자와 긍휼로 늘 사랑으로 명예롭게 하시고 우리를 영광스럽게 여겨주십니다. 저를 돌아봐도 그런 생각이 듭니다. 자격 없고 죄인이지만 인자와 긍휼로 이끌어 주시고 명예스러운 관을 씌워주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가난한 집안에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 어떻게 할 수 없는 절망의 가난과 고통의 시간들... 연약하고 키도 작고 못생겼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런데 보통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사람이 서글퍼지는데 요즘은 잘생겼단 소리를 자주 들어요. 지난 금요일 서울에 CBS의 올포원 크리스마스 특집 촬영을 하러 갔더니 얼마나 칭찬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공감이 안 될 정도로 분장하는 선생님도 말해요. ‘목사님 잘생겼어요.’ 그 옆에 있던 또 다른 분들도 ‘목사님 피부가 어떻게 이렇게 좋아요.’ 아나운서도 ‘목사님 손주 보셨다면서요. 청년 같으세요.’ 옆에 같이 촬영하는 여자 연예인도 ‘목사님 진짜 잘생겼어요.’ 그런데 그 말들이 저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은혜야...’라고 속으로 되뇌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보게 해주시고 나를 회복시켜 주시는구나... 여러분. 하나님은 그의 영원한 사랑으로 자녀들을 초라한 죄인의 모습이 아닌 존귀와 영화로 관을 씌워주시는 분이십니다. 『표현의 능력』이라는 책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감사 렌즈를 끼고 살아야 하는 것이 성도의 모습이다. 감사 렌즈는 우리가 직면한 모든 상황들 수많은 삶의 부분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게 한다.’ 하나님의 관점으로 보는 사람의 특징은 감사로 충만한 것입니다. 붉은 렌즈를 끼면 붉게 보이듯이 파란 렌즈는 파랗게 보이듯이 감사 렌즈를 끼고 살면 감사가 넘치는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죠. 『표현의 능력』은 감사 렌즈를 끼면 4가지 능력이 생긴다고 설명합니다. 첫째, 지나간 시간 속에 도우신 하나님의 손길이 보인다. 둘째, 어려움이 찾아와도 하나님의 섭리를 보게 한다. 셋째, 염려 근심에서 벗어나게 한다. 넷째, 우리가 잃은 것이 아닌 우리가 가진 것을 보게 한다. 우리는 구원의 은총과 감사 렌즈를 끼고 살아갈 때 하나님이 베푸신 일상의 은혜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믿지 않는 자들에게도 하나님께서 보편적인 일상의 은혜는 주셨습니다. 숨 쉬고 살고, 이 지구에서 공기와 물과 일용할 양식과 사랑하는 삶의 터전과 모든 삶의 영역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일상의 영역입니다. 너무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감사의 렌즈를 끼면 그것이 감사로 보이는 것입니다. 일용할 양식은 당연한 게 아닙니다. 밥을 먹을 때까지 우리는 약 88개 단계를 거친다고 합니다. 이 시간에도 하루에 8억 명씩이 굶고 있다고 해요. 전 세계에는 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번에 동유럽 집회를 가보니 마실 물이 전부 석회질이에요. 우리나라 물이 얼마나 좋은지에 대한 감사를 드렸습니다. 우리의 살아가는 삶의 영역들 모든 것들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이 아닐까요? 최소한 이런 감사 절기를 통해서라도 하나님의 일상의 은혜를 한 번 더 생각하며 감사의 렌즈를 끼고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쌀밥 먹는 게 소원이 아니라 덜 먹는 게 목표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먹을까가 아니라 얼마나 하나님이 복을 주셨는지 이제는 어떻게 하면 덜 먹을까? 식당에 가도 공깃밥 한 그릇 다 드시려는 분이 없어요. 하나님이 우리나라에 베푸시는 은혜, 우리 가정에 베푸시는 은혜, 우리 자신들에게 베푸신 특별한 일상의 은혜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다윗은 하나님의 은택을 잊지 말라면서 부르짖을 때 우리의 고통에서 건지시고 우리의 인생에 기적을 행하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시편 107편 6절에서 ‘이에 그들이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건지시고’ 8절에서는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9절에서도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기도할 수 있는 은총 그리고 하나님의 때가 될 때 반드시 좋은 것으로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미국 기독교계의 작가이자 목사인 맥스 루케이도(Max Lucado) 『하나님의 가장 완벽한 선물 은혜』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은혜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다. 아니요. 1분 1초도 살 수 없습니다.’ 맥스 루케이도의 경험적 고백입니다. 그는 정말 건강했다고 생각했는데 부정맥이 왔습니다. 약을 아무리 먹어도 심장 박동이 정상으로 돌아오질 않습니다. 그래서 의사에게 갔더니 전극도자절제술을 권유합니다. 그러면서 맥스 루케이도가 머리에 망치를 맞은 것처럼 깨달은 게 있습니다. 아...우리가 일상의 은혜를 모르고 지내는데 우리는 심장이 뛰는 것이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1분 1초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면 살아갈 수 없는 게 인생이구나... 그래서 그는 이렇게 씁니다. ‘당신이 불가능하다고 여기며 할 수 없는 것을 그리스도는 너끈히 하실 수 있습니다. 그분은 타락한 당신을 은혜로운 삶으로 적극 인도하십니다. 은혜는 주님이 전부입니다. 그분이 살아계시기에 은혜가 살아 있고 그분이 일하시기에 은혜가 일하고 그분이 중요하시기에 은혜가 중요합니다. 사실 우리는 은혜를 찾을 수 없습니다. 은혜가 우리를 찾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고 구원받았습니다.’ 저는 그의 글 중에 ‘은혜가 우리를 찾는다!’ 이 말이 너무나 공감이 되고 좋습니다. 그리고 몇 번이나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게 아니라 주님의 은혜가 우리를 찾아오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메이징 그레이스... 어메이징 그레이스...” 2024년 지난 10월 10일 놀라운 소식이 세계로 퍼져 나갔다. 2007년 10월 30일 한국어판이 출간되었으며, 2015년 1월 1일에 데버라 스미스가 번역한 영어판이 출간된 '채식주의자'(菜食主義者) 저자 한강이 노벨 문학상을 받은 것이다. 덕분에 앞으로 다른 한국 작가도 전 세계에서 더 많은 관심을 받게 될 테니 한국 문학으로서도 ‘놀라운 은혜(어메이징 그레이스)의 바다’ 여행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사실 하나님의 은혜는 그것을 소망하는 믿음의 순례자를 위한 것이 아닐까. 믿음의 순례자인 우리는 때로 그런 은혜를 ‘어쩌다’ 만나 인생의 순례길을 함께하게 될 것이다. 마치 109번째 감사주일을 기념한 대명교회와 제109회 총회가 처음부터 믿음으로 한 몸이었던 것처럼. 성경은 말씀한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행 20:24 2024-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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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소요리문답_ 주기도문의 끝 말씀
1)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우리 하나님이여 이제 우리가 주께 감사하오며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 †대상 29:11-13 ……… 2)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귀를 기울이시고 행하소서 지체하지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바 됨이니이다 †단 9:19 ……… 3)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계 22:20-21 작자 미상의 이런 시가 있다. 내가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셨을 때 난 당신이 내가 그린 최초의 그림에 빛을 비춰주시는 걸 보았어요. 그래서 난 또 다른 그림을 그리고 싶었어요. 내가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셨을 때 난 당신이 주인 없는 개를 보살펴 주시는 걸 보았어요. 그래서 난 동물들을 잘 대해 주는 것이 좋은 일이란 걸 알았어요. 내가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셨을 때 난 당신이 기도하시는 소리를 들었어요. 그래서 난 하나님이 존재하시며 언제나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내가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셨을 때 난 당신이 잠들어 있는 내게 입 맞추시는 걸 보았어요. 난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 내가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셨을 때 난 당신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걸 보았어요. 그래서 난 때로는 인생이라는 것이 힘들며 우는 것이 나쁜 일이 아님을 알았어요. 내가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셨을 때 난 당신이 날 염려하고 있는 걸 보았어요. 그래서 난 내가 원하는 모든 걸 꼭 이루고 싶어졌어요. 내가 보고 있지 않다고 당신이 생각하셨을 때 사실 난 언제나 보고 있었어요. 그래서 내가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셨을 때 내가 본 모든 것들에 대해 당신에게 아멘으로 감사드리고 싶었어요. 하나님이 그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를 창조하셨다는 사실은 인생의 목적에 대한 바른 답을 제시해준다.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이유를 충족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즐거워할 때 하나님도 신랑이 신부를 기뻐하는 것 같이 우리를 기뻐하신다고 말씀하신다. 다시는 너를 버림 받은 자라 부르지 아니하며 다시는 네 땅을 황무지라 부르지 아니하고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쁄라라 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결혼한 것처럼 될 것임이라 마치 청년이 처녀와 결혼함 같이 네 아들들이 너를 취하겠고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 같이 네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시리라 사 62:4-5 스바냐 선지자는 더욱 감동적인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모습을 전해주고 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습 3:17 하나님이 스스로 우리와의 관계를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우리도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게”(벧전 1:8) 된다. 기도는 그리스도의 약속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요 14:13-14 이 말씀은 우리가 어리석고 죄스러운 어떤 일들을 요구할 수 있다거나 또 그것을 얻을 수 있다는 의미도 아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기도할 때 우리는 확신을 얻게 되고,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인 실례가 있다. 1540년 루터(Martin Luther, 1483. 11. 10. - 1546. 2. 18.)의 절친한 친구이자 조수였던 미코니우스(Friedrich Myconius, 1491. 12. 26. - 1546. 4. 7.)가 병이 들어 죽음이 임박해 있었다. 그는 죽기 전에 루터에게 마지막 남은 기력을 다 모아 편지를 보냈다. 루터는 편지를 받자마자 간절한 내용을 담아 답장을 보냈다. 나는 아직도 교회를 개혁하는 일에 당신이 필요하다. 나는 감히 하나님의 이름으로 당신이 계속 더 살아있기를 명하고 싶다... 나는 주께서 당신을 죽게 내버려 두시지 않고 나를 위해서 당신을 살려두시겠다는 말씀을 해주실 것이라 믿는다. 이것을 위해 나는 지금 기도하고 있다. 이것은 내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내 뜻이 이루어질 것을 안다. 그 이유는 나는 오직 하나님의 이름을 영광되게 하는 일만을 추구해왔기 때문이다. 주님의 이름으로 아멘. 루터의 이러한 확신에 찬 말은 그 당시 신중한 말이 요구되던 시대였던 것을 감안하면 정말 놀라운 말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 뒤 일어난 일을 보면 루터의 이 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 분명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왜냐하면 루터의 편지가 도착했을 때 미코니우스는 이미 말할 능력을 상실했다. 그러나 그는 읽어주는 루터의 편지를 듣고 곧 소생했다. 그리고 며칠 뒤에는 완전히 회복했다. 그 후 미코니우스는 6년을 더 살았다. 게다가 그는 루터보다 두 달을 더 살았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쳐주신 뒤 모든 내용의 마지막에 ‘아멘’을 덧붙일 것을 가르쳐주셨다. 아멘은 원래 긍정을 나타내는 히브리어로 ‘강하게 하다’(strengthen), ‘확증하다’(confirm)를 의미하는 낱말이다. 그래서 아멘은 ‘그렇게 될 것입니다’ 또는 ‘그렇게 되게 하옵소서’라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그렇게 될 것입니다’ 라는 의미의 아멘은 우리의 믿음이나 소원에 대한 하나님의 허락을 뜻하는 것이다. 반면에 ‘그렇게 되게 하옵소서’ 라는 의미의 아멘은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거나 우리의 기도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우리의 믿음과 소망을 표현하는 것이다. 즉 우리의 아멘은 하나님이 우리의 간구를 들으시기를 바라는 마음과 들으시리라 하는 확신의 증거로 말하는 것이다. 고대 유대교에서는 랍비가 성경 한 구절을 읽을 때마다 성도들이 그 구절을 따라 말하게 함으로써 성경 교육을 시켰다. 그러나 점차 구절을 되풀이해 따라 말하는 게 번거롭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성도들은 성경 구절을 따라서 반복하는 대신에 그것을 압축한 한 마디 아멘을 말하게 되었다. 그래서 아멘이 기도나 찬송의 맺음말로 사용하게 되었다. 그리스도인들이 기도를 마칠 때마다 아멘이라고 말하는 것은 좋은 습관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이렇게 교훈한다. 그렇지 아니하면 네가 영으로 축복할 때에 알지 못하는 처지에 있는 자가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고 네 감사에 어찌 아멘 하리요 고전 14:16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할 때 간구한 내용에 대한 이해와 믿음으로 아멘을 하는 습관을 갖도록 해야 할 것이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마 6:13 【핵·심·개·념·정·리】 1) 인생의 목적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그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를 창조하셨다는 사실은 인생의 목적에 대한 바른 답을 제시해준다.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이유를 충족시키는 것이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즐거워할 때 하나님도 신랑이 신부를 기뻐하는 것 같이 우리를 기뻐하신다고 말씀하신다. 2)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한다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기도할 때 우리는 확신을 얻게 되고,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이다. 3) 어떻게 기도할 때 확신을 얻게 되는가?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쳐주신 뒤 모든 내용의 마지막에 ‘아멘’을 덧붙일 것을 가르쳐주셨다. 아멘은 원래 긍정을 나타내는 히브리어로 ‘강하게 하다’(strengthen), ‘확증하다’(confirm)를 의미하는 낱말이다. 그래서 아멘은 ‘그렇게 될 것입니다’ 또는 ‘그렇게 되게 하옵소서’라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그렇게 될 것입니다’ 라는 의미의 아멘은 우리의 믿음이나 소원에 대한 하나님의 허락을 뜻하는 것이다. 반면에 ‘그렇게 되게 하옵소서’ 라는 의미의 아멘은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거나 우리의 기도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우리의 믿음과 소망을 표현하는 것이다. 즉 우리의 아멘은 하나님이 우리의 간구를 들으시기를 바라는 마음과 들으시리라 하는 확신의 증거로 말하는 것이다. 2024-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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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소요리문답_ 주기도문의 여섯째 기도
또 주의 종에게 고의로 죄를 짓지 말게 하사 그 죄가 나를 주장하지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면 내가 정직하여 큰 죄과에서 벗어나겠나이다 †시 19:13 ………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마 26:41 ………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요 17:15 영국의 침례교 목사 메이어(F. B. Meyer, 1847. 4. 8. - 1929. 3. 28.)는 몇몇 가까운 친구에게 다음과 같은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주었다. 캠벨 몰간(G. Campbell Morgan)이 미국에 있을 때 그의 성공을 위해 기도하는 일은 아주 쉬웠지. 기도가 술술 나오더군. 그런데 몰간이 영국으로 돌아와서 내 교회 근처에 있는 교회를 맡게 되니까 그건 이야기가 영 달라지는 거야. 내 속에 있는 옛 아담이 새록새록 질투를 불러일으키는 거야. 정말 괴롭더군. 그러나 나는 이 시험을 이기기 위하여 열심히 기도하는 가운데 질투로 나를 시험하는 옛 아담을 발길로 걷어차 버릴 수 있었지. 그리고는 내 친구에 대한 내 생각이 옳든지 어떻든지 간에 나의 생각을 즉시 실천에 옮기기로 결심을 했어. 그건 내 교회가 캠벨 모간 환영회를 열어주기로 한 거야. 그래서 성대하게 환영회를 열어주었지. 그러니까 그 친구 정말 좋아하더군. 우리 교인들도 놀라는 눈치였어. 내 기분도 훨씬 가벼워지고 좋더군. 그리고 주일 저녁 설교를 내가 하지 않아도 되는 때면 나는 몰간의 교회로 달려가서 그의 설교를 듣는 것을 낙으로 삼게 됐지. 몰간의 설교야 말로 참으로 훌륭하지 않은가. 설교라면 나는 그의 신발 끈 풀기도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지. 그러나 목사의 신분과 입장에서만 설교를 하고 설교를 듣던 내가 마음을 비우고 신자의 자세로 몰간의 설교를 들으니까 아주 겸손해지게 되더군. 그러니까 은혜도 받고 몰간에 대한 내 마음도 편해지고 이건 일거양득이더라 말이야. 그런데 교인들은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입을 딱 벌리고 나를 존경까지 하더군. 그런데 주님의 사랑의 은혜는 정말 놀랍더군. 내가 우리 교회를 비우는 날은 천부적인 설교자 스펄젼(Charles Spurgeon) 목사가 내 대신 설교를 하지 뭔가. 스펄젼과 몰간 그 두 사람이 대중들에게 얼마나 인기가 많은 사람들인가. 글쎄 몰간 교회만 사람들이 넘치는 게 아니라 이제는 우리 교회도 사람들로 가득 차는 거야! 참 놀라울 일이지 않은가! 우리 세 사람 다 득을 보게 되었지. 합력해서 선을 이루는 하나님의 은혜는 정말 놀라울 따름이야. 무엇보다도 시험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기도와 말씀뿐이더군.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마 6:13) 라고 기도하는 주기도문의 여섯째 기도는 현실적인 기도이다. 그것은 우리가 생활 속에서 겪게 되는 여러 가지 죄의 유혹과 시험을 이기기 위하여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간구이다. 시험과 유혹의 원인은 두 가지이다. 첫째 원인은 소극적인 것인데 우리 자신의 욕심과 정욕으로 생기는 것이다. 성경은,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약 1:14)라고 말씀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자기 욕심에 끌려 시험받게 될 때,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 5:24)하는 말씀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5) 말씀하는 불행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둘째 원인은 적극적인 것인데 우리를 파멸하려는 사탄으로 생기는 것이다. 사탄은 죄의 원조이다. 사탄이 이브를 유혹한 사실에서 드러나듯이 그는 인간이 죄를 짓게 한 자였다. 그래서 요한 사도는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요 8:44)하고 말씀한다. 사탄은 마귀들의 우두머리를 지칭하는 명칭이다. 사탄이라는 명칭은 ‘대적하는 자’를 의미하는 히브리어다. 예수님이 광야에서 시험 받으실 때 “사탄아 물러가라”(마 4:10)대놓고 말씀하신다. 욥의 이야기는 사탄이 하나님의 제한과 통제의 범위에서만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드러내준다(욥 1:12;2:6). 마귀들은 영원한 사슬에 매여 있다(유 6).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께서 주신 권세로 마귀들에게 너끈히 대항할 수 있다.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약 4:7).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마귀를 대적해서 싸울 때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는”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대적하라고 권면한다(엡 6:16). 이제 믿음은 마귀의 공격을 막아주는 방패의 역할을 한다. 더 나아가서 마귀를 공격할 수 있는 무기를 사도 바울은 이어서 가르쳐준다. 그 무기는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엡 6:17)이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사탄의 시험을 하나님의 말씀의 반복적인 사용으로 물리치셨다(마 4:1-11). 사탄과 벌이는 우리의 영적 싸움에서 믿음은 사탄의 공격을 막아주는 방패이고,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은 사탄을 공격할 수 있는 칼이다. 이 두 무기를 잘 사용할 수 있는 훈련방법은 기도이다. 끊임없는 기도를 통해 성령을 받아 믿음에 굳게 서고, 그 믿음으로 확신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탄의 시험과 악을 무찌를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엡 6:18 【핵·심·개·념·정·리】 1) 시험과 유혹의 원인은 무엇이 있는가? 첫째 원인은 소극적인 것인데 우리 자신의 욕심과 정욕으로 생기는 것이다. 둘째 원인은 적극적인 것인데 우리를 파멸하려는 사탄으로 생기는 것이다. 2) 사탄에 대항해 신자는 무엇으로 싸워야 하는가? 사탄과 벌이는 우리의 영적 싸움에서 믿음은 사탄의 공격을 막아주는 방패이고,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은 사탄을 공격할 수 있는 칼이다. 3) 사탄을 대항하는 두 무기를 잘 사용할 수 있는 훈련방법은 무엇인가? 기도이다. 끊임없는 기도를 통해 성령을 받아 믿음에 굳게 서고, 그 믿음으로 확신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탄의 시험과 악을 무찌를 수 있을 것이다. 2023-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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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소요리문답_ 주기도문의 다섯째 기도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 †시 51:1 ………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마 18:35 ………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롬 3:23-24 나치에 항거해 감옥에 갇힌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가 숨을 거두기 전에 쓴 시라고 한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그들이 종종 말하기를 내가 감방에서 걸어나올 때 마치 왕이 자기의 성에서 걸어나오듯 침착하고, 활기차고, 당당하다고 한다. 나는 누구인가. 그들이 종종 말하기를 내가 간수에게 말을 건넬 때 마치 내가 명령하는 권한이라도 있는 듯 자유롭고, 다정하고, 분명하다고 한다. 나는 누구인가. 그들이 또한 말하기를 내가 불행한 날들을 견디면서 마치 승리에 익숙한 자와 같이 평화롭고, 미소 지으며, 자연스럽다고 한다. 나는 정말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그런 존재인가. 아니면 다만 나 자신이 알고 있는 자에 지나지 않는가. 새장에 갇힌 새처럼 불안하게 뭔가를 갈망하다 병이 들고 손들이 나의 목을 조르고 있는 듯 숨 가쁘게 몸부림치고 빛깔과 꽃들과 새소리를 갈구하며 부드러운 말과 인간적인 친근함을 그리워하고 사소한 모욕에도 분노로 치를 떠는, 그리고 위대한 사건들을 간절히 고대하고 저 멀리 있는 친구들을 그리워하다 힘없이 슬퍼하고 기도하고, 생각하고, 글쓰는 일에 지치고 텅 빈, 무기력하게 그 모든 것과 이별할 채비를 갖춘 그런 존재. 나는 누구인가. 이것인가, 저것인가. 타인 앞에서는 위선자이고, 내 자신 앞에서는 경멸할 수밖에 없는 가련한 약자인가. 나는 누구인가. 이 고독한 물음이 나를 비웃는다. 그러나 내가 누구이든, 하나님은 아신다. 내가 그의 것임을.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라고 기도하는 주기도문의 다섯째 기도는 무슨 뜻인가?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행위가 하나님의 용서보다 앞선다는 뜻인가? 아니면 우리가 용서하기 때문에 용서 받을 수 있다는 것인가? 아니다. 그 반대다. 우리 자신이 먼저 용서를 받았기 때문에 용서할 수 있고 용서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요일 4:19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눅 7:47 성경은 우리가 자백만 하면 언제라도 죄를 용서받게 된다고 말씀한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일 1:9 따라서 다른 사람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태도를 본받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사랑 받은 것처럼 우리도 용서해야 한다. 베드로가 주님에게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마 18:21)라고 물었다. 예수님은 크게 생각해서 일곱 번의 용서를 말한 베드로에게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마 18:22) 하고 말씀하셨다. 신자가 타인의 용서에 대해 행해야 할 의무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의 은혜를 본받고 나타내야 한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간구하고 있다. 여호와여 주의 긍휼을 내게서 거두지 마시고 주의 인자와 진리로 나를 항상 보호하소서 수많은 재앙이 나를 둘러싸고 나의 죄악이 나를 덮치므로 우러러 볼 수도 없으며 죄가 나의 머리털보다 많으므로 내가 낙심하였음이니이다 시 40:11-12 우리가 이렇게 많은 죄를 용서받듯이 우리도 남을 용서하고 사랑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면서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라고 말씀하시고 우리의 죄를 대속하셨다. 그 은혜를 체험한 사도 베드로가 우리에게 권면한다.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벧전 2:21 그러므로 우리도 그리스도의 본을 따라 용서와 사랑을 실천해야 할 것이다. 【핵·심·개·념·정·리】 1) 주기도문의 다섯째 기도는 무슨 뜻인가? 우리 자신이 먼저 용서를 받았기 때문에 용서할 수 있고 용서해야 한다는 것이다. 2) 우리는 어떻게 죄의 용서를 받는가? 성경은 우리가 자백만 하면 언제라도 죄를 용서받게 된다고 말씀한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9). 3) 우리는 다른 사람의 죄에 대한 용서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신자가 타인의 용서에 대해 행해야 할 의무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의 은혜를 본받고 나타내야 한다. 2023-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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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소요리문답_ 주기도문의 넷째 기도
1)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내가 죽기 전에 내게 거절하지 마시옵소서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잠 30:7-9 ……… 2)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합 3:17-18 ……… 3)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갖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딤전 6:7-8 언제 아담은 울었는가 _이어령 언제 아담은 울었는가 에덴에 핀 꽃을 처음 보았을 때인가 최초로 이브의 살을 만져 본 순간이었을까 아니면 에덴의 동쪽으로 떠나던 날이었을까 아닐 것이다. 태양이 노을이 되고 노을이 어둠이 되는 처음 맞는 밤에도 공포에 떨었을 뿐 아담은 울지 않았다. 아담은 울지 않았다. 다만 아담이 운 것은 정확하게 천지창조 칠일 째 되는 날 아침 해가 어둠 속에서 불쑥 솟아오를 때 아담은 그때 목놓아 울었으리라. 오랜 장마 끝 어느 맑게 개인 날 이불을 널어 말리듯 태양으로 고개 돌려 심호흡을 할 때 나는 더 이상 가난을 미워하지도 부끄러워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천지창조의 일곱 번째 날 아침을 생각하면서 산다는 것이 손뼉을 치듯 너무 기뻐서 최초의 남자 아담처럼 소리내어 울었습니다. 칼빈은 기독교 강요 제 일 권 제 일장에서 이렇게 말한다. 참된 지식은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인간을 아는 지식이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위엄과 영광을 알고 이해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인간의 무가치함을 알고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함을 깨닫게 된다. 칼빈이 말하는 이 참된 지식을 통해 우리는 주기도문의 넷째 기도의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마 6:11)라는 주기도문의 넷째 기도에서 깨우칠 진리는 두 가지다. 첫째, 우리가 일용할 양식을 구할 때, 필요한 것을 주실 수 있고 실제로 주시는 분은 하나님뿐이라는 사실이다. ‘일용할 양식’이라고 번역된 말은 원래 병사 한 사람의 하루 배급식량을 나타내는 말이다. 자연 속에서 사는 모든 생물들이 한 끼 먹을 것을 위해 노력하는 것을 보면 하루하루 산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이러한 사실은 하루하루 살 수 있는 일용할 양식을 위하여 하나님에게 끊임없이 의지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둘째, ‘오늘 나에게’가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라는 기도의 말씀이다. 이 말씀은 나만 배부르다고 끝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우리는 혹시 내 주위에 아직 배고픈 사람들이 있지나 않은지 돌아보아야 한다. 이론적으로 보면 세상 모든 사람은 굶주리지 않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한 쪽에서는 먹을 것이 남아돌아서 버리고 다이어트 한다고 살을 빼려고 땀을 뻘뻘 흘리며 고생을 한다. 또 다른 한 쪽에서는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리는 사람들이 배고픔으로 고생하거나 영양실조로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의 만나처럼 오늘 우리에게 양식을 넘치게 부어주신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내일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오늘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사도 바울은 신자의 삶의 태도에 대해 이렇게 권면한다.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갖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딤전 6:7-8 ‘일용할 양식’을 위한 기도에서 우리가 깨우칠 또 다른 진리는 하루하루의 삶의 의미와 생명의 소중함에 감사하고 만족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귀한 생명과 영생을 얻을 수 있는 믿음을 주신 그리스도에게 감사를 드리며 하나님에게 일용할 양식을 날마다 구해야 할 것이다. 【핵·심·개·념·정·리】 1) 하나님의 위엄과 영광을 알게 되면 우리는 무엇을 깨닫게 되는가? 우리는 인간의 무가치함을 알고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함을 깨닫게 된다. 2)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기도는 우리에게 무엇을 깨닫게 해주는가? 첫째, 우리가 일용할 양식을 구할 때, 필요한 것을 주실 수 있고, 실제로 주시는 분은 하나님뿐이라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은 하루하루 살 수 있는 일용할 양식을 위하여 하나님에게 끊임없이 의지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둘째, ‘오늘 나에게’가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라는 기도의 말씀이다. 이 말씀은 나만 배부르다고 끝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우리는 혹시 내 주위에 아직 배고픈 사람들이 있지나 않은지 돌아보아야 한다. 3) ‘일용할 양식’을 위한 기도에서 우리가 깨우칠 또 다른 진리는 무엇인가? 하루하루의 삶의 의미와 생명의 소중함에 감사하고 만족해야 한다는 것이다. 2023-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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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소요리문답_ 주기도문의 셋째 기도
1) 여호와의 지으심을 받고 그가 다스리시는 모든 곳에 있는 너희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시 103:22 ……… 2) 그가 권함을 받지 아니하므로 우리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그쳤노라 †행 21:14 ……… 3)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빌 1:11 미국 뉴욕의 신체장애자 회관에 이런 시가 적혀있다. 나는 하나님에게 나를 강하게 만들어 달라고 기도했다. 내가 원하는 모든 걸 이룰 수 있도록. 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약하게 만드셨다. 겸손해지는 법을 배우도록. 나는 하나님에게 건강을 기도했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도록. 그러나 하나님은 내게 허약함을 주셨다. 더 의미 있는 일을 하도록. 나는 하나님에게 부자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행복할 수 있도록. 그러나 난 가난을 선물 받았다. 지혜로운 사람이 되도록. 나는 하나님에게 재능을 달라고 기도했다. 그래서 사람들의 찬사를 받을 수 있도록. 그러나 난 열등감을 선물 받았다. 하나님의 필요성을 느끼도록. 나는 하나님에게 모든 것을 기도했다. 삶을 누릴 수 있도록. 그러나 하나님은 내게 삶을 선물하셨다.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도록. 나는 내가 기도한 것을 하나도 받지 못했지만 내게 필요한 모든 걸 선물 받았다. 나는 작은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내 무언의 기도를 다 들어 주셨다. 모든 사람들 중에서 나는 가장 축복받은 자이다. 브라더 로렌스(Brother Lawrence, 1611-1691)는 그리스도교 역사에 기록되지 않을 뻔 했던 조용하고 온유한 그리스도인이었다. 그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었다면 그는 전혀 관심을 끌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랬다면 세상은 그가 실천한 “하나님 임재의 체험”을 통해 본보기가 된 것을 맛보지 못해 영적으로 좀 가난해졌을 것이다. 그에게 브라더라는 호칭이 붙은 것은 수도원에서 허드레 일을 하는 평수도사 라는 뜻이다. 그는 설교자도 아니었고 선생도 아니었고 말씀을 전하는 전도자도 아니었다. 본명이 니콜라스(Nicholas Herman)였던 로렌스는 항아리, 냄비, 포도주 통, 채소 더미의 수도원 부엌에서 사십 년을 보냈다. 그는 그 부엌에서 그의 생각과 행동과 온 생활을 하나님 임재를 체험하는 기도생활로 만들었다. 그는 성만찬에 참여하는 것 못지않게 당근 껍질을 벗길 때도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했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별 볼일 없는 군인으로 전전하다가 부상을 입었다. 그는 절뚝발이가 되어 귀향했다. 이제 무엇을 할까 고민을 하던 로렌스는 열여덟에 그리스도를 알고 믿은 뒤로 한 번도 자신을 버리신 적이 없는 주님을 위해 살기로 작정했다. 그는 처음에 사막으로 들어가 고독한 은자가 되려고 했다. 그러나 그 생활이 자신에게 맞지 않음을 깨달은 그는 수도원에 들어갔다. 그는 파리에 있는 갈멜 수도회의 평수도사가 되었다. 그가 들어간 수도원은 엄격한 곳이었다. 그는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런 욕망이 없었다. 성실한 로렌스가 마음에 든 수도원장이 그를 좀 더 나은 보직인 수도원 물품 구매 담당자로 임명했다. 그러나 로렌스는 상인들과 값을 놓고 승강이해야 하는 일이 고통스러웠다. 그가 가장 편안하게 생각하는 일은 남들은 한사코 꺼리는 수도원 부엌이었다. 로렌스의 유일한 갈망은 부엌에서 요리하고, 설거지하고,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것이었다. 로렌스를 발견한 파리 추기경단의 서기였던 보포르(M. de Beaufort)가 그에 대해 이렇게 기록했다. 그는 일을 할 때 주님의 은총을 간구했다. 그는 자신의 모든 행동을 주님에게 봉헌하는 자세로 일하며 계속 하나님과 친밀한 대화를 나누었다. 일을 마치면 그는 자신의 일과를 점검했다. 일과를 잘 수행했다는 판단이 서면 그는 하나님에게 감사를 드렸다. 그러나 잘못한 점이 발견되면 그는 하나님에게 용서를 구하고 다음에는 잘 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는 날마다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일을 계속했다. 로렌스는, “순간마다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며 사는 것입니다” 라고 말했다. 그는 부엌에서 안절부절못하거나, 서두르거나, 실수하거나, 그리고 실망하는 일이 없었다. 그는 보포르와 면담하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 내게는 일하는 시간과 기도 시간이 마찬가지입니다. 그릇들이 덜걱거리고 음식물이 끓는 부엌의 온갖 소음 속에서 몇 사람이 한꺼번에 서로 다른 요구를 할 때도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겸손히 하나하나 다 들어줍니다. 나는 그 일을 무릎을 꿇고 거룩한 성만찬을 받는 자세로 행하면서 고요한 평정 속에 하나님을 소유합니다. 하늘에서 하나님에게 올라오는 기도를 천사가 접수해보면 잠언에서 “다오 다오”하는 즉 “주세요”(give me)가 수북하지 “고맙습니다”(thank you)는 별로 없다고 한다. 그래서 잠언 기자는 이렇게 말씀한다. 거머리에게는 두 딸이 있어 다오 다오 하느니라 족한 줄을 알지 못하여 족하다 하지 아니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 곧 스올과 아이 배지 못하는 태와 물로 채울 수 없는 땅과 족하다 하지 아니하는 불이니라 잠 30:15-16 주기문의 셋째 기도는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인데 여기에서 ‘뜻’은 무엇을 의미할까? 하나님의 뜻에 관해 성경은 이렇게 말씀한다. 감추어진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원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 이는 우리에게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심이니라 신 29:29 하나님의 뜻에는 ‘감추어진 일’도 있고 ‘나타난 일’도 있다. 그러므로 ‘뜻이 이루어지다’ 할 때 하나님의 뜻은 두 면을 지니고 있다. 첫째, 하나님의 뜻에는 ‘감추어진 일’이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계획을 의미한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을 따라 계획대로 일하신다고 말씀한다(엡 1:11). 그러므로 참새 한 마리조차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마 10:29).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계획을 막을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단 4:35). 우리가 하나님의 감추어진 일에 대해 알아야 할 사실은 그것이 실제로 이루어지기 전에는 결코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감추어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믿고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하나님의 뜻에는 ‘나타난 일’이 있다. 이것은 우리의 행위를 규정한 법이다. 하나님은 기록된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완전하게 계시해주셨다(딤후 3:16-17).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는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따라야 한다(사 8:20).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 7:21 예수님의 이 말씀에서의 ‘내 아버지의 뜻’은 계시되고 기록된 말씀을 의미한다. 우리는 이 말씀을 지키고 따라야 한다. 욥은 하루아침에 망하고 병까지 들었다. 이 어처구니없는 불행에 욥의 아내는 차라리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악다구니를 퍼부었다. 온갖 고통과 슬픔을 겪고 있는 욥은 아내에게 담담하게 말했다. 그대의 말이 한 어리석은 여자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 욥 2:10 욥은 하나님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입술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요셉은 형제들이 노예로 팔아넘겨 애굽에 오게 되었다. 그는 애굽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하인이 되었다. 그는 잘 생기고 충직했다. 그런 그에게 보디발의 아내가 끈질기게 유혹을 했다. 그러나 그는 유혹을 단호하게 뿌리치며 말했다.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 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창 39:9 오히려 그 일로 그는 감옥에 갇혔다. 그럼에도 요셉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고 어떤 처지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묵묵히 따랐다. 사도 바울은 말한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 4:11-13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실천하기 위하여 날마다 기도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도 주님처럼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 라고 날마다 기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면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사도 바울은 매일의 생활에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실천할 수 있는 세 가지 방법을 가르쳐 주고 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16-18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라는 이 세 가지 명령을 날마다 실천하면 하나님의 뜻을 우리의 생활에서 이루게 될 것이다. 【핵·심·개·념·정·리】 1) 하나님의 뜻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계시되고 기록된 말씀을 의미한다. 2)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실천하기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날마다 기도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도 주님처럼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 라고 날마다 기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면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3) 사도 바울은 매일의 생활에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실천할 수 있는 어떤 세 가지 방법을 가르쳐 주고 있는가?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라는 이 세 가지 명령을 날마다 실천하면 하나님의 뜻을 우리의 생활에서 이루게 될 것이다. 2023-12-06
G.BOOK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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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김현철 삼미 슈퍼스타즈 설립자 도미니카 슈퍼스타 선교사로
시간 앞에 속수무책인 믿음이 있는가 하면, 시간을 이겨내는 믿음이 있다. 그것이 하나님의 자녀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된다. 왜냐면 신자는 미래를 향해 가지만 믿음은 영원한 현재이기 때문이다. 경기도 오산의 삼미동은 조선시대 정조(正祖, 1752년 10월 28일 ~ 1800년 8월 18일, 재위: 1776년 4월 27일 ~ 1800년 8월 18일) 임금이 마을을 둘러보고 오동나무, 대나무, 소나무가 아름답고 많다는 의미로 삼미(三美)라고 명명했다. 원래는 동네 주변에 소나무가 많아 소나무골, 즉 송리(松里)라고 불렸던 마을이다. 김두식 삼미그룹 창업주(1925~1980)는 21세이던 1946년 서울에서 비누와 식용유를 만드는 소규모 제조업체를 차리며 사업의 꿈을 펼쳤다. 1950년 6·25 전쟁을 피해 부산으로 내려가 화공 약품 사업을 이어가다 1954년 서울로 돌아와 청량리 일대에 목재 가공업체인 대일기업을 세웠다. 그가 목재 가공업에 뛰어든 이유는 6·25 전쟁 이후 훼손된 집, 공장, 관공서 등을 복구하기 위해 목재 수요가 높아질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의 예측이 들어맞으며 대일기업의 사세는 확장됐다. 1959년 2월 국내 최대 규모의 제재공장을 인천 만석동에 마련했다. 전후 복구사업으로 목재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해외에서 목재를 수입할 정도였다. 김두식 창업주는 자연스럽게 수출입업의 흐름을 이해하며 무역업에 발을 들이게 됐다. 1960년 김두식 창업주는 조선 임금 정조가 명명한 이름처럼 (주)삼미(三美)사를 세워 건어물, 수산물 등 여러 품목을 수출하기 시작했다. 전쟁 복구가 마무리된 후에도 목재의 인기는 여전했다. 국내산 합판 수출이 크게 늘어난 덕에 삼미사는 대형 무역업체로 급격히 성장했다. 김두식 창업주는 사업 영역을 점점 넓혀갔다. 1963년 원목을 수송하기 위해 삼창해운을 인수했고, 1967년 삼미광업개발을 설립해 광산업에도 진출했다. 삼양특수강과 한국특수강공업을 인수해 1975년 9월 삼미특수강주식회사를 세웠다. 1976년 자본금 3억 원으로 삼미문화재단을 설립했고 뒤이어 1977년 삼미금속, 1979년 시흥관광개발을 설립했다. 고도성장을 거듭한 삼미그룹의 성장세는 삼일빌딩으로 상징된다. 1968년 삼미그룹은 청계천 고가도로에 지하 2층~지상 31층 규모의 건물을 올렸다. 당시 대한민국 최고층 건물로 이름을 알린 삼일빌딩이다. 1970년 완공된 삼일빌딩은 84년까지 삼미그룹 본사로 사용됐는데 나중 김현철 선교사가 삼미슈퍼들 가운데 한 별로 지목한 박영원(경기중, 경기고, 서울상대 졸) 상무 덕에 이 글을 쓰는 나도 몇 번 그 빌딩에 들어가 차를 대접받기도 했다. 박영원과 경기 동문 김현철은 1950년 대기업 총수인 김두식 회장의 3남 5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80년 부친의 타계로 만 29세라는 젊은 나이에 한국 30대 기업 중 한 곳인 삼미그룹의 총수에 올랐다. 한국 산업계의 주춧돌 역할을 하는 특수강을 세계 최고로 만들자는 부친의 유훈을 받들기 위해 당시로서는 큰 액수인 미화 2억 달러로 캐나다의 아틀라스 특수강을 인수해 재계를 놀라게 했다. 1982년에는 새로 출범하는 한국 프로야구가 제대로 된 리그를 운영할 수 없는 위기에 처하자 소비재가 없는 기업임에도 과감하게 야구단을 창단해 3년 반 동안 ‘삼미 슈퍼스타즈’를 운영하기도 했다. ‘삼미 슈퍼스타즈’(Sammi Superstars 1982~1985)는 짧은 역사를 지녔다. 그러나 연고지인 인천 외에도 매우 열광적인 팬층을 확보해 오늘날까지 회자 되는 컬트적 인기를 구가했던 구단이다. 모기업 삼미그룹은 무역, 해운, 광업, 특수강 등이 주 종목으로, 프로야구의 홍보 효과를 누릴 만한 소비재 분야 계열사는 그리 많지 않았다. 구단 운영을 통해 시너지를 낼 만한 요소도 없었다. 1970년 삼미그룹은 청계천 고가도로에 지하 2층~지상 31층 규모의 대한민국 최고층 건물 삼일빌딩을 건립하고 84년까지 삼미그룹 본사로 사용했다. 그러나 나이와 사세가 한창일 때 김두식(1925~1980) 삼미그룹 회장이 1977년 골수암을 판정받고 3년의 투병 끝에 1980년 55세로 돌연 타계했다. 급기야 1950년생 29세의 장남 김현철이 한국 30대 기업에 드는 삼미그룹 총수에 올랐다. 1989년 삼미그룹은 계열사 11개, 매출 1조 3500억 원을 기록했다. 그룹 경영을 맡자 한국 산업계의 주춧돌 역할을 하는 특수강을 세계 최고로 만들려고 분투한 부친의 유지를 이루고자 1989년 당시로는 큰 액수인 2억 달러로 캐나다의 아틀라스 특수강을 인수해 5년 뒤 흑자를 냈다. 그 쾌거는 세계 철강 업계와 한국 재계를 놀라게 했다. 삼미그룹을 맡은 김현철 회장은 스포츠를 좋아했고, 미국 유학 시절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열렬한 팬이었다. 그는 메이저 리그가 미국의 국민 스포츠로 자리 잡은 것과 메이저 리그 구단주들이 그 지역사회의 저명인사가 되어 시민들의 존경을 받는 걸 목격했으며 프로야구의 발전 가능성과 당시 서종철 KBO 사무총장의 간곡한 요청을 받아들여 야구팀을 창단하게 되었다. 그는 박정희 정부 때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 국방부 장관을 지냈던 거물 인사로 집권 세력들이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위치에 있었기에 프로야구가 정치권 입김에 더 이상 휘말리지 않게 하는 데에 큰 공을 세웠다.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의 육사 시절 교관(=담임)이었고, 군 시절 하나회 후원자 역할을 했었으며, 서종철이 육군참모총장이던 시절 전두환 전 대통령이 그의 부관을 지낸 경력도 있던 인물. 한마디로 군사독재 정권 시절 대한민국 대통령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던 막강 KBO총재. 팀명은 악의 무리로부터 지구를 지키는 절대 무적의 슈퍼히어로 슈퍼맨에서 따온 슈퍼스타즈였다. 그러나 문제는 국가대표 스타 선수가 팀 내에 전혀 없는 상황에서 팀의 명칭이 '슈퍼스타즈'로 정해졌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일부 팬들과 언론은 "슈퍼스타가 한 명도 없는데 무슨 슈퍼스타즈냐?"라고 조롱하기도 했다.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1982년 2월 5일 인천시 신포동 인천상공회의소 강당에서 23명의 슈퍼맨이 참석한 가운데 인천 최초의 프로야구단 삼미 슈퍼스타즈의 창단식이 열렸다. 어쨌든 인천 팬들의 열화와 같은 기대 속에서 1982년 3월 28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창단 첫 공식 경기에서 삼미는 인호봉의 3실점 완투와 양승관의 3타수 2안타 2타점의 활약으로 당대 최강팀이자 우승 후보 0순위 팀으로 분류됐던 삼성 라이온즈를 5:3으로 이기며 첫 승리를 기록했다. 예상치 못한 삼미의 첫 승 소식에 인천 팬들은 당연히 광분했다. 실제로 슈퍼스타(superstar)가 한 명도 없는데 무슨 슈퍼스타즈(superstars)냐?"라고 조롱을 받은 구단 관계자들과 선수들도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슈퍼스타 정신으로 가득 찼다. 1985년 3저 호황, 자동차 경기 호황 등으로 특수강이 뜨는 상황은 삼미그룹에 호재가 되었다. 하지만 좋은 시절은 얼마 가지 못했다. 금세 특수강 열기가 꺼지면서 해외 공장 삼미특수강은 1992~1993년 2년간 1,685억 원의 적자를 냈다. 그룹의 주요 사업인 특수강이 불경기에 시달리자 1991년부터 삼미그룹은 다시 한번 자금 위기를 겪게 된다. 1992~1995년까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방배동 사옥, 토지, 공장 부지, 유나백화점 등을 매각해 4,000억 원 정도를 마련했지만 거듭된 적자로 불어난 1조 5,000억 원의 부채를 해결할 수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곧 외환위기가 찾아왔다. 1997년 12월 3일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 금융을 요청했다.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정부는 금융·기업·공공·노동 부문 등에서 4대 구조조정을 추진했다. 정부는 총 200조 원에 달하는 공적자금을 조성해 부실화된 은행에 투입했고 일부 은행과 종합금융사가 퇴출됐다. 조상제한서(조흥·상업·제일·한일·서울은행)로 대표되던 5대 시중 은행들은 합병이나 해외 매각의 길을 걸었다. 기업들도 부채비율을 낮추고 인원을 해고하는 등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감행했다. 상당 수 기업들이 채권은행들의 관리하에서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을 통해 자산 매각, 구조조정 등을 추진했다. 4대 그룹 중 하나였던 대우그룹도 해체돼 채권은행들이 관리했다. 공기업 개혁으로 포스코, 한국전력, 한국통신(KT) 등이 민영화됐고 노동부문에서는 정리해고가 허용됐다. 분식회계와 막대한 부채에 시달리던 한보그룹 등 여러 대기업이 줄줄이 무너졌다. 주거래은행인 제일은행은 삼미그룹을 옥죄었고, 자금난에 시달리던 삼미그룹도 결국 해체되고 만다. (주)삼미는 삼림종합건설 컨소시엄에 매각됐고, 삼미종합특수강은 법정관리를 받다가 2001년 현대자동차그룹에 편입됐다. 계열사들도 대부분 매각, 합병, 폐업을 거치며 뿔뿔이 흩어졌다. 그 와중에 김현철 전 회장은 2002년 두 차례 직장암 수술을 받고 하나님의 은혜로 회복했다. 그런 김현철을 스무 살부터 지켜본 사람이 있다. 그의 아내 이은혜 선교사이다. 그는 회사를 떠난 뒤 병에 걸린 김현철을 이렇게 회고했다. ... 직장암에 걸려서 아플 때 그냥 이대로 끝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우리 부부가 생각해도 정말 이룬 것 하나 없는데 이렇게 떠나나 싶어서 힘들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사건을 통해서 우리 가족이 다시 하나님에게 믿음으로 더 다가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면서 이제 살려주시면 우리 평생에 하나님의 일을 하고 가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미국에 있으니 그럴 기회가 없었는데 도미니카에 오니 그런 기회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건강해서 하나님의 사역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제 20년이 됐습니다. 훌쩍 지나갔습니다. 이제는 가는 날까지 순종하면서 곁길로 가지 않고, 계속 주님이 기뻐하시는 길로 스티브(김현철) 선교사와 함께 달려가고 싶습니다. 한 가지 더 감사한 것은 남편이 한결같은 것입니다. 제가 처음 만났을 때나 지금이나 교만하거나 건방진 모습을 본 적이 없습니다. 항상 굉장히 겸손합니다. 어떤 때는 남편이 얼마나 힘들까 싶습니다. 수술 이후 아랫배에 차고 있는 장루( 대변을 배출하기 위해 복벽을 통해 장의 일부를 몸 밖으로 꺼내 고정한 구멍으로, 악성 종양, 염증 장 질환 등의 치료 과정에서 시행하는 인공항문) 주머니가 불편하고 힘들 텐데도 아무런 불만 섞인 소리를 하지 않습니다. 남편이지만 저는 이런 모습을 보면서 존경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은혜 선교사> 그 뒤 김현철 선교사는 2004년부터 아내와 함께 도미니카에서 선교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매일 밤 취침하기 전에 갈라디아서 2장 20절 말씀을 읽는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그는 2002년 직장암 수술을 두 번 받은 후 이렇게 오래 살 수 있을지 몰랐다. 그래서 그는 간증할 때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두 번째 수술을 받은 후 하나님께 10년만 더 살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다 히스기야 왕이 기도 후에 15년을 하나님이 더 살게 해 주신 것을 알고는 ‘하나님 10년이 아니라 15년입니다’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7년 전인 지난 2017년이 이미 15년째 되던 해였습니다. 그다음부터는 저도 욕심을 부리는 것 같고 죄송스러워서 더 살게 해 달라고 기도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늘나라 갈 때까지 건강하게 살다 가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할 뿐입니다.” 어떡할 것인가! 인생이라는 소설은 이미 쓰기 시작했는데 세월이 흘러도 유년의 일은 시간의 앨범에 잘 간직되어 있다. 태어난 집의 기둥과 지붕이 무너져서 가옥은 자취가 없어져도 그곳에 어울려 살던 맑은 아이와 순하고 무던한 사람들과 깨끗한 자연은 그때의 얼굴과 표정, 차림으로 그대로 있다. 우리가 언젠가 이 세상에 살지 않게 되더라도 우리의 몸은 그곳의 햇살이 되고, 풀씨가 되고, 들을 이루고, 눈발이 되고, 쑥이 우거져 자라는 높고 평평한 초지가 될 것이다. 소식이 감감하더라도 고향은 현재의 시간에 혈관처럼 흐르고, 연결되어 있다. 그렇듯 삼미 회장에서 도미니카 선교사로 활동하는 김현철의 회고는 겉절이처럼 소박하게 보이지만 그 속은 은혜의 체험이 살아 있는 실화다. 도미니카 공화국은 북아메리카 카리브 제도에 있는 나라이다. 대앤틸리스 제도의 일부인 히스파니올라섬의 동쪽에 있으며, 서쪽으로 2004년에 몰아닥친 홍수와 열대성 폭풍 진(Tropical Storm Jeanne)으로 큰 피해를 입은 아이티와 접경하고 있다. 인구와 면적으로 볼 때, 도미니카 공화국은 카리브 제도의 국가 중 쿠바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나라이다. 수도는 산토도밍고다. 참고로, 도미니카와 도밍고는 각각 라틴어와 스페인어로 일요일을 뜻하는 단어다. 산토도밍고는 성스러운 일요일을 의미한다. 지난 2010년 1월 14일(현지 시간) 지진 참상의 현장, 아이티 포르토프랭스로 가는 중앙일보 취재진과 김현철 선교사가 우연히 만났다. 그는 6만 달러어치 의약품·식량을 전하러 온 한국기독교연합 봉사단과 동행하는 취재진의 길잡이를 자처했다. 2004년부터 아이티와 맞닿은 도미니카에서 부인과 함께 선교사로 일해온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수도 산토도밍고엔 그가 세운 ‘월드그레이스미션’이란 선교회가 있다. 포르토프랭스에도 선교회와 병원·기술학교를 세우려 하던 중 지진이 일어났다. 다섯 차례 포르토프랭스를 다녀왔지만, 그에게도 이번 여행은 쉽지 않았다. 2002년 두 차례 직장암 수술 후 대변 주머니를 차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권총 강도까지 당했다. 2010년 14~18일 그와 포르토프랭스를 함께 다녀온 뒤 19~20일 산토도밍고에서 다시 만났다. 95년을 끝으로 국내 언론에서 사라졌던 그가 그동안 삶의 여정을 담담하게 털어놓으며 특수강사업 시작과 기술 개발 배경에 대해 말했다. “75년 박정희 대통령이 창원에 특수강 공단을 만들었습니다. 무기 국산화를 위해서였죠. 기존 철강회사들에게 특수강사업을 맡아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모두 손사래를 쳤습니다. 첨단 특수강은 무리라고 했죠. 고육지책으로 박 대통령이 아버님을 불렀습니다. 국가를 위해 맡아달라고 했죠. 그래서 시작했습니다. 아무도 가보지 못한 불모지였죠. 그나마 캐나다 밴쿠버에 있을 때 일본 마루베니라는 특수강 회사 공장에서 8개월 연수했다는 경력 덕에 내가 새 사업체 이사로 가게 됐습니다. 독일에서 공부하신 윤직상 박사라는 분이 결정적으로 기여했어요. 일본을 이겨보자며 의기투합이 됐죠. 독일 기계를 들여와 수도 없는 시행착오 끝에 자동차와 대포·M16에 들어가는 특수강을 개발했습니다. 77년 공장 증설까지 끝내고 양산을 시작했죠. 현대자동차가 포니를 미국에 수출할 수 있었던 건 삼미특수강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겁니다. 일본제품을 사다 썼다면 아마 수출경쟁력을 갖출 수 없었을 겁니다. 윤 박사는 두고두고 그걸 자랑으로 여겼죠. [출처:중앙일보] 한참 그룹이 잘 나가던 77년 선대 회장이었던 그의 아버지가 골수암 진단을 받고 투병 끝에 세상을 뜨자 경영 일선에 나서게 된 것이다. 그리고 5년 뒤 김현철 선교사는 1995년 직장암 판정을 받은 후 생사의 갈림길에서 하나님께 헌신할 것을 서원하며 선교사의 길을 걷게 되었다. 1983년 버마 아웅산 폭탄 테러 때도 운 좋게 현장을 피할 수 있었다며 말했다. “당초 우리도 아웅산 묘소에 참배하도록 돼있었어요. 그런데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버마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전두환 대통령에게 건의를 합디다. ‘기업인들까지 아웅산 묘소에 갈 필요가 있느냐. 우리는 현지 기업인들과 골프를 하게 해달라’고 말이죠. 전 대통령이 듣더니 흔쾌히 그렇게 하라고 했어요. 그때 전 대통령이 안 된다고 했으면 지금 이 자리에 없겠죠.” [출처:중앙일보] 그는 2004년부터 도미니카 공화국에 세계은혜선교센터(World Grace Mission Center)를 설립해 21년째 그 땅을 섬기고 있다. 성경은 말씀한다. 이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아브람이 가로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나는 무자하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 아브람이 또 가로되 주께서 내게 씨를 아니주셨으니 내 집에서 길리운 자가 나의 후사가 될것이니이다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업을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낸 여호와로라 창 15:1-7 2025-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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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시인 소강석 목사 믿음은 사랑
영문학에 있어 낭만주의를 개창하는데 기여한 영국의 중요한 낭만주의 시인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 1770년 4월 7일 ~ 1850년 4월 23일) 그의 삶은 검소했지만 생각은 고상했다. 걷는 것은 영적인 행위라는 생각으로 구불거리는 언덕을 걸으며 풀, 꽃, 새, 냇물, 구름, 나비, 하늘과 숲을 관찰했다. 그리곤 호숫가에서 무지개를 볼 때마다 자신의 글을 하나씩 매듭을 지어 나갔다. 특히 해 질 무렵의 산책을 즐겼는데, 이는 곧 시(詩)와 연결된다고 생각했다. 시를 “평온함 속에서 회상되는 정서”라고 믿었고, 기교적인 단어를 사용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다분히 일상적인 시어(詩語)를 선택해서 사용하는 걸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렇게 평생 30만 킬로의 거리를 산책하며 지은 시 ‘나비에게’, ‘데이지에게’, 그리고 ‘서곡’은 영국 문학의 한 획을 그은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특유의 고요함 속 쓸쓸함을 더해주는 호숫가 정취는 아름답다. 우리에게 낯익은 시는 영화로도 알려진 '초원의 빛'이다. 초원의 빛 _워즈워스 한때 그리도 빛나던 것이 이제는 영원히 스러졌어라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 다시는 돌아갈 수 없겠지만 우리는 슬퍼하지 않으리 차라리 남겨진 것들 속에서 힘을 찾으리 지금까지 있었고 앞으로도 영원히 존재할 저 최초의 떨림에서 인간의 고통으로부터 솟아나 마음을 달래주는 생각 속에서 죽음 너머를 바라보는 신앙 속에서 지혜로운 정신을 가져다주는 세월 속에서 워즈워스의 시구 '죽음 너머를 바라보는 신앙 속에서' 같이 소강석 목사는 이해와 베풀기를 사랑한다. 2022년 시선 문학상 시 수상작 '너의 이름을 사랑이라 부른다'는 시인 소강석 목사의 12번째 시집에 대해 시인 정호승은 말했다. "이 시집은 사랑의 향기로 가득 차 있다. 시를 쓰는 그의 마음이 이미 사랑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랑에 의해서 탄생하고 존재한다. 사랑은 바로 생명이다. 그러나 우리는 삶의 순간순간 사랑의 가치를 잊고 산다. 이 시집은 사랑이야말로 인간 존재의 본질적 가치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그리고 그 사랑이 절대적 사랑에 의해 완성된다는 깨닫게 한다. 그는 이 시집에서 나비와 매미 등의 풀벌레들과 호랑이와 사자 등의 동물을 은유화해서 결국 인간의 사랑이 어떻게 실천되고 구현되어야 하는가를 이야기한다. 고독한 기도의 시간에 시를 쓰는 소강석 목사님의 음성이 낙엽과 함박눈 소리처럼 들린다." 그렇다. 믿음의 시인 소강석의 시를 통해 산중의 호랑이 울음 소리조차도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기도로 은유된다. 호랑이 18 범이 내려온다 산중 고독을 견딜 수 없어 사랑이 그리워 도시로 내려온다 더 이상 은둔할 수 없어 차라리 인간의 마을로 내려오기로 작정하고 하얀 눈 내리는 날 아스팔트 위에 발자국을 남기며 걸어온다 눈발 날리는 가로등 아래서 범이 산 너머 달을 본다 도시로 내려오니 어느새 산의 적막이 그립다 산에도 도시의 어느 허름한 골목에도 범의 외로운 발자국이 찍혀 있다. 2022년 10월 4일 94세로 별세한 김동길 교수는 생전에 말했다. “내 기력이 있는 동안 자유민주주의를 위한 주장을 멈추지 않을 겁니다. 불의(不義)를 보고 말 안 하면 용기가 없는 거지요.” “이승만 아니었으면 대한민국은 없습니다. 공화국을 세운 건 5천 년 역사에 처음 아닌가요.” 그의 삶은 94년에 걸친 직언(直言)의 한 평생이었다. 북한에 공산 정권이 들어서자 주저 없이 고향을 떠날 때 ‘자유’와 ‘민주주의’의 가치를 다시 묵직하게 설파했다. 지면과 방송, 유튜브를 가리지 않았고 유신 시절에는 민주화 운동에 투신했다. 그는 평생 결혼을 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았지만 “결혼하지 않았을 뿐 늘 사랑하고 살았고 여성을 떠나본 적도 없다”라고 말했다. 그렇듯 소강석 목사는 교회와 총회를 사랑해 어떤 목사보다 앞장서 어려운 교회와 총회 대소사에 도움의 손길을 뻗친다. 그런 갸륵한 행태는 시인 정호승이 말하듯 "시를 쓰는 그의 마음이 이미 사랑이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세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요 21:17 2024-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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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BOOK _박경호 히브리어 헬라어 번역 성경
박경호 히브리어 헬라어 번역 성경 8종은 히브리어와 헬라어로 된 원어 성경을 직접 번역 한 책으로서, 기존 한글 성경과는 차원이 다르게 번역이 되어있습니다. 어떤 책이든 번역과정에서 오번역이나 의역은 필수적으로 발생 될 수밖에 없는데 이 번역 성경은 특별한 기법으로 한글 성경과 영어 성경의 수많은 오번역을 정정하였을 뿐만 아니라 새롭게 알게 되는 사실과 놀라운 성경의 의미들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창세기'를 원어 적인 의미 그대로 단어를 재규명하며, 1대1 대응으로 번역한 결과, '탄닌'이라는 단어가 기존 한글 성경에는 '큰 바다짐승' 또는 '하마' 또는 '뱀' 등으로 여러 의미로 규정되어 있지만, 여기서는 '큰파충류'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외에도 기존 한글 성경이나 영어 성경에서는 발견하지 못한 놀라운 사실들이 원어 번역을 통해 놀랍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1인 번역자 목사님께서 30여 년 가까이 연구하시며, 한 단어, 한 단어 심혈을 기울여 원어 단어의 의미를 재규명하여 1대1 대응 번역 기법이라는 독특한 번역방식으로 기독교인들뿐만 아니라 비기독교인들도 읽기 쉽게 번역하였기에, 어렵게만 느껴진 성경이 일반인들도 교양 도서로 편안하고도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고어 체로 된 성경 문체를 현대어로 번역하되, 원어 성경의 원문을 읽는 것 같은 생동감 있고도 영상 스크린을 보듯 너무나 상세하고도 선명한 내용과 의미들을 한글을 통해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지금의 한글 성경은 원어 성경을 직접 번역한 것이 아니라, 중국어 성경과 영어 성경 등을 번역하였기에 실제 원어 성경 내용과는 상당한 차이가 납니다. 간단한 예를 들면, 마태복음에서 '한날 괴로움은 그날로 족하니라'는 괴로움이라는 단어는 헬라어 원어를 보면 '악'의 의미로 되어있기에 '그날의 악은 그날로 충분하다'라고 직역되어 있습니다. 또한, 요한복음에 '거듭나다'라는 단어는 헬라어 원어가 '위로부터+낳아지다'로 되어있기에 '사람이 위로부터 낳아지지 아니하면~' 라고 직역되었습니다. 또한, 원어가 한 단어이면 '위로부터낳아지지'처럼 붙여쓰기를 통해 한 단어로 구현해 내었습니다. 이 외에도 여러 가지 특징들이 있습니다. 히브리어&헬라어번역출판사 담당자: 김지영 010-2048-9101 peacejoy77@naver.com 2024-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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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BOOK 이단감별사 그것이 알고 싶다: 최삼경 편 _황규학 저
책 소개 최삼경은 탁명환 이후 대표적인 이단감별사로서 특정한 목사와 단체를 이단 정죄하는 데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이다. 그는 대형교회 목사들이 잘못된 기준을 갖고 이단으로 정죄되는 데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그래서 그의 교단 내에서의 활동내역에 대해서 다룰 필요가 있었다. 그는 1985년 예장합동 교단에서 예장통합 교단으로 불법으로 이명을 하여 예장통합 교단 73회기부터 96회기까지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에서 약 13년간 활동하면서 한국교회 이단 정죄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통합교단은 합동교단에서 온 최삼경에게 농락을 당하여 가장 많은 이단을 정죄하는 교단이 되어버렸다. ‘이단감별사 그것이 알고 싶다 -최삼경 편-’에서는 최삼경의 학력, 교단이명, 족보, 원로 목사 추대, 우상숭배 및 성 상납 의혹, 불법 후원금, 불법 후원교회 명단, 광성교회와 이재록으로부터 금품수수, 전광훈 목사에게 5억 요구, 이인강 목사 협박, 김의식 목사로부터 피소,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 활동, 이단 정죄의 기준(귀신론), 이단 조작을 통한 박윤식 이단 정죄, 사무장 병원 운영, 삼신론, 마리아 월경잉태론, 최삼경의 언어, 이단 정죄 영향 등에 대해 79가지 문답 형식을 갖고 최삼경의 정체성에 대해서 다루었다. 대부분 법원 판결문, 총회록, 언론 기사, 유튜브 등 객관적인 자료를 갖고 최대한 사실에 입각하여 의견 표현을 하고자 했다. 최삼경은 이미 교단에서 은퇴하였지만 여전히 언론을 통하여 공적인 활동을 하고 있어 이단감별사로서 그가 누구인지 한국교회에 알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어 이 책을 펴내게 되었다. 이 책을 보면 최삼경의 40년 이단감별사로서의 활동 내역을 상세하게 알 수 있다. 저자(글) 황규학 저자는 서울대학교(종교학과)와 장로회신학대학원(M.Div)을 졸업하고, 캐나다에서 맥매스터 대학을 수학(M.A)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Florida Center of Theological Seminary(D.Min)를 졸업하고 한국에서 강원대학교 법전문대학원(M.A)과 법대 박사과정에서 학위(Ph.D)를 마쳤다. 저서에는 ‘교회법이란 무엇인가,’ ‘당회가 살아야 교회가 산다’, ‘한국교회 상식이 운다’, ‘중심은 주변으로 주변은 중심으로,’ ‘법으로 읽는 명성교회’, ‘나의 신앙유산답사기(전북편, 전남편, 경북편)’, ‘장신대 죽은 신학의 사회’, ‘이단감별사들의 한국교회 대 사기극’이 있고, 박사논문으로는 ‘교회분열시 재산에 대한 한· 미 비교연구’가 있다. 현재 로타임즈, 뉴스와 논단을 운영하고 있으며 기독언론인협회 대표이다. 저서 나의 신앙유산답사기: 경북편 나의 신앙유산답사기: 전남편 나의 신앙유산답사기: 전북편 북한과 함께 춤을 이단감별사들의 한국교회 대 사기극 장신대 죽은 신학의 사회 법으로 읽는 명성교회 중심은 주변으로 주변은 중심으로 ISBN9791198758057 발행(출시)일자2024년 08월 30일 쪽수88쪽 크기148 * 210 mm 정가 7,7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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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BOOK _질문이 답이 될 때 _장창수 저
책 소개 삶과 신앙의 자리를 빛내는 하나님의 열여섯 가지 질문! 모든 문제의 답은 질문에 있다. 질문하는 이의 의도를 정확히 알 때 우리 인생에 찾아온 문제의 답이 풀린다. 이동원 목사, 신성욱 교수 적극 추천! 우리는 인생이 던지는 질문들에 유연하기보다는 주저하고 고민하며 번뇌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 “신은 존재하는가”, “왜 내게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가” 등 인간 실존에 대한 철학적 질문부터, 갑작스런 사고나 죽음과 같은 이해할 수 없는 상황들까지 끝없이 몰아치는 인생의 질문들에 넉다운되기 일쑤다. 도무지 답을 알 수 없고 같은 질문에도 매번 당황한다. 나름 최선을 다해 왔고, 똑 부러지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왜일까? 왜 답을 찾지 못하는가? 이 책은 그간 목회의 현장에서 성도들이 마주하고 고민했던 문제들을 성경 속에서 하나님(예수님)이 건네신 질문들을 통해 그 답을 풀이하고 있다. “네가 어디 있느냐?”, “네가 어디서 와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네 이름이 무엇이냐?”와 같은 정체성과 관련된 것부터 “어찌하여 두려워하느냐?”,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와 같은 우리의 신앙을 붙드는 내용들을 포함해 총 열여섯 가지 질문들을 통해 믿음의 답안을 내놓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우리 인생에 던지는 하나님(예수님)의 질문들을 하나하나 풀어가며 인생의 답을 찾는 기쁨이 있길 바란다. 작가정보 저자(글) 장창수 장창수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사랑하고 그 안에 담겨 있는 복음의 정수를 전하는 일에 소명을 둔 목회자요, 설교가다. 그는 변질되지 않는 원초적 복음만이 길을 잃고 방황하는 영혼들을 하나님 품으로 인도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는다. 그만큼 그의 설교 속에는 한 영혼을 향한 목자의 간절함이 배어 있다. 계명대학교 대학원에서 철학(M.A.)을,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M.Div.)을 졸업했다. 바이올라대학교에서 수학했으며, 아주사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기독교윤리학(M.A.R.)을 졸업했다. 버지니아 린치버그 소재 리버티대학교에서 설교학(D.Min)으로 목회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총신대학교 일반대학원에서 기독교교육학 박사과정(Ph.D. cand)을 수료했다. 현재 대구에 위치한 대명교회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으며, 대신대학교 재단이사장을 역임하였다. 〈매일신문〉 칼럼니스트와 대구 CBS 운영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신학대학 강의 및 CTS, CBS, C채널에서 성경강사 및 설교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저서로는 《성숙한 그리스도인 1, 2》(넥서스 크로스), 《믿음의 거장들》(킹덤북스) 외 다수가 있다. 목차 서문 추천사 1부_ 긴박한 순간 하나님의 질문은 시작된다 01. 관계를 지속하는 ‘회복의 질문’ “네가 어디 있느냐”(창 3:8-10). 02. 견고한 삶을 위한 ‘믿음의 질문’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창 16:6-11). 03. 존재의 의미를 깨우치는 ‘정체성의 질문’ “네 이름이 무엇이냐”(창 32:24-32). 04. 본질을 붙드는 ‘사명의 질문’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출 4:1-9). 2부_ 질문이 있다면 아직 희망이 있다 05. 절망을 이겨 내는 ‘희망의 질문’ “네가 무엇을 보느냐”(렘 1:11-19). 06. 간절함을 이루는 ‘소망의 질문’ “네가 낫고자 하느냐”(요 5:5-15). 07. 은혜를 배우는 ‘용서의 질문’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욘 4:1-11). 08. 참된 고백을 요구하는 ‘결단의 질문’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마 16:13-17). 3부_ 질문하는 이를 알면 답이 보인다 09. 신실한 마음을 묻는 ‘사랑의 질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요 21:15-20). 10. 창조주를 바라보게 하는 ‘고난의 질문’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막 4:35-41). 11.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는 ‘동행의 질문’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삿 6:11-18). 12. 능력의 주를 의지하는 ‘기적의 질문’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요 2:1-11). 4부_ 답은 언제나 질문 속에 숨겨져 있다 13. 하나님의 때를 이루는 ‘약속의 질문’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창 18:9-15, 21:5-7). 14. 근심을 안심으로 채우는 ‘돌봄의 질문’ “어찌 다른 일들을 염려하느냐”(눅 12:22-32). 15. 무모함을 쓸모 있게 하는 ‘확신의 질문’ “너희 마음에 무슨 생각을 하느냐”(눅 5:17-26). 16. 성숙한 믿음을 이루는 ‘긍휼의 질문’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눅 10:30-37). 추천사 이동원 목사 (지구촌교회 원로 / 목회리더십센터 대표) 이 책은 복음 전도의 훌륭한 증언이 될 수 있고, 이미 믿는 성도들의 삶의 길잡이가 될 수도 있습니다. 성경적 근거와 현대적 이야기가 우리를 긴장하게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야 할 이유를 설득합니다. 좋은 책으로 이야기하는 장창수 목사의 인도를 따라 보십시오. 당신의 가장 중요한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을 것입니다. 삶의 곤고함에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이 귀한 책을 추천합니다. 신성욱 교수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설교학) 제가 아는 장창수 목사는 타고난 설교자입니다. 설교의 전달(Preaching)도 탁월하지만, 설교의 내용(Sermon)도 설교자들이 배울 만한 요소들을 두루 갖추고 있습니다. 따라서 모든 설교자들이 배우고 흉내낼 수 있는 모범 설교로 이만한 책은 없기에 본서를 적극 추천합니다. 뿐만 아니라 코로나19로 인해 하나님 앞에서 여러 가지 의문과 질문을 갖고 있는 성도들에게도 필독서로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책 속으로 하나님은 인생들이 실패하고 힘들고 도저히 불가능한 현실 속에 있을 때 찾아오십니다. 이것이 어리석은 인간이 만든 세상 종교와는 다른 점입니다. ‘찾아오시는 하나님’이라는 문장은 우리 기독교를 잘 표현한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절망 가운데 있거나 문제 있는 인생을 찾아와 가장 먼저 ‘질문’을 던지십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과 인간의 수많은 만남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찾아오신 하나님은 그들에게 회복과 은혜를 주기 위한 첫 단초를 질문으로 시작하셨습니다. 신학을 시작한 초기에는 ‘하나님의 질문’에 대해 두 가지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알면서 왜 질문을 하시는가’였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은 왜 문제와 아픔을 한 번 더 확인시키며 힘들게 하시는가’였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대한 깊은 이해와 말씀의 묵상을 통해 하나님의 질문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질문 속에는 인간이 가진 근본적인 문제와 답이 포함되어 있으며, 참으로 따뜻한 하나님의 마음과 위로 그리고 그분의 안타까워하시는 마음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충격과 절망의 코로나 팬데믹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실까?’를 묵상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인이 아닐 것입니다. 이러한 고민과 묵상 중에 인간의 절망의 현장에 나타나 던지신 주님의 질문에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바라보았던 시각과는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고, 하나님의 질문 속에서 여전히 포기하지 않으시는 측량할 수 없는 은혜와 사랑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질문에 담긴 의미와 주님의 사랑을 전하고 싶은 마음에 성도들에게 주일 메시지로 전하게 되었고, 주변의 간곡한 부탁으로 책을 내는 용기를 얻었습니다. _서문에서 - 하나님이 범죄한 인간에게 가장 먼저 하신 ‘네가 어디 있느냐’는 질문은 책망과 경고의 의미가 아닙니다. ‘네가 내 말을 어기고 선악과를 먹었으니, 너를 찾아내어 벌을 주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어긋난 길로 가는 자녀를 향해 ‘내 품으로 돌아오라’고 외치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사랑의 음성입니다. -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답을 요구하시는 질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이미 그 답을 알고 계십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았든지, 앞으로는 우리와 함께하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바로 ‘내가 너와 함께하고 있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음성인 것입니다. - 우리는 문제나 절망 속에서 하나님에게 집중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만을 붙잡아야 합니다. 그때에야 비로소 하나님은 우리를 찾아오시고, 새로운 인생을 살게 하시고, 삶의 문제 자체를 당신의 방법으로 해결해 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야곱이 만난 하나님, 곧 ‘나에게 져 주시고, 문제 있는 나를 안아 주시고, 축복해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 우리에게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을 때, 그 순간이 하나님을 찾아야 하는 시간입니다. 능력이 없어도, 돈이 없어도, 건강이 없어도, 나이가 많아도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출 3:12)라고 모세에게 약속해 주십니다. 전능하신 엘로힘의 하나님이 당신의 지팡이를 손에 들려주시겠다는 것입니다. - 신앙의 모습은 ‘산을 오르는 신앙’과 ‘방주를 짓는 신앙’ 두 가지로 나누어집니다. 산을 오르는 신앙이란, 신앙생활을 자신의 목적을 위해 하는 모습입니다. 이러한 신앙은 그 수준이 높아 보여도, 하나님의 심판 때에 아무리 높은 산이라도 물에 잠겼듯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나 방주를 짓는 신앙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신앙의 모습입니다. 맨땅에 방주를 지어도 비가 오면 방주는 떠오르듯이, 고난 가운데서 더욱 성장하는 신앙인 것입니다. - 우리의 형편을 이미 알고 계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우리의 삶이 절망 속에 있을지라도, 주님은 우리에게 ‘너에게 무엇을 해주기 바라느냐’고 물으십니다. 우리가 이 음성을 마음에 새길 때, 희망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를 찾아오시고, 지켜보시며, 물으십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 때때로 성도들은 하나님을 자신의 장신구로 전락시킬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인 존재로 여기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도 그만, 안 해도 상관없다고 여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는 비록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의 생각으로는 이해되지 않더라도 ‘예’라고 대답하는 순종이 필요합니다. - 예수님을 거부한 사람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는 예수님의 질문에 대답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답은 ‘네가 믿고, 네가 만나고, 네가 체험한 예수가 누구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인생의 가장 중요한 질문인 동시에 인생의 돌파구가 되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도 이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아무리 모태신앙이고 교회에 수십 년을 출석했다 해도 결코 구원과 죄 사함을 받지 못하면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 그리스도인 중에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가장 우선으로 사랑하느냐는 것입니다. 다른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우선순위에 놓을 때 하나님은 큰 은혜를 베푸십니다. - 인간은 절망에 빠져 하나님을 잊은 채 살아갑니다. 오히려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이 더 안타까워하십니다. 피조물인 인간은 하나님에 대해 별 관심을 두지 않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와 교제하기를 원하며 먼저 찾아와 주십니다. 이 사실을 깨달은 성도들은 더는 절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어려움과 형편을 모두 아심을 믿습니다. 하나님이 곁에 가까이 계심을 믿습니다. 이것을 경험하면 상황은 달라진 게 없어도 삶에 기쁨이 넘칩니다. 절망이 희망으로 변화됩니다. 기본정보 ISBN9788953140141 발행(출시)일자2021년 05월 21일 쪽수284쪽 크기143 * 211 * 20 mm / 372 g 가격 15,000원 2024-07-18
G.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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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히브리서Hebrews
베들레헴 히브리서Hebrews는 그리스도의 충만을 버리고 옛 생활의 공허 속으로 돌아가려는 유대인 신자들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구원받은 사람들은 그들의 영적 유산 가나안에 들어가 주의 평안을 누릴 특권이 있다. 이런 시가 있다. 실 _월리엄 스태포드 네가 따르는 한 가닥 실이 있다 그 실은 변화하는 것들 사이로 지나간다 하지만 그 실은 변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네가 무엇을 따라가는지 궁금해 할 것이다 너는 그 실에 대하여 설명해야 한다 그러나 사람들에게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 실을 붙잡고 있는 한 너는 길을 잃지 않는다 비극은 일어나기 마련이고 사람들은 상처입거나 죽는다 그리고 너는 고통 받고 늙어간다 시간이 하는 일을 너는 어떻게도 막을 수 없다 그래도 그 실은 절대로 놓지 말라 히브리서가 강조하는 것은 우리의 삶에서 절대 놓아서는 안 될 실 같은 '믿음으로by faith'이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받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믿음으로 살기도 해야 한다. 히브리서 1장 1절과 2절은 이렇게 말씀한다. 하나님께서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번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시고 이 마지막 날들에는 그의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은 천국에 올라가는 것의 표상이 아니다. 그것은 적을 정복하고 믿음으로 당신의 영적 유산을 요구하는 것의 비유이다. 그러나 너무도 많은 사람이 구약의 이스라엘인들처럼 불신앙의 광야에서 방황을 하고 옛 생활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스펄전 목사가 이런 말을 했다. 진리의 실들을 가지고만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그 실들을 가지고 영광의 겉옷을 짜셨다. 그는 그 옷을 입으시고 하나님의 모든 진리를 주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다. 우리는 그 말씀에 응답해야 한다. 우리의 응답이 우리가 사는 삶의 종류를 결정하고 우리가 요구하는 영적 유산의 분량을 결정한다. 이 심오한 편지를 묵상할 때 스스로 이렇게 물어야 한다. 나는 옛 생활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가. 나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나의 유산을 믿음으로 열심히 요구하고 있는가. 나는 불신앙의 광야를 방황하고 있는가. 아니면 주의 성취하신 일과 신실하신 말씀 안에서 평안을 누리고 있는가. 2025-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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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 빌레몬서Philemon
작은 교회들 빌레몬서Philemon는 그리스도인들의 화해와 관계에 대한 편지이다. 그리스어로 쓸모 있는 뜻을 지닌 이름의 오네시모는 골로새의 빌레몬이라는 신자에게서 도망친 노예였다. 분명히 오네시모는 빌로몬의 것을 도둑질해 도망쳤을 것이다. 바울이 로마에서 가택 연금을 당하고 있을 때 오네시모를 만났다. 바울의 전도로 그는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바울은 골로새 교회에 보내는 편지와 동시에 이 편지도 썼던 것 같다. 바울은 이 편지를 오네시모가 가지고 빌레몬에게 돌아가게 했다. 바울은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그의 집안에 다시 받아들여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오네시모를 노예가 아니라 주 안의 한 형제로 받아 달라고 호소했다. 이런 시가 있다. 행복 _허영자 눈이랑 손이랑 깨끗이 씻고 자알 찾아보면 있을 거야 깜짝 놀랄 만큼 신바람 나는 일이 어딘가 어딘가에 꼭 있을 거야 아이들이 보물찾기 놀이 할 때 보물을 감춰 두는 바위 틈새 같은 데에 나무 구멍 같은 데에 행복은 아기자기 숨겨져 있을 거야 행복을 찾는 일을 보물찾기 놀이와 같은 점도 있다. 행복은 생활 주변에 숨어 있는 것으로 순수하고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찾을 수 있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바울이 오네시모를 로마의 대도시에서 만난 것도 보물을 감춰 둔 바위 틈새 같은 데서 찾은 것과 다름없었다. 사실 그것은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였다. 2025-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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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디도서Titus
작은교회들 디도서Titus는 바울이 디도에게 보내는 목회서신이다. 바울이 디도가 그리스도를 믿게 전도하고 주의 일을 하게 했다. 디모데처럼 디도는 바울의 특별한 조수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바울은 그 조수들을 사도를 대리하는 사역자들로 교회들에 보냈다. 이 짤막한 편지에서 바울은 디모데전서에서 썼던 것들과 비슷한 지시들을 하고 있다. 이런 시가 있다. 해바라기 씨 _정지용 해바라기 씨를 심자 담모퉁이 참새 눈 숨기고 해바라기 씨를 심자 누나가 손으로 다지고 나면 바둑이는 앞발로 다지고 괭이가 꼬리를 다진다 우리가 눈 감고 한 밤 자고 나면 이슬이 내려와 같이 자고 가고 우리가 이웃에 간 동안에 햇빛이 입 맞추고 가고 해바라기는 첫 시약씨인데 사흘이 지나도 부끄러워 고개를 아니 든다 가만히 엿보러 왔다가 소리를 깩 지르고 간 놈이 오오 사철나무 잎에 숨은 청개고리 고놈이다 해바라기 씨를 정성껏 심은 후에 싹을 트이기 위해 보살피듯 디도도 그렇게 하기를 바울은 권면한다. 우리가 선행으로 구원받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선행은 구원을 받으면 행하게 되는 체험 가운데 하나다. 분명히 크레테의 성도들은 믿음을 실천하기보다는 믿음을 고백하는 것을 더 좋아했던 것 같다. 디모데전서에서 바울은 지교회의 지도자들에 대해 강조한다. 반면에 디도서에서 바울은 지교회의 조직에 대해 강조한다. 바울은 감옥에서 풀려난 뒤 이 편지를 고린도에서 썼던 것 같다. 디도가 이 편지를 받았을 때 크레테에서 봉사하고 있었다. 2025-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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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디모데후서2Thimothy
디모데후서2Thimothy는 바울의 편지들 가운데 마지막 편지이다. 이 편지가 특별한 관심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그것이 바울의 마지막 생활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그 편지의 수신인에 대해서도 알려주기 때문이다. 이런 시가 있다. 인디언 기도문 _노란 종달새 바람 속에 당신의 목소리가 있고 당신의 숨결이 세상 모든 만물에게 생명을 줍니다 나는 당신의 많은 자식들 가운데 작고 힘없는 아이입니다 내게 당신의 힘과 지혜를 주소서 나로 하여금 아름다움 안에서 걷게 하시고 내 두 눈이 오래도록 석양을 바라볼 수 있게 하소서 당신이 만든 물건들을 내 손이 존중하게 하시고 당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내 귀를 예민하게 하소서 당신이 내 부족 사람들에게 가르쳐 준 것들을 나 또한 알게 하시고 당신의 모든 나뭇잎 모든 돌 틈에 감춰 둔 교훈들을 나 또한 배우게 하소서 내 형제들보다 더 위대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장 큰 적인 내 자신과 싸울 수 있도록 내게 힘을 주소서 나로 하여금 깨끗한 손 똑바른 눈으로 언제라도 당신에게 갈 수 있도록 준비시켜 주소서 그래서 저 노을이 지듯이 내 목숨이 사라질 때 내 혼이 부끄럼없이 당신에게 갈 수 있게 하소서 바울은 63년 봄 로마의 가택 연금에서 풀려났다. 그는 아드리아해를 건너 마케도니아로 여행했다. 그는 빌립보, 에베소, 골로새, 라오디게아 등지를 방문했다. 로마의 대화재가 64년에 발생했다. 바울은 64년과 65년에 아마도 바다로 스페인에 갔던 것 같다. 66년 여름에 그는 소아시아의 에베소로 다시 가서 디모데에게 그곳의 관리를 맡기고 떠났다. 67년 여름에 그는 마케도니아에서 디모데에게 편지를 썼고 빌립보와 고린도를 방문했던 것 같다. 그는 지중해의 섬 크레테로 가서 디도를 남기고 떠났다. 그는 67년 가을에 에베소에서 디도에게 편지를 썼다. 그리고 그는 밀레도, 드로아, 고린도 등지를 방문하고 니고볼리에 얼마 동안 머물렀다. 바울은 5년의 자유를 누리고 68년 봄 구리 세공업자 알렉산더의 고발 때문에 다시 체포되었던 것 같다. 그는 재판을 받기 위해 로마로 압송되었다. 그는 로마에서 지하 감옥의 독방에 갇혔다. 그곳에서 그는 다시 풀려나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결국 처형당했다. 그는 죽음과 그의 사역의 마지막과 그의 대부분의 친구들의 배신과 처형의 두려움을 마주하며 이 편지를 그의 사랑하는 영적인 아들 디모데에게 썼다. 이 편지는 디모데에게 주 안에서 언제나 강하게 있으라는 격려와 위험의 때를 알리는 설명과 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빨리 오라는 재촉이 담겨 있다. 아주 개인적인 사연을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편지는 교회를 돌보는 목회 사역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바울은 이제 주의 목소리를 통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알았다. 모든 희생 제사는 희생 제물의 머리에 술을 붓는 신주神酒로 시작한다. 바울은 로마의 지하 감옥에서 그 술처럼 하나님의 제단에 이미 부어진 자신의 마지막을 예감했다. 그래서 인디언 기도문처럼 저 노을이 지듯이 자기 목숨이 사라질 때를 바라보며 바울은 디모데에게 너는 겨울 전에 어서 오라 부탁한다. 이 말씀은 기회들이 우리를 언제나 기다려주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 겨울철이 일단 시작되면 디모데는 로마로 쉽게 여행할 수 없었고 그의 사랑하는 영적인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볼 수 없었다. 영원히 사라질 수 있는 기회를 당신이 오늘 무시하는 것이 있는가. 당신이 만나야 될 사람이 있고 결정해야 될 일들이 있는가. 오늘은 당신의 것이다. 내일은 너무 늦을지도 모른다. 성경은 당신에게 겨울 전에 어서 오라 말씀한다. 2025-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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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디모데전서1Timothy
디모데전서1Timothy는 디모데후서와 디도서를 포함한 세 목회서신pastoral letter들 가운데 하나다. 바울은 이 목회서신에서 목사들과 교회 지도자들이 지교회에서 어떻게 행동하고 지도해야 할지를 권면한다. 첫째 바울은 진리를 설교할 것을 강조한다. 둘째 바울은 자격을 갖춘 지도자들을 임명할 것을 지시한다. 셋째 바울은 교회의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어떻게 보살펴야 할지를 가르친다. 이런 시가 있다. 종례시간 _도종환 얘들아 곧장 집으로 가지 말고 코스모스 갸웃갸웃 얼굴 내밀며 손 흔들든 너희도 코스모스에게 손 흔들어 주며 가라 쉴 곳 만들어 주는 나무들 한 번씩 안아 주고 가라 머리털 하얗게 셀 때까지 아무도 벗해 주지 않던 강아지풀 말동무해 주다 가라 얘들아 곧장 집으로 가 만질 수도 없고 향기도 나지 않는 공간에 빠져 있지 말고 구름이 하늘에다 그린 크고 넓은 화폭 옆에 너희 좋아하는 짐승들도 그려 넣고 바람이 해바라기에 그러듯 과꽃 분꽂에 입 맞추다 가라 이 시는 어느 교사가 종례시간에 아이들게 전달하는 말로 되어 있다. 하굣길에 아이들이 잘 귀가하기를 바라는 선생의 마음속에 자연 친화적인 삶의 태도와 아이들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 잘 나타난다. 지교회에서 장로들을 세우는 기초를 말하는 디모데전서는 교회의 신자들을 성직에 세우기 위한 사도의 목회지침서다. 본질적으로 디모데전서는 교회 조직과 행정을 설명하는 목회자 교범이다. 바울의 말씨는 실제적이고 영적이다. 그 주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에서 필요한 목회 지침이다. 2025-0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