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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_ 사무엘상1Samuel
바세바 사무엘상1Samuel과 사무엘하는 원래 히브리어 정경에서 한 권의 책이었다. 그런데 그리스어 구약성경을 편집한 70인역의 번역자들이 두 권으로 나누었다. 사무엘상의 주요 인물은 사무엘, 사울, 다윗 세 사람이다. 이스라엘의 왕조 역사가 전개되면서 그들의 생애는 부분적으로 겹친다. 사무엘은 마지막 사사였다. 사울은 최초의 왕이었다. 그럼에도 사울이 왕조를 세운 사람으로 언급되지 않는 이유는 유다 족속이 아닌 다른 족속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유다 족속의 다윗을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통치자로 선택하셨다. 이스라엘 백성이 다른 민족들처럼 하나님 대신 왕을 가지고 싶어 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울을 훈련의 수단으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셨다. 이런 시가 있다. 한숨_ 권순남 내가 한숨을 쉬니 엄마가 아가 무슨 한숨을 자꾸 쉬노 하신다 왜 아이들은 한숨을 못 쉴까 한숨을 쉴 때마다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다 우리들도 한숨을 쉴 수 있었으면 평생을 아동 문학가이자 교육자로 살았던 이오덕 선생이 엮은 나도 쓸모 있을 걸 이라는 책에 실린 초등학생의 동시다. 사무엘서는 사람과 국가들의 일에 하나님께서 간섭하시는 것을 보여 준다. 사람이 자신의 일을 결정하는 건 자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인간의 자유로운 결정들에 한숨을 쉬실 경우가 많다. 사람의 일이나 국가의 일이 하나님의 한숨을 쉬시게 할 때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그 일들을 늘 살펴보고 인도하고 간섭하신다. 2026-06-07 교보.알라딘.예스24 전자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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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총회의 정신적 정도(正道)
사익에 대한 열망, 독선과 결합하면 파국의 카운트다운(countdown 마지막 점검)에 들어가 총회 눈귀 흐리는 부정 부패 난제 해결 주역은 결국 신앙과 청지기 의식 교계 언론은 자체 이익보다 팩트 전해야 부정직한 직원에게 공통된 점은 권력과 사욕의 압력과 유혹 속에서 보인 ‘신앙에 대한 무시’ 위계(僞計)는 속임수나 상대방에게 오인, 착각, 부지를 일으키고 상대방의 그러한 심적 상태를 이용하여 불법한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다. 예컨대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에 있어서 ‘위계’란 행위자의 행위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상대방에게 오인, 착각, 부지를 일으키게 하여 그 오인, 착각, 무지를 이용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상대방이 이에 따라 그릇된 행위나 처분을 하였다면 이 죄가 성립한다. 납골당 18년 적폐 해결자 정금 총회장 김종준 목사 때인 2020년 3월 23일 분립 된 중앙노회(노회장:김용제 목사)는 2023년 8월 11일 서울 연지동 기독교연합회관 카페 마레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총회임원회(총회장:권순웅 목사)에 총회 행정 문서 불법 유출에 대한 공정하고 투명한 조사를 촉구했다. 본 교단 기관지 주간 기독신문은 그에 관한 기사를 다음과 같이 게재했다. 기자회견에서 중앙노회장 김용제 목사는 지난 2022년 12월 30일 총회 전체 휴무일에 “불상의 인물이 총회사무실에 침입해 총회 전산망에 접속하여 중앙노회 52회 1차 임시회(2021년 8월 31일)에서 재가입과 해벌이 결의된 이바울 목사의 개인신상 파일 화면을 불법으로 촬영해 사법에 제출했다”라며 해당 자료를 공개했다. 해당 자료는 총회 전산망에서 노회 관리에 분류된 자료 중 ‘회원 정보 등록 관리’ 카테고리 내 ‘면직/제명 등록 관리’ 페이지로 이바울 목사가 2019년 7월 30일 자로 면직 처리된 홈페이지의 캡처 화면이다. 이와 관련 중앙노회 측은 “총회 결의와 노회 간 합의를 근거로 혜린교회(이바울 목사)는 중앙노회로 가입하고 정당한 절차를 거쳐 총회 전산 등재를 요청했으나 미루는 이유는 분명하지 않으며 계속 미루다가 급기야 총회사무실 불법 침입에 개인정보 유출 사건까지 이르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총회임원회는 지난 7월 27일 제28차 임원회에서 중앙노회에서 청원한 총회 행정 문서 불법 유출 및 이바울 목사와 혜린교회 소속 확인 요청을 부서기와 부회록서기에 맡겨 확인하기로 결정했다. 2022년 12월 30일 총회 전체 휴무일에 “불상의 인물이 총회사무실에 침입해 자행한 이 범행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총회 본부의 유력한 직원들이 했을 것이라는 말이 돌고 있다. 이 사건은 세칭 워터게이트 사건(Watergate scandal) 판박이다. 이 추문은 1972년부터 1974년까지 2년 동안 미국에서 일어난 각종 일련의 사건들을 지칭하는데 미국 닉슨 행정부가 베트남전 반대 의사를 표명했던 민주당을 저지하려는 과정에서 일어난 불법 침입과 도청 사건, 이를 부정하고 은폐하려는 미국 행정부의 조직적 움직임 등 권력 남용으로 말미암은 정치 스캔들이었다. 사건 이름은 당시 민주당 선거운동 지휘 본부(Democratic National Committee Headquaters)가 있었던 워싱턴 D. C.의 워터게이트 호텔에서 유래한다. 처음 닉슨과 백악관 측은 ‘침입 사건과 정권과는 관계가 없다’라는 태도를 고수했으나 1974년 8월, "스모킹 건"이라 불리는 테이프가 공개됨에 따라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측근도 그를 떠나게 되었다. 닉슨은 탄핵안 가결이 확실시되자 탄핵으로 수감 된 박근혜와 달리 1974년 8월 9일에 대통령직을 사퇴해 사법 면탈(免脫)됐다. 이로써 그는 미 역사상 최초이자 유일한 임기 중 사퇴한 대통령이 되었다. 성경이 말씀하는 정의에 대한 열망은 사회가 발전하며 자연스레 자라난 국민의 집합적 심성(mentalite)이다. 모세 율법의 눈에는 눈 식으로 악을 응징하는 드라마며 영화가 흥행몰이를 하는 현상이 방증하듯 그 에너지는 가공할 만하다. 그 힘이 제대로 쓰일 때 우리 사회는 도약할 것이다. 하지만 그 열망이 더불어민주당처럼 내로남불식 독선, 타 집단에 대한 혐오, 제도에 대한 불신과 결합 될 때, 돌이킬 수 없는 푸틴의 러시아처럼 파국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될 수 있다. 자신을 희생하는 일에 기꺼이 나설 사람은 세상에 없다. 그러나 모두 희생을 거부한다면 공멸할 게 분명하기에 희생하는 것이다. 모두 죽는 것보다 나은 길이기 때문이다. 그걸 이끌어야 하는 게 총회 지도자들의 소명이다. 세상은 항상 변하기에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지만 바로 그렇기에 같은 일이 두 번 일어나기는 쉽지 않다. 한 번은 우연이지만 두 번은 우연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일이 두 번 일어난다면 거기엔 반드시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한 번 일어난 일은 다시 일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다. 그러나 두 번 일어난 일은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다. 한 번과 두 번은 단순한 차이가 아니라 차원이 다를 수 있기에, ‘어쩌다 한 번’ 일어날 수 있는 일이 두 번 이상 일어난다면 그냥 넘기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좋은 일이면 얼마나 좋겠는가마는 그렇지 않으니 말이다. 그러므로 차제에 총회에 불이익을 안긴 총회 지도자나 직원은 그 죄의 유무와 범위에 따라 징계를 해야 할 것이다. 알아야 할 것을 갖추지 못한 무식한 지도자는 지도자가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 그 정신을 역설적으로 표현한다면 자기 잘못을 모르는 지도자, 총회를 부패시키는 실정(失政)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 사람은 지도자가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는 뜻이다. 총회 정치인들은 모두가 총회보다는 그 알량한 권력, 정치보다는 이권의 노예같이 움직이고 있다. 생각 있는 신자이기만 해도 공동체 안에서 그 정도의 이기주의자는 아닐 것이다. 무지는 무책임이라는 한계를 넘어 나와 우리가 아니면 안 된다는 지도자까지 총회 전면에 나서고 있다. 성경의 정의는 ‘더 많은 하나님의 백성이 그 자녀다운 삶과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의무’라는 엄연한 진리를 말씀한다. 총회가 지향해야 할 역사의 공통된 정신적 정도(正道)가 있다. 그것은 진실, 자유, 인간애의 길이다. 그렇듯 총회 역사의 물줄기도 성경적 진실과 자유에 따른 윤리적 가치, 즉 선한 길을 찾아 구현하는 과정이다. 그럼에도 총회 각 회기는 그 진실과 인간애로 가는 정도를 역행하고 부정하는 편 가르기와 투쟁의 방법을 택했다. 우리 총회 지도자에게 주어진 최선의 권리와 의무는 교회 공익을 위하는 자유와 인간애의 공동체를 위한 선택과 믿음의 사회를 향한 전도의 길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였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으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께로 나서 왔음이라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니라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내 말을 들을 줄 알지 못함이로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 너희 중에 누가 나를 죄로 책잡겠느냐 내가 진리를 말하매 어찌하여 나를 믿지 아니하느냐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 하였음이로다 요 8:42-47 2026-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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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빚이 많은 부전교회 빛이 된 허은 목사
더디고 외롭지만, 진실은 늘 누군가의 작고 단단한 발걸음을 따라온다. 세상엔 감추어진 죄악이 많다. 강한 힘으로 진실을 억누르려는 자들도 넘쳐 난다. 하지만 아무리 견고해 보이는 거짓의 성도 결국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여리고 성에서의 아간의 몰락처럼, 진실을 마주할 시간은 예상보다 훨씬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빛과 빚과 빗은 다같은 말이며, 다 다른 말이다. 빛에서 빚이 나오고 빚에서 빗이 나온다. 빗이 있는데 빚을 덜게 되고 빚을 덜게 될 때 빛이 비치기 때문이다. ‘당분간’ 총회는 여전히 깊이깊이 부패할 것이다. 당분간 노회는 여전히 돈바람에 나부끼고 있을 것이다. 당분간 교회는 각자 나름대로 잘 살아 있을 것이다. 당분간 해도 달도 날마다 뜨고 질 것이다. ‘하나님 하나님은 어떠세요’ 라고 묻는 내 믿음도 당분간 편안하게 흔들리고 있을 것이다. 이 총회 탁류는 흐르고 흘러 몇몇 총대를 살찌우고 그 곁에서 사람들은 잘 살아 있을 것이다. 해와 달도 부패한 그들도 누릴 수 있게 변함없이 뜨고 질 것이다. 뭇 생명과 별들의 움직임은 저 하늘의 뜻인데 믿음이 아니고는 그걸 온전히 알 도리는 없다. ‘당분간’은 잠시 동안을 말한다. 그것은 짧은 시간이다. 그러나 수십 만 년 인류사도 수억 년의 자연도 수십 억 년 별들의 시간도 잠깐이다. 하나님 앞에서 ‘당분간’은 너무 큰 말 그래서 ‘하나님이 없다’ 저희끼리 속살거리는 부패한 자들에게 사실 심판으로 알게 모르게 곧 다가올 그 말은 무서운 말이다. 새벽 기도에 신학생으로서 전도사로서 울었다. 목사가 되어서도 자라지 않는 믿음 소망 사랑을 안고 울곤 했다. 그리고 흘러간 겨울 저녁 굴뚝 연기 같은 것이 또는 먹다 내려놓은 숟가락 같은 것이 돌아오지 않는 믿음의 소명을 되돌아와 건드리면 개미처럼 땅강아지처럼 작고 서러워지기도 했다. 이제 목사가 되는 걸까. 밥 먹어야지 부르던 저녁 굴뚝 연기가 있었고 다 못 먹고 숟가락 내려놔야 했던 그 옛날로 불려가서 작고 서럽고 외로운 무엇이 되는 것 같은 느낌 탓에... 호암상은 1990년 이건희 삼성 회장이 호암 이병철 선생의 인재제일과 사회공익 정신을 기려 사회 각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이루어 학술·예술 및 인류 복지증진에 크게 공헌한 인사들을 현창하기 위해 설립 제정한 상이다. 학술 예술 및 인류복지증진에 공헌한 인사를 시상하기 위해 1990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제정하였다. 시상분야에 따라 과학상 공학상 의학상 예술상 사회봉사상으로 나뉘며 이외 분야에 특출한 업적을 이룩한 인사에게 시상하는 특별상이 있다. 연간 후보자를 접수하나 매년 11월 30일까지 접수된 후보자들이 차년도 수상자 선정을 위한 심사대상이 된다. 심사는 매년 12월에서 차년도 4월 초까지 진행되며 수상자는 4월에 언론과 호암재단 홈페이지를 통해 발표된다. 현재 호암상 수상자의 국적은 불문하지만 한국계 인사여야 한다는 제한이 있다. 매년 6월 1일 서울의 호암아트홀에서 시상식이 있고 이어서 신라호텔에서 축하연이 거행된다. 또한 시상식을 전후하여 전국의 주요 연구소 대학 고교 등에서 수상자의 기념강연이 펼쳐진다. 대한민국의 노벨상으로 일컬어진다. 수상자에게는 상장과 순금 메달(187.5g) 그리고 상금 3억 원이 수여 된다. 유구한 교단 역사의 대표 교회 가운데 하나인 1932년 설립 94주년의 부전교회가 2026년 5월 교단을 탈퇴한다고 하는 시대가 됐다. 그 와중에 하나님 은혜가 깃든빛을 지닌 부산의 어거스틴 허은 목사가 그 가운데 있다는 사실이다. 이제 소재열 목사가 그의 법으로 이러니 저러니 하는 총회에 이런 일도 있던 때가 있었다. 2018년 7월 9일 11시 총회회관 5층 회의실에서 제1회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총회장상 수여식이 있었다. 총회의 위상을 높이고 하나님 영광 드러내는 사역을 감당한 개인 교회 단체들을 발굴해 기리기 위한 행사이다. 제102회 총회 결의에 따라 열린 총회장상은 개인의 밀알상 교회의 참빛상 그리고 단체의 등대상 등으로 조촐하게 수여됐다. 총회장상을 헌의안으로 올린 공이 있는 조승호 목사는 말했다. “총회에 그동안 조사하고 치리하는 위원회는 많았지만 상주는 위원회가 없었던 것이 안타까워 헌의를 했는데 총대들이 기꺼이 허락해 주었습니다.” 이날 개인의 밀알상은 새에덴교회 소강석 목사 성남농인교회 이영빈 목사 암사제일교회 정상권 장로 새로남교회 오덕성 장로가 각각 받았다. 교회의 참빛상은 신령교회 현종규 목사 예광교회 최형묵 목사가 수상했다. 단체의 등대상에는 함평노회 군선교회 대구지회 서울강남노회 주일학교연합회 등이 수상했다. 수상자 대표로 단에 선 소강석 목사는 그간 받은 수많은 상에 비해 아주 소박한 상임에도 매우 단단한 소회를 밝혔다. “모든 것을 총회를 위해 꽃피우는 마지막 삶으로 알고 살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옥에 티랄까 미흡한 것은 단체의 등대상에 2017년 영동중앙교회 분쟁을 총회재판국의 판결이 아닌 협상의 공증으로 해결한 제101회 재판국장이 빠진 것과 소문에 의하면 분쟁과 부정에 오간다는 돈에 비해 상금이 턱없이 너무 적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제101회 총회재판국장은 불난 교회 재건에 힘쓴 노회보다 훨씬 힘든 영동중앙교회 분쟁을 재판이 아닌 상담에 의한 합의로 분쟁의 불길을 끝냈기 때문이다. 그는 총회 실세 총대 등 어느 것 하나 소홀함이 없이 다 감당하고 있다. 그런 그의 공을 기리지 못한 것은 제1회 총회장상의 적지 않은 흠이랄 수 있겠다. 내년 제2회 총회장상에는 이번 일을 거울삼아 제102회 재판국장 허은 목사에게 반드시 그 상을 수여해야 할 것이다. 그는 영동중앙교회 목사 측에 십억 원을 지불한 것보다 더 훌륭하게 전주동부교회 분쟁 건을 돈 한 푼 안 들이고 합의서(당한 목사 쪽은 항복서라고 함) 한 장만으로 수년 간 지속될 지옥 같은 분쟁을 단 기간에 해결했기 때문이다. 총회재판국 총회선거관리위원회를 비롯한 사설 언론들 돌아가는 행태를 보면 유서를 쓰기 딱 좋은 믿음의 나날이다. 밤새워 기도하며 쓴 유서를 조잘조잘 읽다가 꼬깃꼬깃 구겨서 탱자나무 울타리에 픽 픽 던져버리고 또 하루를 음험하게 그을리는 굴뚝새처럼 자기가 쓴 유서를 이해할 수가 없어서 종일 들여다보고 있는 촉새처럼 길고도 지루한 유서를 담장 위로 높이 걸어놓고 갸웃거리는 기린처럼 줄 위에 평생 유서만 쓰다 죽는 거미처럼 총회에서 총대들이 쓴 유서를 심사하고 ‘참 잘 썼어요’ 한다. 그리고 총회장이 ‘당장 죽어도 좋겠어요’ 하며 총회장상을 주고 돌아오는 저녁처럼 우리는 ‘모든 죽어가는 것들’ 중 하나이다. 탄생과 더불어 죽어간다. 새 짐승 벌레 총대의 한 동작 한 동작은 다 유언을 적는 일이 된다. 이것은 비관이 아니다. 믿음의 삶은 하나님의 상을 위해 죽음으로 끌려가는 두려운 여행이 아니라 죽음과 함께 가는 신비한 천국여행이다. 빛과 빚과 빗은 다같은 말이며, 다 다른 말이다. 빛에서 빚이 나오고 빚에서 머리카락을 가지런히 빗어 정돈하는 빗이 나온다. 빗이 있는데 빚을 덜게 되고 빚을 덜게 될 때 빛이 비친다. 그렇듯 빚과 어려움이 많은 부전교회가 하나님의 공의를 전하고 실천하는 허은 목사로 인해 부전교회는 빚에서 벗어나고 빗나간 길에서 벗어나 빛나게 될 것이다. 2026-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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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김종준 목사 총회 심장
토끼는 10m 앞의 거북이를 영원히 따라잡지 못한다. 토끼가 전진하면 거북이는 항상 그 10분의 1만큼 더 가 있게 되고, 그런 과정이 영원히 반복되기 때문이다. 이 터무니없는 ‘제논의 역설’의 오류를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일은 2000여 년 지나 17세기 중반 미·적분학이 정립됨으로써 비로소 가능해졌다. 영원히 쪼개는 과정이지만, 특정 시간·거리 안에서만 성립하고, 그 구간을 넘어서면 토끼가 앞서게 된다는 것이다. 현대그룹 창업주 회장 정주영(鄭周永, 1915년 11월 25일 ~ 2001년 3월 21일)은 평생을 통해 “일은 머리가 아니라 태도가 만든다”는 철학을 강조했다. 그는 성공보다 실패의 원인을 더 중요하게 봤고, 사람을 망치는 것은 능력 부족이 아니라 잘못된 습관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정주영 회장이 반복해서 경계한 ‘바보짓’ 네 가지는 지금 시대에도 그대로 통한다. 1. 안 해보고 “안 된다”고 먼저 말하는 것 정주영 회장이 가장 싫어한 말이 “안 됩니다”였다. 시도조차 하지 않고 불가능을 단정하는 태도는 성장의 문을 스스로 닫는 것과 같다.도전의 여지를 지우면 평생 같은 자리만 맴돌게 되고, 가능성을 본 사람에게 기회가 넘어간다.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바보짓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2. 책임은 피하고 변명부터 찾는 것 문제가 생기면 환경·상사·상황 탓을 하는 사람은 절대 성장할 수 없다. 정주영 회장은 책임을 회피하는 사람에게는 일을 맡기지 않았고, 이유를 대기 전에 해결책을 먼저 찾는 사람을 높게 평가했다.변명은 스스로를 속이는 기술일 뿐이고, 책임을 지는 사람만이 신뢰와 기회를 얻는다. 3. 작은 돈과 작은 시간을 가볍게 쓰는 것 정주영 회장은 “돈은 큰돈이 새는 게 아니라 작은 돈이 새서 없어진다”고 말했다. 하루하루 흘러가는 시간도 마찬가지다.작은 지출과 작은 시간을 하찮게 여기면 결국 인생 전체가 느슨해진다. 부자가 되는 사람과 가난한 사람의 차이는 큰 결단보다 작은 습관에서 갈린다. 4. 사람을 함부로 대하고 인맥을 소모품처럼 쓰는 것 정주영 회장은 사람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래서 상대의 직업·나이·지위를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똑같이 예의를 갖췄다.반대로 사람을 이용하려고 들거나 관계를 쉽게 버리는 사람은 결코 크게 성공하지 못한다고 했다. 인맥은 쓰는 것이 아니라 ‘쌓는 것’이라는 그의 철학은 지금도 그대로 적용된다. 정주영 회장이 남긴 교훈은 화려한 관리 기법이나 성공 전략이 아니다. 시도하는 태도, 책임지는 자세, 사소한 습관, 사람에 대한 존중이 인생의 방향을 결정한다는 단순한 원리다.큰 성공은 특별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바보짓을 피할 줄 아는 사람이 만들어내는 결과라는 메시지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세상에 그가 있었다면 우리 총회에는 정금 총회장 김종준 목사가 있어 확신과 소망을 더해준다. 제104회 총회장 김종준 목사는 총회의 심장이자 살갗이고 꼭짓점이자 마침표다. 그런 그가 총회 총회자 석에 진지한 모습으로 총대들의 결의를 결정하는 사회를 봤다. 2019년 9월 26일 김종준 총회장은 단상에서 발언대 석으로 내려오면서까지 운영이사회 폐지의 당위성에 대해 강조했다.. 한성노회가 2020년 1월 31일 새서울교회(전주남 목사)와 목양교회에서 각각 분립예배를 드리고 새로운 출발을 다짐했다. 한성노회는 제104회 총회에서 조직된 한성노회분립위원회는 위원장 유선모 목사의 올곧고 지혜로운 조정으로 풀릴 수 없는 목양교회 재산권을 놓고 벌인 오랜 갈등을 종식하게 됐다. 오전 11시 30분 새서울교회(전주남)에서 드린 한성노회 분립예배에서 부총회장 소강석 목사가 ‘동서남북을 바라보라’(창 13:14~18)는 제목으로 메시지를 전했디. 이어 유선모 목사(분립위원장)는 “내가 교회의 머리 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104회 총회에서 결의된 한성노회분립위원회에 부여된 권위에 의해 한성노회가 2020년 1월 31일 합법적으로 분립이. 됐음을 선포합니다.”라고 분립 선포를 했다. 그간 세상도 많이 바뀌겠지. 이 어렵고 막막한 시절 좀 썩기는 했지만 그래도 보수 정통 우리 교단을 이단으로 정죄하는 망언도 개의치 않는 사이비 우파는 사이비 좌파처럼 스러질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이 혼돈의 시대, 평화의 꽃씨를 뿌리며 일어설 정금 김종준 목사의 시대는 성경적 믿음을 실천했다. 믿음이 없어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위해’ 믿음의 마음에 말씀의 불을 밝혀야 할 것이다. 윤동주 이후우리 모두는 가슴에 시 한 편 가졌다그는 지금도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하는우리 가슴속 시가 되어바람에 스치운다. 성경은 말씀한다. 막 9:23 2026-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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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스티브 잡스와 김영배 교육감 후보
'슬럼독 밀리어네어' 대니 보일 감독, '소셜 네트워크' 아론 소킨 각본, 마이클 패스벤더 & 케이트 윈슬렛 주연으로 기대를 모으는 영화 '스티브 잡스'가 오는 10월 9일 북미 개봉을 확정 지으며, 티저 예고편을 5월 18일 전격 공개했다. 티저 예고편의 목적은 고객에게 영화의 내용을 알려주지 않고 단순히 영화가 곧 개봉될 예정이라는 것을 알리는 것이다. 티저 광고(Teaser廣告)는 요소를 고객에게 공개하지 않음으로써 관심을 끌려고 하는 상업 광고의 한 방법이다. 이번 예고편에서는 "당신은 프로그램 개발 못 해. 엔지니어가 아니잖소"라는 남자의 말에 "연주자들은 악기를 연주한다. 나는 오케스트라를 지휘한다. 난 차고에 앉아 미래를 창조했소"라는 스티브 잡스(마이클 패스벤더)로 추정되는 목소리가 이어진다. 그리고 예고편 영상은 "그 누구도 당신과 같은 방식으로 세상을 보지 않아"라는 말로 끝난다. 이어 프레젠테이션을 위해 연단으로 올라 청중을 바라보는 잡스의 모습이 그려진다. 생전에 스티브 잡스는 말했다. “자기 자신을 보는 '눈'을 바꿔라. 사람은 애초부터 자기 자신에게 관대해질 수밖에 없는 존재다. 그래서 문제를 더 키우는 경향이 있다. 자기 자신을 냉철한 자세에서 바라볼 때 문제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경쟁회사였던 IBM이 '애플은 썩은 사과(애플)'이란 제목으로 기사를 내자 애플은 다음 날 '애플은 썩은 부분을 도려낸 사과'라고 기사를 냈고, 이때부터 세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사과를 누군가 한 입 베어 문 듯한 그림의 애플 회사 마크가 만들어졌다. 2005년 아직 건강할 때 스티브 잡스는 미국 스탠포드 대학 졸업식에서 세계를 감동시킨 자신의 모든 것이 담긴 연설을 했다. 오늘 저는,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대학의 한 곳을 졸업하면서 새 출발을 하는 여러분들과 함께하는 영광을 누리고 있습니다. 저는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습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이번이 제가 대학 졸업식이라는 곳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경우입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들에게 제 인생에 관한 세 가지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뭐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고 그저 세 가지의 이야기입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점(點)을 잇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저는 리드 대학이라는 곳을 첫 6개월 다닌 후 그만 두었습니다. 그 후 18개월 동안은 비정규 청강생으로 머물렀고 그 후 완전히 자퇴를 했습니다. 제가 왜 대학을 그만두었을까요? 이야기는 제가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됩니다. 제 생모는 젊은 미혼의 대학생이었는데, 저를 낳으면 다른 사람에게 입양을 시키기로 결심했습니다. 생모는 제가 반드시 대학을 졸업한 부부에게 입양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태어나면 바로 어떤 변호사 부부에게 입양되기로 되어있었고, 그것으로 모든 것이 다 끝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제가 태어났을 때 절 입양키로 한 부부는 마음을 바꿔, 자신들은 여자아이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저의 양부모님은 한밤중에 “우리가 예기치 않은 사내아이를 갖게 되었는데 아이를 원하느냐”는 전화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분들은 흔쾌히 입양을 수락하셨습니다. 저의 생모는 나중에야 양어머니가 대학을 나오지 않았고, 양아버지는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저의 생모는 이런 이유로 최종 입양서류에 서명을 하지 않다가 몇 달 후 양부모님이 저를 나중에 대학에 보낼 것이라는 약속을 하고서야 마음을 바꿨습니다. 17년이 지난 후 저는 정말 대학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당시에 스탠포드와 거의 맞먹는 수준의 학비가 드는 대학을 선택했고, 평범한 노동자였던 저의 양부모님은 저축한 모든 돈을 제 대학등록금에 써야 했습니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난 후 저는 그만한 돈을 쓰는 데 대한 가치를 느낄 수 없었습니다. 저는 저의 삶에서 무엇을 하길 원하는지 알지 못했고, 대학이 그것을 아는 데 어떤 도움을 줄지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저의 부모님은 전 인생을 통해 저축해놓은 모든 돈을 학비로 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대학을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저는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습니다…제가 호기심과 직관을 따라서 한 일들은 나중에 값으로 매길 수 없는 큰 가치로 나타났습니다. 한 가지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제가 다녔던 리드대학은 그 당시 미국에서 최고의 서체 교육 기관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캠퍼스 전체를 통해 모든 포스터, 모든 표지물들은 손으로 그려진 아름다운 손글씨로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정규과목들을 더 이상 들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이런 글자체들을 어떻게 만드는지를 배워 보려고 서체과목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세리프나 산세리프 활자체를 배웠고, 무엇이 훌륭한 활자체를 만드는지에 대해 배웠습니다. 그것은 과학이 알아내지 못하는, 아름답고 역사적이며 예술적인 미묘함을 갖고 있었습니다. 저는 거기에 매료되었습니다. 당시 저에겐 이런 모든 것이 제 삶에 실제로 응용될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10년 후, 우리가 최초의 매킨토시 컴퓨터를 만들 때 그 모든 것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맥 컴퓨터는 아름다운 글자체를 가진 최초의 컴퓨터가 되었습니다…물론 제가 대학에 있을 때는 미래를 내다보면서 점을 잇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후 과거를 되돌아 볼 때 그것은 너무나 분명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미래를 내다보면서 점을 이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과거를 돌이켜 보면서 점을 이을 수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여러분들은 지금 잇는 점들이 미래의 어떤 시점에 서로 연결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여러분들은 자신의 내면, 운명, 인생, 카르마, 그 무엇이든지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접근법은 저를 결코 낙담시키지 않았고, 제 삶의 모든 변화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저의 두 번째 이야기는 사랑과 상실에 관한 것입니다. 저는 인생의 이른 시기에 하고 싶은 것을 발견한 행운아였습니다. 우즈와 저는 애플을 우리 부모님의 차고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때 저는 스무 살이었습니다. 우리는 열심히 일했습니다. 10년이 지난 후 애플은, 우리 둘만의 차고에서 20억 달러에다 4000명의 직원을 가진 회사로 성장했습니다. 제 나이 29살, 우리는 최고의 작품인 매킨토시를 출시했습니다. 그러나 이듬해 1985년 저는 해고당했습니다. 어떻게 자신이 만든 회사에서 해고를 당할 수 있겠느냐고요? 당시, 애플이 점점 성장하면서, 저는 저와 잘 맞는 유능한 경영자를 데려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잡스는 애플의 성장을 위해 펩시 사장인 존 스컬리를 애플에 영입할 때, 대기업의 사장자리를 버리고 신생기업으로 가기를 망설이던 스컬리에게 "인생 끝날 때까지 설탕물을 팔겠나, 나한테 와서 세상을 바꾸겠나?"라고 하자 존 스컬리는 망설임 없이 애플로 이적했다고 한다.) 첫해는 그럭저럭 잘 되어 갔습니다. 그러나 그 후 우리들의 미래에 대한 관점에 차이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결국 내부적으로 분열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회사 이사회는 그를 지지했고, 저는 서른 살이 된 해에 그렇게 쫓겨났습니다…저는 공식적으로 실패한 사람이었고 실리콘 밸리에서 도망가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제 맘속에 무언가가 천천히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여전히 제가 하는 일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애플에서 겪었던 일들조차도 그런 마음을 꺾지 못했습니다. 저는 해고당했지만 여전히 저의 일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새롭게 출발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때는 전혀 몰랐지만, 애플에서 해고된 일은 저에게 일어날 수 있었던 일 중 최고의 사건이었습니다. 그 사건은 제가 성공의 중압감을 벗어나 초심자의 가벼운 마음을 되찾게 해줬고, 내 인생의 최고의 창의력을 발휘하는 시기로 들어갈 수 있도록 자유롭게 해줬습니다. 이후 5년 동안 저는 NeXT, 그리고 Pixar라는 이름의 다른 회사를 만들었고, 지금의 제 처가 된 여성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픽사는 세계 최초로 컴퓨터 애니메이션 영화인 토이스토리를 만들었고,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애니메이션 회사가 되었습니다. 이후 놀랍게도 애플은 넥스트를 사들였고 저는 애플로 복귀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넥스트에서 개발한 기술은 애플의 현재 르네상스의 핵심이 되었습니다. 또한 로렌과 저는 함께 한 가족을 만들었습니다. 저가 애플에서 해고되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 가운데 어떤 것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것은 쓰디쓴 약이었지만, 환자에게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인생이란 때로 여러분들을 고통스럽게 하지만, 신념을 잃지 말기 바랍니다. 저를 이끌어간 유일한 힘은, 제가 하는 일을 사랑했다는 것에서부터 나왔다고 믿습니다… 세 번째 이야기는 죽음에 관한 것입니다. 제가 열일곱 살이었을 때, 이런 구절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매일을 삶의 마지막 날처럼 산다면 언젠가 당신은 대부분 옳은 삶을 살았을 것이다.” 저는 그것에 강한 인상을 받았고, 이후 33년 동안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면서 제 자신에게 말했습니다. “만일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내가 오늘 하려는 것을 하게 될까?” 그리고 여러 날 동안 그 답이 ‘아니오’라고 나온다면, 저는 어떤 것을 바꿔야 한다고 깨달았습니다. 제가 곧 죽을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는 것은, 제가 인생에서 큰 결정들을 내리는 데 도움을 준 가장 중요한 도구였습니다. 모든 외부의 기대들, 자부심, 좌절과 실패의 두려움, 그런 것들은 죽음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진정으로 중요한 것만을 남기게 됩니다.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당신이 무엇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의 함정을 벗어나는 최고의 길입니다. 여러분은 이미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마음을 따라가지 못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약 1년 전 저는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아침 7시30분에 검사를 받았는데, 췌장에 종양이 발견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췌장이라는 게 무엇인지도 몰랐습니다. 의사들은 이것이 치료가 거의 불가능한 종류의 암이라면서 제가 길어봐야 3개월에서 6개월밖에 살수 없다고 했습니다. 의사는 저에게 집으로 가서 주변을 정리하라고 충고했습니다. 그것은 내 아이들에게 앞으로 10년 동안 해 줘야 하는 말을 단 몇 달 안에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임종 시 가족들이 받을 충격이 덜하도록 모든 것을 정리하란 말이었고 작별인사를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하루 종일 검사를 받았습니다. 그날 저녁 늦게 저는 목구멍을 통해 내시경을 넣는 조직검사를 받았습니다. 세포를 췌장에서 떼어내 조사를 했습니다. 저는 마취상태였는데 나중에 아내가 말해 주길 현미경으로 세포를 분석한 결과 치료가 가능한 아주 희귀한 췌장암으로 밝혀져 의사들까지도 기뻐서 눈물을 글썽였다고 합니다. 저는 수술을 받았고 건강해졌습니다… 제가 젊었을 때, 제 나이 또래라면 다 알만한 “지구 백과”라는 책이 있었습니다. 그 책은 이곳에서 멀지 않은 먼로 파크에 사는 스튜어트 브래드란 사람이 쓴 책인데 그는 자신의 모든 걸 이 책에 불어넣었습니다. 그 책이 나온 게 1960년대로, 그 당시에는 개인용 컴퓨터도 PC 출판도 없었기 때문에, 그 책은 타자기와 가위, 폴라로이드 사진들로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종이책 형태의 구글 같은 것이었는데, 구글이 나타나기 35년 전의 일입니다. 스튜어트와 그의 팀은 이 책을 여러 번 개정했고, 수명이 다할 때쯤에야 최종판을 냈습니다. 그것이 1970년대 중반이었습니다. 바로 제가 여러분의 나이 때입니다. 그 최종판의 뒷 표지에는 이른 아침 시골길 사진이 있었는데 아마 모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히치하이킹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지요. 그 사진 밑에는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늘 갈망하고 우직하게 나아가라(Stay Hungry. Stay Foolish).” 1976년 스티브 워즈니악, 로널드 웨인과 함께 애플을 공동 창업하고, 애플 2를 통해 개인용 컴퓨터를 대중화하고, 컴퓨터를 사용하면서 그림으로 된 화면 위의 물체나 틀, 색상과 같은 그래픽 요소들을 어떠한 기능과 용도를 나타내기 위해 고안된 사용자를 위한 GUI(그래픽 사용자 접속기:graphical user interface)와 마우스의 가능성을 처음으로 내다보고 애플 리사와 매킨토시에서 이 기술을 도입했고, 1985년 경영분쟁으로 애플에서 나온 이후 NeXT 컴퓨터를 창업하여 새로운 개념의 운영 체제를 개발했고, 1997년에는 임시 CEO로 애플을 다시 이끌게 된 이후 다시금 애플을 혁신해 2001년 아이팟을 출시하여 음악 산업 전체를 뒤바꾸어 놓았고, 2007년 아이폰 을 출시하면서 스마트폰 시장을 바꾸어 놓았고, 그리고 2010년 아이패드를 출시함으로써 포스트PC 시대를 열었던 스티븐 폴 스티브 잡스(Steven Paul "Steve" Jobs, 1955년 2월 24일 ~ 2011년 10월 5일)는 2011년 10월 5일 56세의 나이에 췌장암으로 사망했다. 스티브 잡스의 사망에 대해 애플은 공식성명을 냈다. “애플은 명확한 비전과 창의성을 지닌 천재를 잃었습니다. 그리고 세계는 정말 놀라웠던 한 사람을 잃었습니다. 스티브와 함께 일하는 행운을 누렸던 저희는 사랑하는 친구이자 늘 영감을 주는 멘토였던 그를 잃었습니다. 이제 스티브는 오직 그만이 만들 수 있었던 회사를 남기고 떠났으며, 그의 정신은 애플의 근간이 되어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말을 실천하고 이룬 사람이었다. 날마다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면, 언젠가 당신은 아주 확실하게 바른 사람이 될 것이다(If you live each day as it was your last, someday you'll most certainly be right). 2026년 6월 3일 전국 16개 시도에서 교육감 선거가 치러진다. 문해력 저하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학생들이 족보를 ‘족발 보쌈 세트’의 줄임말로 착각한 사례는 재작년부터 화제였고, 생성형 AI가 제공하는 줄거리만 보고 책은 읽지 않는 현실도 많이 보도됐다. 그런 만큼 문해력 점수 하락이라는 결과가 나왔을 때, 교육청은 이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정책 마련에 즉각 나서야 했다. 하지만 “올해 진단검사를 실시한 뒤에 지난해 결과 공개가 가능하다”며 발표를 미루고 있다. 문해력 진단 결과를 계속 숨기는 서울을 비롯해 전국 교육감 후보들에게 제안한다. “모든 중1에 100만원” 같은 현금 살포 대신, 학생들의 문해력 향상을 실질적으로 가능하게 할 대책과 공약으로 경쟁해 달라. 지금 학생들에게 필요한 교육감은 AI 시대 생존 필수 경쟁력인 문해력을 채워주거나 그들을 위해 목사 같이 기도할 서울시 교육감 후보는 김영배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로마서 1:16-17 2026-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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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남수원노회 평택제일교회 분쟁과 닐리(NILI)
도쿄의 촘촘한 도시 조직은 단순히 인구가 많아서 생긴 것이 아니다. “주차를 건물에서 분리한다”는 선택이 만들어낸 결과다. 신기한 것은 일본은 도요타라는 세계 최대 자동차 회사를 보유하면서도 보행 중심 도시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자동차 산업 때문에 인간 중심 도시를 희생했다는 것은 핑계가 되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흔히 좋은 건축을 만들기 위해 훌륭한 건축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 건축가가 어떤 규칙 안에서 설계하느냐다. 주차장 규정은 단순한 기술적 조건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도시의 철학을 드러낸다. 이 도시는 사람을 중심으로 설계되는가, 아니면 자동차를 중심으로 설계되는가. 도시는 그 선택의 결과다. 그리고 그 선택은 하나님의 섭리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루어진다. 남수원노회 소속 평택제일교회는 전부터 노회 목사들에게 ‘목회하기 힘든 교회’로 알려져 있었다고 한다. 그런 가운데 당회에서 교회정관 개정작업을 하고 2020년 1월 성도를 대상으로 설명회를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은퇴장로가 당회서기 장로에게 폭언하고 멱살을 잡는 등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교회 내부적으로 화해를 못하고 결국 폭행당한 장로가 노회에 고소를 했다. 남수원노회는 2020년 10월 제98회 정기회에서 재판국을 구성했다. 재판은 지지부진했고, 위증과 불법 연명부까지 제출됐다. 그 사이 당회원 중 네 장로가 담임 목사와 장로 2명을 당회록 위조로 고소했다. 그리고 상호 모욕과 폭행으로 법원에서 벌금을 받는 일이 벌어졌다. 제98회 재판국은 이 사건까지 병합해 다뤘다. 제98회 재판국은 2024년 8월 11일 다음과 같이 엄중하고 명료하게 판결했다. 먼저 폭언과 폭행 등을 저지른 은퇴장로에게 ‘8월 25일까지 박 장로와 공회 앞에 공개 사과할 것, 불이행시 9월 1일자로 제명출교’했다. 재판과정에서 은퇴장로를 위해 위증한 장로 등 2인도 공개 사과와 불이행시 제명출교를 결정했다. 아울러 제98회 재판국은 ‘공개 사과하는 영상을 2024년 8월 27일까지 재판국에 제출’하고, ‘공개 사과에 대한 판단은 재판국이 한다’고 판결문에 명시했다. 그러나 남수원노회가 평택제일교회 관련 재판을 마무리했지만 2026년 지금까지 분쟁이 그치지 않고 있다. 처음 재판국을 조직한 2020년 10월 제98회 총회 이후 6년 동안 고소, 화해중재, 재판이 이어지고 있다. 작년 10월 조직한 제108회 재판국이 지난 3월 1일 판결을 내렸지만, 판결에 불복해 총회상소 절차가 진행 중이다. 계속된 분쟁과 재판 속에서 지역 교회들의 모체로 불렸던 평택제일교회는 출석성도가 100여 명으로 줄어든 가운데 그나마 총회 제일 설교자 김관선 목사의 설교로 그 명맥을 은혜 가운데 유지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남수원노회(노회장 강한영 목사)가 2026년 5월 24일 오후 5시 디딤돌교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그 입장을 밝혔다. 성경과 교단 헌법, 권징조례를 지키기 위한 남수원노회 입장 1. 이번 사건의 핵심은 단순한 "상소권 논쟁"이 아닙니다. 이는 단순 개인 분쟁이 아니라 교단 치리 질서와 사회소송대응시행세칙 적용의 핵심 사안입니다. 2. 남수원노회는 오랜 시간 화해와 회복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노회는 화해조사처리위원회를 구성하여 여러 차례 화해와 상생의 길을 제안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제108회 재판국을 통해 2026년 3월 1일 면직 판결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에 반발해 사회 법원에 직무집행정지가처분을 제소했습니다. 그러나 2026년 3월 23일 가처분 각하, 이어 4월 14일 항고가 각하로 사법 절차는 종료됐습니다. 성경은 교회의 문제를 먼저 교회 안에서 해결하라고 말씀합니다. "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와 더불어 다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고발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 기본적으로 정치란 다양한 이해관계 당사자들의 의견을 조율하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성가대와 닮았다. 여러 소리를 조율해서 화음을 맞추고 가장 좋은 소리를 만들려면 다른 소리를 귀 기울여 들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총회 정치인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거룩한 화음을 중시하는 교회 음악을 공부하거나 성가대를 살피면 훨씬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026년 5월 20일 이스라엘 정부는 2023년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하여 1,200여 명이 사망하고 250여 명이 인질로 납치된 사건 10·7 테러 관련자는 지휘 고하를 막론하고 계획자, 전투원, 가담자 모두를 색출해 죽이거나 체포하는 태스크포스 ‘닐리(NILI)’를 구성했다고 보도했다. ‘닐리’는 ‘이스라엘의 영원하신 분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신다(네차흐 이스라엘 로 예사케르)’는 구약성경 사무엘상 15장 29절 히브리어 원문의 머리글자를 딴 약자(略字)다. 1차 세계대전 때 유대인 첩보단이 사용했던 이름이다. 즉 그 테러에 가담한 것으로 확인된 자는 누구도 잊히지 않는다는 의미를 담았다. 테러에 관여했다는 2개 이상의 증거만 확보되면, 재판 없이 바로 사살 대상이 된다. 이스라엘방위군(IDF)의 에얄 자미르참모총장은 16일 “10월7일 학살 가담자 전원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마스 테러범들은 이스라엘의 감시 능력과 보복 의지를 과소평가했다. 테러범들과 가담자들은 10월 7일 자신들의 활동 장면을 휴대폰과 다이버 영상, 번지점프, 스키 영상 등에서 주로 사용되는 고프로(GoPro) 카메라로 촬영해 소셜미디어에 올렸고, 이 영상 데이터는 자신들의 목을 죄는 올무가 됐다. 2026-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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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법 앞에 선 한국교회
2023-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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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박형용 박사의 한국교회 성장과 발전의 원동력
한국교회는 세계 교회가 놀랄 만큼 괄목할만한 성장을 했다. 그것도 비교적 짧은 기간 안에 이루어진 것이어서 많은 주목의 대상이 되어 왔다. 이 글에서는 1945년 해방 이전의 한국교회의 성장에 관해 간략하게 다루고 해방 이후의 한국교회의 성장과 문제점에 관해서는 장로교 중심적으로 다루고 앞으로 나아갈 좌표를 성찰해보려 한다. 1. 초기 한국교회의 성경 중심적 기초 한국에 복음이 들어온 해를 1884년으로 잡는다. 그 이유는 최초의 체류 선교사인 의사 알렌(Horace N. Allen)박사가 1884년 9월 20일에 인천에 도착했고, 이틀 후 1884년 9월 22일에 서울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좀 더 중요한 시점은 장로교 선교사인 언더우드 목사(Rev. Horace G. Underwood)와 감리교 선교사인 아펜젤러 목사(Rev. Henry G. Appenzeller)가 도착한 1885년이다. 두 선교사는 1885년 4월 5일 부활절 날 아침에 인천항에 도착했다. “훗날 감리교인들이나 혹은 장로교인들이 자기 교파가 먼저 도착했다고 아무도 말할 수 없게 하기 위해 그들이 손을 잡고 함께 해안으로 뛰어 내렸다는 이야기는 매력 만점의 이야기이긴 하다. 그러나 사실적인 근거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실제로 제일 먼저 해안에 발을 디딘 사람은 아펜젤러 부인이었다.” 초기 한국에 온 선교사들은 중국(Cheefoo, China)에서 오랫동안 선교활동을 해 온 요한 네비우스(Rev. John Nevius)의 선교활동 원리를 수용하여 한국에서도 적용했다. 네비우스 원리는 일반적으로 “3자 원리”(three self principles)로 알려져 왔다. 그것들은 “자전”(self-propagation) “자치”(self-government) 그리고 “자립”(self-support)이다. 초기 선교사들은 네비우스 선교활동의 방법을 “오랜 기도와 심사숙고 끝에” 한국교회의 선교정책으로 수용했다. “언더우드 박사는 오랜 기도와 심사숙고 끝에 주로 우리는 네비우스 방법을 수용하도록 인도 받았다”고 전한다. 네비우스(Nevius)선교정책은 사실상 성경공부가 강조된 정책이었다. “진정한 핵심은 성경공부 제도에 있었다. 이 제도는 모든 성도들에게 성경을 공부하도록 격려했으며 성경공부에서 배운 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할 수 있도록 격려했다.” 곽안련은 네비우스 방법의 성공 비결은 자전 자치 자립이상으로 교회 사역의 각 분야에서 성경을 보편적으로 사용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한국교회가 “성경 위에, 단순한 성경 본문 위에 건립되었다”고 확신한다. 초기 한국교회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고 성경에 권위를 부여했다. 성경은 초기 한국교회 성도들의 신앙과 삶에 확실한 기준이 되었다. 초기 한국교회를 섬겼던 선교사들이 그 당시 한국교회의 상황을 평가한 것은 한국교회가 얼마만큼 성경중심으로 성장해 왔는지를 잘 정리해 주고 있다. “물론 성경 그 자체가 모든 나라에서와 마찬가지로 복음화에서 가장 두드러진 요소이다. 그러나 한국의 성경은 좀 독특한 위치를 차지해 온 것이 분명하다... 성경공부와 성경공부 반은 한국교회의 발전에서 가장 독특하고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그것들 속에서 신앙과 지식의 기초를 놓아 왔다”(S. A. Moffett, Bible Society Record of ABS, 1916. 11., p.216). “성경은 한국에서 제일 공부가 많이 되는 책이다. 교회생활의 매우 뚜렷한 특징은 성경공부에 있다. 성경공부 반은 겨울에 열흘에서 2주일 동안 중심지에서 열린다. 겨울마다 족히 12만 5천명의 사람들이 성경을 공부하기 위해 모이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 목적은 단지 개인적인 유익을 위해서가 아니고 배운 것을 출신 교회에 전달해 주기 위한 것이다”(Annual Report of NBSS for 1917, p.32). “한국교회의 주목할 만한 성장과 발전은 성경을 체계적으로 가르쳤기 때문이라는 것이 충분히 관찰한 사람들의 확신이다”(Annual Report of NBSS for 1930, p.104). 그리고 초기 한국교회의 성경 강조는 그들의 신앙의 삶의 전 부분에서 나타나고 있다. 한 선교 보고(북장로교 선교회 25주년 보고서, p. 17)는 이렇게 말한다. "성경 자체가 물론 다른 모든 나라에서처럼 복음 전도의 가장 큰 요소로 두드러지게 부각되어 왔다. 그러나 한국의 사역에서는 이 성경이 유달리 독특한 위치를 점유해 왔다. 한국교회의 능력, 영성, 기도에 대한 큰 믿음, 후한 기부정신은, 전교회가 성경 지식에 깊이 젖어 있다는 사실로부터 나오고 있다.” 이처럼 초기 한국교회는 성경을 중심으로 성장해 갔다. 성경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생활한 초기 한국교회는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영적인 성장과 함께 숫자적인 성장도 급속하게 이루어졌다. 2. 한국교회 성장에 기여한 몇 가지 특이한 현상 (1) 천년기 전 재림설과 한국교회 성장 복음이 한국에 들어온 이후 한국은 대단히 어려운 시기에 처해 있었다. 한반도는 19세기에 이르기까지 중국과 일본, 그리고 러시아 사이에 계속적인 충돌의 현장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그리고 1910년 일본에 합병된 후 36년간 계속적인 억압과 핍박 속에 있었다. 일본으로부터 해방 이후도 1950-53년 사이 한국동란과 계속되는 군사 구테타 및 군부 통치는 한국 내에서의 고난과 핍박이 계속되었음을 증거 한다. 새 브리태니카 백과사전은 “정부가 1970년대와 1980년대를 통해 신문과 방송을 철저하게 조종했다. 그러나 1900년대에 들어오면서 남한의 정치적 민주화는 신문 방송에 상응하는 자유를 가져다주었다”(The New Encyclopaedia of Britannica, p.960)라고 기록한다. 대략적인 역사적 사건만 열거해도 복음의 전파가 고난의 때에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의 과거 역사는 복음이 이 땅에 들어 온 이래 이런 저런 모양으로 복음 전파와 한국교회에 시련의 과정이었음을 증거 한다. 이와 같이 과거의 한국 역사는 수난의 역사였다. 적어도 한국의 토양은 복음 전파에 호의적인 것은 아니었다. 김영재 교수는 복음이 전파된 이후의 한국의 상황을 천년왕국 신앙과 연계하여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천년왕국 신앙과 고난을 견딘 한국교회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을 당시부터 6.25동란을 겪을 때까지 줄곧 불안한 사회적인 상황에서 살아왔으며, 핍박 하에서와 고난 속에서 살아 왔다. 그러므로 불안 속에서 안정을 찾는 백성들은 쉽게 내세 지향적인 종말신앙을 복음으로 받아 들였다”(김영재, 「한국기독교의 재인식」 p.240).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러한 종말론적인 신앙(전천년설)은 고난을 당하는 성도들에게 위로가 되었고, 특히 신사참배 반대자들에게는 옥고를 이기고 순교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위로와 활력을 불어 넣어 준 신앙이 되었다”(Ibid). (2) 교회 분열과 한국교회 성장 김의환 박사는 그의 저서 「기독교회사」의 한 장에서 “한국교회의 부흥과 분열”을 다룬다(김의환, 「기독교회사」 pp.405-458). 김의환 박사는 I. 한국교회의 부흥 요인을 1. 외적인 요인들과 2. 교회의 진취적 정신으로 나누고, 교회의 진취적 정신에서 (1) 대부흥운동 (2) 전도 집회들 (3) 네비우스 선교방법 그리고 (4) 군복음화 계획을 열거한다. 그리고 II. 분열의 원인으로서 신학 논쟁에서는 자유주의 신학의 영향으로 한국 장로교회가 어떻게 분열했는지를 기술하고 있다. 처음 장로교 분열은 일본의 한국 점령과 무관하지 않다. 일제는 한국 교회에 신사참배를 강요했다. 신사참배의 문제는 결국 교회를 분열하는데 일조를 했다. “일본인들은 중국과 전쟁을 하고 있을 당시 1937년에 한국 기독교인들을 기밀하게 감시하고 있었다. 1938년에 정부는 모든 교회가 그들의 예배에 참석하기 전에 먼저 신사에 참배해야한다고 명령했다”(Cf. International Review of Missions, January 1939, p.10). 하지만 성경의 하나님을 유일신으로 섬기는 대부분의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일제의 강요를 그대로 순응할리 없다. 결국 신학교가 둘이 되고 교단이 나누이게 된다. 한국의 청교도 칼빈주의의 중심인 평양 신학교는 신사참배 문제로 1938년 9월 30일 자진해서 무기휴학 선언을 했고, 1939년 3월부터 조직된 새로운 신학교 설립 기성위원회는 1940년 4월에 정식으로 조선신학교를 서울에서 개교하였다. 조선신학교는 서울 승동교회 하층을 사용했다(김의환, 「기독교회사」 p. 444). 조선 신학교가 시작될 당시 조선신학교는 자유주의라는 이유로 총회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 그리고 1945년 남쪽과 북쪽이 38선으로 나누인 이후 조선신학교가 남쪽 장로교 총회에 속한 유일한 신학교가 되었다. 조선신학교는 1946년 장로교 총회에서 총회 직영신학교(General Assembly Theological Seminary)로 인준을 받았다(G. T. Brown, Mission to Korea, Board of World Missions, Presbyterian Church, U.S, 1962, p.177). 하지만 조선신학교의 신학적 입장은 계속적으로 문제가 되었다. 남쪽 장로교회의 좌경화를 지켜본 신사참배 반대로 옥중에서 핍박을 받은 옥중 성도들과 신앙의 자유를 위해 망명 갔던 보수신학자들이 힘을 합쳐 세운 보수 신학교가 1947년 10월에 부산에서 박형룡박사를 교장으로 모시고 문을 열었다. 이 신학교가 바로 고려신학교였다. 그런데 고려신학교 설립자이신 한상동 목사와 교장 박형룡 박사 사이에 이견이 생기게 되었다. 박형룡 박사는 자유주의 신학과 싸울 전략으로 신학교를 서울로 옮길 것을 주장했다. 한상동 목사는 과거 평양신학교가 평양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총회의 유일한 신학교로 역할을 감당한 것처럼 고려신학교가 부산에 있어도 유일한 장로교 신학교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고려신학교를 서울로 옮길 것을 반대하였다. 결국 박형룡 박사는 부산을 떠나 서울로 상경하여 1948년 6월 옛 평양신학교의 정신을 이어받은 신학교로 장로회신학교를 서울에 설립했다. 그리고 장로회신학교는 1949년 4월 19일 서울에서 모인 제 35회 총회에서 총회 직영신학교로 인준 받았다. 이로써 한 총회 내에 조선신학교와 장로회신학교가 총회 직영신학교로 존재하게 되었다. 총회의 주도권을 찾은 보수 쪽 인사들이 조선신학교와 장로회신학교의 합동을 제안하였고 조선신학교 쪽 인사들은 합동하는 것은 자신들에게 불리함을 알고 신학교 합동을 반대 하였다. 한국동란이 1950년 6.25일 북한의 남침으로 발발하였다. 6.25 한국동란 직후 1951년 5월 26일 부산 중앙교회에서 제 36회 속개 총회가 모였을 때 총회가 직영 신학교로 인정한 양 신학교를 취소하고 새로운 신학교를 설립하자는 안건의 가결을 보았다. 그래서 총회의 결의대로 총회신학교가 1951년 9월 18일 대구에서 교장 감부열 선교사외 교수 박형룡 명신홍 권세열 김치선 한경직 제씨를 모시고 개교하기에 이른다. 총회 내에서 더 이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른 조선신학교 측 인사들은 1953년 6월 10일 서울 한국신학대학(조선신학교 후신) 강당에 모여 “법통 총회”란 이름하에 제 38회 총회를 속개한 다음 그 다음 해부터 “대한기독교장로회”란 새로운 이름으로 교단을 창설하였다(김양선, 한국 기독교 해방 10년사, p. 227). 이렇게 하여 1947년 10월에 창립된 교려신학교와 1951년 9월 18일 대구에서 개교한 총회신학교와 1953년 6월 10일 시작한 한국신학대학으로 나누어져 세 개의 장로교 교단이 형성되게 되었다. 자연히 한국의 장로교회의 교단은 고려 측 총회 측 기장 측으로 나누어져 존재하게 된다. 그 이후 한국장로교회는 1959년 9월 24일 대전중앙교회에서 제 44회 총회로 모여 WCC 문제로 정회되었는데 WCC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정회되는 그날 1959년 9월 28일 서울로 옮겨 연동교회에서 총회를 속개하였고, WCC를 반대한 사람들은 1959년 11월 24일 서울 승동교회에서 총회를 속개하였다(김의환, 「기독교회사」 pp. 452-457). 이로써 한국장로교회는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측 혹은 승동측)과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측 혹은 연동측)으로 둘로 나누이게 되었다. 그 후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측)이 1979년 주류측, 비주류측, 중립측으로 나누어졌고 계속해서 합종연횡(合從連衡)의 과정을 거쳐 현재는 장로교만 100여 교단이 넘는 상황이 되었다. 이처럼 한국교회는 분열이라는 아픔을 통해 숫자적으로 성장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은 인간의 잘못을 사용해서도 그의 뜻을 이루어 가신다. (3) 십일조 강조와 한국교회의 성장 한국교회는 십일조 헌금을 강조한다.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십일조 헌금의 강조를 위해 그 근거를 구약에서 찾는다. 특히 목회자들은 헌금 강조를 위해 말라기를 인용하곤 한다. 인용된 성구는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 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말 3:8)와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 3:10) 등이다. 말라기 3:8의 내용은 헌금을 강요할 때 사용되고, 말라기 3:10은 기복신앙을 조장하는 역할을 해 왔다. 이와 같은 기복신앙을 조장하는 십일조의 강조는 교회 안에 이상한 형태의 헌금제도를 낳게 했다. 어떤 교회는 축복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선 십일조”(prepaid tithe)를 강조하기도 한다. 선 십일조란 십일조의 금액에 따라 하나님이 수입을 보장해 주신다는 생각으로 수입이 있기도 전에 십일조를 바치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과 노름을 하는 셈이다. 하나님이 수입의 십일조를 바치라 명하셨으니 먼저 십일조를 바치면 하나님은 할 수 없이 그 십일조의 십 배를 수입으로 주실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렇게 기복신앙을 조장하는 십일조 헌금과 다른 헌금이 한국교회 내에 깊이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심지어 근래에는 어떤 교회에서 십일조를 내지 않으면 교인 자격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나오기까지 했다. 사실상 십일조의 강조는 1950년대까지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이 말은 일본의 36년 통치기간에 한국교회가 십일조를 많이 강조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러나 1950년 한국동란(6.25동란)을 겪으면서 교회 재정은 극도로 피폐되어졌고 재정확충의 필요가 대두되었다. 한국동란은 한국민족에게 고난과 고통을 안겨 주었고 따라서 고통 속에 처한 한국교회는 기도와 회개를 강조하게 되었다. 그래서 도시 인근 산 속에는 이곳저곳에 불법 기도원이 설립되고 성도들은 자신들의 고통과 나라의 고난을 기도로 분출하게 되었다. (4) 교회당 건축과 성전의식 예배당을 구약성전으로 생각하는 관습은 예배당 건축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일부 목사들은 강대상이 있는 곳을 제단(altar)으로 생각하고 안수 받은 목사이외의 다른 성도들은 올라갈 수 없도록 한다. 특히 여자 성도들은 강대상을 사용할 수가 없다. 이런 관습이 시행되는 교회에서는 때때로 웃음을 자아내는 장면이 연출되곤 한다. 여전도회 헌신예배를 드릴 때 나이 많은 할머니 회장님은 아래 강단에서 사회를 하고 아들정도 되는 젊은 청년 목사는 윗 강단에서 설교를 한다. 이런 관습이 여인은 제단에 올라 갈 수 없다는 구약 교훈에서 기인된 것이다. 이처럼 교회당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예배당 건축에 자극제 역할을 했고 많은 예배당의 건축은 교인 수를 증가시키는데 일익을 담당했다. 한국에 세계 10대 교회 중의 몇 교회가 있다는 사실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이시다. 지금까지의 한국교회의 역사적 진전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잘못을 통해서도 교회를 인도해 주셨음을 증거 한다. 우리는 우리의 잘못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역사의 주관자이심을 강조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노력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잘못할 때 하나님은 그의 지혜로 그 잘못을 가장 좋은 방향으로 인도하신다는 뜻이다. 우리는 이 부분에 대해 성경이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롬 6:1-2; 참조 롬 3:5-8)라고 말씀하신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3. 한국교회가 지키고 취할 것 고등종교의 타락원인을 고찰하면 첫째 성직자의 급증 둘째 종교 기관수의 급증 셋째 기복주의 성향 그리고 넷째 교회 및 교회 기관들이 권익 집단으로 전환하는 것 등을 들 수 있다. 한국교회는 이런 부분에서 위험 수위에 육박하고 있다. 서구 사회는 후기 기독교 사회로 이미 접어들었다. 한국 교회도 후기 기독교 사회로 들어가는 시기가 곧 다가 올 것이다. (1) 성경 66권을 하나님의 정확무오한 말씀으로 믿고 성경을 귀하게 생각해야 한다. 구약시대나 신약시대나 할 것 없이 하나님은 그의 말씀을 귀하게 생각하고 실천하는 백성을 축복하시고 선한 길로 인도하신다. 한국 교회는 성경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하면서도 그 말씀의 원리에 따르기보다 편의와 실리에 따라 말씀을 적용하는 경우가 많다. 구약시대 때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들이 나에게 제물은 바치지만 마음은 내게서 멀다고 하신 상황과 비슷하다고 사료된다. 의식이 있는 목사들에게 “현재 한국교회의 문제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라고 질문을 하면 그들은 한국교회에 현재 팽배한 것은 “원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라고 답변을 한다. 이 말은 성경 말씀이 우리의 신앙과 생활의 규범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뜻이다. 성경의 원리보다는 교회의 숫자가 증가한다면 성경원리에 맞지 않아도 좋고 심지어 이단적인 방법 일지라도 사용하겠다는 분위기이다. 심지어 개혁주의 신학을 표방하는 신학교에서도 “역사적 비평적 해석방법”(The Historical Critical Method)에 호의적인 태도를 취하기도 한다. 역사적 비평적 방법은 성경에서 초자연적인 요소를 제거하고 단순히 인간의 합리를 적용하여 성경을 해석한다. 요즈음 여러 가지 명칭으로 등장한 해석 방법은 계몽주의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하나님 중심적인 접근보다는 인간 이성 중심적인 접근이 많다. 한국 교회는 성경으로 돌아 갈 때 소망이 있다. (2) 순교의 정신을 계승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우상숭배와 같은 신사참배를 거부했다. 이에 일제는 1938년 2월에 아직도 신사 참배를 거부하고 버티는 장로교회를 꺾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일제의 압력에 밀려 1938년 2월부터 9월 총회가 열리기까지 전국의 23개 노회 가운데 17개 노회가 일제에 굴복하고 신사참배를 찬성하고 말았다(김양선, 한국 기독교사 연구, p. 186 이하). 여기서 자세하게 언급할 수 없지만 일제 강점기와 6.25 남침으로 인한 공산당 점령기간에 수많은 목사들과 성도들이 믿음을 지키기 위해 순교했다. 순교한 성도들의 삶은 자신의 생명보다 말씀을 순종하고 하나님을 소유하는 것이 더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한국교회는 믿음의 선진들이 생명을 바쳐 지킨 순교의 정신을 이어가야 한다. (3)행사나 프로그램 보다는 하나님 앞에서 잘못을 회개하고 바로 서야 한다. 1907년 대부흥운동의 100주년 기념으로 2007년 7월 8일 상암 구장에서 “2007년 한국교회 대 부흥 100주년 기념대회”가 열렸다. 이 대회에서 고 옥한흠 목사(사랑의교회 목사)가 설교하는 가운데 외쳤다. “한국교회는 만 명의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고, 구제 사업에도 앞장서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사회는 한국교회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목회자로서 설교할 때 죄와 회개 거룩함은 할 수 있으면 언급을 피했습니다. 회개나 반성보다 듣기 좋고 부드러운 말을 골라 설교하는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저도 모르게 복음을 변질시켜 갔습니다. 주여! 이놈이 죄인입니다. 입만 살고 행위는 죽은 교회를 만든 장본인입니다. 겉모양은 돌아가지만 내면은 죄악이 쌓여 있는 한국 교회를 깨끗하게 하옵소서. 한국교회를 살려 주옵소서라 기도해야 합니다”(아름다운 동행 제16호). 옥목사의 이 설교 말씀은 한국 교회 목사들을 대표해서 한 말씀이요 한국 교회가 귀 담아 들어야할 내용이다. 박윤선 목사는 생애의 거의 마지막 부분에서 “나는 83년 묵은 죄인입니다”라고 자신의 죄인 됨을 대중 앞에서 고백했다. 한국교회는 1907년 회개 운동을 통해 부흥운동이 확산된 것처럼 회개 운동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에 처해 있다. 우리는 한국교회가 행사와 프로그램으로 성도들을 몰아가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한국교회는 성도들이 성경 말씀 안에서 내면적으로 거룩하고 충실하게 성장하는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4) 한국교회는 기도의 열정을 계승해 나가야 한다. 한국교회는 기도하는 교회로 유명했다. 하지만 요즈음은 한국교회의 기도의 열기가 점점 식어져 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 한국교회는 새벽기도회로 유명하고, 금요일 철야기도회로 유명했다. 하지만 지금은 거의 모든 교회가 철야기도를 하지 않는다. 금요일 오후 9시나 10시에 모여 12시 전으로 모든 기도회를 마친다. 그리고 예전에는 성도들이 기도할 수 있는 장소로 수많은 기도원이 있었다. 지금은 사회의 발전과 함께 그런 기도처소가 거의 없는 상태이다. 물론 우리는 미신적으로 기도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반드시 기도처소에 가야만 기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어느 때나 어디에서든지 기도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기도하는 백성을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한다. 한국교회는 좋은 기도의 전통을 이어 받았으니 이를 계속 전승시켜야 한다. 4. 한국교회가 버리고 개선할 것 우리는 “나는 나의 싸움에 하나님을 끌어 들이는 욕구중심의 신앙인인가?” 아니면 “나는 하나님의 싸움에 나를 헌신하는 소명 중심의 신앙인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면서 한국교회가 교정해야할 몇 가지를 함께 묵상하도록 한다. (1) 객관적 계시인 성경보다는 주관적 경험을 더 중시하는 경향을 경계해야 한다. 하나님은 특별한 영감의 방법으로 예수님 재림 때까지 교회가 사용할 정경 66권을 주셨다. 하나님은 모든 교회가 예수님 재림 때까지 사용할 공적이고 객관적인 계시를 우리에게 주셨는데 또 계속해서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객관적 계시에 버금가는 계시를 주시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기독교는 혼돈으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지 정 의를 가진 존재로 창조 받았기 때문에 감정에 많이 좌우된다. 우리가 기억해야할 것은 우리의 감정도 객관적 계시에 조종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객관적 계시인 성경보다 주관적 경험을 중시 할 때 결국 그 결과는 내세 지향적이 되며 윤리성이 약해지는 방향으로 흐른다. (2) 기복신앙의 조장으로 축복받기 위해 헌금하는 경향이 한국교회 내에 많다. 헌금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감사하여 마음과 몸을 바치는 뜻에서 드리는 것이다. 사실상 인간이 하나님께 바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것의 주인이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교회의 헌금 경향은 축복을 받았음으로 감사해서 바치기보다는 축복을 받기 위해 바치는 것이다. (3) 한국 교회 예배를 회복해야 한다. 한국교회 예배는 전통적으로 말씀중심의 예배였다. 성도들의 관심이 말씀을 선포하는 강단에서부터 자신들의 몸 운동으로 옮겨진 것이다. 그런데 오순절 운동으로 오순절교회뿐만 아니라 다른 교회에서도 박수치는 것 손을 오리는 것, 무릎을 꿇는 것, 춤을 추는 것 등 육체적인 표현이 빈번하게 되었고, “아멘,” “할렐루야,” “하나님께 영광”(칠레의 오순절 신자들의 경우) 등의 음성적인 표현도 곁들여 하는 경향을 낳게 했다(이재범, “현대 오순절 교회 예배의 특징”, 『성경과 신학』 6권, p. 103).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 목사 혼자서 흥행하는 식의 예배는 바람직스럽지 못하기 때문에 오순절식의 예배처럼 성도들이 육체적 표현과 음성적 표현으로 예배에 참여한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으나 오순절 예배의 경우 인간 감정의 촉발을 조장하여 그 자체를 마치 신과 하나 되는 경지에 들어가는 황홀경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배드릴 때 예배자의 마음을 가장 소중히 여기신다. (4) 건전한 교회를 정착시켜야 한다. 대형교회는 작은 교회가 하지 못하는 여러 가지 일을 할 수가 있다. 대형교회는 성도들의 필요를 채우는데 더 효과적으로 일을 할 수가 있다. 그러나 대형교회는 항상 겸손한 마음으로 처신하고 다른 교회들의 필요를 채우는데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때로 대형교회들이 자만에 빠져 질서를 파괴하고 자기들 마음대로 하려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면 대형교회들 중 장로교회들이 한국 명칭은 장로교회로 사용하면서 영어표기로는 “무슨 공동체 교회”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런 식으로 명칭을 사용하는 목사는 정체성에 대한 의식이 희박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순수하지 못한 것이다. (5) 목사의 직분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바로 잡아야 한다. 종교개혁 사상은 성경에 기초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재발견하여 예수님을 중심으로 삼는 것이었다. 개혁자들은 오직 은혜로만 구원을 얻으며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다고 믿었다. 죄인이 의인이 되기 위해서는 유일한 중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개혁자들은 성자숭배를 반대하고 교황주의를 반대하며 목사가 제사장이라는 교권주의도 반대했다. 목사는 말씀의 선포와 성례를 집행하는 직무를 맡은 사람이다(김영재, 한국 기독교의 재인식, p. 287). (6) 예배드릴 때 설교 본문을 교독하는 관습은 하나님의 권위를 침범하는 것이다. 근래에 한국 교회의 예배의식을 살펴보면 목사가 설교 본문을 읽을 때 회중의 참여를 의식하여 교독이나 합독할 것을 제안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성경봉독은 하나님께서 그 말씀봉독을 통해 가장 직접적으로 성도들에게 말씀하시는 방법이다. 성경봉독은 설교보다도 더 직접적으로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말씀하시는 수단이다. 예배드릴 때 시편을 교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설교의 본문을 교독하는 것은 심하게 말하면 하나님이 말씀하실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 봉독은 예배 인도자가 낭독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The Book of Church Order of the Presbyterian Church in America, Chapter 50, Verse 1). (7) 예배드릴 때 목사가 가운을 입는 일과 성찬 집례 시 흰 장갑 끼는 일은 개혁주의 전통이 아니다. 어떤 한국교회는 예배드릴 때 목사가 가운을 입고 예배를 드리는 교회가 있는가 하면 어떤 교회는 목사와 장로가 모두 가운을 입고 예배드리는 광경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영상 매체를 통해 설교하는 대부분의 목사들이 가운을 입고 설교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러나 목사가 예배드릴 때 가운을 입는 것은 개혁주의 전통이 아니다. 목사가 예배드릴 때 가운을 입으면 목사와 성도들을 구별하고 목사를 특별 계층으로 인식하게 하는 잘못을 범한다. 가톨릭의 사제들은 가운을 입으므로 일반 성도들과 자신들을 구별시킨다. 그리고 목사가 성찬을 집례 할 때 흰 장갑을 끼고 집례 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예식을 성스럽게 인도하기 위한 목적이 있겠지만 “성찬식이 주일 예배보다 더 거룩하다거나 예배가 성찬식보다는 덜 거룩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다”(김영재, 한국 기독교 재인식, p. 289). 성찬식을 예배보다 더 거룩한 것으로 생각하면 중세 교회의 잘못을 답습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께서 처음 성만찬을 제정해 주신 장면을 상기해 보아야 한다(눅 22:13-23). 예수님이 첫 성만찬을 제정하실 때 예수님께서 장갑을 끼셨다든지 아니면 그 당시 할 수 있는 특별한 방법을 동원하셔서 성만찬 집례를 하셨는지 상고해 볼 필요가 있다. 예수님은 보통 식사하시는 방법으로 성만찬을 제정해 주셨다. 목사가 설교할 때는 가운을 입지 않고 성찬을 집례 할 때는 가운을 입으면 성도들이 설교보다 성찬을 더 중요한 은혜의 수단으로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설교나 성찬 모두 성도들이 은혜를 받는 은혜의 수단이다. 그리고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성찬은 구원받은 가족들만이 참여하는 가족 식사이지만 설교는 전도의 역할까지 하는 은혜의 수단이다. (8) 교회 내에 잔존하는 여러 가지 잘못된 행태를 변혁시켜야 한다. ① 성경은 신약교회의 제도 중에 하나로 제비뽑기를 허락하지 않는다. 그런데 어떤 교단은 총회장 선거를 제비뽑기로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선거의 부작용을 피하기 위해 성경을 경시하는 현상이다. 이는 교회 지도자들이 성경의 교훈을 에누리하고 있는 것이다. ② 무자격 신학교의 난맥상을 개선해야 한다. 일 년에 두 차례 학기 초가 되면 기독교 신문에 신학생 모집 광고가 나온다. 그런데 광고에 나온 어떤 신학교는 우리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광고도 하지 않고 아름아름 학생을 모집하여 가르치고 있는 신학교도 많다. 이와 같은 신학교는 어떤 한 개인이 주관하거나 어떤 한 교회가 주관하면서 자격 없는 목회자를 배출하고 있다. ③ 후임 목회자를 선정하는데 부자 세습을 지양해야 한다. 근래에 한국교회는 1세대 목사가 은퇴하고 후임 목회자를 모시는 과정에 아버지 목사가 아들 목사에게 교회의 의사와는 다르게 거의 강제로 담임목사로 세우는 경우를 가끔 본다. 아버지 목사가 은퇴할 때 전체 교인들이 아들 목사를 담임목사로 모시겠다고 하여 공동의회를 거쳐 아들 목사를 담임 목사로 모시는 것은 크게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오늘의 한국교회의 형편을 감안할 때 가능한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사회를 향한 좋은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되리라 사료된다. ④ 목사 장로 집사 권사 직분을 벼슬처럼 생각하는 행태를 개선해야 한다. 교회의 직분들은 봉사의 직분들이다. 교회의 직분들은 벼슬자리가 아니다. 성경 말씀은 분명하게 교회의 직분들이 섬기는 자리요, 봉사의 자리임을 분명히 한다. 예수님도 하나님이시면서도 섬기려 오셨다고 말씀하신다(막 10:45). 나가는 말 우리는 역사의 교훈을 마음 깊이 새겨야한다. 그리고 우리의 잘못은 고치고 버릴 것은 버려야 한다. 우리는 항상 성경말씀에 비추어 우리의 모습을 점검해야 한다. 이것이 130년을 헤쳐 온 우리의 나아갈 좌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이만큼 성장하고 쓰임을 받고 있는 한국교회에 대해 성급한 평가를 하는 것은 잘못이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항상 겸손, 겸손, 또 겸손의 자세로 우리의 연약성을 개선하여 하나님의 교회를 든든히 세우고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쓰임을 받아야 할 것이다. 박형용 박사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명예교수 2017-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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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김관선 목사장로기도회 ‘울게 하소서’
“다리 없는 새가 살았다. 이 새는 나는 것 말고는 알지 못했어. 새는 날다가 지치면 바람 속에서 잠이 들었지. 이 새가 땅에 몸이 닿는 날은 생애에 단 하루, 죽는 날이다.” 왕가위 감독(1958년 7월 17일, 67세)이 1990년에 연출한 두 번째 장편 영화 ‘아비정전’(阿飛正傳) 중 장국영의 독백이다. 제목은 "방황하는 청년 아비의 진짜 이야기"라는 뜻으로, 1960년대 홍콩의 혼란스러운 시대상 속에서 어머니에게 버림받은 상처로 사랑에 정착하지 못하는 남자의 덧없는 일생을 그린 영화다. 끈적거리는 습기와 비, 젖은 풍경을 통해 1960년대 홍콩의 우울한 감성을 시각적으로 묘사했다. 인간은 항상 변화하는 세상을 예측하고 미래를 알고자 노력한다. 생존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이라는 전대미문의 감염병은 우리 일상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코로나19는 모여야 살 수 있던 인간 사회를 반대로 모이면 위험한 사회로 만들었다. 그럼에도 많은 전문가는 코로나19 사태로 기존 사회의 방향이 바뀐 것이 아니라 방향은 유지한 채 가속도가 붙을 것이라고 말한다. 비대면화, 개인화, 파편화, 디지털화가 더욱더 강화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문 대통령은 최근 “인생을 다시 산다면 나무를 전공하고 싶다”라고 했다. 그 말을 들으면서 적어도 재임 중에는 나무가 아닌 사람과의 소통에만 집중해줬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먼저라고 하시지 않았나. ‘소통’을 강조하는 제105회 총회장이라 대본, 작사, 총감독을 맡은 소강석 목사의 갈라 콘서트 ‘울게 하소서’가 2021년 제58회(1964년 시작) 전국목사장로기도회 둘째 날 6월 1일 오후 3시 새에덴교회에서 공연됐다. 시작 전 총회 한 시대를 기독신문 주필로 풍미한 고(故) 한명수 목사 이후 기독신문 역사상 가장 격에 맞는 주필 김관선 목사(산정현교회)가 단상에 섰다. “라샤 끼오 삐앙가(Lascia ch'io pianga) (나를) ‘울게 하소서’입니다. 이태리어로 굳이 말씀드린 이유는 헨델의 오페라 ‘리날도’가 이태리어로 만들어진 작품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헨델의 오페라 ‘리날도’ 작품 속에서 ‘울게 하소서’라고 하는 아리아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오늘 마지막 곡으로 들으실 유명한 곡입니다. 우리 소강석 총회장님이 가사만 바꿔 마지막 곡으로 삽입을 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울게 하소서’가 굉장히 유명한 곡이라 들으시면 금방 기억이 나실 겁니다.” Gala. 갈라 콘서트(특별공연)의 줄임말. ‘잔칫상’을 뜻하는 영어에서 유래하였다. 갈라 콘서트는 오페라나 뮤지컬의 하이라이트 아리아/넘버만 모아 콘서트 형식으로 선보이는 공연이다. 뮤지컬 중 중요한 곡들만 골라서 콘서트 형식으로 하는 공연도 '갈라쇼'라고 한다. 즉 하나의 뮤지컬 작품을 제대로 공연하는 것이 아니라 정수만 모은 편집본 같은 것이다. 연기는 (거의) 하지 않고 노래에 집중한다. 한 공연의 곡들을 골라서 하는 경우도 있고 몇몇 뮤지컬에서 곡을 골라서 하는 경우도 있다. 재기발랄한 주필 김관선 목사의 간결한 설교가 이어졌다. “SBS에서 성악을 소재로 한 드라마 ‘팬트하우스’가 있었습니다. 거기에서도 이 ‘울게 하소서’가 나옵니다. 이 곡은 헨델의 곡인데 TV N의 ‘빈센조’에도 이 아리아가 들어갔습니다. 헨델이 ‘리날도’라고 하는 오페라를 작곡했습니다만 이 작품은 굉장히 서사적입니다. 아시다시피 십자군 전쟁 당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탈환을 위해 애쓸 때 리날도 장군의 사랑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이 서사적인 오페라뿐만 아니라 헨델이라고 하면 ‘메시아’가 떠오를 분들이 많을 겁니다. 헨델의 오라토리오 중에는 서사적인 것이 많습니다. 이집트에서 살던 이스라엘인 이야기 또는 ‘주님께 영광 다시 사신 주’ 찬송가가 담겨 있는 오라토리오도 있습니다. 그게 바로 ‘유다스 마카베오스’입니다. 그래서 마카베오스가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에게서 성전을 되찾는 이야기를 담은 수전절의 기원이 됐던 서사적 오라토리오도 있습니다. 헨델이 그렇게 오페라나 오라토리오를 역사 속의 스토리를 엮어낸 것인데 우리가 교단 최초로 이 뮤지컬 ‘불의 연대기’를 오늘 무대에 올리게 됐습니다. 여러분 그야말로 초연이지 않습니까. 저는 리허설 때 봤습니다만 굉장히 감동적입니다. 역시 서사시입니다. 역사를 다뤘습니다. 역사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독일의 랑케 같은 역사 학자는 '사실 그대로의 기록을 역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20세기 들어서면서는 '모든 역사가 현재의 역사이고 해석되지 않는 역사'라고 주장하는 크로체 같은 역사가도 있습니다. 영국의 역사가 이 에취 카(E. H. Carr)는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규정했습니다. 그러니까 역사를 우리가 돌아본다는 것은 과거를 통해서 오늘을 조명하고 오늘을 통해서 미래의 희망을 예견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오늘 ‘불의 연대기’는 우리 교단의 과거에 이렇게 저렇게 정말 불처럼 타올랐던 훌륭한 대선배들의 삶을 역사로 이어 오늘 무대에 올리는 것이죠. 이것이 오늘 우리의 현실을 보고 울게 만들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게 만드는 귀한 작품이 되리라 믿습니다. 여러분. 시편 137편 1절에 보면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라는 시인의 통곡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바벨론의 강변처럼 세속에 오염된 우리의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어제도 그런 말씀이 있었지만, 여러분 동방의 예루살렘이었던 평양 그리고 이 땅의 이렇게 저렇게 오염된 오늘의 교회를 바로 세우고자 하는 그런 눈물이 쏟아지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고 하는 생각을 합니다. 오늘 이 뮤지컬을 통해서 우리의 과거를 돌아보시고 오늘을 조명하고 미래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요. 여러분 역시 울어야 합니다. 울면 치유가 됩니다. 시몬 베드로도 울면서 회개를 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너무 울지 않는 게 문제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울지 않고 웃으려고 하다 보니까 머리에 왕관 쓰고 사람들 앞에서 큰소리치며 웃으려고 하다 보니까 하나님께서 바이러스에 왕관을 씌워 코로나가 왔는지도 모릅니다. 아마 이 코로나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뺨을 쳐서 울게 하시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오늘 울면서 우리 교단의 미래를 여시고 과거에 불처럼 타올랐던 역사적 인물들이 우리를 통해 재현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다음 세대를 통해서 이 땅을 다시 회복하는 그리고 저 북녘땅도 회복하는 놀라운 역사를 다짐하는 ‘울게 하소서’가 되기를 바랍니다(회중 아멘. 박수).” 공연이 시작됐다. 고인이 된 분(박형용, 정규옥, 백남조 등)도 기리고 살아있는 분(서기행, 홍정이)도 기리는 ‘불의 연대기’가 헨델의 ‘울게 하소서’를 시인 소강석이 작사한 51인 신앙동지회의 노래 ‘불기둥’을 시작으로 총감독 소강석 목사가 개사한 ‘울게 하소서’ 코러스로 막을 내렸다. 주여 주여 울게 하소서 우리의 마음 주께 드립니다 눈물의 기도 울게 하소서 ... 주여 교회와 총회 다시 세워주소서 헨델의 오페라 ‘리날도’의 배경은 1096년~99년 사이 제1차 십자군 전쟁 시기이다. 십자군 사령관 고드프레이(Godfrey)는 대장군 리날도(Rinaldo)에게 사라센 왕 아르간테(Argante)가 점령하고 있는 성지 예루살렘을 탈환하면 딸 알미레나(Almirena)와 결혼시키겠다고 약속한다. 십자군의 대규모 공격이 준비되고 있다는 것을 안 아르간테는 3일간 휴전을 요청한다. 아르간테 왕은 십자군을 파멸시키기 위해 정부 아르미다(Armida)에게 도움을 청한다. 아르미다는 다마스쿠스의 여왕이며 마법사다. 아르미다가 도착해 만일 리날도 장군을 십자군과 떼어 놀 수 있으면 승리할 것이라고 아르간테 왕에게 말한다. 어느 골짜기에서 리날도와 알미레나가 영원히 변치 말자고 다짐하며 사랑을 속삭이고 있다. 그때 갑작스럽게 나타난 아르미다가 알미레나를 납치한다. 리날도가 죽을힘을 다해 대항하지만 아르미다에게는 당할 수가 없다. 알미레나가 납치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고드프레이와 그의 동생 에우스타치오(Eustazio)가 달려온다. 이들은 아르미다를 물리치기 위해서는 산속에 은둔하고 있는 마법사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다고 얘기한다. 아르미다와 사라센 왕 아르간테가 힘을 합쳐 십자군 공격에 대항한다. 치열한 전투에서 결국 리날도가 이끄는 십자군의 승리로 끝난다. 다시 만난 리날도와 알미레나는 재회의 기쁨을 나눈다. 아르미다와 아르간테는 붙잡힌다. 아르미다는 그녀의 마법 지팡이를 부서뜨리고 아르간테와 기독교로 개종한다. 헨델의 다른 오페라 세리아 작품들처럼 리날도는 거의 200년 동안 잊혔다. 그러나 1970년대를 시작으로 이 작품은 정기적으로 재공연되고 일반 오페라 공연 목록의 일부가 되었다. 그 배경에는 ‘울게 하소서’(Lascia ch'io pianga)가 오페라 배경을 알지 못하는 많은 세계 관객들에게 다가가게 하는 도구가 되었다. 헨델이 사라방드 풍으로 쓴 이 슬프고 애절한 노래는 카스트라토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파리넬리’에 쓰이면서 알려졌다. 가사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슬퍼하게 내버려 두세요. 나의 잔인한 운명, 난 자유를 열망해요. 괴로움으로 이 속박을 끊게 해 주세요. 내가 받는 고통을 불쌍히 여겨 주세요.“ 가끔은 아무 말 없이 내버려 둬야 할 슬픔도 있는 것 같다. 우리 현실은 믿음의 부재와 고착된 이기주의에 지나지 않는 금전의 범람이 급류를 타고 있다. 과거에는 그보다 우월한 것이 있었다. 신앙인, 지식인, 재능, 국가에 대한 헌신이 그러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사라졌다. 이제 총감독 소강석의 ‘울게 하소서’를 보고 들은 믿음의 수호자이고 전파자인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기독신문 주필 김관선 목사는 말했다. "... 우리가 오늘 울면서 우리 교단의 미래를 여시고 과거에 불처럼 타올랐던 역사적 인물들이 우리를 통해 재현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다음 세대를 통해서 이 땅을 다시 회복하는 그리고 저 북녘땅도 회복하는 놀라운 역사를 다짐하는 ‘울게 하소서’가 되기를 바랍니다." 2026년 5월 11일부터 13일까지 사흘간 전국목사장로기도회가 열리는 용인제일교회가 자리한 1970년대 용인 시내에는 기장과 감리회 교단의 교회 2개만 있었다. 예장합동 교단 소속 교회는 없었다. 당시 신학생으로 고군분투하던 변우상 목사는 용인 인근에서 군목으로 사역하던 이기만 목사에게 교회를 개척하고 청소년 선교에 나서도록 독려했다. 1973년 4월 용인제일교회는 이렇게 설립됐다. 그러나 이기만 군목은 근무지변경으로 1년도 안 되어 전근을 떠나게 됐고, 결국 변 목사가 1974년 2월 천막 예배당 용인제일교회에 부임했다. 2012년 12월 1일 토요일 용인제일교회 목회 38년과 예수향기를 날린 평생 사역 50년을 마감하고 기리기 위해 변우상 목사 원로추대 및 임병선 목사 위임 감사예배가 용인시 마평동 용인제일교회 본당에서 거행됐다. 장년 4000명이 출석하는 교회로 성장한 예배당은 용인제일교회 성도는 물론 중부 지역 목회자 및 장로들과 지역 정재계 인사 등으로 가득 찼다. 변 목사가 지역사회와 총회와 교계에서 고결한 성품으로 데오포로스(Theophoros; 하나님을 닮은 사람)로 불린 사도 요한의 제자 이그나티우스 같은 “한국 교회의 예수향기 목사”로 일컬어지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2021-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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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김한욱 목사 소나무의 푸르름
외교 전략 가운데 ‘대나무 외교’가 있다고 한다. 그것은 ‘뿌리는 단단히, 줄기는 곧게, 가지는 유연하게.’ 핵심은 가지의 유연함을 지키는 게 아니다. 오히려 휘어도 부러지지 않는 뿌리를 위한 즉 원칙의 외교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사계절 푸른 소나무는 유연하게 휘지 않지만 대신 어떤 바람이 불어도, 어느 계절이 와도, 제 빛깔을 잃지 않는다. 소나무는 꺾이지 않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혹한에도 곧게 서 있기 때문에 아름다움을 유지한다. 하나님의 영광 그 빛을 위한 개혁주의 열망처럼. “논문을 쓰기 위해 학교 연구실 책상 주위를 배회했지만 두 줄을 넘길 수 없었다.” 대한민국의 초기 사학계에 영향을 미쳤고 민족사학을 개척하고 그리고 그 한국사의 대중화에 힘썼다는 평가를 받는 역사학자 고 이기백(李基白, 1924년 10월 21일 ~ 2004년 6월 2일) 교수의 수필에 나온 한 문장이다. 그의 묘비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혀있다고 한다. “민족에 대한 사랑과 진리에 대한 믿음은 둘이 아니라 하나다." 그렇듯 "총회에 대한 사랑과 구원에 대한 믿음은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신앙을 드러낸 목사가 총회 현장에 나타났다. 그는 2022년 9월 6일 대전중앙교회에서 열정적인 정견발표를 외친 신예 제107회 총회 부서기 후보 김한욱 목사다. 그는 예전에 제101회 총회 부서기 후보로 등장해 돌풍을 일으킨 총회 불꽃 권순웅 목사를 떠올리게 한다. 그는 2016년 9월 8일 대전중앙교회에서 '개혁, 바로 세우기, 품격 회복 등 이른바 3R을 통해 성숙한 총회가 되는 일에 헌신하겠다'라고 정견발표를 했다. 그리고 9월 26일 부서기 선거에서 신예 권순웅 목사가 총 1369표 중 808표를 얻어 558표에 그친 관록의 김상현 목사를 제치고 당선됐다. 그 뒤를 이어 2022년 9월 7일 푸르른 소나무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김한욱 목사의 정견발표다. "저는 정견발표를 위해 오랫동안 준비해왔습니다. 그 준비과정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귀 기울였습니다. 얼마 전에 하나님께서 제 마음에 감동을 주셨습니다. '네가 아무리 좋은 청사진을 내놓는다 하더라도 네 자신이 올바른 사람이 아니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깨우침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모든 공약을 일단 내렸습니다. 그리고 저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우리 목사님들과 장로님들에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총회는 정말 일꾼, 정말 총회를 아름답게 변화시킬 일꾼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불신자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시골 조그만 교회에 초등학교 4학년 때 출석했습니다.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습니다. 그리고 가정이 너무 가난해 열여덟 살에 외항선 선원으로 배를 타기 시작했습니다. 친구들이 고등학교 다닐 때 저는 외항선을 타고 어둠의 그늘을 지나기 위해서 놓치 않은 것이 있다면 성경책입니다. 기도하고 성경을 읽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제 마음에 감동을 주셨습니다. 제가 열아홉 살 때 30명이 탄 배에서 저 혼자 예배를 드리며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선원들을 전도하게 해주십시오.' 결국에는 30명 가운데 27명이 모여 예배하게 되었습니다. 1년 뒤 한 달을 쉬게 됐는데 그 시간 동안 육지에서 전도 훈련과 영적 사역을 배웠습니다. 22살, 25살 청년의 시대에 거리로 나가서 전도를 했습니다. 26살에 교회를 개척하고 신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공부했습니다. 저는 한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 너무나 귀하기 때문에 어두운 광야에서 사람들을 쫓아다니며 전도했습니다. 제가 목사가 되기 위한 두 가지 뜻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 세상에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교회를 세우고 영혼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24년 전(1998년)에 새안양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그리고 ‘제2 새안양교회’를 세우고 안양에서 멀리 떨어진 하남에도 교회를 세웠습니다. 다 당회가 구성되고 독립했습니다. 저는 총회를 위해서도 바르고 정직하게 일하겠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섬기는 가운데 '해피데이 전도시스템'을 개발해 불신자를 전도하는데 앞장섰습니다. 제 공약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제107회 '샬롬 부흥'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이때를 위하여 김한욱을 준비시켜주셨고 총회장 이하 임원들을 잘 섬겨서 제107회 총회를 아름답게 끝맺는 일을 뒷바라지하고자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회중 힘찬 박수) 신앙은 지식보다 중요하다. 지식엔 한계가 있지만 신앙은 세상을 감싸고 하나님과의 샬롬이 이루어지고 푸르른기 때문이다. 김한욱 목사에게 어울리는 말씀일 듯싶다. 성경은 말씀한다. …하나님이여 저를 기억하시고 은총을 내리소서 느 13:31 2022-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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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허은 목사 부산의 아우구스티누스
지난 2017년 대통령 선거 막바지에 민주당의 공동선대위원장인 이해찬씨는 말했다.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다음에는 안희정·이재명·박원순 같은 사람이 이어서 쭉 장기 집권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보수 세력을 완전히 궤멸시켜야 한다.” 보수 진영으로서는 ‘싸가지 없는 소리’였겠지만 이제 윤석열 정권이 들어선 지 2년 반이 지난 이 시점에서 어쩌면 이해찬씨의 말은 그냥 흘려버릴 말이었던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말한 세 사람 가운데 사법 위기에 허덕이는 이재명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무들은 먹은 것도 없이 겨우내 버틴 몸으로 꽃까지 피워내야 하는 것이 봄이다. 새싹이 온몸으로 흙을 밀어 올려야 하는 것도 봄이다. 그건 정말이지 하나님이 모든 생명이 아무도 모르게 잠들 수 있도록 이마를 쓰다듬어 주시는 은총이다. 인간의 공로보다 하나님의 은총을 강조한 아우구스티누스(354년 11월 13일 ~ 430년 8월 28일)가 말했다. "사랑이 있고 소망이 있어야 없는 것을 본다. 소망이 없으면 눈에 안 보이는 것을 보지 못한다." 아우구스티누스라는 이름은 '작은 아우구스투스'라는 뜻으로 로마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에게서 따온 이름이다. 427년 반달족(게르만족의 한 민족)이 북아프리카를 쳐들어왔을 때 피난민들이 전쟁을 피해 아우구스티누스 감독(bishop)이 살고 있던 히포에 쏟아져 들어왔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감독이었으므로 안전한 곳으로 찾아가거나 교회에 은둔할 수도 있었지만, 기꺼이 피난민들을 위해 봉사했다. 결국, 아우구스티누스 감독은 430년 8월 28일, 반달족이 히포를 점령하기 얼마 전(반달족의 히포 점령은 431년의 일) 피난민들을 돌보다가 걸린 열병으로 76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그는 이 땅의 삶을 끝내는 순간까지도 전쟁으로 두려움에 빠진 난민들을 돌보며 피난처를 제공하였다. 이는 "우리의 이웃이 하나님께 관심을 가질 때 그들에게 자비롭게 대하는 행동은 우리를 불행에서 벗어나게 해 주고 행복에 이르게 한다"는 자신의 신념에 따른 것이었다. 그는 '고백록'에서 말했다. "물체는 제 중심에 따라서 제 자리로 기웁니다. 중심이란 꼭 밑으로만 아니고 제 자리로 기웁니다. 불은 위로 향하고 돌은 아래로 향합니다. 제 중심을 향해 움직이면서 제 자리를 찾습니다... 그런 질서가 덜한 곳에는 불안하고 질서가 잡히면 평온해집니다. 제 중심은 저의 사랑입니다. 사랑으로 어디로 이끌리든 그리로 제가 끌려갑니다. 주님 은사로는 저희가 불타오르고 위로 이끌려갑니다. 타오르면서 갑니다." 2023년 3월 16일 오후 2시 부산 연제구 연산 8동에 있는 동현교회의 주민을 위한 무료 카페에서 지용길 목사와 함께 허은 목사와 대담을 나누었다. 지형적으로 저지대에 위치해 도로여건이 열악하고 인근 주민과의 관계성이 낮아 지속적인 인구 유출과 고령화로 인한 사회적 쇠퇴가 가속화되고 있는 곳이다. 2022년 5월 21일 입당 감사예배 및 헌당식을 드린 산등성이 동네 한가운데 있는 지상 4층, 지하 1층의 예배당은 아늑했다. 연산동을 아우르는 연건평 511평의 예배당은 주변 개발지역과는 달리 지형적인 한계로 인해 소외받았던 연산8동과 어울려 아담했다. -여기는 언제 자리 잡으셨습니까. "지난해 5월에 입당했습니다. 아직 1년이 되지 않았습니다. 제가 총회 부서기 마치고 그해 2021년 12월에 공사 시작해 서기 임기 중(2022년 5월)에 완공이 됐습니다." -많이 바쁘셨을텐데. "네. 교회 일과 총회 일이 겹쳤습니다. 교회 장로님들, 집사님들 많이 수고하시고 정말 은혜중에 잘 마쳤습니다. 이 지역은 주로 서민들이 많이 삽니다. 주택가 한가운데 있고 도로변에 있지 않아서 불리한 면이 있는데 오히려 동네 가운데 있어 조용하고 지역 주민들하고 가깝게 지내니까 좋습니다. 이 카페는 무료 카페입니다. 누구나 자기 마음대로 차 빼서 마시고 우리 교회 교역자 집사님들이 순번을 맡아 봉사를 합니다." -이런 교회 카페는 못 본 것 같은데요. "여기는 어려운 분들, 독거노인들이 많아 지난해 5월에 입당하면서 전체 100개 가정에 쌀, 라면을 동사무소를 통해 전달했습니다. 지난 연말 성탄절에 2백 가정에 한 상자에 105만 원 상당의 생필품을 전달했습니다. 그야말로 지역에 있는 교회로서 지역민과 함께하려고 합니다. 우리 사회가 초고령화 사회로 가니까 교회 안에도 어르신이 많고 교회 주변 이웃에도 어르신이 많습니다. 다음 세대도 잘 키워야 하지만 이 어르신들에게 천국 기실 때까지 여러 가지 책임을 져주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장기적으로 집이 나고 교회가 살 여력이 되면 이런 어른들을 1인 1실, 혹은 2인 1실로 30분 정도 천국 가실 때까지 모셨으면 합니다. 그래서 제가 사회복지학도 전공해 사회복지사 자격증도 땄습니다. 요양보호사 자격증도 따고 요양시설을 운영하면 외부 시설장을 모셔야 되는데 제가 자격증을 따니까 경비도 줄이게 되죠. 그런데 교회가 작지만 아담하게 세워지니까 주변 지역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 있어 여기로 보내셨구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전에도 그랬습니다만 최근에도 우리 장로님들께서 '목사님 꿈꾸고 계시는 그 일을 현실화시켜봅시다. 교회 짓고 1년도 안 됐으니까 준비가 되면 옆에 있는 건물 하나 사 가지고 우리 형편에 맞게 부속건물 지어 청소년, 아이들, 청년들 교회 와서 마음껏 공부하고 놀 수 있게 자리 만들어줍시다. 그 위에는 어르신들을 모시고 우리가 평생 책임져주고 하는 일을 생각하고 준비해가고 있습니다. 작지만 아담하게 지역민과 함께하는 그런 교회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동현교회는 개척하셨나요, 부임하셨나요. "제가 2대 목사입니다. 1대 목사님이 다른 교회를 섬기다가 나오셔서 성도 30여 명하고 한 가정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다 그 어려운 시절에 소금공장도 하시고 빌려서 예배드리셨습니다. 제가 보니 전월세를 일곱 군데나 다니셨습니다. 그러다가 작은 주택을 하나 매입해 예배당을 짓고 IMF가 올 당시 빚이 상당했습니다. 저를 후임으로 오라 했습니다. 당시 목사님이 협심증으로 건강이 많이 안 좋으셨습니다. 숨이 차서 설교를 잘못하셨습니다. 그때 제가 담임목사로 부임을 하고 1년 뒤 다 물려받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전임 목사님이 인천 길병원에서 수술하고 좋아지셨습니다. 건강이 좋아지시니 3년 동안 안 물려주시는 겁니다. 3년 뒤 위임투표를 해 물려받긴 했습니다. 물려받은 뒤 있던 교회를 매각하고 다른 교회를 사서 리모델링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교회는 우리에게 부담이 됐습니다. 그러다가 그 교회가 너무 도시 중앙이고 환경이 유흥가라 장기적으로 볼 때 어렵겠다는 판단이 섰습니다. 코로나 시국인데 장로님들과 뜻을 모으게 됐습니다. 그리고 마침 여기 집 네 채가 한 날, 한 시 동시에 계약이 됐습니다. 그 네 집을 한 필지로 묶어 헐어내고 건축을 했습니다. 그리고 2021년 12월에 공사 시작해 총회 서기 임기 중인 2022년 5월에 완공이 됐습니다." -은혜롭고 순적하게 성전 건축이 됐군요. "그런데 막상 와보니 없는 사람이 많은 동네라 교회가 제대로 되겠나 싶은 생각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안 좋아하시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것이라 믿었습니다. 예배당을 건축하고 옥상에 올라가 보니 왜 이곳으로 하나님이 보내셨는지 환하게 이해가 됐습니다. 주변에 대단지 아파트가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습니다. 성벽처럼 싹 둘러싸고 있고 딱 우리 교회가 서 있는 주변에 서민들이 사는 고만고만한 건물만 좍 있는 겁니다. 그 가운데 우리 교회가 서 있는 겁니다. (나중에 올라가 보니 정말 그랬다.) 어려운 분들 사는 가운데 교회가 있고 그 주변에는 대단지 아파트가 병풍처럼 좍 서 있는 겁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곳에 교회를 세우셨는가. 그래 이분들 섬기라고 하나님께서 이곳에 교회를 세우셨구나 하는 생각으로 받아들이고 말씀을 들을 때 성도들의 생각이 이제 많이 바뀌었습니다. 그러라고 하나님께서 교회를 이곳에 세워주셨다. 그렇게 해서 작지만 차근차근 우리 힘에 맞게 지역도 섬기고 또 우리 노회 장로회에서 해외 개척 선교를 하겠다 해서 단독으로 하기에는 좀 버거운 게 있고 해서 우리 교회하고 노회장 노회하고 절반씩 힘을 보태 캄보디아에 교회를 하나 세웁니다." 그 관련 기사가 '기독신문'에 다음과 같이 실렸다. 동부산장로회 임원들은 부산 동현교회(담임 허은 목사) 성도들과 함께 2023년 2월 27일부터 3월 2일까지 캄보디아를 방문하고, 천준상, 이숙영 선교사가 사역하는 바탐방지역을 탐방했다. 이 지역에서는 약 20평 규모의 비전교회 예배당을 신축하고 이 일대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중고대학생 52명이 생활할 수 있는 EDM선교센터를 증축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동부산장로회와 동현교회는 이 공사에 들어가는 비용 4천만 원을 함께 감당하기로 했다. 허은 목사는 지난 2021년 9월 제106회 총회 서기 직무를 시작하면서 다짐했다고 한다. “총회 서기는 총회 소속 노회와 교회의 분쟁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해야 하는 직분이지만 법과 원칙을 지키며 어떤 외압에도 바르게 섬기겠다.” 부산 아우구스티누스 허은 목사는 제107회 총회선거관리워원회 서기로서 제107회 총회 불꽃 권순웅 총회장의 클린개혁을 떠받칠 제108회 총회 임원과 상비부 선거를 깨끗하고 투명하고 공정한 선거를 관리해야 되는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했다. 낳아주신 어머님, 길러주신 어머님을 다 같이 진심으로 섬겼던 효심을 그리고 이 땅의 삶을 끝내는 순간까지도 자신의 신념을 따른 아우구스티누스처럼 동현교회와 총회를 섬길 것이라 믿는다. 그리면 제104회 총회장 이승희 목사가 총회 석상에서 "당신 같은 사람이 총회장이 되어야 한다"고 한 예언이 이루어질 것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히 11:1-3 2024-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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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청교도 김장환 목사와 김종원 목사 5
“미국은 다시 이기고 있습니다. 그 점을 증명하는 완벽한 증거가 오늘 밤 이 자리에 있습니다.” 2026년 2월 24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2기 행정부 들어 두 번째로 열린 상·하원 합동 연설이 시작됐다. 이날 백악관과 민주당은 국정연설에 초청한 ‘특별 손님’을 통해 각자의 정치적 입장을 강조하는 전략을 펼쳤다. 트럼프는 6·25 전쟁에 전투기 조종사로 참전한 E. 로이스 윌리엄스를 초청해 그에게 미국 최고 군사훈장인 ‘명예 훈장(Medal of Honor)’을 수여했다. 그는 1952년 기밀 작전에서 소련 전투기 네 대를 격추했다. 트럼프는 이달 초 윌리엄스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훈장 수여 사실을 알렸다고 한다. 이날 윌리엄스는 멜라니아 여사와 나란히 앉았고, 멜라니아가 목에 훈장을 걸어줬다.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는 순간은 2차 세계대전의 재현이었다. 제1 세계로 간주되는 대륙에서 오랜 역사를 공유하는 이웃 국가를 영토 문제로 침공하는 일은 지난 반세기 동안 일어난 적이 없다. 적어도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한 이후로는 없다. 한국전쟁은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북위 38°선 전역에 걸쳐 러시아 사주를 받고 북한군이 불법 남침함으로써 일어난 한반도 전쟁이다. 광복 후 한반도에는 냉전체제 속에서 남북에 별개의 정부가 수립되었다. 이 과정에서 막강한 군사력을 갖춘 북한이 통일을 명분으로 전면적인 남침을 개시했다. 유엔의 결의에 따른 국제사회의 개입으로 역전되던 전황은 다시 중공군의 개입으로 교착상태에 머물다가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이루어지면서 전쟁이 중지되었다. 한민족 전체에 큰 손실을 끼쳤고 이후 남북분단이 더욱 고착화하여 아직도 휴전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미군병사 칼 파워스 기념비 극동방송 이사장 김장환(1934-) 목사의 일생은 한국 현대사의 고난과 영광이 겹쳐있다. 경기도 화성의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었던 김 목사가 1950년 한국에 온 미군 칼 파워스(Karl Powers, 1928~2013. 9. 21) 상사의 무조건적 헌신으로 미국 유학을 마치고 목사가 되었다. 그는 말했다. "내 인생을 바꾼 건 한 미군 병사의 힘이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예수님도 한 사람이셨습니다. 모든 것은 한 사람의 힘으로 시작됩니다.” 그는 1934년 경기도 화성군에서 태어나 가난한 소작농의 가정에서 5남매 가운데 막내로 자랐다. 어려운 형편이라 늘 끼니가 걱정이었다. 그가 4학년 때인 1945년 8월 15일 광복이 되면서 수원의 못골이라는 곳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전학 온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여 4대1의 경쟁을 뚫고 6년제 수원농림학교에 들어갔지만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학업을 계속하기 힘들었다. 어떻게든 공부를 하고싶었던 그는 서울의 철도고등학교는 전액장학금으로 공부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1950년 6월 26일 혼자 서울로 향했다. 그 하루 전의 한국전쟁 발발을 알지 못했던 그는 피난 인파에 휩쓸려 고생하다 구사일생으로 살아 수원으로 돌아왔다. 9월 28일 서울이 수복되고 인민군이 물러갔으나 여전히 학교 문은 열리지 않아 그는 산에 나무를 하러 다니곤 했다. 그가 열일곱 살 되던 해, 6.25 전쟁 중인 1950년 12월 경부터 이듬해인 1951년 1월 초 사이, 중국인민지원군의 공세로 유엔군의 주력이 서울에서 물러나고 공산군이 서울을 재점령한 1·4후퇴 때 퇴각한 미군들이 수원교도소에 잠시 머물게 되었다. 그가 친구들과 담장 밖에서 구경을 하고 있을 때 한 미군이 여러 친구 중에서 김장환을 손가락으로 지목하여 그를 막사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더니 난로를 가리키며 불을 지펴달라는 시늉을 했다. 눈치 빠른 그는 재빨리 논두렁에 박아놓은 말뚝을 뽑아와서 난로불을 피워주고 시키지도 않은 청소까지 거기다 신발까지 반짝반짝하게 닦아 놓자 영특하고 부지런한 그를 매일 오게 했고, 부대가 경산으로 내려갈 때 그를 데려 갔다. 막내아들을 전쟁통에 타지로 보낼 수 없었던 어머니 반대가 심했지만 그는 영어도 배우고 일을 해서 돈도 벌고 싶었다. 일을 하고 받은 초콜릿이나 담배는 암시장에 내다 팔면 바로 돈이 되었다. 1950년 9월 28일 서울 수복이 되자 수원교도소 자리에 미군 부대가 들어왔다. 갓난아기에게 무언가 먹이려고 애쓰던 어머니들, 전쟁고아의 비참한 삶, 공포에 떨던 민간인들, 그리고 폐허가 된 마을들. 경기도 수원에서 살던 소년 김장환 집안은 찢어지게 가난했다. 김장환 목사는 수복 후 당시를 회상했다. “우리 집은 소작농이었습니다. 농사를 지으면 60%를 땅 주인에게 주고, 나머지 40%로 살았습니다. 식구는 13명이었습니다. 양식이 모자라 한 가마를 빌리면 가을에 한 가마 반을 갚아야 했습니다. 쌀이 한 톨도 섞이지 않은 보리쌀만 먹고 자랐습니다. 그래서 꿈이 정치인이었습니다. 친구들과 종종 미군 부대로 놀러 갔지요. 운 좋으면 초콜릿이나 껌을 얻을 수 있었거든요. 소와 마차를 빼앗겨 집안은 빈털터리였습니다. 미군 부대에서 얻어가는 담배와 비누, 통조림 등을 팔아서 집안 생계를 도왔지요.” 하루는 미군이 김장환에게 장작을 구해 난로에 불을 피워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막사 청소까지 해놓았다. 남달리 똘똘하고 영리한 그는 미군 숙소에서 허드렛일을 하던 소년 하우스 보이가 됐다. 미군 부대에서 하우스 보이로 일하게 된 어린 소년들은 미군에게 달러로 임금을 받고, 자신이 일하는 숙소의 미군에게 필요한 물품들을 얻을 수 있었다. 미군의 전투식량인 C-레이션을 얻을 수 있는 것은 기본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사용한, 조리 과정 없이 바로 먹을 수 있는 1인용 통조림 형태의 전투식량이다. 해방 이후엔 C-레이션이 상자당 쌀 1되 값에 시장에서 팔렸다. 그리고 미군이 입지 않은 속옷, 양말, 전투화, 군복 등도 모두 얻어올 수 있었다. 하우스 보이로 일하면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의 가족들도 배고픔을 어느 정도 면할 수 있었다. 경산에 있을 때 어느 미군이 그에게 '빌리'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영미권의 남자이름인 윌리엄(William)에서 파생된 이름 혹은 애칭(William→Billy→Bill)이다. 생뚱맞게 윌리엄에서 왜 발음이 전혀 다른 빌리와 빌이란 애칭이 나온 것인지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으나, '윌리엄'이란 영어식 이름은 원래 게르만식 이름에 뿌리를 두고 있다. 특히 게르만식 언어에서는 자음 W가 영어의 V와 비슷한 음가를 지니기 때문에 나오게 된 형태이다. 실제 동일한 계통에서 파생된 독일식 이름으로 빌헬름(Wilhelm) 또는 빌로헬름(Wilohelm)이 있다. 따라서 양쪽 모두 애칭이 빌리(영어: Billy, 독일어 Willy)가 된다. "단호한 보호자"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 이름을 지어준 미군은 꼬마 소년 김장환이 아주 똑똑하고 야무지게 보였던 모양이다. 빌리는 그곳에서 일생의 은인인 인사 업무를 담당하던 칼 파워스 상사를 만난다. 당시 22세였던 칼 파워스 상사는 폭격을 피해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부모와 생이별한 어린이들을 보면서 자신이 단 한 명의 아이라도 이 전쟁에서 구해야겠다는 결심을 하던 중 옆 막사에서 성실하게 일하는 빌리를 눈여겨 보게 된 것이다. 그는 빌리에게 미국에 가서 공부를 시켜주겠다고 제안했고 늘 배움에 목말라 있던 빌리도 선뜻 따라가겠다고 약속했다. 51년 5월 칼 파워스 상사가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그린빌에 있는 밥존스 고등학교 입학 허가서를 들고 나타났다. 환갑이 넘은 어머니는 고심 끝에 아들의 유학을 허락했다. 아들이 7년의 유학을 마치고 돌아오기 전에 세상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인지 어머니의 눈에서는 눈물이 쉴새없이 흘렀다. 아들에게 종이봉지에 흙을 담아 주면서 고향생각이 날 때 다려 먹으라는 당부를 하며 보냈다.1951년 11월 12일 전쟁중인 최빈국 한국에서 17세의 고등학생이 유학을 떠난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11일의 항해 끝에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을 때 빌리는 놀라서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호롱불로 밤을 밝히던 수원에서 크리스마스 트리가 번쩍이는 신천지에 도착한 것이다. 아직 근무연장기간이 끝나지 않은 칼 파워스 상사 대신 먼저 귀국한 동료가 빌리를 마중 나왔고, 며칠 후 드디어 칼 파워스 씨가 사는 버지니아주 단테시에 도착했다. 빌리는 미국에 가서야 칼 파워스 씨가 그리 넉넉한 형편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단테시에서도 한참을 들어가는 산골짜기에 사는 칼 파워스 씨는 곧 대학에 입학할 예정이었지만 자신의 결심을 실천하기 위해 빌리를 데려와 사우스 캐롤라이나주의 기독교 사립학교인 밥존스 중학교 3학년에 편입하게 되었다. 기독교인이 아닌 칼파워스 씨가 빌리를 학비가 싼 버지니아주 공립학교 대신 기독교 사립학교에 넣은 것이 오늘의 김장환 목사를 탄생시킨 계기가 되었다. 군대에서 한 동료가 "밥존스가 외국학생들에게 관심이 있다"고 한 말 때문에 선택한 학교였다. 빌리를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주려고 학비가 비싼 사립학교에 입학시킨 것이다. 밥존스 재단은 기독교 교육을 위해 밥존스 1세가 1927년에 설립한 학교로 매우 보수적인 학풍을 고수하고 있다. 근본주의 신학을 신봉하는 기독교 학교로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명문으로 꼽힌다. 밥존스 재단은 유치원부터 대학원까지 한 울타리에 있는데 중학생부터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되어있다. 엄격한 생활과 함께 매일 아침 채플에 반드시 참석해야 한다. 빌리는 말도 통하지 않는 가운데 학교생활을 하면서 어려움을 겪던 중 제리 메이저라는 신학과 학생의 전도를 받고 하나님을 영접했다. 지독한 외로움과 답답함에 시달리던 빌리는 한국말로 기도를 하면서 기운을 차릴 수 있었다. 선생님들이 돌아가며 방과후에 영어를 못하는 빌리를 따로 지도해주었고, 기숙사 동료들도 열심히 도와주어 첫 학기를 낙제하지 않고 통과할 수 있었다. 칼파워스 씨에 집에서 방학을 보내면서 빌리는 파워스 씨가 군인장학금으로 어렵게 공부하면서 자신의 학비를 댄다는 사실을 알고 더욱 열심히 공부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빌리는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영어가 익숙해진 데다 칼 파워스 씨를 실망시키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각오를 단단히 다졌기 때문이다. 반드시 뭔가 이룩한 뒤 한국으로 돌아가겠다는 일념도 한몫 했다 빌리가 더욱 자신감을 얻게 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 전국 고등학교 웅변대회에 참가하고부터였다. 전국 웅변대회가 열린다는 사실을 알고 칼 파워스 씨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 직접 원고를 써서 선생님께 지원하겠다는 결심을 밝혔다. 선생님은 동양학생이 지원한 것을 가상히 여겨 웅변연습을 도와주었다. R과 L 발음을 고치기 위해 입에 구슬을 물고 피나는 연습을 한 결과 교내대회에서 1등을 하고 학교 대표로 주대회와 전국대회에 나가 1등을 해 아이젠하워상을 받았다. 그 일로 빌리는 밥존스에서 일약 유명인사가 되었다. 방학 때 빌리가 1등 트로피와 부상으로 받은 텔레비전을 안고 칼 파워스 씨 집으로 돌아갔을 때 온동네에 화제가 되었다. 칼파워스 씨는 빌리의 학비를 대기가 버거울 때는 지역 신문인 '디킨스니언'지에 빌리의 사정을 알리고 모금을 하기도 했다. 많은 사람이 동양학생을 위해 성금을 보내주었고 빌리는 모금 문화에 대해 고마움을 느꼈다. 학교생활에 자신이 붙은 빌리는 과외활동에도 열심이었다. 하지만 사귀는 여학생이 없어서 의무적으로 참석해야 하는 학교 음악회에 언제나 혼자 가야했다. 키가 큰 미국 여학생들에게 호감을 느끼지 못했던 빌리는 고등학교 3학년 때 학교 식당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아담하고 예쁜 여학생을 발견하고 눈을 반짝였다. 용기를 내서 데이트 신청을 했을 때 트루디는 환하게 웃으며 빌리를 맞아들였다. 만능 스포츠맨인데다 학업성적이 우수하고 기숙사에서 벌점을 단 1점도 받지 않은 모범생 빌리는 이미 학교 내에서 인기스타였다. 두 사람은 음악회에 다녀온 뒤 편지를 주고받다가 2년 후 트루디가 고등학교 3학년 때 정식으로 데이트를 시작했다. 빌리는 고교 졸업 때 우등상을 받았고 그 소식은 빌리의 학비를 모금해주었던 디킨스니언에 보도되기도 했다. '빌리 김은 모히칸 문학단체의 일원이었고 스포츠 매니저이기도 했다. 또 학급 성가대원이었고 미국 미래교사회 밥 존스 고교 지부의 리더였으며 학생신문 '트라이앵글'지의 스포츠 편집자였다. 그는 사우스 캐롤라이나주 '민주주의의 소리' 웅변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고 빌리를 소개했다. 고교를 졸업할 때 빌리는 망설임 없이 신학대학을 선택했다. 미국에 와서 신앙을 갖게된 그는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의 신앙상담자와 신앙관련 모임의 리더로 활약하면서 믿음을 키워나갔다. 밥존스에서는 정기적으로 채플시간을 통해 바이블 컨퍼런스를 실시한다. 한국의 부흥회와 비슷한 형태인데 빌리는 그 예배를 통해 강한 비전을 받고 주말이면 대학생 선배들을 따라 시골교회에 가서 전도도 하고 간증도 했다. 돈을 모아서 다른 지역에서 열린 빌리그레이엄 전도집회에 참석해 강한 도전을 받기도 했다.빌리는 대학교에서 한 학기를 마쳤을 때 파워스 씨 집과 가까운 롱브랜치 교회에 강단에 서게 되었다. 출석교인이 약 50명 정도 되는 작은 교회였다. 그 교회에 파워스 씨의 외삼촌이 다니고 있었는데 마침 부흥집회 기간을 맞아 서너 명의 강사를 초청할 때 빌리도 포함되었던 것이다. 빌리는 한시간 동안 한국 상황과 미국에 오게된 경위, 학교 생활, 앞으로의 꿈을 조리있게 강연했다. 그날 집회가 소문이 나면서 빌리는 단테시의 여러 교회에 부흥강사로 초청되었다. 뿐만 아니라 라이온스 클럽과 로터리 클럽에서도 빌리를 스피치 강사로 초청했다. 한번은 비행기를 타고 아칸소까지 가서 스피치를 하고 돌아왔다. 동양인이 거의 없는 지역이어서 한국에서 온 빌리의 흥미로운 스피치는 어디서나 인기였다. 빌리는 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 학비 이외의 경비는 스스로 마련하였다. 칼 파워스 씨가 공부에 지장이 있는 아르바이트는 하지 말라고 하여 주말에 강연을 하고 방학 때마다 동급생인 왈리의 집에 가서 일했다. 왈리의 아버지 왈도 예거 장로는 오하이오주 톨레도에서 닭과 칠면조를 가공하는 회사 코트랜드를 운영했다. 예거 장로는 미국 기독교실업인협회 회장을 3년간 역임한 신실한 크리스천이었다. 빌리는 방학 때 왈리집에서 함께 생활하며 미국 기독교인 가정의 삶을 체험할 수 있었다. 대학 3학년 때까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미국 시골 마을로 전도하러 가는 주말 전도여행에 빠지는 일이 없었다. 어디를 가든 키 작은 한국 청년의 스피치는 큰 감동을 안겨주었다. 4학년 때 빌리는 대학원을 마치면 한국에 가서 복음전도자로 살겠다는 결심을 굳히고 주말 전도여행을 더 열심히 다녔다. 학교생활이 익숙해져 어려움이 없었지만 배고픔 때문에 고통받은 적이 많았다. 기숙사에서 세끼 밥을 먹지만 용돈이 없어 군것질을 할 수가 없었다. 파워스 씨가 어려운 환경 가운데 자신을 도와준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빌리는 꼭 필요할 때만 지원을 요청했다. 빌리와 트루디는 좋은 만남을 갖고 있다가 트루디 언니 결혼식에 참석한 이후 자연스럽게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다. 미시간주 레이크뷰에서 열린 결혼식에 참석한 빌리를 트루디의 아버지는 마음에 들어했다. 빌리를 인근에 있는 프리 감리교회에서 저녁설교를 할 수 있도록 주선하기까지 했다. 트루디의 아버지는 설교를 들으며 빌리를 사윗감으로 점찍었지만 트루디의 어머니는 딸을 가난한 나라로 보낼 수 없다며 반대했다. 트루디의 어머니는 빌리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밥존스 대학교 총장을 만났다. 그 자리에서 총장은 "미국 사람이든 동양사람이든 결혼하려면 빌리 김보다 더 좋은 사람을 고를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루디를 시골집에 데려 갔을 때 칼 파워스 씨의 얼굴이 그리 밝지 않았다. 시골로 시집오려는 여자가 없어 독신으로 지내고 있던 칼 파워스 씨는 트루디 때문에 빌리가 미국에 주저앉게 될까봐 걱정을 했다. 하지만 미국의 중산층 집안에서 어려움없이 자란 트루디가 산골집에서 스스럼없이 부엌일을 하는 것을 본 칼 파워스 씨는 빌리의 결혼을 축하해주었다. 칼 파워스 씨는 빌리가 공부를 마치면 꼭 한국으로 돌아가서 활동하길 바라고 있었다. 빌리는 대학교를 졸업할 때 '1958년 밥존스를 빛낸 30대 동창생'에 선발되었다. 빌리와 같은 해에 졸업하기 위해 부지런히 방학 때마다 학점을 딴 트루디도 그해 8월에 교육학과를 졸업했다. 1958년 8월 8일 저녁 8일 두 사람은 미시간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빌리는 밥존스 신학대학원에 진학하고 트루디는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게 되었다. 트루디가 돈을 벌게 되자 빌리는 7년간 학비를 대준 칼 파워스 씨의 도움을 받지 않고 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 빌리는 1년 안에 대학원을 졸업하기 위해 공부에 전념했다. 트루디도 매일 새벽 2시까지 빌리가 과제물 밀리지 않도록 도왔다. 대학원은 32학점을 이수해야 하는데 대학 때 부지런히 학점을 이수하고 섬머스쿨까지 다닌 빌리는 예정대로 1년 만에 신학석사학위를 받았다. 1959년 2월 단테침례교회에서 빌리가 목사 안수를 받던 날 칼 파워스 씨는 빌리와 뜨거운 포옹을 나누었다. 그해 11월 빌리는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트루디의 교사월급과 빌리의 부흥집회 사례비로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자신을 후원해준 칼 파워스 씨의 고귀한 뜻을 헛되게 해서는 안된다는 결심을 한 것이다. 일단 고국으로 돌아갈 배표 2장을 일단 마련했지만 가난한 고국에 돌아가서 선교활동을 하려니 모든 게 걱정되었다. 부부는 방안에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 한달에 50달러 씩 도와주는 분이 있으면 서슴없이 고국으로 떠나겠습니다"라고 기도했다. 귀국을 앞두고 캔턴 침례교회에서 부흥회를 했을 때, 그 교회에서 마침 매달 50달러씩 선교비를 후원해주겠다고 약속했다. 곧이어 왈도 예거 장로가 세계기독봉사회를 창설하여 김장환 목사의 한국선교를 후원하겠다고 나섰다. 친구들은 한국 선교 때 사용하라며 모금을 하여 4륜구동 포드 픽업자동차를 선물해주었다. 매달 선교헌금을 하겠다고 약속한 친구들도 있었다. 캔턴침례교회와 친구들은 40년 넘게 후원비를 보내주고 있다. 1959년 12월 불안한 눈빛으로 뱃전을 서성이던 17세의 하우스보이 빌리가 8년 만에 목사 김장환이 되어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의 옆에는 파란눈의 트루디가 함께 했다. 그리고 포곡제일교회를 세우고 장로가 되고 김종원 목사를 담임교역자로 섬기게 될 공군 병사 빈병옥이 김장환 목사를 만나려고 한국 전쟁 중인 1951년 설립된 오산공군기지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하나님의 예정된 섭리 안에서... 성경은 말씀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창1:1-5 2026-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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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청교도 김장환 목사와 김종원 목사 4
심판의 날 모든 인생은 하나의 세계다. 그 대부분을 우리는 모른다. 바깥에는 뙤약볕이 내리쬐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이것은 날씨에 불과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가혹한 삶의 환경이다. 날이 덥거나 춥고 가끔은 비가 내리는 세상에서 그저 평범하게 식사를 준비하며 살아가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분명히 견뎌내야 하는 삶이기도 하다. 미국의 소설가 마리오 푸조(Mario Puzo, 1920년 10월 15일 ~ 1999년 7월 2일)가 집필한 장편 소설. 1969년 3월 10일 출판되었고 출간 직후 무려 67주간 뉴욕 타임스 선정 베스트셀러 목록에 머물렀다. 2년 뒤 1971년까지 미국 내 900만 부 이상, 전 세계적으로 2100만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가 됐다. 제목인 대부(代父, godfather)는 본래 가톨릭 등에서 세례성사와 견진성사를 받은 사람의 남자 후견인을 의미하는데, 여기선 마피아 조직의 두목을 가리키는 호칭이다. 소설 '대부'(The Godfather)는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코니 콜레오네가 결혼식을 한 1945년부터 비토 콜레오네의 뒤를 이은 마이클 콜레오네가 뉴욕을 제패하는 1955년까지의 이야기로 구성되었다. 도입부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1945년 8월 마지막 토요일(26일) 대부의 딸 콘스탄지아 코를레요네의 결혼식에는 이런 사람들을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청첩장을 받았다. 신부의 아버지 돈 비토 코를레오네는 롱아일랜드의 화려한 저택에 살고 있었지만 옛 친구나 이웃을 잊는 법이 없었다. 피로연은 자택 안에서 하루 종일 계속될 예정이었다. 틀림없이 대단한 행사가 될 것이다. 일본과의 전쟁도 막 끝났기 때문에 참전 중인 아들 걱정으로 축제 분위기를 해칠 염려도 없을 것이다. 결혼식은 사람들이 마음껏 즐기는 자리가 될 것이다. 미국은 1945년 8월 6일 전국민 옥쇄를 외치며 항복하지 않는 일본 히로시마에, 3일 뒤 8월 9일 나가사키에 81년 전 당시 0억 달러나 되는 거금이 들어간 원자폭탄을 투하했다. 1945년 8월 6일 새벽 2시 45분, B-29 폭격기 에놀라 게이는 원자폭탄 리틀 보이를 싣고 마침내 역사적인 출격을 감행한다. 실제 폭탄이 너무나 무거웠던 데다가 가득 채운 연료 때문에 사실상 이륙 중량 초과였으며, 이 때문에 더 충분한 활주 속도를 얻기 위해 티비츠 대령은 활주로 거의 끝에까지 가서야 겨우 이륙을 시켰다. 지켜보던 모든 사람들은 에놀라 게이가 이륙을 안하고 계속 달려나가자 활주로 끝에서 충돌하는 것 아니냐며 숨도 못 쉬었다고. 심지어 에놀라 게이 부조종사 로버트 루이스 대위조차도 티비츠(Paul Tibbets, Jr., 1915년 2월 23일 ~ 2007년 11월 1일) 대령이 이륙을 안하자 자신이 조종간을 당길 뻔했다고 술회했다. 이 상황을 히로시마의 시각에서 다시 구성해보면 우선 1945년 8월 6일 아침 7시, B-29 1대(기상관측 임무를 맡은 스트레이트 플러쉬)가 히로시마 상공에 나타났다. 많은 히로시마 시민들이 고고도에 유유히 떠있는 이 B-29를 목격했다. 공습 경보도 울렸지만 방공호로 대피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 당시 일본 시민들은 B-29의 폭격은 보통 수백 대가 들이닥치는 것이고, 한두 대 출현하는 건 정찰 임무 같은 것이라서 별다른 피해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당시 일본 군부와 국민들의 이러한 인식이야말로 미국 공군 폴 티비츠대령이 호위 전투기도 없이 소수의 B-29만 보내서 원자폭탄을 투하하도록 하는 일종의 기습 작전을 짜게 된 근본적인 원인이 되었다. 인류 최초의 실전 투입 원자폭탄이 폭발했다. 폭탄이 터지는 순간 히로시마 시민들은 엄청나게 밝은 빛을 목격했다. 이 빛이 얼마나 강한지 생존자들은 이라고 묘사하고 있으며, 손으로 앞을 가리니 자신의 뼈가 보였다고 한다. 미국 국무부와 군부는 1945년 8월 10일 일본군의 항복을 받을 계획을 세우면서 조선지도에서 38선을 찾아냈다. 38선 북쪽에서는 소련군이 항복을 받고 남쪽에서는 미군이 항복을 받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미국은 될수록 조선 북쪽 멀리까지 올라가 일본군의 항복을 받고 싶었지만, 바다 건너 오키나와 및 필리핀에 있던 미군들이 군함으로 조선에 이르려면 거의 한 달이 걸려야 했다. 이에 반해 소련군은 미국이 오래전부터 부탁한대로 일본에 대해 선전포고를 하고 이미 조선으로 진격해 남쪽으로 내려오는 중이었기 때문에, 미국은 조선의 절반이라도 차지하기 위해 소련군이 38선에서 멈출 것을 제안했던 것이다. 38선 이남이 이북보다 땅덩어리는 조금 작아도 수도 서울 및 인천과 부산 등 큰 항구를 갖고 있어 어느 정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미국은 소련이 훨씬 더 남쪽까지 내려올 수 있었고 그렇게 하겠다고 주장하리라 짐작했는데, 소련은 뜻밖에 이 제안을 받아들여 미군이 조선에 들어오지도 않은 터였지만 38선에서 남하를 중지했다. 김장환 목사가 16세가 되는 1950년 6월 25일 전까지... ‘하우스보이’ 김장환 목사 인생역전 이끈 칼 파워스 상사 2026-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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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청교도 김장환 목사와 김종원 목사 3
칼빈주의 국가 건설 1492년 10월 12일 콜럼버스가 인도로 착각했던 신대륙에 1620년 12월 21일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오늘날 매사추세츠주(州) 연안으로 건너온 사람들로부터 10년이 지났다. 칼빈주의 이념에 입각한 공화국 건설을 위해 1630년, 영국 국왕의 칙허를 받아 온 부유한 청교도 1,000명이 있었다. 이들의 지도자는 존 윈슬롭(John Winthrop, 1588년 1월 12일 - 1649년 3월 26일)이었다. 윈슬롭은 예정설을 주장한 칼빈주의자인데 성경에 근거한 이상적 국가를 만들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는 1620년 런던 지방법원 변호사가 되었다. 매우 신앙심이 두텁고, 영국 성공회는 가톨릭 의례에서 탈피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청교도 신앙을 열심히 신봉했다. 1630년 4월 8일 네 척의 배는
G.MI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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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권순웅 목사 ‘샬롬 축복’ 전도 십계명
주님께 나아가면 더러운 내 마음을 주님께서 꽃잎 받듯 받으십니다 나는 주님께 흙자국을 남기지만 주님 가슴에는 꽃이 피어납니다 나는 주님을 눈물과 한숨으로 지나가고 주님은 나를 사랑으로 건너십니다 주님을 만난 후 나는 어려지는데 나를 만난 주님은 자꾸 늙어만 가십니다 봄빛처럼 흩어지는 주다산교회 정문 햇살. 총회 불꽃 권순웅 목사의 잘 묶인 넥타이처럼 교회 앞 뻗은 길에 초록이 지쳐 단풍이 드는 계절. 시인 서정주는 이때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라고 했다. 가수 김광석은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쓴다”고 했다. 그 정도의 감수성이 없더라도 이른 봄 꽃잎을 밟고 걷다 보면 누구나 조금씩 삶의 의미와 환희를 추구하는 수도자가 된다. 열정(passion)의 어원은 ‘고통’이다. 열정이란 고통의 장작더미 위에서만 타오르는 마음의 불꽃이며, 그 자체로 치열한 자기 도전이다. 인생은 슬픔을 내포한다. 우리는 결국 죽게 될 것이고 각자 자율적인 육체의 고독 속에 갇혀 있으며 시간은 흘러가고 지나간 날들은 똑같이 되풀이되지 않는다. 인생을 바꾸고 싶으면 습관을 바꿔야 한다는 말이 있다. 처음엔 사람이 습관을 만들지만 나중엔 습관이 사람을 만들기 때문이다. 특히 나쁜 습관을 정복하지 못하면 결국엔 그 습관이 사람을 정복해 버린다. 2022년 11월 22일 오전 10시 30분 주다산교회(권순웅 목사)에서 전국 노회와 교회에서 ‘샬롬 축복 전도’를 지도할 강사 요원 훈련이 진행됐다. 훈련에는 전국 109개 노회에서 추천한 강사 요원과 노회 추천 전도 선봉교회 목회자 등 500여 명이 참석했다. 훈련은 총회장 권순웅 목사의 강의와 샬롬 축복 전도를 오랫동안 실천해온 주다산교회 현장에서 뜨겁고 진지하게 진행됐다. 김진하 목사(샬부흥운동 본부장)가 ‘예수는 네비게이션’이란 제목으로 설교했다. “죄로 인해 쫓겨난 에덴동산으로 다시 들어가는 운동이 ‘샬롬부흥’입니다. 지난 3년간 코로나19로 교회 강단들이 허물어진 이때 교단 적으로 전도 운동이 펼쳐집니다. 전도는 우리에게 맡겨진 고귀한 사명임을 알아 기꺼이 함께 노력합시다.” 예배에는 총회 회록서기 한기영 목사와 총회회계 지동빈 장로가 참석해 격려사와 축사를 전하고 총회 기둥이 돼가고 있는 배만석 목사(샬롬 부흥 운동 전도 선봉 및 총괄지원단장) 축도로 예배를 마쳤다. 총회불꽃 권순웅 제107회 총회장은 107년 총회 역사상 처음일 총회장 자신의 축복 사례를 들어가며 ‘샬롬 축복 전도 프로세스와 전략’이라는 일목요연한 교재 ‘샬롬 축복 전도 강사 요원 훈련지침서’를 중심으로 또박또박 재미있게 전했다. 그 내용은 30평 개척교회로 시작해 죽다 산 경험에서 우러난 복음전도(evangelism)의 전략이고 실행력 있는 전술을 전하는 것이었다. 전략은 최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앞으로 택해야 할 실행 계획이다. 반면 전술은 목표를 달성하기까지의 개별적인 단계와 행동이다. 권순웅 목사는 “전도하고 싶은데 어떻게 할지 몰라 막막한 분을 위한 특별한 강의”라고 강사훈련 지침서 표지에서 말했다. ‘샬롬 축복 전도 프로세스와 전략’에서 말하는 전략은 아담과 이브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주신 사명을 이루기 위한 것이다. 창세기 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12:2-3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손자병법(孫子兵法, Sun Tzu 's Art of War)은 고대 중국의 병법서(兵法書)이다. 원본은 기원전 515년 오자서의 추천으로 오나라 왕 합려의 초빙을 받아 오나라의 군사(軍師)가 된 손무(孫武)가 쓴 것이다. 현재까지 전해지는 손자병법은 조조가 원본을 요약하고 해석을 붙인 위무주손자(魏武註孫子) 13편에서 손자는 이렇게 썼다. "내가 승리하기 위해 사용한 전술은 모든 사람이 알 수 있다. 그러나 승리가 어떤 전략에서 비롯되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이런 일화가 전해진다. 합려가 손자의 용병술을 시험하고자 말했다. “선생의 병법 13편을 모두 읽었지만, 궁녀들은 조금이라도 군의 지휘를 따르는 것을 볼 수 있습니까?” 손자는 이것을 승낙했다. 궁녀 180명을 내어주며 훈련시키도록 하자, 손자는 합려가 가장 아끼는 궁녀 둘을 지휘관으로 차례차례 세워 훈련을 시켰다. 그러나 궁녀들은 훈련에 따르지 않고 킥킥거리며 장난처럼 여겼다. 그러자 손자는 군령을 세우기 위해 합려가 아끼는 지휘관 궁녀 둘을 처형하도록 하였다. 합려가 용서해 줄 것을 간청했다. 손자는 작전 중의 군령은 왕명보다 중요하다고 말하며 사형을 집행하였다. 그리고 다시 다음가는 궁녀를 뽑아 지휘관으로 삼고 훈련을 시키자, 모든 궁녀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고 한다. 이 일로 합려는 기분이 상했고 손무는 그런 합려를 낮게 평가했으나 이후 합려가 손무를 중용하여 상장군으로 임명했다. 이에 부응해 손무는 오나라의 군대를 훈련시켜 강력한 군대를 만들었고, 초나라와 대항할 수 있는 국력을 키울 때까지 무리한 군사 행동을 자제하였다. 기원전 506년 합려는 손무와 오자서를 대장으로 삼아 초나라 원정을 개시하였다. 손무의 전략에 따라 오군은 연전연승하여 초나라의 수도 영(郢)을 함락하고 초나라를 멸망 직전까지 몰아붙였다. 이후 진나라의 개입으로 오나라는 철군하였으나 그 후로도 오나라는 강력한 군대를 바탕으로 패자의 위세를 떨쳤다. 기원전 496년, 손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합려는 월나라를 공격하였으나 패배하고 합려도 부상의 후유증으로 사망하였다. 손무와 오자서는 합려의 후계자 부차를 보좌하여 국력을 키운 뒤 월나라를 공격하여 크게 승리하였다. 부차가 패자가 될 무렵, 손무는 은퇴하여 이후의 생애는 알려지지 않았다. 손자에 따르면 전술이 보다 구체적이고 파악하기 쉽지만, 포괄적인 전략도 똑같이 중요하다. 중요한 점은 전략과 전술 중 무엇을 택하느냐가 아니라 전략 그리고 전술 모두를 구사하는 것이다. 목표를 달성하려면 두 가지 모두 필요하다. 만약 전략만으로 목표를 달성하려 한다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할 것이다. 구체적인 실행 과제인 전술이 있어야만 목표한 곳에 다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전략만 사용한다면 목표를 달성할 계획만 세우고 달성하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은 하지 않는 셈이기 때문이다. 반면 전술만으로는 하나님이 명하신 샬롬 축복의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 전략 없는 전술은 순식간에 방향을 잃은 업무로 바뀌어 버리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전도 요원들이 전략적 목표 없이 자의적으로 행동하게 된다. 단기적으로는 의미 없이 단순 반복 작업만 하는 것처럼 느껴지고 장기적으로는 좌절감과 축복 전도 사명에 대한 태만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샬롬 부흥 축복 전도’ 창안자 권순웅 목사는 성경에 근거해 전략을 세우고 전술로 실행하는 손자처럼 말한다. “진실로 ‘샬롬 축복 전도’는 주님의 부르심이자 쇠퇴하고 있는 한국교회의 필요입니다. 또한 주님께서 말씀을 통해 교회에 가르쳐주신 전략이며 실제로 전도의 능력이 나타나는 전술입니다. 뱀같이 지혜로우라는 말씀처럼 전도도 전략적이어야 하는데 전도 대상자를 만날 때 ‘샬롬’으로 평안을 비는 것이 그 방법입니다. 전도 대상자와 첫 만남 때는 누구나 긴장 관계에 있게 마련인데 그 긴장감을 해소하는 최고의 접근법이 평안을 기원하는 것입니다. 오늘 모인 여러분들은 어쩌다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 가운데 참석했습니다. 노회와 교회마다 전도의 불을 지펴주십시오. 노회 추천 전도 선봉교회가 1000여 교회가 되는데 그 교회마다 전도 셀 100개만 만들어도 전국에 10만 셀이 생깁니다. 10만 셀이 매주 전도하러 나간다면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샬롬 축복 전도 프로세스와 전략’에서의 프로세스는 전술에 해당하는 것인데 그 핵심은 ‘호감을 주는 전도를 위한 10가지 원칙’이다. 총회 불꽃 권순웅 총회장이 전하는 전도자의 교회와 삶을 성장시키는 '샬롬 부흥 십계명'이라고 할 수 있는 ‘샬롬 부흥 전도 운동’의 구체적인 전술은 다음과 같다. 1 항상 기도하라 2 항상 깨끗한 옷차림을 하라 3 항상 첫인상에 승부를 걸라 4 항상 누구를 만나든지 맑은 목소리로 인사하라 5 항상 좋은 표정 짓기를 연습하라 6 항상 좋은 마음으로 다가가라 7 항상 외모보다는 표정에 투자하라 8 항상 웃음 앞에서는 거부감이 없다고 생각하라 9 작은 빈틈을 보여 타인의 마음을 열어라 10 항상 선물을 준비하라 교회 성장과 교인의 삶의 성공 이론이 성경적 전략이고 그리고 그 방법이 실제적이고 성경적 전술로 가르쳐주는 권순웅 목사 같은 전도자를 본 적이 없다. 길을 나서는 사람은 긴장하기 마련이다. 갈리는 길인 기로(岐路)에서는 늘 생각에 잠긴다. 좁아지는 길인 애로(隘路)에서는 몸을 뺀다. 가면 돌아올 수 없는 사로(死路)를 피하고 온전히 살아 돌아가는 길인 활로(活路)를 항상 갈구한다. 그러므로 시간을 꽉 붙들어야 한다. 삶을 피하려 해서는 안 된다. 금세 폭발할 것 같은 순간들도 당신 삶의 일부이며 그 순간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은 과거의 상실과 미래의 상실을 동시에 아파하는 존재다. 과거의 상실은 잊지 못해서 괴롭고 다가올 미래의 상실은 불안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괴롭힌다. 결국 상실에서 오는 고독은 인간의 존재론적 본질이다. 따라서 배가 안정적으로 나아가려면 어느 정도 바닥짐이 실려 있어야 하듯, 우리 삶에도 어느 정도의 근심이나 슬픔이나 결핍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 렘 6:16 2022-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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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허활민 목사의 길
제36대 국무총리를 지낸 운동권 대부 이해찬은 2026년 1윌 25일 오후 2시 48분(현지 시각) 베트남 호치민 탐안 병원에서 74세로 별세했다. 고인은 민주평통 아태지역회의 운영위원회 참석을 위해 지난 22일 베트남 호치민에 도착했다가, 다음 날인 23일 베트남 공항에서 호흡 곤란 증세를 보여 현지 병원으로 긴급 이송됐다. 병원 도착 후 심근경색 진단을 받은 이 수석부의장은 곧바로 스텐트 시술을 받는 등 응급 처치를 받았으나,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사로(死路)로 떠났다. 빈 나무들이 겨울 길목을 지키고 있다. 허리 아래 잔 숲 앙상한 갈대들이 마음을 간질인다. 조그만 참새도 가는 겨울을 살핀다. 겨울의 그때가 되면 나무도 갈대도 참새도 그동안 우리가 알던 그들이 아니다. 정치적으로 뜻을 펴기 힘들어 여러 곳을 주유(周遊)하던 시절의 공자가 남녘의 초(楚)나라를 지날 때였다. 낯선 땅에서 길을 잃은 모양이다. 제자 자로(子路)에게 밭을 일구던 수도원의 수도사 같은 은자(隱者) 두 사람에게 길을 묻게 했다. 그러나 한 은자는 퉁명스레 공자를 가리키며 “저 사람이 스스로 잘 알 텐데 뭘 다시 묻느냐”며 제대로 대꾸하지 않았다. 돌아와 사정을 알리는 제자의 말을 들은 뒤 공자는 탄식 속에 다시 길을 떠난다. 그가 물었던 것은 옛날 잠실 나루 같은 물길 건너는 나루가 어디냐 물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이 일화는 ‘나루를 묻다’라는 뜻의 문진(問津)이라는 유명 일화로 전해진다. 여기서 ‘나루’는 사실 ‘길’이다. 아울러 지향(志向)이자 방향(方向), 마땅히 걸어야 할 ‘도(道)’ 더 나아가 예수님이 말씀하신 ‘길’까지도 지칭할 수 있다. 개인주의적 취향으로 유명했던 기원전 5 세기 초 ~4 세기 초의 인물 양주(楊朱)도 그런 적이 있다. 잃어버린 양(羊)을 찾아 나섰던 이웃들이 빈손으로 돌아오자 그 이유를 묻는다. 이웃들은 “갈림길이 많아 놓쳤다”라고 대답한다. 굳은 얼굴로 양주는 한참을 생각에 잠겼다고 한다. ‘갈림길에서 양을 잃다’라는 뜻의 기로망양(岐路亡羊)이라는 성어가 유래한 장면이다. 우리는 보통 ‘양 잃고 외양간 고치다’는 뜻의 성어 망양보뢰(亡羊補牢)를 먼저 떠올리지만, 길에 관한 양주의 깊은 사색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양주가 주장하는 “나 자신을 위한 삶 爲我”의 목적은 “온전한 삶全生"을 사는 것이다. 중국에는 그렇듯 ‘길’에 관한 모색이 많고 깊다. 사는 길은 활로(活路), 그 반대는 사로(死路)다. 길을 묻는 일은 문로(問路), 길을 가리키면 지로(指路)다. 나아가는 진로(進路)도 살피지만, 물러서는 퇴로(退路)도 중시한다. 2020년 10월 12일 월요일 오후 2시 한때 총회의 길을 인도한 허활민 목사의 대구시 북구 칠곡중앙대로 언덕길에 자리한 호렙산교회에서 산서노회(노회장 이재천 목사) 제97회 정기노회가 열렸다. 노회장 이재천 목사의 설교와 증경노회장 허활민 목사 축도로 개회예배를 마친 뒤 김준영 목사(소서교회)의 집례로 성찬 예식을 거행했다. 개회 선언 후 회무를 진행하다 정회 후 강도사 인허 예배를 드렸다. 인허받은 강도사는 이성규, 홍순재, 황옥철 등이었다. 속회 후 회무를 마치고 폐회하기 전 46세의 사모가 6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노회원이 뜨겁게 기도하고 위로금을 전한 눈물이 핑 도는 순간도 있었다. 노회원들이 흩어지는 호렙산교회 좁은 길 비탈에 차들이 지나치고 바람이 불어 갈대들이 휘어지고 흔들렸다. 마르틴 부버(Martin Buber ·1878~1965)는 세상에는 '나와 너(I-You)'의 관계와 '나와 그것(I-It)'의 관계가 존재하는데,참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나와 너'의 관계를 맺어야만 한다고 주장하였다. '나와 그것'의 관계는 도구적인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며 대상이 언제든지 대체될 수 있는 일시적이고 기계적인 관계이다. 그러나 '나와 너'의 관계는 서로가 인격적으로 마주하는 관계로서,무엇과도 바꿔질 수 없는 유일한 '나'와 대체 불가능한 '너'가 깊은 신뢰 속에서 존재한다. 인간은 관계 속에서만 진정한 자아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 도마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1-6 2020-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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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한기승 목사와 나사로
성령 불 들어간다. 아궁이에 들어간 참나무 불더미에 피어나는 불티인 듯 잦아드는 잉걸불 사이 기다랗고 말간 장작 하나, 저 환한 것, 저 따뜻한 것, 손목 괴고 불이나 쪼여볼까. 불 앞에서 털끝만한 그늘 한 점 없이 오직 따뜻할 뿐. 주님 몸 된 성도들, 성령 불로 타들어가 성화의 길 간다. 성령 불 들어간다고 알린들 성화되지 않은 몸이 대답할 리가 있나. 믿음의 깊이는 말로 잴 수 없다. 그래서 주님의 은혜만 있다는 깊은 말씀이 믿음에 온기를 더한다. 영화감독이자 작가인 베르너 헤어초크(Werner Herzog Stipetić; 1941~)는 1974년 11월, 파리에 있는 친구에게서 전화 한 통을 받는다. 대학생 때 만난 평생의 은사이자 전후 독일 영화의 정신적 지주인 영화평론가 로테 아이스너(Lotte H. Eisner; 1896년 3월 5일, 베를린 ~ 1983년 11월 25일, 파리1896~1983)가 위독하니 어서 그녀가 입원한 파리의 병원으로 오라는 이야기였다. 당시 일흔여덟 살의 그녀의 병세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헤어초크는 생각했다. "안 된다, 그녀가 지금 죽을 순 없어, 안 돼.' 서둘러 짐을 싸던 헤어초크는 갑자기 움직임을 멈추고 생각에 잠긴다. 그 순간, 그는 깨달았거나 계시를 받았던 것이다. 그는 자신이 이곳 뮌헨에서 파리까지 걸어간다면 아이스너가 죽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헤어초크는 최소한의 짐과 돈만 챙긴 채 1974년 11월 23일에 뮌헨을 떠나 춥고 습한 중부 유럽의 겨울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걸어가서 12월 14일에 파리에서 아이스너를 만난다. 그 22일간의 여정을 기록한 책이 바로 ‘얼음 속을 걷다 ’이다. 말 그대로 얼음 속을 걸어 파리로 걸었던 이야기. 내가 걸을 때면, 한 마리 들소가 걷는 것이다. 내가 쉴 때면, 하나의 산이 쉬는 것이다. 그런 그의 걸음이 신비로웠던 건 죽음이 아니라 삶이었다. 죽음에 맞서 걸었고, 수많은 삶을 목격했고, 그것을 기록했다. 누구나 언젠가는 삶과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삶도 아름다워야 하고 죽음도 아름다워야 한다. 수많은 삶의 모습이 우리들 곁에 머물것이며 그 순간을 느끼며 또 지나가는 한 순간이다. 오직 자신만을 위해 산다면 별다른 의미가 없는 삶일 것이다. 정신적 지주를 위해서 의리를 지킬 수 있는 삶, 곧 죽음을 맞이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마지막 희생 정신, 아름다운 삶이다. 자신 또한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그 누군가 자신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마지막까지 사랑을 쏟아줄 사람이 있다면 보람이 있을 것이다. 아름다운 언덕이 펼쳐진 풍경. 숲은 풍성하고 세상은 고요하다. 매의 울음소리. 내 뒤에 있는 노변 십자가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아침 일찍 존재했던 것은 밤이 오기 전에 쉬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동안 나는 이 세상에서 살며, 끊임없는 죽음의 위험 속에 살아갑니다. 나의 하나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 간구하오니 나의 종말을 편안하게 하소서.' 시간은 영원을 향해 흐른다. 그는 무작정 파리로 향하는 최단 거리의 도로를 걷기 시작했다. 여행길이지만 마땅한 장비도 없이 그저 걷기 시작한 순례에 가까운 여정이었으므로 험난할 수밖에. 게다가 제목처럼 추위가, 눈보라가, 얼음 같은 바람이 불어닥친다. 그렇게 걸어 마침내 도착함으로써 어쩌면 헤어초크는 그 마음, 그저 그 먼 길을 걸어 결국 닿는 그 마음이 아이스너의 병을 어떻게든 치유해주기를, 기이한 방식으로 믿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11월 23일부터 12월 14일까지의 기록과 그 이후의 글이 실렸다. 짐도 제대로 챙기지 않고 무작정 나선 여정은 “오늘밤은 어디서 자야 할까?”라는 의문으로 이어진다. “또 눈, 진눈깨비, 눈, 진눈깨비… 천지창조를 원망한다. 그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나는 흠뻑 젖은 채 사람들을 피하여 진창 같은 풀밭을 가로질러 걸어갔다.” 그는 3주 동안 독일 남부와 프랑스 동부의 이름 없는 마을들을 거치며 800여㎞를 걷는다. 겨울의 텅 빈 평원을 걷고, 버려진 헛간이나 빈집에서, 때로는 축사에서 잠을 청했다. 사람 한 명 마주치지 않는 날도 있었다. 강풍과 폭설과 겨울비와 우박을 다 겪고, 낯선 주막에 들어가면 동네 사람 사람들의 눈총을 받았다.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바라보며 자신의 행동이 무의미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들었지만, 차라리 무의미함을 모두 실천해버리겠다고 생각했다. 빠르고 편리한 것만이 옳고, 계산으로 모든 것을 결정하는 세상에서 얼어붙은 겨울 들판을 걷는 행위는 무모하고 무의미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유불리를 따지지 않고 하나의 소망을 위해서 순수한 열정으로 마음과 육체를 쏟아보았던 적이 언제였던가. 헤어초크 같은 태도가 진정한 예술이며, 그런 심장이 세상을 만든 게 아닐까. 이윽고 헤어초크가 파리의 병원에 도착했을 때, 아이스너는 아직 살아있었다. 누군가 얼음 속을 걸어 그녀에게 가는 헤어초크 이야기를 해주어 그녀는 그를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누가 더 쇠약한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초췌해진 두 사람이 병실에서 마주하였다. 그녀는 그를 쳐다보며 그윽하게 미소 지었다. 헤어초크가 혼자 걸어왔고 보호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그녀가 알았기 때문에 이해하는 듯했다. 그런 그녀를 신비롭게 쳐다보며 헤어초크가 말했다. “창문을 열어주세요. 며칠 전부터 저는 날 수 있게 되었답니다.” 왜 당장 가장 빠른 차편으로 파리로 가지 않고 도보 이동을 선택했을까. 그 길 위에서 헤어초크는 순례객이었으니까. 그가 기꺼이 자신의 육체를 고난에 빠뜨리는 동안, 청컨대 그 사람의 생명이 누군가를 기다리다 회생의 말미를 얻기를 바랬을지도 모른다. 어쨋든 그는 얼음 속을 걸어 마침내 그를 기다리고 있는 아이스너 앞에 앉았다. 그리고 그 날 이후 실제로 그녀는 8년을 더 살았다. 그 후 아이스너가 1983년 11월 25일 죽기 1년 전 1982년 독일 영화계의 공로상인 헬무트 코이트너상이 제정되자, 첫 수상자로 아이스너가 선정되었다. 헤어초크는 그녀를 위한 수상 축하 연설에서 말했다. “제가 당신에게서 날개를 얻은 유일한 사람은 아닙니다.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아끼는 누군가가 죽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그를 들소로도, 산으로도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 간절한 마음이 없다면 아무리 잘난 인간도 한낱 미물에 지나지 않겠지. 어느 한 목사의 아픔을 전하는 나에게는 저런 경험이 없음에 못내 부끄러움을 느낀다. 2018년 12월 1일 오후 2시 광주광역시 운암동 소재 광주중앙교회(한기승 목사)가 장로 장립 20명을 비롯한 139명의 임직 및 은퇴식을 가졌다. 이날 임직 및 은퇴 감사예배에는 증경총회장 중의 증경총회장 서기행 목사의 설교와 제103회 무지개 총회장 이승희 목사의 축사가 임직식을 한껏 빛냈다. 이날 30여명의 교단 지도자들과 박주선, 천정배 국회의원, 김기현 울산시장 등 정계 지도자들까지 순서를 맡아 축하와 격려를 더한 것은 한기승 목사의 교계와 사회에서의 목회 능력을 입증해주었다. 아울러 그는 이 시대의 기인, 그리고 광대 소강석 목사의 절친(切親)이기도 하다. 그런 한기승 목사가 나사로처럼 위중하다. 한기승 목사를 아는 총회의 모든 믿음의 사람들은 나사로를 향한 주님의 능력의 부르심을 위해 기도해주시기를... 성경은 말씀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요 11:39-44 2025-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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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옥한흠 목사 교회 갱신 은혜의 걸음
믿음에 사는 동안 다 말 못 할 말들을 믿음은 저마다의 가슴속에 품고 산다 꼭 믿어야 할 때 믿기 어려워 믿으면 주님은 침묵으로 튼튼해진 그의 두 팔을 벌려 나의 믿음을 품어주신다 주님이 별이시라면 나는 주님 옆에 뜨는 작은 별이고 싶다 주님이 노을이시라면 나는 주님 뒷모습을 비추어 주는 저녁 하늘이 되고 싶다 주님이 나무시라면 나는 주님의 발등에 덮인 흙이고자 한다 오, 주님이 이른 봄 숲에서 우는 은빛 새이시라면 나는 주님이 앉으실 수 있는 한창 물오르는 싱싱한 가지이고 싶다 판단이라는 것은 데이터와 분석뿐만 아니라 신탁(神託), 직관(直觀)까지 포함된다. 작은 일은 데이터만 가지고 판단해도 되지만 큰일은 신탁이 있어야 한다. 고대 지중해 세계에서 국가의 존망이 걸린 전쟁을 앞두고 델피 신전에 가서 신탁을 구했던 것도 고도의 의사 결정 과정이라고 보아야 한다. 트럼프나 이재명은 여러 재판 판결을 앞에 두고 점괘를 물어볼 신탁소나 점장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국가 간 전쟁은 뉴욕의 부동산 투자나 대장동 개발과는 차원이 다른 결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믿는 사람들은 주기도문에 나오는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구절을 때마다 외우지만 그때마다 깊은 믿음이 솟는 이유다. 만사가 하늘에서 먼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의 섭리와 뜻이 조짐으로 미리 나타나고 그다음에 현실 세계에서 보게 된다. 마치 일기예보와 같다. 인공위성에서 고기압과 저기압의 배치를 보고 일기를 예보한다. 예컨대 고기압과 저기압의 배치를 미리 보는 일이 '하늘에서 먼저 이루어지는 것'을 앞서 보는 일이다. 그것이 바로 징조와 계시의 하나인 것이다. 이 징조를 감지하는 일이 원래 동양에서는 국사(國師)나 왕사 또는 도사가 담당했다. 서양에서는 왕 측근의 성직자 또는 선지자나 예언자 몫이었다. 풍수도참과 주역 그리고 꿈이나 환상이 요셉이나 에스겔의 경우처럼 하늘의 조짐을 미리 짐작하게 해주는 도구였기 때문이다. 기업 경영에서 도사들의 판단을 활용하는 경영의 원조는 삼성의 이병철 전 회장이다. 대한민국을 지금의 인터넷 강국으로 만드는 기초를 놓은 이병철 회장은 도사들에게 대접도 후하게 했지만 한 사람 말만 믿지 않고 여러 도사의 점괘를 크로스 체크하는 노련함도 있었다고 한다. 그래도 인간의 생로병사는 그 누구든 피하지 못한다. 1996년 3월 7일 140명의 교단 소속 목회자들이 창립 제안자 옥한흠(玉漢欽, 1938년 12월 5일 ~ 2010년 9월 2일) 목사의 사랑의교회에서 △목회자 영성 회복 △교회갱신 △교단발전 △한국교회에서 교단의 올바른 자리매김 등을 위해 노력한다는 취지로 ‘교회갱신을 위한 목회자협의회(교갱협)’를 창립했다. 그 후 교단 내 금권선거를 뿌리 뽑기 위해 직선제를 폐하고 총회 임원 제비뽑기 선거제도를 정착시켰다. 세월이 흘러 교갱협 25주년 행사가 2020년 8월 17일 10시 30분 새로남교회에서 열렸다. 12시 20분 새로남교회 강단에 마련된 좌담회 석상에서 1명의 사회자(조성민)와 5명(고동훈, 김경원, 김찬곤, 이건영, 이재윤)의 패널 가운데 옥한흠 목사를 바로 이은 교갱협 2대 회장(2007. 8-2013. 8) 김경원 목사(서현교회 원로 2대 교갱협 대표회장 2007. 8-2013. 8)가 좌담회에서 발언하고 있었다. 주제는 ‘교갱협 25년 회고와 전망’이었다. “... 아까 교갱 있냐 없냐 말한 분이 있는데 지금 없어져도 아무도 아쉬워하는 사람 없어요. 그렇게까지 존재감이 없어져 가고 있지 않느냐 하는 위기를 저는 느끼고 있어요. 고동훈 목사가 교갱협에 대해서 얘기하면서 목회적, 목양적 견지에서 젊은이를 끌어안고 뭘 해야 되겠다, 교단 정치는 어떻게 해야 되겠다 했는데 내가 지금 말하고 싶은 이야기예요. 지금 현재도 해야 돼요. 그러나 안 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문제가 큰 겁니다. 절대적으로 변함이 없어야 할 교갱의 정신이 있습니다. 목회자 자기 갱신 교단을 세우는 갱신 이것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가져야 될 거예요. 그리고 가변적인 정신이 있어야 되요. 그것이 뭐냐, 다음 세대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 시대적인 상황 속에서 목회적인 상황 속에서 키워야 되요. 그리고 세워야 되요. 그리고 목회자 갱신을 계속합시다.(톤을 높이며) 그런 논리 아닙니까 이거. 예를 들어서 소리가 좋았다. 왜 지금은 소리 안 질러요? 왜 성명서 발표 안 해요? 미안합니다만 안 하는 건 지금 당신들 책임이야. 해야 될 건데 안 하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어요? 그렇잖아요. 교단의 큰 비리라든지 차별금지법이다 동성애다 총신 문제 많다 말입니다. 소리 질러요. 왜 안 지르느냐 이거요. 우리 스스로 지금 비판하면서 우리 존재감이 뭐냐? 소리 안 지르는데 무슨 존재감이 있느냐? 지금 그렇습니다.(사회자 한숨 쉰다) 교단의 문제도 그래요. 지금 젊은 목회자들이 비판하듯이 교갱을 정치적인 발판을 위해 도구로 삼으려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게 문제예요. 절대로 자기 정치적인 교단 안의 입지를 구축하기 위해서 교갱협을 도구나 발판으로 삼아 이용하려는 사람이 있어요. 그건 안 되는 겁니다. 그렇잖아요. 이게 옥한흠 목사님이 함께 시작했던 정신입니다. 들어가려 하지도 않았어요. 그런데 지금 그걸 이용해서 들어가려고 해요. 그래서 목회자들이 전부 실망하는 겁니다.(톤이 높아지며) 이런 건 막아야 돼요. 막았으면 좋겠습니다가 아니라 현재 있는 사람들이 막아야 됩니다. 안 막으니까 내가 답답하다는 겁니다. 옛날 이야기하면 젊은 사람들 싫어하겠지만 우리 교갱 임원들 수련회 하려고 일본까지 갔어요. 3박 4일. 제주도도 갔어요. 전부 비행기 타고. 일본 갈 때는 배 타고 왕복했지만. 설악산도 갔어요. 그런 가운데 외침이 나올 수 있었어요.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가 아니예요.(톤을 높이며) 하라는 거예요. 왜 안 합니까? 내 말은... (사회자 박수를 유도한다. 일동 박수) 존재감을 살려야 돼요. 25년 전을 다시 한번 살려보자. 어떻게 살리느냐... 살려 가지고 좀 제대로 해보자. 그런 다짐으로 하는 것이 25주년의 의미가 아니겠는가. 전도사님들 젊은 목회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교단에 두려운 존재도 되고 우리 자신의 목양적인 어떤 사명을 하고 그것은 구호가 아니라 실질적인 교갱을 통해 이루어가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사회자가 말을 받는다. “제가 볼 때는 목사님께서 원로를 떼시고 다시금 현역으로 들어오셔야 될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박수합시다. (일동 박수) (사회자 패널들을 향해) 왜 안 합니까? (김경원 목사 허허 웃는다) 하시란 말이예요. 이제 우리 김찬곤 목사님이 답변하셔야 되는데 엄청 부담이 될 것 같습니다. 바로 옆에서 보고 ‘왜 안 하느냐?’ 말씀하시기 때문에 잘 말씀해 주시기를 부탁합니다.” 김찬곤 목사(안양석수교회 5대 교갱협 대표회장 2019. 8-)가 말을 이었다. “그래서 부담입니다. (사회자 너털웃음. ‘우하하하.’) 아. 뭐. 맞습니다. 해야죠. 해야 되고 저도 이제 해야 된다 라는 당위성을 알아야 해요. 어떻게 할 것인가는 우리가 논의해야 되는 논제라고 봅니다. 아. 진짜 당부하고 같이 합의해야 할 것 중의 한 가지는 말씀드렸는지 모르지만 지금 교갱은 상임 회장이 공석입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거든요. 있을 수 없는 일이 현재 벌어져 있고 사실은 다음 차기 대표회장이 될 사람이 준비해 같이 움직여져야 하는데 이 자리가 공석이라는 자체가 그 한 가지입니다. 이것은 누구도 뭐 다른 어떤 자리들은 돈을 내고라도 나갈 수 있는 자리인데 여기는 누구도 주지도 않지만... (좌중 웃음) 나오려고 하지도 않고 하려고 하는 사람도 없다는 것... 우리 중 몇 분이라도 내가 하겠다고 해서 시켜주지도 않겠습니다만 (일부 웃음) 그래도 그런 부분에 관한 관심과 헌신을 같이 해야 되지 않겠나. 그래야지 연결 고리를 계속 내려갈 수 있지 않겠나. 사실 뭐 교갱협 대표나 임원은 보기에 굉장히 근사하지만 굉장히 힘든 자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미 있는 자리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들 중에서 오늘 총회 안 할 거 아닙니다만은 일부분 다루어져서 좀 정리가 되어지고 새로운 사람들이 세워지는 부분이 위임이 준비되어지는 과정들이 꼭 필요하고 다음 분들도 같이 혹시라도 좀 더 깊이 일하고 싶은 분이 있으면 노크를 해주십시오. 우리 그런 적 한 번도 없었지만 노크를 하면 그래도 좀 대화를 하면서 뭔가를 할 수 있지 않겠나... 아니면 대표부 쪽에서 요청을 하고 이야기를 하면 거의 대다수의 사람들이 사양을 합니다. 사양을 못하는 마음 약한 사람들만 지금 이 자리를 지키는 겁니다. 그런 부분들이 없잖아 있기 때문에 관심을 더 적극적으로 하는 우리... 김경원 목사님의 그 고언은 우리가 진짜 가슴 속 깊이 되새기면서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못해서 우리가 반성해야 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현실 속에서 우리 동역자들에게 좀 더 적극적으로 협의회에 대한 관심과 우리 내부 안에서도 좀 쓴소리가 나와져서 임원들이 좀 단단해지는 부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 누구든지 조금 더 관심을 깊이 있게 가져줬으면 합니다. 교갱협이 진짜 기준이 되고 정신이 되고 진짜 심장이 되어지는 원리가 우리 후배들에게 계속 흘러갈 수 있도록 이 자리에 계신 분이라도 힘을 모으면... 옥한흠 목사님이 10주년에 사데 교회 설교를 하시면서 얼마나 비판을 했는지 몰라요. ‘우리가 그 사데 교회 지도자들이 아니냐.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데 교회 선한 사람들이 있다’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몇 사람만이라도 힘을 모으면 이것은 절대로 문제가 되지 않고 이겨낼 수 있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옥한흠 목사님이 돌아가신 지 10주년이 됐습니다. 올해가 10주년인데 그 정신이 이어져가고 있으니까 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 더 되새겨 봅시다. 이 자리에 오신 분들은 그 심장을 가지고 오신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힘을 모아간다면 귀한 목사님의 고언이 우리 현실 속에서 열매로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사회자가 말을 이었다. “오늘 마지막 찬양은 25주년 됐기 때문에 ‘생일 축하합니다’ 이 노래보다는 ‘원할 때 바라고 기도합니다’ 찬양이 있습니다. 후렴에 보시면 ‘하나님의 성품이 성령님의 능력이’ 다시 한번 우리 교갱협에 불일 듯 일어나기를 원하는 그런 마음을 담았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도 다 일어나시죠. 일어나셔서 마지막 이 찬양을 하고 난 다음에 케이크를 절단하겠습니다.” 피아노 반주에 합창이 울렸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나의 힘을 의지할 수 없으니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 것은 주께서 참 소망이 되심이라 하나님의 꿈이 나의 비젼이 되고 예수님의 성품이 나의 인격이 되고 성령님의 권능이 나의 능력이 되길 원하고 바라고 기도합니다... 이어서 이사장 이건영 목사(인천제2교회 교갱협 3대 대표회장 2013. 8-2017. 8)의 사회로 교갱협 25주년에 걸맞는 정기총회가 진행돼 안건 및 결의사항을 처리했다. 이건영 목사는 우리 총회를 힐렐 같은 믿음과 지혜로 이끌어 가고 있는 지도자이다. 교갱협의 정신과 정관 목적에 딱 맞는 인물이고 옥한흠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의미 은혜의 걸음 은보(恩步)를 이어받은 어거스틴 같은 목회자이다. 이건영 목사 이전이나 이후 위대한 설교자나 목회자는 더러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말씀을 깨우치고 실천하는 힐렐 같은 지혜자 마음 지닌 이건영 목사 같은 지도자는 드물 것이기 때문이다. 교갱협 25주년에 그가 있어 은혜의 걸음 은보(恩步) 옥한흠 목사가 제창한 교갱협 정신이 계승되고 현현된 느낌이다. 20년 전 2003년 12월 15일 옥한흠 목사는 에스더가 이방땅에서 환난을 당할 유대인을 살린 것처럼 교단 기관지 기독신문을 살린 박에스더 국장과의 대담에서 사랑의교회 개척 25주년 회고와 은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박에스더 - 옥한흠 목사님 반갑습니다. 사랑의 교회를 개척하고 25년 동안 사역했던 사랑의교회에서 은퇴하시면서 느끼는 감회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옥한흠 목사 - 사실 지금 굉장히 행복합니다. 은혜로 달려온 25년이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일하던 동역자 가운데는 여러가지 이유로 도중 하차한 분들도 참 많은데, 이렇게 은퇴를 생각할 나이까지 목회를 할 수 있도록 지켜주신 하나님이 너무 감사합니다. 또한 사랑의교회 성도들을 보며 더욱 행복합니다. 지금 사랑의교회는 정점에 와있습니다. 오정현 목사를 후임자로 정하고 성도들의 표정이 달라졌음을 느낍니다. 더욱 활기차졌고 찬양하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몇 달 사이에 교회 평균 성장률에 비해 3000명 이상 성장하는 것을 보며 제가 은퇴하고 젊은 목회자에게 자리를 내 준 것이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박에스더 - 25년전 사랑의교회를 시작할 당시 목사님의 교회개척의 변을 지금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옥목사 - 사실 당시에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여러 선교단체들 다시 말해서 파라 처치(para-church)에 기성 교회 청년들이 흡수되어 청년부가 교회마다 지리멸렬하고 있었습니다. 교회 청년지도가 위기였고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그때 왜 청년들이 교회를 빠져나가 파라 처치로 흡수되는지 배경과 원인을 분석하고 사람 키우는 일이 중요하다고 보고 제자훈련에 착안했습니다. 젊은이들 가슴에 복음의 열정 비전을 심어주는 일이 필요하다고 본 겁니다. 미국 유학 후 돌아와 바로 제자훈련 프로그램으로 사람 키우는 일-복음의 열정을 심어주고 비전을 품게 하는 이 일이 제 목회의 본질이 된거지요. 사람을 키워 예수 제자 되어 열심히 일하도록, 열린 리더십을 갖고 평신도와 함께 일하는 풍토를 만든 겁니다. 박에스더 - 목사님께서 4반세기 동안 제자훈련과 사랑의교회 목회, 그리고 한국교회갱신운동과 한목협을 통한 연합운동의 물꼬를 튼 일들을 짚어볼 수 있습니다. 사랑의교회 은퇴라는 시점에서 지금까지 목사님이 일생을 걸고 해오신 이런 사역들이 영향을 받지 않을까요. 옥 목사 - 사랑의교회 목회는 하나님께서 제자훈련에 대한 비전과 신념을 주셨고 지역교회 하나를 맡아서 그 비전을 실천하는 평범한 목회였습니다. 이후 자의 반 타의 반 교회갱신과 교단 연합운동까지 왔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지금 물러가는 것이 70이 되어 은퇴하는 것보다 훨씬 좋다고 생각합니다. 아직은 힘이 있고 제가 사역할 마당이 있습니다. 사랑의교회 담임은 은퇴하지만 제자훈련 사역에 더욱 매진할 것이고 교갱협과 한목협 사역도 계속 이어나갈 것입니다. 이 말을 한 7년 뒤 2010년 8월 8일 새벽부터 폐렴으로 인한 고열과 호흡곤란 증세로 서울대병원 중환자실로 옮겨져 집중치료를 받았다. 그러나 2006년 폐암 진단을 받고 투병해온 옥 목사는 2010년 9월 2일 아침 8시 43분 사랑의 주님 품에 안겼다. 옥한흠 목사는 사랑의교회와 교회갱신협의회(초대 대표회장 1996. 3-2007. 8) 설립자이다. 그의 호는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의미로 은혜의 걸음 은보(恩步)이다. 코로나19와 태풍 마이삭이 제주와 원산 시내를 강으로 만든 맹위를 떨친 2020년 9월 2일이 옥한흠 목사의 10주기였다. 그는 성균관대학교 문리대학 영문학과와 1971년 2월 총신대 신학대학원(총신연구원 64회)을 졸업했다. 총신 신대원 재학시절 서울 은평교회에 전도사로 부임한 그는 100명이었던 주일학교를 500명까지 성장시켰다. 1970년 4월 김희보 목사의 요청으로 서울 회현동 성도교회 사역자로 부임하고 총신 학장으로 부임한 김희보 목사 뒤를 이은 김성환 목사의 성도교회에서 그는 그의 인생의 분수령이 된 대학부를 맡았다. 그는 성도교회에서 부목사로 대학생을 지도하던 중 제자훈련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는 교회에서 젊은이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데 비해 대학생 선교단체들엔 젊은이들이 모이는 현상을 탐구하던 중 그 비결이 제자훈련에 있음을 깨닫고 그는 대학생들이 기성 교회에서 빠져나가 선교단체로 모이는 이유에 대해 궁금해했다. 그러다 선교단체에는 있지만 기성 교회에는 없는 세 가지를 깨닫게 된다. 그것은 바로 복음, 훈련, 비전이었다. 1972년 35세에 수도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은 그는 대학생 12명과 함께 성도교회에서 ‘복음과 비전’을 갖게 하는 제자훈련을 시작해 1975년 미국 유학을 떠나기까지 당시로는 중형 교회의 신자 수에 버금가는 200여 명의 부흥을 달성했다. 1972년 총신대 재학 시절의 나도 성도교회 중등부 교사로 봉사할 때 옥한흠 전도사의 대학부 집회에 간혹 참석해 설교와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 스타일을 경험하곤 했다. 옥한흠 목사는 1975년 유학을 떠나 1977년 5월 칼빈신학교에서 신학석사 학위를 받고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로 자리를 옮겨 목회학 박사과정을 밟았다. 그리고 필라델피아 웨스트민스터 구내 서점에서 독일 출신 가톨릭 사제 신학자 한스 큉(Hans Küng, 1928년 3월 19일 ~ 2021년 4월 6일)은 스위스의 천주교회 사제이자 저명한 기독교 신학자의 ‘교회란 무엇인가(DIe Kirche)’를 발견했다. 그는 천주교 내부에서 '기존의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과연 무오류인가?(Infallible?)"라는 책을 내서 교황 무오류 교리를 비판하는 등 교권과 계속 마찰을 빚었다. 결국 1979년 12월 15일 교황청의 신앙교리성에서 공표문을 발표하여 큉은 공식적으로 천주교 신학을 가르칠 수 없게 되었다. 옥 목사는 그를 통해 평신도를 왜 제자로 키우고 깨워야 하는지에 대한 확고한 신학적 답을 얻었다고 한다. 한스 큉은 교회의 근원을 예수가 전한 하나님의 나라로 보고 있다. 즉 교회의 근원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며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신앙공동체가 교회라는 것이다. ‘교회란 무엇인가’는 총 11장으로 되어있으며 이 책은 원래 한스 큉의 ‘교회(Die Kirche)’를 짧고 이해하기 쉽게 축약하였다. 한스 큉은 이 책에서 교회의 본질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교회의 모든 역사적 양상에는 이 비본질이 마치 그림자처럼 본질을 따라다닌다. 교회의 참 본질은 비본질 안에서 나타난다. 우리는 교회의 어두운 비본질을 처음부터 고려하고 들어가야 한다. 교회의 악한 비본질을 통하지 않고서는 교회의 선한 본질을 분별할 수도 없다.” 가톨릭 내 신학적 반정통 교리적 진보파나 에큐메니컬 계열 개신교에서 관심을 보이는 신학자 한스 큉(Hans Küng, 1928년 3월 19일 ~ 2021년 4월 6일)은 교회 안에 성도가 의인이자 죄인이기에, 교회의 역사는 곧 정의의 역사이자, 죄의 역사라고 말한다. 그렇기에 교회 내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 성도들은 너무 속상할 필요가 없다. 그 비본질적인 문제를 통해 교회의 참된 본질이 밝히 드러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옥한흠 목사는 기성 교회로 가고 싶은 유혹을 끊기 위해 1978년 6월 귀국하자마자 서둘러 그해 7월 23일 주일 오후 3시 강남 서초동 유스호스텔 앞 3층 짜리 건물 2층에서 강남은평교회 창립 예배를 드렸다. 1981년 9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 4:8)라는 말씀 안에 내포된 십자가 의미를 좋아했던 그는 ‘사랑’이란 단어에 ‘의’라는 소유격을 붙여 ‘강남은평교회’를 ‘사랑의교회’로 이름을 바꾸었다. 미국에서 집중적으로 공부해 1986년 사랑의교회에서 시작한 신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아가는 신앙생활을 하도록 이끄는 첫 제자 반은 김영순 사모 혼자만 남고 실패로 끝났다. 부유하고 신앙연수만 오래된 이들에게 원색적인 말씀으로 도전하니 훈련생들은 얼굴이 빨개지며 쩔쩔매기 일쑤였다고 한다. 그러나 다시 시작한 여자 제자 반은 영적으로 큰 변화를 맛보았다. 옥 목사는 교회 밖의 모든 모임이나 집회 요청을 거절하고 제자훈련에 완전히 집중했다. 여자 제자 반이 성공하자 1979년 남자 제자 반을 처음으로 시작했다. 옥 목사의 설교와 제자훈련을 통해 배출된 순장들의 전도로 교인이 500여 명으로 증가하자 교회건축을 결의하고, 1985년 1월, 성전 입당예배를 드렸다. 그는 일주일에 제자반, 사역반 3개, 순장반 2회, 교역자 훈련, 주일설교 3회, 또 1년 3차례 돌아오는 CAL세미나 인도에 자신의 모든 진액을 쏟았다. 급기야 그는 1989년에 탈진하여 개척 12년 만에 하와이에서 1년간 안식년을 가져야 했다. 그는 1주일의 숙식훈련에 이어 목사 제자 훈련과 평신도 사역 훈련을 1년씩 하는 이 훈련을 통해 성장한 사랑의교회 교세를 알 수 있는 대담을 기독신문과 했다. “세례교인 수를 한 명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집계했습니다. 3만500여 명 재적 교인 중, 세례교인은 1만5247명이라 그대로 냅니다. 총회 본부와 총회 신학교 그리고 여러 산하 기구들이 21세기형으로 체질개선 하는데 전향 적으로 투자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총회 재정 운용의 합리성과 투명성이 확보돼야 합니다. 정책 수립과 집행에 대해 신뢰할 수 있는 체질개선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성경은 말씀한다.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그들과 결산할새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마 25:19-21 2025-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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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김종준 목사 축복 비결
1986년 그 당시 김종준 전도사 어린이 교육 선교 재원 위해 자기 피 팔아 그 경비 조달 2016년 20,000여명 등록 교인 매주일 11,000여명 출석 교회로 성장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총회장이 있다. 어디로 가야 할지는 아는데 어떻게 가야 하는지를 모르는 총회장도 있다.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다 아는데도 일을 시작할 동력(動力)을 만들지 못하는 총회장도 있다. 헤매는 목사 총회장은 크게 봐 이 3가지 분류법으로 나눌 수 있다. 이 분류법을 넘어선 총회장이 있다. 그는 제104회 정금 총회장 김종준 목사! 2000년 전 화산재에 묻혔던 폼페이의 유적들은 발굴 200년이 지나도록 현대인들을 매료시킨다. 이 비극의 고도(古都)에 가면 폼페이 시민들의 절망과 함께 그들의 일상을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일 게다. 잿빛 화산재 속에서 정지된 시간을 보낸 유적들은 당시 로마인들이 어떻게 먹고 마시며 사랑하고 슬퍼했는지 고스란히 보여 준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룬 업적을 기념하는 성공이란 한 분야에 삼십 년쯤 종사한 후에 찾아오는 것일 것이다. 그러니까 성공이란 일류대학에 입학했다거나 사법고시에 합격했다거나 땅값이 올라 큰 부자가 되었다는 따위가 아니라 김종준 목사같이 한 분야에 삼십 년쯤 종사한 후에 온다는 얘기일 것이다. 반짝 빛나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 은은하고 끈기 있고 한결같은 것 악천후도 견뎌낸 든든한 믿음 같은 것일 것이다. 죄를 벗어나 세상을 이기고 축복받는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104회 정금 총회장 김종준 목사는 제시했다. 그것은 주일성수, 십일조, 전도, 세 가지 의무를 실행하는 것이다. 전두환 시대든 문재인 시대든 윤석열의 개혁 시대든 철부지 살인자 김정은 모험이든 그것을 이기는 해결책은 하나님 명하신 주일성수, 십일조, 전도를 성실히 지켜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서 바로 살면 축복의 삶을 누리게 된다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이에게 삼십 년 복음을 전한 그 기념으로 한 교회를 개척해 삼십 년 목회한 그 기념으로 그 교회에서 온 몸으로 설교하고 기도한 삼십 년 그 기념으로 빛나는 면류관 하나씩 또 마련되는 것 아니겠는가. 그래서 오랜 세월 말없이 교회를 위해 봉사한 성도들에게도 더불어 꽃은 한 송이 또 곱게 피어나는 것 아니겠는가. 2016년 6월 25일 오전 11시 서울 상계동 꽃동산교회(김종준 목사) 본당에서 ‘창립30주년 및 임직 감사예배’를 드렸다. 본당 3개 층은 성도들과 국민의 당 대표 안철수 의원과 노원구 구청장 김성환 등의 하객들로 빈자리 하나 없이 꽉 찼다. 1부 예배에서 제100회 총회 총회장 박무용 목사는 사무엘상 19:18-24 본문에 “이런 교회가 되게 하소서!”라는 제목으로 교회의 본질에 관한 감동적인 설교를 전했다. 꽃동산교회는 1986년 6월 15일 서울 중구 신당동 402-13번지의 건물 64평을 임대해 김종준 전도사가 개척을 했다. 개척 당시 당회장이었던 서기행 목사(제89회 총회장)가 이날 3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전달한 격려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올해 창립 30년인데 제 나이 50살에 꽃동산교회 당회장이었습니다. (교인들이 감탄의 소리를 냈다.) 김종준 그 당시 전도사께서 어린이 교육 선교에 재원이 없어 자기 피를 팔아서 그 경비를 조달했다는 말을 듣고 특별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렇게 큰 교회가 되었습니다...” 이날 축사를 전한 제83회 총회 총회장 길자연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의 방법은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이제 서기행 목사는 10년 전에 은퇴하셨다고 하는데 저는 3년도 안 됐습니다. 목회를 하면서 가장 힘든 일은 사람과의 접촉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 말씀과 기도에 전무하면 성격도 변하고 생활도 변합니다. 양심적인 사람이 지도자가 되면 사회와 교회가 양심적이 됩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람이 그 자리에 서면 교회도 흔들리고 가정도 흔들리고 사회도 흔들립니다. 대한민국 목회자 가운데 가장 올바른 지표를 정하신 분이 김종준 목사입니다. 김종준 목사는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오게 생기셨습니다. (교인들 웃음) 왜 그러나 했더니 피 뽑아서. (교인들 손뼉을 치며 파안대소) 저는 오늘 축사 초청을 받고 놀랬습니다. 나를 어떻게 알고 이 자리에 초청을 했는가. 한 가지 중요한 것을 생각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객관적으로 이 교회 담임 김종준 목사를 볼 때 그는 흠이 없고 목회에 전념하는 일사각오의 목회자이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임직자 여러분과 교회 성도들이 이 목사만 따라가면 잘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지도자 목사에게 순종하고 잘 따라가면서 꽃동산교회 안에서만 사시기를 바랍니다. 밖으로 나가면 위험합니다. (교인들 웃음과 박수) 이 말로 축사를 갈음합니다.” 꽃동산교회는 30년 역사 가운데 2004년 12월 16일 김종준 목사는 학교법인 천호학원(위례정보산업고등학교, 서울외국어고등학교) 이사장에 취임했다. 그리고 2016년 6월 15일 현재 대지 700평에 지하 3층, 지상 11층, 연건평 3,300평의 성전에서 교역자 87명, 장로 47명, 안수집사 350명, 권사 752명, 서리집사 3,854명의 직분자들이 있으며, 20,000여명의 등록 교인 가운데 매주일 11,000여명이 출석하여 예배를 드리는 교회로 성장하여 어린이 선교를 통한 세계 복음화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날 임직식을 통해 꽃동산교회는 7명의 장로와 46명의 안수집사, 99명의 권사를 직분자로 세웠고 이외에 10명의 성도를 명예권사로 추대했다. 이날 장로로 장립된 김민규 장로는 임직자 대표로 인사를 하며 겸손하게 성도들과 교회를 섬길 것을 다짐했다. “직분자는 대접받기 위한 자리가 아니라 섬기는 자리에 있는 사람인 것을 알기에 가장 낮은 위치에서 섬기고 교회를 돌보며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려 합니다. 힘들지라도 여호수아와 갈렙 같은 믿음으로 기도하며 달려가겠습니다.” 이날 김종준 목사는 예배를 마치고 나눈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조그만 단칸방 같은 데서 여섯 명이 시작한 꽃동산교회가 오늘날 이렇게 크게 번창해 시대적인 사명을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저희 교회가 그동안 어린이 선교를 통해서 세계를 복음화하려는 소명을 가지고 어린이 교회로 시작을 했습니다. 어린이 전도를 열심히 하다 보니까 하나님께서 더불어 많은 장년도 보내 주셔서 큰 교회가 되었습니다. 이제 30살 먹은 청년의 교회가 되었습니다. 이제부터 더 힘 있게 남은 사역을 감당하려고 합니다. 이제는 우리 교회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곳 저곳에 꽃동산교회와 같은 비전과 신앙을 가진 많은 교회를 세워서 이 땅에 어린이선교를 실현하고자 합니다. 이미 지금도 아홉 군데 지역에 꽃동산교회 지교회를 세워 사역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지역에 꽃동산교회를 세워 죽어가는 많은 어린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데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영문학에 있어 낭만주의를 개창하는데 기여한 영국의 중요한 낭만주의 시인 워즈워드(William Wordsworth, 1770년 4월 7일 ~ 1850년 4월 23일) 그의 삶은 검소했지만 생각은 고상했다. 걷는 것은 영적인 행위라는 생각으로 구불거리는 언덕을 걸으며 풀, 꽃, 새, 냇물, 구름, 나비, 하늘과 숲을 관찰했다. 그리곤 호숫가에서 무지개를 볼 때마다 자신의 글을 하나씩 매듭을 지어 나갔다. 특히 해 질 무렵의 산책을 즐겼는데, 이는 곧 시(詩)와 연결된다고 생각했다. 시를 “평온함 속에서 회상되는 정서”라고 믿었고, 기교적인 단어를 사용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다분히 일상적인 시어(詩語)를 선택해서 사용하는 걸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렇게 평생 30만 킬로의 거리를 산책하며 지은 시 ‘나비에게’, ‘데이지에게’, 그리고 워즈워드자신의 인생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드러낸 자전적인 시 ‘서곡’(The Prelude or, Growth of a Poet's Mind; An Autobiographical Poem)은 영국 문학의 한 획을 그은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특유의 고요함 속 쓸쓸함을 더해주는 늦가을 호숫가 정취는 아름답다. 그는 어린이를 사랑한 김종준 목사처럼 '무지개'를 통해 어린이를 찬양한다. 하늘의 무지개를 볼 때마다 내 가슴은 한없이 뜁니다. 내 어릴 때 그러했고 어른이 된 지금도 그러한데, 나이 더 들어 늙어서도 그러하리라 믿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차라리 죽기를 원합니다.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입니다(The Child is a father of the Man). 따라서 내 삶이 자연의 경건함으로 채워져 매일매일 이어져나가길 바랍니다. 성경은 말씀한다. 예수께서 그 어린 아이들을 불러 가까이 하시고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눅 18:16 2024--11-27
G.SER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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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박형용 박사의 한국교회 성장과 발전의 원동력
한국교회는 세계 교회가 놀랄 만큼 괄목할만한 성장을 했다. 그것도 비교적 짧은 기간 안에 이루어진 것이어서 많은 주목의 대상이 되어 왔다. 이 글에서는 1945년 해방 이전의 한국교회의 성장에 관해 간략하게 다루고 해방 이후의 한국교회의 성장과 문제점에 관해서는 장로교 중심적으로 다루고 앞으로 나아갈 좌표를 성찰해보려 한다. 1. 초기 한국교회의 성경 중심적 기초 한국에 복음이 들어온 해를 1884년으로 잡는다. 그 이유는 최초의 체류 선교사인 의사 알렌(Horace N. Allen)박사가 1884년 9월 20일에 인천에 도착했고, 이틀 후 1884년 9월 22일에 서울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좀 더 중요한 시점은 장로교 선교사인 언더우드 목사(Rev. Horace G. Underwood)와 감리교 선교사인 아펜젤러 목사(Rev. Henry G. Appenzeller)가 도착한 1885년이다. 두 선교사는 1885년 4월 5일 부활절 날 아침에 인천항에 도착했다. “훗날 감리교인들이나 혹은 장로교인들이 자기 교파가 먼저 도착했다고 아무도 말할 수 없게 하기 위해 그들이 손을 잡고 함께 해안으로 뛰어 내렸다는 이야기는 매력 만점의 이야기이긴 하다. 그러나 사실적인 근거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실제로 제일 먼저 해안에 발을 디딘 사람은 아펜젤러 부인이었다.” 초기 한국에 온 선교사들은 중국(Cheefoo, China)에서 오랫동안 선교활동을 해 온 요한 네비우스(Rev. John Nevius)의 선교활동 원리를 수용하여 한국에서도 적용했다. 네비우스 원리는 일반적으로 “3자 원리”(three self principles)로 알려져 왔다. 그것들은 “자전”(self-propagation) “자치”(self-government) 그리고 “자립”(self-support)이다. 초기 선교사들은 네비우스 선교활동의 방법을 “오랜 기도와 심사숙고 끝에” 한국교회의 선교정책으로 수용했다. “언더우드 박사는 오랜 기도와 심사숙고 끝에 주로 우리는 네비우스 방법을 수용하도록 인도 받았다”고 전한다. 네비우스(Nevius)선교정책은 사실상 성경공부가 강조된 정책이었다. “진정한 핵심은 성경공부 제도에 있었다. 이 제도는 모든 성도들에게 성경을 공부하도록 격려했으며 성경공부에서 배운 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할 수 있도록 격려했다.” 곽안련은 네비우스 방법의 성공 비결은 자전 자치 자립이상으로 교회 사역의 각 분야에서 성경을 보편적으로 사용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한국교회가 “성경 위에, 단순한 성경 본문 위에 건립되었다”고 확신한다. 초기 한국교회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고 성경에 권위를 부여했다. 성경은 초기 한국교회 성도들의 신앙과 삶에 확실한 기준이 되었다. 초기 한국교회를 섬겼던 선교사들이 그 당시 한국교회의 상황을 평가한 것은 한국교회가 얼마만큼 성경중심으로 성장해 왔는지를 잘 정리해 주고 있다. “물론 성경 그 자체가 모든 나라에서와 마찬가지로 복음화에서 가장 두드러진 요소이다. 그러나 한국의 성경은 좀 독특한 위치를 차지해 온 것이 분명하다... 성경공부와 성경공부 반은 한국교회의 발전에서 가장 독특하고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그것들 속에서 신앙과 지식의 기초를 놓아 왔다”(S. A. Moffett, Bible Society Record of ABS, 1916. 11., p.216). “성경은 한국에서 제일 공부가 많이 되는 책이다. 교회생활의 매우 뚜렷한 특징은 성경공부에 있다. 성경공부 반은 겨울에 열흘에서 2주일 동안 중심지에서 열린다. 겨울마다 족히 12만 5천명의 사람들이 성경을 공부하기 위해 모이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 목적은 단지 개인적인 유익을 위해서가 아니고 배운 것을 출신 교회에 전달해 주기 위한 것이다”(Annual Report of NBSS for 1917, p.32). “한국교회의 주목할 만한 성장과 발전은 성경을 체계적으로 가르쳤기 때문이라는 것이 충분히 관찰한 사람들의 확신이다”(Annual Report of NBSS for 1930, p.104). 그리고 초기 한국교회의 성경 강조는 그들의 신앙의 삶의 전 부분에서 나타나고 있다. 한 선교 보고(북장로교 선교회 25주년 보고서, p. 17)는 이렇게 말한다. "성경 자체가 물론 다른 모든 나라에서처럼 복음 전도의 가장 큰 요소로 두드러지게 부각되어 왔다. 그러나 한국의 사역에서는 이 성경이 유달리 독특한 위치를 점유해 왔다. 한국교회의 능력, 영성, 기도에 대한 큰 믿음, 후한 기부정신은, 전교회가 성경 지식에 깊이 젖어 있다는 사실로부터 나오고 있다.” 이처럼 초기 한국교회는 성경을 중심으로 성장해 갔다. 성경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생활한 초기 한국교회는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영적인 성장과 함께 숫자적인 성장도 급속하게 이루어졌다. 2. 한국교회 성장에 기여한 몇 가지 특이한 현상 (1) 천년기 전 재림설과 한국교회 성장 복음이 한국에 들어온 이후 한국은 대단히 어려운 시기에 처해 있었다. 한반도는 19세기에 이르기까지 중국과 일본, 그리고 러시아 사이에 계속적인 충돌의 현장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그리고 1910년 일본에 합병된 후 36년간 계속적인 억압과 핍박 속에 있었다. 일본으로부터 해방 이후도 1950-53년 사이 한국동란과 계속되는 군사 구테타 및 군부 통치는 한국 내에서의 고난과 핍박이 계속되었음을 증거 한다. 새 브리태니카 백과사전은 “정부가 1970년대와 1980년대를 통해 신문과 방송을 철저하게 조종했다. 그러나 1900년대에 들어오면서 남한의 정치적 민주화는 신문 방송에 상응하는 자유를 가져다주었다”(The New Encyclopaedia of Britannica, p.960)라고 기록한다. 대략적인 역사적 사건만 열거해도 복음의 전파가 고난의 때에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의 과거 역사는 복음이 이 땅에 들어 온 이래 이런 저런 모양으로 복음 전파와 한국교회에 시련의 과정이었음을 증거 한다. 이와 같이 과거의 한국 역사는 수난의 역사였다. 적어도 한국의 토양은 복음 전파에 호의적인 것은 아니었다. 김영재 교수는 복음이 전파된 이후의 한국의 상황을 천년왕국 신앙과 연계하여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천년왕국 신앙과 고난을 견딘 한국교회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을 당시부터 6.25동란을 겪을 때까지 줄곧 불안한 사회적인 상황에서 살아왔으며, 핍박 하에서와 고난 속에서 살아 왔다. 그러므로 불안 속에서 안정을 찾는 백성들은 쉽게 내세 지향적인 종말신앙을 복음으로 받아 들였다”(김영재, 「한국기독교의 재인식」 p.240).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러한 종말론적인 신앙(전천년설)은 고난을 당하는 성도들에게 위로가 되었고, 특히 신사참배 반대자들에게는 옥고를 이기고 순교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위로와 활력을 불어 넣어 준 신앙이 되었다”(Ibid). (2) 교회 분열과 한국교회 성장 김의환 박사는 그의 저서 「기독교회사」의 한 장에서 “한국교회의 부흥과 분열”을 다룬다(김의환, 「기독교회사」 pp.405-458). 김의환 박사는 I. 한국교회의 부흥 요인을 1. 외적인 요인들과 2. 교회의 진취적 정신으로 나누고, 교회의 진취적 정신에서 (1) 대부흥운동 (2) 전도 집회들 (3) 네비우스 선교방법 그리고 (4) 군복음화 계획을 열거한다. 그리고 II. 분열의 원인으로서 신학 논쟁에서는 자유주의 신학의 영향으로 한국 장로교회가 어떻게 분열했는지를 기술하고 있다. 처음 장로교 분열은 일본의 한국 점령과 무관하지 않다. 일제는 한국 교회에 신사참배를 강요했다. 신사참배의 문제는 결국 교회를 분열하는데 일조를 했다. “일본인들은 중국과 전쟁을 하고 있을 당시 1937년에 한국 기독교인들을 기밀하게 감시하고 있었다. 1938년에 정부는 모든 교회가 그들의 예배에 참석하기 전에 먼저 신사에 참배해야한다고 명령했다”(Cf. International Review of Missions, January 1939, p.10). 하지만 성경의 하나님을 유일신으로 섬기는 대부분의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일제의 강요를 그대로 순응할리 없다. 결국 신학교가 둘이 되고 교단이 나누이게 된다. 한국의 청교도 칼빈주의의 중심인 평양 신학교는 신사참배 문제로 1938년 9월 30일 자진해서 무기휴학 선언을 했고, 1939년 3월부터 조직된 새로운 신학교 설립 기성위원회는 1940년 4월에 정식으로 조선신학교를 서울에서 개교하였다. 조선신학교는 서울 승동교회 하층을 사용했다(김의환, 「기독교회사」 p. 444). 조선 신학교가 시작될 당시 조선신학교는 자유주의라는 이유로 총회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 그리고 1945년 남쪽과 북쪽이 38선으로 나누인 이후 조선신학교가 남쪽 장로교 총회에 속한 유일한 신학교가 되었다. 조선신학교는 1946년 장로교 총회에서 총회 직영신학교(General Assembly Theological Seminary)로 인준을 받았다(G. T. Brown, Mission to Korea, Board of World Missions, Presbyterian Church, U.S, 1962, p.177). 하지만 조선신학교의 신학적 입장은 계속적으로 문제가 되었다. 남쪽 장로교회의 좌경화를 지켜본 신사참배 반대로 옥중에서 핍박을 받은 옥중 성도들과 신앙의 자유를 위해 망명 갔던 보수신학자들이 힘을 합쳐 세운 보수 신학교가 1947년 10월에 부산에서 박형룡박사를 교장으로 모시고 문을 열었다. 이 신학교가 바로 고려신학교였다. 그런데 고려신학교 설립자이신 한상동 목사와 교장 박형룡 박사 사이에 이견이 생기게 되었다. 박형룡 박사는 자유주의 신학과 싸울 전략으로 신학교를 서울로 옮길 것을 주장했다. 한상동 목사는 과거 평양신학교가 평양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총회의 유일한 신학교로 역할을 감당한 것처럼 고려신학교가 부산에 있어도 유일한 장로교 신학교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고려신학교를 서울로 옮길 것을 반대하였다. 결국 박형룡 박사는 부산을 떠나 서울로 상경하여 1948년 6월 옛 평양신학교의 정신을 이어받은 신학교로 장로회신학교를 서울에 설립했다. 그리고 장로회신학교는 1949년 4월 19일 서울에서 모인 제 35회 총회에서 총회 직영신학교로 인준 받았다. 이로써 한 총회 내에 조선신학교와 장로회신학교가 총회 직영신학교로 존재하게 되었다. 총회의 주도권을 찾은 보수 쪽 인사들이 조선신학교와 장로회신학교의 합동을 제안하였고 조선신학교 쪽 인사들은 합동하는 것은 자신들에게 불리함을 알고 신학교 합동을 반대 하였다. 한국동란이 1950년 6.25일 북한의 남침으로 발발하였다. 6.25 한국동란 직후 1951년 5월 26일 부산 중앙교회에서 제 36회 속개 총회가 모였을 때 총회가 직영 신학교로 인정한 양 신학교를 취소하고 새로운 신학교를 설립하자는 안건의 가결을 보았다. 그래서 총회의 결의대로 총회신학교가 1951년 9월 18일 대구에서 교장 감부열 선교사외 교수 박형룡 명신홍 권세열 김치선 한경직 제씨를 모시고 개교하기에 이른다. 총회 내에서 더 이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른 조선신학교 측 인사들은 1953년 6월 10일 서울 한국신학대학(조선신학교 후신) 강당에 모여 “법통 총회”란 이름하에 제 38회 총회를 속개한 다음 그 다음 해부터 “대한기독교장로회”란 새로운 이름으로 교단을 창설하였다(김양선, 한국 기독교 해방 10년사, p. 227). 이렇게 하여 1947년 10월에 창립된 교려신학교와 1951년 9월 18일 대구에서 개교한 총회신학교와 1953년 6월 10일 시작한 한국신학대학으로 나누어져 세 개의 장로교 교단이 형성되게 되었다. 자연히 한국의 장로교회의 교단은 고려 측 총회 측 기장 측으로 나누어져 존재하게 된다. 그 이후 한국장로교회는 1959년 9월 24일 대전중앙교회에서 제 44회 총회로 모여 WCC 문제로 정회되었는데 WCC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정회되는 그날 1959년 9월 28일 서울로 옮겨 연동교회에서 총회를 속개하였고, WCC를 반대한 사람들은 1959년 11월 24일 서울 승동교회에서 총회를 속개하였다(김의환, 「기독교회사」 pp. 452-457). 이로써 한국장로교회는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측 혹은 승동측)과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측 혹은 연동측)으로 둘로 나누이게 되었다. 그 후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측)이 1979년 주류측, 비주류측, 중립측으로 나누어졌고 계속해서 합종연횡(合從連衡)의 과정을 거쳐 현재는 장로교만 100여 교단이 넘는 상황이 되었다. 이처럼 한국교회는 분열이라는 아픔을 통해 숫자적으로 성장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은 인간의 잘못을 사용해서도 그의 뜻을 이루어 가신다. (3) 십일조 강조와 한국교회의 성장 한국교회는 십일조 헌금을 강조한다.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십일조 헌금의 강조를 위해 그 근거를 구약에서 찾는다. 특히 목회자들은 헌금 강조를 위해 말라기를 인용하곤 한다. 인용된 성구는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 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말 3:8)와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 3:10) 등이다. 말라기 3:8의 내용은 헌금을 강요할 때 사용되고, 말라기 3:10은 기복신앙을 조장하는 역할을 해 왔다. 이와 같은 기복신앙을 조장하는 십일조의 강조는 교회 안에 이상한 형태의 헌금제도를 낳게 했다. 어떤 교회는 축복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선 십일조”(prepaid tithe)를 강조하기도 한다. 선 십일조란 십일조의 금액에 따라 하나님이 수입을 보장해 주신다는 생각으로 수입이 있기도 전에 십일조를 바치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과 노름을 하는 셈이다. 하나님이 수입의 십일조를 바치라 명하셨으니 먼저 십일조를 바치면 하나님은 할 수 없이 그 십일조의 십 배를 수입으로 주실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렇게 기복신앙을 조장하는 십일조 헌금과 다른 헌금이 한국교회 내에 깊이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심지어 근래에는 어떤 교회에서 십일조를 내지 않으면 교인 자격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나오기까지 했다. 사실상 십일조의 강조는 1950년대까지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이 말은 일본의 36년 통치기간에 한국교회가 십일조를 많이 강조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러나 1950년 한국동란(6.25동란)을 겪으면서 교회 재정은 극도로 피폐되어졌고 재정확충의 필요가 대두되었다. 한국동란은 한국민족에게 고난과 고통을 안겨 주었고 따라서 고통 속에 처한 한국교회는 기도와 회개를 강조하게 되었다. 그래서 도시 인근 산 속에는 이곳저곳에 불법 기도원이 설립되고 성도들은 자신들의 고통과 나라의 고난을 기도로 분출하게 되었다. (4) 교회당 건축과 성전의식 예배당을 구약성전으로 생각하는 관습은 예배당 건축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일부 목사들은 강대상이 있는 곳을 제단(altar)으로 생각하고 안수 받은 목사이외의 다른 성도들은 올라갈 수 없도록 한다. 특히 여자 성도들은 강대상을 사용할 수가 없다. 이런 관습이 시행되는 교회에서는 때때로 웃음을 자아내는 장면이 연출되곤 한다. 여전도회 헌신예배를 드릴 때 나이 많은 할머니 회장님은 아래 강단에서 사회를 하고 아들정도 되는 젊은 청년 목사는 윗 강단에서 설교를 한다. 이런 관습이 여인은 제단에 올라 갈 수 없다는 구약 교훈에서 기인된 것이다. 이처럼 교회당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예배당 건축에 자극제 역할을 했고 많은 예배당의 건축은 교인 수를 증가시키는데 일익을 담당했다. 한국에 세계 10대 교회 중의 몇 교회가 있다는 사실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이시다. 지금까지의 한국교회의 역사적 진전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잘못을 통해서도 교회를 인도해 주셨음을 증거 한다. 우리는 우리의 잘못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역사의 주관자이심을 강조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노력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잘못할 때 하나님은 그의 지혜로 그 잘못을 가장 좋은 방향으로 인도하신다는 뜻이다. 우리는 이 부분에 대해 성경이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롬 6:1-2; 참조 롬 3:5-8)라고 말씀하신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3. 한국교회가 지키고 취할 것 고등종교의 타락원인을 고찰하면 첫째 성직자의 급증 둘째 종교 기관수의 급증 셋째 기복주의 성향 그리고 넷째 교회 및 교회 기관들이 권익 집단으로 전환하는 것 등을 들 수 있다. 한국교회는 이런 부분에서 위험 수위에 육박하고 있다. 서구 사회는 후기 기독교 사회로 이미 접어들었다. 한국 교회도 후기 기독교 사회로 들어가는 시기가 곧 다가 올 것이다. (1) 성경 66권을 하나님의 정확무오한 말씀으로 믿고 성경을 귀하게 생각해야 한다. 구약시대나 신약시대나 할 것 없이 하나님은 그의 말씀을 귀하게 생각하고 실천하는 백성을 축복하시고 선한 길로 인도하신다. 한국 교회는 성경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하면서도 그 말씀의 원리에 따르기보다 편의와 실리에 따라 말씀을 적용하는 경우가 많다. 구약시대 때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들이 나에게 제물은 바치지만 마음은 내게서 멀다고 하신 상황과 비슷하다고 사료된다. 의식이 있는 목사들에게 “현재 한국교회의 문제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라고 질문을 하면 그들은 한국교회에 현재 팽배한 것은 “원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라고 답변을 한다. 이 말은 성경 말씀이 우리의 신앙과 생활의 규범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뜻이다. 성경의 원리보다는 교회의 숫자가 증가한다면 성경원리에 맞지 않아도 좋고 심지어 이단적인 방법 일지라도 사용하겠다는 분위기이다. 심지어 개혁주의 신학을 표방하는 신학교에서도 “역사적 비평적 해석방법”(The Historical Critical Method)에 호의적인 태도를 취하기도 한다. 역사적 비평적 방법은 성경에서 초자연적인 요소를 제거하고 단순히 인간의 합리를 적용하여 성경을 해석한다. 요즈음 여러 가지 명칭으로 등장한 해석 방법은 계몽주의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하나님 중심적인 접근보다는 인간 이성 중심적인 접근이 많다. 한국 교회는 성경으로 돌아 갈 때 소망이 있다. (2) 순교의 정신을 계승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우상숭배와 같은 신사참배를 거부했다. 이에 일제는 1938년 2월에 아직도 신사 참배를 거부하고 버티는 장로교회를 꺾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일제의 압력에 밀려 1938년 2월부터 9월 총회가 열리기까지 전국의 23개 노회 가운데 17개 노회가 일제에 굴복하고 신사참배를 찬성하고 말았다(김양선, 한국 기독교사 연구, p. 186 이하). 여기서 자세하게 언급할 수 없지만 일제 강점기와 6.25 남침으로 인한 공산당 점령기간에 수많은 목사들과 성도들이 믿음을 지키기 위해 순교했다. 순교한 성도들의 삶은 자신의 생명보다 말씀을 순종하고 하나님을 소유하는 것이 더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한국교회는 믿음의 선진들이 생명을 바쳐 지킨 순교의 정신을 이어가야 한다. (3)행사나 프로그램 보다는 하나님 앞에서 잘못을 회개하고 바로 서야 한다. 1907년 대부흥운동의 100주년 기념으로 2007년 7월 8일 상암 구장에서 “2007년 한국교회 대 부흥 100주년 기념대회”가 열렸다. 이 대회에서 고 옥한흠 목사(사랑의교회 목사)가 설교하는 가운데 외쳤다. “한국교회는 만 명의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고, 구제 사업에도 앞장서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사회는 한국교회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목회자로서 설교할 때 죄와 회개 거룩함은 할 수 있으면 언급을 피했습니다. 회개나 반성보다 듣기 좋고 부드러운 말을 골라 설교하는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저도 모르게 복음을 변질시켜 갔습니다. 주여! 이놈이 죄인입니다. 입만 살고 행위는 죽은 교회를 만든 장본인입니다. 겉모양은 돌아가지만 내면은 죄악이 쌓여 있는 한국 교회를 깨끗하게 하옵소서. 한국교회를 살려 주옵소서라 기도해야 합니다”(아름다운 동행 제16호). 옥목사의 이 설교 말씀은 한국 교회 목사들을 대표해서 한 말씀이요 한국 교회가 귀 담아 들어야할 내용이다. 박윤선 목사는 생애의 거의 마지막 부분에서 “나는 83년 묵은 죄인입니다”라고 자신의 죄인 됨을 대중 앞에서 고백했다. 한국교회는 1907년 회개 운동을 통해 부흥운동이 확산된 것처럼 회개 운동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에 처해 있다. 우리는 한국교회가 행사와 프로그램으로 성도들을 몰아가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한국교회는 성도들이 성경 말씀 안에서 내면적으로 거룩하고 충실하게 성장하는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4) 한국교회는 기도의 열정을 계승해 나가야 한다. 한국교회는 기도하는 교회로 유명했다. 하지만 요즈음은 한국교회의 기도의 열기가 점점 식어져 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 한국교회는 새벽기도회로 유명하고, 금요일 철야기도회로 유명했다. 하지만 지금은 거의 모든 교회가 철야기도를 하지 않는다. 금요일 오후 9시나 10시에 모여 12시 전으로 모든 기도회를 마친다. 그리고 예전에는 성도들이 기도할 수 있는 장소로 수많은 기도원이 있었다. 지금은 사회의 발전과 함께 그런 기도처소가 거의 없는 상태이다. 물론 우리는 미신적으로 기도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반드시 기도처소에 가야만 기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어느 때나 어디에서든지 기도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기도하는 백성을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한다. 한국교회는 좋은 기도의 전통을 이어 받았으니 이를 계속 전승시켜야 한다. 4. 한국교회가 버리고 개선할 것 우리는 “나는 나의 싸움에 하나님을 끌어 들이는 욕구중심의 신앙인인가?” 아니면 “나는 하나님의 싸움에 나를 헌신하는 소명 중심의 신앙인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면서 한국교회가 교정해야할 몇 가지를 함께 묵상하도록 한다. (1) 객관적 계시인 성경보다는 주관적 경험을 더 중시하는 경향을 경계해야 한다. 하나님은 특별한 영감의 방법으로 예수님 재림 때까지 교회가 사용할 정경 66권을 주셨다. 하나님은 모든 교회가 예수님 재림 때까지 사용할 공적이고 객관적인 계시를 우리에게 주셨는데 또 계속해서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객관적 계시에 버금가는 계시를 주시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기독교는 혼돈으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지 정 의를 가진 존재로 창조 받았기 때문에 감정에 많이 좌우된다. 우리가 기억해야할 것은 우리의 감정도 객관적 계시에 조종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객관적 계시인 성경보다 주관적 경험을 중시 할 때 결국 그 결과는 내세 지향적이 되며 윤리성이 약해지는 방향으로 흐른다. (2) 기복신앙의 조장으로 축복받기 위해 헌금하는 경향이 한국교회 내에 많다. 헌금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감사하여 마음과 몸을 바치는 뜻에서 드리는 것이다. 사실상 인간이 하나님께 바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것의 주인이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교회의 헌금 경향은 축복을 받았음으로 감사해서 바치기보다는 축복을 받기 위해 바치는 것이다. (3) 한국 교회 예배를 회복해야 한다. 한국교회 예배는 전통적으로 말씀중심의 예배였다. 성도들의 관심이 말씀을 선포하는 강단에서부터 자신들의 몸 운동으로 옮겨진 것이다. 그런데 오순절 운동으로 오순절교회뿐만 아니라 다른 교회에서도 박수치는 것 손을 오리는 것, 무릎을 꿇는 것, 춤을 추는 것 등 육체적인 표현이 빈번하게 되었고, “아멘,” “할렐루야,” “하나님께 영광”(칠레의 오순절 신자들의 경우) 등의 음성적인 표현도 곁들여 하는 경향을 낳게 했다(이재범, “현대 오순절 교회 예배의 특징”, 『성경과 신학』 6권, p. 103).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 목사 혼자서 흥행하는 식의 예배는 바람직스럽지 못하기 때문에 오순절식의 예배처럼 성도들이 육체적 표현과 음성적 표현으로 예배에 참여한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으나 오순절 예배의 경우 인간 감정의 촉발을 조장하여 그 자체를 마치 신과 하나 되는 경지에 들어가는 황홀경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배드릴 때 예배자의 마음을 가장 소중히 여기신다. (4) 건전한 교회를 정착시켜야 한다. 대형교회는 작은 교회가 하지 못하는 여러 가지 일을 할 수가 있다. 대형교회는 성도들의 필요를 채우는데 더 효과적으로 일을 할 수가 있다. 그러나 대형교회는 항상 겸손한 마음으로 처신하고 다른 교회들의 필요를 채우는데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때로 대형교회들이 자만에 빠져 질서를 파괴하고 자기들 마음대로 하려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면 대형교회들 중 장로교회들이 한국 명칭은 장로교회로 사용하면서 영어표기로는 “무슨 공동체 교회”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런 식으로 명칭을 사용하는 목사는 정체성에 대한 의식이 희박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순수하지 못한 것이다. (5) 목사의 직분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바로 잡아야 한다. 종교개혁 사상은 성경에 기초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재발견하여 예수님을 중심으로 삼는 것이었다. 개혁자들은 오직 은혜로만 구원을 얻으며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다고 믿었다. 죄인이 의인이 되기 위해서는 유일한 중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개혁자들은 성자숭배를 반대하고 교황주의를 반대하며 목사가 제사장이라는 교권주의도 반대했다. 목사는 말씀의 선포와 성례를 집행하는 직무를 맡은 사람이다(김영재, 한국 기독교의 재인식, p. 287). (6) 예배드릴 때 설교 본문을 교독하는 관습은 하나님의 권위를 침범하는 것이다. 근래에 한국 교회의 예배의식을 살펴보면 목사가 설교 본문을 읽을 때 회중의 참여를 의식하여 교독이나 합독할 것을 제안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성경봉독은 하나님께서 그 말씀봉독을 통해 가장 직접적으로 성도들에게 말씀하시는 방법이다. 성경봉독은 설교보다도 더 직접적으로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말씀하시는 수단이다. 예배드릴 때 시편을 교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설교의 본문을 교독하는 것은 심하게 말하면 하나님이 말씀하실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 봉독은 예배 인도자가 낭독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The Book of Church Order of the Presbyterian Church in America, Chapter 50, Verse 1). (7) 예배드릴 때 목사가 가운을 입는 일과 성찬 집례 시 흰 장갑 끼는 일은 개혁주의 전통이 아니다. 어떤 한국교회는 예배드릴 때 목사가 가운을 입고 예배를 드리는 교회가 있는가 하면 어떤 교회는 목사와 장로가 모두 가운을 입고 예배드리는 광경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영상 매체를 통해 설교하는 대부분의 목사들이 가운을 입고 설교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러나 목사가 예배드릴 때 가운을 입는 것은 개혁주의 전통이 아니다. 목사가 예배드릴 때 가운을 입으면 목사와 성도들을 구별하고 목사를 특별 계층으로 인식하게 하는 잘못을 범한다. 가톨릭의 사제들은 가운을 입으므로 일반 성도들과 자신들을 구별시킨다. 그리고 목사가 성찬을 집례 할 때 흰 장갑을 끼고 집례 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예식을 성스럽게 인도하기 위한 목적이 있겠지만 “성찬식이 주일 예배보다 더 거룩하다거나 예배가 성찬식보다는 덜 거룩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다”(김영재, 한국 기독교 재인식, p. 289). 성찬식을 예배보다 더 거룩한 것으로 생각하면 중세 교회의 잘못을 답습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께서 처음 성만찬을 제정해 주신 장면을 상기해 보아야 한다(눅 22:13-23). 예수님이 첫 성만찬을 제정하실 때 예수님께서 장갑을 끼셨다든지 아니면 그 당시 할 수 있는 특별한 방법을 동원하셔서 성만찬 집례를 하셨는지 상고해 볼 필요가 있다. 예수님은 보통 식사하시는 방법으로 성만찬을 제정해 주셨다. 목사가 설교할 때는 가운을 입지 않고 성찬을 집례 할 때는 가운을 입으면 성도들이 설교보다 성찬을 더 중요한 은혜의 수단으로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설교나 성찬 모두 성도들이 은혜를 받는 은혜의 수단이다. 그리고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성찬은 구원받은 가족들만이 참여하는 가족 식사이지만 설교는 전도의 역할까지 하는 은혜의 수단이다. (8) 교회 내에 잔존하는 여러 가지 잘못된 행태를 변혁시켜야 한다. ① 성경은 신약교회의 제도 중에 하나로 제비뽑기를 허락하지 않는다. 그런데 어떤 교단은 총회장 선거를 제비뽑기로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선거의 부작용을 피하기 위해 성경을 경시하는 현상이다. 이는 교회 지도자들이 성경의 교훈을 에누리하고 있는 것이다. ② 무자격 신학교의 난맥상을 개선해야 한다. 일 년에 두 차례 학기 초가 되면 기독교 신문에 신학생 모집 광고가 나온다. 그런데 광고에 나온 어떤 신학교는 우리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광고도 하지 않고 아름아름 학생을 모집하여 가르치고 있는 신학교도 많다. 이와 같은 신학교는 어떤 한 개인이 주관하거나 어떤 한 교회가 주관하면서 자격 없는 목회자를 배출하고 있다. ③ 후임 목회자를 선정하는데 부자 세습을 지양해야 한다. 근래에 한국교회는 1세대 목사가 은퇴하고 후임 목회자를 모시는 과정에 아버지 목사가 아들 목사에게 교회의 의사와는 다르게 거의 강제로 담임목사로 세우는 경우를 가끔 본다. 아버지 목사가 은퇴할 때 전체 교인들이 아들 목사를 담임목사로 모시겠다고 하여 공동의회를 거쳐 아들 목사를 담임 목사로 모시는 것은 크게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오늘의 한국교회의 형편을 감안할 때 가능한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사회를 향한 좋은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되리라 사료된다. ④ 목사 장로 집사 권사 직분을 벼슬처럼 생각하는 행태를 개선해야 한다. 교회의 직분들은 봉사의 직분들이다. 교회의 직분들은 벼슬자리가 아니다. 성경 말씀은 분명하게 교회의 직분들이 섬기는 자리요, 봉사의 자리임을 분명히 한다. 예수님도 하나님이시면서도 섬기려 오셨다고 말씀하신다(막 10:45). 나가는 말 우리는 역사의 교훈을 마음 깊이 새겨야한다. 그리고 우리의 잘못은 고치고 버릴 것은 버려야 한다. 우리는 항상 성경말씀에 비추어 우리의 모습을 점검해야 한다. 이것이 130년을 헤쳐 온 우리의 나아갈 좌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이만큼 성장하고 쓰임을 받고 있는 한국교회에 대해 성급한 평가를 하는 것은 잘못이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항상 겸손, 겸손, 또 겸손의 자세로 우리의 연약성을 개선하여 하나님의 교회를 든든히 세우고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쓰임을 받아야 할 것이다. 박형용 박사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명예교수 2017-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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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폭풍의 종류
이 개혁주의 신앙으로 다시 우리 교단을 세우고 한국교회를 세워야 하나님 사랑 교회 사랑 동역자 사랑 진심 담겨 적폐 중 적폐 김정은과도 화해하고 대화하는 시대 예수님 안에서 하나 되어야 주여 하늘의 ’거룩한 완전한 폭풍‘불어오게 하옵소서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목사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필요해.” 그래서 그는 그 영문도 모른 채 정신을 차리고 성경을 들고 길을 걷거나 펼쳐놓고 말씀을 전한다. 짜릿한 겨울날 오후 슬쩍 내리는 빗방울까지도 두려워하면서 그것에 맞아 죽거나 어찌되어서는 안 되겠기에. 쨍하게 갠 날 사랑하는 사람이 그를 필요로 하면 기꺼이 필요가 되는 것이 사랑이다. 값진 필요가 되려면 온전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사랑을 확인한 그는 겁쟁이에 바보가 된다. 사랑의 바보는 난생 처음 그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귀한 존재임을 깨닫는다. 눈 오는 날 그가 눈송이조차도 사랑스러워 하니 아무렴 하나님께서 내리는 것이 무엇이든 그를 피해 내리겠지.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별이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면 서로 울던... 새가 날면 따라 웃고 새가 울면 따라 울던 얄궂은 그 노래에 봄날은 간다. 목사가 몸을 쥐어짜며 구성지게 이 노래를 부르면 회중이 울까 웃을까. 어쨌든 그의 얄궂은 그 노래가 사방에 울리는데 깨는 듯 조는 듯 겨울은 간다. 꿈인 듯 생시인 듯 추위가 가시고 말리라. 그가 시인 듯 읊조리고 노래인 듯 흘리는 해학과 노래에 사람들은 웃고 운다. 그런데 무엇보다 그의 설교에는 재능이나 학식보다 하나님 사랑, 교회 사랑, 동역자 사랑의 진심이 담겨 있다. 그리고 그 속에 성령이 주시는 태풍의 예언이 담겨 있다. 태풍(颱風, Typhoon)은 북태평양 서쪽 열대 해상에서 발생하는 열대 저기압의 한 종류로 중심 부근의 최대 풍속이 17.2m/s 이상의 강한 폭풍우를 동반하고 있는 기상 현상을 말한다. 7월~10월에 가장 많이 발생한다. 발생 지역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북태평양 동부와 북대서양 서부에서 발생하면 허리케인(hurricane) 인도양과 남태평양에서 발생하면 사이클론(cyclone)이라고 한다. 제55회 전국목사장로기도회가 2018년 5월 8일 오후 4시 김창인 목사가 충무로 언덕에 세웠다는 충현교회를 강남의 언덕 1만평 위에 세운 충현교회에서 시작됐다. 오후 7시 전국목사장로기도회 첫째 날 저녁집회가 진행됐다. 장재덕 목사(총회회록서기) 인도로 진행된 저녁집회 합심기도에 김진하 목사(예수사랑교회)가 ‘총신대학교와 교단 산하 신학교를 위해’ 뜨겁게 기도하고 회중을 성령의 감동에 젖게 했다. 이어서 새에덴교회 찬양대가 감동의 울림으로 충현교회 본당을 가득 메운 뒤 하나님의 말씀 사도행전 2:1-4 본문이 봉독됐다.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소강석 목사가 ‘하늘의 퍼펙트 스톰을 일으키라’ 제목으로 입을 열었다.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 ‘완전한 태풍’이라는 말을 아십니까. 이 퍼펙트 스톰은 위력이 크지 않은 둘 이상의 작은 태풍이 서로 충돌하면서 그 영향력이 가히 폭발적으로 커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경제, 사회 분야에서도 두 가지 이상의 악재가 겹쳐 더 큰 피해를 당할 때 쓰는 용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2000년에는 ‘퍼펙트 스톰’이라는 재난 영화가 상영되기도 하였는데요. 이 퍼펙트 스톰이 몰아치면 흔적도 없이 모든 것을 다 쓸어버립니다. 보통의 태풍은 흔적이라도 남기는데 퍼펙트 스톰은 흔적조차도 남기지 않는 완전한 폭풍이에요. 그러니 이 퍼펙트 스톰이 불어 닥치면 어마어마한 재난이 일어나는 것이죠. 그런데 지금 세계 기독교는 이 ‘완전한 태풍’ 같은 재난을 맞고 있습니다. 반기독교적인 정서와 공격들이 세계 교회 생태계를 공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그 재난의 폭풍은 지금 한국교회에 더 불어오고 있어요. 왜 그럴까요. 첫째, 우리 한국교회가 복음의 본질을 잃고 거룩의 능력을 빼앗겨 버렸기 때문입니다. ... 한국교회는 자성하고 변화를 모색했어야 하는데 안일한 자세로 자기 성(castle)만 쌓고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성장만능주의와 세속화, 교권의 욕망 때문에 도덕적, 영적, 거룩의 능력을 상실해 버리고 세상의 비난거리가 되었어요. 그런데 그 비난과 공격은 너무나 거칠고 험하게 자행되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한국교회를 향한 재난의 바람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재난의 바람이 우리 총회에도 불어 닥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둘째, 반기독교적인 사상의 흐름 때문입니다. ... 우리 사회에서도 10년 전까지만 해도 동성애를 이야기하면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금기시했지 않습니까. 완전 비정상으로 알았어요. 그런데 언론에서 끊임없이 동성애를 인권으로 포장해서 이야기하고 성소수자로 보도를 하며 미화를 시키니까 10년이 지나자 대중이 그렇게 인식을 해 버린 거예요. ... 제가 얼마 전에 미국 유학을 다녀오셔서 목회를 아주 잘하고 계시는 분과 식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옆에도 다가갈 수 없는 인격과 실력을 가지신 분입니다. 그런데 그 분이 저에게 뭐라고 충고를 한 줄 아세요. ‘소목사님, 절대로 교회생태계를 보호하는 사역이나, 교회 연합사역 같은 일을 하지 마십시오. 그거 아무리 해도 안 됩니다. 어차피 유럽과 미국에서 되어진 것처럼 우리나라도 이러한 흐름은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저 복음을 잘 전하는 일입니다. 그런 일에 절대로 힘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제가 얼마나 충격을 받아버렸는지 모릅니다... 사실 얼마나 아름다운 말입니까. 당연히 복음을 잘 전해야지요. 그러나 그러다가 영국교회나 미국교회는 반기독교 악법을 허용해 버리게 되고 목회생태계를 다 파괴시켜버리고 만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만약에 우리나라에서도 차별금지법이나 종교소득과세 등이 법으로 통과되었다면 한국교회는 재난에 완전히 쓰러지게 되었을 것입니다. 3년 전에는 하마터면 국회에서 종교인과세가 아니라 종교소득과세로 통과 될 뻔 했어요. 그런데 부족하지만 제가 그것을 뒤늦게 알고 전국 17개 광역시도 기독교연합회장들과 함께 각 지역구 국회의원들에게 설명을 하고 설득을 한 거예요. 그래서 당시 여당이 의총을 해서 종교소득과세를 종교인과세로 바꾸게 된 거예요. 만약에 그때 종교소득과세로 입법이 되어버렸다면, 한국교회 모든 선교 활동이나 목회자의 목회 활동이 완전히 위축되고 교회가 기업처럼 세무조사의 대상이 될 뻔 했어요. 그런데 다행히 종교인 과세가 되어서 최소한의 마찰을 겪으면서 연착륙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왜 교회가 성역화되어야 하느냐, 교회도 세무조사를 받아야 하지 않느냐”고 따지기도 하는데요. 교회의 본질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하는 거지요. 교회는 절대로 영리단체가 아닙니다.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 아니예요. 그러므로 교회는 종교 고유의 목적인 성경의 가치와 예수님의 진리를 실현하는 사역이 보장받아야 하는 곳입니다... 여러분, 교회가 완전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교회도 인간이 모인 곳인데 빛과 그림자가 있을 수 있는 거지요. 그런데도 어쩌다가 교회에 부정적이고 어두운 요소가 나오면 그렇게 벌떼처럼 달려드는 거예요. 그러다가 어떤 계기가 되면 이런 현상들이 엄청난 재난의 바람으로 발전할 수도 있거든요. 퍼펙트 스톰이 어떻게 일어납니까. 별로 위력적이지 않은 작은 바람이 갑자기 엉키고 충돌하면서 어마어마한 재난의 바람으로 일어나지 않습니까. 그런 것처럼 우리 총회도 방심할 수 없어요. 총신 문제가 일단락되었다고 하지만 더 큰 재난의 바람 ‘완전한 태풍’이 불어올지 어떻게 압니까. 그러므로 이러한 때 우리는 역설적으로 더 큰 하늘의 퍼펙트 스톰을 일으킬 수 있어야 합니다. 역설적으로 더 크고 더 능력 있는 거룩한 홀리 퍼펙트 스톰(Holy perfect storm)을 일으켜야 해요. 우리가 산불이 일어나면 맞불 작전을 펼치지 않습니까. 그래서 산불은 산불을 놓아 끄는 것처럼 우리도 한국교회에 불어오는 재난의 바람을 거룩한 하늘의 바람으로 잠잠케 해 버려야 합니다. 하늘의 거룩한 퍼펙트 스톰으로 이 땅에 불어오는 반기독교적 재난의 바람을 다 날려버려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오늘 본문도 그랬습니다. 당시에 예수님께서는 부활 승천을 하셨지만 유대종교로부터 강력한 핍박의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불어오는 재난의 바람이 두려워서 꼼짝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 재난의 바람으로 인해 그들의 신앙에 존폐 위기가 온 것입니다. 그런데 개역성경이 '다락방'으로 오역한 마가의 윗층방(upper room)을 향하여 하늘이 열렸습니다. 그리고 열린 하늘을 통하여 성령이 임하였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을 벌벌 떨게 하고 교회가 세워지는 것을 방해하고 있었던 그 재난의 바람들을 다 날려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거룩한 부흥의 역사가 나타난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이 임하는 모습을 오늘 본문은 “급하고 강한 바람”이라고 했어요. 이것이 바로 하늘로부터 불어온 홀리 퍼펙트 스톰이에요. 본문에서 말씀하는 ‘급하고 강한 바람’(a rushing mighty wind)은 헬라어로 “페로메네스 프노에스 비아이아스”인데 ‘파괴적인 힘을 가진 몰아치는 바람’이란 뜻입니다. 그러니까 거룩한 퍼펙트 스톰이지요. 그런데 급하고 강한 바람과 함께 불의 혀가 갈라지는 것같이 임한 거예요. 여러분, 상상해 보세요.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데 거기에 급하고 강한 바람이 불어대니 얼마나 불이 잘 번지겠습니까. 바로 이 모습이 마가 웟층방에 임한 하늘의 거룩한 퍼펙트 스톰이었어요. 그래서 당시에 교회를 태동시키지 못하게 하려고 하는 재난의 바람을 급하고 강한, 하늘의 거룩한 퍼펙트 스톰이 날려 버렸어요.” 기인 소강석 목사는 재난의 바람 ‘퍼펙트 스톰’을 예레미야처럼 예언한 뒤 그 대비책을 이사야처럼 제안했다. “오늘 존경하는 목사님과 장로님들께서 목장기도회로 모이셨는데, 오늘 이 자리가 하늘이 열리고 하늘의 퍼펙트 스톰을 일으키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거룩한 부흥의 바람을 일으키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거룩한 하늘의 퍼펙트 스톰을 일으킬 수 있습니까. 첫째, 먼저 우리가 회개부터 해야 합니다. 성경에서 뿐만 아니라, 2000년 교회 역사를 보면 모든 부흥의 역사는 회개로부터 시작했습니다. 미스바 부흥운동, 수문 앞 광장의 부흥운동, 갈멜산의 부흥운동이 그랬습니다. 오늘 본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신대로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냥 기다리기만 했습니까. 그들은 오로지 기도에 힘썼습니다. 성경은 사도행전 1:14에서 말씀합니다.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그들은 오로지 기도에 힘썼다고 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들이 그냥 기도만 했을까요. 그들은 틀림없이 회개도 하였을 것입니다. 그들 중 대부분은 주님을 3년이나 따라다녔지만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 모두 다 도망 가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지난날 주님을 배반했던 일들을 회개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오순절의 성령 체험을 한 후에 맨 먼저 어떤 메시지를 전하였습니까. 성령을 선물로 받으려면 회개하라고 했습니다(행 2:38). 그리고 그 회개의 메시지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 죄를 회개하라는 것이었습니다(행 3:13-15). 그랬을 때, 마가 다락방 뿐만 아니라 초대교회에 위대한 부흥의 퍼펙트 스톰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도 먼저 회개해야 합니다. 특별히 우리 총신의 문제와 교단의 모든 문제를 우리 모두가 책임지고 회개해야 합니다. 그래서 요즘 저도 기도할 때마다 늘 하나님께 회개 기도부터 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저의 잘못이고 저의 책임이라고 여기며 말입니다... 둘째, 거룩한 부흥을 사모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회개한 제자들은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거룩한 성령의 임함과 부흥의 역사를 사모하며 오로지 기도에 힘썼어요(행1:14). 그들이 하루 이틀 기다리며 기도했겠습니까. 적어도 10일 동안 그들은 숙식을 같이 하면서 성령의 임함을 사모하고 거룩한 부흥의 역사를 간구했던 거예요. 그럴 때 홀연히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임한 거에요...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그렇게 엄격한 규율을 지키면서 경건하게 사는 것처럼 보이는데, 문제는 심령이 점점 컬컬하고 메말라가는 거예요. 교회에서 몇 사람만 모여도 서로를 정죄하고 비판하면서 파벌싸움을 하고 쪼그라드는 거예요. 이런 모습이 ‘주홍글씨’라는 소설에 잘 나오지 않습니까. 그러자 자기들 스스로 영적 각성을 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부흥의 절실함을 깨닫게 된 거예요... 바로 이런 영적 각성과 영적인 갈망이 미국의 1차대각성 운동을 일으키게 한 것입니다. 2차 대각성운동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랑하는 목사님, 장로님들이여, 오늘 이 자리가 그런 부흥의 자리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런 거룩한 부흥의 바람, 하늘의 폭풍이 불어오는 자리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오늘 저녁 기도하고 또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이 기도회가 끝나도 자리에 앉아서 기도하시고 숙소에 돌아가셔서도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거룩함의 능력을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가 부흥을 사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삶에서 거룩함을 회복해야 합니다. 또 우리 교회가 거룩함을 회복해야 해요. 오늘 우리 교회가 거룩함의 능력을 잃어버리면 머리카락 잘린 삼손에 불과하고 눈알 빠진 삼손에 불과해요... 그런 것처럼 한국교회가 지금 얼마나 조롱을 당하고 있습니까. 얼마나 비난을 받고 있습니까. 이대로 가다가는 언젠가 머리카락 잘린 삼손처럼 눈알이 빠져 나간 채 맷돌이나 돌리는 한국교회가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거룩함의 능력을 회복해야 해요. 그러면 거룩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분리성과 완전성으로 설명해야 합니다. 분리성은 세상, 죄와의 분리를 말하는 것이고 완전성은 우리의 도덕적, 영적인 정결의 삶을 하나님께 드림으로써 하나님의 거룩한 속성에 참여하고 그 분의 거룩한 품성을 닮아가는 온전한 삶을 말합니다... 여러분, 정말 하나님 앞에 여러분의 생각이 정결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의 주장이 정결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의 주장이 정말 양심적이고 경우에 합당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의 삶이 의롭고 정결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의 생각과 삶을 하나님께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것들을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해 놓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임한 거룩한 영성과 삶이 서로 맞닿으시기 바랍니다. 서로 합쳐지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작은 바람이 서로 합쳐져서 큰 퍼펙트 스톰을 일으킨 것처럼 오늘 여러분의 순결과 거룩의 영성이 서로 합쳐지고 맞닿아서 거룩한 폭풍을 일으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역설적인 부흥의 폭풍이 일어나는 자리가 되시기 바랍니다. 넷째, 그 거룩함의 능력을 사회적 영향력으로 확대해야 합니다. 우리가 거룩함의 능력을 회복했다면 그 거룩함의 능력을 사회적 영향력으로 확대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거룩한 행실들로 말미암아 하늘의 퍼펙트 스톰이, 이제는 시대와 사회 속으로 불어가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교회들을 해체시키려고 하는 재난의 바람들을 무색하게 할 수 있습니다. 개혁신학 정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통치와 성령의 역사를 이 세상 영역 속으로 확대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개혁주의 신앙으로 다시 우리 교단을 세우고 한국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부터 하나 되고 화해를 해야 합니다. 저 적폐중의 적폐였던 김정은 위원장과도 화해하고 화목하는 시대에 우리가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모두 이러한 목사님과 장로님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여, 우리의 소원이 무너져가는 교회를 세우는 것이 되게 하옵소서. 다시 한 번 교회의 부흥을 가져오는 것이 우리의 소원이 되게 하옵소서. 주여 이곳에 하늘의 홀리 퍼펙트 스톰 ’거룩한 완전한 폭풍‘이 불어오게 하옵소서.’ 부총회장 후보였던 오정호 목사를 2022년 선관워원장 시절 살렸던 소강석 목사(증경 총회장)가 병원과 교회를 오가며 2025년 9월 27일 합동헤럴드(구인본 목사)에 절절한 교회 사랑에 대한 전절한 그리움을 전했다. "저는 이제 조금씩 수면이 회복되어가고 있습니다. 잠드는 사이에 꿈을 꾸어도 퇴원하여 교회에 가서 설교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한 번은 꿈을 꾸었는데 미국에 집회를 가 있는 것입니다. 다시 일어나 보니 현실은 병동의 침대에 누워 있는 것입니다. 제 정신력이 살아 있는 한 저는 오로지 교회이고 설교 강단에 서는 것입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시간이 금요일인데, 두 날 밤만 지나면 교회에 가서 설교를 합니다. 이걸 생각하면 가슴이 또 설레고 밥맛이 돌아오는 것 같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제가 좀 더 잠자는 데 집중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불면의 밤과 숙면의 밤사이에 있는 제가 온전한 숙면의 밤을 맞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마치 상처 입은 독수리가 바위틈에 오래오래 쉬어 있다가 다시 비상하고 솟구치고 웅비하듯이 다시 한번 제 사역의 클라이맥스를 이룰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성경은 말씀한다.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행 1:14 2026-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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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한기승 목사의 가는 길
영국의 정치학자·역사가이고 "역사란 무엇인가"의 저자 에드워드 핼릿 테드 카(Edward Hallett Ted Carr,1892년 6월 28일~1982년 11월 3일)는 '근대 역사학의 아버지' 레오폴트 폰 랑케(Leopold von Ranke, 1795년 12월 21일 ~ 1886년 5월 23일)의 "모든 시대는 하나님(GOD)에게 이어진다"라는 개념까지 포용해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명언을 남겼다. 이 말은 과거와 현재가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뜻이다. 그의 말처럼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과거에서 교훈을 얻어 바람직한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다. 가는 길 - 김소월(金素月)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더 한 번···· 져 산(山)에도 까마귀, 들에 까마귀 서산(西山)에는 해 진다고 지저귑니다. 앞 강물 뒷 강물 흐르는 물은 어서 따라 오라고 따라 가자고 흘러도 연달아 흐릅디다려. 2025년 4월 20일 문정송 장로의 기도가 부활의 기쁨과 축복을 간구했다. “나의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말씀으로 하늘과 땅과 만물을 창조하시고 역사를 주관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찬양합니다. (회중 아멘) 우리가 주님을 믿는다고 입술로 고백하지만, 그리스도의 증인 된 삶을 살지 못했음을 고백합니다. 허물과 죄 많은 저희를 불쌍히 여기시고 긍휼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회중 아멘) 저희를 보혈의 공로 의지하여 예배의 자리에 부르시고 영과 진리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릴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회중 아멘) 이곳 광신대학교에서 하나님을 배울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회중 아멘)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새 성전을 건축할 수 있도록 계획하시고 진행해 나갈 수 있도록 하나님 은혜에 은혜를 더하여 주시옵소서. (회중 아멘) 우리들의 입술로 죄짓지 않도록 입술을 주장하여 주시옵소서. (회중 아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함으로 하나님 은혜 가운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게 하옵소서. (회중 아멘) 광주중앙교회는 선교하는 교회, 교육하는 교회, 봉사하는 교회로 섬기며 한기승 담임목사님을 세우시고 빌라델피아 교회의 본을 받아 우리의 가지 믿음을 굳게 잡고 주님의 사랑을 전하며 우리의 예비된 면류관을 빼앗기지 않도록 주님이시여 은혜 내려 주시옵소서. (회중 아멘) 개혁 정통 보수 신앙으로 부활 승리 신앙으로 광주중앙교회를 아름답게 신실하게 하나님만 섬기는 하나님의 교회 되게 하옵소서. (회중 아멘) 하나님의 은혜 아니면 단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저희들임을 고백합니다. (회중 아멘) 우리들의 삶을 간섭하시고 바른길 믿음의 길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회중 아멘) ‘부활 신앙으로 승리합시다’라는 하나님의 능력의 말씀을 선포하실 때 우리의 심령이 소생케 하시고 은혜의 시간이 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목사님께 영력, 지력, 체력을 더하셔서 영육이 강건함으로 목양, 목회 사역을 감당하는 데 부족함이 없게 하옵소서. (회중 아멘)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죄악이 생각나게 하시고 회개의 영을 허락하사 자복하고 회개하는 역사가 있게 하옵소서. (회중 아멘) 영육 간의 모든 문제가 해결 받으며 치유되고 회복되는 성령의 역사가 이 시간 이곳에서 일어나는 현장이 되게 하옵소서. (회중 아멘) 주 예수 살아나셨다. 주 예수 부활하셨다. (회중 아멘) 사망 권세 이기시고 승리자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찬양합니다. (회중 아멘) 이 중대한 부활의 진리를 믿게 하시고 죽음을 정복한 부활 신앙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회중 아멘)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나셨으니 우리 또한 부활 승리 신앙으로 다시 살아남을 믿으며 지금도 살아 계셔서 믿는 자들과 함께 계시는 주님의 성령 임재를 체험하는 삶의 증인으로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회중 아멘) 솔로몬 왕에게 주셨던 지혜와 지식과 명철함을 우리 자녀들에게 넘치도록 더하여 주시고 건강을 지켜 주셔서 개혁 정통 보수 신앙이 다음 세대로 전수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회중 아멘) 감사함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가운데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려드리는 믿음의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할렐루야 성가대가 겸손한 마음으로 감사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찬양을 올려 드립니다. 찬양대를 통하여 마귀 세력이 떠나고 어둠의 권세가 물러나는 승리의 찬양 감사와 기쁨이 충만한 놀라운 은혜의 시간이 되게 하옵소서. 이 모든 간구,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부활이요 생명이요 참 소망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회중 큰 아멘) 아멘.” 할렐루야 성가대가 문정송 장로의 기도대로 "예수 다시 사셨네"를 찬양했다. 사회자 김기택 목사가 요한복음 5:24-29 봉독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또 인자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한기승 목사가 "부활 신앙으로 승리합시다" 제목으로 말씀을 선포했다. "사람들의 생각 속에 오래 살고 싶은 욕망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삶에 100세를 산들 200세를 산들 만족하겠습니까. 오래 살고 싶은 마음 다 있지 않겠습니까. 옛날 조선 시대에 수명이 30대 40대 길어야 50대였습니다. 가끔 60대였습니다. 그래서 60대 환갑잔치를 가진 것 아니었습니까. 지금은 우리 수명이 많이 늘어났습니다. 그런데 수명이 늘어나고 의학이 발달하고 신약 개발이 되고 최첨단 의료기가 발달 돼 많은 질병을 치료합니다. 그러나 옛날에 없던 병과 암이 더 많아졌습니다. 이런 것들로 인해 우리 삶에 죽음이 엄습해올 때 조금만 더 살 수 있다면 죽음을 연장할 수만 있다면 내가 가진 모든 걸 동원해서라도 나의 모든 수고를 다 해서라도 생명을 연장하고 싶은 게 모든 사람의 마음 아니겠습니까 그것은 우리에게 더 살고 싶은 욕망이 있기에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의 성공과 실패가 죽음 순간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가 부자냐 가난하냐 살아 있을 때 조금 편리하거나 불편하거나 할 수 있습니다. 죽음의 순간에는 그것 또한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가 명예롭게 살았느냐 불명예스럽게 살았느냐의 여부도 죽음 앞에서는 별문제가 안 됩니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우리의 궁극적인 문제는 우리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돈과 여러분의 생명을 바꿀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세상의 명예와 권력과 내 생명을 바꿀 수 있겠습니까. 한 사람도 없습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 다 죽기를 싫어하고 오래 살고 싶어 합니다.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이 다 마찬가지입니다. 지금까지 살았던 모든 사람이 그 길을 걸어왔습니다. 우리 사회가 민주화되면서 공평한 사회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정말로 우리 사회가 공평해졌습니까. 돈 있는 사람 권력 있는 사람과 돈이 없고 권력이 없는 사람과 법정에서 사회에서 삶의 현장에서 공평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옛날과 비교해 공평해졌지만 우리 사회가 우리 삶이 다 공평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공평한 것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적용된 것이 있는데 그것은 죽음입니다. 죽음 앞에는 돈이 있는 사람도 없는 사람도 권력이 있는 사람도 없는 사람도 배운 사람도 배우지 않은 사람도 도시에 사는 사람도 시골에 사는 사람도 젊은이도 어린이도 노인도 그 누구도 죽음 앞에서는 공평한 것입니다. 이 땅의 부귀영화를 누렸던 진시황제도 전쟁의 영웅 나폴레옹도 우리의 삶을 이렇게 편안하게 만든 발명왕 에디슨도 그리고 상대성원리를 발견한 아인슈타인도 다 죽음을 막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한마디로 지금까지 무수한 사람이 죽었고 지금 살고 있는 사람이 죽고 있고 앞으로도 다 죽습니다. 모든 사람이 오래 살고 싶은데 왜 죽는 것입니까. 왜 죽어야 합니까. 성경은 로마서 6장 23절에 ‘죄의 삯은 사망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가 우리 삶에 들어왔기 때문에 사망이 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를 다 믿습니다. 창조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필연적 창조와 비 필연적 창조가 있습니다. 필연적 창조는 하나님이 반드시 세상을 창조하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경우가 생깁니까. 하나님이 피조물에 의해 존재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개혁 신앙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하나님의 창조론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반드시 창조하셔야 한다는 필연적 창조를 말하면 하나님이 피조물을 위해서 존재하시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개혁신학에서는 하나님의 창조를 말할 때 비 필연적 창조를 말합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실 수도 있고 안 하실 수도 있는데 하나님이 창조하시기로 작정하셨다는 것입니다. 신학적 용어로 이것을 창조 경륜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왜 창조하셨느냐, 하나님이 피조 세계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 그 나라의 백성을 하나님이 그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그 백성에게 은혜와 복을 주시고 그 백성이 하나님의 다스림에 순종하면서 하나님을 섬기게 하시고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기 위해서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창조가 인간 세계에서 창조의 경륜이 무너지고 인간의 삶에 죄가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아담과 맺으셨던 은혜 언약을 아담이 파괴한 것입니다. 성경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아담이 따먹음으로 아담이 범죄했다.’ 그렇게 해서 죄가 우리 인류사회에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문자적으로 ‘선악과를 따 먹었다’ 기록하고 있지만 그 의미는 이렇습니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은혜를 주셔서 모든 창조 세계를 다스리고 정복할 수 있는 권한을 주셨지만 한 가지 금하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선과 악을 구분하는 능력입니다. 그것을 하나님의 고유 권한에 두셨는데 아담이 만족하지 않고 하나님의 고유 권한을 찬탈한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에게 반역하는 행위였습니다. 아담의 반역으로 인해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지 못하고 하나님을 대적함으로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과 권세를 찬탈함으로 죄가 인류사회에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아담은 히브리어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아담은 한 개인이 아니고 모든 사람을 대표해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는데 그 언약을 파괴해 그 죄가 우리에게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죄 때문에 우리가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는 죽음,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죽음, 모든 사람이 비통해하고 괴로워하는 죽음, 이 죽음이 죄 때문에 우리에게 도입된 것입니다. 죄는 하나님의 창조 경륜과 목적을 훼손하고 하나님의 통치를 방해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챈 것입니다. 죄가 있으면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집니다. 죄가 있으면 평안이 없어지고 생명을 빼앗기게 된 것입니다. 죄가 사람을 지배해서 하나님의 창조 경륜이 파괴되고 창조의 목적을 상실하고 창조의 질서가 무너지고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시면서 하나님이 그냥 계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죄를 어떻게 억제하고 제거할 것인가 하는 방법을 하나님이 내셨습니다. 그 첫 번째 방법이 인간의 수명을 단축시킨 것입니다. 여러분 창세기에 보면 노아 홍수 이전과 이후에 현격한 변화가 있는데 인간 수명의 단축입니다. 그 이전에 인간이 900살 930살 가장 오래 산 므두셀라는 969살을 살았습니다. 이건 설화나 전설이 아닙니다. 실제로 그렇게 오래 살았습니다. 여러분, 오래 사는 것 우리가 다 원하는 데 참 좋겠죠. 그러나 오래 살면 또 다른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오래 산 만큼 더 죄를 짓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노아 홍수 때 사람들이 오래 살므로 죄가 넘쳤습니다. 죄가 너무 많아 하나님이 사람 지으심을 한탄하시고 노아 홍수 이후에 수명을 120세로 단축을 시키셨습니다. 인간의 수명이 단축되므로 죄가 조금씩 억제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죄를 억제할 수가 없어서 하나님이 두 번째 방법을 내셨습니다. 바로 그것은 국가를 세우신 것입니다. 국가의 공권력이 죄를 지으면 벌금을 물리거나 감옥에 보내고 불이익을 당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죄가 많아지겠습니까 적어지겠습니까. 죄가 줄어들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을 죽여도 감옥에 안 가고 불이익을 안 당한다면 아마 사람 죽일 사람 많을 겁니다. 국가는 이런저런 법을 어겨도 내가 세금 안 내고 내가 불이익을 안 당한다면 얼마든지 자기 욕구대로 욕망대로 욕심대로 살아서 죄를 짓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벌금내지 않는다면 교통법규 없다면 과속하고 차선 지키지 않고 얼마든지 차를 운전하고 다닐 겁니다. 그런데 교통법규 어긴 게 사진이 찍히고 벌금이 부과되니까 속력을 줄여서 교통사고 줄어드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이 국가를 세우시는 목적이 있습니다. 아무리 악한 독재 정부라도 국가가 세워지면 국가의 공권력을 위해서 죄가 억제되는 것입니다. 국가가 세워지고 국가의 공권력으로 죄를 억제했지만 완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죄를 인류사회에서 완전히 억제하고 제거하기 위해 방법을 내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시게 한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 죄의 문제를 법적으로 완전히 제거할 뿐 아니라 해결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신데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는 삼위일체 교리, 성육신 교리,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이신칭의 교리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회중 아멘)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 위에서 대신 죽고 부활하심으로 우리 죄의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했다는 것은 곧 사망의 문제를 해결해주셨다는 것입니다. (회중 아멘) 사랑하는 여러분. 사면권이 누구에게 있습니까. 통치자에게 있습니다. 한 국가의 대통령은 그 나라 백성의 사면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나라의 국경일이나 기념일에 죄를 지은 사람에게 사면을 하기도 하고 권리를 복권 시키기도 합니다. 사면은 죄가 없어졌다는 것이고 복권은 상실된 권리를 회복시켜 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통치권자인 대통령만이 가능합니다. 한 나라의 통치자는 그 나라 백성의 사면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듯 세상의 사면권은 누구에게 있느냐. 그것은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회중 아멘) 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우리 죄를 대신 담당하게 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십자가 위에서 피 흘리심으로 우리가 구원을 얻게 된 것입니다. (회중 아멘) 저와 여러분의 죄의 값을 예수님이 대신 담당하신 것입니다. (회중 아멘)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죄사함을 받고 의롭게 된 것입니다. (회중 아멘)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 그렇게 된 것이 아니고 우리의 죗값을 하나님이 예수님에게 대신 지우셔서 예수님이 저와 여러분을 위해 십자가 위에서 대신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가 사면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 사함뿐만 아니라 사망의 자리에서 생명의 자리로 옮기게 하려고 예수님이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줄로 믿습니다. (회중 아멘)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부활을 두 가지로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본문 24절, 25절,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아멘. 이 말씀은 현재 적인 부활입니다. 어떤 분이 기도하실 때 그럽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저희들’이라고 하는 것은 육신의 죽음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죽음은 육신의 의미도 있지만 원리적으로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입니다. 아닌가요. (회중 아멘) 다른 말로 하나님의 생명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미 죽었던 자, 하나님과 분리된 사람들, 하나님의 생명이 없는 죽은 자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믿고 회개하면 죽음의 자리에서 생명의 자리로 옮겨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미래가 아닌) 현재,적인 부활입니다. 아멘인가요. (회중 아멘) 이 부활만 있는 것이 아니고 본문 28절, 29절 함께 읽겠습니다.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아멘. 이 부활은 마지막 때의 부활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죄와 사망에서 죽었던 자들인데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믿음으로 우리가 부활했습니다. 죄에서 생명으로, 이게 현재 적인 부활입니다. 그러나 장차 예수님이 심판의 주님으로 오실 때에 죽었던 모든 자들이 다 부활합니다. 이게 마지막 때의 부활입니다.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예수님만이 죄의 정복자이시고 예수님만이 사망의 정복자이시라는 것입니다. (회중 아멘)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연결된 자는 죄 사함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서 우리 모두가 다 사망의 자리에서 생명의 자리로 옮겨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게 된 것입니다. 이 사실을 우리에게 확인시켜주고 이 사실을 믿게 하고 증거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성령을 보증으로 우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회중 아멘) 그래서 성령이 우리 가운데 임재하심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본인의 부활을 믿게 하시고 (회중 아멘) 이것을 증거하게 하시고 우리 모두가 죄 사함 받았다고 영원한 부활을 소유하게 됐다고 누가 증거하게 하는가. 우리 안에 보증으로 와 계신 성령이 증거하고 믿게 하신 줄로 믿습니다. (회중 아멘) 그래서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이고 생명의 종교입니다. 요한복음 11장 25절, 26절에 보면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말씀합니다. 성경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증거합니다. 예수님만이 부활하신 것을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믿는 사람들도 장차 부활하게 될 것을 증거해주고 있습니다. (회중 아멘) 그러므로 예수님이 이 땅에 태어나신 성탄의 의미도 귀하지만 우리 죄를 용서하고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이 부활절의 의미가 우리의 큰 은혜이고 축복인 줄 믿습니다. (회중 아멘) 예수님의 부활은 십자가 사건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십자가 없이 부활이 있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왜 죽으셔야 했습니까. 저와 여러분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주기 위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줄로 믿습니다. (회중 아멘) 사랑하는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갈 때에 믿음으로 승리해야 될 줄 믿습니다. (회중 아멘) 이 땅에 많은 종교가 있습니다. 그 종교의 교주들은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 교주가 인류의 죄를 해결해주는 사람도 없습니다. 오직 우리의 죄를 해결해주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뿐이십니다. (회중 아멘) 우리에게 사망의 자리에서 영원의 자리 생명의 부활로 인도하신 분은 예수님 밖에 없는 줄로 믿습니다. (회중 아멘) 그러면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온 것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지금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부활 신앙을 믿음으로 승리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회중 아멘)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회에 편지하기를 고린도전서 15장 58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회중 아멘) 우리의 모든 것은 마지막 순간에 다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나 ‘주의 일에 힘쓰는’ 것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회중 아멘) 우리가 믿음으로 이기고 믿음으로 신앙생활하고 교회생활하고 수고하고 봉사하는 이 모든 것은 헛되지 않습니다. (회중 아멘) 그러므로 부활 신앙을 갖는 사람은 승리할 수 있습니다. (회중 아멘) 세상에서 승리할 수 있고 (회중 아멘) 우리 환경 속에서 승리할 수 있고 삶의 현장에서 승리할 수 있고 더 나아가서 우리는 죽음의 자리에서도 승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회중 아멘) 기독교 2천 년 역사 가운데 많은 환란이 있었습니다. 핍박이 있었고 죽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앞에 부활의 신앙이 있을 때 이 부활 신앙이 죽음을 이기게 하고 이 부활 신앙이 흔들리지 않고 믿음으로 살게 하신 줄 믿습니다. (회중 아멘) 사랑하는 여러분 부활 신앙이 있습니까. (회중 아멘) 부활의 생명이 있습니까. (회중 아멘) 부활의 확신을 믿습니까. (회중 아멘) 그때 우리는 세상의 전염병이 우리를 흔들 수 없습니다. (회중 아멘) 환경과 사건과 사람들이 우리 신앙생활을 흔들리게 할 수 없습니다. (회중 아멘) 부활 신앙이 확실치 못하니까 부활의 생명이 없으니까 환란 때문에 환경 때문에 이런저런 일들 때문에 우리의 예배가 흔들리고 우리의 믿음의 자리가 흔들리는 것이 정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사망의 자리에서 생명의 자리로 옮겨지는 부활 신앙이 있을 때 우리는 승리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부활 신앙으로 승리하는 나의 조국 대한민국과 우리의 총회가 되기를 불철주야 간절히 기도합니다.“ 부활 신앙의 총회 파수꾼 법정치학자 광주중앙교회 한기승 박사가 2025년 5월 23일 그의 가는 길로 떠났다. 향년 66세. 한기승 박사는 1959년 전남 해남군 화산면에서 태어나 개신대와 총신대를 졸업한 후 광주 신일교회에 부임해, 광주중앙교회와 합병 후까지 24년 동안 담임목사로 섬기고 올해 4월 23일 원로목사로 추대됐다. 또한 총회WEA연구위원장, 광주숭일학원 이사장, 서광주노회장 등을 역임했다. 나무는 혹독한 겨울을 이겨낼 때마다 그 흔적을 안에 간직한다. 일 년에 하나씩 나이테가 생기는 이유다. 그래서 나무들에게 겨울은 그저 버티기만 하는 멈춰 있는 시간이 아니다. 1억4천만 년 전 생존 전략으로 개발한, 성장의 깊이를 더하는 시간이다. 진짜 의미 있는 일은 시작되기 전까지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보이듯 말이다. 늘 미소짓던 한기승 목사와 그의 가는 길이 그립다. 성경은 말씀한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고전 15:51-52 2026-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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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전승덕 목사 교회 개척 전도성장 세미나
2026년 4월 5일 이재명 대통령 부부는 여의도 순복음교회 부활절 연합예배에 참석했다. 2026년 4월 7일 서대구노회는 제80회 정기회를 대흥교회에서 열고 전승덕 목사(설화교회)를 제111회 총회 부총회장 후보로 만장일치 추천했다. 이날 노회원들은 기립박수로 지지를 보내며 당선 가도에 힘을 실어 줬다. 전승덕 목사는 말했다. “우리 총회는 세계적인 브랜드라고 생각합니다. 그 가치가 빛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총회의 헌법적 가치와 칼빈주의 개혁신학이 방해받지 않도록 수호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도록 노력하고, 총회 산하 노회와 교회들이 건실하게 성장하도록 힘쓰겠습니다.” 촛불이 타오르고, 손에는 성경을 들고 이따금 한 페이지씩 넘기면 믿고 싶지 않은 생각을 피할 수 있다. 우리가 물려받아야 할 유산은 물질적 부유함이 아니라 빛과 소금의 신앙적인 성숙과 책임감이기 때문이다. 경건의 연습으로서의 성경 읽기는 신앙생활에 좋은가, 그렇지 않은가. 복잡하게 따지고 들면 쉽게 답할 수 있는 물음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무조건 좋다고 믿고 싶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 생각’, 즉 나쁜 생각은 우선 피하고 봐야 하기 때문이다. 나쁜 생각은 투명한 물에 퍼지는 검은 잉크처럼 우리의 정신을 삽시간에 잠식하니까, 일단 멀찍이 떨어져 있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성경 읽기가 답일 수도 있다. 거리 두기는 생각보다 힘이 세다. 거리를 두고 보면 강력하게 느껴졌던 무언가도 금세 힘을 잃고 만다. 좀 극단적인 말이지만, 하나님 창조의 관점에서 지구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은 얼마나 사소하지만 신비로운 것인가. 우주로 날아갈 수는 없으니 대신해 전승덕 목사처럼 성경을 펼쳐 들고 거기 빠져들자. 그러면 전쟁이니 재난이니 하는 생각은 어느새 저만치 물러가 있을 것이다. 대구 달성군 화원읍 구라리 소재 도농지역에서 복음의 지평을 열며 21세기 지역 교계를 선도해 온 설화교회(전승덕 목사)가 2010년 4월 10일 교회 설립 100주년을 맞았다. 그 날 오후 3시 예장합동 서대구노회 관계자, 대구지역 교계 지도자, 국내외 인사 등 500여 명을 초청해 ‘설화교회 선교 100주년 기념 감사예배’를 드렸다. 해병대 사령관을 지낸 이상로 장로는 전승덕 목사에 대해 이렇게 술회했다. “전승덕 목사님과는 14년 전 전방부대 연대장으로 있을 때 인연이 되어 만났습니다. 의리가 돌쇠 같은 목사님입니다. 4대째 명문 믿음의 가정 후손으로 11년간의 변함없는 목회를 통해 선한 목자로서 여호수아의 소신과 기드온의 담대함을 갖춘 한국 교회의 기둥 같은 거목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제109회 총회 전도부 이만교회운동본부(본부장 전승덕 목사)는 2025년 5월 23일 동원교회(원로 배재군 목사, 담임 배진호 목사)에서 제109회기 제1차 ‘교회개척전도성장세미나’를 열었다. 조형국 장로(2026년 전국남전도회 회장)가 사도행전 2:1-4 성경을 봉독했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회중 아멘) 전승덕 목사 오른손을 치켜들고 설교단에 섰다. "할렐루야. (회중 아멘) 반갑습니다. 세상이 험악하고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령님의 역사는 변함이 없습니다. 저도 서울 있다 대구 내려가서 설화교회에서 1999년 위임을 받은 이래 개척하는 마음으로 목회에 힘썼습니다. 양봉이니 영어 교육이니 여러 방법을 동원해 교회 성장에 힘썼습니다. 심지어 골프 칠 수 있는 인도어까지 설치했습니다. 그러나 돈 다 날리고 별 소용이 없었습니다. 누가복음 5장 1절 말씀을 보면 '무리가 몰려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새'(the people pressed upon him to hear the word of God)라고 했습니다. 그 말씀의 헬라어 원문은 로고스(Logos)입니다. 그런데 이어서 말씀 3절에 보면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4절에 보면 '말씀을 마치시고' 합니다. 이 4절에서의 말씀 원어는 레마(rhema)입니다. 로고스의 말씀과 레마의 말씀에 차이가 있습니다. 로고스의 말씀은 많은 무리가 듣는 말씀이고 레마의 말씀은 우리를 감동시키는 성령의 역사가 있는 말씀입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구원하소서' 했던 무리들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빌라도 법정에 끌려가셨을 때 그들이 한목소리로 하는 말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쳤습니다. 그들은 로고스의 말씀을 들은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 같은 경우는 레마의 말씀을 받게 됩니다. 주님께서 말씀을 마치시고 레마의 말씀을 들은 이후에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르게 되고 그 이후에 예수님을 부인하는 사건이 있었지만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눅 26:75) 했습니다. 이 베드로를 통해 일어난 이 위대한 역사가 오늘 우리 가운데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오늘 이 시간 이 자리에 개척의 뜻을 가지고 모이신 목사님들 중요한 것은요 우리는 날마다 레마의 말씀을 듣고 로고스의 말씀을 읽어야 합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에 하나님의 말씀이 내 심령에 들어와야 됩니다. 그래야 우리가 이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게 되고 말씀을 증거하고 전파할 때 변화의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교회라고 하는 것은 우리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거룩한 사역을 담당하시고 우리에게 두 가지 남겨놓으신 게 있습니다. 그 하나가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말씀을 들을새 복을 받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말씀을 남겨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청종하고 따를 때 하나님의 채워주시고 세워주시는 복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또 하나 남겨놓으신 것은 우리 주님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물과 피를 다 흘려 대속하셨는데 그것은 이 땅에 교회를 세우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생활할 때 주님께서 부활 승천하셔서 이 땅에 안 계시지만 말씀과 교회를 남겨놓으셨습니다. 히브리서 10장 19절에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라 말씀합니다.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주님께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길입니다. 이제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는 길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열렸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교회가 부흥이 안 된다고 많은 교회가 말합니다. 꽃이 있는 곳에는 벌이 날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이 교회도 하나님 말씀의 생명이 있는 곳에는 주님의 백성이 찾아오게 되어있습니다. 이게 바로 말씀이 역사하는 믿음의 생활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오셨는데 참 잘 오셨습니다. 여기서 은혜받아 목회 현장에 가시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믿음의 사람들을 붙여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부터 붙여주실지는 알 수 없지만 내가 말씀과 믿음으로 충만해 기도하고 나갈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 마음에 합당한 자가 아니고 하나님 마음에 합당한 자를 붙여주시고 하나님 교회를 세울 수 있도록 은혜 베풀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21장 15-17절에서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요 21:15-17 '내 어린 양을 먹이고 내 양을 치라'는 지상교회 사명을 가르쳐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원하는 자에게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민수기 6장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민 6:24-27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시고 평강 주시기를 원하시고 복을 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좋으신 하나님을 저와 여러분이 섬기고 있습니다. 바라옵기는 다른 게 없습니다. 말씀에 충만하시기를 바라고 그다음에 성령 충만을 받아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사를 여러분 삶 속에 나타내 보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말씀 충만과 성령 충만은 기도의 뒷받침이 따라야 합니다. 저는 목회하면서 교회가 커지니까 그때 몸이 상해가지고 폴립(정상 조직이 부분적으로 과도하게 증식하여 돌기 모양으로 튀어나온 혹) 수술을 두 번 했습니다. 그리고 안질과 피부 알레르기가 있어 고생했어요. 그런데 2019년에 하나님께서 안질을 고쳐주셨습니다. 왜요. 기도하니까요. 알레르기 피부(면역 체계가 특정 물질에 과민 반응하여 발생하는 피부 질환)도 치료해주셨습니다. 너무 감사하죠. 어디를 가든지 알레르기약을 가지고 다녔습니다. 너무 가려우니까요. 그런데 어느 순간에 하나님께서 치료해주셨습니다. 2023년 중앙고속도로에서 3중 추돌 교통사고가 났습니다. 병원에 가서 허리 엑스레이를 찍었는데 의사가 놀래는 겁니다. 이런 상태면 그동안 통증이 심했을텐데 어떻게 견뎠느냐는 겁니다. 통증이 없었습니다. 하나님 은혜죠. 주의 일을 하게 하기 위해서 이렇게 보살펴주신 겁니다. 그래서 저는 야곱이 한밤중에 씨름하듯이 날마다 말씀과 씨름하고 있습니다. 잠이 오지 않으면 시도 때도 가리지 않고 말씀과 씨름합니다. 어제는 새벽 두 시, 오늘은 12시 자정에 일어나 말씀과 계속 씨름했습니다. 말씀이 들어오니까 성령께서 역사하신 겁니다. 기도하면 낫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레마는 하나님의 말씀이 개인에게 특별한 의미와 감동으로 다가와 삶에 적용될 때 경험하는 살아 있는 말씀의 경험을 의미합니다. 여러분 성경 읽고 기도하고 일어나 말씀을 전하십시요. 몸과 마음이 바르게 되고 말씀을 전하는 능력을 체험하게 됩니다. 레마의 말씀을 전하면 치유와 변화와 부흥이 일어나게 됩니다." 제108회 회록서기 전승덕 목사 시무 설화교회는 116년 됐다. 교인이 550명으로 성장할 때 어려움을 겪었으나 잘 이겨냈다. 설화교회는 1910년 4월 전도부인 강씨와 안의와 선교사와 함께 설립했다. 1917년 부해리 선교사가 부임으로 당회를 조직한 후 영수, 조사로 믿음의 터전을 잡았다. 1944년 일제탄압으로 잠시 폐쇄되었다가 1945년 8.15해방과 더불어 다시 교회당을 세우고 수차례의 예배당 증축과 준공 등 숱한 고난과 역경을 딛고 1998년 12월 현 부지에 예배당을 준공해 새 성전에 입당했다. 성경은 말씀한다.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딤후 4:1-5 2026-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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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장봉생 목사 성경 큐티 목회
2011년 3월 11일 동일본대지진이 발생한 지 15년이 지나 후쿠시마 재건을 위해 힘쓰는 주민들에게 “이곳에 왜 왔느냐”는 질문은 결국 “왜 지진이 자주 일어나는 나라에 사느냐”는 물음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가 우리에게 “왜 핵 위협을 으르대는 북한 같은 나라를 머리 위에 두고 사느냐”고 묻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그 교훈은 미래는 알 수 없지만 지금 이 순간 여기서 묵묵히 하나님의 말씀 성경 한 장을 묵상하는 것, 그것이 믿는 우리의 삶이라는 것을... 코로나 바이러스가 중국 우한시에서 최초 보고돼 감염 공포에 사로잡힌 2019년 11월 17일 장봉생 목사는 이런 말씀을 전했다. "서양음악에서 새로움을 추구한 역사는 오래지 않은 18세기 후반부터의 일입니다. 바흐만 해도 그의 작품이 새로워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읍니다. 그에게는 좋은 음악 기술을 습득해서 필요한 음악을 잘 쓰는 것이 중요했읍니다. 마침 그의 시대에는 유럽 전반에 걸쳐 통용되는 보편적인 음악 언어가 있었고 그는 그 언어들을 모두 마스터한 마이스터였습니다. 바흐는 봉직했던 궁정과 교회에 필요한 음악을 성실히 작곡해 많은 음악을 남기면서도 스스로를 음악의 봉행자라고 여겼지 창조자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19세기 초에 활동한 베토벤은 궁정이나 교회를 위하여 일하지 않았습니다. 누구의 요청을 받지 않고 교향곡을 작곡하였습니다. 새로운 착상이 생기기 전에는 교향곡을 착수하지 않았던 그는 창조자로서의 자신을 의식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음악은 의식이나 행사를 위해서 쓰인 후 남은 것이 아니었고 오로지 감상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미적 대상’이었습니다. 그 안에는 시간이 있었고 새로운 것과 낡은 것이 교차했고 정신과 역사가 공존했고 오히려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무엇이 꿈틀댔습니다. 그는 그러한 대상물의 창조자였고 음악은 그 손에 빚어진 작은 우주였습니다. 베토벤 이후의 작곡가들에게 새로움이란 그 자체로서 하나의 가치였습니다. 그들이 만든 작은 우주들은 제각기 새로운 질서로 움직이는 소우주였읍니다. 그렇지 못한 작품은 중심 없이 우주공간을 떠다니는 의미 없는 물질처럼 취급되었읍니다. 새로움의 추구는 작곡가마다 개성 있는 언어를 사용하도록 만들었읍니다. 보편적인 음악 언어는 차츰 개인적인 언어로 대체되었고 19세기말, 20세기 초에 이르면서 보편적인 언어 자체를 거부하고 완전히 혁신적인 새로운 언어로 자신의 음악을 만드는 작곡가들이 나타났읍니다. 새로움을 위한 새로움을 추구하는 작업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흐름이 지속된 20세기 후반에는 급기야 새로움의 추구 자체가 진부한 패션이라는 반성까지 나오게 됩니다. 새해 새 날이라고 하지만 실은 수억 년 반복되고 있는 현상의 일순간입니다. 새 싹의 움틈과 새 아기의 탄생도 지구상에 생명이 나타난 이래 수없이 되풀이 되는 일입니다. 나는 어제 또는 지난해와 다름없이 나의 몸과 나의 기억을 지닌 채 해와 달과 날을 관통하며 살고 있습니다. ‘해 아래는 새 것이 없나니’ 라고 솔로몬의 전도서 1장 8절이 말씀하지만 우리는 해돋이를 보러 얼어붙은 어둠을 무릅쓰고 동해로 갑니다. 또 새 아기를 보면 마음이 두근거립니다. 왜 우리는 이렇게 새로움을 찾는가요. 나의 몸과 나의 기억은 늘 그대로인 것 같아도 조금씩 변합니다. 몸은 하루만큼 나이를 먹고 기억은 하루 어치의 정보를 저장합니다. 또 내 몸 안에서 세포들은 매순간 죽고 또 태어납니다. 그렇게 해서 나의 생명이 지속되고 있읍니다. 그렇다면 새로움은 지속됨과 더불어 생명을 있게 하는 두 계기 중 하나라는 말이 됩니다. 새로움을 찾는 것은 살아있는 것들의 본능인가요. 진리를 깨우치고 전달하기 위해 날마다 성경 주석을 필요로 하는 목회자들도 그와 마찬가지 아닐까요. 흥미롭게도 오늘 우리 시대의 음악 사회를 특징하는 것 중의 하나가 옛날 음악에 대한 소비입니다. 18~19세기의 청중들이 대체로 당대에 만들어진 새로운 음악을 들었던 것과는 달리 우리 시대의 청중은 과거의 음악을 신자의 성경처럼 듣습니다. 예레미야서나 마태복음처럼 바흐, 베르디, 말러를 들으러 연주회장을 찾고 미디어를 통해 듣습니다. 지치지도 않고 반복해서 듣습니다. 한 곡 안에는 수많은 음들이 들어 있습니다. 베토벤의 음악 뿐 아니라 바흐의 음악, 또 그 이전의 음악에도 들어있는 그 음들은 작곡된 이래 변함없이 있지만 그 소리 하나를 내는 방법 또한 무한합니다. 사실 음악이 기록된 악보는 음악이 아니라 음악의 설계도면입니다. 이 설계도에 의거하여 소리의 집을 지어 들리는 음악으로 만드는 것이 연주가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음악적 경험과 맥락 속에서 그 설계도를 이해합니다. 지휘자마다 곡의 빠르기와 강약이 달라지고 섬세한 표현법이 달라지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이러한 새로운 해석에 의하여 음악은 새로운 생기를 얻습니다.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것을 보고 들리지 않던 것을 들리게 합니다. 저는 풀러신학대학원에서 공부하던 중 2001년 4월 첫 주일 서울 서대문교회 담임목사로 청빙을 받고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서대문교회에 부임하면서 예배부흥, 거목양성, 세계선교 3대 비전을 제시하고 예배와 교육과 선교의 균형 잡힌 목회철학을 유지하려고 노력했습니다. 1949년에 설립된 서대문교회는 정통신앙과 열린 의식의 균형을 잘 유지하는 건실한 교회였습니다. 저는 서대문교회 제6대 담임목사로 2019년 현재 19년째를 맞이했습니다. (그후 7년 2026년 제110회 교단 총회장이 된) 총회장이 될 장봉생 목사가 세계 대전같이 번지던 코로나 감염 유행 시절 말했다. ‘더디 가도 함께 한다’는 목양정신으로 하나님의 가족성을 강조하는 교회를 세워가고 있습니다. 저의 목회 사역에는 교인들과 함께하는 성경 큐티를 통한 목회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 사역을 통해 교인들의 영적 성장과 교세 성장도 이루었습니다..." 큐티라는 명칭이 생겨난 이래 세계를 변화시킨 영적인 운동들이 여럿 있었지만 그중 하나가 1882년 영국 캠브리지 대학의 후퍼(Hooper)와 쏠턴(Thorton) 등 몇몇 학생들이 시작했던 경건 훈련 운동이었다. 이들은 자신들이 그리스도인 임에도 불구하고 마음과 생활이 ‘세속적인 경향’으로 꽉 차 있는 것을 발견하고 기도하면서 해결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거룩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들이 찾아낸 방법은 ‘하루 생활 중 얼마를 성경 읽기와 기도로 보낸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이것을 ‘조용한 시간’(Quiet Time)이라 불렀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그 명칭이 줄어 편의상 편의상 큐티(QT)라 불리게 되었다. 큐티는 말 그대로 조용한 시간과 장소를 정하여 하나님을 일대일로 만나는 시간이다. 성령의 인도하심 가운데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들은 대로 실천하고, 실천한 것을 서로 나누므로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한 신앙훈련이다. 따라서 그 표어(標語)는 ‘성경을 알고 성경을 따르고 성경을 전하는 것’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시 1:1-3 2026-03-14
G.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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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법 앞에 선 한국교회
2023-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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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유지영 디자이너 _한불수교 140주년 기념 패션쇼 참가
4월 30일 메이퀸 엘리아나호텔 5월 15일 워커힐 비스타홀 PGKFW 2026 S/S FRANKERS GLOBAL FASHION WEEK 7월 8일 프랑스 국립박물관 기메 HAUTE COUTURE FASHION SHOW 유지영 디자이너는 이번 컬렉션을 이렇게 표현했다. 한국의 정서를 담아낸 두 사물, ‘수세미’와 ‘항아리’에서 시작된다. 수세미는 그릇을 닦는 가장 낮은 자리의 도구이고, 항아리는 비우고 담아내는 그릇이다. 이 두 사물이 지닌 ‘비움’과 ‘반복’의 철학을 패션의 언어로 끌어올린다. 원단은 해체되어 수세미의 섬유적 질감으로 재구성되고, 패턴은 항아리의 둥근 곡선으로 완성된다. 닦고, 덜어내고, 다시 쌓아가는 과정은 단순한 제작이 아니라 형태를 완성해가는 시간의 축적이다. 가장 낮은 자리에서 시작된 사물은 이 무대 위에서 가장 높은 형태로 올라서며 화려한 빛을 받는다. 이번 작업은 보잘것없던 사물이 하나의 상징으로 전환되는 순간을 보여주는 하나의 패션적 선언이다. 이 무대는 다가오는 7월 파리에서 펼쳐질 한국적 미학의 확장을 위한 시작이다. 유지영 디자이너 동양의 샤넬, 진정한 오뜨꾸뛰르 유지영 디자이너는 "패션은 옷이 아니라, 한시대의 품격을 만드는 일이다."라고 말한다. 특히 그녀는 수십 명의 시니어 모델들을 스타일링 하며 어떻게 하면 더 우아하고 아름답게 무대 위에서 피어날 수 있는지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그들이 자기 삶을 발견하고 아름답게 만개하기를 바란다. 4월 30일부터 메이퀸 엘리아나에서 시작되는 패션쇼는 5월 15일 워커힐 비스타홀, 7월 8일 프랑스 국립박물관 기메(MUSEE GUIMET, PARIS)에서 마무리된다. 2026-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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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제이액터스, 뷰티·헬스케어 기업 나오벨르 비액티브 홍보모델 공개 오디션 개최
- 외모가 아닌 ‘스토리와 존재감’ 중심의 모델 선발 - 일상 속 통증 케어를 위한 신개념 라이프 스타일 크림- 바르는 순간, 휴식과 회복을 동시에 경험 제이액터스(J-ACTORS)가 새로운 개념의 뷰티 모델을 발굴하기 위한 ‘비액티브 뷰티 모델 공개 오디션’을 개최했다. 이번 오디션은 기존의 정형화된 외모 중심 모델 선발 방식에서 벗어나, 개인의 삶과 태도, 내면의 아름다움을 기반으로 한 ‘비액티브(Non-Active) 뷰티’라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번 오디션에서 합격한 모델은 나노테크 기반 뷰티·헬스케어 기업 나오벨르와 후원 계약을 맺고 모델로 활동을 한다. 이번 후원 계약에 따라 모델들은 나오벨르의 기능성 스포츠·관절 케어 제품인 ‘비액티브(B:Activ) 나노 관절 스포츠크림’의 공식 홍보모델로 활동한다. 비액티브 나노 관절 스포츠크림은 나오벨르가 보유한 초미세 나노 리포좀 전달 플랫폼 기술을 적용한 제품이다. 모델들은 직접 제품 사용 경험을 바탕으로 제품의 효능과 브랜드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계획이다. 이번 제품은 단순 기능성 크림을 넘어 콘텐츠와 결합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확장 전략의 핵심 아이템으로 기획되었다. 특히, ● 시니어 라이프스타일 시장 공략 ● 라이브 커머스 기반 판매 확대 ● 브랜드 모델과 연계한 콘텐츠 마케팅 강화 를 통해 빠른 시장 확장이 기대된다. 나오벨르 관계자는 “통증 관리는 더 이상 특별한 시간이 아니라 일상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며 “비액티브 통증 마사지크림은 ‘관리하지 않아도 관리되는’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제안하는 제품”이라고 밝혔다. 2026-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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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제이엑터스 런웨이 쇼 _글로벌 탑 모델쇼
2026-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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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송태근 목사의 사랑의 초대
모든 인생은 하나의 세계다. 그 대부분을 우리는 모른다.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되어 나오리라 욥 23:10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선물 중 하나인 금(金, Gold)은 처음엔 광석에 불과하지만, 온도 1000도 이상의 용광로에서 40일 동안 세 번 제련된 금이 정금이 된다. 무엇보다 온도가 제일 중요하다. 약간 높거나 낮아도 안 된다. 다른 액체가 함께 녹아 불순물을 걷어낼 수 없게 된다. 그래서 금을 제련하는 사람의 사전에는 ‘적당히’라는 말이 있을 수 없다. 마지막 불순물이 제거되고 금의 표면이 장력을 일으켜 판판하게 퍼진다. 그때 금의 표면 위에 제련사 얼굴이 거울보다 더 또렷하게 비치게 된다고 한다. 마침내 정금이 탄생하는 시간이다. 2018년 세상을 떠난 천재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Stephen William Hawking, 1942년 1월 8일 ~ 2018년 3월 14일)은 유작이 된 호킹의 '빅 퀘스천'에 대한 간결한 대답’에서 시간 여행이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과 같이 과거나 미래로 훌쩍 뛰어넘어 가는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얼마나 멋진 말인가. 타임머신을 타지 않고도 우리는 지금 다 같이 시간 여행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흐르지 않는’ 시간을 여행하며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하지만 호킹은 우리가 확대경 같은 도구 없이 맨눈으로 볼 수 있는 거시(巨視) 세계에서는 과거로 가는 시간 여행은 불가능하지만, 미래로 가는 시간 여행은 가능하다고 한다. 단 빛보다 빠른 타임머신이 필요하다. 그런데 빛보다 빠른 타임머신을 만들 수 있을까. 우리가 사는 동안 그러한 기계가 만들어지기는 불가능해 보인다. 그럼에도 역사의 기록을 따라 1597년(선조 30) 10월 25일 과거로 돌아가 보자. 그날 이순신 장군이 지휘하는 조선 수군의 함선 13척이 명량에서 일본 수군 함선 330여 척을 거의 전멸에 가깝게 격퇴했던 명량 해전(鳴梁海戰) 현장이다. 훗날 정유일기에서 충무공은 말했다. “적들은 더욱 다가왔다. 일자진(이순신 장군의 명량 해전에서 유일하게 쓰인 전술, 횡렬 일자로 진을 펼치는 진)은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기다렸다. 적선들에서 함성이 일었다. 적의 제1열과 제2열이 합쳐지면서 양쪽으로 날개를 벌리기 시작했다. 적은 선두가 전투 대형으로 바뀌었다. 물은 적의 편이었다. 적은 휩쓸듯이 달려들었다. 감당할 수 없는 적의 힘이 내 몸에 느껴졌다. 나는 뼈마디가 으스러지듯이 아팠다. 물러서야 한다고 내 속에서 내가 아닌 내가 나에게 소리치고 있었다.” 107년 역사의 총회를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의 황금빛으로 회복시킨 제104회 정금 총회장 김종준 목사와 1986년부터 시간 여행을 함께한 꽃동산교회에서 2022년 11월 19일 오후 2시 제14차 임직 감사예배를 드렸다. 꽃동산교회는 1986년 중구 신당동에서 시작해 1988년 상계동으로 이전한 뒤 어린이전도를 중심으로 시작해 등록 교인 1만 명 교회로 성장했다. 꽃동산교회와 36년의 시간 여행 뒤 정금 김종준 목사가 성경 고린도전서 4:1-5을 읽었다.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군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 찌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치 아니하노니 내가 자책할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나 그러나 이를 인하여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것도 판단치 말라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총회 불꽃 제107회 총회장 권순웅 목사가 하나님의 일꾼은 하나님의 구원의 비밀을 아는 자이므로 믿고 따르는 일에 충성하는 '그리스도의 일꾼'에 대해 설교했다. 이날 임직식에서는 장로 장립 8명, 명예장로 장립 1명, 안수집사 장립 35명, 권사 취임 84명, 명예권사 취임 16명 등 총144명이 임직했다. 권면과 축사의 시간이 있었다. 어려움에 빠졌던 삼일교회를 성공적으로 이끌고 방송과 사경회를 통해 국내외 교인들에게 은혜와 감동을 끼치고 있는 송태근 목사의 축사가 인상 깊었다. 얼굴 피부 알러지 때문에 턱수염을 기른 그가 입을 열었다. "할렐루야. (회중 큰 아멘) 제가 얼마 전에 친구들과 캐나다 퀘벡에 가기로 했었습니다. 그런데 제 장모님 병 상태가 악화돼서 아내는 비행기 표를 취소하고 못 갔습니다. 나머지 세 친구들은 다 부부 동반이고 저만 외톨이였습니다. 일정이 이미 정해졌기 때문에 퀘벡에 갔습니다. 음식도 맛있고 풍광도 기가 막힙니다. 제 마음속에 한가지 생각이 들어옵니다. 아내와 같이 왔어야 되는데, 이걸 같이 먹었어야 되는데, 여길 같이 갔어야 되는데. 하나님께서 우리 꽃동산교회를 위해서 재정이 없다고 하나님이 일 못 하실까요. 일꾼이 없다고 하나님이 일 못 하실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헌금을 하게 하시고 헌신을 하게 하시는 것은 딱 한 가지입니다. 가장 사랑하는 일꾼들과 가장 사랑하는 일꾼 아무개와 이 일을 같이하고 싶으시다는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 임직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초대입니다. 믿습니까. (회중 숙연한 아멘) 이것으로 임직하시는 여러분에게 충분한 축사가 됐으리라 믿습니다. (회중 큰 박수)" 세상에는 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정작 잘 모르는 것이었음을 깨닫는 일이 너무나 많다. 길게 살아왔다고 크게 명함을 내놓을 처지는 못 되지만 그래도 살아오면서 이런저런 지식과 지혜 정도는 갖추게 됐다고 여기기도 했었다. 특히 이런 일, 저런 일로 시달리고, 듣고, 보다 보니 최소한 생존을 위해 안전을 도모하고 위험을 피하는 상식 정도는 알게 됐다고 한때 생각해 본 적도 있었다. 기도한다. 정금 총회장 김종준 목사의 가르침을 받다 저 하늘의 성도가 된 분들의 만남을 위해. 그리고 주님의 몸 된 교회에서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끼리 함께 믿고 서로 사랑할 수 있는 용기를 갖기 위해. 이 기쁨을 기억할 수 있기를... 성경은 말씀한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내 발이 그의 걸음을 바로 따랐으며 내가 그의 길을 지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일정한 음식보다 그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구나 욥 23:10-12 2026-01-22
G.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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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_ 사무엘상1Samuel
바세바 사무엘상1Samuel과 사무엘하는 원래 히브리어 정경에서 한 권의 책이었다. 그런데 그리스어 구약성경을 편집한 70인역의 번역자들이 두 권으로 나누었다. 사무엘상의 주요 인물은 사무엘, 사울, 다윗 세 사람이다. 이스라엘의 왕조 역사가 전개되면서 그들의 생애는 부분적으로 겹친다. 사무엘은 마지막 사사였다. 사울은 최초의 왕이었다. 그럼에도 사울이 왕조를 세운 사람으로 언급되지 않는 이유는 유다 족속이 아닌 다른 족속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유다 족속의 다윗을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통치자로 선택하셨다. 이스라엘 백성이 다른 민족들처럼 하나님 대신 왕을 가지고 싶어 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울을 훈련의 수단으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셨다. 이런 시가 있다. 한숨_ 권순남 내가 한숨을 쉬니 엄마가 아가 무슨 한숨을 자꾸 쉬노 하신다 왜 아이들은 한숨을 못 쉴까 한숨을 쉴 때마다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다 우리들도 한숨을 쉴 수 있었으면 평생을 아동 문학가이자 교육자로 살았던 이오덕 선생이 엮은 나도 쓸모 있을 걸 이라는 책에 실린 초등학생의 동시다. 사무엘서는 사람과 국가들의 일에 하나님께서 간섭하시는 것을 보여 준다. 사람이 자신의 일을 결정하는 건 자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인간의 자유로운 결정들에 한숨을 쉬실 경우가 많다. 사람의 일이나 국가의 일이 하나님의 한숨을 쉬시게 할 때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그 일들을 늘 살펴보고 인도하고 간섭하신다. 2026-06-07 교보.알라딘.예스24 전자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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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_ 룻기Ruth
룻기Ruth는 주인공의 이름에서 나왔다. 이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어두운 사사 시대에 일어났다는 사실이 정말 믿기 어렵다. 이런 시가 있다. 내가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셨을 때 _ 작자 미상 내가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셨을 때 난 당신이 내가 그린 최초의 그림을 냉장고에 붙여 놓는 걸 보았어요 그래서 난 또 다른 그림을 그리고 싶었어요 내가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셨을 때 난 당신이 주인 없는 개를 보살펴 주는 걸 보았어요 그래서 난 동물들을 잘 대해 주는 것이 좋은 일이란 걸 알았어요 내가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셨을 때 난 당신이 기도하는 소리를 들었어요 그래서 난 신이 존재하며 언제나 신과 대화할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내가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셨을 때 난 당신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걸 보았어요 그래서 난 때로 인생이 힘들기도 하고 우는 것도 나쁜 일이 아님을 알았어요 내가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셨을 때 난 당신이 날 염려하고 있는 걸 보았어요 그래서 난 내가 원하는 모든 걸 꼭 이루고 싶어졌어요 내가 보고 있지 않다고 당신이 생각하셨을 때 난 보고 있었어요 그래서 내가 보고 있지 않다고 당신이 생각 하셨을 때 내가 본 모든 것들에 대해 감사드리고 싶었어요 우리는 지금 괴로운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아들을 위한 신부를 구하시고 그의 영원한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내가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셨을 때 그의 세계에서 일하고 계시다. 그러므로 인간의 죄의 나쁜 소식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좋은 소식을 가로막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이다. 바로 그러한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이다. 이제 당신은 나오미와 룻과 보아스의 여러 삶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보게 된다. 그리고 당신은 이 아름다운 이야기에서 우리의 구세주 예수로 이어지는 중요한 계보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룻의 이삭줍기 다윗이 성경에서 처음 언급이 되는 곳도 룻기에서다. 룻기의 4장은 연극의 4막과 같다. 제1막은 눈물, 제2막은 고생, 제3막은 믿음, 제4막은 사랑의 승리다. 룻기는 눈물의 장례식으로 시작해 웃음의 결혼식으로 끝을 맺는다. 나오미는 괴로움에서 기쁨으로 바뀐다. 룻은 외로움에서 보아스를 만나 행복으로 바뀐다. 얼마나 아름다운 하나님의 은혜인가. 룻의 혼례상 그렇듯 룻기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이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전해 주고 있다. 2026-05-31 교보.알라딘.예스24 전자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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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_ 사사기Judges
골고다 십자가 사사기Judges의 사사 명칭은 타고난 재능이 있는 지도자라는 뜻의 히브리어 소페팀shopetim에서 나왔다. 우리말의 사사士師는 고대 중국의 주나라 때 형벌을 맡아보던 관리의 이름을 따른 것이다. 사사들은 여호수아가 죽은 뒤 마지막 사사, 사무엘 시대, 주전 1050년 왕정이 시작되기까지 이스라엘 백성의 앞길을 인도했다. 이런 시가 있다. 십자가_ 윤동주 쫓아오던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첨탑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왔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사사들과 비슷한 시대에 살고 있다. 하나님의 백성 전체가 하나가 되어 승리에서 승리로 이어지는 행진을 하지는 않는다. 사사들은 군사적인 무용뿐만 아니라 행정력과 영적 분별력도 함께 지닌 지도자들이었다. 그래서 사사들은 특별히 하나님의 양육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하나님께서 13명의 사사들을 부르시고 하나님의 영으로 능력을 주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기저기에서 그의 영으로 그의 종들을 선택하신다. 그들은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릴 각오가 된 주의 종들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불의와 어둠이 짙은 이 세상에서 그의 종들이 그의 영광을 위하여 빛과 소금의 위대한 일들을 이루어갈 수 있게 도와 주신다. 2026-05-24 교보.알라딘.예스24 전자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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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_ 여호수아Joshua
약속된 땅 여호수아Joshua는 생전에 지도자 훈련을 받은 적이 없다. 그는 오직 하나님의 부름과 훈련을 받았을 뿐이다. 그리고 그는 모세의 후계자가 되었다. 그는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의 혹독함을 알았다. 그는 모세를 섬기면서 명령을 따르는 방법도 알았다. 그는 적에 맞서 싸울 용기가 있었고 승리를 위해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도 지니고 있었다. 그의 본래 이름은 '구원'이라는 뜻의 '호세아Hoshea'였다. 그러나 모세가 그의 이름을 '하나님은 구원이시다'라는 뜻의 히브리어 '예수아Jeshua'로 바꿔주었다. 이런 시가 있다. 나는 누구인가_ 디트리히 본 회퍼 나는 누구인가 그들이 종종 말하기를 내가 감방에서 걸어 나올 때 왕이 자기 성에서 걸어 나오듯 침착하고 활기차고 당당하다고 한다 나는 누구인가 그들이 종종 말하기를 내가 간수에게 말을 건넬 때 내가 명령하는 권한이라도 가진 듯 자유롭고 다정하고 분명하다고 한다 나는 누구인가 그들이 또한 말하기를 내가 불행한 날들을 견디면서 승리에 익숙한 자와 같이 평온하고 미소를 잃지 않고 자연스럽다고 한다 나는 정말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그런 존재인가 아니면 다만 나 자신이 알고 있는 자에 지나지 않는가 세상에 갇힌 새처럼 불안하게 뭔가를 갈망하다 병이 들고 손들이 나의 목을 조르고 있는 듯 숨 가쁘게 몸부림치고 빛깔과 꽃들과 새소리를 갈구하며 부드러운 말과 인간적인 친근함을 그리워하고 사소한 모욕에도 분노로 바르르 떠는 존재인가 그리고 위대해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저 멀리 있는 친구들을 그리워하다 힘없이 슬퍼하고 기도하고 생각하고 글을 쓰다 지치고 허전해져 힘없이 그 모든 것과 헤어지려고 서두르는 그런 존재인가 나는 누구인가 이 외로운 물음이 나를 비웃는다 하지만 내가 누구이든 하나님은 아신다 내가 그의 것임을 이 시의 저자 디트리히 본 회퍼 목사는 독일의 독재자 히틀러에 항거하던 행동주의 신학자였다. 여호수아는 누구인가. 그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 안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한 위대한 지도자였고 전쟁을 승리로 이끈 용감한 장군이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가족이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을 갖도록 인도한 믿음이 깊은 아버지였다. 여호수아서는 이스라엘 민족의 헌신과 적의 패배, 그리고 땅의 분배를 기록한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을 승리에서 승리로 인도한다. 인간 여호수아는 죄와 사탄을 이기시고 주님을 믿는 자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표상이다. 여호수아의 생애는 우리가 믿음을 통해 얻는 승리를 예증한다. 2025-05-17 교보.알라딘.예스24 전자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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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_ 신명기Deuteronomy
모세와 시내산 신명기Deuteronomy는 모세가 출애굽의 가르침과 사건들을 다시 들려준다고 해서 두 번째 율법이라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는 허락을 하나님께 받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40년을 보냈다. 오랜 방랑 끝에 옛 세대는 다 죽었다. 마침내 모압에 진을 친 새로운 세대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조상에게 약속하신 땅에 들어갈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을 전했다. 그 말은 작별 인사이기도 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그 백성과 함께 그 땅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에서 어떻게 하나님을 믿고 살아야 할 것을 자세히 알려 준다. 그의 말에는 경고와 축복이 함께 담겨 있다. 그런 뒤 그는 백성과 헤어져 홀로 느보산에 올라갔다. 이런 시가 있다. 귀천_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겠다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겠다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겠다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할 것이다 시인 천상병은 하나님을 굳게 믿으니 이 우주에서 가장 강력하신 분이 내 빽이라 내가 세계에서 제일 행복한 사나이라고 노래했다. 그가 하늘로 돌아간다는 뜻의 귀천에서는 세상 떠남을 소풍 끝내는 날로 노래한다. 느보산에 올라간 모세가 죽을 때 나이 120세였다. 그때 그의 눈이 흐리지 않고 기력이 쇠하지 않았다는 모세가 하늘나라로 돌아갔다. 모세는 살 때처럼 떠날 때도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따랐다. 2026-05-10 교보.알라딘.예스24 전자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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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제자훈련을 위한 소요리문답 _제9장 주기도문의 끝 말씀
1)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우리 하나님이여 이제 우리가 주께 감사하오며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 대상 29:11-13 ••••••••••• 2)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귀를 기울이시고 행하소서 지체하지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바 됨이니이다 단 9:19 ••••••••••• 3)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계 22:20-21 작자 미상의 이런 시가 있다. 내가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셨을 때 난 당신이 내가 그린 최초의 그림에 빛을 비춰주시는 걸 보았어요. 그래서 난 또 다른 그림을 그리고 싶었어요. 내가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셨을 때 난 당신이 주인 없는 개를 보살펴 주시는 걸 보았어요. 그래서 난 동물들을 잘 대해 주는 것이 좋은 일이란 걸 알았어요. 내가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셨을 때 난 당신이 기도하시는 소리를 들었어요. 그래서 난 하나님이 존재하시며 언제나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내가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셨을 때 난 당신이 잠들어 있는 내게 입 맞추시는 걸 보았어요. 난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 내가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셨을 때 난 당신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걸 보았어요. 그래서 난 때로는 인생이라는 것이 힘들며 우는 것이 나쁜 일이 아님을 알았어요. 내가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셨을 때 난 당신이 날 염려하고 있는 걸 보았어요. 그래서 난 내가 원하는 모든 걸 꼭 이루고 싶어졌어요. 내가 보고 있지 않다고 당신이 생각하셨을 때 사실 난 언제나 보고 있었어요. 그래서 내가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셨을 때 내가 본 모든 것들에 대해 당신에게 아멘으로 감사드리고 싶었어요 하나님이 그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를 창조하셨다는 사실은 인생의 목적에 대한 바른 답을 제시해준다.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이유를 충족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즐거워할 때 하나님도 신랑이 신부를 기뻐하는 것 같이 우리를 기뻐하신다고 말씀하신다. 다시는 너를 버림받은 자라 부르지 아니하며 다시는 네 땅을 황무지라 부르지 아니하고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뿔라라 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결혼한 것처럼 될 것임이라 마치 청년이 처녀와 결혼함 같이 네 아들들이 너를 취하겠고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 같이 네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시리라 사 62:4-5 스바냐 선지자는 더욱 감동적인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모습을 전해 주고 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습 3:17 하나님이 스스로 우리와의 관계를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우리도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게”(벧전 1:8) 된다. 기도는 그리스도의 약속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요 요14:13-14 이 말씀은 우리가 어리석고 죄스러운 어떤 일들을 요구할 수 있다거나 또 그것을 얻을 수 있다는 의미도 아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기도할 때 우리는 확신을 얻게 되고,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인 실례가 있다. 1540년 루터(Martin Luther, 1483.11.10. ~ 1546.2.18.)의 절친한 친구이자 조수였던 미코니우스(Friedrich Myconius, 1491.12.26. ~ 1546.4.7.)가 병이 들어 죽음이 임박해 있었다. 그는 죽기 전에 루터에게 마지막 남은 기력을 다 모아 편지를 보냈다. 루터는 편지를 받자마자 간절한 내용을 담아 답장을 보냈다. ‘나는 아직도 교회를 개혁하는 일에 당신이 필요하다. 나는 감히 하나님의 이름으로 당신이 계속 더 살아있기를 명하고 싶다... 나는 주께서 당신을 죽게 내버려 두시지 않고 나를 위해서 당신을 살려 두시겠다는 말씀을 해주실 것이라 믿는다. 이것을 위해 나는 지금 기도하고 있다. 이것은 내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내 뜻이 이루어질 것을 안다. 그 이유는 나는 오직 하나님의 이름을 영광되게 하는 일만을 추구해왔기 때문이다. 주님의 이름으로 아멘.’ 루터의 이러한 확신에 찬 말은 그 당시 신중한 말이 요구되던 시대였던 것을 감안하면 정말 놀라운 말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 뒤 일어난 일을 보면 루터의 이 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 분명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왜냐하면 루터의 편지가 도착했을 때 미코니우스는 이미 말할 능력을 상실했다. 그러나 그는 읽어주는 루터의 편지를 듣고 곧 소생했다. 그리고 며칠 뒤에는 완전히 회복했다. 그 후 미코니우스는 6년을 더 살았다. 게다가 그는 같은 해(1546.2.18.) 죽은 루터보다 두 달(1546.4.7.) 가까이 더 살았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쳐주신 뒤 모든 내용의 마지막에 ‘아멘’을 덧붙일 것을 가르쳐주셨다. 아멘은 원래 긍정을 나타내는 히브리어로 ‘강하게 하다’(strengthen), ‘확증하다’(confirm)를 의미하는 낱말이다. 그래서 아멘은 ‘그렇게 될 것입니다’ 또는 ‘그렇게 되게 하옵소서’라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그렇게 될 것입니다’라는 의미의 아멘은 우리의 믿음이나 소원에 대한 하나님의 허락을 뜻하는 것이다. 반면에 ‘그렇게 되게 하옵소서’라는 의미의 아멘은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거나 우리의 기도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우리의 믿음과 소망을 표현하는 것이다. 즉 우리의 아멘은 하나님이 우리의 간구를 들으시기를 바라는 마음과 들으시리라 하는 확신의 증거로 말하는 것이다. 고대 유대교에서는 랍비가 성경 한 구절을 읽을 때마다 성도들이 그 구절을 따라 말하게 함으로써 성경 교육을 시켰다. 그러나 점차 구절을 되풀이해 따라 말하는 게 번거롭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성도들은 성경 구절을 따라서 반복하는 대신에 그것을 압축한 한 마디, 아멘을 말하게 되었다. 그래서 아멘이 기도나 찬송의 맺음말로 사용하게 되었다. 그리스도인들이 기도를 마칠 때마다 아멘이라고 말하는 것은 좋은 습관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이렇게 교훈한다. 그렇지 아니하면 네가 영으로 축복할 때에 알지 못하는 처지에 있는 자가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고 네 감사에 어찌 아멘 하리요 고전 14:16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할 때 간구한 내용에 대한 이해와 믿음으로 아멘을 하는 습관을 갖도록 해야 할 것이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마 6:13 [핵 심 개 념 정 리] 1. 인생의 목적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그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를 창조하셨다는 사실은 인생의 목적에 대한 바른 답을 제시해준다.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이유를 충족시키는 것이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즐거워할 때 하나님도 신랑이 신부를 기뻐하는 것 같이 우리를 기뻐하신다고 말씀하신다. 2.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한다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기도할 때 우리는 확신을 얻게 되고,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이다. 3. 어떻게 기도할 때 확신을 얻게 되는가?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쳐주신 뒤 모든 내용의 마지막에 ‘아멘’을 덧붙일 것을 가르쳐주셨다. 아멘은 원래 긍정을 나타내는 히브리어로 ‘강하게 하다’(strengthen), ‘확증하다’(confirm)를 의미하는 낱말이다. 그래서 아멘은 ‘그렇게 될 것입니다’ 또는 ‘그렇게 되게 하옵소서’라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그렇게 될 것입니다’라는 의미의 아멘은 우리의 믿음이나 소원에 대한 하나님의 허락을 뜻하는 것이다. 반면에 ‘그렇게 되게 하옵소서’라는 의미의 아멘은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거나 우리의 기도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우리의 믿음과 소망을 표현하는 것이다. 즉 우리의 아멘은 하나님이 우리의 간구를 들으시기를 바라는 마음과 들으시리라 하는 확신의 증거로 말하는 것이다. 2026-04-05 2025 개정판 전자책 출간 교보문고. 알라딘. 예스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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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제자훈련을 위한 소요리문답 _주기도문의 다섯째 기도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 †시 51:1 ………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마 18:35 ………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롬 3:23-24 나치에 항거해 감옥에 갇힌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가 숨을 거두기 전에 쓴 시라고 한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그들이 종종 말하기를 내가 감방에서 걸어나올 때 마치 왕이 자기의 성에서 걸어나오듯 침착하고, 활기차고, 당당하다고 한다. 나는 누구인가. 그들이 종종 말하기를 내가 간수에게 말을 건넬 때 마치 내가 명령하는 권한이라도 있는 듯 자유롭고, 다정하고, 분명하다고 한다. 나는 누구인가. 그들이 또한 말하기를 내가 불행한 날들을 견디면서 마치 승리에 익숙한 자와 같이 평화롭고, 미소 지으며, 자연스럽다고 한다. 나는 정말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그런 존재인가. 아니면 다만 나 자신이 알고 있는 자에 지나지 않는가. 새장에 갇힌 새처럼 불안하게 뭔가를 갈망하다 병이 들고 손들이 나의 목을 조르고 있는 듯 숨 가쁘게 몸부림치고 빛깔과 꽃들과 새소리를 갈구하며 부드러운 말과 인간적인 친근함을 그리워하고 사소한 모욕에도 분노로 치를 떠는, 그리고 위대한 사건들을 간절히 고대하고 저 멀리 있는 친구들을 그리워하다 힘없이 슬퍼하고 기도하고, 생각하고, 글쓰는 일에 지치고 텅 빈, 무기력하게 그 모든 것과 이별할 채비를 갖춘 그런 존재. 나는 누구인가. 이것인가, 저것인가. 타인 앞에서는 위선자이고, 내 자신 앞에서는 경멸할 수밖에 없는 가련한 약자인가. 나는 누구인가. 이 고독한 물음이 나를 비웃는다. 그러나 내가 누구이든, 하나님은 아신다. 내가 그의 것임을.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라고 기도하는 주기도문의 다섯째 기도는 무슨 뜻인가?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행위가 하나님의 용서보다 앞선다는 뜻인가? 아니면 우리가 용서하기 때문에 용서 받을 수 있다는 것인가? 아니다. 그 반대다. 우리 자신이 먼저 용서를 받았기 때문에 용서할 수 있고 용서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요일 4:19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눅 7:47 성경은 우리가 자백만 하면 언제라도 죄를 용서받게 된다고 말씀한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일 1:9 따라서 다른 사람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태도를 본받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사랑 받은 것처럼 우리도 용서해야 한다. 베드로가 주님에게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마 18:21)라고 물었다. 예수님은 크게 생각해서 일곱 번의 용서를 말한 베드로에게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마 18:22) 하고 말씀하셨다. 신자가 타인의 용서에 대해 행해야 할 의무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의 은혜를 본받고 나타내야 한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간구하고 있다. 여호와여 주의 긍휼을 내게서 거두지 마시고 주의 인자와 진리로 나를 항상 보호하소서 수많은 재앙이 나를 둘러싸고 나의 죄악이 나를 덮치므로 우러러 볼 수도 없으며 죄가 나의 머리털보다 많으므로 내가 낙심하였음이니이다 시 40:11-12 우리가 이렇게 많은 죄를 용서받듯이 우리도 남을 용서하고 사랑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면서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라고 말씀하시고 우리의 죄를 대속하셨다. 그 은혜를 체험한 사도 베드로가 우리에게 권면한다.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벧전 2:21 그러므로 우리도 그리스도의 본을 따라 용서와 사랑을 실천해야 할 것이다. 【핵·심·개·념·정·리】 1) 주기도문의 다섯째 기도는 무슨 뜻인가? 우리 자신이 먼저 용서를 받았기 때문에 용서할 수 있고 용서해야 한다는 것이다. 2) 우리는 어떻게 죄의 용서를 받는가? 성경은 우리가 자백만 하면 언제라도 죄를 용서받게 된다고 말씀한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9). 3) 우리는 다른 사람의 죄에 대한 용서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신자가 타인의 용서에 대해 행해야 할 의무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의 은혜를 본받고 나타내야 한다. 2026-03-29 2025 개정판 전자책 출간 교보문고. 알라딘. 예스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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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제자훈련을 위한 소요리문답 _주기도문의 넷째 기도
1)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내가 죽기 전에 내게 거절하지 마시옵소서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잠 30:7-9 ……… 2)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합 3:17-18 ……… 3)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갖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딤전 6:7-8 언제 아담은 울었는가 _이어령 언제 아담은 울었는가 에덴에 핀 꽃을 처음 보았을 때인가 최초로 이브의 살을 만져 본 순간이었을까 아니면 에덴의 동쪽으로 떠나던 날이었을까 아닐 것이다. 태양이 노을이 되고 노을이 어둠이 되는 처음 맞는 밤에도 공포에 떨었을 뿐 아담은 울지 않았다. 아담은 울지 않았다. 다만 아담이 운 것은 정확하게 천지창조 칠일 째 되는 날 아침 해가 어둠 속에서 불쑥 솟아오를 때 아담은 그때 목놓아 울었으리라. 오랜 장마 끝 어느 맑게 개인 날 이불을 널어 말리듯 태양으로 고개 돌려 심호흡을 할 때 나는 더 이상 가난을 미워하지도 부끄러워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천지창조의 일곱 번째 날 아침을 생각하면서 산다는 것이 손뼉을 치듯 너무 기뻐서 최초의 남자 아담처럼 소리내어 울었습니다. 칼빈은 기독교 강요 제 일권 제 일장에서 이렇게 말한다. 참된 지식은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인간을 아는 지식이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위엄과 영광을 알고 이해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인간의 무가치함을 알고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함을 깨닫게 된다. 칼빈이 말하는 이 참된 지식을 통해 우리는 주기도문의 넷째 기도의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마 6:11)라는 주기도문의 넷째 기도에서 깨우칠 진리는 두 가지다. 첫째, 우리가 일용할 양식을 구할 때, 필요한 것을 주실 수 있고 실제로 주시는 분은 하나님뿐이라는 사실이다. ‘일용할 양식’이라고 번역된 말은 원래 병사 한 사람의 하루 배급식량을 나타내는 말이다. 자연 속에서 사는 모든 생물들이 한 끼 먹을 것을 위해 노력하는 것을 보면 하루하루 산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이러한 사실은 하루하루 살 수 있는 일용할 양식을 위하여 하나님에게 끊임없이 의지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둘째, ‘오늘 나에게’가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라는 기도의 말씀이다. 이 말씀은 나만 배부르다고 끝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우리는 혹시 내 주위에 아직 배고픈 사람들이 있지나 않은지 돌아보아야 한다. 이론적으로 보면 세상 모든 사람은 굶주리지 않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한 쪽에서는 먹을 것이 남아돌아서 버리고 다이어트 한다고 살을 빼려고 땀을 뻘뻘 흘리며 고생을 한다. 또 다른 한 쪽에서는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리는 사람들이 배고픔으로 고생하거나 영양실조로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의 만나처럼 오늘 우리에게 양식을 넘치게 부어주신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내일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오늘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사도 바울은 신자의 삶의 태도에 대해 이렇게 권면한다.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갖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딤전 6:7-8 ‘일용할 양식’을 위한 기도에서 우리가 깨우칠 또 다른 진리는 하루하루의 삶의 의미와 생명의 소중함에 감사하고 만족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귀한 생명과 영생을 얻을 수 있는 믿음을 주신 그리스도에게 감사를 드리며 하나님에게 일용할 양식을 날마다 구해야 할 것이다. 【핵·심·개·념·정·리】 1) 하나님의 위엄과 영광을 알게 되면 우리는 무엇을 깨닫게 되는가? 우리는 인간의 무가치함을 알고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함을 깨닫게 된다. 2)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기도는 우리에게 무엇을 깨닫게 해주는가? 첫째, 우리가 일용할 양식을 구할 때, 필요한 것을 주실 수 있고, 실제로 주시는 분은 하나님뿐이라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은 하루하루 살 수 있는 일용할 양식을 위하여 하나님에게 끊임없이 의지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둘째, ‘오늘 나에게’가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라는 기도의 말씀이다. 이 말씀은 나만 배부르다고 끝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우리는 혹시 내 주위에 아직 배고픈 사람들이 있지나 않은지 돌아보아야 한다. 3) ‘일용할 양식’을 위한 기도에서 우리가 깨우칠 또 다른 진리는 무엇인가? 하루하루의 삶의 의미와 생명의 소중함에 감사하고 만족해야 한다는 것이다. 2026-03-22 2025 개정판 전자책 출간 교보문고. 알라딘. 예스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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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제자훈련을 위한 소요리문답 _주기도문의 셋째 기도
1) 여호와의 지으심을 받고 그가 다스리시는 모든 곳에 있는 너희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시 103:22 ……… 2) 그가 권함을 받지 아니하므로 우리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그쳤노라 †행 21:14 ……… 3)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빌 1:11 미국 뉴욕의 신체장애자 회관에 이런 시가 적혀있다. 나는 하나님에게 나를 강하게 만들어 달라고 기도했다. 내가 원하는 모든 걸 이룰 수 있도록. 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약하게 만드셨다. 겸손해지는 법을 배우도록. 나는 하나님에게 건강을 기도했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도록. 그러나 하나님은 내게 허약함을 주셨다. 더 의미 있는 일을 하도록. 나는 하나님에게 부자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행복할 수 있도록. 그러나 난 가난을 선물 받았다. 지혜로운 사람이 되도록. 나는 하나님에게 재능을 달라고 기도했다. 그래서 사람들의 찬사를 받을 수 있도록. 그러나 난 열등감을 선물 받았다. 하나님의 필요성을 느끼도록. 나는 하나님에게 모든 것을 기도했다. 삶을 누릴 수 있도록. 그러나 하나님은 내게 삶을 선물하셨다.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도록. 나는 내가 기도한 것을 하나도 받지 못했지만 내게 필요한 모든 걸 선물 받았다. 나는 작은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내 무언의 기도를 다 들어 주셨다. 모든 사람들 중에서 나는 가장 축복받은 자이다. 브라더 로렌스(Brother Lawrence, 1611-1691)는 그리스도교 역사에 기록되지 않을 뻔 했던 조용하고 온유한 그리스도인이었다. 그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었다면 그는 전혀 관심을 끌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랬다면 세상은 그가 실천한 “하나님 임재의 체험”을 통해 본보기가 된 것을 맛보지 못해 영적으로 좀 가난해졌을 것이다. 그에게 브라더라는 호칭이 붙은 것은 수도원에서 허드레 일을 하는 평수도사 라는 뜻이다. 그는 설교자도 아니었고 선생도 아니었고 말씀을 전하는 전도자도 아니었다. 본명이 니콜라스(Nicholas Herman)였던 로렌스는 항아리, 냄비, 포도주 통, 채소 더미의 수도원 부엌에서 사십 년을 보냈다. 그는 그 부엌에서 그의 생각과 행동과 온 생활을 하나님 임재를 체험하는 기도생활로 만들었다. 그는 성만찬에 참여하는 것 못지않게 당근 껍질을 벗길 때도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했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별 볼일 없는 군인으로 전전하다가 부상을 입었다. 그는 절뚝발이가 되어 귀향했다. 이제 무엇을 할까 고민을 하던 로렌스는 열여덟에 그리스도를 알고 믿은 뒤로 한 번도 자신을 버리신 적이 없는 주님을 위해 살기로 작정했다. 그는 처음에 사막으로 들어가 고독한 은자가 되려고 했다. 그러나 그 생활이 자신에게 맞지 않음을 깨달은 그는 수도원에 들어갔다. 그는 파리에 있는 갈멜 수도회의 평수도사가 되었다. 그가 들어간 수도원은 엄격한 곳이었다. 그는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런 욕망이 없었다. 성실한 로렌스가 마음에 든 수도원장이 그를 좀 더 나은 보직인 수도원 물품 구매 담당자로 임명했다. 그러나 로렌스는 상인들과 값을 놓고 승강이해야 하는 일이 고통스러웠다. 그가 가장 편안하게 생각하는 일은 남들은 한사코 꺼리는 수도원 부엌이었다. 로렌스의 유일한 갈망은 부엌에서 요리하고, 설거지하고,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것이었다. 로렌스를 발견한 파리 추기경단의 서기였던 보포르(M. de Beaufort)가 그에 대해 이렇게 기록했다. 그는 일을 할 때 주님의 은총을 간구했다. 그는 자신의 모든 행동을 주님에게 봉헌하는 자세로 일하며 계속 하나님과 친밀한 대화를 나누었다. 일을 마치면 그는 자신의 일과를 점검했다. 일과를 잘 수행했다는 판단이 서면 그는 하나님에게 감사를 드렸다. 그러나 잘못한 점이 발견되면 그는 하나님에게 용서를 구하고 다음에는 잘 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는 날마다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일을 계속했다. 로렌스는, “순간마다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며 사는 것입니다” 라고 말했다. 그는 부엌에서 안절부절못하거나, 서두르거나, 실수하거나, 그리고 실망하는 일이 없었다. 그는 보포르와 면담하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 내게는 일하는 시간과 기도 시간이 마찬가지입니다. 그릇들이 덜걱거리고 음식물이 끓는 부엌의 온갖 소음 속에서 몇 사람이 한꺼번에 서로 다른 요구를 할 때도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겸손히 하나하나 다 들어줍니다. 나는 그 일을 무릎을 꿇고 거룩한 성만찬을 받는 자세로 행하면서 고요한 평정 속에 하나님을 소유합니다. 하늘에서 하나님에게 올라오는 기도를 천사가 접수해보면 잠언에서 “다오 다오”하는 즉 “주세요”(give me)가 수북하지 “고맙습니다”(thank you)는 별로 없다고 한다. 그래서 잠언 기자는 이렇게 말씀한다. 거머리에게는 두 딸이 있어 다오 다오 하느니라 족한 줄을 알지 못하여 족하다 하지 아니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 곧 스올과 아이 배지 못하는 태와 물로 채울 수 없는 땅과 족하다 하지 아니하는 불이니라 잠 30:15-16 주기문의 셋째 기도는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인데 여기에서 ‘뜻’은 무엇을 의미할까? 하나님의 뜻에 관해 성경은 이렇게 말씀한다. 감추어진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원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 이는 우리에게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심이니라 신 29:29 하나님의 뜻에는 ‘감추어진 일’도 있고 ‘나타난 일’도 있다. 그러므로 ‘뜻이 이루어지다’ 할 때 하나님의 뜻은 두 면을 지니고 있다. 첫째, 하나님의 뜻에는 ‘감추어진 일’이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계획을 의미한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을 따라 계획대로 일하신다고 말씀한다(엡 1:11). 그러므로 참새 한 마리조차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마 10:29).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계획을 막을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단 4:35). 우리가 하나님의 감추어진 일에 대해 알아야 할 사실은 그것이 실제로 이루어지기 전에는 결코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감추어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믿고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하나님의 뜻에는 ‘나타난 일’이 있다. 이것은 우리의 행위를 규정한 법이다. 하나님은 기록된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완전하게 계시해주셨다(딤후 3:16-17).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는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따라야 한다(사 8:20).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 7:21 예수님의 이 말씀에서의 ‘내 아버지의 뜻’은 계시되고 기록된 말씀을 의미한다. 우리는 이 말씀을 지키고 따라야 한다. 욥은 하루아침에 망하고 병까지 들었다. 이 어처구니없는 불행에 욥의 아내는 차라리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악다구니를 퍼부었다. 온갖 고통과 슬픔을 겪고 있는 욥은 아내에게 담담하게 말했다. 그대의 말이 한 어리석은 여자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 욥 2:10 욥은 하나님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입술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요셉은 형제들이 노예로 팔아넘겨 애굽에 오게 되었다. 그는 애굽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하인이 되었다. 그는 잘 생기고 충직했다. 그런 그에게 보디발의 아내가 끈질기게 유혹을 했다. 그러나 그는 유혹을 단호하게 뿌리치며 말했다.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 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창 39:9 오히려 그 일로 그는 감옥에 갇혔다. 그럼에도 요셉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고 어떤 처지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묵묵히 따랐다. 사도 바울은 말한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 4:11-13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실천하기 위하여 날마다 기도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도 주님처럼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 라고 날마다 기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면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사도 바울은 매일의 생활에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실천할 수 있는 세 가지 방법을 가르쳐 주고 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16-18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라는 이 세 가지 명령을 날마다 실천하면 하나님의 뜻을 우리의 생활에서 이루게 될 것이다. 【핵·심·개·념·정·리】 1) 하나님의 뜻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계시되고 기록된 말씀을 의미한다. 2)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실천하기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날마다 기도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도 주님처럼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 라고 날마다 기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면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3) 사도 바울은 매일의 생활에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실천할 수 있는 어떤 세 가지 방법을 가르쳐 주고 있는가?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라는 이 세 가지 명령을 날마다 실천하면 하나님의 뜻을 우리의 생활에서 이루게 될 것이다. 2026-03-15 2025 개정판 전자책 출간 교보문고. 알라딘. 예스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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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제자훈련을 위한 소요리문답_ 주기도문의 둘째기도
1) 주의 은택으로 시온에 선을 행하시고 예루살렘 성을 쌓으소서 †시 51:18 ……… 2)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함이라 †롬 10:1 ……… 3)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계 22:20 모라비아 교파는 초창기에 그들의 본산지인 체코슬로바키아의 헤른후트(Herrnhut)에 기도단을 두 개 조직했다. 두 기도단은 남자 기도단과 여자 기도단으로 이루어졌다. 각 기도단의 단원은 스물네 명씩이었다. 두 기도단은 매일 한 시간씩 한 명의 남녀 단원이 따로 떨어져서 교대로 기도했다. 그러니까 남자 한 사람이 남자 기도소에서 기도하고 여자 한 사람은 여자 기도소에서 한 시간씩 스물네 시간을 계속 이어서 기도했다. 매일 계속되는 이 남녀 기도자의 기도는 백년을 지속했다. 이 기도 기간에 모라비아 선교 운동은 크게 부흥했다. 해외에 세워진 선교 교회가 본국 교회보다 세 배로 성장했다. 모라비아 교파의 선교사들은 존 웨슬리와 찰스 웨슬리에게 성경의 핵심 진리에 눈을 뜨게 해주었다. 존 웨슬리와 찰스 웨슬리는 영국에 영적 부흥이 일어나게 하고 미국에 감리교단을 설립했다. 하나님을 바르게 알지 않고는 하나님이 지시하신 대로 기도할 수가 없다. 효력이 없는 기도를 하는 사람은 기도 중심에 자기의 뜻과 소원을 둔다. 그러나 효력이 있는 기도를 하는 사람은 기도 중심에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영광을 둔다. 그러므로 신자의 중심은 모든 것을 하나님과 관련지어 생각하고 기도해야 한다. 그러면 주기도문의 둘째 기도의 “나라가 임하시오며”란 무슨 뜻인가? 여기에서의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이다. 우리가 기도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 이 지상에서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를 갈망하는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눅 17:20-21 빌라도가 예수님에게 물었다. 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요 18:35 예수님이 대답하셨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요 18:36 주기도문에서 우리가 기도하는 나라는 세상의 나라가 아니다. 이 나라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의 통치영역이다. 이 나라는 성령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통치하는 나라이다. 궁극적으로 이 하나님의 나라는 오고 있는 중이다. 모든 것이 변하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증거 한다. 이 또 한 번이라 하심은 진동하지 아니하는 것을 영존하게 하기 위하여 진동할 것들 곧 만든 것들이 변동될 것을 나타내심이라 히 12:27 주님이 이 세상에 다시 오실 때 하나님의 나라가 굳게 서게 될 것이다. 천사들의 나팔 소리가 들리고 그리스도께서 하늘에서 이 땅에 다시 임하시는 날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게 될 것이다”(계 11:15). 우리는 날마다 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기도하고 소망해야 할 것이다. 【핵·심·개·념·정·리】 1) 하나님이 지시하신 대로 기도하려면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 하나님을 바르게 알지 않고는 하나님이 지시하신 대로 기도할 수가 없다. 2) 주기도문에서 말하는 이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 주기도문에서 우리가 기도하는 나라는 세상의 나라가 아니다. 이 나라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의 통치영역이다. 3) 주기도문에서의 이 나라는 무엇으로 통치하는가? 이 나라는 성령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통치하는 나라이다. 2026-03-08 2025 개정판 전자책 출간 교보문고. 알라딘. 예스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