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에스겔Ezekiel
바벨론 포로들 에스겔Ezekiel은 주전 597년 바빌론으로 끌려간 포로들을 위해 사역을 했다. 반면 예레미야는 유다의 남은 사람들을 위해 사역을 했다. 이런 시가 있다. 상한 영혼을 위하여 _고정희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 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밑둥 잘리어도 새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라고 노래한 시를 읽으면 시인이 상한 영혼의 곁에 앉아 작은 목소리로 아픈 영혼들을 위로하는 것 같다. 이 시는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라는 이사야 42장 3절의 말씀과 겹친다. 시인은 하나님을 모르는 절망이라는 것이 얼마나 이쁜 우매함인가라고 노래했다. 선지자 에스겔은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잡을 손 하나 같이 오고 계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소망을 전했다. 주전 597년 느부갓네살이 유다를 두 번째 공격했다. 그때 에스겔은 10000명의 포로를 바빌론으로 강제 이송하는 무리에 섞여 끌려왔다. 예루살렘이 멸망한 5년 뒤 주전 592년 그는 하나님의 선지자로 부르심을 받았다. 예레미야처럼 에스겔도 선지자로 부르심을 받은 제사장이었다. 선지자로서 에스겔의 사명은 바빌론에서 포로로 잡혀 사는 유대인의 상한 영혼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에스겔은 하나님의 영광을 강조했고 하나님의 명예를 존중했다. 유다 백성이 하나님의 영광과 명예를 존중했다면 유대인이 그들의 적 앞에서 굴욕을 당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것이 심판이든 축복이든 하나님의 모든 일은 주의 거룩하심에서 비롯되고 주의 이름을 위하여 행해진다. 2026-10-11 교보.알라딘.예스24 전자책
-
[더굳뉴스] 제111회 정영교 총회장 쾌도난마
2016년 9월 14일부터 17일까지 4일간 사랑의교회에서 열린 대한예수교장로회 제111회 총회 ‘강의(lecture)’라는 단어는 라틴어 ‘레게레(legere)’에서 유래했는데 이는 ‘읽다’를 뜻한다. 필사본 한 권이 귀하던 시절, 중세 대학의 교수들은 말 그대로 책을 낭독했고 학생들은 받아 적었다. 책이 드물었으니 합리적 시스템이었다. 이상한 것은 지금도 우리가 대학에서 여전히 비슷한 일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 사람이 앞에서 말하고 다수가 듣는 구조. 교수 한 사람이 많은 학생에게 매번 같은 말을 반복해야 하고, 학생은 몇 년 안에 일정량의 지식을 머릿속에 욱여넣어야 한다. 지식을 전달할 다른 방법을 아직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경계가 있는 인간은 이제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다. 대학은 이 질문을 피하기 위해 인간다움의 방어선을 계속 뒤로 옮겨왔다. 기계가 지식 전달 역할을 가져가자 ‘비판적 사고’를, 글쓰기를 가져가자 ‘창의성’을 대학만의 것이라 선언한다. 그마저 흔들리면 공감, 직관, 지혜 같은 단어를 꺼낸다. 인간만의 것을 찾아 끝없이 후퇴하는 이런 방식에는 잔인한 역설이 숨어 있다. 인간다움의 목록을 갱신할 때마다 어떤 인간은 그 목록에서 탈락한다는 사실이다. 총회는 2016년 9월 14일 오후 3시 22분 개회했다. 총회장 장봉생 목사는 159개 노회, 목사총대 757명, 장로총대 686명, 총 1443명의 총대가 참석했다는 서기 보고를 받고, 제111회 총회 개회를 선언했다. 정영교 총회장과 임원을 선출한 제111회 총회는 그 어느 총회보다 빠르게 회무를 진행됐다. 예민한 안건에 대해 장시간 토론하고 때론 치열하게 논쟁했다. 첫날 천서검사위원회의 4개 노회 천서제한 발표와 부회록서기 후보 문제로 잠시 논란이 일었고, ‘정년 연장’ 헌의안 처리를 위해 2시간 동안 토론을 진행했다. 111회기 상비부 임원 인사와 보고, 355건에 이르는 헌의안 보고와 결의, 총회예산안과 긴급동의안 처리 등 모든 안건을 16일 오전·오후 회무와 17일 오전 회무까지 정영교 총회장의 쾌도난마(快刀亂麻) 진행으로 36시간 만에 끝냈다. 장봉생 목사는‘하나님의 총회’(히 12:22∼24)라는 제목의 설교를 잔잔하게 전했다. “히브리서는 다시 유대교로 돌아가려는 성도들을 경고하고 격려합니다. 오늘 본문은 옛 언약으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었지만, 새 언약으로는 하나님과 함께하는 총회에 이르게 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역시 우리 힘으로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라, 온전히 주님께서 인도하셨습니다. 목사와 장로의 직분, 총대의 신분까지 주시면서 친히 인도하셨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모임’은 성도들의 잔치다. 하나님 나라가 잔치이듯 우리가 모인 이 총회는 잔치입니다. 우리 서로 감사의 눈빛, 격려의 언어로 예의를 갖추자. 하나님이 하시는 일, 즉 하나님 나라의 정책을 의논하고 실행합시다.” 이어진 장엄한 성찬식은 총회 섬김이 김종철 목사가 엄숙하게 집례했으며, 김형곤 장로 기도, 오정호 목사(증경총회장) 축도 순으로 마무리됐다. 신실하고 열정적인 총회장을 비롯해 20명이 발언자로 나선 ‘교회 항존직 정년 연장’ 헌의안은 찬반투표 끝에 부결됐다. 정년 연장에 찬성한 발언자들은 신학적 타당성, 목회자 부족한 시대를 대비하고 교회의 타 교단 이탈 방지를 위해 정년을 75세로 늘릴 것을 주장했다. 반대 발언자들은 정년 연장으로 교회의 신뢰도가 더욱 하락하고 성도들의 지지도 얻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전자투표로 진행한 정년 연장은 찬성 425표, 반대 477표 근소한 차이로 부결됐다. 총회가 최근 교계 안팎에서 큰 논란을 빚고 있는 ‘민법 제38조 개정안’에 대한 대응 청원건을 총회 임원회에 위임해 처리하기로 결의했다. 총회에 앞서 안동·경중·경서·동부산 등 노회는 국가의 종교법인 개입 확대와 설립허가 취소, 법인 재산 처리 문제 등을 다룰 법률 및 행정 전문가 중심의 ‘종교법인대책특별위원회’ 신설 또는 ‘법률대응 TF 구성’을 헌의했다. 나라에 헌법 전문가라곤 유진오(俞鎭午) 고려대 교수 단 한 사람뿐이었던 1948년 정부 수립 당시 제헌의회는 트럭 짐칸을 타고 출근해 아침 10시부터 자정까지 헌법 조문에 매달려 6월 1일 헌법 제정에 들어가 7월 12일 나라의 설계도인 제헌 헌법을 통과시켰다. 2026_10_06
-
[더굳뉴스] 브라더 로렌스 하나님 기뻐하시는 기도
개회예배 제101회 총회 김선규 총회장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설교 6년여 오랜 분쟁 끝 총회와 사법 정통성 인정 광주중앙교회 광주의 어거스틴 채규현 목사 기도 전국 목사 장로 감동의 아멘 자아내 첫날 저녁집회 유쾌한 목사 소강석 “개혁과 세움의 First Mover가 되라” 설교 모든 회중의 즐거운 웃음과 흐뭇한 감동 안겨 둘째 날 저녁집회 총회 불꽃 부서기 권순웅 사회호남 장로 대부 최병철 장로 기도 브라더 로렌스를 닮은 송태근 목사(삼일교회) “이사야가 본 세 가지 비전” 설교 셋째 날 폐회예배“하나님께 계속 무릎을 꿇자” 정치 조직은 다른 조직과 그 근본적 성격과 이해 관계에 차이가 있다. 정치 조직은 원래 ‘권력을 주고받는 것’이고 그 거래를 통해 인맥을 형성하는 것이다. 그런데 총회 대의원은 구심점이나 이해관계가 없다. 선택에 책임지지 않는다. 책임지는 쪽은 그 선택을 받은 사람이다. 제54회 전국목사장로기도회가 2017년 5월 9일 오후 4시 부산 부전교회당에서 열렸다. 아침 8시 투표소에 나가 대통령 선거 투표를 했다.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 선거 또는 제19대 대선은 대한민국의 제19대 대통령을 선출하는 궐위에 의한 선거였기 때문이다. 이 날 당선되는 대통령은 다음날인 5월 10일부터 바로 임기를 시작한다. 부산에는 비가 내렸다. 18대 대선에서 당선된 박근혜 대통령은 2016년 10월 말 최순실 게이트 파문으로 사상 최대 규모의 퇴진 촛불집회가 진행됐다. 급기야 2016년 12월 9일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 대통령직의 직무 권한을 잃었다. 이후 3월 10일 헌법재판소의 탄핵 소추안 인용 결정으로 대통령직을 상실하면서 60일 이내에 조기선거를 치러야 한다는 관련 법규에 따라 조기 대선 국면이 시작되었다. 우리 총회가 1964년 서울 충현교회(김창인 목사)에서 첫 기도회를 가진 후 50여년 해마다 열렸다. 이번 목사장로기도회는 부산 부전교회당에서 전국에서 3천여 명의 목사·장로들이 모여 기도하고 강의를 들었다. 특히 이번 기도회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한 기도회로써 “개혁교회의 책임”(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이라는 주제를 정하고 진행했다. 오후 4시 개회예배에서 제101회 총회 김선규 총회장은 목사장로기도회 주제에 맞춰 누가복음 10:25~37에 근거하여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는 제목의 설교를 했다. 특별기도는 6년여의 오랜 분쟁 끝에 총회와 사법의 정통성을 공히 인정받은 광주의 어거스틴 채규현 목사(광주중앙교회)가 담당해 전체 회중에게 감동의 아멘을 자아내게 했다. 첫날 저녁집회는 유쾌한 소강석 목사가 에베소서 1:21-23에 근거해 “개혁과 세움의 퍼스트무버(First Mover)가 되라” 제목의 설교를 했다. 지금 기독교계 법적 소송이 3000건에 이른다며, 서로 싸우고 재판하는 교회를 보면서 기독교 신앙에 매력을 느낄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비판하면서도 교회가 변호사들 다 먹여 살린다고 시종 회중의 웃음과 마음을 사로잡았다. 5월 10일 둘째 날 저녁집회는 총회 불꽃 부서기 권순웅 목사(주다산교회) 사회로 호남 장로 대부 최병철 장로가 기도했다. 하나님 임재의 체험을 실천하는 송태근 목사(삼일교회)가 이사야 6:1-5에 근거해 “이사야가 본 세 가지 비전” 제목의 설교를 했다. 나태한 영혼을 깨운 송태근 목사의 설교가 끝나고 박성규 (부전교회) 류명렬(대전남부교회) 김태일(계산교회) 목사가 결단과 회개의 기도회를 인도했다. 기도자들은 한국교회 개혁과 갱신의 시작을 십자가를 지는 삶이라며 눈물로 기도하는 회중을 이끌었다. 2017년 5월 11일 셋째 날 11시 20분 폐회예배는 총회 부회록서기 장재덕 목사(서문교회)의 사회로 총회 부총회장 전계헌 목사(동산교회)가 사도행전 1:12-14에 근거해 “하나님께 계속 무릎을 꿇자” 제목의 설교를 했다. 이어서 김종택 목사(발안제일)가 ‘모든 민족과 종족을 제자 삼기 위해서’ 총회 감사부장 곽병오 장로(칠암교회)가 ‘참된 주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 특별기도를 했다. 둘째 날 ‘반월에 달이 뜬다’는 신문기사를 보고 반월(현재 안산) 공단에 내려가 피오줌을 누며 학교까지 세우고 은퇴한 김인중 원로목사(안산동산교회)가 “다들 어디 갔나요”하며 교회나 노회 돈으로 참석한 이들이 기도회 와서도 하나님 앞에 무릎 꿇지 않고 “정치하려고 왔냐” “관광하려 왔냐” 호통을 쳤다. 17세기 프랑스에서 활동한 평신도 수도사 브라더 로렌스(Brother Lawrence 1611-1691)는 그리스도교 역사에 기록되지 않을 뻔 했던 조용하고 온유한 그리스도인이었다. 그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었다면 그는 전혀 관심을 끌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랬다면 세상은 그가 실천한 “하나님 임재의 체험”을 통해 본보기가 된 것을 맛보지 못해 영적으로 좀 가난해졌을 것이다. 그에게 브라더라는 호칭이 붙은 것은 수도원에서 허드레 일을 하는 평수도사 라는 뜻이다. 그는 설교자도 아니었고 선생도 아니었고 말씀을 전하는 전도자도 아니었다. 본명이 니콜라스(Nicholas Herman)였던 로렌스는 항아리 냄비 포도주 통 채소 더미의 수도원 부엌에서 사십 년을 보냈다. 그는 그 부엌에서 그의 생각과 행동과 온 생활을 하나님 임재를 체험하는 기도생활로 만들었다. 그는 성만찬에 참여하는 것 못지않게 당근 껍질을 벗길 때도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했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별 볼일 없는 군인으로 전전하다가 부상을 입었다. 그는 절뚝발이가 되어 귀향했다. 이제 무엇을 할까 고민을 하던 로렌스는 열여덟에 그리스도를 알고 믿은 뒤로 한 번도 자신을 버리신 적이 없는 주님을 위해 살기로 작정했다. 그는 처음에 사막으로 들어가 고독한 은자가 되려고 했다. 그러나 그 생활이 자신에게 맞지 않음을 깨달은 그는 수도원에 들어갔다. 그는 파리에 있는 갈멜 수도회의 평수도사가 되었다. 그가 들어간 수도원은 엄격한 곳이었다. 그는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런 욕망이 없었다. 성실한 로렌스가 마음에 든 수도원장이 그를 좀 더 나은 보직인 수도원 물품 구매 담당자로 임명했다. 그러나 로렌스는 상인들과 값을 놓고 승강이해야 하는 일이 고통스러웠다. 그가 가장 편안하게 생각하는 일은 남들은 한사코 꺼리는 수도원 부엌이었다. 로렌스의 유일한 갈망은 부엌에서 요리하고 설거지하고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것이었다. 로렌스를 발견한 파리 추기경단의 서기였던 보포르(M de Beaufort)가 그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그는 일을 할 때 주님의 은총을 간구했다. 그는 자신의 모든 행동을 주님에게 봉헌하는 자세로 일하며 계속 하나님과 친밀한 대화를 나누었다. 일을 마치면 그는 자신의 일과를 점검했다. 일과를 잘 수행했다는 판단이 서면 그는 하나님에게 감사를 드렸다. 그러나 잘못한 점이 발견되면 그는 하나님에게 용서를 구하고 다음에는 잘 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는 날마다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일을 계속했다.” 로렌스는 순간마다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며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부엌에서 안절부절 하거나 서두르거나 실수하거나 그리고 실망하는 법이 없었다. 그는 보포르와 면담하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 “내게는 일하는 시간과 기도 시간이 마찬가지다. 그릇들이 덜걱거리고 음식물이 끓는 부엌의 온갖 소음 속에서 몇 사람이 한꺼번에 서로 다른 요구를 할 때도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겸손히 하나하나 다 들어준다. 나는 그 일을 무릎을 꿇고 거룩한 성만찬을 받는 자세로 행하면서 고요한 평정 속에 하나님을 소유한다.” 기도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아보는 여론 수렴이나 민원 접수 수단이 아니다. 예수님은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마 6:8) 말씀하신다. 기도는 하나님을 믿는 우리의 신뢰를 표현하고 늘릴 수 있는 수단이기에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그의 피조물인 우리가 그를 의지할 때 기뻐하신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수단의 표현이 바로 기도이다. 그러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세 가지 태도를 가져야 한다. 첫째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도해야 한다. 사도 요한은 기도에 관해 이렇게 권면한다.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요일 5:14-15). 성경의 약속과 명령에 따라 구한 것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주신다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 이런 경우에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해주셨기 때문이다. 둘째 우리는 믿음으로 기도해야 된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 11:24). 이 말씀에서 예수님이 의미하시는 것은 우리가 무엇을 구할 때 그것을 하나님께서 들으심을 확신하는 것이 믿음이라는 것이다. 셋째 우리는 기도할 때마다 죄를 고백해야 한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우리는 하나님이 하라고 명하신 것을 제대로 따르지 못한 죄 하지 말라고 명하신 것을 어긴 죄를 짓는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용서를 날마다 구해야 한다. 성경은 말씀한다.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 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 하니라 요일 1:8-10
-
[더굳뉴스] 목사와 의사의 뜻
들녁에 만상이 살아있다는 황금빛 영광! 예수께선 ‘들에 핀 백합을 보라! 솔로몬의 영광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다(마태복음 6:29)’ 말씀하셨다. 버스도 안 다니는 총신대 시절 사당동 골짜기 미완성의 1동짜리 건물 총신대에서 허름한 옷차림으로 되뇌인 적이 있었다. “오늘은 눈이 열려 솔로몬의 영광보다 더한 영광을 이 골짜기에서 보게 하시니 감사하나이다!” 예수께선 어린이와 같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하셨다. 동심에 온유와 겸손의 도가 있다. 늘 성경을 읽는다면 우리의 마음엔 그 진리가 벌써 자리한 것이 아닐까. 꽃을 가리키는 대표적 한자는 화(花)다. 영화(榮華)라는 단어의 각 글자는 꽃이다. 식물 형태가 목본(木本)이냐 초본(草本)이냐에 따라 ‘영’과 ‘화’를 구별할 때도 있지만 분명치는 않다. 두 글자는 어쨌든 식물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 정수(精髓)라는 우러름을 받는다. 그 맥락에서 영(英) 또한 꽃의 지칭이다. 가장 빼어난 사내를 영웅(英雄), 그런 능력의 사람을 영재(英才)로 적는 이유다. 꽃이 피었다 시드는 과정을 영고(榮枯)라 적어 성쇠(盛衰)와 흥망(興亡), 흥폐(興廢) 등의 뜻으로 새긴다. 총회선관위의 유권해석에 따라 4월에 열리는 봄 노회에서 제109회 총회 임원의 경우 목사 부총회장은 장봉생 목사(서울노회 서대문교회)가 가장 강력한 후보로 나섰다(1866년 8월, 조선 고종 3년, 대동강가의 평양 시민을 대포로 살상하는 무장 상선을 탄 젊은 선교 목사를 순교자로 인정해 기념관을 세우는 업적을 세움). 장로 부총회장은 김영식 장로(군산남노회ㆍ익산서두교회), 김형곤 장로(김제노회ㆍ대창교회), 박석만 장로(서수원노회ㆍ풍성한교회)가 경합했다. 부서기는 이종석 목사(동수원노회ㆍ광교제일교회)를 배정환 목사(광주노회ㆍ광주미문교회) 서만종 목사(광주전남노회ㆍ광주단비교회) 등 두 사람이 뒤쫓을 형국이다. 부회록서기는 안창현 목사(군산남노회ㆍ서광교회)와 최찬용 목사(남수원노회ㆍ대덕교회)가 경쟁했다. 회록서기는 김종철 목사(용천노회ㆍ큰빛교회), 회계는 부회계 이민호 장로(경북노회ㆍ왜관교회)가 정임원으로 올라갔다. 기관장 유력 후보는 교육개발원 이사장에 목사의 표본 송태근 목사(평양제일노회ㆍ삼일교회, 재임), 기독신문 사장에 태준호 장로(전서노회ㆍ태인교회, 재임), 총회세계선교회 이사장에 김장교 목사(대경노회ㆍ서성로교회), 기독신문 이사장에 장재덕 목사(경동노회ㆍ서문교회) 등이 추대되었다. 아카데미상을 휩쓴 영화 ‘오펜하이머’의 주인공인 핵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Julius Robert Oppenheimer, FRS, 1904년 4월 22일 ~ 1967년 2월 18일)는 철저한 강의 준비로 유명했다. 버클리 교수 시절엔 영감을 불어넣는 강의에 매료된 학생들이 같은 과목을 두세 번씩 수강 신청했다고 한다. 오펜하이머는 다른 교수들이 불성실하게 강의하는 것을 참지 못했다. 강의가 마음에 안 들면 수업 중인 교수를 강의실 밖으로 내쫓은 적도 있다고 한다. 강의에 대한 이런 열정은 교수직을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닌 하나님의 소명으로 보는 서구 대학의 오랜 전통에서 비롯됐다. ‘교수’라는 뜻의 영어 ‘프로페서(professor)’는 라틴어 pro(앞으로)와 fateri(공표하다)에서 왔다. ‘대중 앞에서 공적인 주제로 말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대학의 시초로 꼽히는 11세기 볼로냐 대학에서 처음 개설한 것은 신학이었다. 교수는 신의 진리를 많은 이에게 전하는 신성한 직업이었던 것이다. 중세 이후 교수는 출신에 관계없이 귀족 대우를 받았다. 오늘날 독일 등 중부 유럽에서 교수들이 누리는 사회적 존경에는 깊은 뿌리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직업에 ‘사’를 붙인다. 공적인 일을 하는 판·검사에겐 ‘일 사(事)’를 쓴다. 변호사·변리사·조종사는 전문 지식을 존중하는 의미로 ‘선비 사(士)’를 쓴다. 그런 전문가 중에 특히 사회에 희생하고 봉사하는 직종엔 ‘남을 가르친다’라는 뜻의 ‘스승 사(師)’를 붙인다. 그래서 아픈 이들을 돌보고 치료하는 도덕적 사명을 수행하는 의사(醫師)에게 ‘師’를 쓰는 이유다. 대한의사협회에서 정한 의사윤리지침 3조에는 의사의 본분이 이렇게 적혀 있다. "의사는 고귀한 사람의 생명과 건강을 보전하고 증진하는 숭고한 사명의 수행을 삶의 본분으로 삼아…." 의사윤리지침이 정한 소명에 충실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의사라면 결국에는 죄책감의 칼날에 양심이 베일 것만 같다. 그 소명에 다가갈수록 환자를 두고 떠난 옛 기억이 그를 괴롭힐 것이다. 그 기억은 '나는 환자의 고귀한 생명을 보전하는 의사'라는 정체성과는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목사(牧師)는 개신교의 성직자이다. 개신교의 예배(禮拜)와 예전(禮典)을 집행하며 신도의 교육과 지도, 세상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 임무를 갖는다. "목사"라는 명칭은 신약성경 에베소서 4장 11-12절(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에서 발견할 수 있다. 신약성경 원문인 헬라어 단어는 "포이멘"(ποιμήν)으로 목자, 양치기이며, 이 단어의 라틴어 번역어인 "파스토르"(pastor)에서 목사를 의미하는 영어 단어 '패스터'(pastor)가 유래했다. 역사는 타이밍, 사람, 상황 그리고 우연의 복잡한 얽힘이라고 할 수 있다. 아픈 이들을 돌보는 도덕적 사명을 수행하는 의사가 의대생 숫자를 관계 당국이 늘린다고 환자가 있는 병원을 떠나 파업을 하는 시대가 됐다. 그리고 세계 제일 보수 교단 성직자 목사의 실질적으로 65세 되면 힘을 잃는 70세 정년을 성경에 근거해 좀 융통성있게 정하자는 주장을 부결시키는 칼빈주의 교단이 됐다. 이런 상황에 목사는 어떤 삶을 살고 총회를 어떻게 섬겨야 할까. 성경은 말씀한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빌 3:7-14 2026-10-05
-
[더굳뉴스] 증경총회장 덕담
누군가 말해 달라 믿음의 비밀을 펼친다. 가다가 멈추고 내가 나에게 물어본다 우리 모두 어디로 가고 있나 분주하기만 한 발걸음 헐떡이는 믿음 어디로 가고 있나 길은 목적지도 없는 맨얼굴 속타는 소망만 보여준다. 너를 사랑해서 안을 때 너는 보이지 않는다 너와 헤어져 허공에 서면 그제야 네가 보인다. 우리 앞에 놓인 문제들이 난마 같아도, 삶은 정직하게 걸어야만 종착점에 닿을 수 있는 믿음의 대륙이 아닐런지. 싸움은 인류의 역사와 늘 함께했다. 사회 조직이 커지면서 싸움의 규모와 참혹함은 더욱 커졌다. 삶과 죽음의 존망(存亡)이 그 싸움에 종종 걸리는 일이 많았으니 싸움에 대한 인류의 사고는 정밀하게 다듬어졌을 것이다. 그런 생각과 집념이 일정한 틀을 갖출 때를 우리는 전략(戰略)이라고 적는다. 5년 전 미국의 존경받는 정치인 밥 돌(Robert Joseph "Bob" Dole, 1923년 7월 22일~2021년 12월 5일) 전 공화당 상원의원이 별세했다. 제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로 신체적 장애를 극복하고 정계에 진출해 미국의 공화당 정치인으로 캔자스주를 대표하여 연방 하원 (1961년~1969년)과 연방 상원(1969년~1996년)을 지냈으며 1996년 미국 대통령 선거 공화당 후보였다. 2021년 12월 5일 (98세) 그의 별세 소식에 추모의 물결이 이어졌다. 워싱턴 내셔널 몰에서 열린 공식 추모식에 영화배우 톰 행크스가 참석했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 출연했던 그는 과거 돌 전 의원이 이끌었던 제2차 세계대전 기념비 건립 운동에 참여한 바 있다. 그는 추모사에서 돌 전 의원이 들려준 삶의 교훈에 대해 얘기했다. “바르게 말하라, 그것이 당신을 곤란하게 만들지라도. 정치적 견해 차이가 공동의 선을 추구하는 데 방해가 돼서는 안 된다.” 2025년 1월 트럼프에게 대통령직을 인계할 조 바이든 대통령은 워싱턴 국립대성당에서 열린 장례식에서 20여 분에 걸쳐 매우 긴 추모사를 낭독했다. 함께 의회를 누비며 우정을 쌓아온 오랜 정치 지기의 별세 소식에 침통한 모습이었다. 추모사 중에서 조문객들의 웃음을 자아낸 대목이 있다. “우리 솔직히 말하자. 밥 돌은 언제나 솔직한 사람이었다. 지나칠 정도로(to a fault).” 사람의 좋은 성격을 나타내는 형용사 뒤에 붙은 ‘to a fault’ ‘지나칠 정도로’라는 표현은 밥 돌에게 과한 측면이 있었다는 것이다. 돌 전 의원의 솔직함에 대해 흉을 보려는 의도가 아니라 매우 고결한 성품이었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것이었다. 분열의 정치를 염려하던 노(老) 정객이 남긴 마지막 메시지라고 한다. “아이들이 너무 빨리 좌절하거나 꿈꾸기를 포기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의 모자란 어린 시절을 얘기하는 것”이라고 했다. 담임선생님의 평가를 앞세웠던 그의 소개 글은 이렇게 이어진다. ‘그 당시에 나는 책을 읽으며 공상하는 걸 좋아하고 예쁜 것에 관심이 많은 학생이었다. 지금도 나는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기죽지 않고 신나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유쾌한 그 고백은 아이들을 향해 있다. 자신이 아닌 다른 이를 위해 기꺼이 부족함을 드러내는 그의 용기가 더 빛나게 느껴지는 이유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성적표에 써 준 글이라고 한다. ‘책을 많이 읽는 듯하나 이해력이 떨어지고 외모에 매우 신경을 씀.’ 공부를 못했고 초중고교 시절을 통틀어 글짓기상은 단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다. 오락부장을 도맡아 소풍, 수학여행을 가면 먼저 나가 노래하고 춤췄다. 어떻게 싸워 이길 것인가를 묻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그 싸움이 때로는 국가와 사회의 승리와 패배, 종국에는 먹느냐 먹히느냐를 결정짓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대가 있을 때 그와 다퉈 이해를 가리고 승패를 결정하는 일에는 전략이 필요할 것이다. 우리 교단 총회장도 교회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목사가 되어 총회장이 되려면 공부 잘하고 목회 성공해야 한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믿음의 아이들에게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말해주고 싶었어요. 공부 못하고 좋은 평가를 못 받아도 미래의 내 모습을 지나칠 정도로(to a fault) 하나님 앞에서 정직할 수 있으면 된다고 말이예요.” 그리고 그들은 이런 추모사를 다른 총회장에게서 들을 수 있을까. 조문객들의 해맑은 웃음을 자아낼 수 있는... “우리 솔직히 말합시다. 소천하신 이번 증경 총회장은 언제나 솔직한 사람이었습니다. 지나칠 정도로(to a fault).” 서구 현대 전략학의 아버지인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Carl Phillip Gottlieb von Clausewitz, 1780년 7월 1일 ~ 1831년 11월 16일)는 군사 전략을 "전쟁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전투의 운용"으로 정의했다. 성경은 말씀한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부터 나오느니라 …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잠 16:1, 9 2026-09-28
-
[더굳뉴스] 제104회 총회장 김종준 목사 총회 본질 회복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성경을 읽는다. 아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기도를 한다. 제대로 된 신학은 신앙적이고 상식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제대로 읽는 성경이 상식과 신앙을 지켜준다. 요즘처럼 정신 잃은 시대에는 제정신의 보루 역할도 톡톡히 할 것이다. 세종대왕은 조선 시대 권력 불균형의 원인을 문맹’에서 찾았다. 대다수 백성이 권력을 가질 수 없었던 것은 한자가 어려워서 교육의 문턱이 높았기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세종대왕은 한글을 창제하여 누구나 쉽게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백성에게 물고기를 나누어주는 대신 물고기를 잡을 방법을 가르쳐 준 것이다. 한글의 열매는 대한민국 건국 이후에나 취할 수 있었다. 쉬운 한글 덕분에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의 문맹률을 가지고 있고 균등한 교육의 기회를 통해서 사회 계층 간 이동 사다리를 만들 수 있었다. 물고기를 잡는 법뿐 아니라 물고기가 많은 곳으로 국민을 인도하는 것도 중요한 정부의 역할이다. 새로운 산업 생태계를 만드는 일을 말한다. 과거에 경부고속도로를 만들었을 때 자동차도 없는데 도로를 왜 만드느냐는 비판이 많았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자동차 산업 생태계(기인 소강석 목사가 좋아하는 목회생태계 같은)가 만들어졌다. 박정희 대통령의 정부에서 도로를 깔지 않았다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각 분야마다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세종대왕같은 인물들이 필요하다. 칼빈주의 신학 정체성을 잃은 우리에게 제104회 총회 정금 총회장 김종준 목사가 그러한 세종대왕에 비견될 수 있는 위업을 총회 본질과 권위를 회복시켰다. 2020년 7월 27일 오전 11시 총회회관 2층에서 제104회기 제2차 총회실행위원회가 총회임원회 서기 정창수 목사의 사회로 열렸다. 실행위원회 위원장 김종준 총회장이 말씀 '만군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회복하여 주시고 주의 얼굴의 광채를 비추사 우리가 구원을 얻게 하소서’(시 80:7)에 근거한 '회복’ 설교로 그간의 소회와 남은 회기의 보수신학과 개혁신앙 회복의 소신을 실행위원회에 호소했다.“할렐루야. (회중 아멘) ‘회복’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104회기가 출범한 지 벌써 10개월이 됐습니다. 이제 104회기는 두 달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 주셔서 104회 회기 동안 많은 부분이 회복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총회를 개회했을 때부터 하나님 은혜 가운데 성총회로 자리매김을 하게 되었습니다.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총대들이 자리를 뜨지 않고 성황을 이루는 가운데 회의가 진행이 되었습니다. 과거의 총회를 보면 대개 수요일이나 목요일이 되면 많은 분들이 자리를 이탈하여 정족수 미달로 총회가 진행이 되다 보니까 정족수 미달 문제로 결의되었던 것들이 무효화 될 뻔했던 회기가 있었습니다. 정족수로 미달로 결의되었던 것은 사회법에 가게 된다면 무효가 될 수 있었습니다. 때문에 어떤 총대가 그것을 문제 삼아서 사법으로 가면 한 회기 동안 일을 하지 못하고 어떤 대가를 치르고 진행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회기는 마지막 날까지 1,000명 이상의 총대들이 참석해서 총회가 아주 은혜 가운데 성총회로 진행이 되었습니다. 더욱이 아주 성숙된 모습으로 질서 있고 엄숙하고 공정하게 모든 안건이 결의되었습니다. 과거에는 어떤 목소리 큰 사람이나 어떤 정치적인 의도에 의해 여론몰이식으로 결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잘못된 결정 때문에 사법으로 가게 되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총회가 진행되는 과정 속에 여러 고성이 오가고 싸움이 있는 등 총회 현장이 혼란스러울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104회기는 몸싸움도 없었고 여론몰이식의 결정도 없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 총회 자체도 많이 회복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그뿐만 아니라 수년 동안 분쟁과 몸살을 앓던 여러 노회들도 다 해결이 되었습니다. 정말 104회기는 ‘회복’ 주제대로 회복된 회기였다고 자평을 하고 싶습니다. 무엇보다도 18년 동안 해결하지 못하고 수많은 소송 비용을 들여가며 분쟁을 겪는 바람에 총회 은급재단 가입자들이 다 빠져나가 은급재단이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위기에 빠뜨린 납골당 문제가 해결된 것이 어떤 의미에서 가장 큰 성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처럼 104회기는 정말로 그간 우리가 안고 있는 많은 문제 거리들이 하나하나 회복되는 역사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회복되어야 할 것들이 아주 많다는 것을 제가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 회복은 제가 취임사에서 밝혔듯이 본래 상태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개혁하는 것이 회복이다. 또한 고치는 것이 회복이다. 이렇게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정말로 우리 총회 안에 고쳐야 할 것들, 개혁해야 할 것들, 본래 상태로 돌아가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그래서 오늘 실행위원회를 통해서 회복을 이루기 위해 몇 가지 사안들을 고치고 조정해야 할 안건을 실행위원회에 내고 의논한 뒤 통과시키려고 합니다. 구체적으로 말씀을 드린다면 총회 유관 기관 가운데 은급재단의 정관 자체가 총회 기관임에도 불구하고 총회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는 그런 식으로 정관이 되어 있습니다. 그 이사회에서 정관을 개정하게 된다면 총회 허락을 받고 발효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은급재단 하나만 보더라도 전혀 그런 규정이 없습니다. 과거의 총신처럼 사심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완전 사유화할 수 있는 그런 구조로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것을 과감하게 고쳐놓지 않고 나중에 은급재단이 커지면 어김없이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런 기관들의 정관을 우리가 고쳐서 정말로 총회 산하기관으로서 총회가 최종적인 결정을 해 그 정관이 운영될 수 있게 만들어야만 그런 문제를 방지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발견했기에 이번 실행위원회를 통해 이런 정관을 좀 개정해 그 유관부서로 보내 개정을 해가지고 제105회 총회에서 통과를 해야 그 효력을 발생할 수 있습니다.그뿐만 아니라 상비부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컨대 감사부 경우도 그 자체에서 규칙을 만들어 총회에 내고 통과를 합니다. 그러다 보니 감사부 규정 가운데 정말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문구가 있습니다. 감사부가 사실은 오버했던 부분이 많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것은 아무래도 실행위원회를 거쳐 잘못된 부분을 규칙부로 보내 규칙을 개정해 총회에 보고하고 그 다음부터 그 부서가 규칙에 의해 운영되도록 한다면 문제가 없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제104회 감사부는 제104회 상비부 것만 감사를 해야 하는데 지금 규정에는 총회장이 특별 지시를 해 감사를 해야 하는데 감사부 부장이 특별 감사를 할 수 있다고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에 의해 모든 것을 다 감사했습니다. 예를 들어 상비부나 산하기관이나 총회 행정이나 감사를 하면 되는데 노회도 감사를 하고 몇몇 면려부도 감사를 했습니다. 이것은 제 생각에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작년 같은 경우는 총회 임원까지도 총회장도 감사를 받고 임원들도 감사를 받고 하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규정들은 개정되어야지 않겠나 하는 것입니다. 잘못된 규정들은 우리가 바로 잡아야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입니다. 선관위 규칙 같은 경우도 위원들을 3분의 2를 개정하다 보니까 좀 불합리한 것들이 많이 들어가서 이런 것들도 실행위원회를 거쳐 개정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입니다. 기독신문 같은 경우도 그렇습니다. 기관지임에도 불구하고 기독신문에 들어가서 보니까 문제가 상당히 많습니다. 예를 든다면 기독신문 이사장은 아무런 권한이 없도록 정관이 되어 있습니다. 이사장은 이사회 때 사회 보는 것뿐이고 국장급 인사에 총회장한테 추천하는 것 외에는 아무런 권한이 없습니다. 이러다 보니 이번 같은 경우도 기독신문 이사장 하려고 신청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천만 원 내고 기관장 돼봐야 아무 권한도 없는데 누가 하려고 하겠습니까. 기독신문 사장은 단체로 말한다면 월급 받는 직원입니다. 월급 받는 직원에게 모든 권한이 다 부여돼있고 이사장은 사회 보는 것 외에는 아무런 권한이 없습니다. 그리고 구조에서도 기관지라면 정말로 기관을 대변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오히려 부정적인 기사를 쓸 수 있다 해가지고 총회가 결의한 것이나 총회장에 대해 부정적인 기사를 쓰기도 합니다. 나는 총회장 끝나기 때문에 문제가 없습니다만 다음 총회장을 위해서도 이런 것들은 개정이 되어야지 않겠나 하는 생각입니다. 이것도 이사회에서 개정을 하는 건데 일단은 여기 실행위원회에서 개정하고 바로 잡아서 이사회에 넘겨 이사회에서 개정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이런 여러 가지 불합리한 그런 규정들을 우리가 나름대로 위임을 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그런 것들을 오늘 실행위원회에서 통과해서 유관 기관이나 이사회나 규칙부나 선관위에서 개정을 하도록 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입니다. 그것 때문에 오늘 실행위원회가 모이게 되었습니다. 이것뿐 아니라 환부에 관한 유권해석 문제도 있습니다. 작년에 '환부환송유권해석연구위원회’를 바로 현장에서 결정해 실행위원회를 통과하여 바로 시행하도록 결의를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그 위원회가 보고를 하면 진지하게 토론한 뒤 결정하게 될 겁니다. 이런 사항들 때문에 오늘 실행위원회가 모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총회 1박 2일 일정에 대해 보고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아무튼 오늘 실행위원회를 통해서 정말로 모든 일들이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하나님의 법과 뜻대로 아름답게 진행이 돼서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너희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는 말씀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하는 그런 시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아무쪼록 오늘 좋은 의견들을 개진해서 우리 총회가 고쳐지고 바로 세워지는 일을 감당하는 모든 회원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기도하겠습니다.살아계셔서 역사를 주관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은혜와 축복을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도 104회 실행위원회가 모여서 중요한 안건들을 처리하려고 합니다. 함께하셔서 영광 받아 주시고 모든 회무 절차 인간의 계획에 맡기지 마시고 하나님께서 주관하셔서 모든 것이 아름답게 처리되도록 합력하여 선을 이룰 수 있게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회중 아멘)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옵나이다. 아멘.” 323장 '한걸음 한걸음 주 예수와 함께 날마다 날마다 우리 걸어가리’ 찬송 후 총무 최우식 목사의 광고와 부총회장 소강석 목사의 축도로 예배를 마치고 회무에 들어갔다. 서기 정창수 목사가 회원출석 보고를 했다.“총176명 중 108명 참석 위임 22명 총 130명 참석했습니다.” 위원장 김종준 총회장이 성수가 되므로 개회를 선언했다. 서기 정창수 목사가 안건 상정을 했다. 김종준 위원장이 회의를 주관했다.“먼저 상비부 정관에 관한 것을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먼저 총회 규칙 가운데 보면 정치부 교육부 고시부 신학부 재판부 재정부 감사부 이 7개 부서는 나온 후에 2년 이내에는 7개 부서 중 어느 부서에도 들어갈 수 없다. 단 감사부에는 평생 1회만 들어갈 수 있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정치부 교육부 고시부 신학부 재판부 재정부 감사부를 거친 사람은 2년 이내에 이 7개 부서에 다시 들어갈 수 없는 규정 때문에 실제적으로 공천부에서 이분들을 배정하는데 노회에서 추천하는데 어려움이 굉장히 많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일할 수 있는 분이 일을 해야 하는데 2년 동안 다른 부서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적으로 정치부나 고시부나 재판국 같은 경우 또 선출직입니다. 또 어떤 문제가 있느냐 하면 다른 부서에 있다가 예컨대 고시부 부장을 했다든지 이런 사람들이 임원으로 출마할 수 있는데 오히려 재판국으로 갈 수가 없다는 것은 제가 볼 때 뭔가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7개 부서를 3개 부서 정도 정치부 고시부 감사부만 2년 후에 다른 부서로 갈 수 없다 해야 하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이것을 임원회에서 이렇게 하는 것이 합당하다 생각해 규칙부로 보내려고 생각합니다. 다 축조할 수 없기에 간추려서 여러분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여기에 대해 발언하실 분이 계신가요.” 실행위원들의 의견이 설왕설래 이어졌다. 오정호 막료 박춘근(감사부 부장)이 아리송한 의견을 개진했다.“남수원 노회 박춘근 목사입니다. 총회실행위원회가 열려서 참 좋습니다. 그렇지만 규정에 있는 대로 시작하고 규정에 있는 대로 진행을 해야 되는 것이 마땅합니다. 우리 총회 규칙 개정은 딱 정해져 있습니다. 임원회가 이렇게 발의해 주셔서 감사하고 규칙부로 그냥 넘겨주시고, 규칙부가 총회에 가지고 나오도록 해야 합니다. 중요한 안건이 있으면 여기서 결의해야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이에 시시비비가 분명한 정금 총회장 김종준 목사가 설명했다.“결의하는 것 아니고요. 여기서 논의하고 규칙부로 보냈겠다고 하는 거지 여기서 결의하는 건 아닙니다.”다시 박춘근이 나서 말을 이었다.“우리 총회 규칙은 규칙부가 심의해서 가지고 나오고 개정도 이에 준합니다. 따라서 개정하고자 할 때는 규칙부가 가지고 나와 총회에 낼 일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결의는 하지 마시고 규정과 규칙대로 규칙부로 보내드리고 거기서 가지고 나오면 됩니다. 우리가 별도로 할 일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처리해주십시오.”해묵은 납골당 비리와 케케묵은 총신 부조리를 풀어헤친 정금 총회장이 차분하고 정중하게 말을 받았다.“네. 여기서 결의하는 건 아닙니다. 내가 말씀드리는 것은 여기서 설명을 드리고 규칙부로 넘기겠다 하는 것이고 추가할 의견이 있으면 의견을 듣겠다 하는 것입니다.”한 실행위원이 동의를 하려는데 이형만 목사가 발언권을 얻어 나왔다.“방금 박춘근 감사부장 말대로 규칙은 규칙부로 보내고 규칙부가 가지고 나와야 됩니다. 그런데 총회장님과 임원들이 생각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한 생각들을 임원회에서 잘 만들어서 규칙부에 넘겨 규칙부가 가지고 오게 하고 개정 사항이 있으면 임원회에 문의해서 규칙부가 시행하기로 동의합니다.”총회장이 말을 받았다.“네. 그러면 총회 규칙과 다른 규칙이나 규칙 사항이라든지 이런 것을 그러면 임원회에서 규칙부로 넘기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동의해서 재청하시겠습니까. 임원회에서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 하는 것을 규칙부로 넘기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 규칙과 정관사항은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은 환부환송유권해석 연구위원회 보고의 건입니다. 나오셔서 보고하시고 받을 것인지 여부를 진지하게 토론한 뒤 총회에서 결의한 대로 실행위원회에서 결의하기로 하겠습니다.” 환부환송유권해석 연구위원회 위원장 배만석 목사가 모두 발언했다. "104회 총회 수임 사항 중서울노회장 김관선 씨가 헌의한 총회재판국 판결을 채용하거나 환부할 때 환부의 의미를 정확히 해석해 달라는 질의가 있었습니다. 서광주노회장 노갑춘 씨가 헌의한 환부와 환송에 대한 유권해석의 건은 헌의안 329번과 330번은 병합하되 총회임원회에 맡겨 5인 연구위원회를 선정하여 연구하게 하고 총회실행위원회에 보고하여 시행하기로 가결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조직은 위원장 배만석 목사, 서기 유장춘 목사, 회계 박규철 장로, 총무 김정웅 목사, 위원 김정식 목사, 이렇게 구성이 되었습니다. 기존에 나와 있는 유권해석 자료들과 위원들의 연구자료 그리고 교회법률 전문가 전서노회 김문갑 목사와 전남제일노회 한기승 목사의 의견을 추렴하여 총회헌법 권징조례 141조가 말하는 환부의 의미를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조금 전까지도 좁혀지지가 않아서 격론을 벌이다가 올라왔습니다. 이 회의의 절차에 대해서는 서기가 나와서 어떤 결과를 가지고 왔는지 또한 우리 실행위원들께 어떤 협조를 구해야 될지는 이 시간 서기 유장춘 목사가 나와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서기 유장춘이 마스크를 귀와 턱에 걸친 채 서면을 들고 보고했다. 법학박사인 그의 보고는 환부의 의미는 '기각'이라는 취지를 견지했다. 제104회 정금 총회장 김종준 목사가 정리해줬다. 그는 사회적 거리두기라며 발언대를 총회장 앞 강단까지 옮겼다. 총회 법통 이형만 목사가 의전에 어긋난다 하자 옆으로 옮기고 유장춘 목사가 말을 이었다. "말씀드린 대로 저희가 총회 위임을 받아 일곱 차례 회의를 가졌고 노회로 환부, 총회로 환부, 각기 다른 의견을 가진 분들이 따로 만나 격론을 해서 최종 보고는 종전대로 이지만(기독신문에 난 대로 기각이라는 의미) 그렇게 우리 나름대로는 채택을 했지만(위원장 배만석 보고는 그 자리에 오기 전까지도 합의가 되지 않아 격론을 벌이다 왔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 위원회 안에서도 의견이 다르고 이렇게 언론 보도가 난 다음에 각각에게 해석하는 의미가 와서 결국은 다른 의견을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노회로 환부한다는 의미는 국가 법원에서도 파기 회송라는 법률 용어로 압니다. 그리고 우리 교단 헌법에서도 환송은 법률용어라는 것이 익숙합니다. 그런데 환부라는 의미는 사전적인 의미나 우리 교단 헌법이나 국가법원이나 국가기관에서도 재반하라는 의미가 없고 분규 주인에게 돌려주라는 것입니다... 저는 노회로 돌려주라는 입장인데요. (손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선을 주욱 그으며) 저~ 끄읏까지 가도 재판하라는 의미가 없습니다." 법학박사라는 그는 실행위원회에 간추린 보고를 한다며 장황한 설명을 이어갔다. "예컨대 수퍼마켓에서 절도를 했어요. 그러면 절도한 물건을 재판 중에 바로 수퍼마켓에 돌려주는 행위를 환부라고 말합니다. 재판하라는 말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은 최종 우리 안은 총회재판국 주문은 기각 또는 각하 취소 파기 환송을 잘 활용해서 환부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파기환송의 경우는..." 실행위원들이 술렁거렸다. '어렵다. 무엇을 얘기하는 거냐. 결론을 내라' 총회 논객 유장춘 목사가 말을 이었다. "결론이 이렇게 논쟁이 되니까 좀 설명을 드릴게요. (회중석 헛웃음과 혀차는 소리) 종전대로가... 68회기에서 총회재판국 판결을 재판국으로 보낸다는 한번 이외는 전부 노회로 환부했으니까 종전대로의 의미는 바로 노회로 환부한다는 거고 그러나 다툼이 있다는 말씀 절충안으로 총회재판국에서 파기환송을 하면 그런 경우는 총회재판국에서 받아들여서 노회에서 같이 재판을 하라는 의미로 그렇게 어렵게 어렵게 나왔습니다." 실행위원들 간에 쳐다보며 웅성거렸다. 총회장이 한마디 했다. "그런데 기독신문에 나온 것하고는 다르네요." 실행위원들이 맞장구치며 웃었다. 2020년 7월 21일자 기독신문은 '환부는 노회판결 확정의 의미'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환부환송유권해석연구위원회(위원장:배만석 목사)가 ‘환부’에 대해 해석을 내놨다. 연구위원회는 “총회 재판에서 환부는 노회로 보내는 것이며, 재판 없이 노회 판결을 확정하는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환송은 “재판국 판결문의 주문 중 하나로 상회가 하회로 보내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유장춘 목사는 <총회헌법>은 재판용어인 '기각'이라는 단어 대신 행정용어인 환부를 사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연구위원회의 해석은 7월 27일 총회실행위원회에서 보고될 예정이며, 이날 결정에 따라 곧바로 시행된다. 배만석 목사가 수습에 나서 유권해석 위원인 김정식 현 재판국장의 의견을 들어보자고 했다. 정금 총회장 깅종준 목사가 밝히 정리했다. "지금 유장춘 목사가 말씀하신 것은 노회로 보내는 것을 주장하고 있구요. 그 다음 김정식 목사님은 총회재판국으로 보낸다." 총회재판국장 김정식 목사가 발언대에 섰다. "... 상급심에서 하급심으로 보내는 것이 환송입니다. 환송이라는 단어가 3번 나옵니다. 제8장 70조에 보면 아래로 보내는 것이 환송이고 제9장 72조에 보면 ... 아래로 보내라 되어 있고 그 다음에 제82조에 보면 위탁판결의 경우 아래로 내려보낼 수 있다는 것이 환송에 대한 것입니다. 단 환부 건에 대해서 권징조례에 4번 나옵니다... 세 가지로만 할 수 있습니다. 첫째 총회재판국에서 총회 보고할 때 검사하여 잘 됐으면 채용을 하는 겁니다. 사회법정에서는 인용이라고 합니다. 그럴 때 잘못 판결했으면 기각입니다. 두번째 취소인데 무효가 되는 겁니다. 세번째 변경 이것은 형량이 많다 적다 변경해 내려보내는 것입니다. 네번째가 환부입니다. 주문 중에 네 가지가 있는 겁니다. 이것만 잘 하면 굳이 환부라는 말을 노회에 보낼 필요가 없습니다. 헌법이 잘 되었습니다... 총회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최고 치리회입니다. 이건 뭐냐. 최종심이다..." 총회장이 자제시켰다. "목사님 그것까지는 너무 복잡합니다. 환부는 총회재판국이냐 노회냐인데 총회재판국으로 보내는 것이 맞다죠." 실행위원회는 장시간 토론 후 거수 표결을 통해 '환부’는 총회재판국으로 돌려보내는 것이라고 결정했다.법비(法匪)란 법을 앞세워 권력의 앞잡이 노릇을 하거나 사리사욕을 취하는 자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중국사에서 이런 법비를 상징하는 인물이 한나라 무제 때의 장탕(張湯)이다. 사마천은 '사기 열전'에서 이렇게 평하고 있다."장탕은 사람됨이 속임수를 많이 쓰고 잔꾀를 부려서 남들을 잘 제어했다. 낮은 관리일 때 직권을 남용하여 상인들과 결탁해 이익을 취했다. 장안의 갑부 상인 무리와 몰래 불법 거래를 했다." 그는 이른바 혹리(酷吏)의 원조 격이다. 지금은 그저 인색하다는 정도의 의미로 쓰는 각박(刻薄)이란 말이 원래는 이런 혹리들이 법조문을 사안에 따라 이리저리 최대한 얇게 쪼개 혹은 윗사람 뜻에 맞추고 혹은 자기 사리사욕을 채우느라 써먹은 데서 나온 것이다.이미 법의 공정성은 안중에도 없었다. 장탕은 오로지 무제의 뜻에 따라 법을 집행했다. "그가 처리하는 안건 중에서 만일 황제가 죄를 엄히 다스리고자 하는 뜻이 보이면 냉혹한 관리에게 맡겨 엄중하게 집행했고, 황제가 죄인을 석방시키고 싶어 하는 뜻을 보이면 법을 가볍게 적용하고 공정한 관리에게 맡겨 너그럽게 처리했다."그가 사건을 처리해 멸문지화를 당한 사람은 이루 헤아릴 수가 없이 많았다. 그 업보 때문인지 결국 황제가 추진하려는 계획을 자신과 친한 상인들에게 흘려 이익을 공유하려 했다는 혐의에 걸려 자살했다. 이제 제106회 정금 총회장 김종준 목사를 통해 총회의 법 정신과 권위가 회복됐다. 차후 총회 법조문을 사안에 따라 이리저리 최대한 얇게 쪼개 혹은 거짓의 아비 마귀를 따르는 윗사람 뜻에 맞추고 혹은 자기 사리사욕을 채우느라 써먹은 데서 유래한 각박(刻薄)한 총회 법비(法匪)들이 줄어들기를 소망한다. 새들은 하루의 시작을 위하여 지저귀고 나는 다시 시작하자는 새들의 속삭임을 듣고 있네. 지나간 그 무엇과 아직 있지도 않은 그 무엇에도 신경을 쓰지 말기를 모든 것에는 갈라진 틈이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 틈새를 통하여 반드시 빛이 들어오리니. 천년 전에 하던 일을 바람은 아직도 하고 있다. 잔 나무 가지에 쉴 새 없이 와서 말을 거네고 있는 걸 보아라. 아, 보아라 보아라. 아직도 천년 전의 되풀이다. 그러므로 지치지 말 일이다. 사람아 사람아 이상한 것에까지 눈을 돌리고 탐을 내는 사람아. 여기서 이상한 것은 무엇일까. 돈, 명예, 허영, 남의 사람, 남의 목숨, 인간의 몫이 아닌 자연… 너무나 많은 것이 해당될 수 있다. 그래서 정금 총회장 김종준 목사는 성경에 근거해 말했다. "오늘 실행위원회를 통해서 정말로 모든 일들이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하나님의 법과 뜻대로 아름답게 진행이 돼서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너희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는 말씀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하는 그런 시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누대를 걸쳐 살아가면서 사람이 본성을 지키기가 힘들지만, 반드시 지켜내야 한다는 격려로 들린다. "이상한 사람을 이겨라, 사람."하는 말처럼... 성경은 말씀한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창 1:2-3 2026-09-25
-
[더굳뉴스] 신앙적 삶의 방향
2026년 9월 21일 제111회 총회장 정영교 목사와 신임 임원들이 111회기 첫 행보로 대동강변에서 죽은 28살의 토마스 선교사 기념관이 아닌 영광 염산교회(최성남 목사)를 방문했다. 그리고 순교의 삶을 살다 간 믿음의 선배들의 뒤를 이어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 앞에 순전한 마음으로 설 것을 다짐했다고 한다. 6·25전쟁 당시 염산교회는 공산군에 의해 1950년 10월 3일부터 이듬해 1월 6일까지 3개월동안 총 77명의 성도가 순교를 당했다. 당시 염산교회를 담임하던 김방호 목사는 몽둥이에 맞아 가족 8명과 함께 순교했고, 염산교회 1대 교역자였던 허상 장로도 야산으로 끌려가 아내와 같이 죽창에 찔려 죽음을 맞이했다. 김방호 목사는 피신하라는 간곡한 권유를 마다하고, ‘목자가 양을 버리고 떠날 수 없다’며 담대하게 염산교회를 지키다 생을 마감했다. 총회장 정영교 목사는 요한계시록 2장 10절을 본문으로 말씀을 전했다. “염산교회 순교자 77명은 생명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더 사랑했습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당신도 순교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뿐 아니라, ‘당신은 오늘 무엇보다 예수님을 귀하게 여기며 살고 있는가’를 묻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는 한 여름에도 가끔 가을이 느껴진다. 죽음도 그렇게 우리를 찾아올 것이다. 하지만 이건 거역할 수 없고 피할 수 없는 냉엄한 진실이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는 의미의 라틴어는 사실 죽음을 강조하는 말이 아니라 유한한 삶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강조하는 말이다. 예일대 철학 교수 셸리 케이건(Shelly Kagan)의 경우에는 좀 더 능동적이고 건설적 형태의 삶을 주장한다. 그는 저서 『죽음이란 무엇인가』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에게 그리 많은 시간이 주어지지 않기에 삶을 가능한 한 많은 것들로 채워 넣어서 최대한 많은 축복을 누려야 한다.” 그런데 삶을 가치 있는 것들로 채우기 위한 노력이 현재의 즐거움과 계속 충돌하는 경우에는 어쩔 것인가? 이에 대해 애플 창립자 스티브 잡스(Steven Paul Jobs, 1955년 2월 24일~2011년 10월 5일)는 2005년 스탠퍼드대학 졸업식 연설에서 명쾌한 해답을 주었다. “나는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며 내 자신에게 물어왔습니다. ‘오늘이 내 생애 마지막 날이라면 내가 오늘 하려는 일을 할 것인가?’ 그 대답이 ‘아니다’란 날들이 너무 많이 계속될 때마다 나는 뭔가 변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여러분이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으세요... 여러분의 시간은 유한하니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느라 허비하지 마세요. 죽음은 삶이 만든 유일한 최고의 발명품인 것 같습니다. 죽음은 삶의 변화를 가져오는 동력이니까요.” 하지만 인간은 자신의 죽음에 생각이 미치면 금방 두려움으로 전전긍긍하는 무기력한 존재일 따름이다. 우리가 끝내 죽음을 맞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결코 떨쳐낼 수는 없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을 하면서 공포를 느낄 수도 있고 삶에 감사할 수도 있다. 다행히도 그 선택은 우리 손에 달려 있다. 더욱이 우리가 살아 있을 때는 죽음이 우리를 찾아오지 않았고, 죽음이 우리를 찾아왔을 때는 우리는 이미 없다. 무엇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하고 노년을 부끄러워하고 안타까워한단 말인가.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년 8월 28일~1832년 3월 22일)는 말했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인생이 지향하는 방향은 나이듦이 얼마나 자랑스럽고 죽음이 얼마나 즐거운 여행임을 알고 누리게 하기 위한 것이다. 왜냐하면 나이가 들었다고 하는 것은 그만큼 살았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나보다 젊고 어리다는 것은 나만큼 누리지 못하고 살지 못한 것이니 얼마나 안타깝고 막막한 일인가. 지금 우리 사회는 고령화가 되면서 돈 없이 늙어 병들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으로 어지럼증과 소화불량으로 고생하는 노인들이 늘어가고 있다고 한다. 그 해결책은 돈이 아니라 바로 생각의 변화이다. 그 답은 성경에 있다. 성경을 읽어 얻게 되는 지혜는 노년의 삶을 신나는 소풍처럼 즐길 수 있는 방향과 길을 찾게 해 줄 것이다. 독일 낭만주의 풍경화의 거장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1774~1840)의 1824년 작 ‘얼음의 바다’는 차갑고 황량한 그림이다. 난파돼 얼음 바다 속에 잠겨있는 범선을 그렸다. 충돌의 순간 울려 퍼졌을 사람들의 비명소리는 이미 산산이 흩어졌고, 인간의 공포와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다시금 고요가 드러나는 그림이다. 자연은 거칠고 폭력적이며 무심함을 느끼게 한다. 성경은 말씀한다. 옛적에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만일 너희가 범죄하면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 흩을 것이요 만일 내게로 돌아와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 너희 쫓긴 자가 하늘 끝에 있을지라도 내가 거기서부터 그들을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 하신 말씀을 이제 청하건대 기억하옵소서 느 1:8-9 2026-09-23
-
[더굳뉴스] 제111회 총회장 정영교 목사 부총회장 송기섭 목사 손원재 장로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과거나 미래가 아닌 현재이다. 시간은 결코 고정되어 있지 않다. 미래는 현재의 노력으로 바꿀 수 있고, 과거는 현재를 기준으로 재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를 뜻하는 영어 단어 ‘present’의 다른 뜻은 ‘선물’이다. 그래서 현재는 우리에게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다. 두 번의 인생은 없다. 그러므로 오늘이 우리의 가장 어린 날이기도 하다. 2026년 9월 14일 “거룩으로 하나되어 미래로” 향하는 제111회 총회장에 정영교 목사가 당선됐다. 총대들은 만장일치 박수로 추대했다. 선거를 치른 부총회장은 송기섭 목사와 손원재 장로가 당선됐다. 송기섭 목사 826표, 손원재 장로 952표로 당선됐다. 삼파전 총회총무 선거는 총회 소나무 박용규 목사가 562표 최다 득표로 재선 위업을 세웠다. 국가의 운명을 가르는 결정적 요인은 지리나 문화, 민족성이 아닌 ‘제도(institutions)’이다. 국가가 실패하는 이유는 경제성장을 저해하거나 심지어 발목을 잡는 착취적 정치 제도를 기반으로 착취적 경제 제도를 시행하기 때문이다. 결국 제도의 선택, 즉 제도의 정치가 국가의 성패를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열쇠다. 1959년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는 신학적 노선과 WCC(세계교회협의회) 가입 문제로 예장합동과 예장통합으로 분열되었다. WCC(세계교회협의회) 가입과 에큐메니컬 운동을 지지하는 에큐메니컬 측(통합)과, WCC를 자유주의적이고 용공적이라며 반대하고 NAE(세계복음주의협의회) 입장을 고수한 보수 측(합동)의 대립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통합 총회와 갈라진 우리 합동 총회는 성경 우선주의 정치를 펼쳐야 더 많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될 것이다. 예전에 그랬듯... 성경은 말씀한다.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제비는 사람이 뽑으나 모든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 잠 16:32-33 2026-09-21
-
[더굳뉴스] 총회 소나무 박용규 목사 총무 재선 위업
2026년 4월2일 이란 중부의 이스파한 시 남쪽 산악 지대 상공에서 미 공군의 F-15E 스트라이크 이글 전투기가 격추됐다. 3000만 달러짜리 첨단 전투기가 이란군의 10만 달러짜리 견착식 지대공 미사일에 맞아 떨어진 순간이었다. 이 전투기에 타고 있던 2명의 장교 중 조종사 ‘알파(호출부호ㆍcode name)’와 무장관제장교(WSO) ‘브라보’는 서로 8㎞ 떨어진 곳에 착지했다. 알파는 추락 수시간 만에 구출됐지만, 브라보 대령은 척추와 어깨, 팔이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이란군의 추적을 피해 고도 2100m의 능선 위로 올라갔으며 추락 50시간 뒤 미군의 대규모 수색작전 끝에 구조됐다. 최근 미군 역사상 가장 복잡한 수색 구조 작전 중 하나였다. 격추된 브라보 대령은 CBS 인터뷰에서 “우리는 통상 항공기를 살리려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지만, 어느 순간 그게 불가능하다는 게 분명해졌고 곧 사출(射出)했다”고 말했다. 그는 신속하게 사출 결정을 내린 조종사이자 동료인 알파에게 “우리의 목숨을 구한 것에 대해 평생 감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브라보의 낙하산은 이란 미사일 충격 때 손상됐다. 사출한 뒤에 “어느 순간 위를 올려다 봤는데 낙하산이 보이지 않았다. 경험한 것 중에서 가장 두려운 순간이었다”고 기억했다. 브라보는 공중에서 잠시 멈추고 기도했다고 한다. “주여, 뜻대로 하옵소서. 하지만 제가 이 일을 헤쳐 나가게 된다면,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는 땅에 충돌하는 순간은 “화물열차에 치인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는 “어떻게 살아났느냐”는 질문에 “현대의 기적이다. 하나님이 내 삶에 베푸신 섭리의 증거라고 믿는다. 부상을 막아 주시진 않았지만, 생존 능력을 잃을 정도로 치명적인 부상은 입지 않게 하셨다”고 말했다. 충돌 충격으로 브라보는 척추와 팔, 어깨가 부러졌고, 발목을 접질렸다. 머리와 얼굴에도 여러 상처로 피가 흘렀다. 그럼에도 착지하자마자 즉시 착지 지점을 벗어났다고 말했다. “부상에도, 우리는 모두 직면하는 상황에 적응하고 극복하도록 훈련 받는다. 우리가 날고 있던 이란 중심부에는 높은 산과 계곡들이 있었다. 양쪽에 절벽이 있는 그런 계곡 중 하나에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브라보는 자신이 택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곳은 위쪽이라고 판단했고, 그래서 뼈가 부러진 상태에서도 자그로스 산맥의 7000피트(약 2134m) 높이 능선으로 걷고 기어올랐다. 추락 후 6시간이 지나, 미국은 조종사 ‘알파’의 위치를 파악했다. 주간에 21대의 항공기가 작전에 투입됐고, 구조에 직접 참가한 헬리콥터 2대는 총격을 받았다. 헤그세스는 “들어갈 때도, 나올 때도 내내 총격전이지만, 그들은 알파를 데리고 돌아왔다. 그리고 우리는 즉시 아직 절반밖에 끝나지 않은 일의 나머지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브라보는 여전히 실종 상태였다. 그리고 이란에서 첫날 밤이 찾아왔을 때에 브라보로부터 첫 메시지가 왔다. “하나님은 선하시다(God is good).” 브라보는 은신 가능한 장소를 찾자마자, 통신을 준비했다. 그는 그 메시지 의미를 이렇게 말했다. “내가 겪었던 모든 일을 돌아보고 생각할 수 있는 순간이 되었을 때, 나는 ‘하나님은 선하시다’고 보냈다. 하나님이 내가 이 모든 일을 겪고 여기까지 오게 하셨다고 인정하는 의미였다.” 격추된 지 50시간 후, 척추와 팔, 어깨가 부러졌고, 발목을 접질렸고, 물도 식량도 없었던 브라보는 미군 구조대에 의해 안전한 곳으로 이송됐다. 2026년 4월 5일 부활절 일요일 해가 떠오를 무렵이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제111회 총회가 9월 14일 14:00 서울 서초동 사랑의교회(오정현 목사)에서 서기 김용대 목사 인도로 개희예배를 드림으로 개회했다. 18일까지 4박 5일 일정으로 진행되는 총회에는 전국 160여 노회, 1600명 가량의 총대들이 모여 교단의 현안을 고민하고, 보다 성숙한 교단이 되기 위한 발전 방안을 함께 모색한다. 특별히 제111회 총회는 ‘하나로, 미래로, 거룩함으로’(레 11:45)라는 주제로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고백하며, 교단의 연합을 도모하고 미래 비전을 제시할 예정이다. 이어 총회선관위는 총회임원과 총회총무 선거를 진행했다. 삼파전으로 진행된 총회총무 선거가 어느 선거보다 뜨거웠고 치열했다. 개표 결과 박용규 목사는 562표를 얻어 최다 득표로 당선됐다. 한기영 목사는 452표, 박철수 목사는 413표를 얻었다. 이로써 박용규 목사는 선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총회총무 재임에 성공하고 총회를 위해 3년 동안 올곧은 직무를 수행하여 총회를 바로 섬기는 위업(偉業)을 쌓게 됐다. 손바닥으로 쓸면 소리가 약한 것이 손등으로 쓸면 소리가 달라진다는 것을 안다. 그것을 삶의 이면이라고 생각한다. 존재의 ‘면(面)’이 아니라 면과 면의 겹침, 즉 “면면(面面)”을 동시에 바라볼 때, 우리는 세계에 대한 “입체”적 이해에 도달한다. 대립물들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겹쳐 있고 서로에게 스며든다. 이 겹침과 스밈이 존재와 삶의 역학이다. 돌은 몇 개만 쌓아도 탑이다. 유심히 살펴보면 모든 것은 여러 층으로 쌓아 올린 탑이다. 무너지지 않게 균형을 잡아 공들여 쌓아 올린 탑이다. 교회도 노회도 총회도 임원회도 탑이다. 기초로 놓은 밑돌이 있고, 그 위에 올린 돌이 있어 탑이 완성된다. 완성된 하나의 탑은 우리에게 관계가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 준다. 인간은 관계적 존재이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유대계 종교철학자 마르틴 부버(Martin Buber, 1878년 2월 8일 ~ 1965년 6월 13일)는 말했다. “태초에 관계가 있었습니다. 세상에는 '나와 너(I and You)'의 관계와 '나와 그것(I and It)'의 관계가 존재하는 데 참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나와 너'의 관계를 맺어야만 합니다. '나와 너' 사이의 물리적 거리가 관계를 지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너한테 어떻게 했는데, 네가 나한테 이럴 수 있나'라는 말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말입니다. 내가 상대한테 투자한 만큼(그것이 물질이든 감정이든 관계없다) 상대는 그 결과물을 돌려주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우리는 실망이나 배신이라는 관계의 단절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모든 참된 삶은 만남'이라고 주장한 부버는 인간으로서의 가치와 존엄성을 잃어버리는 현대의 비극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참된 관계와 대화가 상실되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하였다. 그는 참다운 삶은 인격체가 조우하고 교섭하면서 가능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그는 모든 만남의 연장선은 '영원자 하나님'에게 향한다고 말하면서 유대적 신비주의의 일면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부버가 말하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사람과 하나님 관계의 비유적 표현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인간이 자신의 참다운 내면을 발견하기 위해서라도 '나와 너'의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말한다. 인간은 관계 속에서만 진정한 자아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총회장 한번하지 두 번하지 않는다'고 말한 제99회 총회장 박무용 목사처럼 제111회 총회 임원에 취임한 사람이나 못 들어간 사람이나 부버의 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하나로, 미래로, 거룩함으로’(레 11:45)라는 주제를 기억하고 되새기면서 '영원자 하나님'에게 향해야 할 것이다. 총회총무 재임 위업을 달성한 총회 소나무 박용규 목사는 말했다. “지지해 주신 노회와 총회총대들에게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총회의 변화와 혁신을 위해 재임을 허락하시고 3년의 시간을 주셨다고 생각합니다.”고 소감을 밝혔다. 총회 행정과 재정을 원칙 아래 실행하겠습니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디지털 행정 시스템을 완비하고, 이를 통해 노회와 목회현장을 위한 총회가 되도록 청정하게 힘쓰겠습니다.” 성경은 말씀한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가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가지 않겠노라 하였으며 렘 6:16 2026-09-15
포토슬라이드1 / 3
G.PEOPLE
-
[더굳뉴스] 세계 제일 목회자 소강석 목사와 김문기 장로 충성
하나님은 충성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충성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으신다 똑같이 힘든 상황 속에서도 유난히 밝은 사람들이 있다. 마치 해맑은 아이처럼, “괜찮아” “다 좋아질 거야” 하며 긍정적 태도를 잃지 않는 사람들. 이들의 뇌는 대체 어떠한 점이 남들과 다른 걸까? 이 흥미로운 주제를 미국의 한 행동과학자이자 뇌과학자가 연구했다. ‘강연하는 의사’로 잘 알려진 내과 의사 T. 디베네뎃 박사다. 그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아이들처럼 순수한 열정을 간직하고 즐겁게 세상을 살 수 있는 사람들을 가리켜 ‘유쾌 지능(Playful Intelligence)’ 이 타인에 비해 높다고 말한다. 유쾌 지능을 높이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디베네뎃 박사는 저서 ‘유쾌함의 기술’ 에서 세 가지 키워드를 꼽는다. 첫째는 ‘상상력’이다. 어떠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마음의 스케치북에 상황을 재구성해 새로운 그림을 그리는 능력이다. 이 능력은 당신을 좀 더 용감한 모험가로 만들어주고 타인과 더 잘 공감하게 만들어준다. 둘째는 ‘사교성’. 우리 모두는 한없이 외로운 개인이지만, 공동체를 이루고 다른 사람들과 연결될 때 가장 큰 기쁨과 행복을 느낄 수 있게 진화했다. 셋째는 ‘유머’인데, 어떤 절망이 닥치더라도 회복 탄력성을 가지고 어려운 일을 넘길 수 있게 해준다. 넷째는 ‘즉흥성’, 마지막은 ‘경이감’인데 이 둘은 모두 우리가 사소한 일상의 틀을 깨뜨리고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해준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을 저질러보고, 작은 일에서도 기적과 같은 감동을 느끼기 위해 꼭 필요하다. 정곡을 찌르는 웃음은 강력한 무기가 된다. 보카치오(1313-1375)가 '수세기동안 어둠 속에 갇혀 있었던 회화예술에 빛을 던진 사람'이라고 높이 평가했던 사람이 있다. 그는 14세기 이탈리아의 화가와 건축가 조토(Giotto di Bondone, 1267-1337)이다. 그는 재치 있는 응수로 사회적 지위의 경계선을 허물고 나폴리 군주와 우정을 맺었다. 어느 찌는 여름날 군주가 조토에게 말했다. “내가 자네라면 그림을 그만 그리겠네.” 이에 조토가 이렇게 응했다. “저도 그럴 것입니다. 제가 폐하라면 말이지요.” 똑같이 힘든 상황 속에서도 유난히 밝은 사람들이 있다. 마치 해맑은 아이처럼, “괜찮아” “다 좋아질 거야” 하며 긍정적 태도를 잃지 않는 사람들. 이들의 뇌는 대체 어떠한 점이 남들과 다른 걸까? 이 흥미로운 주제를 미국의 한 행동과학자이자 뇌과학자가 연구했다. ‘강연하는 의사’로 잘 알려진 앤서니 T. 디베네뎃 박사다. 그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아이들처럼 순수한 열정을 간직하고 즐겁게 세상을 살 수 있는 사람들을 가리켜 ‘유쾌 지능(Playful Intelligence)’ 이 타인에 비해 높다고 말한다. 세계 처음으로 본격적인 자기계발서를 만들어낸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데일 카네기(Dale Breckenridge Carnegie, 1888-1955)는 미주리 주 매리빌의 농장 출생이며 미주리주 워렌스버그에 위치한 중앙 미조리 대학교(University of Central Missouri)를 졸업한 뒤 네브래스카에서 교사, 세일즈맨 등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1912년 YMCA에서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대화와 연설 기술을 강연하면서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 사례를 중심으로 진행하는 것이 특징이며 책 또한 그러하다. 그는 그의 저서 '생각이 사람을 바꾼다'에서 말했다. “유쾌한 사람은 자기 일에만 몰두하는 사람이 아니다. 때론 자신의 일을 전부 제쳐놓고 타인의 문제에 전력을 쏟는 열정이 있는 사람이다. 타인에게 자신의 힘을 나누어주고 마음을 열어주는 것은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 방법이다.” 그런 경구에 딱 맞는 유쾌한 인물이 바로 새에덴교회 소강석(蘇康錫, 1962. 2. 22 ~ ) 목사이다. 유쾌한 사람은 농담을 적절하게 잘 활용한다. 소강석 목사는 전 세계 교인을 사로잡는 설교에서 박근혜 대통령도 스스럼없이 웃게 하는 유쾌한 유머로 시작해 누구나 감동하는 명쾌한 말씀으로 마무리한다. 2016년 3월 3일 오전 7시 서울 코엑스 D홀에서 열린 제48회 대한민국 국가조찬기도회는 국가의 번영과 국민의 평안을 기원하는 3.000여 명의 국내외 각계 지도자들이 모인 가운데 성공적으로 열렸다, 이날 기도회에는 박근혜 대통령도 함께 참석해 ‘통일을 가슴에 품고 기도하는 민족’이란 주제와 ‘성경적 섬김, 나부터 개혁, 새 마음 국민통합, 경제 재도약, 한반도와 세계 평화’라는 부제 아래 진행되었다. 이날 설교자는 소강석 목사였는데 성경적 세계관과 가치관을 기반으로 대한민국의 근대사에 기여한 한국교회의 역할과 미래의 통일비전을 제시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소강석 목사의 특기인 즉흥 멘트가 박근혜 대통령을 환하게 웃게 만들었다. “세계의 몇몇 유명 여성 정치인들이 있는데 박근혜 대통령께서는 완전 차별화가 되셨습니다, 그들도 다 나름대로 성공한 정치인들이지만 대부분 육중한 몸매를 자랑하고 튼튼한 거구를 자랑하는 분들입니다. 그러나 우리 대통령님께서는 여성으로서의 미와 그리고 모성애적인 따뜻한 미소까지 갖고 계십니다.” 1963년 8월 중순 무려 25만 명의 사람이 미국 워싱턴에 있는 쇼핑몰 앞에 모였다. 초대장도 없고 날짜를 확인할 수 있는 웹 사이트도 없었던 시절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Jr. 1929. 1. 15. ~ 1968. 4. 4.) 목사의 연설을 듣기 위해서였다. 킹 목사는 미국에서 가장 연설을 잘하는 사람도 아니었고 또 인권 탄압으로 고통을 받던 유일한 흑인도 아니었다. 하지만 킹 목사가 다른 인권운동가와 다른 점이 딱 하나 있었다. 그는 이것이 잘못되었다, 저것을 바꿔야 한다고 주문하지 않았다. 대신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라며 자신의 신념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했다. 그의 신념을 믿은 사람들은 그걸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고, 주변 사람들에게 열광적으로 전파했다. 워싱턴의 여름 뙤약볕 아래 그 많은 사람이 모여든 것은 흑백 갈등 차원을 넘어 미국의 미래에 대한 신념을 공유했기 때문이었다(25%의 관중이 백인이었다고 한다). 유쾌한 목사 소강석은 킹 목사처럼 자신의 신념을 전하는 목사이기도 하다. 그는 본래 영성에 도취된 퓨리티(purity) 지향의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법무장관과 국정원장을 지낸 김승규 장로를 만나 반기독교 세력들의 전략과 공격 그리고 사상적 배경을 알게 되었다. 그 뒤부터 소강석 목사는 교회 생태계를 파괴하는 반기독교 세력에 맞서 이슬람 세력 억제와 동성애 입법 방지 등을 위한 사상전(思想戰)의 선봉장으로 교계 유니티(unity) 지향의 목사가 되었다. 그래서 그의 신념의 두 축 퓨리티와 유니티를 위해 한국교회를 섬기고 교계 연합을 위한 한 줌의 다리와 불씨가 되고자 헌신하고 있다. 유쾌한 목사 소강석의 삶과 설교 앞에 독자는 즐거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앉아야 할 것이다. 그는 한국의 대표 목사들 가운데 한 사람이지만 어떤 흠이나 결이 없는 가장 유쾌한 목사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를 세계 최대 규모의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세운 조용기 목사(趙鏞基, 1936년 2월 14일 ~ 2021년 9월 14일)도 아주 좋아했다. 유쾌한 목사 소강석은 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대중 소통 매체인 시성(詩性)을 지닌 시인이기도 하다. 2015년 천상병귀천문학상 대상 수상 시집 '어느 모자의 초상'에 이런 시가 있다. 빈 의자 지하상가 개척교회 예배 시간이 되어도 사람 한 명 없어 장모님과 아내, 아이만 놓고 설교를 하려면 마음이 곤고하여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가슴 아팠던 나날들 토요일 저녁이면 지하상가 교회 차가운 빈 의자들을 붙잡고 눈물로 드렸던 기도 “주여, 사람을 보내주소서, 한 명이라도 보내주시면 생명을 걸고 사랑하겠습니다“ 그 눈물의 기도 하늘에 닿아 목자의 피리소리를 따라 몰려오는 양떼들처럼 구름 같은 성도들을 돌보는 당신의 목동이 되었으니 아, 지하실 교회 차가운 빈 의자여 어둠 속에서 빛나던 영혼의 별빛이여 고독한 소명자의 눈물이 적신 사랑의 목마름이여 이 시에 대해 문학평론가 김순진 시인은 다음과 같이 평하고 있다. '빈 의자'는 소강석 시인이 가락동의 개척교회 시절 겪은 이야기다. 소강석 목사는 1988년 가락동의 한 상가 지하에서 개척교회를 시작했다. 정말 피눈물 나는 이야기다. 시인의 말처럼 “예배 시간이 되어도 사람 한 명 없어 장모님과 아내, 아이만 놓고” 설교를 해야만 했던 심정은 어떠했을까. “지하상가 교회 차가운 빈 의자들을 붙잡고 눈물로” “주여, 사람을 보내주소서, 한 명이라도 보내주시면 생명을 걸고 사랑하겠습니다”라는 구절은 어쩌면 예수님께서 직접 들려주시는 음성으로 들린다. 소강석 목사의 간증을 들으면 ‘하나님은 꼭 이루어주신다’는 말씀을 믿게 된다. 소강석 목사는 간증한다. “저는 88년도 가락동에서 월세로 처음 교회 개척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함께할 개척 멤버나 경제적인 지원 없이 분당으로 옮겨와 그야말로 맨손으로 지금의 새에덴교회를 시작했습니다. 개척 3년 만에 300명 장년 성도를 돌파하게 되었고 4년 만에 교회 건축 대지 400평을 구입했습니다. 그리고 7년 만에 1030평에 달하는 교회 건물을 건축하게 되었으며 1500명 성도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제가 특별해서도 아니고 지역적인 조건이 좋아서도 아닙니다. 오직 7년 동안 하나님 앞에 엎드렸던 눈물의 기도와 전적인 하나님 은혜일뿐입니다.” 이제는 4만여 명의 성도가 새에덴교회에서 예배를 드린다. 새에덴교회가 이렇게 빠른 기간 내에 큰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세계 교회 역사에서도 이례적인 일이다. 여기에는 이 시에서 보이듯 성도들을 내 부모님이나 형제처럼 아끼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라 생각해 본다. 내가 발전하고 싶은 것처럼 성도들의 발전을 돕고 그들의 미래와 행복을 같이 고민했기 때문이라 생각해 본다. 그리고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무조건 믿고 의지하여 따랐기에 가능할 수 있었다고 본다. 암스테르담에서 태어난 포르투갈계 유대인 혈통의 철학자 스피노자(Baruch Spinoza, 1632년 11월 24일 ~ 1675년 2월 21일)는 진(眞)보다도 선(善), 인간의 행복에 커다란 관심을 기울인 철학자라는 것은 자주 지적된다. 그의 저서 라틴어 제목 '에티카'(윤리학')가 가리키는 바와 같이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도덕을 해명하는 시도(試圖)이다. 그래서 ‘감정의 윤리학자’로 불린 스피노자가 '에티카'에서 정의한 인간의 48가지나 되는 감정엔 ‘억울함’이 들어 있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소강석 전도사도 무시당한 기분이 들어 억울해서 씩씩거리며 한참 기도하고 있는데 누가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누군가 보니 아까 그분이었다. 아까는 쌀쌀 맞았는데 지금은 부드럽게 그를 대하니 그는 어리둥절했다. “기도하시는 데 실례합니다만 아까는 정말 죄송했습니다. 깊이 기도하고 있는 데 말을 걸어 그만 무심코 그런 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인연으로 알게 된 정금성 권사님은 교회를 사랑하고 주의 종을 잘 섬기시는 분이었다. 그리고 세계 제일 목회자 소강석 목사의 장모님이시다. 세월이 흘러 광주에서 신학교를 마치고 서울에서 신학원을 다니게 되었다. 그 당시 그는 기회만 있으면 남산에 올라가 서울 시가지를 내려다보고 기도하며 이상을 키웠다. “저 넓은 서울 땅! 과연 하나님은 나를 어느 쪽으로 인도하실까. 어느 쪽에서 개척을 하게 하실까. 아브라함에게 동서남북을 바라보라고 하신 하나님! 저도 동서남북을 바라봅니다. 저의 갈 길을 보여주소서. 제가 가야 할 곳을 가르쳐주소서. 그리고 개척에 필요한 물질도 예비해 주실 줄 믿습니다.” 서울을 내려다보며 이런 기도의 영감 속에 취하다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이 흘러나오곤 했다. 그때마다 당시 유쾌한 전도사 소강석에게 생각나는 노래가 있었다. “영등포로 갈까요, 청량리로 갈까요...” 1986년 소강석 목사는 신학교 전 과정을 수박과 오이를 팔거나 허드렛일을 하는 가운데 소명의 길을 밟은 뒤 목사안수를 받으면 비전이 현실로 나타날 것이란 기대는 몽상이었다, 소 목사는 부교역자로 받아주는 교회 하나 없는 척박한 현실을 다시 한 번 경험하고는 하나님의 비전을 기억하고 기도하며 소망 중에 살아가야 했다. 서울에서 개척한다는 믿음을 갖고 물색한 지역은 그마나 가장 적은 비용으로 개척을 할 수 있는 ‘가락동’일대였다. 1,000만원 보증금에 월세 48만원. 지하 23평 공간에서 소강석 목사는 첫 예배를 시작했다. 주일 낮 예배는 몇몇 주민들의 참석이 있었지만 저녁예배는 장모님과 부인 그리고 어린 자녀들만 참석해 힘겨웠다. 그나마 부인은 어린 자녀 뒤치다꺼리 하느라 뒤편에 있어서 장모님과 마주 대하는 설교시간은 매우 어정쩡한 상황이었다고 회고하곤 한다. 심지어 예배시간에 오가는 쥐새끼들 때문에 경건해야 할 예배는 어수선 그 자체였다. 그는 목회자로서 소명을 받은 자신의 삶을 기억하며 낮에는 전도하면서 밤에는 교회당에서 새우잠을 청하고 ‘작정기도 100일 작전’에 돌입하기로 결심한다. 이 때가 비로 후원자는 오직 하나님뿐임을 새롭게 각성했던 시기였다. 더 많은 신자를 보내달라고 호소하며 밤을 지새고 또 낮에는 전도하는 반복된 생활하기를 수 백회, 소 목사는 하나님이 주신 부흥의 비전을 확신하는 가운데 고달픈 하루하루를 믿음으로 버텨나갔다. 94년 6월 분당 시대의 개막과 함께 순식간에 부흥하기 시작한 성도들은 5000여 명에 달하고 2005년 7월 3일 용인시 죽전동 산 50번지 1만여 평 규모 프라미스 콤플렉스(언약복합건물) 입당 1988년 11월 가락동 지하에서 처음 예배를 시작한 이후 94년 6월 분당 시대의 개막과 함께 순식간에 부흥하기 시작한 성도들은 5000여 명에 달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 이상 비좁은 공간 속에서 다음 세대를 책임질 민족의 지도자를 양성하는 교육 시설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 소강석 목사는 2001년 3월 평양을 방문할 기회를 통해 통일한국 시대의 비전을 볼 수 있었다. 특별히 평양에 있는 창광 유치원을 방문하면서 통일한국시대를 대비한 인재 양성의 절실함을 깨닫게 된다. 북한은 영향력 있는 지도자를 창광 유치원에서부터 기르고 있었다. 그래서 북한에서 교회에 돌아온 순간부터 우리의 자녀들을 말씀으로 훈련시켜 통일 한국 시대를 짊어지고 갈 지도자로 배출시켜야 한다고 외쳤다. 그 결과 3M(맨손, 맨몸, 맨땅)으로 시작된 새에덴교회의 역사는 창립 17년 만인 2005년 7월 3일 용인시 죽전동 산 50번지에 1만여 평 규모의 프라미스 콤플렉스(promise complex :언약복합건물)에서 첫 예배를 드렸다. 2016년 7월 27일 약속보다 반시간 늦은 오후 2시 30분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며 도착한 새에덴교회 집무실에서 소강석 목사를 만났다. 그는 내가 늦는 바람에 점심을 여유 있게 먹었다고 웃으며 예의 그 달변의 입을 먼저 열었다. -"목장 기도회 때 제 설교 들으셨나요." “광명교회에서 못 들었습니다.” -"뭐냐면 지금 한국 교회가 빨리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목회 생태계 교회 생태계 환경을 지키고 복원하는 것입니다. 왜 여기에 관심이 있느냐. 생태계가 무너지면 우리 생존이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환경이 사막화 되고 황폐하게 됩니다. 우리 한국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교회 생태계가 급속도로 무너져가고 있습니다. 지금 이걸 모르니까 교단 안에서 분쟁이 잦은 겁니다. 이거 아는 사람 우리나라에서 몇 안되요. 이건 내가 국정원장을 지내신 김승규 장로에게서 배웠습니다." "명성교회 장로죠." -"네 아닙니다. 할렐루야 교회 장로죠. 그분한테 배워가지고 또 따로 전문가들한테도 배웠습니다. 제가 얘기 좀 쭉 하겠습니다. (인쇄물을 보이며) 여기 있지만 글과 말은 또 다릅니다. 영국이 어떤 나라였습니까? 전 국민이 크리스천이었습니다..." 소강석 목사의 기억력은 뛰어났다. "영국교회는 사상전과 영전을 하지 못해서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세계의 부흥 운동과 선교 운동을 주도한 나라였습니다. 그래서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영국에도 성경의 권위에 도전을 하고 교회 생태계를 파괴하려고 하는 반기독교적인 정서가 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반기독교적인 정서는 반기독교적인 문화와 제도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문화와 제도가 입법화로 가게 되었습니다. 영국교회는 입법화로 가기 전에 사상전과 영전을 잘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영국교회는 이런 시대적 트렌드를 읽지 못했습니다. 이런 시대적인 흐름을 알고 교회들이 함께 연합하여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반기독교적인 사상과 정서를 막아냈어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했습니다. 영국교회의 대부분의 성직자들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는 노터치하겠습니다. 정치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정치인들에게 맡기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저 기도하고 복음을 전하고 개교회의 목양을 하는 데만 집중을 하겠습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한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35년, 40년 후에는 영국교회가 완전히 박살나 버리게 되었습니다. 전 국민이 기독교인이나 다름없던 나라가 지금은 기독교 인구가 겨우 2% 밖에 안 되는 나라가 되어 버리고 말았어요. 반대로 이슬람은 8%가 되어 버렸습니다. 게다가 얼마나 테러문제로 몸살을 앓고 두려워 떨고 있지 않습니까,,, 한국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교회도 사상전을 하고 영전을 잘해야 할 때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한국교회가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세 가지 당면 과제가 있습니다. 첫째, 목회 생태계와 교회 환경을 복원해야 합니다. 한국교회에 반기독교적인 정서와 공격이 쓰나미처럼 밀려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교회를 개혁하고 부흥의 터보 엔진을 달아야 합니다. 아무리 목회 생태계가 복원되어도 교회가 개혁되지 않고 부흥하지 않으면 안 돼요. 셋째, 다음세대를 준비해야 합니다. 한국교회는 어린이와 청소년, 청년들을 교회로 끌어들이고 신앙을 계승해주는 목회를 해야 합니다. 과감하게 교회 교육에 투자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 중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바로 목회 생태계를 복원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왜 생태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줄 아십니까? 왜 세계 각국의 정상들이 기후변화협약까지 하며 자연 생태계 복원을 위해 목매고 있습니까? 환경, 생태계가 파괴되면 우리의 생존이 위협을 받고 생명 사회가 타격을 받기 때문입니다... 관상이라는 영화를 보면 조선 최고의 천재 관상가 김내경이 어느 바닷가에서 한명회를 만나 이런 이야기를 하잖아요. '파도를 일으키는 것은 바람이거늘, 나는 파도만 보았지 바람은 보지 못했다.' 눈에 보이는 사람들의 관상만 보았지, 보이지 않는 시대정신과 흐름을 읽지 못했다는 거예요. 우리 한국교회도 파도만 보았지 바람은 보지 못했어요. 다시 말하면 반기독교적인 정서와 공격이 왜 불어오는가, 그런 파도를 일으키는 원인인 바람을 볼 수 있어야 했어요. 그리고 그걸 보고 한국교회가 깨어 일어나고 연합하여 사상전, 영전을 잘해야 한다는 것을 깨우쳤어야 해요. 그런데도 한국교회는 계속해서 이러한 사상전, 영전을 할 필요성을 못 느꼈어요. 다 개교회 목회와 개교단 위주의 각개전투에만 머물러 있었어요. 아니, 한국교회는 다툼과 분열의 블랙홀에 빠지게 된 거예요. 개교회도 계속 서로 내부 파워게임을 하는 교회가 많았고 교계가 교권 싸움으로 연속을 했어요... 그러면 우리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목회 생태계를 지키고 복원할 수 있습니까? 1) 미자립교회를 지원하는 일에 앞장서야 합니다. 저도 가락동 23평 지하실에서 개척교회를 할 때 그런 경험을 많이 했어요. 개척 멤버 한 명 없이 지하실에서 개척해서 죽어라고 전도하여 양육해 놓으면 주변에 깨끗하고 시설 좋은 교회로 가 버리는 거예요. 저도 과거에 이런 아픔을 겪어 보았어요. 목회생태계가 살아 있을 때는 작은 교회에서 큰 교회로 사람이 옮겨도 또 다시 새로운 성도들이 왔지만, 지금은 더 이상 작은 교회에 교인들이 오지 않아요. 왜냐면 이런 수평이동의 선순환 생태계가 다 깨져버렸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는 로칼 처치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에요. 공교회로 존재해야 해요. 우리 지역에도 공교회가 이루어져야 하고 교단 안에서도, 한국교회 안에서도 공교회를 이루어야 해요. 선교신학자 랄프 네이버는 오늘날의 대부분의 지역교회 담임목사들은 교회가 성장할수록 자신만의 성을 쌓으려고 한다고 지적하였습니다. 그러지 말고 그 지역 안에 하나님의 도성을 쌓아야 한다고 권면을 합니다. 다시 말하면 자신만의 캐슬 빌더(castle builder)가 되지 말고 하나님의 킹덤 빌더(kingdom builder)가 되라고 하는 거예요. 2) 신앙과 신학의 순수성을 지켜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고 신앙생활 하는데 신앙의 순수성과 신학의 퓨리티(purity)가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요. 그러므로 우리는 이 퓨리티의 신앙에 목숨을 걸어야 해요. 마귀가 교회를 무너뜨리는 전략 중의 하나가 신앙의 순수성과 신학을 무너지도록 하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구약에서는 언약백성들에게 가장 중요한 게 정결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레위기의 가르침대로 정결을 갖추어야 하나님의 거룩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레위기를 보면 거룩(holiness)은 하나님의 영역이고 순결(purity)이나 정결(cleaness)은 인간의 영역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거룩하니 우리도 거룩하라고 하지 않습니까? 레위기의 목표는 거룩이지만 거룩에 참여하고 이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전제 조건이 있어요. 그것이 바로 정결이라는 거예요. 그러므로 하나님을 섬기고 신앙생활 하는데 정결한 영성, 순결한 신앙에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더렵혀진 신부가 어떻게 신랑 앞에 떳떳하게 설 수 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우리가 신앙의 정결, 순수성을 잃어버리면 하나님의 거룩에 참여할 수 없어요. 일제시대 때도 얼마나 신사참배 문제나 이런 것을 가지고 한국교회를 더럽혔습니까? 영적 간음을 하게 된 것이에요. 당시 조선의 지식인들뿐만 아니라 종교인들까지 신사참배는 우상숭배가 아니라 문화적 행위라고 변명하며 신사참배에 동참했어요. 그때 주기철 목사님은 아녀자에게 정절의 의무가 있듯 신앙인에게는 믿음의 정절이 있어야 한다며 끝까지 신사참배를 거부했어요. 그러나 계속되는 일제의 폭압으로 감리교, 성결교, 구세군 등 대부분의 개신교단들이 신사참배를 결의했고 조선예수교장로회마저 1938년 9월 총회에서 신사참배를 결의하고 말아요. 그때 주기철 목사님은 “한국교회가 세상의 명예와 권력 앞에 믿음의 정절을 포기하고 무릎을 꿇었다”며 통회합니다. 그리고 “칼날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한, 내가 그 칼날을 향해 나아가리라”고 외치며 순교의 길을 가다가 결국 광복을 1년 앞둔 1944년 옥중에서 죽음을 맞습니다. 부족하지만 저희 교회가 지원을 해서 일사각오라는 영화로 제작이 되어 상영이 되었어요. 저는 그 영화를 보면서 얼마나 마음속으로 울고 또 울었는지 모릅니다. '과연 우리는 주 목사님의 발끝이라도 따라갈 수 있겠는가. 산정현교회를 생각할 때, 오늘날 한국교회의 자화상이 얼마나 부끄러운가.' 오늘날 우리의 잘못으로 목회 생태계가 깨져가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3) 서로 연합하여 반기독교적인 정서를 막아내야 합니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반기독교 정서가 교회를 에워싸고 있습니다. 특별히 한국은 반기독교적인 정서뿐만 아니라 안티크리스천의 공격이 얼마나 주도적이고 전략적으로 공격해 오는지 몰라요. 물론 이런 일은 어제 오늘만의 일이 아닙니다. 초대교회 때는 핍박과 박해로 무너뜨리려고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아주 보이지 않게 사상전 영전으로 공격해 오고 있어요. 그런데 이 사상의 기본은 신마르크스주의입니다. 신마르크스주의(Neo Marxism)는 마르크스주의와 프로이드 심리학을 아주 교묘하게 접목하여 만든 것인데 한마디로 무신론적 사회주의와 휴머니즘이 절묘하게 결합된 사상입니다. 내용은 무신론이지만 겉으로는 평등, 인권, 박애, 나눔, 섬김, 정의, 소수자의 권익보호, 공동체 등을 추구합니다. 바로 이 네오마르크스주의가 우리나라에 유입되면서 새로운 진보 사상과 신좌파 그룹을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평등 인권 박애 나눔 섬김 정의 소수자 권익보호 공동체 등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여기에 무신론적 사상이 끼어 있어요. 그러다보니까 성도 평등을 부르짖으면서 동성애를 주장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니 동성애를 통한 성정치를 펼치기 시작한 거예요. 신마르크스주의를 창안한 빌헬름 라이히가 근로자들의 정신치료를 해주다가 발견한 사실이 있었는데, 좁은 국민주택에서 사는 노동자들이 신경증이나 노이로제에 많이 걸려있더라는 거예요. 그 이유를 분석해보더니 성적인 억압 때문이었다는 겁니다. 작은 집에서 부모님도 모시고 애들도 우글우글하지요, 그러다보니 부부간에 원만한 성생활을 못해 성적 억압이 되어 있더라는 겁니다. 그 때 그는 깨달았어요. '아, 이것이다. 사람은 성적 욕구를 잘 풀어줘야 한다. 누구나 평등하게 성적 욕구를 발산시켜줘야 한다.” 그래서 그는 성정치를 주장하기 시작했어요. 정치가 무엇인가? 인간의 삶의 문제를 현실적으로 해결해 주는 것이 정치가 아니던가? 그렇다면 인간에겐 성적인 억압부터 풀어줄 필요가 있다. 제한받고 있는 성적문제부터 해방시켜줘야 한다.' 바로 이것이 그가 주장한 성정치 이론이었습니다. 성정치 이론에 의하면 억압된 성적 욕구는 사람을 더 불행하게 만들고 파괴적으로 만든다는 거예요. 그래서 개인의 성적 욕구를 자연스럽게 발산하고 자유롭게 분출할 때 개인도 행복하고 이 세상 누구나 평등하게 사는 새로운 마르크스주의의 세상을 맞는다는 거예요. 그러니 그들은 가정의 고정관념부터 깨는 운동을 합니다. 가정은 남자와 여자가 결합해서 이루는 것만이 아니라는 겁니다. 동성애를 하는 사람도 얼마든지 남자끼리 부부가 되어 가정을 이루고 여자끼리도 마음만 맞으면 얼마든지 가정을 이룰 수 있다는 거지요. 따라서 신마르크스주의의 가장 큰 공격 목표는 기존 제도권의 가정과 학교에요. 그래서 어떻게든지 가정과 학교를 무너뜨리려고 해요. 그리고 교회를 공격해요. 특별히 대형교회를 공격해요. 그래서 이러한 마인드를 가진 사람은 학교에서 가르치는 전통 교육부터 공격하는 거예요. 그리고 전통적인 성의 규범과 구조에서 해방을 하도록 충동하고 선동을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지자체에서는 어떻게든지 학생들의 인권조례를 만들려고 하는 거예요. 그리고 교회를 무너뜨리려고 안절부절 합니다. 교회가 동성애를 반대하고 간음하지 말라고 가르치거든요. 이것이 바로 성정치와 네오마르크스주의의 목표이거든요. 그러면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지 모릅니다. '목사님! 그래도 그 사람들 불쌍하니까 그냥 자기들 맘대로 살도록 놔두면 안 됩니까.' 물론 저도 그러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꾸 그들이 소수차별금지법을 만들려고 하니까 그런 거예요. 자기들 좋은 대로 살면 누가 뭐라 하겠어요. 동성애자들을 보호한다고 소수차별금지법이 통과되면 다수의 인권이 역차별을 받게 되거든요. 특별히 소수차별금지법이 통과되면 목사가 교회에서 이런 설교도 못해요. 이런 설교 했다간 당장 조사를 받고 처벌을 받게 돼요. 그러면 목회 생태계가 저절로 파괴될 수밖에요. 또 어떤 분은 우리나라에 동성애자들이 몇 명이나 되고 영향력이 얼마나 있다고 그렇게 난리를 피느냐고 생각할 분도 있을 거예요. 그런데 동성애를 연구를 하다 보니까 동성애가 이슬람이나 이단, 안티 세력과도 다 연결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갈수록 이 세력이 엄청나게 커져가고 있습니다. 이슬람에 대해 말하려면 한이 없겠습니다. 이슬람은 절대로 기독교를 용납하지 않는 종교입니다. 그런데 더구나 이러한 세력이 안티크리스천들과 연합을 해서 한국교회를 전략적이고 주도면밀하게 공격을 해 오고 있어요... 그래서 반기독교적인 정서와 공격을 막아내는 일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고 사도신경을 고백하는 그런 교회라면 함께 연대해서 이슬람을 막아내고 동성애를 막아내고 이단을 막아내야 해요. 그렇게 해서 목회 생태계를 보존하는 것이 필요해요. 물론 이 일이 어려운 일이기도는 합니다. 기독교 2000년의 역사는 퓨리티(purity)와 유니티(unity)의 갈등의 연속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이 둘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지 못하니까 내부의 소모전을 하다가 공멸의 나락으로 추락했던 거예요... 물론 우리 한국교회도 과거에는 암묵적으로 교회 간의 경쟁, 교단 간의 경쟁이 있었어요. 그러나 지금은 달라요. 미국도 보십시오. 미국이 기독교 국가였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런 기독교 국가도 빌리 그래함 이후에 연합의 리더십을 발휘하는 지도자가 없으니까 다 개교회주의로 빠져 버렸어요. 개교회, 개교단주의에 빠지고 큰 교회 목사들 간에 스타플레이를 하다 보니까 세상에 동성결혼법이 통과되어 버리고 말았어요. 여러분은 '신은 죽지 않았다'라는 영화를 보셨습니까. 세상에 수업시간에 교사가 예수님 이야기를 했다고 고소를 당해 법정까지 서게 돼요. 미국도 이런 나라가 되어 버렸습니다. 제가 작년에 미국 연합집회를 갔을 때 동성결혼법이 통과 되었어요. 그런데 제가 집회를 했던 교회에 7천 만이나 되는 큰 교단을 이끄는 총회장이 참석을 한 거예요. 우리나라 인구보다 더 많은 성도들을 이끄는 총회장이에요. 그래서 그날도 총회장 전용기를 타고 올 정도예요. 그런데 그 사람이 인사말을 하는데 자기는 변호사 출신이라 동성결혼법이 통과된 것에 대해 법에 저촉되지 않을 정도로 성명서를 냈다는 거예요. 제가 그 말을 듣고 하도 열이 받아서 강단에 올라가 예정에 없었던 동성애 설교를 해 버렸어요. 그랬더니 성도들이 태어나서 이런 설교는 처음 들어본다고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다고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저와 동행했던 기자들이 동성결혼법 통과에 대한 미국 교회들의 반응을 살펴보기 위해서 몇몇 교회들을 탐방하고 왔는데, 한 군데도 동성결혼법 통과에 대한 주보 광고나 반대 설교를 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제가 강단에서 설교하면서 그 총회장님께 공개적으로 질문을 했습니다. '총회장님, 성도가 7천만이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함께 연합해서 동성결혼법을 막아야지요. 만약에 워싱턴 광장에서 미국 교회 성도들이 백만 명만 모여서 반대 집회를 했다면 절대로 동성결혼법은 통과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랬더니 총회장도 내 말이 맞다는 거예요... 영국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1966년 런던목회자협의회에서 존 스타트목사가 로이드 존스 목사를 강사로 세웠어요. 그런데 로이드 존스 목사가 너무 독선적 강의를 한 거예요. 그러자 그 후로 존 스타트 목사가 로이드 존스와 결별 선언을 해버렸습니다. 그때부터 영국교회가 갈라지면서 힘을 잃고 사회적 정치적 이슈나 현안에 대해서 전혀 노터치를 한 거예요. 그리고 뿔뿔이 흩어져 개교회 목회만을 한 거예요. 그러다가 영국교회도 망한 것이 아닙니까? 장자교단이라면 이런 장자의 역할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신학과 교리가 다르면 큰 형님이 야단도 치고 가르치면서 우리를 따라오라고 하면서라도, 이런 일을 해야 할 것이 아닙니까? 너네들은 우리와 다르니까 니들끼리만 하라고 하면 되겠습니까? 옛날에도 종갓집이 종갓집 역할을 잘해야 집안이 잘 되었어요. 장손이 장손 역할을 잘 해야지 무능하고 역할을 못하면 못난 동생 놈들이 육갑을 떠는 경우가 있어요. 동생들이 육갑을 떨면 집안이 자칫 망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미자립교회를 지원하고 목회 생태계를 지키고 복원해야 해요. 그리고 우리 신앙의 순수성과 신학의 퓨리티를 지키면서 함께 연대해서 반기독교적인 정서와 공격을 막아내야 해요. 그러려면 사상전, 영전을 잘해야 해요. 그리고 때로는 정책적 연합을 해야 해요. 우리 교단이 좀 영향력도 발휘하고 기수가 되어야 해요. 저는 이러한 일을 10여 년 전부터 해 왔어요. 10여 년 전부터 동성애를 막기 시작했고 8-9년 전부터 이슬람을 막기 시작했어요. 이러한 일을 하면서 테러 위협도 받았어요. 심지어는 어느 국가 기관에서 테러를 대비해서 신변보호를 해 준 적도 있어요. 뿐만 아니라 목회 생태계를 복원한다고 언론 대 사역을 했습니다. 그리고 정치인들을 만나려고 국회를 들락날락했어요. 모든 제도와 문화는 사상과 철학에서 나옵니다. 그리고 그 사상과 철학은 반드시 입법화로 갑니다. 그래서 저는 국회를 들락날락하며 동성애법을 막고 작년에는 교회 과세 문제를 은밀하게 막았어요. 그러다보니까 저 보고 정치목사라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그러나 지금은 그런 소리를 듣지 않습니다. 교회 생태계를 보호하고 반기독교적인 정서와 세력의 공격을 막는다는데, 누가 정치 목사라고 하겠습니까? 이 모든 일이 목회 생태계와 관련이 되어 있는 거예요. 그러므로 이제는 우리 교단이 앞장서서 한국교회의 목회 생태계를 지키는 일을 해야죠. 우리 교단이 자기 왕국을 세우는 캐슬 빌더가 아니라 킹덤 빌더가 되어 한국교회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면서 생태계를 복원하고 보호하는 일에 앞장서야 합니다." 1시간 40분에 걸친 유쾌한 목사 소강석의 나만을 위한 열정적인 일인(一人) 특강이 끝났다. 2016년 8월 31일 오후 8시 죽기까지 소강석 목사에 충성하겠다고 다짐하고 분신처럼 따르는 김문기 장로가 르디님 성가대에서 찬양하는 수요예배 설교 중 소강석 목사는 말했다. “참 옛날에 점쟁이가 예언을 하는데 큰 아들은 관운이 많고 그렇게 만사형통을 한다는데 나는 빌어먹게 생겼다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나는 정말 하나님한테 빌어먹고 살고 있어요.” (양손을 모아 비는 시늉을 한다. 회중 박장대소.) 세상에 소강석 목사처럼 유쾌한 목사는 없을 것이다. 출퇴근 시간 지하철에서 숨을 참고, 손을 가지런히 하고, 이리저리 떠밀리다 보면 문득 ‘나는 누굴까’ ‘여긴 어딜까’ 따위의 존재론적 의문에 휩싸이게 된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왜 사냐고 묻거든 그저 웃지요’다. 그러나 유쾌한 목사 소강석이 3M 목회 과정에서 자신의 벽 앞에서 취한 믿음의 자세는 내가 보기에 사뮈엘 베케트의 장편소설 '이름 붙일 수 없는 자' 중의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소설에서 이름도 없고 팔다리도 없는 주인공이 몸통과 머리만 남은 채 단지에 들어가 어느 식당의 메뉴판 노릇을 하면서 말한다. “나는 계속 나아갈 수 없어. 그래도 계속 나아갈 거야.” 오후 5시 그는 수요예배를 준비해야 한다. 그럼에도 그는 3층 당회장실에서 교회 밖 건널목까지 배웅해 주었다. 위대한 정신은 늘 임계점(臨界點) 가까이에서 그 너머를 꿈꾼다. 사상이 한 경계를 넘을 때 세계가 발전한다. 그래서 세상엔 아직도 다른 세계를 꿈꾸는 자들이 남아 있다. 우리 주변에는 극소수의 존경받는 리더와 대다수의 실망스러운 리더가 존재한다. 늘 그래왔고, 또 늘 그럴 것이다. 유쾌한 목사 소강석은 극소수의 존경받는 리더 중 하나다. 그래서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수많은 교인들도 그를 즐겨 만나고 싶어한다. 유쾌한 목사 소강석 그가 교단과 교계와 대한민국의 유쾌한 영적 지도자가 되어 우리를 유쾌하게 해 주고 우리 믿음을 명쾌하게 해 주고 대한민국을 모세처럼 이끄는 영적지도자로 자리매김을 하고 세계 제일 목회자가 되었다. 그런 그의 곁에는 죽기까지 충성을 다짐하고 그림자처럼 따르며 섬기고 충성하는 김문기 장로가 있다. 성경은 말씀한다. 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 여호와께서 그를 애굽 땅에 보내사 바로와 그 모든 신하와 그 온 땅에 모든 이적과 기사와 모든 큰 권능과 위엄을 행하게 하시매 온 이스라엘 목전에서 그것을 행한 자더라 신명기 34:10-12 2026-08-29
-
[더굳뉴스] 크리소스톰과 김희태 목사
2024년 10월 14일 오후 2시 한빛교회(담임 위재영 목사)에서 제98회 서울남노회(노회장 양태선 목사)가 열렸다. 별 생각없이 취재차 참석한 서울남노회 코람데오 성찬식 때 김기성 목사가 색소폰을 은혜롭게 연주하고 총회 법통 권재호 목사를 보자 황금의 입 크리소스톰이라고 할 설교자 김희태 목사가 떠올랐다. 그는 서울남노회 소속이었고 당시 총회 김영우 목사의 총회 정치 맞수이기도 했다. “교회 안은 온통 열광의 도가니였다. 감동의 절정에서 터져 나온 청중들의 환호와 갈채는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었다. 그의 설교가 정점을 향하여 치달을 때 회중들은 완전히 감동의 도가니에 빠져버렸고, 못된 소매치기들은 이때를 놓칠세라 더욱 눈을 움츠리며 손을 열심히 놀렸다.” 이런 열광을 일으킨 설교자는 안디옥과 동방교회가 자랑하는 4세기의 성 크리소스톰(St. John Chrysostom, AD 347~407)이다. 영어명 크리소스톰(Chrysostom)의 그리스 이름 크리소스토모스(Chrysostomos)는 그의 통칭(通稱)은 황금의 입(golden-mouthed)이라는 뜻이다. 그의 전설적인 설교 때문에 붙여진 그 별명은 그가 너무나도 뛰어난 언변을 지녔던 설교자요, 당대의 사회에 영향을 끼친 인물이었던 탓이다. 위대한 설교자로서 크리소스톰과 관련된 일화 가운데, 그가 설교하는 곳에는 좀도둑이나 소매치기들이 많았던 이유는 그의 설교를 듣느라 사람들이 자기 소지품들을 챙기는 것조차 잊고 있을 정도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크리소스톰은 예의 바르고 다정하고 친절한 성품을 지니고 있었고, 영적으로나 도덕적으로는 거인이었지만, 체구는 왜소했다. 하지만 쾌활한 얼굴, 주름진 이마, 벗어진 머리, 꿰뚫어 보는 듯한 맑은 눈은 그의 설교를 듣는 사람들에게 영속적인 감명을 주었다. 크리소스톰은 주후 347년에 안디옥에서 출생했지만 아주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었다. 그는 신앙이 좋은 어머니에게서 경건훈련을 받았다. 어머니 안투사는 오로지 어린 크리소스톰을 키우는 데 헌신하여, 아들에게 최상의 훈련을 받게 하였다. 철저하게 기독교 신앙을 가르쳤고, 가장 훌륭한 교사 문하에 들어가도록 주선했다. 크리소스톰은 어머니 권유로 당시 이교도의 대변자요, 수사학의 대가인 리바니우스 문하에서 헬라 문학과 수사학을 배웠다. 그는 리바니우스의 최우수 학생으로 후계자로 지목될 수도 있었지만 신앙적인 이유로 거절했다. 크리소스톰은 다른 학문으로도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신앙에 대한 연구에 일평생을 바치기로 결심했다. 어머니의 임종 후 그는 시리아에서 수도사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 때 안디옥 학파 지도자인 타르수르의 디오도루스(Diodorus) 밑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디오도루스는 성경을 우화적(Allegory)으로 해석하는 유행 방법을 배격하고, 문자적이고 역사적으로 면밀히 연구하는 법을 가르쳤다. 이러한 교육적 배경은 크리소스톰이 당시에 유행하던 심각한 알레고리 해석에 빠져 들지 않고 본문 해석에 힘쓰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크리소스톰은 6년간의 수도원 생활 가운데 2년 동안 밤낮으로 한 번도 누운 적이 없었다. 이 때문에 그의 건강은 극도로 약화되었다. 그의 위장은 거의 죽은 것과 다름없었고, 신장도 추위로 인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했다. 자기 스스로 몸을 돌볼 수 없게 되자, 결국 그는 교회의 품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이때가 AD 380년이다. 그는 훗날, 수도원 생활은 목회자 훈련으로 적당치 못했다고 저서에서 고백했다. 또한 수도자와 목회자를 비교하면서, 목회자는 수도사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크리소스톰이 안디옥으로 돌아오자마자, 안디옥 교회의 부제가 되어 5년간 일하였다. 그는 가난한 사람과 부요한 사람들 등 많은 사람들을 접했고, 교회 실상도 익히게 되었다. 그는 AD 381년에 집사 안수를 받고, 가난한 대중과 접촉하면서 무엇을 설교해야 할 것인지 깨달았다. 그로부터 5년 뒤인 39세 때인 AD 386년 안디옥 교회의 장로 겸 수석 설교자로 임명받아 본격적으로 설교를 시작했다. 그는 무엇보다 심각하게 침체된 영혼들을 회복시키려고 애썼다. 그가 강단에서 쏟아내는 황금 같은 설교를 듣고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회중들은 그의 설교를 들으면서 온갖 영적 체험을 경험했다. 안디옥의 고통을 묘사할 때는 마음이 녹아내려 눈물을 흘리는가 하면, 그의 격려에는 영혼의 활력을 되찾았다. 그가 설교할 때면 교회는 회중들로 가득했다. 그의 강해설교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회중들은 자발적으로 박수갈채를 보냈지만 그는 습관적으로 이것을 싫어했다. 크리소스톰은 위대한 설교자로서 세상적이고 정치적인 일에는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전한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노력했다. 이생의 자랑과 안목의 정욕, 육신의 정욕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크리소스톰은 위대한 영성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능력 있게 선포하는 위대한 설교자가 될 수 있었다. 그의 설교 강론은 두 가지 형태로 전해온다. 하나는 초고 형식으로, 속기사들이 그의 설교를 들으면서 직접 기록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후대 사람들이 이 초고를 다듬어서 일관성 있게 재편집한 것이다. 크리소스톰은 전례축일이나 특별한 기회에 맞추어 신구약 성경에 어떤 제목을 발췌하여 강론한 경우가 있는가 하면 신자들의 교육을 위해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강론한 것도 있다. 안디옥 학파의 영향을 받고 자란 크리소스톰이기에 설교는 항상 성경의 문자적, 역사적, 문법적인 해석 방법에서 얻은 영적 통찰을 기반으로 이루어졌다. 그의 강해는 윤리적 권면으로까지 폭을 넓혔다. 그의 설교는 세상과 연결 짓지 않고는 이해되기 어렵다. 설교자는 험한 세상에 다리를 놓는 사람이다. 존 스토트(John R. W. Stott)는 “참된 설교는 성경 세계와 현실 세계 사이에 다리를 놓는 것”이라고 말했다. 즉 다리 한쪽은 하나님의 거룩에, 다른 한쪽은 성도의 삶의 한복판에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크리소스톰이 주석에서 예화로, 성경 원리에서 실제적인 호소로 설교를 전개시켜 갈 때는 말의 속도가 차츰 빨라지며 제스처가 활발해지고 목소리는 점점 강렬해진다. 그러면 기대감에 부푼 청중들은 숨을 죽이고 긴장하다가 경우에 따라 열광적인 박수갈채를 보냈다. 그러나 크리소스톰은 청중의 박수갈채에 연연해하지 않았다. 그토록 많은 환호를 받은 크리소스톰이 다음과 같은 사실을 고백했다. “설교자가 박수갈채를 좋아한다면 자신뿐 아니라 회중에게 해(害)가 미칠 것이다. 칭찬에 대한 열망 때문에 설교자는 그들에게 보탬이 되는 설교보다 그들을 즐겁게 해 주려는 생각으로 조심스럽게 설교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강단에 섰을 때 갈채를 받는 것은 기쁜 일이라고 솔직히 고백했다. 그렇지만 그것은 ‘잠깐의 전율’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그를 칭찬했던 많은 사람들이 진심으로 메시지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수갈채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은 그것을 금지하는 것이라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크리소스톰의 설교는 본문의 순서를 따라 단순한 전개 형식을 취해 간다. 그럼에도 그가 ‘황금의 입’(크리소스톰)이란 별명을 갖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어려서부터 최선을 다해 학문에 정진한 까닭이다. 크리소스톰의 설교는 세 가지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첫째, 성경에 대한 풍부한 이해력이 있었다. 둘째, 신학에 대한 심오한 통찰력으로 실생활에 연관시키는 능력을 가졌다. 셋째, 설교를 불붙게 하는 정열이 넘쳐 흘렸다. 이런 4세기의 크리소스톰을 닮은 21세기의 목사가 서울에 한 사람 있었다. 그는 김희태 목사다. 1966년 3월 15일 창립된 동광교회에 1987년 12월 25일 김희태 목사가 부임했다. 김희태 목사 부임 당시 200여명의 교인이 2015년에 재적 교인 7000여명 장년 주일출석 2500여명으로 성장했다. 동광교회는 2015년 3월 15일 교회 설립 50주년 예배를 드렸다. 이날을 기려 동광교회는 2015년 3월 23일 제주도 조촌읍 대흘리 120-1에 아카페(A Cafe) 교회(담임 권혁선 목사)를 설립했다. 아카페는 아가페와 카페를 합성한 이름이다. 실제로 일반인을 위한 카페가 아담하고 예쁜 교회 뒤에 차를 마실 수 있는 카페가 있다. 교회를 위해 땅을 구입하고 건물을 짓기 전 하나님의 은혜로 제주특별자치도청에서 교회 앞에 삼거리를 만들어 주었다. 교회 주변은 귤 농장과 농토로 둘러싸여 있다. 2015년 4월 5일 부활주일 동광교회 오전 12시 3부 예배. 크리소스톰 같은 황금의 입과 푸른 초장 같은 너른 마음을 지닌 김희태 목사가 활기찬 모습으로 동광교회 설교단에 섰다. 그의 설교는 진지하지만 논리적이고 재미있고 성경적이다. 요한복음 11:21-26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 우리가 부활하면 흰색 세마포 옷을 입고 주님 앞에서 찬양하게 됩니다. 세마포는 아마 섬유로 짠 천인데 그 당시 중국의 비단과 값이 거의 비슷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세마포는 최고의 의상을 의미하며 부(눅 16:19)와 정결의 상징이기도 하였습니다(계 19:8, 14). 우리가 최고의 옷을 입고 주님 앞에 설 그날이 올 것을 기대합니다. 그 기대로 말미암아 오늘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좌우의 분들에게 축복해 주시고 행복하세요 인사를 나누시기 바랍니다. 며칠 전에 바람이 세게 불었습니다. 태풍 급 바람이었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팔레스타인 북쪽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내려오시기 시작합니다. 이건 태풍입니다. 예루살렘 사람들은 이번 유월절 명절날 예수가 예루살렘에 오겠는가 하는 걸로 내기를 할 정도였습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를 거쳐 요단강을 따라서 강 서안에 있는 여리고에 오셨습니다. 대단한 바람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예루살렘에서 5리 동쪽으로 2km 떨어진 작은 촌락 베다니에서 이제 진짜 강한 태풍이 붑니다. 그리고 며칠 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나귀를 타고 입성하십니다.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갔다는 것은 왕으로 등극했다는 신호입니다. 사람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환영합니다. 이것은 왕을 영접하는 역사적인 행사입니다. 예루살렘에 강한 태풍이 불었습니다. 유대인은 그걸 잠재우려고 온갖 수단을 다했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시면 끝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죽으시니까 더 큰 태풍으로 변했습니다. 그리고 이 태풍은 세계를 뒤엎었습니다. 어떤 분이 말하기를 기독교 2천년 역사 아니 세상 2천년 역사에서 예수님을 뽑아내면 아무것도 안 남는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예수 믿는 것을 크게 자부심을 가질 이유가 있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이 초라한 나사렛 예수! 무슨 사건이냐. 그분이 삼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이 감격을 온 세계에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사회가 살아났습니다. 그러자 법이 정의로워졌습니다. 그러자 여자들이 존경받고 아이들도 대접받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 21세기의 인류문화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 베다니에서 일어난 사건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오실 때마다 베다니에 들르셨습니다. 그곳에는 참으로 예수님을 환영하는 나사로의 가정이 있었습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이 나사로를 사랑하셨다고 했습니다. 나사로는 부모가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분명한 것은 두 여동생이 있었습니다. 여동생들은 결혼 이야기가 없는 걸로 미루어 스무 살이 채 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언니 마르다는 18살 정도 동생 마리아는 15살 정도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가정에 큰 근심거리가 생겼습니다. 오라버니가 아픈 겁니다. 그런데 소식을 들어보니 예수님께서 베다니 가까이 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 우리 오라버니가 아프니 빨리 오셔서 고쳐달라고 말을 전했습니다. 예수님에게 나사로의 질병은 문제가 안 됩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11장 11절에 보면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이 잠들었으면 낫겠나이다 말합니다. 지금은 잠을 자도 잘 낫지를 않습니다. 수면제가 나오고부터 그렇습니다. 옛날에는 잠자면 병이 다 나았습니다. 정신적으로 맛이 간 사람도 푹 자면 온전해졌습니다. 잠들었으면 병이 다 나을테니 무엇이 문제입니까 하는 생각이었던 겁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밝히 말씀하십니다.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이 말씀을 보면 예수께서 믿음을 주시기 위해서 일부러 안 가신 것 같습니다. 즉 이 나사로의 사건을 통해 강한 태풍을 만들어 보여 주시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래서 너희가 믿게 하기 위하여 나사로에게 가자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제자 가운데 도마가 말합니다. 그는 의심 많은 도마로 알려진 제자입니다. 기록에 의하면 도마는 집을 짓는 목수였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가장 합리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사람이 도마였습니다. 목수가 과학적인 사고를 하지 않으면 집을 지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는 엉뚱한 소리를 잘 해요. 예수님이 죽은 사람 나사로에게 가자고 말씀하시니까 우리도 죽으러 가는구나 생각하고 도마가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고 말하는 것입니다. 도마는 결심도 좋고 참 남자다운데 허경영 같은 소리를 합니다. 여러분 어때요. 예수님 부활, 예수님 기적 못 믿겠다고요. 누구는 믿어지는 줄 압니까. 자 사건이 어떻게 진행이 됩니까. 베다니 동네 입구에 마르다가 뛰어나왔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이 시작됩니다. 그녀가 말합니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아마 그때 마르다의 모습은 불만과 원망으로 가득 차 있었을 겁니다. 그녀의 말 그대로 때맞춰 오셨으면 우리 오빠 안 죽었을 텐데 이제 오십니까 하는 원망의 말투입니다. 그런데 22절에 보니까 자기가 너무 했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한발 후퇴합니다.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라고 말합니다. 마르다가 나사로가 죽었다가 살아나는 것까지 생각했을까요. 아닙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어디까지 해 주기를 바라고 이런 말을 했을까요. 이 어린 두 자매가 남겨져 있으니까 이 슬픔을 가시게 해 줄 예수님의 위로를 기대하고 이런 말을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말씀하십니다. 그때부터 엇박자 코미디 대화가 시작됩니다. 마르다가 예수님의 말씀에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 줄을 내가 아나이다”라고 대답합니다. 이런 교리적인 대답이 문제입니다. 왜 교회가 이렇게 힘을 잃어갑니까. 정답을 알아요. 그런데 가슴에 와 닿는 감동이 없습니다. 신앙은 가장 간단하고 단순한 정답으로 가슴에 사무쳐서 나와야 합니다. 로봇처럼 컴퓨터처럼 스위치만 누르면 정답이 튀어나옵니다. 전혀 도움이 안 됩니다. 지금 예수님의 하시는 말씀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마르다가 이렇게 코미디 같은 소리를 하니까 진정으로 예수님의 귀한 진리가 나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하는 말씀으로 끝났다면 마르다도 별 고민을 안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께서 “이것을 네가 믿느냐” 말씀하셨습니다. 참 이것을 믿어야 할지 안 믿어야 할지 얼마나 당황했으면 마르다가 그냥 집으로 가버렸겠습니까. 여러분 혹시 허경영이란 사람 이야기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1997년 11월 26일 15대 대선 공화당 대선후보로 나섰는데 개표 결과 0.2% 득표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2007년 12월 19일, 17대 대선에 기호 8번 경제공화당 후보로 선거에 참여했으며, 0.4%의 득표율(약 9만7천여표)을 기록하여 7위를 했습니다. 이명박, 정동영, 이회창 등의 주요 후보들과 함께 토론회에 다수 참여했던 이인제 후보가 0.68% 득표를 한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높은 득표율입니다. 자기가 축지법을 쓰고 아이큐가 430이고 박정희 대통령의 비밀보좌관을 했대요. 여기까지 했으면 허풍으로 끝났을 건데 도를 지나쳤어요. 박근혜 대통령과 비밀결혼을 했다고 한 겁니다. 그걸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과 17대 대선 때 허위 사실 유포 혐의로 체포되어 1년 6개월 동안 수감생활을 하고 나왔습니다. 콩밥을 먹고 정신이 들었는지 요즘은 좀 엄한 소리를 덜 하고 노래를 합디다. 제가 인터넷에서 보니까 어떤 사람이 허경영은 사기꾼이 아니라 미쳤다고 하더군요. 예수님이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말씀하십니다. 사기꾼 아닙니까. 이 말씀을 하신 예수님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거나 아니면 정신이 이상하신 겁니다. 예수님은 허경영보다 좀 더 하신 겁니다. 여러분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진지하게 생각을 해서 예수님을 부활의 주님으로 우리에게 부활을 주실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로 받아들이시든지 아니면 정신 나간 사람으로 취급하시든지 해야 합니다. … 예수님은 정확하게 말씀하십니다. 인간이 부족하다는 걸 알아요. 인간이 예수님의 부활과 몸의 부활을 못 믿어 한다는 걸 알기 때문에 정말 믿게 하시려고 나사로의 무덤까지 오신 겁니다. 지금 나사로는 죽은 지 4일이나 됐습니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사람이 죽으면 24시간 안에 입관을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참혹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사람은 살았을 때 사람이지 죽으면 끝입니다. 게다가 부패가 시작되면 아무리 사랑하는 자녀라고 해도 아무리 사랑하는 부모라고 해도 간덩이 큰 사람은 3일 동안 밥을 못 먹고 약한 사람은 30년 식사를 못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조상들은 지혜롭게 더 흉악한 꼴 보기 전에 관 두껑 덮고 못질해 버리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무덤 속의 시체 나사로를 향해서 “나사로야 나오라”하고 부르셨습니다. 이 단순한 말씀 한마디에 죽은 나사로가 수족을 베로 동인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여 있었습니다. 주님은 그런 분이세요. 그냥 내가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하시는 게 아닙니다. 우리 예수님은 생명의 근원이십니다. 이런 사건이 일어나니까 모든 사람이 예수님 믿고 따를 것 같죠. 아닙니다. 예수님을 죽이자는 모의가 공공연하게 일어났습니다. 기적을 통해서 사람의 마음이 변하지는 않습니다. 죽어 냄새나는 나사로를 향해서 한마디로 살려내신 예수님이십니다.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에게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을 합니다. 이분은 우리의 구원자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런데 이분을 믿는 게 아니라 죽이고자 합니다. 인간은 참 악합니다. 어쨌든 예수님은 그 모의에 못이기는 체 하고 끌려들어가 죽으십니다.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내가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 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고 말씀하셨는데 아무도 믿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그 말씀이 수용이 안 되니까 건성으로 들은 겁니다. 예수님 금요일 돌아가셨습니다. 그 다음 날은 유대인의 안식일입니다. 그 다음 날은 오늘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우리의 주일입니다. 당시는 사람이 죽으면 장례를 지낼 때에 일정한 소리를 내며 우는 곡(哭)하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아이고 아이고 하는 게 전통 장례법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리니까 아리마대 요셉이라는 사람이 나타나서 섭섭하지 않게 장례를 잘 치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요셉은 예수님을 자기 가족묘에 안장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신 금요일에 여인들이 그를 위해 울어줄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 날 안식일은 참고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여인들이 예수님의 무덤에 갔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을 울어 드리기 위해서 간 겁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축하하기 위해서 간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미 부활하셔서 무덤에서 나와 계셨습니다. 그리고 무덤을 지키던 사람들은 다 기절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여인들이 그를 동산 무덤 관리인으로 알았어요. 예수님 시신이 없으니까 그에게 시신에 기름도 바르고 곡도 해야 하니 시신이 있는 곳을 가르쳐달라고 합니다. 그때 그가 “내가 예수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마 예수님 골치 아프셨을 것 같아요. 때마다 자신을 이렇게 소개하셔야 된다면 말입니다. 할아버지가 손자 만날 때마다 “내가 네 할애비다” 해야 한다면 얼마나 슬프겠어요. 이 여인(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들이 사랑하는 예수님 모습을 보고 모두 최대한의 속도로 제자들에게 달려갔습니다. 예수님 살아나셨다는 소식을 전하려고 말입니다. … 그런데 예수님 제자들 말고 또 한 사람의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터키 해안 남부 지역 길리기아 다소 사람인데 날 때부터 귀족이고 부자입니다. 그래서 그가 예루살렘의 유명한 학자 가말리엘 문하에 유학을 왔습니다. 그가 거기서 공부를 하는데 이상한 바람이 부는 겁니다. 아니 죽은 사람이 살아났다는 허무맹랑한 소식을 전하면서 세를 불려가는 이상한 무리를 본 겁니다. 그래서 그는 이 사람들을 박살을 냈습니다. 이 사람들이 도망을 가 다 흩어졌습니다. 그들은 도망가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다메섹이라고 하는 다마스커스라고 하는 도시가 있습니다. 로마군이 그 도시를 경계로 이쪽 아시아에 항상 상주하는 국경 도시였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그곳에 가서 복음을 전해 신자들이 많아졌다는 소문을 듣고 이것들 봐라 하며 그 사람이 그곳으로 달려갔습니다. 그가 그들을 예루살렘으로 잡아 오려고 거의 다마스커스에 갔는데 홀연히 하얀 빛이 그를 비추는 겁니다. 그가 땅에 엎드러졌습니다. 하늘에서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하는 음성이 들립니다. 그는 이해를 못 하고 “주여 뉘시오니이까”라고 물었습니다. 또 음성이 들립니다.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 일어나 성으로 들어가라.” 앞을 못 보게 된 그는 사람의 손에 이끌려 다메섹 번화가의 곧은 길 직가(straight street)에 있는 유다의 집으로 가게 됩니다. 며칠 안 있어 그는 거기서 또 주님의 음성을 듣고 찾아온 아나니아에게서 안수를 받고 눈을 다시 뜨게 됩니다. 이때 사울의 머릿속에 있던 성경 지식이 재조립되기 시작합니다. 그래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알게 됩니다. 머리가 좋은 사람들은 신앙생활도 잘합니다. 처음 받아들이기가 어렵지 일단 믿기만 하면 머리가 스스로 움직입니다. 스스로 증거를 찾습니다. 스스로 확신에 이를 수 있는 경지에 들어갑니다. 그 뒤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으면서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고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명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굴복시켰습니다. 유대인들이 가만있겠습니까. 가말리엘 문하의 바리새인이 왜 이 모양이냐면서 이 배반자를 죽이려고 하니까 예수의 제자들이 밤에 광주리에 사울을 담아 성에서 달아 내려 도망을 시킵니다. 사울은 아라비아 광야로 갔다가 그 후 삼 년 만에 예루살렘으로 갑니다. 이 사람이 큰 자라는 뜻인 사울에서 작은 자라는 뜻인 바울로 이름을 바꿉니다. 바로 이 사람이 바울 사도입니다. 바울 사도가 복음을 들고 서진(西進)할 때 엄청난 태풍이 불게 됩니다. 그러면서 그가 어떻게 변화되었습니까. 그 과정을 고린도전서 15장에 요약해놓았습니다. 3절과 4절에 보면 이 모든 일이 우연히 된 게 아니고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창세전부터 계획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 이야기는 사람이 만들어낸 게 아닙니다. 수천 년 전 창세기에 한 남자가 나옵니다. 그는 뱀의 머리를 상할 자입니다. 그는 사망의 권세를 쳐부술 자이십니다. 이것은 최초의 예수님에 대한 성경의 예언입니다. 예수님이 태어날 때쯤 되면 그 예언이 점점 구체적으로 이루어져 갑니다. 구약 성경은 오실 예수님을 예언합니다. 그러면 이 사실을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많은 증인이 있습니다. 증인 두셋만 있어도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실 때 먼저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 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이 나타나셨다고 사도 바울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요 여러분. 이것도 다 제자들이 지어냈다고 합시다. 그러나 이것만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로마제국 치하에서 교회는 250년 동안 박해를 받았습니다. 재판의 전문가들이 말합니다. 자기가 이익이 되면 재판에서 거짓말할 수 있답니다. 그러나 자기가 거짓증언해서 손해가 난다면 절대 거짓증언 안 한답니다. 예수님 믿는 것 때문에 재산을 뺏기고, 직장을 잃고, 추방을 당하고, 거지가 되고, 목이 잘려 죽고, 심지어 사자의 밥이 되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까지 하는 데도 아시아보다 로마에서 믿는 사람이 더 많았습니다. 초대교회 교인들이 예수님 때문에 도망을 다니고, 거지가 되고, 죽었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신앙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아니 버릴 수 없었습니다. 왜냐고요. 부활을 어떻게 부정합니까. 예수님은 부활의 첫 열매이십니다. 우리도 부활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부활의 소망, 부활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 이것보다 더 귀한 게 어디 있습니까. 여러분 세상사는 게 행복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든다면 우리가 삐삐를 사용하다가 좀 있으니 몽둥이 같은 이동 전화기를 들고 소수의 사람들이 별 쓸 일도 없으면서 으스댄 적이 있습니다. 그러다 이제는 최신식 스마트폰이 나와 누구나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행복해졌습니까. 우리가 핸드폰 없을 때 전화기 없을 때 어떻게 했습니까. 누가 볼 일이 있으면 이웃집에 헐레벌떡 뛰어가서 숨을 몰아쉬며 우리 집 오시라고 합니다 하고 연락하지 않았습니까. 이제 우리가 모두 다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 묻고 싶습니다. 이렇게 훌륭한 기기가 나왔는데 우리가 행복합니까. 저는 하나도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에게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있기 때문입니다. 저 미래의 어둠에 대한 공포 때문에 말입니다. 예수님이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말씀하십니다. 이 주님의 부활의 언약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 부활하셨고 재림하실 것입니다. 이 땅의 환란과 핍박을 이긴 성도들이 예수님처럼 부활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늘의 천군천사의 나팔소리와 함께 예수님이 다시 오실 것입니다. 이 세계 사람들이 동시에 다 보게 될 것입니다. 골방에 광야에 산에 어디에 예수님이 오셨다고 해도 믿지 마시기 바랍니다. 진짜 메시아는 모든 사람이 동시에 다 볼 수 있게 오십니다. 이게 성경의 증거입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때에 사기꾼들이 설칠 것을 아시고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어느 곳에서 죽었든 다 육체로 부활하여 동시에 천년왕국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 나라에 들어가기를 바랍니다. 부활의 이야기를 하고 결론으로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58절에서 “그러므로 내 사랑 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하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재산, 생명, 젊음, 경륜, 기술을 통해서 다른 사람을 세워주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다 갚아주십니다. 우리의 수고가 주 안에서 절대로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의 축복을 기다리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2015년 4월 9일 오후 2시 제주도 아카페 교회 카페. 제주 제주시 선덕로 바다 앞 도두해수파크 찜질방에서 나와 해안로 정류장에서 제주 시내로 들어가는 17번 버스를 아내와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는 쉽게 오지 않았다. 같이 기다리던 다른 한분과 말을 나누게 되었는데 일본 나고야 교회 목사님의 한국 사모님이었다. 그분도 제주 시외버스정류장으로 가시는 중이었다. 일본의 아들들 때문에 제주도 땅을 정리하려고 오셨단다. 정류장 건너에는 아침 선잠에 눈비비고 나온 것 같은 청색의 푸른 파도가 하얀 이를 드러내고 하품하듯 밀려와 마음 깊숙이 할 말이 많은 듯 해안에 부딪혔다. 버스를 기다리는 관광객 차림의 사람들이 늘었다. 마침내 온 17번 버스를 타고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와산행 버스로 갈아타고 달빛빌리지 앞 푸른 초장 팻말이 있는 곳에 내렸다. 제주도 화석 자갈이 깔린 길을 걸어 들어가니 김희태 목사가 아들 목사와 귤 밭을 맨발로 한 고랑씩을 맡아 매고 있었다. 차를 대접받은 뒤 두 달 전 설립된 근처의 아카페(A Cafe) 교회(담임 권혁선 목사)로 갔다. 손님들이 가득한 식당에서 순대국 정식으로 점심을 먹고 교회 뒤 카페로 들어갔다. 커피를 마시며 지나온 이야기를 나누었다. 권혁선 목사는 평안교회 부목을 거쳐 1988년 인천의 희망교회와 풍성교회를 시무했다. 그리고 2008년 그는 캄보디아 선교사로 파송을 받아 사역을 했다. 그러다 그는 2015년 3월 23일 동광교회 50주년을 기려 제주도 조촌읍 대흘리 120-1에 설립한 아카페(A Cafe)교회에 부임했다. 권혁선 목사: 김희태 목사(두 사람은 총신 77회 동창이면서 절친이고 나이는 52년생인 권 목사보다 김 목사가 두 살 위)가 1987년 동광교회 부임하실 때 제가 그랬죠. 교회 출석 교인이 2000명이 넘을 거다. 제가 말하는 건 장년 주일 예배 참석 교인입니다. 요새 통계로 말하면 7000이지만 주일 출석 장년 교인만 2000이 넘는다고 한 거죠. 그런데 김희태 목사가 안 믿어요. 그래서 제가 뭐랬냐하면. 김희태 목사: 그런 일은 절대로 안 일어날 거라고 제가 확신했죠. 권혁선 목사: 사실 내가 그 교회를 소개해 줬으니까 그 교회 저력을 알잖아요. 그런데 동광교회는 목사님만 좋은 분이 오면 가능한 교회죠. 문제가 많은 교회이긴 해요. 그런데 제가 소개시켜 주고 싶어서 소개시켜 준 건 아니에요. 그 교회가 어떻게 되었냐하면 목사를 모셔야 하는데 장로님들과 교인들이 의논하다 보니까 모르는 분이 오시면 그게 그거니 우리 교회 출신 가운데서 담임목사를 모시자 그런 겁니다. 그 결과 저를 오라고 했어요. 그런데 저는 저를 잘 알거든요. 제가 가면 감당이 안 되는 교회입니다. 그런데 우리 김 목사님이 가면 이건 틀림없이 감당할 뿐만 아니라 큰 교회가 될 거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 가시면 2000명 됩니다 그랬습니다. 김 목사님이 저보다 믿음이 없어가지고 그럴리 없다는 겁니다. 사실 저는 동광교회에 대해서는 하나님보다는 목사님에 대한 믿음이 더 컸습니다. 됩니다 하면서 그때 김 목사님과 약속을 했어요. 2000명이 되면 저한테 선교비 천불씩 후원해 주기로. 김희태 목사: 그게 아니라 교인당 1불씩 후원해 주기로. 2000명 넘어가면 2000불 하기로. 권혁선 목사: 2000명 훨씬 넘어갈 거라고 했더니 안 믿는 거예요. 그래서 로열티 계산 개념으로 두당 1불씩 하기로 했습니다. 하자고 했어요. 그런데 제가 막상 선교지로 갔는데 안 주는 겁니다. 김희태 목사: 저는 두 가지 확신을 가졌어요. 2000명 절대 안 된다. 그리고 목회 잘 하는 목사가 선교사 갈 일이 있겠느냐. 권혁선 목사: 저는 겁이 많아요. 그래서 사전에 준비를 해요. 목회를 한 지 한 12년 정도 됐을 때부터 다음 선교지를 어디로 가느냐 여기서 관두면 어디로 갈 것이냐를 생각을 하는 거죠. 저는 일본을 생각했어요. 사실 일본 쪽에 많은 공을 들였죠. 그랬는데. 김희태 목사: 특별히 일본 낫토(대두를 낫토균을 이용해 발효시킨 한국의 청국장과 유사한 일본 전통의 식품으로 미소와 함께 중세 일본의 필수적인 영양 공급원이었다)를 좋아하죠. 우리 교인들도 낫토, 낫토해. 나는 안 좋아해요. 권혁선 목사: 여러 나라를 다녔는데 일본에 가서 느낀 건 여기서는 한인 목회를 해야 되겠구나 생각을 했습니다. 한인 목회를 하려면 문제가 뭐냐면 다른 목사들과 부딪칠 것 같은 겁니다. 망설이고 있는데 어느 분이 캄보디아를 가자고 해요. 캄보디아를 도와달라는 거죠. 그래서 가봤는데 캄보디아의 킬링필드를 보면서 지도자를 잘못 만나면 백성이 죽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참 나도 하나님 앞에서 영혼을 죽이는 목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가졌습니다. 캄보디아 백성이 불쌍했습니다. 외국 나가서 공항에서 울어본 나라는 그 나라가 처음이었습니다. 그 나라 민족이 불쌍했습니다. 그래서 캄보디아로 가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캄보디아에 가서 오래 살려고 했는데 이 친구(김희태 목사를 가리키며)가 문제예요. 친구가 도와주고 그러니까 김 목사님이 많이 도와줬죠. 그 동안 도와준 걸 계산해 보니까 200만불이나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거기에 모든 걸 다 해놓으니까 내가 왕 노릇 할 것 같은 겁니다. 김 목사님이 들어오라고 하니까 들어와서 이 교회를 하게 된 겁니다. 김희태 목사: 우리 교회에서는 선교비 2000불 약속했는데 교회가 도저히 형편이 안 좋아서 50만원씩 보냈습니다. 그리고 우리 집사람이 몇 십만원 보내고. 권혁선 목사: 사실은 2000불 이상 했어. 왜냐면 그건 공식적으로 보내는 거고. 김희태 목사: 제직회에서 권 목사님 아는 집사가 있어요. 그가 막 뭐라고 말을 하는 거예요. 그러면 제가 집사님, 권 목사님한테 선교비 많이 준다고 그 말씀하시는 거죠. 그 집사님이 맞다고 고개를 끄덕여요. 제가 권 목사님한테 얼굴을 들 수가 없습니다. 2000불씩 보내겠다고 했는데 이거 보내는 겁니다. 그 집사님 내려갔어 건강이 안 좋아서. 권혁선 목사: 그랬다고 그러데. 김희태 목사: 그런데 신장하고 간이 안 좋데. 신장 약을 먹으면 간한테 안 좋고 간 약을 먹으면 신장한테 안 좋아서 어떻게 손을 쓸 수 없다네. 그래서 공기 좋은 데로 간다고. 서한결 사모:(제주 해안가에서 만난 일본 나고야 교회 사모)네, 서양 의학적으로는 그런데 동양 의학적으로 진짜 몸의 원리를 알면 신장(腎臟)은 어머니고 간장(肝臟)은 아들입니다. 옛날에 어린애들이 아프면 엄마가 젖을 토해서 아이한테 줍니다. 신장이 약을 먹으면 간장이 저절로 좋아집니다. 그러니까 그 원리를 알고 한의학적으로 하면 아주 좋죠. 권혁선 목사: 양약으로 하니까 그런 거죠. 서한결 사모: 한의학에서 그걸 상생상극(相生相剋)이라고 합니다. 김희태 목사: 아이고 사모님 제주도 아카페교회 오시면 우리 노틀(중국어 ‘老頭兒’에서 온 말로 외래어 발음법상 라오터우얼로 소리 나는데 우리나라에 들어와 늙은 남자를 속되게 이르는 말로 ‘노틀’이 됐다) 클래스가 죽음을 한 단계 올리겠네요. 김영배 목사: 그래서 동광교회 장년 주일출석 2000명이 넘어서 선교비 지원이 잘 됐습니까. 권혁선 목사: 아니 2000명은 당연히 넘었죠. 넘었는데 500불밖에 안 보내는 겁니다. 제가 캄보디아 간다고 하니까 1000불 보내주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사실 제가 그걸 안 믿었습니다. 왜냐. 솔직하게 말해서 김 목사님하고 저하고의 관계에 있어서는 친구 사이입니다. 그래서 나 말고 딴 데 선교비를 보내면 선교를 위해서 돈을 쓴다고 해요. 그러나 저하고는 절친이잖아요. 저한테 선교비를 보내면 선교를 위해서 돈 쓰는 게 아니라 친구를 위해서 돈을 쓴다고 합니다. 교인들에게서 당연히 나올 수 있는 말입니다. 그런데 사실 주 파송 교회를 생각해 보면 제가 아무것도 아닙니다. 30만원이 원래 내가 생각했던 후원금입니다. 김희태 목사: 그랬었구나. 20만원 내놔. 권혁선 목사: 왜냐면 이건 빤한 계산입니다. 김희태 목사: 친구라 못한 겁니다. 권혁선 목사: 그러나 보통 모르는 목사님들은 친구지간에 안 해 주느냐고 해요. 사실 친구기 때문에 더 어렵다는 걸 생각 못 하는 것 같아요. 제삼자는 오히려 딴 데 도와주면 순수하게 선교를 위해서 한다 이렇게 생각해요. 김희태 목사: 우리가 백 불 이백 불은 수십 군데고. 파송이 일곱 가정이에요. 그래서 더욱 어려운 가운데에서 친구한테 많이 보낸다는 건 명분을 세울 수가 없어요. 서한결 사모: 친구라는 걸 알릴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권혁선 목사: 온 교회가 다 아는 사실입니다. 둘이 아삼륙(마작에서 쓰는 골패의 쌍진아, 쌍장삼, 쌍준륙 이른바 쌍비연이라 하여 좋은 패가 있는데 이 세 쌍의 패 끝 자를 딴 말로 단짝을 비유하거나 서로 호흡이 잘 맞을 때 쓰는 말)이라는 거 다 알아요. 김희태 목사: 게다가 가끔 들어오면 설교시켜야지. 권혁선 목사: 그런데 사실은 2000불이 아니라 더 많이 했어요. 왜냐하면 캄보디아 교회 뭐 할 때도 천만 원 헌금해 줬지 김희태 목사: 그랬던가. 권혁선 목사: 자동차도 두 대 보내줬죠. 뭐 이래저래 하면 솔찬합니다. 제가 자동차 가지고 사기 많이 쳤습니다. (동석자들의 눈이 똥그래졌다.) 차를 일부러 안 사요. 오토바이 타거나 걸어다녀요. 사람들이 캄보디아에 오면 헌금을 해요. 목사님 이렇게 지내시면 되냐고. 일단 그 돈을 받아요. 간 다음에 전화를 해요. 내가 지금 원주민을 위해 그 돈을 써야 되는데 양해해 달라고 말해요. 저한테는 우선순위가 원주민을 위하는 게 먼저니까. 그런데 사람들은 헌금을 하는데 원주민보다는 당장 보이는 대상에 헌금하는 걸 더 좋아해요. 목사님 차 사세요 하고 돈은 줘도 원주민을 위하는 데는 잘 안 주더라고요. 그런데 내가 받은 다음에 원주민을 위해서 쓰겠다고 하면 어떻게 할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제가 그 방법을 많이 우려먹었죠. 그러다보니 차를 안 타고 일부러 걸어 다닌 경우가 많아요. 한국에서 담임 목회할 때도 그랬어요. 여름에 제 방에 에어컨 달겠다고 해서 제가 달지 말라고 했어요. 유아실, 영아실, 사무실까지 다 달고 마지막에 내 방 달아라 그랬습니다. 그랬더니 장로님들이 서둘러요. 목사 방부터 달면 교육부는 안 달고 세월아 네월아 합니다. 사실은 고도의 정치죠. 김희태 목사: 그러다가 평생 못 다는 수가 있어. 권혁선 목사: 난 일 년 만에 다 달었어. 김희태 목사: 그거 하나님의 은혜네. 광주의 어느 큰 교회 목사님은 평생 에어컨 없이 지냈어요. 권혁선 목사: 야 진짜 못됐구나. 김희태 목사: 지독한 사람들이에요. 그러니까 그 다음에도 그 교회가 난리더라고요. 그런 사고가 우연히 나온 게 아니에요. 권혁선 목사: 옛날 그 목사님 점잖으시잖아요. 김희태 목사: 부흥회 가면 깜짝 놀래요. 그렇게 큰 교회가 사무실에 에어컨이 없어요. 광주도 여름에 굉장히 덥거든. 권혁선 목사: 저 인간이 좋게 이야기했다. 그러다 안 했다가 저 인간이 넥타이 돌려 매면 난리가 난다는 걸 알아요. 그래서 저는 좋게 이야기할 때 서로 잘하자. 넥타이 돌려 매면 막다른 골목이니까 알아서 해라. 김희태 목사: (일본 교회 서한결 사모님을 보며) 사모님 모셔다 드릴게요. 가십시다. 서한결 사모: 제가 한번 걸어 가보죠. (동석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사모님에게 차를 타고 가시라고 했다. 두 사람이 일어서 카페를 나갔다.) 김영배 목사: (가는 두 사람에게 인사하며)저희는 좀 더 있다 버스 타고 공항으로 가겠습니다. (우리는 남은 커피를 마저 비우며 이야기를 더 나누었다.) 권혁선 목사: 동광교회를 소개해 주었을 뿐인데 김희태 목사는 자기 가족들한테도 제가 가문의 은인이라는 말을 늘 하는 겁니다. 사람들이 사실 저 정도 위치에 올라가면 다른 사람들한테 권혁선 목사가 김 목사한테 어떻게 했다 이런 말 안 합니다. 처음에는 좀 하지만 말입니다. 오히려 수치로 느끼거든요. 목사님도 그런 경우를 많이 느꼈을 것입니다만 제 경우에도 보면 큰 은혜는 하나님과 부모만이 베풀 수가 있고 사람이 베풀면 서로 떠나게 됩니다. 뭐 그것이 인생이죠. 그런데 그런 단계를 넘어가는 사람은 큰 인물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살다 보면 어떤 사람은 절체절명(?體?命)의 일인데 나한테는 손 한번만 내밀면 되는 일이 있잖아요. 제가 그렇게 도와줄 때는 그 사람을 잃는다고 생각하고 도와줘요. 도움 받은 사람은 평생 잊지 않겠다고 말하죠. 그런데 대부분 얼마 안 가서 (내 추임새를 받아서)잊어버릴 정도가 아니고 욕을 합니다. 내가 그 사람을 그렇게 멀리 한 건 이런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비난을 합니다. 인간의 심리가 그런 모양입니다. (전화벨이 울렸다.) 그런 문제를 넘어서는 사람은 정말 큰 사람입니다. 사실 김 목사님한테는 제가 오히려 변덕을 많이 부렸습니다. 파닥파닥하는 못된 성질이 제가 있어요. 김희태 목사님하고 40년 우정이 유지된 건 제가 잘 해서가 아니라 김 목사님이 잘 해 주어서 그렇게 된 겁니다. 그래서 제가 평생 도움을 받고 삽니다. 제가 그러죠. 김 목사님 잘된 건 하나님께서 나 도와주라고 그렇게 된 거라고요. 오히려 뭐 한 놈이 큰소리친다는 격이죠. 김영배 목사: 같은 서울남노회 회원들 가운데도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더군요. 권혁선 목사: 김희태 목사님은 의리를 지켜요. 제가 복이 많아서 김 목사님을 사귀게 된 거죠. 저는 먼저 부모를 잘 만났어요. 아내도 잘 만나고 자식들도 좋아요. 저는 정말 성도들도 잘 만났어요. 그리고 아주 좋은 친구를 만났어요. 어떻게 보면 저한테는 가장 좋은 형님이죠. 나이도 저보다 두 살 위죠. 저는 만 가지가 없는데도 막 채워져요. 저는 참 복이 많은 사람입니다. 김 목사님은 정치도 하는데 막상 총회장은 되고 싶어 하지를 않아요. 순수한 거죠. 시대가 하도 순수하지 않으니까 오해를 받을 수도 있는데 어쨌든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설교도 살아 있어요. 사실 김희태 목사는 설교를 위해 많은 독서와 기도와 삶으로 준비한다. 그래서 그는 설교는 물론이고 크리소스톰의 삶과 정치적 성향도 닮았다. AD 397년에 콘스탄티노플의 대주교인 넥타리우스(Nectarius)가 죽자, 후임으로 크리소스톰이 선임되었다. 그러나 크리소스톰은 동방 기독교의 노른자위를 차지할 마음이 없었고, 안디옥 교인들도 위대한 설교자가 떠나는 것을 원치 않았다. 하지만 제국의 지도자들은 명성이 자자한 크리소스톰을 콘스탄티노플로 납치하듯 데려갔다. 안디옥에서는 그를 놓아주지 않으려 애썼지만, 전격적인 조치로 콘스탄티노플 대감독으로 전임되었다. 콘스탄티노플에서의 첫 시작은 만사가 순탄하였다. 이곳 사람들도 그의 설교에 감명을 받았다. 그는 금욕적인 삶을 살면서, 많은 수입을 구제와 다른 경건한 일에 사용하였다. 그러나 콘스탄티노플은 정치적인 술수와 교직의 타락이 난무하는 도시였다. 이러한 상황을 알게 된 크리소스톰은, 부패하고 타락한 수하의 성직자들을 한 치의 용서도 없이 치리했고, 사회 개혁을 촉구하였다. 콘스탄티노플의 성도들을 향하여 도덕적이고 검소한 삶을 살아갈 것을 설교했다. 예배당 근처에서 벌어진 황후 유독시아의 은상 헌당식을 기념하는 외설적인 행사와 춤을 크리소스톰이 방관할 수 없었다. 그즈음 세례 요한의 축일에 맞춰 크리소스톰은 다음과 같이 설교했다. “또 다시 헤로디아가 소리쳤습니다. 또 다시 그녀가 난리를 쳤습니다. 또 다시 그녀가 춤을 추었습니다. 또 다시 그녀가 세례 요한의 목을 쳐서 쟁반에 담아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크리소스톰은 위대한 설교자로서 세상과 정치적 지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전한 그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이생의 자랑과 안목의 정욕, 육신의 정욕을 원치 않았던 크리소스톰은 위대한 영성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능력 있게 선포하는 위대한 설교자가 될 수 있었다. AD 407년 크리소스톰은 세상을 떠나게 될 때 전 생애에 걸쳐서 가장 짧고 가장 뛰어난 “모든 일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아멘” 이라는 설교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이 세상을 떠나 하나님에게로 갔다. 아무리 과학이 인간의 모든 것들이 뇌에 있다고 말해도, 우리는 마음과 영혼이 가슴에 있다고 믿으며 사랑하고 이별해야 한다. 그렇게 살다가 하나님 말씀대로 떠나야 한다. 성경은 말씀한다.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니라 슬기로운 자의 책망은 청종하는 귀에 금고리와 정금 장식이니라 잠 25:11-12 2024-10-14
-
[더굳뉴스] 김한욱 목사 소나무의 푸르름
외교 전략 가운데 ‘대나무 외교’가 있다고 한다. 그것은 ‘뿌리는 단단히, 줄기는 곧게, 가지는 유연하게.’ 핵심은 가지의 유연함을 지키는 게 아니다. 오히려 휘어도 부러지지 않는 뿌리를 위한 즉 원칙의 외교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사계절 푸른 소나무는 유연하게 휘지 않지만 대신 어떤 바람이 불어도, 어느 계절이 와도, 제 빛깔을 잃지 않는다. 소나무는 꺾이지 않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혹한에도 곧게 서 있기 때문에 아름다움을 유지한다. 하나님의 영광 그 빛을 위한 개혁주의 열망처럼. “논문을 쓰기 위해 학교 연구실 책상 주위를 배회했지만 두 줄을 넘길 수 없었다.” 대한민국의 초기 사학계에 영향을 미쳤고 민족사학을 개척하고 그리고 그 한국사의 대중화에 힘썼다는 평가를 받는 역사학자 고 이기백(李基白, 1924년 10월 21일 ~ 2004년 6월 2일) 교수의 수필에 나온 한 문장이다. 그의 묘비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혀있다고 한다. “민족에 대한 사랑과 진리에 대한 믿음은 둘이 아니라 하나다." 그렇듯 "총회에 대한 사랑과 구원에 대한 믿음은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신앙을 드러낸 목사가 총회 현장에 나타났다. 그는 2022년 9월 6일 대전중앙교회에서 열정적인 정견발표를 외친 신예 제107회 총회 부서기 후보 김한욱 목사다. 그는 예전에 제101회 총회 부서기 후보로 등장해 돌풍을 일으킨 총회 불꽃 권순웅 목사를 떠올리게 한다. 그는 2016년 9월 8일 대전중앙교회에서 '개혁, 바로 세우기, 품격 회복 등 이른바 3R을 통해 성숙한 총회가 되는 일에 헌신하겠다'라고 정견발표를 했다. 그리고 9월 26일 부서기 선거에서 신예 권순웅 목사가 총 1369표 중 808표를 얻어 558표에 그친 관록의 김상현 목사를 제치고 당선됐다. 그 뒤를 이어 2022년 9월 7일 푸르른 소나무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김한욱 목사의 정견발표다. "저는 정견발표를 위해 오랫동안 준비해왔습니다. 그 준비과정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귀 기울였습니다. 얼마 전에 하나님께서 제 마음에 감동을 주셨습니다. '네가 아무리 좋은 청사진을 내놓는다 하더라도 네 자신이 올바른 사람이 아니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깨우침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모든 공약을 일단 내렸습니다. 그리고 저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우리 목사님들과 장로님들에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총회는 정말 일꾼, 정말 총회를 아름답게 변화시킬 일꾼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불신자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시골 조그만 교회에 초등학교 4학년 때 출석했습니다.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습니다. 그리고 가정이 너무 가난해 열여덟 살에 외항선 선원으로 배를 타기 시작했습니다. 친구들이 고등학교 다닐 때 저는 외항선을 타고 어둠의 그늘을 지나기 위해서 놓치 않은 것이 있다면 성경책입니다. 기도하고 성경을 읽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제 마음에 감동을 주셨습니다. 제가 열아홉 살 때 30명이 탄 배에서 저 혼자 예배를 드리며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선원들을 전도하게 해주십시오.' 결국에는 30명 가운데 27명이 모여 예배하게 되었습니다. 1년 뒤 한 달을 쉬게 됐는데 그 시간 동안 육지에서 전도 훈련과 영적 사역을 배웠습니다. 22살, 25살 청년의 시대에 거리로 나가서 전도를 했습니다. 26살에 교회를 개척하고 신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공부했습니다. 저는 한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 너무나 귀하기 때문에 어두운 광야에서 사람들을 쫓아다니며 전도했습니다. 제가 목사가 되기 위한 두 가지 뜻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 세상에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교회를 세우고 영혼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24년 전(1998년)에 새안양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그리고 ‘제2 새안양교회’를 세우고 안양에서 멀리 떨어진 하남에도 교회를 세웠습니다. 다 당회가 구성되고 독립했습니다. 저는 총회를 위해서도 바르고 정직하게 일하겠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섬기는 가운데 '해피데이 전도시스템'을 개발해 불신자를 전도하는데 앞장섰습니다. 제 공약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제107회 '샬롬 부흥'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이때를 위하여 김한욱을 준비시켜주셨고 총회장 이하 임원들을 잘 섬겨서 제107회 총회를 아름답게 끝맺는 일을 뒷바라지하고자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회중 힘찬 박수) 신앙은 지식보다 중요하다. 지식엔 한계가 있지만 신앙은 세상을 감싸고 하나님과의 샬롬이 이루어지고 푸르른기 때문이다. 김한욱 목사에게 어울리는 말씀일 듯싶다. 성경은 말씀한다. …하나님이여 저를 기억하시고 은총을 내리소서 느 13:31 2022-09-08
-
[더굳뉴스] 허은 목사 부산의 아우구스티누스
지난 2017년 대통령 선거 막바지에 민주당의 공동선대위원장인 이해찬씨는 말했다.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다음에는 안희정·이재명·박원순 같은 사람이 이어서 쭉 장기 집권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보수 세력을 완전히 궤멸시켜야 한다.” 보수 진영으로서는 ‘싸가지 없는 소리’였겠지만 이제 윤석열 정권이 들어선 지 2년 반이 지난 이 시점에서 어쩌면 이해찬씨의 말은 그냥 흘려버릴 말이었던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말한 세 사람 가운데 사법 위기에 허덕이는 이재명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무들은 먹은 것도 없이 겨우내 버틴 몸으로 꽃까지 피워내야 하는 것이 봄이다. 새싹이 온몸으로 흙을 밀어 올려야 하는 것도 봄이다. 그건 정말이지 하나님이 모든 생명이 아무도 모르게 잠들 수 있도록 이마를 쓰다듬어 주시는 은총이다. 인간의 공로보다 하나님의 은총을 강조한 아우구스티누스(354년 11월 13일 ~ 430년 8월 28일)가 말했다. "사랑이 있고 소망이 있어야 없는 것을 본다. 소망이 없으면 눈에 안 보이는 것을 보지 못한다." 아우구스티누스라는 이름은 '작은 아우구스투스'라는 뜻으로 로마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에게서 따온 이름이다. 427년 반달족(게르만족의 한 민족)이 북아프리카를 쳐들어왔을 때 피난민들이 전쟁을 피해 아우구스티누스 감독(bishop)이 살고 있던 히포에 쏟아져 들어왔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감독이었으므로 안전한 곳으로 찾아가거나 교회에 은둔할 수도 있었지만, 기꺼이 피난민들을 위해 봉사했다. 결국, 아우구스티누스 감독은 430년 8월 28일, 반달족이 히포를 점령하기 얼마 전(반달족의 히포 점령은 431년의 일) 피난민들을 돌보다가 걸린 열병으로 76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그는 이 땅의 삶을 끝내는 순간까지도 전쟁으로 두려움에 빠진 난민들을 돌보며 피난처를 제공하였다. 이는 "우리의 이웃이 하나님께 관심을 가질 때 그들에게 자비롭게 대하는 행동은 우리를 불행에서 벗어나게 해 주고 행복에 이르게 한다"는 자신의 신념에 따른 것이었다. 그는 '고백록'에서 말했다. "물체는 제 중심에 따라서 제 자리로 기웁니다. 중심이란 꼭 밑으로만 아니고 제 자리로 기웁니다. 불은 위로 향하고 돌은 아래로 향합니다. 제 중심을 향해 움직이면서 제 자리를 찾습니다... 그런 질서가 덜한 곳에는 불안하고 질서가 잡히면 평온해집니다. 제 중심은 저의 사랑입니다. 사랑으로 어디로 이끌리든 그리로 제가 끌려갑니다. 주님 은사로는 저희가 불타오르고 위로 이끌려갑니다. 타오르면서 갑니다." 2023년 3월 16일 오후 2시 부산 연제구 연산 8동에 있는 동현교회의 주민을 위한 무료 카페에서 지용길 목사와 함께 허은 목사와 대담을 나누었다. 지형적으로 저지대에 위치해 도로여건이 열악하고 인근 주민과의 관계성이 낮아 지속적인 인구 유출과 고령화로 인한 사회적 쇠퇴가 가속화되고 있는 곳이다. 2022년 5월 21일 입당 감사예배 및 헌당식을 드린 산등성이 동네 한가운데 있는 지상 4층, 지하 1층의 예배당은 아늑했다. 연산동을 아우르는 연건평 511평의 예배당은 주변 개발지역과는 달리 지형적인 한계로 인해 소외받았던 연산8동과 어울려 아담했다. -여기는 언제 자리 잡으셨습니까. "지난해 5월에 입당했습니다. 아직 1년이 되지 않았습니다. 제가 총회 부서기 마치고 그해 2021년 12월에 공사 시작해 서기 임기 중(2022년 5월)에 완공이 됐습니다." -많이 바쁘셨을텐데. "네. 교회 일과 총회 일이 겹쳤습니다. 교회 장로님들, 집사님들 많이 수고하시고 정말 은혜중에 잘 마쳤습니다. 이 지역은 주로 서민들이 많이 삽니다. 주택가 한가운데 있고 도로변에 있지 않아서 불리한 면이 있는데 오히려 동네 가운데 있어 조용하고 지역 주민들하고 가깝게 지내니까 좋습니다. 이 카페는 무료 카페입니다. 누구나 자기 마음대로 차 빼서 마시고 우리 교회 교역자 집사님들이 순번을 맡아 봉사를 합니다." -이런 교회 카페는 못 본 것 같은데요. "여기는 어려운 분들, 독거노인들이 많아 지난해 5월에 입당하면서 전체 100개 가정에 쌀, 라면을 동사무소를 통해 전달했습니다. 지난 연말 성탄절에 2백 가정에 한 상자에 105만 원 상당의 생필품을 전달했습니다. 그야말로 지역에 있는 교회로서 지역민과 함께하려고 합니다. 우리 사회가 초고령화 사회로 가니까 교회 안에도 어르신이 많고 교회 주변 이웃에도 어르신이 많습니다. 다음 세대도 잘 키워야 하지만 이 어르신들에게 천국 기실 때까지 여러 가지 책임을 져주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장기적으로 집이 나고 교회가 살 여력이 되면 이런 어른들을 1인 1실, 혹은 2인 1실로 30분 정도 천국 가실 때까지 모셨으면 합니다. 그래서 제가 사회복지학도 전공해 사회복지사 자격증도 땄습니다. 요양보호사 자격증도 따고 요양시설을 운영하면 외부 시설장을 모셔야 되는데 제가 자격증을 따니까 경비도 줄이게 되죠. 그런데 교회가 작지만 아담하게 세워지니까 주변 지역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 있어 여기로 보내셨구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전에도 그랬습니다만 최근에도 우리 장로님들께서 '목사님 꿈꾸고 계시는 그 일을 현실화시켜봅시다. 교회 짓고 1년도 안 됐으니까 준비가 되면 옆에 있는 건물 하나 사 가지고 우리 형편에 맞게 부속건물 지어 청소년, 아이들, 청년들 교회 와서 마음껏 공부하고 놀 수 있게 자리 만들어줍시다. 그 위에는 어르신들을 모시고 우리가 평생 책임져주고 하는 일을 생각하고 준비해가고 있습니다. 작지만 아담하게 지역민과 함께하는 그런 교회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동현교회는 개척하셨나요, 부임하셨나요. "제가 2대 목사입니다. 1대 목사님이 다른 교회를 섬기다가 나오셔서 성도 30여 명하고 한 가정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다 그 어려운 시절에 소금공장도 하시고 빌려서 예배드리셨습니다. 제가 보니 전월세를 일곱 군데나 다니셨습니다. 그러다가 작은 주택을 하나 매입해 예배당을 짓고 IMF가 올 당시 빚이 상당했습니다. 저를 후임으로 오라 했습니다. 당시 목사님이 협심증으로 건강이 많이 안 좋으셨습니다. 숨이 차서 설교를 잘못하셨습니다. 그때 제가 담임목사로 부임을 하고 1년 뒤 다 물려받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전임 목사님이 인천 길병원에서 수술하고 좋아지셨습니다. 건강이 좋아지시니 3년 동안 안 물려주시는 겁니다. 3년 뒤 위임투표를 해 물려받긴 했습니다. 물려받은 뒤 있던 교회를 매각하고 다른 교회를 사서 리모델링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교회는 우리에게 부담이 됐습니다. 그러다가 그 교회가 너무 도시 중앙이고 환경이 유흥가라 장기적으로 볼 때 어렵겠다는 판단이 섰습니다. 코로나 시국인데 장로님들과 뜻을 모으게 됐습니다. 그리고 마침 여기 집 네 채가 한 날, 한 시 동시에 계약이 됐습니다. 그 네 집을 한 필지로 묶어 헐어내고 건축을 했습니다. 그리고 2021년 12월에 공사 시작해 총회 서기 임기 중인 2022년 5월에 완공이 됐습니다." -은혜롭고 순적하게 성전 건축이 됐군요. "그런데 막상 와보니 없는 사람이 많은 동네라 교회가 제대로 되겠나 싶은 생각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안 좋아하시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것이라 믿었습니다. 예배당을 건축하고 옥상에 올라가 보니 왜 이곳으로 하나님이 보내셨는지 환하게 이해가 됐습니다. 주변에 대단지 아파트가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습니다. 성벽처럼 싹 둘러싸고 있고 딱 우리 교회가 서 있는 주변에 서민들이 사는 고만고만한 건물만 좍 있는 겁니다. 그 가운데 우리 교회가 서 있는 겁니다. (나중에 올라가 보니 정말 그랬다.) 어려운 분들 사는 가운데 교회가 있고 그 주변에는 대단지 아파트가 병풍처럼 좍 서 있는 겁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곳에 교회를 세우셨는가. 그래 이분들 섬기라고 하나님께서 이곳에 교회를 세우셨구나 하는 생각으로 받아들이고 말씀을 들을 때 성도들의 생각이 이제 많이 바뀌었습니다. 그러라고 하나님께서 교회를 이곳에 세워주셨다. 그렇게 해서 작지만 차근차근 우리 힘에 맞게 지역도 섬기고 또 우리 노회 장로회에서 해외 개척 선교를 하겠다 해서 단독으로 하기에는 좀 버거운 게 있고 해서 우리 교회하고 노회장 노회하고 절반씩 힘을 보태 캄보디아에 교회를 하나 세웁니다." 그 관련 기사가 '기독신문'에 다음과 같이 실렸다. 동부산장로회 임원들은 부산 동현교회(담임 허은 목사) 성도들과 함께 2023년 2월 27일부터 3월 2일까지 캄보디아를 방문하고, 천준상, 이숙영 선교사가 사역하는 바탐방지역을 탐방했다. 이 지역에서는 약 20평 규모의 비전교회 예배당을 신축하고 이 일대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중고대학생 52명이 생활할 수 있는 EDM선교센터를 증축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동부산장로회와 동현교회는 이 공사에 들어가는 비용 4천만 원을 함께 감당하기로 했다. 허은 목사는 지난 2021년 9월 제106회 총회 서기 직무를 시작하면서 다짐했다고 한다. “총회 서기는 총회 소속 노회와 교회의 분쟁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해야 하는 직분이지만 법과 원칙을 지키며 어떤 외압에도 바르게 섬기겠다.” 부산 아우구스티누스 허은 목사는 제107회 총회선거관리워원회 서기로서 제107회 총회 불꽃 권순웅 총회장의 클린개혁을 떠받칠 제108회 총회 임원과 상비부 선거를 깨끗하고 투명하고 공정한 선거를 관리해야 되는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했다. 낳아주신 어머님, 길러주신 어머님을 다 같이 진심으로 섬겼던 효심을 그리고 이 땅의 삶을 끝내는 순간까지도 자신의 신념을 따른 아우구스티누스처럼 동현교회와 총회를 섬길 것이라 믿는다. 그리면 제104회 총회장 이승희 목사가 총회 석상에서 "당신 같은 사람이 총회장이 되어야 한다"고 한 예언이 이루어질 것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히 11:1-3 2024-11-29
-
[더굳뉴스] 청교도 김장환 목사와 김종원 목사 5
“미국은 다시 이기고 있습니다. 그 점을 증명하는 완벽한 증거가 오늘 밤 이 자리에 있습니다.” 2026년 2월 24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2기 행정부 들어 두 번째로 열린 상·하원 합동 연설이 시작됐다. 이날 백악관과 민주당은 국정연설에 초청한 ‘특별 손님’을 통해 각자의 정치적 입장을 강조하는 전략을 펼쳤다. 트럼프는 6·25 전쟁에 전투기 조종사로 참전한 E. 로이스 윌리엄스를 초청해 그에게 미국 최고 군사훈장인 ‘명예 훈장(Medal of Honor)’을 수여했다. 그는 1952년 기밀 작전에서 소련 전투기 네 대를 격추했다. 트럼프는 이달 초 윌리엄스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훈장 수여 사실을 알렸다고 한다. 이날 윌리엄스는 멜라니아 여사와 나란히 앉았고, 멜라니아가 목에 훈장을 걸어줬다.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는 순간은 2차 세계대전의 재현이었다. 제1 세계로 간주되는 대륙에서 오랜 역사를 공유하는 이웃 국가를 영토 문제로 침공하는 일은 지난 반세기 동안 일어난 적이 없다. 적어도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한 이후로는 없다. 한국전쟁은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북위 38°선 전역에 걸쳐 러시아 사주를 받고 북한군이 불법 남침함으로써 일어난 한반도 전쟁이다. 광복 후 한반도에는 냉전체제 속에서 남북에 별개의 정부가 수립되었다. 이 과정에서 막강한 군사력을 갖춘 북한이 통일을 명분으로 전면적인 남침을 개시했다. 유엔의 결의에 따른 국제사회의 개입으로 역전되던 전황은 다시 중공군의 개입으로 교착상태에 머물다가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이루어지면서 전쟁이 중지되었다. 한민족 전체에 큰 손실을 끼쳤고 이후 남북분단이 더욱 고착화하여 아직도 휴전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미군병사 칼 파워스 기념비 극동방송 이사장 김장환(1934-) 목사의 일생은 한국 현대사의 고난과 영광이 겹쳐있다. 경기도 화성의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었던 김 목사가 1950년 한국에 온 미군 칼 파워스(Karl Powers, 1928~2013. 9. 21) 상사의 무조건적 헌신으로 미국 유학을 마치고 목사가 되었다. 그는 말했다. "내 인생을 바꾼 건 한 미군 병사의 힘이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예수님도 한 사람이셨습니다. 모든 것은 한 사람의 힘으로 시작됩니다.” 그는 1934년 경기도 화성군에서 태어나 가난한 소작농의 가정에서 5남매 가운데 막내로 자랐다. 어려운 형편이라 늘 끼니가 걱정이었다. 그가 4학년 때인 1945년 8월 15일 광복이 되면서 수원의 못골이라는 곳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전학 온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여 4대1의 경쟁을 뚫고 6년제 수원농림학교에 들어갔지만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학업을 계속하기 힘들었다. 어떻게든 공부를 하고싶었던 그는 서울의 철도고등학교는 전액장학금으로 공부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1950년 6월 26일 혼자 서울로 향했다. 그 하루 전의 한국전쟁 발발을 알지 못했던 그는 피난 인파에 휩쓸려 고생하다 구사일생으로 살아 수원으로 돌아왔다. 9월 28일 서울이 수복되고 인민군이 물러갔으나 여전히 학교 문은 열리지 않아 그는 산에 나무를 하러 다니곤 했다. 그가 열일곱 살 되던 해, 6.25 전쟁 중인 1950년 12월 경부터 이듬해인 1951년 1월 초 사이, 중국인민지원군의 공세로 유엔군의 주력이 서울에서 물러나고 공산군이 서울을 재점령한 1·4후퇴 때 퇴각한 미군들이 수원교도소에 잠시 머물게 되었다. 그가 친구들과 담장 밖에서 구경을 하고 있을 때 한 미군이 여러 친구 중에서 김장환을 손가락으로 지목하여 그를 막사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더니 난로를 가리키며 불을 지펴달라는 시늉을 했다. 눈치 빠른 그는 재빨리 논두렁에 박아놓은 말뚝을 뽑아와서 난로불을 피워주고 시키지도 않은 청소까지 거기다 신발까지 반짝반짝하게 닦아 놓자 영특하고 부지런한 그를 매일 오게 했고, 부대가 경산으로 내려갈 때 그를 데려 갔다. 막내아들을 전쟁통에 타지로 보낼 수 없었던 어머니 반대가 심했지만 그는 영어도 배우고 일을 해서 돈도 벌고 싶었다. 일을 하고 받은 초콜릿이나 담배는 암시장에 내다 팔면 바로 돈이 되었다. 1950년 9월 28일 서울 수복이 되자 수원교도소 자리에 미군 부대가 들어왔다. 갓난아기에게 무언가 먹이려고 애쓰던 어머니들, 전쟁고아의 비참한 삶, 공포에 떨던 민간인들, 그리고 폐허가 된 마을들. 경기도 수원에서 살던 소년 김장환 집안은 찢어지게 가난했다. 김장환 목사는 수복 후 당시를 회상했다. “우리 집은 소작농이었습니다. 농사를 지으면 60%를 땅 주인에게 주고, 나머지 40%로 살았습니다. 식구는 13명이었습니다. 양식이 모자라 한 가마를 빌리면 가을에 한 가마 반을 갚아야 했습니다. 쌀이 한 톨도 섞이지 않은 보리쌀만 먹고 자랐습니다. 그래서 꿈이 정치인이었습니다. 친구들과 종종 미군 부대로 놀러 갔지요. 운 좋으면 초콜릿이나 껌을 얻을 수 있었거든요. 소와 마차를 빼앗겨 집안은 빈털터리였습니다. 미군 부대에서 얻어가는 담배와 비누, 통조림 등을 팔아서 집안 생계를 도왔지요.” 하루는 미군이 김장환에게 장작을 구해 난로에 불을 피워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막사 청소까지 해놓았다. 남달리 똘똘하고 영리한 그는 미군 숙소에서 허드렛일을 하던 소년 하우스 보이가 됐다. 미군 부대에서 하우스 보이로 일하게 된 어린 소년들은 미군에게 달러로 임금을 받고, 자신이 일하는 숙소의 미군에게 필요한 물품들을 얻을 수 있었다. 미군의 전투식량인 C-레이션을 얻을 수 있는 것은 기본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사용한, 조리 과정 없이 바로 먹을 수 있는 1인용 통조림 형태의 전투식량이다. 해방 이후엔 C-레이션이 상자당 쌀 1되 값에 시장에서 팔렸다. 그리고 미군이 입지 않은 속옷, 양말, 전투화, 군복 등도 모두 얻어올 수 있었다. 하우스 보이로 일하면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의 가족들도 배고픔을 어느 정도 면할 수 있었다. 경산에 있을 때 어느 미군이 그에게 '빌리'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영미권의 남자이름인 윌리엄(William)에서 파생된 이름 혹은 애칭(William→Billy→Bill)이다. 생뚱맞게 윌리엄에서 왜 발음이 전혀 다른 빌리와 빌이란 애칭이 나온 것인지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으나, '윌리엄'이란 영어식 이름은 원래 게르만식 이름에 뿌리를 두고 있다. 특히 게르만식 언어에서는 자음 W가 영어의 V와 비슷한 음가를 지니기 때문에 나오게 된 형태이다. 실제 동일한 계통에서 파생된 독일식 이름으로 빌헬름(Wilhelm) 또는 빌로헬름(Wilohelm)이 있다. 따라서 양쪽 모두 애칭이 빌리(영어: Billy, 독일어 Willy)가 된다. "단호한 보호자"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 이름을 지어준 미군은 꼬마 소년 김장환이 아주 똑똑하고 야무지게 보였던 모양이다. 빌리는 그곳에서 일생의 은인인 인사 업무를 담당하던 칼 파워스 상사를 만난다. 당시 22세였던 칼 파워스 상사는 폭격을 피해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부모와 생이별한 어린이들을 보면서 자신이 단 한 명의 아이라도 이 전쟁에서 구해야겠다는 결심을 하던 중 옆 막사에서 성실하게 일하는 빌리를 눈여겨 보게 된 것이다. 그는 빌리에게 미국에 가서 공부를 시켜주겠다고 제안했고 늘 배움에 목말라 있던 빌리도 선뜻 따라가겠다고 약속했다. 51년 5월 칼 파워스 상사가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그린빌에 있는 밥존스 고등학교 입학 허가서를 들고 나타났다. 환갑이 넘은 어머니는 고심 끝에 아들의 유학을 허락했다. 아들이 7년의 유학을 마치고 돌아오기 전에 세상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인지 어머니의 눈에서는 눈물이 쉴새없이 흘렀다. 아들에게 종이봉지에 흙을 담아 주면서 고향생각이 날 때 다려 먹으라는 당부를 하며 보냈다.1951년 11월 12일 전쟁중인 최빈국 한국에서 17세의 고등학생이 유학을 떠난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11일의 항해 끝에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을 때 빌리는 놀라서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호롱불로 밤을 밝히던 수원에서 크리스마스 트리가 번쩍이는 신천지에 도착한 것이다. 아직 근무연장기간이 끝나지 않은 칼 파워스 상사 대신 먼저 귀국한 동료가 빌리를 마중 나왔고, 며칠 후 드디어 칼 파워스 씨가 사는 버지니아주 단테시에 도착했다. 빌리는 미국에 가서야 칼 파워스 씨가 그리 넉넉한 형편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단테시에서도 한참을 들어가는 산골짜기에 사는 칼 파워스 씨는 곧 대학에 입학할 예정이었지만 자신의 결심을 실천하기 위해 빌리를 데려와 사우스 캐롤라이나주의 기독교 사립학교인 밥존스 중학교 3학년에 편입하게 되었다. 기독교인이 아닌 칼파워스 씨가 빌리를 학비가 싼 버지니아주 공립학교 대신 기독교 사립학교에 넣은 것이 오늘의 김장환 목사를 탄생시킨 계기가 되었다. 군대에서 한 동료가 "밥존스가 외국학생들에게 관심이 있다"고 한 말 때문에 선택한 학교였다. 빌리를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주려고 학비가 비싼 사립학교에 입학시킨 것이다. 밥존스 재단은 기독교 교육을 위해 밥존스 1세가 1927년에 설립한 학교로 매우 보수적인 학풍을 고수하고 있다. 근본주의 신학을 신봉하는 기독교 학교로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명문으로 꼽힌다. 밥존스 재단은 유치원부터 대학원까지 한 울타리에 있는데 중학생부터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되어있다. 엄격한 생활과 함께 매일 아침 채플에 반드시 참석해야 한다. 빌리는 말도 통하지 않는 가운데 학교생활을 하면서 어려움을 겪던 중 제리 메이저라는 신학과 학생의 전도를 받고 하나님을 영접했다. 지독한 외로움과 답답함에 시달리던 빌리는 한국말로 기도를 하면서 기운을 차릴 수 있었다. 선생님들이 돌아가며 방과후에 영어를 못하는 빌리를 따로 지도해주었고, 기숙사 동료들도 열심히 도와주어 첫 학기를 낙제하지 않고 통과할 수 있었다. 칼파워스 씨에 집에서 방학을 보내면서 빌리는 파워스 씨가 군인장학금으로 어렵게 공부하면서 자신의 학비를 댄다는 사실을 알고 더욱 열심히 공부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빌리는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영어가 익숙해진 데다 칼 파워스 씨를 실망시키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각오를 단단히 다졌기 때문이다. 반드시 뭔가 이룩한 뒤 한국으로 돌아가겠다는 일념도 한몫 했다 빌리가 더욱 자신감을 얻게 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 전국 고등학교 웅변대회에 참가하고부터였다. 전국 웅변대회가 열린다는 사실을 알고 칼 파워스 씨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 직접 원고를 써서 선생님께 지원하겠다는 결심을 밝혔다. 선생님은 동양학생이 지원한 것을 가상히 여겨 웅변연습을 도와주었다. R과 L 발음을 고치기 위해 입에 구슬을 물고 피나는 연습을 한 결과 교내대회에서 1등을 하고 학교 대표로 주대회와 전국대회에 나가 1등을 해 아이젠하워상을 받았다. 그 일로 빌리는 밥존스에서 일약 유명인사가 되었다. 방학 때 빌리가 1등 트로피와 부상으로 받은 텔레비전을 안고 칼 파워스 씨 집으로 돌아갔을 때 온동네에 화제가 되었다. 칼파워스 씨는 빌리의 학비를 대기가 버거울 때는 지역 신문인 '디킨스니언'지에 빌리의 사정을 알리고 모금을 하기도 했다. 많은 사람이 동양학생을 위해 성금을 보내주었고 빌리는 모금 문화에 대해 고마움을 느꼈다. 학교생활에 자신이 붙은 빌리는 과외활동에도 열심이었다. 하지만 사귀는 여학생이 없어서 의무적으로 참석해야 하는 학교 음악회에 언제나 혼자 가야했다. 키가 큰 미국 여학생들에게 호감을 느끼지 못했던 빌리는 고등학교 3학년 때 학교 식당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아담하고 예쁜 여학생을 발견하고 눈을 반짝였다. 용기를 내서 데이트 신청을 했을 때 트루디는 환하게 웃으며 빌리를 맞아들였다. 만능 스포츠맨인데다 학업성적이 우수하고 기숙사에서 벌점을 단 1점도 받지 않은 모범생 빌리는 이미 학교 내에서 인기스타였다. 두 사람은 음악회에 다녀온 뒤 편지를 주고받다가 2년 후 트루디가 고등학교 3학년 때 정식으로 데이트를 시작했다. 빌리는 고교 졸업 때 우등상을 받았고 그 소식은 빌리의 학비를 모금해주었던 디킨스니언에 보도되기도 했다. '빌리 김은 모히칸 문학단체의 일원이었고 스포츠 매니저이기도 했다. 또 학급 성가대원이었고 미국 미래교사회 밥 존스 고교 지부의 리더였으며 학생신문 '트라이앵글'지의 스포츠 편집자였다. 그는 사우스 캐롤라이나주 '민주주의의 소리' 웅변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고 빌리를 소개했다. 고교를 졸업할 때 빌리는 망설임 없이 신학대학을 선택했다. 미국에 와서 신앙을 갖게된 그는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의 신앙상담자와 신앙관련 모임의 리더로 활약하면서 믿음을 키워나갔다. 밥존스에서는 정기적으로 채플시간을 통해 바이블 컨퍼런스를 실시한다. 한국의 부흥회와 비슷한 형태인데 빌리는 그 예배를 통해 강한 비전을 받고 주말이면 대학생 선배들을 따라 시골교회에 가서 전도도 하고 간증도 했다. 돈을 모아서 다른 지역에서 열린 빌리그레이엄 전도집회에 참석해 강한 도전을 받기도 했다.빌리는 대학교에서 한 학기를 마쳤을 때 파워스 씨 집과 가까운 롱브랜치 교회에 강단에 서게 되었다. 출석교인이 약 50명 정도 되는 작은 교회였다. 그 교회에 파워스 씨의 외삼촌이 다니고 있었는데 마침 부흥집회 기간을 맞아 서너 명의 강사를 초청할 때 빌리도 포함되었던 것이다. 빌리는 한시간 동안 한국 상황과 미국에 오게된 경위, 학교 생활, 앞으로의 꿈을 조리있게 강연했다. 그날 집회가 소문이 나면서 빌리는 단테시의 여러 교회에 부흥강사로 초청되었다. 뿐만 아니라 라이온스 클럽과 로터리 클럽에서도 빌리를 스피치 강사로 초청했다. 한번은 비행기를 타고 아칸소까지 가서 스피치를 하고 돌아왔다. 동양인이 거의 없는 지역이어서 한국에서 온 빌리의 흥미로운 스피치는 어디서나 인기였다. 빌리는 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 학비 이외의 경비는 스스로 마련하였다. 칼 파워스 씨가 공부에 지장이 있는 아르바이트는 하지 말라고 하여 주말에 강연을 하고 방학 때마다 동급생인 왈리의 집에 가서 일했다. 왈리의 아버지 왈도 예거 장로는 오하이오주 톨레도에서 닭과 칠면조를 가공하는 회사 코트랜드를 운영했다. 예거 장로는 미국 기독교실업인협회 회장을 3년간 역임한 신실한 크리스천이었다. 빌리는 방학 때 왈리집에서 함께 생활하며 미국 기독교인 가정의 삶을 체험할 수 있었다. 대학 3학년 때까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미국 시골 마을로 전도하러 가는 주말 전도여행에 빠지는 일이 없었다. 어디를 가든 키 작은 한국 청년의 스피치는 큰 감동을 안겨주었다. 4학년 때 빌리는 대학원을 마치면 한국에 가서 복음전도자로 살겠다는 결심을 굳히고 주말 전도여행을 더 열심히 다녔다. 학교생활이 익숙해져 어려움이 없었지만 배고픔 때문에 고통받은 적이 많았다. 기숙사에서 세끼 밥을 먹지만 용돈이 없어 군것질을 할 수가 없었다. 파워스 씨가 어려운 환경 가운데 자신을 도와준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빌리는 꼭 필요할 때만 지원을 요청했다. 빌리와 트루디는 좋은 만남을 갖고 있다가 트루디 언니 결혼식에 참석한 이후 자연스럽게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다. 미시간주 레이크뷰에서 열린 결혼식에 참석한 빌리를 트루디의 아버지는 마음에 들어했다. 빌리를 인근에 있는 프리 감리교회에서 저녁설교를 할 수 있도록 주선하기까지 했다. 트루디의 아버지는 설교를 들으며 빌리를 사윗감으로 점찍었지만 트루디의 어머니는 딸을 가난한 나라로 보낼 수 없다며 반대했다. 트루디의 어머니는 빌리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밥존스 대학교 총장을 만났다. 그 자리에서 총장은 "미국 사람이든 동양사람이든 결혼하려면 빌리 김보다 더 좋은 사람을 고를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루디를 시골집에 데려 갔을 때 칼 파워스 씨의 얼굴이 그리 밝지 않았다. 시골로 시집오려는 여자가 없어 독신으로 지내고 있던 칼 파워스 씨는 트루디 때문에 빌리가 미국에 주저앉게 될까봐 걱정을 했다. 하지만 미국의 중산층 집안에서 어려움없이 자란 트루디가 산골집에서 스스럼없이 부엌일을 하는 것을 본 칼 파워스 씨는 빌리의 결혼을 축하해주었다. 칼 파워스 씨는 빌리가 공부를 마치면 꼭 한국으로 돌아가서 활동하길 바라고 있었다. 빌리는 대학교를 졸업할 때 '1958년 밥존스를 빛낸 30대 동창생'에 선발되었다. 빌리와 같은 해에 졸업하기 위해 부지런히 방학 때마다 학점을 딴 트루디도 그해 8월에 교육학과를 졸업했다. 1958년 8월 8일 저녁 8일 두 사람은 미시간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빌리는 밥존스 신학대학원에 진학하고 트루디는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게 되었다. 트루디가 돈을 벌게 되자 빌리는 7년간 학비를 대준 칼 파워스 씨의 도움을 받지 않고 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 빌리는 1년 안에 대학원을 졸업하기 위해 공부에 전념했다. 트루디도 매일 새벽 2시까지 빌리가 과제물 밀리지 않도록 도왔다. 대학원은 32학점을 이수해야 하는데 대학 때 부지런히 학점을 이수하고 섬머스쿨까지 다닌 빌리는 예정대로 1년 만에 신학석사학위를 받았다. 1959년 2월 단테침례교회에서 빌리가 목사 안수를 받던 날 칼 파워스 씨는 빌리와 뜨거운 포옹을 나누었다. 그해 11월 빌리는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트루디의 교사월급과 빌리의 부흥집회 사례비로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자신을 후원해준 칼 파워스 씨의 고귀한 뜻을 헛되게 해서는 안된다는 결심을 한 것이다. 일단 고국으로 돌아갈 배표 2장을 일단 마련했지만 가난한 고국에 돌아가서 선교활동을 하려니 모든 게 걱정되었다. 부부는 방안에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 한달에 50달러 씩 도와주는 분이 있으면 서슴없이 고국으로 떠나겠습니다"라고 기도했다. 귀국을 앞두고 캔턴 침례교회에서 부흥회를 했을 때, 그 교회에서 마침 매달 50달러씩 선교비를 후원해주겠다고 약속했다. 곧이어 왈도 예거 장로가 세계기독봉사회를 창설하여 김장환 목사의 한국선교를 후원하겠다고 나섰다. 친구들은 한국 선교 때 사용하라며 모금을 하여 4륜구동 포드 픽업자동차를 선물해주었다. 매달 선교헌금을 하겠다고 약속한 친구들도 있었다. 캔턴침례교회와 친구들은 40년 넘게 후원비를 보내주고 있다. 1959년 12월 불안한 눈빛으로 뱃전을 서성이던 17세의 하우스보이 빌리가 8년 만에 목사 김장환이 되어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의 옆에는 파란눈의 트루디가 함께 했다. 그리고 포곡제일교회를 세우고 장로가 되고 김종원 목사를 담임교역자로 섬기게 될 공군 병사 빈병옥이 김장환 목사를 만나려고 한국 전쟁 중인 1951년 설립된 오산공군기지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하나님의 예정된 섭리 안에서... 성경은 말씀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창1:1-5 2026-04-06
G.MISSION
-
[더굳뉴스] 권순웅 목사 ‘샬롬 축복’ 전도 십계명
주님께 나아가면 더러운 내 마음을 주님께서 꽃잎 받듯 받으십니다 나는 주님께 흙자국을 남기지만 주님 가슴에는 꽃이 피어납니다 나는 주님을 눈물과 한숨으로 지나가고 주님은 나를 사랑으로 건너십니다 주님을 만난 후 나는 어려지는데 나를 만난 주님은 자꾸 늙어만 가십니다 봄빛처럼 흩어지는 주다산교회 정문 햇살. 총회 불꽃 권순웅 목사의 잘 묶인 넥타이처럼 교회 앞 뻗은 길에 초록이 지쳐 단풍이 드는 계절. 시인 서정주는 이때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라고 했다. 가수 김광석은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쓴다”고 했다. 그 정도의 감수성이 없더라도 이른 봄 꽃잎을 밟고 걷다 보면 누구나 조금씩 삶의 의미와 환희를 추구하는 수도자가 된다. 열정(passion)의 어원은 ‘고통’이다. 열정이란 고통의 장작더미 위에서만 타오르는 마음의 불꽃이며, 그 자체로 치열한 자기 도전이다. 인생은 슬픔을 내포한다. 우리는 결국 죽게 될 것이고 각자 자율적인 육체의 고독 속에 갇혀 있으며 시간은 흘러가고 지나간 날들은 똑같이 되풀이되지 않는다. 인생을 바꾸고 싶으면 습관을 바꿔야 한다는 말이 있다. 처음엔 사람이 습관을 만들지만 나중엔 습관이 사람을 만들기 때문이다. 특히 나쁜 습관을 정복하지 못하면 결국엔 그 습관이 사람을 정복해 버린다. 2022년 11월 22일 오전 10시 30분 주다산교회(권순웅 목사)에서 전국 노회와 교회에서 ‘샬롬 축복 전도’를 지도할 강사 요원 훈련이 진행됐다. 훈련에는 전국 109개 노회에서 추천한 강사 요원과 노회 추천 전도 선봉교회 목회자 등 500여 명이 참석했다. 훈련은 총회장 권순웅 목사의 강의와 샬롬 축복 전도를 오랫동안 실천해온 주다산교회 현장에서 뜨겁고 진지하게 진행됐다. 김진하 목사(샬부흥운동 본부장)가 ‘예수는 네비게이션’이란 제목으로 설교했다. “죄로 인해 쫓겨난 에덴동산으로 다시 들어가는 운동이 ‘샬롬부흥’입니다. 지난 3년간 코로나19로 교회 강단들이 허물어진 이때 교단 적으로 전도 운동이 펼쳐집니다. 전도는 우리에게 맡겨진 고귀한 사명임을 알아 기꺼이 함께 노력합시다.” 예배에는 총회 회록서기 한기영 목사와 총회회계 지동빈 장로가 참석해 격려사와 축사를 전하고 총회 기둥이 돼가고 있는 배만석 목사(샬롬 부흥 운동 전도 선봉 및 총괄지원단장) 축도로 예배를 마쳤다. 총회불꽃 권순웅 제107회 총회장은 107년 총회 역사상 처음일 총회장 자신의 축복 사례를 들어가며 ‘샬롬 축복 전도 프로세스와 전략’이라는 일목요연한 교재 ‘샬롬 축복 전도 강사 요원 훈련지침서’를 중심으로 또박또박 재미있게 전했다. 그 내용은 30평 개척교회로 시작해 죽다 산 경험에서 우러난 복음전도(evangelism)의 전략이고 실행력 있는 전술을 전하는 것이었다. 전략은 최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앞으로 택해야 할 실행 계획이다. 반면 전술은 목표를 달성하기까지의 개별적인 단계와 행동이다. 권순웅 목사는 “전도하고 싶은데 어떻게 할지 몰라 막막한 분을 위한 특별한 강의”라고 강사훈련 지침서 표지에서 말했다. ‘샬롬 축복 전도 프로세스와 전략’에서 말하는 전략은 아담과 이브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주신 사명을 이루기 위한 것이다. 창세기 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12:2-3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손자병법(孫子兵法, Sun Tzu 's Art of War)은 고대 중국의 병법서(兵法書)이다. 원본은 기원전 515년 오자서의 추천으로 오나라 왕 합려의 초빙을 받아 오나라의 군사(軍師)가 된 손무(孫武)가 쓴 것이다. 현재까지 전해지는 손자병법은 조조가 원본을 요약하고 해석을 붙인 위무주손자(魏武註孫子) 13편에서 손자는 이렇게 썼다. "내가 승리하기 위해 사용한 전술은 모든 사람이 알 수 있다. 그러나 승리가 어떤 전략에서 비롯되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이런 일화가 전해진다. 합려가 손자의 용병술을 시험하고자 말했다. “선생의 병법 13편을 모두 읽었지만, 궁녀들은 조금이라도 군의 지휘를 따르는 것을 볼 수 있습니까?” 손자는 이것을 승낙했다. 궁녀 180명을 내어주며 훈련시키도록 하자, 손자는 합려가 가장 아끼는 궁녀 둘을 지휘관으로 차례차례 세워 훈련을 시켰다. 그러나 궁녀들은 훈련에 따르지 않고 킥킥거리며 장난처럼 여겼다. 그러자 손자는 군령을 세우기 위해 합려가 아끼는 지휘관 궁녀 둘을 처형하도록 하였다. 합려가 용서해 줄 것을 간청했다. 손자는 작전 중의 군령은 왕명보다 중요하다고 말하며 사형을 집행하였다. 그리고 다시 다음가는 궁녀를 뽑아 지휘관으로 삼고 훈련을 시키자, 모든 궁녀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고 한다. 이 일로 합려는 기분이 상했고 손무는 그런 합려를 낮게 평가했으나 이후 합려가 손무를 중용하여 상장군으로 임명했다. 이에 부응해 손무는 오나라의 군대를 훈련시켜 강력한 군대를 만들었고, 초나라와 대항할 수 있는 국력을 키울 때까지 무리한 군사 행동을 자제하였다. 기원전 506년 합려는 손무와 오자서를 대장으로 삼아 초나라 원정을 개시하였다. 손무의 전략에 따라 오군은 연전연승하여 초나라의 수도 영(郢)을 함락하고 초나라를 멸망 직전까지 몰아붙였다. 이후 진나라의 개입으로 오나라는 철군하였으나 그 후로도 오나라는 강력한 군대를 바탕으로 패자의 위세를 떨쳤다. 기원전 496년, 손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합려는 월나라를 공격하였으나 패배하고 합려도 부상의 후유증으로 사망하였다. 손무와 오자서는 합려의 후계자 부차를 보좌하여 국력을 키운 뒤 월나라를 공격하여 크게 승리하였다. 부차가 패자가 될 무렵, 손무는 은퇴하여 이후의 생애는 알려지지 않았다. 손자에 따르면 전술이 보다 구체적이고 파악하기 쉽지만, 포괄적인 전략도 똑같이 중요하다. 중요한 점은 전략과 전술 중 무엇을 택하느냐가 아니라 전략 그리고 전술 모두를 구사하는 것이다. 목표를 달성하려면 두 가지 모두 필요하다. 만약 전략만으로 목표를 달성하려 한다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할 것이다. 구체적인 실행 과제인 전술이 있어야만 목표한 곳에 다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전략만 사용한다면 목표를 달성할 계획만 세우고 달성하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은 하지 않는 셈이기 때문이다. 반면 전술만으로는 하나님이 명하신 샬롬 축복의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 전략 없는 전술은 순식간에 방향을 잃은 업무로 바뀌어 버리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전도 요원들이 전략적 목표 없이 자의적으로 행동하게 된다. 단기적으로는 의미 없이 단순 반복 작업만 하는 것처럼 느껴지고 장기적으로는 좌절감과 축복 전도 사명에 대한 태만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샬롬 부흥 축복 전도’ 창안자 권순웅 목사는 성경에 근거해 전략을 세우고 전술로 실행하는 손자처럼 말한다. “진실로 ‘샬롬 축복 전도’는 주님의 부르심이자 쇠퇴하고 있는 한국교회의 필요입니다. 또한 주님께서 말씀을 통해 교회에 가르쳐주신 전략이며 실제로 전도의 능력이 나타나는 전술입니다. 뱀같이 지혜로우라는 말씀처럼 전도도 전략적이어야 하는데 전도 대상자를 만날 때 ‘샬롬’으로 평안을 비는 것이 그 방법입니다. 전도 대상자와 첫 만남 때는 누구나 긴장 관계에 있게 마련인데 그 긴장감을 해소하는 최고의 접근법이 평안을 기원하는 것입니다. 오늘 모인 여러분들은 어쩌다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 가운데 참석했습니다. 노회와 교회마다 전도의 불을 지펴주십시오. 노회 추천 전도 선봉교회가 1000여 교회가 되는데 그 교회마다 전도 셀 100개만 만들어도 전국에 10만 셀이 생깁니다. 10만 셀이 매주 전도하러 나간다면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샬롬 축복 전도 프로세스와 전략’에서의 프로세스는 전술에 해당하는 것인데 그 핵심은 ‘호감을 주는 전도를 위한 10가지 원칙’이다. 총회 불꽃 권순웅 총회장이 전하는 전도자의 교회와 삶을 성장시키는 '샬롬 부흥 십계명'이라고 할 수 있는 ‘샬롬 부흥 전도 운동’의 구체적인 전술은 다음과 같다. 1 항상 기도하라 2 항상 깨끗한 옷차림을 하라 3 항상 첫인상에 승부를 걸라 4 항상 누구를 만나든지 맑은 목소리로 인사하라 5 항상 좋은 표정 짓기를 연습하라 6 항상 좋은 마음으로 다가가라 7 항상 외모보다는 표정에 투자하라 8 항상 웃음 앞에서는 거부감이 없다고 생각하라 9 작은 빈틈을 보여 타인의 마음을 열어라 10 항상 선물을 준비하라 교회 성장과 교인의 삶의 성공 이론이 성경적 전략이고 그리고 그 방법이 실제적이고 성경적 전술로 가르쳐주는 권순웅 목사 같은 전도자를 본 적이 없다. 길을 나서는 사람은 긴장하기 마련이다. 갈리는 길인 기로(岐路)에서는 늘 생각에 잠긴다. 좁아지는 길인 애로(隘路)에서는 몸을 뺀다. 가면 돌아올 수 없는 사로(死路)를 피하고 온전히 살아 돌아가는 길인 활로(活路)를 항상 갈구한다. 그러므로 시간을 꽉 붙들어야 한다. 삶을 피하려 해서는 안 된다. 금세 폭발할 것 같은 순간들도 당신 삶의 일부이며 그 순간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은 과거의 상실과 미래의 상실을 동시에 아파하는 존재다. 과거의 상실은 잊지 못해서 괴롭고 다가올 미래의 상실은 불안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괴롭힌다. 결국 상실에서 오는 고독은 인간의 존재론적 본질이다. 따라서 배가 안정적으로 나아가려면 어느 정도 바닥짐이 실려 있어야 하듯, 우리 삶에도 어느 정도의 근심이나 슬픔이나 결핍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 렘 6:16 2022-11-26
-
[더굳뉴스] 허활민 목사의 길
제36대 국무총리를 지낸 운동권 대부 이해찬은 2026년 1윌 25일 오후 2시 48분(현지 시각) 베트남 호치민 탐안 병원에서 74세로 별세했다. 고인은 민주평통 아태지역회의 운영위원회 참석을 위해 지난 22일 베트남 호치민에 도착했다가, 다음 날인 23일 베트남 공항에서 호흡 곤란 증세를 보여 현지 병원으로 긴급 이송됐다. 병원 도착 후 심근경색 진단을 받은 이 수석부의장은 곧바로 스텐트 시술을 받는 등 응급 처치를 받았으나,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사로(死路)로 떠났다. 빈 나무들이 겨울 길목을 지키고 있다. 허리 아래 잔 숲 앙상한 갈대들이 마음을 간질인다. 조그만 참새도 가는 겨울을 살핀다. 겨울의 그때가 되면 나무도 갈대도 참새도 그동안 우리가 알던 그들이 아니다. 정치적으로 뜻을 펴기 힘들어 여러 곳을 주유(周遊)하던 시절의 공자가 남녘의 초(楚)나라를 지날 때였다. 낯선 땅에서 길을 잃은 모양이다. 제자 자로(子路)에게 밭을 일구던 수도원의 수도사 같은 은자(隱者) 두 사람에게 길을 묻게 했다. 그러나 한 은자는 퉁명스레 공자를 가리키며 “저 사람이 스스로 잘 알 텐데 뭘 다시 묻느냐”며 제대로 대꾸하지 않았다. 돌아와 사정을 알리는 제자의 말을 들은 뒤 공자는 탄식 속에 다시 길을 떠난다. 그가 물었던 것은 옛날 잠실 나루 같은 물길 건너는 나루가 어디냐 물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이 일화는 ‘나루를 묻다’라는 뜻의 문진(問津)이라는 유명 일화로 전해진다. 여기서 ‘나루’는 사실 ‘길’이다. 아울러 지향(志向)이자 방향(方向), 마땅히 걸어야 할 ‘도(道)’ 더 나아가 예수님이 말씀하신 ‘길’까지도 지칭할 수 있다. 개인주의적 취향으로 유명했던 기원전 5 세기 초 ~4 세기 초의 인물 양주(楊朱)도 그런 적이 있다. 잃어버린 양(羊)을 찾아 나섰던 이웃들이 빈손으로 돌아오자 그 이유를 묻는다. 이웃들은 “갈림길이 많아 놓쳤다”라고 대답한다. 굳은 얼굴로 양주는 한참을 생각에 잠겼다고 한다. ‘갈림길에서 양을 잃다’라는 뜻의 기로망양(岐路亡羊)이라는 성어가 유래한 장면이다. 우리는 보통 ‘양 잃고 외양간 고치다’는 뜻의 성어 망양보뢰(亡羊補牢)를 먼저 떠올리지만, 길에 관한 양주의 깊은 사색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양주가 주장하는 “나 자신을 위한 삶 爲我”의 목적은 “온전한 삶全生"을 사는 것이다. 중국에는 그렇듯 ‘길’에 관한 모색이 많고 깊다. 사는 길은 활로(活路), 그 반대는 사로(死路)다. 길을 묻는 일은 문로(問路), 길을 가리키면 지로(指路)다. 나아가는 진로(進路)도 살피지만, 물러서는 퇴로(退路)도 중시한다. 2020년 10월 12일 월요일 오후 2시 한때 총회의 길을 인도한 허활민 목사의 대구시 북구 칠곡중앙대로 언덕길에 자리한 호렙산교회에서 산서노회(노회장 이재천 목사) 제97회 정기노회가 열렸다. 노회장 이재천 목사의 설교와 증경노회장 허활민 목사 축도로 개회예배를 마친 뒤 김준영 목사(소서교회)의 집례로 성찬 예식을 거행했다. 개회 선언 후 회무를 진행하다 정회 후 강도사 인허 예배를 드렸다. 인허받은 강도사는 이성규, 홍순재, 황옥철 등이었다. 속회 후 회무를 마치고 폐회하기 전 46세의 사모가 6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노회원이 뜨겁게 기도하고 위로금을 전한 눈물이 핑 도는 순간도 있었다. 노회원들이 흩어지는 호렙산교회 좁은 길 비탈에 차들이 지나치고 바람이 불어 갈대들이 휘어지고 흔들렸다. 마르틴 부버(Martin Buber ·1878~1965)는 세상에는 '나와 너(I-You)'의 관계와 '나와 그것(I-It)'의 관계가 존재하는데,참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나와 너'의 관계를 맺어야만 한다고 주장하였다. '나와 그것'의 관계는 도구적인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며 대상이 언제든지 대체될 수 있는 일시적이고 기계적인 관계이다. 그러나 '나와 너'의 관계는 서로가 인격적으로 마주하는 관계로서,무엇과도 바꿔질 수 없는 유일한 '나'와 대체 불가능한 '너'가 깊은 신뢰 속에서 존재한다. 인간은 관계 속에서만 진정한 자아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 도마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1-6 2020-10-24
-
[더굳뉴스] 한기승 목사와 나사로
성령 불 들어간다. 아궁이에 들어간 참나무 불더미에 피어나는 불티인 듯 잦아드는 잉걸불 사이 기다랗고 말간 장작 하나, 저 환한 것, 저 따뜻한 것, 손목 괴고 불이나 쪼여볼까. 불 앞에서 털끝만한 그늘 한 점 없이 오직 따뜻할 뿐. 주님 몸 된 성도들, 성령 불로 타들어가 성화의 길 간다. 성령 불 들어간다고 알린들 성화되지 않은 몸이 대답할 리가 있나. 믿음의 깊이는 말로 잴 수 없다. 그래서 주님의 은혜만 있다는 깊은 말씀이 믿음에 온기를 더한다. 영화감독이자 작가인 베르너 헤어초크(Werner Herzog Stipetić; 1941~)는 1974년 11월, 파리에 있는 친구에게서 전화 한 통을 받는다. 대학생 때 만난 평생의 은사이자 전후 독일 영화의 정신적 지주인 영화평론가 로테 아이스너(Lotte H. Eisner; 1896년 3월 5일, 베를린 ~ 1983년 11월 25일, 파리1896~1983)가 위독하니 어서 그녀가 입원한 파리의 병원으로 오라는 이야기였다. 당시 일흔여덟 살의 그녀의 병세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헤어초크는 생각했다. "안 된다, 그녀가 지금 죽을 순 없어, 안 돼.' 서둘러 짐을 싸던 헤어초크는 갑자기 움직임을 멈추고 생각에 잠긴다. 그 순간, 그는 깨달았거나 계시를 받았던 것이다. 그는 자신이 이곳 뮌헨에서 파리까지 걸어간다면 아이스너가 죽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헤어초크는 최소한의 짐과 돈만 챙긴 채 1974년 11월 23일에 뮌헨을 떠나 춥고 습한 중부 유럽의 겨울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걸어가서 12월 14일에 파리에서 아이스너를 만난다. 그 22일간의 여정을 기록한 책이 바로 ‘얼음 속을 걷다 ’이다. 말 그대로 얼음 속을 걸어 파리로 걸었던 이야기. 내가 걸을 때면, 한 마리 들소가 걷는 것이다. 내가 쉴 때면, 하나의 산이 쉬는 것이다. 그런 그의 걸음이 신비로웠던 건 죽음이 아니라 삶이었다. 죽음에 맞서 걸었고, 수많은 삶을 목격했고, 그것을 기록했다. 누구나 언젠가는 삶과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삶도 아름다워야 하고 죽음도 아름다워야 한다. 수많은 삶의 모습이 우리들 곁에 머물것이며 그 순간을 느끼며 또 지나가는 한 순간이다. 오직 자신만을 위해 산다면 별다른 의미가 없는 삶일 것이다. 정신적 지주를 위해서 의리를 지킬 수 있는 삶, 곧 죽음을 맞이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마지막 희생 정신, 아름다운 삶이다. 자신 또한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그 누군가 자신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마지막까지 사랑을 쏟아줄 사람이 있다면 보람이 있을 것이다. 아름다운 언덕이 펼쳐진 풍경. 숲은 풍성하고 세상은 고요하다. 매의 울음소리. 내 뒤에 있는 노변 십자가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아침 일찍 존재했던 것은 밤이 오기 전에 쉬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동안 나는 이 세상에서 살며, 끊임없는 죽음의 위험 속에 살아갑니다. 나의 하나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 간구하오니 나의 종말을 편안하게 하소서.' 시간은 영원을 향해 흐른다. 그는 무작정 파리로 향하는 최단 거리의 도로를 걷기 시작했다. 여행길이지만 마땅한 장비도 없이 그저 걷기 시작한 순례에 가까운 여정이었으므로 험난할 수밖에. 게다가 제목처럼 추위가, 눈보라가, 얼음 같은 바람이 불어닥친다. 그렇게 걸어 마침내 도착함으로써 어쩌면 헤어초크는 그 마음, 그저 그 먼 길을 걸어 결국 닿는 그 마음이 아이스너의 병을 어떻게든 치유해주기를, 기이한 방식으로 믿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11월 23일부터 12월 14일까지의 기록과 그 이후의 글이 실렸다. 짐도 제대로 챙기지 않고 무작정 나선 여정은 “오늘밤은 어디서 자야 할까?”라는 의문으로 이어진다. “또 눈, 진눈깨비, 눈, 진눈깨비… 천지창조를 원망한다. 그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나는 흠뻑 젖은 채 사람들을 피하여 진창 같은 풀밭을 가로질러 걸어갔다.” 그는 3주 동안 독일 남부와 프랑스 동부의 이름 없는 마을들을 거치며 800여㎞를 걷는다. 겨울의 텅 빈 평원을 걷고, 버려진 헛간이나 빈집에서, 때로는 축사에서 잠을 청했다. 사람 한 명 마주치지 않는 날도 있었다. 강풍과 폭설과 겨울비와 우박을 다 겪고, 낯선 주막에 들어가면 동네 사람 사람들의 눈총을 받았다.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바라보며 자신의 행동이 무의미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들었지만, 차라리 무의미함을 모두 실천해버리겠다고 생각했다. 빠르고 편리한 것만이 옳고, 계산으로 모든 것을 결정하는 세상에서 얼어붙은 겨울 들판을 걷는 행위는 무모하고 무의미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유불리를 따지지 않고 하나의 소망을 위해서 순수한 열정으로 마음과 육체를 쏟아보았던 적이 언제였던가. 헤어초크 같은 태도가 진정한 예술이며, 그런 심장이 세상을 만든 게 아닐까. 이윽고 헤어초크가 파리의 병원에 도착했을 때, 아이스너는 아직 살아있었다. 누군가 얼음 속을 걸어 그녀에게 가는 헤어초크 이야기를 해주어 그녀는 그를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누가 더 쇠약한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초췌해진 두 사람이 병실에서 마주하였다. 그녀는 그를 쳐다보며 그윽하게 미소 지었다. 헤어초크가 혼자 걸어왔고 보호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그녀가 알았기 때문에 이해하는 듯했다. 그런 그녀를 신비롭게 쳐다보며 헤어초크가 말했다. “창문을 열어주세요. 며칠 전부터 저는 날 수 있게 되었답니다.” 왜 당장 가장 빠른 차편으로 파리로 가지 않고 도보 이동을 선택했을까. 그 길 위에서 헤어초크는 순례객이었으니까. 그가 기꺼이 자신의 육체를 고난에 빠뜨리는 동안, 청컨대 그 사람의 생명이 누군가를 기다리다 회생의 말미를 얻기를 바랬을지도 모른다. 어쨋든 그는 얼음 속을 걸어 마침내 그를 기다리고 있는 아이스너 앞에 앉았다. 그리고 그 날 이후 실제로 그녀는 8년을 더 살았다. 그 후 아이스너가 1983년 11월 25일 죽기 1년 전 1982년 독일 영화계의 공로상인 헬무트 코이트너상이 제정되자, 첫 수상자로 아이스너가 선정되었다. 헤어초크는 그녀를 위한 수상 축하 연설에서 말했다. “제가 당신에게서 날개를 얻은 유일한 사람은 아닙니다.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아끼는 누군가가 죽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그를 들소로도, 산으로도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 간절한 마음이 없다면 아무리 잘난 인간도 한낱 미물에 지나지 않겠지. 어느 한 목사의 아픔을 전하는 나에게는 저런 경험이 없음에 못내 부끄러움을 느낀다. 2018년 12월 1일 오후 2시 광주광역시 운암동 소재 광주중앙교회(한기승 목사)가 장로 장립 20명을 비롯한 139명의 임직 및 은퇴식을 가졌다. 이날 임직 및 은퇴 감사예배에는 증경총회장 중의 증경총회장 서기행 목사의 설교와 제103회 무지개 총회장 이승희 목사의 축사가 임직식을 한껏 빛냈다. 이날 30여명의 교단 지도자들과 박주선, 천정배 국회의원, 김기현 울산시장 등 정계 지도자들까지 순서를 맡아 축하와 격려를 더한 것은 한기승 목사의 교계와 사회에서의 목회 능력을 입증해주었다. 아울러 그는 이 시대의 기인, 그리고 광대 소강석 목사의 절친(切親)이기도 하다. 그런 한기승 목사가 나사로처럼 위중하다. 한기승 목사를 아는 총회의 모든 믿음의 사람들은 나사로를 향한 주님의 능력의 부르심을 위해 기도해주시기를... 성경은 말씀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요 11:39-44 2025-02-20
-
[더굳뉴스] 옥한흠 목사 교회 갱신 은혜의 걸음
믿음에 사는 동안 다 말 못 할 말들을 믿음은 저마다의 가슴속에 품고 산다 꼭 믿어야 할 때 믿기 어려워 믿으면 주님은 침묵으로 튼튼해진 그의 두 팔을 벌려 나의 믿음을 품어주신다 주님이 별이시라면 나는 주님 옆에 뜨는 작은 별이고 싶다 주님이 노을이시라면 나는 주님 뒷모습을 비추어 주는 저녁 하늘이 되고 싶다 주님이 나무시라면 나는 주님의 발등에 덮인 흙이고자 한다 오, 주님이 이른 봄 숲에서 우는 은빛 새이시라면 나는 주님이 앉으실 수 있는 한창 물오르는 싱싱한 가지이고 싶다 판단이라는 것은 데이터와 분석뿐만 아니라 신탁(神託), 직관(直觀)까지 포함된다. 작은 일은 데이터만 가지고 판단해도 되지만 큰일은 신탁이 있어야 한다. 고대 지중해 세계에서 국가의 존망이 걸린 전쟁을 앞두고 델피 신전에 가서 신탁을 구했던 것도 고도의 의사 결정 과정이라고 보아야 한다. 트럼프나 이재명은 여러 재판 판결을 앞에 두고 점괘를 물어볼 신탁소나 점장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국가 간 전쟁은 뉴욕의 부동산 투자나 대장동 개발과는 차원이 다른 결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믿는 사람들은 주기도문에 나오는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구절을 때마다 외우지만 그때마다 깊은 믿음이 솟는 이유다. 만사가 하늘에서 먼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의 섭리와 뜻이 조짐으로 미리 나타나고 그다음에 현실 세계에서 보게 된다. 마치 일기예보와 같다. 인공위성에서 고기압과 저기압의 배치를 보고 일기를 예보한다. 예컨대 고기압과 저기압의 배치를 미리 보는 일이 '하늘에서 먼저 이루어지는 것'을 앞서 보는 일이다. 그것이 바로 징조와 계시의 하나인 것이다. 이 징조를 감지하는 일이 원래 동양에서는 국사(國師)나 왕사 또는 도사가 담당했다. 서양에서는 왕 측근의 성직자 또는 선지자나 예언자 몫이었다. 풍수도참과 주역 그리고 꿈이나 환상이 요셉이나 에스겔의 경우처럼 하늘의 조짐을 미리 짐작하게 해주는 도구였기 때문이다. 기업 경영에서 도사들의 판단을 활용하는 경영의 원조는 삼성의 이병철 전 회장이다. 대한민국을 지금의 인터넷 강국으로 만드는 기초를 놓은 이병철 회장은 도사들에게 대접도 후하게 했지만 한 사람 말만 믿지 않고 여러 도사의 점괘를 크로스 체크하는 노련함도 있었다고 한다. 그래도 인간의 생로병사는 그 누구든 피하지 못한다. 1996년 3월 7일 140명의 교단 소속 목회자들이 창립 제안자 옥한흠(玉漢欽, 1938년 12월 5일 ~ 2010년 9월 2일) 목사의 사랑의교회에서 △목회자 영성 회복 △교회갱신 △교단발전 △한국교회에서 교단의 올바른 자리매김 등을 위해 노력한다는 취지로 ‘교회갱신을 위한 목회자협의회(교갱협)’를 창립했다. 그 후 교단 내 금권선거를 뿌리 뽑기 위해 직선제를 폐하고 총회 임원 제비뽑기 선거제도를 정착시켰다. 세월이 흘러 교갱협 25주년 행사가 2020년 8월 17일 10시 30분 새로남교회에서 열렸다. 12시 20분 새로남교회 강단에 마련된 좌담회 석상에서 1명의 사회자(조성민)와 5명(고동훈, 김경원, 김찬곤, 이건영, 이재윤)의 패널 가운데 옥한흠 목사를 바로 이은 교갱협 2대 회장(2007. 8-2013. 8) 김경원 목사(서현교회 원로 2대 교갱협 대표회장 2007. 8-2013. 8)가 좌담회에서 발언하고 있었다. 주제는 ‘교갱협 25년 회고와 전망’이었다. “... 아까 교갱 있냐 없냐 말한 분이 있는데 지금 없어져도 아무도 아쉬워하는 사람 없어요. 그렇게까지 존재감이 없어져 가고 있지 않느냐 하는 위기를 저는 느끼고 있어요. 고동훈 목사가 교갱협에 대해서 얘기하면서 목회적, 목양적 견지에서 젊은이를 끌어안고 뭘 해야 되겠다, 교단 정치는 어떻게 해야 되겠다 했는데 내가 지금 말하고 싶은 이야기예요. 지금 현재도 해야 돼요. 그러나 안 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문제가 큰 겁니다. 절대적으로 변함이 없어야 할 교갱의 정신이 있습니다. 목회자 자기 갱신 교단을 세우는 갱신 이것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가져야 될 거예요. 그리고 가변적인 정신이 있어야 되요. 그것이 뭐냐, 다음 세대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 시대적인 상황 속에서 목회적인 상황 속에서 키워야 되요. 그리고 세워야 되요. 그리고 목회자 갱신을 계속합시다.(톤을 높이며) 그런 논리 아닙니까 이거. 예를 들어서 소리가 좋았다. 왜 지금은 소리 안 질러요? 왜 성명서 발표 안 해요? 미안합니다만 안 하는 건 지금 당신들 책임이야. 해야 될 건데 안 하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어요? 그렇잖아요. 교단의 큰 비리라든지 차별금지법이다 동성애다 총신 문제 많다 말입니다. 소리 질러요. 왜 안 지르느냐 이거요. 우리 스스로 지금 비판하면서 우리 존재감이 뭐냐? 소리 안 지르는데 무슨 존재감이 있느냐? 지금 그렇습니다.(사회자 한숨 쉰다) 교단의 문제도 그래요. 지금 젊은 목회자들이 비판하듯이 교갱을 정치적인 발판을 위해 도구로 삼으려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게 문제예요. 절대로 자기 정치적인 교단 안의 입지를 구축하기 위해서 교갱협을 도구나 발판으로 삼아 이용하려는 사람이 있어요. 그건 안 되는 겁니다. 그렇잖아요. 이게 옥한흠 목사님이 함께 시작했던 정신입니다. 들어가려 하지도 않았어요. 그런데 지금 그걸 이용해서 들어가려고 해요. 그래서 목회자들이 전부 실망하는 겁니다.(톤이 높아지며) 이런 건 막아야 돼요. 막았으면 좋겠습니다가 아니라 현재 있는 사람들이 막아야 됩니다. 안 막으니까 내가 답답하다는 겁니다. 옛날 이야기하면 젊은 사람들 싫어하겠지만 우리 교갱 임원들 수련회 하려고 일본까지 갔어요. 3박 4일. 제주도도 갔어요. 전부 비행기 타고. 일본 갈 때는 배 타고 왕복했지만. 설악산도 갔어요. 그런 가운데 외침이 나올 수 있었어요.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가 아니예요.(톤을 높이며) 하라는 거예요. 왜 안 합니까? 내 말은... (사회자 박수를 유도한다. 일동 박수) 존재감을 살려야 돼요. 25년 전을 다시 한번 살려보자. 어떻게 살리느냐... 살려 가지고 좀 제대로 해보자. 그런 다짐으로 하는 것이 25주년의 의미가 아니겠는가. 전도사님들 젊은 목회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교단에 두려운 존재도 되고 우리 자신의 목양적인 어떤 사명을 하고 그것은 구호가 아니라 실질적인 교갱을 통해 이루어가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사회자가 말을 받는다. “제가 볼 때는 목사님께서 원로를 떼시고 다시금 현역으로 들어오셔야 될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박수합시다. (일동 박수) (사회자 패널들을 향해) 왜 안 합니까? (김경원 목사 허허 웃는다) 하시란 말이예요. 이제 우리 김찬곤 목사님이 답변하셔야 되는데 엄청 부담이 될 것 같습니다. 바로 옆에서 보고 ‘왜 안 하느냐?’ 말씀하시기 때문에 잘 말씀해 주시기를 부탁합니다.” 김찬곤 목사(안양석수교회 5대 교갱협 대표회장 2019. 8-)가 말을 이었다. “그래서 부담입니다. (사회자 너털웃음. ‘우하하하.’) 아. 뭐. 맞습니다. 해야죠. 해야 되고 저도 이제 해야 된다 라는 당위성을 알아야 해요. 어떻게 할 것인가는 우리가 논의해야 되는 논제라고 봅니다. 아. 진짜 당부하고 같이 합의해야 할 것 중의 한 가지는 말씀드렸는지 모르지만 지금 교갱은 상임 회장이 공석입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거든요. 있을 수 없는 일이 현재 벌어져 있고 사실은 다음 차기 대표회장이 될 사람이 준비해 같이 움직여져야 하는데 이 자리가 공석이라는 자체가 그 한 가지입니다. 이것은 누구도 뭐 다른 어떤 자리들은 돈을 내고라도 나갈 수 있는 자리인데 여기는 누구도 주지도 않지만... (좌중 웃음) 나오려고 하지도 않고 하려고 하는 사람도 없다는 것... 우리 중 몇 분이라도 내가 하겠다고 해서 시켜주지도 않겠습니다만 (일부 웃음) 그래도 그런 부분에 관한 관심과 헌신을 같이 해야 되지 않겠나. 그래야지 연결 고리를 계속 내려갈 수 있지 않겠나. 사실 뭐 교갱협 대표나 임원은 보기에 굉장히 근사하지만 굉장히 힘든 자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미 있는 자리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들 중에서 오늘 총회 안 할 거 아닙니다만은 일부분 다루어져서 좀 정리가 되어지고 새로운 사람들이 세워지는 부분이 위임이 준비되어지는 과정들이 꼭 필요하고 다음 분들도 같이 혹시라도 좀 더 깊이 일하고 싶은 분이 있으면 노크를 해주십시오. 우리 그런 적 한 번도 없었지만 노크를 하면 그래도 좀 대화를 하면서 뭔가를 할 수 있지 않겠나... 아니면 대표부 쪽에서 요청을 하고 이야기를 하면 거의 대다수의 사람들이 사양을 합니다. 사양을 못하는 마음 약한 사람들만 지금 이 자리를 지키는 겁니다. 그런 부분들이 없잖아 있기 때문에 관심을 더 적극적으로 하는 우리... 김경원 목사님의 그 고언은 우리가 진짜 가슴 속 깊이 되새기면서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못해서 우리가 반성해야 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현실 속에서 우리 동역자들에게 좀 더 적극적으로 협의회에 대한 관심과 우리 내부 안에서도 좀 쓴소리가 나와져서 임원들이 좀 단단해지는 부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 누구든지 조금 더 관심을 깊이 있게 가져줬으면 합니다. 교갱협이 진짜 기준이 되고 정신이 되고 진짜 심장이 되어지는 원리가 우리 후배들에게 계속 흘러갈 수 있도록 이 자리에 계신 분이라도 힘을 모으면... 옥한흠 목사님이 10주년에 사데 교회 설교를 하시면서 얼마나 비판을 했는지 몰라요. ‘우리가 그 사데 교회 지도자들이 아니냐.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데 교회 선한 사람들이 있다’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몇 사람만이라도 힘을 모으면 이것은 절대로 문제가 되지 않고 이겨낼 수 있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옥한흠 목사님이 돌아가신 지 10주년이 됐습니다. 올해가 10주년인데 그 정신이 이어져가고 있으니까 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 더 되새겨 봅시다. 이 자리에 오신 분들은 그 심장을 가지고 오신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힘을 모아간다면 귀한 목사님의 고언이 우리 현실 속에서 열매로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사회자가 말을 이었다. “오늘 마지막 찬양은 25주년 됐기 때문에 ‘생일 축하합니다’ 이 노래보다는 ‘원할 때 바라고 기도합니다’ 찬양이 있습니다. 후렴에 보시면 ‘하나님의 성품이 성령님의 능력이’ 다시 한번 우리 교갱협에 불일 듯 일어나기를 원하는 그런 마음을 담았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도 다 일어나시죠. 일어나셔서 마지막 이 찬양을 하고 난 다음에 케이크를 절단하겠습니다.” 피아노 반주에 합창이 울렸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나의 힘을 의지할 수 없으니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 것은 주께서 참 소망이 되심이라 하나님의 꿈이 나의 비젼이 되고 예수님의 성품이 나의 인격이 되고 성령님의 권능이 나의 능력이 되길 원하고 바라고 기도합니다... 이어서 이사장 이건영 목사(인천제2교회 교갱협 3대 대표회장 2013. 8-2017. 8)의 사회로 교갱협 25주년에 걸맞는 정기총회가 진행돼 안건 및 결의사항을 처리했다. 이건영 목사는 우리 총회를 힐렐 같은 믿음과 지혜로 이끌어 가고 있는 지도자이다. 교갱협의 정신과 정관 목적에 딱 맞는 인물이고 옥한흠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의미 은혜의 걸음 은보(恩步)를 이어받은 어거스틴 같은 목회자이다. 이건영 목사 이전이나 이후 위대한 설교자나 목회자는 더러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말씀을 깨우치고 실천하는 힐렐 같은 지혜자 마음 지닌 이건영 목사 같은 지도자는 드물 것이기 때문이다. 교갱협 25주년에 그가 있어 은혜의 걸음 은보(恩步) 옥한흠 목사가 제창한 교갱협 정신이 계승되고 현현된 느낌이다. 20년 전 2003년 12월 15일 옥한흠 목사는 에스더가 이방땅에서 환난을 당할 유대인을 살린 것처럼 교단 기관지 기독신문을 살린 박에스더 국장과의 대담에서 사랑의교회 개척 25주년 회고와 은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박에스더 - 옥한흠 목사님 반갑습니다. 사랑의 교회를 개척하고 25년 동안 사역했던 사랑의교회에서 은퇴하시면서 느끼는 감회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옥한흠 목사 - 사실 지금 굉장히 행복합니다. 은혜로 달려온 25년이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일하던 동역자 가운데는 여러가지 이유로 도중 하차한 분들도 참 많은데, 이렇게 은퇴를 생각할 나이까지 목회를 할 수 있도록 지켜주신 하나님이 너무 감사합니다. 또한 사랑의교회 성도들을 보며 더욱 행복합니다. 지금 사랑의교회는 정점에 와있습니다. 오정현 목사를 후임자로 정하고 성도들의 표정이 달라졌음을 느낍니다. 더욱 활기차졌고 찬양하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몇 달 사이에 교회 평균 성장률에 비해 3000명 이상 성장하는 것을 보며 제가 은퇴하고 젊은 목회자에게 자리를 내 준 것이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박에스더 - 25년전 사랑의교회를 시작할 당시 목사님의 교회개척의 변을 지금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옥목사 - 사실 당시에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여러 선교단체들 다시 말해서 파라 처치(para-church)에 기성 교회 청년들이 흡수되어 청년부가 교회마다 지리멸렬하고 있었습니다. 교회 청년지도가 위기였고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그때 왜 청년들이 교회를 빠져나가 파라 처치로 흡수되는지 배경과 원인을 분석하고 사람 키우는 일이 중요하다고 보고 제자훈련에 착안했습니다. 젊은이들 가슴에 복음의 열정 비전을 심어주는 일이 필요하다고 본 겁니다. 미국 유학 후 돌아와 바로 제자훈련 프로그램으로 사람 키우는 일-복음의 열정을 심어주고 비전을 품게 하는 이 일이 제 목회의 본질이 된거지요. 사람을 키워 예수 제자 되어 열심히 일하도록, 열린 리더십을 갖고 평신도와 함께 일하는 풍토를 만든 겁니다. 박에스더 - 목사님께서 4반세기 동안 제자훈련과 사랑의교회 목회, 그리고 한국교회갱신운동과 한목협을 통한 연합운동의 물꼬를 튼 일들을 짚어볼 수 있습니다. 사랑의교회 은퇴라는 시점에서 지금까지 목사님이 일생을 걸고 해오신 이런 사역들이 영향을 받지 않을까요. 옥 목사 - 사랑의교회 목회는 하나님께서 제자훈련에 대한 비전과 신념을 주셨고 지역교회 하나를 맡아서 그 비전을 실천하는 평범한 목회였습니다. 이후 자의 반 타의 반 교회갱신과 교단 연합운동까지 왔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지금 물러가는 것이 70이 되어 은퇴하는 것보다 훨씬 좋다고 생각합니다. 아직은 힘이 있고 제가 사역할 마당이 있습니다. 사랑의교회 담임은 은퇴하지만 제자훈련 사역에 더욱 매진할 것이고 교갱협과 한목협 사역도 계속 이어나갈 것입니다. 이 말을 한 7년 뒤 2010년 8월 8일 새벽부터 폐렴으로 인한 고열과 호흡곤란 증세로 서울대병원 중환자실로 옮겨져 집중치료를 받았다. 그러나 2006년 폐암 진단을 받고 투병해온 옥 목사는 2010년 9월 2일 아침 8시 43분 사랑의 주님 품에 안겼다. 옥한흠 목사는 사랑의교회와 교회갱신협의회(초대 대표회장 1996. 3-2007. 8) 설립자이다. 그의 호는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의미로 은혜의 걸음 은보(恩步)이다. 코로나19와 태풍 마이삭이 제주와 원산 시내를 강으로 만든 맹위를 떨친 2020년 9월 2일이 옥한흠 목사의 10주기였다. 그는 성균관대학교 문리대학 영문학과와 1971년 2월 총신대 신학대학원(총신연구원 64회)을 졸업했다. 총신 신대원 재학시절 서울 은평교회에 전도사로 부임한 그는 100명이었던 주일학교를 500명까지 성장시켰다. 1970년 4월 김희보 목사의 요청으로 서울 회현동 성도교회 사역자로 부임하고 총신 학장으로 부임한 김희보 목사 뒤를 이은 김성환 목사의 성도교회에서 그는 그의 인생의 분수령이 된 대학부를 맡았다. 그는 성도교회에서 부목사로 대학생을 지도하던 중 제자훈련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는 교회에서 젊은이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데 비해 대학생 선교단체들엔 젊은이들이 모이는 현상을 탐구하던 중 그 비결이 제자훈련에 있음을 깨닫고 그는 대학생들이 기성 교회에서 빠져나가 선교단체로 모이는 이유에 대해 궁금해했다. 그러다 선교단체에는 있지만 기성 교회에는 없는 세 가지를 깨닫게 된다. 그것은 바로 복음, 훈련, 비전이었다. 1972년 35세에 수도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은 그는 대학생 12명과 함께 성도교회에서 ‘복음과 비전’을 갖게 하는 제자훈련을 시작해 1975년 미국 유학을 떠나기까지 당시로는 중형 교회의 신자 수에 버금가는 200여 명의 부흥을 달성했다. 1972년 총신대 재학 시절의 나도 성도교회 중등부 교사로 봉사할 때 옥한흠 전도사의 대학부 집회에 간혹 참석해 설교와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 스타일을 경험하곤 했다. 옥한흠 목사는 1975년 유학을 떠나 1977년 5월 칼빈신학교에서 신학석사 학위를 받고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로 자리를 옮겨 목회학 박사과정을 밟았다. 그리고 필라델피아 웨스트민스터 구내 서점에서 독일 출신 가톨릭 사제 신학자 한스 큉(Hans Küng, 1928년 3월 19일 ~ 2021년 4월 6일)은 스위스의 천주교회 사제이자 저명한 기독교 신학자의 ‘교회란 무엇인가(DIe Kirche)’를 발견했다. 그는 천주교 내부에서 '기존의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과연 무오류인가?(Infallible?)"라는 책을 내서 교황 무오류 교리를 비판하는 등 교권과 계속 마찰을 빚었다. 결국 1979년 12월 15일 교황청의 신앙교리성에서 공표문을 발표하여 큉은 공식적으로 천주교 신학을 가르칠 수 없게 되었다. 옥 목사는 그를 통해 평신도를 왜 제자로 키우고 깨워야 하는지에 대한 확고한 신학적 답을 얻었다고 한다. 한스 큉은 교회의 근원을 예수가 전한 하나님의 나라로 보고 있다. 즉 교회의 근원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며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신앙공동체가 교회라는 것이다. ‘교회란 무엇인가’는 총 11장으로 되어있으며 이 책은 원래 한스 큉의 ‘교회(Die Kirche)’를 짧고 이해하기 쉽게 축약하였다. 한스 큉은 이 책에서 교회의 본질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교회의 모든 역사적 양상에는 이 비본질이 마치 그림자처럼 본질을 따라다닌다. 교회의 참 본질은 비본질 안에서 나타난다. 우리는 교회의 어두운 비본질을 처음부터 고려하고 들어가야 한다. 교회의 악한 비본질을 통하지 않고서는 교회의 선한 본질을 분별할 수도 없다.” 가톨릭 내 신학적 반정통 교리적 진보파나 에큐메니컬 계열 개신교에서 관심을 보이는 신학자 한스 큉(Hans Küng, 1928년 3월 19일 ~ 2021년 4월 6일)은 교회 안에 성도가 의인이자 죄인이기에, 교회의 역사는 곧 정의의 역사이자, 죄의 역사라고 말한다. 그렇기에 교회 내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 성도들은 너무 속상할 필요가 없다. 그 비본질적인 문제를 통해 교회의 참된 본질이 밝히 드러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옥한흠 목사는 기성 교회로 가고 싶은 유혹을 끊기 위해 1978년 6월 귀국하자마자 서둘러 그해 7월 23일 주일 오후 3시 강남 서초동 유스호스텔 앞 3층 짜리 건물 2층에서 강남은평교회 창립 예배를 드렸다. 1981년 9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 4:8)라는 말씀 안에 내포된 십자가 의미를 좋아했던 그는 ‘사랑’이란 단어에 ‘의’라는 소유격을 붙여 ‘강남은평교회’를 ‘사랑의교회’로 이름을 바꾸었다. 미국에서 집중적으로 공부해 1986년 사랑의교회에서 시작한 신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아가는 신앙생활을 하도록 이끄는 첫 제자 반은 김영순 사모 혼자만 남고 실패로 끝났다. 부유하고 신앙연수만 오래된 이들에게 원색적인 말씀으로 도전하니 훈련생들은 얼굴이 빨개지며 쩔쩔매기 일쑤였다고 한다. 그러나 다시 시작한 여자 제자 반은 영적으로 큰 변화를 맛보았다. 옥 목사는 교회 밖의 모든 모임이나 집회 요청을 거절하고 제자훈련에 완전히 집중했다. 여자 제자 반이 성공하자 1979년 남자 제자 반을 처음으로 시작했다. 옥 목사의 설교와 제자훈련을 통해 배출된 순장들의 전도로 교인이 500여 명으로 증가하자 교회건축을 결의하고, 1985년 1월, 성전 입당예배를 드렸다. 그는 일주일에 제자반, 사역반 3개, 순장반 2회, 교역자 훈련, 주일설교 3회, 또 1년 3차례 돌아오는 CAL세미나 인도에 자신의 모든 진액을 쏟았다. 급기야 그는 1989년에 탈진하여 개척 12년 만에 하와이에서 1년간 안식년을 가져야 했다. 그는 1주일의 숙식훈련에 이어 목사 제자 훈련과 평신도 사역 훈련을 1년씩 하는 이 훈련을 통해 성장한 사랑의교회 교세를 알 수 있는 대담을 기독신문과 했다. “세례교인 수를 한 명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집계했습니다. 3만500여 명 재적 교인 중, 세례교인은 1만5247명이라 그대로 냅니다. 총회 본부와 총회 신학교 그리고 여러 산하 기구들이 21세기형으로 체질개선 하는데 전향 적으로 투자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총회 재정 운용의 합리성과 투명성이 확보돼야 합니다. 정책 수립과 집행에 대해 신뢰할 수 있는 체질개선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성경은 말씀한다.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그들과 결산할새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마 25:19-21 2025-01-29
-
[더굳뉴스] 김종준 목사 축복 비결
1986년 그 당시 김종준 전도사 어린이 교육 선교 재원 위해 자기 피 팔아 그 경비 조달 2016년 20,000여명 등록 교인 매주일 11,000여명 출석 교회로 성장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총회장이 있다. 어디로 가야 할지는 아는데 어떻게 가야 하는지를 모르는 총회장도 있다.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다 아는데도 일을 시작할 동력(動力)을 만들지 못하는 총회장도 있다. 헤매는 목사 총회장은 크게 봐 이 3가지 분류법으로 나눌 수 있다. 이 분류법을 넘어선 총회장이 있다. 그는 제104회 정금 총회장 김종준 목사! 2000년 전 화산재에 묻혔던 폼페이의 유적들은 발굴 200년이 지나도록 현대인들을 매료시킨다. 이 비극의 고도(古都)에 가면 폼페이 시민들의 절망과 함께 그들의 일상을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일 게다. 잿빛 화산재 속에서 정지된 시간을 보낸 유적들은 당시 로마인들이 어떻게 먹고 마시며 사랑하고 슬퍼했는지 고스란히 보여 준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룬 업적을 기념하는 성공이란 한 분야에 삼십 년쯤 종사한 후에 찾아오는 것일 것이다. 그러니까 성공이란 일류대학에 입학했다거나 사법고시에 합격했다거나 땅값이 올라 큰 부자가 되었다는 따위가 아니라 김종준 목사같이 한 분야에 삼십 년쯤 종사한 후에 온다는 얘기일 것이다. 반짝 빛나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 은은하고 끈기 있고 한결같은 것 악천후도 견뎌낸 든든한 믿음 같은 것일 것이다. 죄를 벗어나 세상을 이기고 축복받는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104회 정금 총회장 김종준 목사는 제시했다. 그것은 주일성수, 십일조, 전도, 세 가지 의무를 실행하는 것이다. 전두환 시대든 문재인 시대든 윤석열의 개혁 시대든 철부지 살인자 김정은 모험이든 그것을 이기는 해결책은 하나님 명하신 주일성수, 십일조, 전도를 성실히 지켜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서 바로 살면 축복의 삶을 누리게 된다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이에게 삼십 년 복음을 전한 그 기념으로 한 교회를 개척해 삼십 년 목회한 그 기념으로 그 교회에서 온 몸으로 설교하고 기도한 삼십 년 그 기념으로 빛나는 면류관 하나씩 또 마련되는 것 아니겠는가. 그래서 오랜 세월 말없이 교회를 위해 봉사한 성도들에게도 더불어 꽃은 한 송이 또 곱게 피어나는 것 아니겠는가. 2016년 6월 25일 오전 11시 서울 상계동 꽃동산교회(김종준 목사) 본당에서 ‘창립30주년 및 임직 감사예배’를 드렸다. 본당 3개 층은 성도들과 국민의 당 대표 안철수 의원과 노원구 구청장 김성환 등의 하객들로 빈자리 하나 없이 꽉 찼다. 1부 예배에서 제100회 총회 총회장 박무용 목사는 사무엘상 19:18-24 본문에 “이런 교회가 되게 하소서!”라는 제목으로 교회의 본질에 관한 감동적인 설교를 전했다. 꽃동산교회는 1986년 6월 15일 서울 중구 신당동 402-13번지의 건물 64평을 임대해 김종준 전도사가 개척을 했다. 개척 당시 당회장이었던 서기행 목사(제89회 총회장)가 이날 3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전달한 격려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올해 창립 30년인데 제 나이 50살에 꽃동산교회 당회장이었습니다. (교인들이 감탄의 소리를 냈다.) 김종준 그 당시 전도사께서 어린이 교육 선교에 재원이 없어 자기 피를 팔아서 그 경비를 조달했다는 말을 듣고 특별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렇게 큰 교회가 되었습니다...” 이날 축사를 전한 제83회 총회 총회장 길자연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의 방법은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이제 서기행 목사는 10년 전에 은퇴하셨다고 하는데 저는 3년도 안 됐습니다. 목회를 하면서 가장 힘든 일은 사람과의 접촉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 말씀과 기도에 전무하면 성격도 변하고 생활도 변합니다. 양심적인 사람이 지도자가 되면 사회와 교회가 양심적이 됩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람이 그 자리에 서면 교회도 흔들리고 가정도 흔들리고 사회도 흔들립니다. 대한민국 목회자 가운데 가장 올바른 지표를 정하신 분이 김종준 목사입니다. 김종준 목사는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오게 생기셨습니다. (교인들 웃음) 왜 그러나 했더니 피 뽑아서. (교인들 손뼉을 치며 파안대소) 저는 오늘 축사 초청을 받고 놀랬습니다. 나를 어떻게 알고 이 자리에 초청을 했는가. 한 가지 중요한 것을 생각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객관적으로 이 교회 담임 김종준 목사를 볼 때 그는 흠이 없고 목회에 전념하는 일사각오의 목회자이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임직자 여러분과 교회 성도들이 이 목사만 따라가면 잘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지도자 목사에게 순종하고 잘 따라가면서 꽃동산교회 안에서만 사시기를 바랍니다. 밖으로 나가면 위험합니다. (교인들 웃음과 박수) 이 말로 축사를 갈음합니다.” 꽃동산교회는 30년 역사 가운데 2004년 12월 16일 김종준 목사는 학교법인 천호학원(위례정보산업고등학교, 서울외국어고등학교) 이사장에 취임했다. 그리고 2016년 6월 15일 현재 대지 700평에 지하 3층, 지상 11층, 연건평 3,300평의 성전에서 교역자 87명, 장로 47명, 안수집사 350명, 권사 752명, 서리집사 3,854명의 직분자들이 있으며, 20,000여명의 등록 교인 가운데 매주일 11,000여명이 출석하여 예배를 드리는 교회로 성장하여 어린이 선교를 통한 세계 복음화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날 임직식을 통해 꽃동산교회는 7명의 장로와 46명의 안수집사, 99명의 권사를 직분자로 세웠고 이외에 10명의 성도를 명예권사로 추대했다. 이날 장로로 장립된 김민규 장로는 임직자 대표로 인사를 하며 겸손하게 성도들과 교회를 섬길 것을 다짐했다. “직분자는 대접받기 위한 자리가 아니라 섬기는 자리에 있는 사람인 것을 알기에 가장 낮은 위치에서 섬기고 교회를 돌보며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려 합니다. 힘들지라도 여호수아와 갈렙 같은 믿음으로 기도하며 달려가겠습니다.” 이날 김종준 목사는 예배를 마치고 나눈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조그만 단칸방 같은 데서 여섯 명이 시작한 꽃동산교회가 오늘날 이렇게 크게 번창해 시대적인 사명을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저희 교회가 그동안 어린이 선교를 통해서 세계를 복음화하려는 소명을 가지고 어린이 교회로 시작을 했습니다. 어린이 전도를 열심히 하다 보니까 하나님께서 더불어 많은 장년도 보내 주셔서 큰 교회가 되었습니다. 이제 30살 먹은 청년의 교회가 되었습니다. 이제부터 더 힘 있게 남은 사역을 감당하려고 합니다. 이제는 우리 교회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곳 저곳에 꽃동산교회와 같은 비전과 신앙을 가진 많은 교회를 세워서 이 땅에 어린이선교를 실현하고자 합니다. 이미 지금도 아홉 군데 지역에 꽃동산교회 지교회를 세워 사역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지역에 꽃동산교회를 세워 죽어가는 많은 어린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데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영문학에 있어 낭만주의를 개창하는데 기여한 영국의 중요한 낭만주의 시인 워즈워드(William Wordsworth, 1770년 4월 7일 ~ 1850년 4월 23일) 그의 삶은 검소했지만 생각은 고상했다. 걷는 것은 영적인 행위라는 생각으로 구불거리는 언덕을 걸으며 풀, 꽃, 새, 냇물, 구름, 나비, 하늘과 숲을 관찰했다. 그리곤 호숫가에서 무지개를 볼 때마다 자신의 글을 하나씩 매듭을 지어 나갔다. 특히 해 질 무렵의 산책을 즐겼는데, 이는 곧 시(詩)와 연결된다고 생각했다. 시를 “평온함 속에서 회상되는 정서”라고 믿었고, 기교적인 단어를 사용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다분히 일상적인 시어(詩語)를 선택해서 사용하는 걸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렇게 평생 30만 킬로의 거리를 산책하며 지은 시 ‘나비에게’, ‘데이지에게’, 그리고 워즈워드자신의 인생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드러낸 자전적인 시 ‘서곡’(The Prelude or, Growth of a Poet's Mind; An Autobiographical Poem)은 영국 문학의 한 획을 그은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특유의 고요함 속 쓸쓸함을 더해주는 늦가을 호숫가 정취는 아름답다. 그는 어린이를 사랑한 김종준 목사처럼 '무지개'를 통해 어린이를 찬양한다. 하늘의 무지개를 볼 때마다 내 가슴은 한없이 뜁니다. 내 어릴 때 그러했고 어른이 된 지금도 그러한데, 나이 더 들어 늙어서도 그러하리라 믿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차라리 죽기를 원합니다.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입니다(The Child is a father of the Man). 따라서 내 삶이 자연의 경건함으로 채워져 매일매일 이어져나가길 바랍니다. 성경은 말씀한다. 예수께서 그 어린 아이들을 불러 가까이 하시고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눅 18:16 2024--11-27
G.SERMON
-
[더굳뉴스] 전승덕 목사 부총회장 후보 기호1 전도 총회 리더
2026년 4월 5일 이재명 대통령 부부는 여의도 순복음교회 부활절 연합예배에 참석했다. 2026년 4월 7일 서대구노회는 제80회 정기회를 대흥교회에서 열고 전승덕 목사(설화교회)를 제111회 총회 부총회장 후보로 만장일치 추천했다. 이날 노회원들은 기립박수로 지지를 보내며 당선 가도에 힘을 실어 줬다. 제111회 총회 부총회장 기호 1번 전승덕 목사는 말했다. “우리 총회는 세계적인 브랜드라고 생각합니다. 그 가치가 빛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총회의 헌법적 가치와 칼빈주의 개혁신학이 방해받지 않도록 수호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도록 노력하고, 총회 산하 노회와 교회들이 건실하게 성장하도록 힘쓰겠습니다.” 촛불이 타오르고, 손에는 성경을 들고 이따금 한 페이지씩 넘기면 믿고 싶지 않은 생각을 피할 수 있다. 우리가 물려받아야 할 유산은 물질적 부유함이 아니라 빛과 소금의 신앙적인 성숙과 책임감이기 때문이다. 경건의 연습으로서의 성경 읽기는 신앙생활에 좋은가, 그렇지 않은가. 복잡하게 따지고 들면 쉽게 답할 수 있는 물음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무조건 좋다고 믿고 싶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 생각’, 즉 나쁜 생각은 우선 피하고 봐야 하기 때문이다. 나쁜 생각은 투명한 물에 퍼지는 검은 잉크처럼 우리의 정신을 삽시간에 잠식하니까, 일단 멀찍이 떨어져 있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성경 읽기가 답일 수도 있다. 거리 두기는 생각보다 힘이 세다. 거리를 두고 보면 강력하게 느껴졌던 무언가도 금세 힘을 잃고 만다. 좀 극단적인 말이지만, 하나님 창조의 관점에서 지구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은 얼마나 사소하지만 신비로운 것인가. 우주로 날아갈 수는 없으니 대신해 전승덕 목사처럼 성경을 펼쳐 들고 거기 빠져들자. 그러면 전쟁이니 재난이니 하는 생각은 어느새 저만치 물러가 있을 것이다. 대구 달성군 화원읍 구라리 소재 도농지역에서 복음의 지평을 열며 21세기 지역 교계를 선도해 온 설화교회(전승덕 목사)가 2010년 4월 10일 교회 설립 100주년을 맞았다. 그 날 오후 3시 예장합동 서대구노회 관계자, 대구지역 교계 지도자, 국내외 인사 등 500여 명을 초청해 ‘설화교회 선교 100주년 기념 감사예배’를 드렸다. 해병대 사령관을 지낸 이상로 장로는 전승덕 목사에 대해 이렇게 술회했다. “전승덕 목사님과는 14년 전 전방부대 연대장으로 있을 때 인연이 되어 만났습니다. 의리가 돌쇠 같은 목사님입니다. 4대째 명문 믿음의 가정 후손으로 11년간의 변함없는 목회를 통해 선한 목자로서 여호수아의 소신과 기드온의 담대함을 갖춘 한국 교회의 기둥 같은 거목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제109회 총회 전도부 이만교회운동본부(본부장 전승덕 목사)는 2025년 5월 23일 동원교회(원로 배재군 목사, 담임 배진호 목사)에서 제109회기 제1차 ‘교회개척전도성장세미나’를 열었다. 조형국 장로(2026년 전국남전도회 회장)가 사도행전 2:1-4 성경을 봉독했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회중 아멘) 전승덕 목사 오른손을 치켜들고 설교단에 섰다. "할렐루야. (회중 아멘) 반갑습니다. 세상이 험악하고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령님의 역사는 변함이 없습니다. 저도 서울 있다 대구 내려가서 설화교회에서 1999년 위임을 받은 이래 개척하는 마음으로 목회에 힘썼습니다. 양봉이니 영어 교육이니 여러 방법을 동원해 교회 성장에 힘썼습니다. 심지어 골프 칠 수 있는 인도어까지 설치했습니다. 그러나 돈 다 날리고 별 소용이 없었습니다. 누가복음 5장 1절 말씀을 보면 '무리가 몰려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새'(the people pressed upon him to hear the word of God)라고 했습니다. 그 말씀의 헬라어 원문은 로고스(Logos)입니다. 그런데 이어서 말씀 3절에 보면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4절에 보면 '말씀을 마치시고' 합니다. 이 4절에서의 말씀 원어는 레마(rhema)입니다. 로고스의 말씀과 레마의 말씀에 차이가 있습니다. 로고스의 말씀은 많은 무리가 듣는 말씀이고 레마의 말씀은 우리를 감동시키는 성령의 역사가 있는 말씀입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구원하소서' 했던 무리들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빌라도 법정에 끌려가셨을 때 그들이 한목소리로 하는 말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쳤습니다. 그들은 로고스의 말씀을 들은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 같은 경우는 레마의 말씀을 받게 됩니다. 주님께서 말씀을 마치시고 레마의 말씀을 들은 이후에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르게 되고 그 이후에 예수님을 부인하는 사건이 있었지만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눅 26:75) 했습니다. 이 베드로를 통해 일어난 이 위대한 역사가 오늘 우리 가운데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오늘 이 시간 이 자리에 개척의 뜻을 가지고 모이신 목사님들 중요한 것은요 우리는 날마다 레마의 말씀을 듣고 로고스의 말씀을 읽어야 합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에 하나님의 말씀이 내 심령에 들어와야 됩니다. 그래야 우리가 이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게 되고 말씀을 증거하고 전파할 때 변화의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교회라고 하는 것은 우리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거룩한 사역을 담당하시고 우리에게 두 가지 남겨놓으신 게 있습니다. 그 하나가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말씀을 들을새 복을 받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말씀을 남겨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청종하고 따를 때 하나님의 채워주시고 세워주시는 복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또 하나 남겨놓으신 것은 우리 주님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물과 피를 다 흘려 대속하셨는데 그것은 이 땅에 교회를 세우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생활할 때 주님께서 부활 승천하셔서 이 땅에 안 계시지만 말씀과 교회를 남겨놓으셨습니다. 히브리서 10장 19절에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라 말씀합니다.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주님께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길입니다. 이제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는 길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열렸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교회가 부흥이 안 된다고 많은 교회가 말합니다. 꽃이 있는 곳에는 벌이 날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이 교회도 하나님 말씀의 생명이 있는 곳에는 주님의 백성이 찾아오게 되어있습니다. 이게 바로 말씀이 역사하는 믿음의 생활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오셨는데 참 잘 오셨습니다. 여기서 은혜받아 목회 현장에 가시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믿음의 사람들을 붙여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부터 붙여주실지는 알 수 없지만 내가 말씀과 믿음으로 충만해 기도하고 나갈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 마음에 합당한 자가 아니고 하나님 마음에 합당한 자를 붙여주시고 하나님 교회를 세울 수 있도록 은혜 베풀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21장 15-17절에서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요 21:15-17 '내 어린 양을 먹이고 내 양을 치라'는 지상교회 사명을 가르쳐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원하는 자에게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민수기 6장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민 6:24-27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시고 평강 주시기를 원하시고 복을 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좋으신 하나님을 저와 여러분이 섬기고 있습니다. 바라옵기는 다른 게 없습니다. 말씀에 충만하시기를 바라고 그다음에 성령 충만을 받아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사를 여러분 삶 속에 나타내 보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말씀 충만과 성령 충만은 기도의 뒷받침이 따라야 합니다. 저는 목회하면서 교회가 커지니까 그때 몸이 상해가지고 폴립(정상 조직이 부분적으로 과도하게 증식하여 돌기 모양으로 튀어나온 혹) 수술을 두 번 했습니다. 그리고 안질과 피부 알레르기가 있어 고생했어요. 그런데 2019년에 하나님께서 안질을 고쳐주셨습니다. 왜요. 기도하니까요. 알레르기 피부(면역 체계가 특정 물질에 과민 반응하여 발생하는 피부 질환)도 치료해주셨습니다. 너무 감사하죠. 어디를 가든지 알레르기약을 가지고 다녔습니다. 너무 가려우니까요. 그런데 어느 순간에 하나님께서 치료해주셨습니다. 2023년 중앙고속도로에서 3중 추돌 교통사고가 났습니다. 병원에 가서 허리 엑스레이를 찍었는데 의사가 놀래는 겁니다. 이런 상태면 그동안 통증이 심했을텐데 어떻게 견뎠느냐는 겁니다. 통증이 없었습니다. 하나님 은혜죠. 주의 일을 하게 하기 위해서 이렇게 보살펴주신 겁니다. 그래서 저는 야곱이 한밤중에 씨름하듯이 날마다 말씀과 씨름하고 있습니다. 잠이 오지 않으면 시도 때도 가리지 않고 말씀과 씨름합니다. 어제는 새벽 두 시, 오늘은 12시 자정에 일어나 말씀과 계속 씨름했습니다. 말씀이 들어오니까 성령께서 역사하신 겁니다. 기도하면 낫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레마는 하나님의 말씀이 개인에게 특별한 의미와 감동으로 다가와 삶에 적용될 때 경험하는 살아 있는 말씀의 경험을 의미합니다. 여러분 성경 읽고 기도하고 일어나 말씀을 전하십시요. 몸과 마음이 바르게 되고 말씀을 전하는 능력을 체험하게 됩니다. 레마의 말씀을 전하면 치유와 변화와 부흥이 일어나게 됩니다." 제108회 회록서기 전승덕 목사 시무 설화교회는 116년 됐다. 교인이 550명으로 성장할 때 어려움을 겪었으나 잘 이겨냈다. 설화교회는 1910년 4월 전도부인 강씨와 안의와 선교사와 함께 설립했다. 1917년 부해리 선교사가 부임해 당회를 조직한 후 영수, 조사로 믿음의 터전을 잡았다. 1944년 일제탄압으로 잠시 폐쇄되었다가 1945년 8.15해방과 더불어 다시 교회당을 세우고 수차례의 예배당 증축과 준공 등 숱한 고난과 역경을 딛고 1998년 12월 현 부지에 예배당을 준공해 새 성전에 입당했다. 성경은 말씀한다.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딤후 4:1-5 2026-08-26
-
[더굳뉴스] 함성익 목사의 이스라엘 전쟁과 행복론
2023년 10월 7일 팔레스타인 가자(Gaza)지구의 하마스('이슬람 저항 운동'을 뜻하는 동시에 아랍어에서 '힘'과 '열정'을 뜻하는 말) 테러범들이 이스라엘 국경을 넘고 나서, 당시 인근의 ‘노바’ 사막 음악 축제에 참석했던 여성 노아 아르가마니(당시 25세)가 테러범들의 오토바이에 강제로 태워졌다. “죽이지 말아달라”는 노아의 절규가 담긴 피랍 영상은 테러범들을 통해 소셜 미디어에 번졌다. 여성은 남자친구에게 손을 뻗었지만, 남자친구도 테러범 2명에 붙잡혀 있었다. 이 테러로, 1200여 명이 죽었고, 250여 명이 인질로 끌려갔다. 노아가 245일만에 석방되고 나서, 그의 남자 친구를 붙잡고 있었던 두 남성은 이스라엘 공습으로 사망했다. 가장 최근인 2026년 5월 15일에는 2025년 이후 가자지구 하마스 조직의 군사령관인 에제딘 알하다드가 사살됐다. 이스라엘 전투기 3대가 가자 시티의 한 아파트와 그곳을 떠나려는 차량에 13발의 폭탄을 떨어뜨렸다. 하다드와 아내, 딸, 민간인 여려 명이 죽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5율 20일 이스라엘 정부는 2023년의 10ㆍ7 테러 관련자는 지휘 고하를 막론하고 계획자, 전투원, 가담자 모두를 색출해 죽이거나 체포하는 태스크포스 ‘닐리(NILI)’를 구성했다고 보도했다. ‘닐리’는 사무엘상 15장 29절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하지 않으심이니이다(네차흐 이스라엘 로 예사케르)’는 히브리어 문장의 머리글자를 딴 약자(略字)이다. 1차 세계대전 때 유대인 첩보단이 사용했던 이름으로, 2023년의 10ㆍ7테러에 가담한 것으로 확인된 자는 누구도 잊히지 않는다는 의미를 담았다. 심지어 그날 이스라엘ㆍ가자 국경 철망을 트랙터로 밀고 넘어간 트랙터 운전기사도 테러 발생 근 2년만에 신원과 위치가 파악됐고, 결국 가자의 한 좁은 거리를 걷다가 공습으로 살해됐다. ‘닐리’ 명단에 오른 이름은 수천 명. 이미 수백 개의 이름이 삭제됐지만, 테러 관련자들은 이스라엘ㆍ하마스 간 휴전이 지켜지고 있는 이 순간에도 한 명씩 명단에서 지워지고 있다. 하마스 테러범들은 이스라엘의 감시 능력과 보복 의지를 과소평가했다. 테러범들과 가담자들은 10월 7일 자신들의 활동 장면을 휴대폰과 고프로(GoPro) 카메라로 촬영해 소셜미디어에 올렸고, 이 영상 데이터는 자신들의 목을 죄는 올무가 됐다. 2023년 10월 15일 오전 11시 창성교회 본당 함성익 목사가 성경 마태복음 5:1-12을 봉독했다.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오늘 여러분에게 주님이 주신 팔복의 말씀을 중심으로 '행복의 본질'에 대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드리기 전에 중동 지역에서 일어난 이스라엘 전쟁이 왜 일어났고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설명을 드리고자 합니다." 함성익 목사는 이스라엘과 테러 집단 '이슬람 저항 운동'을 뜻하는 하마스의 전쟁 내력을 다음과 같이 전했다. "지난 2023년 10월 7일 이스라엘의 3대 절기 중 하나인 초막절(추수감사절)이 끝나는 축제의 안식일 새벽 6시 반,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했습니다. 예상 보유량을 넘는 미사일을 발사하는 전면전 수준의 도발이었습니다. 하마스는 지상으로도 직접 침투, 이스라엘 국민 수백 명을 포로로 잡아 가자지구에 억류했습니다. 처음 있는 일입니다. 이날은 욤키푸르 전쟁(4차 중동전쟁) 50주년 다음 날이었습니다. 당시 아랍 연합군의 공격 징후를 놓쳐 패배 직전까지 갔던 이스라엘의 트라우마가 떠오릅니다. 그만큼 하마스가 이번 공격을 오래 준비했고 상징성을 담은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의 정치인이자 제46대 미국 대통령 바이든(Joseph Robinette Biden Jr., Listeni, 1942년 11월 20일~)의 말처럼 홀로코스트 이후 최악의 날이었습니다. 미국 정부는 즉각 하마스를 테러리스트로 규정하고 알카에다에 기습적으로 당했던 9·11테러를 소환했습니다. 이어 '9·11(나인 원 원)'처럼 '10·7(텐 세븐)'이란 고유명사가 통용되기 시작했습니다. 팔레스타인 자치 구역 가자(Gaza)에서 벌어지는 피의 분쟁 역사는 3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성경에서 ‘젖과 꿀이 흐른다’고 했던 가나안의 주인 자리를 놓고 이집트를 탈출한 유대인과 에게해를 통해 들어온 해양 민족 블레셋인이 맞붙었습니다. 가자는 블레셋인들이 가나안에 세운 도시였습니다. 구약의 유대인 사사 삼손을 죽음으로 내몬 델릴라는 가자에 살던 블레셋 사람입니다. 사울 왕은 블레셋과 싸우다 전사했고 다윗은 돌팔매로 블레셋 장군 골리앗을 무릎 꿇린 전쟁 영웅이었습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스라엘 때문에 2천 년간 살던 땅에서 쫓겨났다’는 주장은 역사적 사실과 딱 맞지 않습니다. 용맹한 블레셋인은 기원전 4세기 동방 원정에 나선 알렉산더에게 저항하다가 패퇴한 뒤 역사에서 사라졌습니다. 지금의 팔레스타인 민족은 블레셋의 후예가 아니란 뜻입니다. 그 땅에 팔레스타인이란 이름을 붙인 이는 2세기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였습니다. 유대인 반란을 평정한 뒤 징벌로 그들을 고향에서 내쫓고 팔레스타인(블레셋의 땅이란 뜻)이라 부른게 시초입니다. 가자 분쟁의 불씨는 1948년 신생국 이스라엘과 아랍연합의 1차 중동전쟁에서 다시 타올랐다. 이 전쟁으로 서안 지구(West Bank)는 요르단 차지가 됐고 가자는 이집트 수중에 떨어졌습니다. 이스라엘이 1967년 3차 중동전쟁(6일 전쟁)에서 승리한 뒤 이 두 곳을 전리품으로 챙기고 여기에 이스라엘 정착촌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팔레스타인 독립운동인 인티파다(봉기)가 불붙었습니다. 하지만 가자와 서안 지구는 그 후 다른 길을 갔습니다. 인티파다로 자치권을 갖게 된 팔레스타인은 파타와 하마스로 분열했습니다. 2006년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무장 테러 단체 하마스가 승리하고 파타가 불복하면서 가자는 하마스가 지배하고 서안 지구는 파타가 통치하는 이중 권력 상태에 들어갔습니다. 이스라엘도 하마스 수중에 떨어진 가자에서 정착촌을 철수하고 물과 전기를 제외한 모든 물품 공급을 중단하는 봉쇄를 시작했습니다. 가로 10㎞, 세로 40㎞인 강원도 크기 지역이 ‘세계에서 가장 큰 감옥’이란 별명을 갖게 됐습니다. 싸움이 격화되면 이스라엘 초정통파 유대교 세력의 팔레스타인 궤멸 논리가 힘을 얻고, 이슬람 극단주의 하마스가 이스라엘 소멸론을 주장하며 이란을 포함하는 반시오니스트 연대를 강화하는 시나리오가 될 수도 있습니다. 상대를 배척하는 종교의 교리가 담긴 종말론 즉 아마겟돈의 서사(敍事)입니다. 이 서사는 현실이 되면 안 됩니다. 비유로만 남아야 한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함성익 목사는 이스라엘 사태 설명을 끝내고 '행복의 본질' 설교를 이어갔다. "이스라엘 전쟁은 종교적인 갈등, 기독교와 이슬람의 갈등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 모든 갈등은 모두가 행복하기 위해서입니다. 내 집안, 내 가족이 어울려 살기 위해 벌어진 다툼입니다. 어쨌거나 전쟁은 행복을 위해 싸우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원래 이 팔복의 말씀 역시 어떻게 행복할 것인가를 말씀해주고 있죠. 유대인의 탈무드(미쉬나-Mischna, 반복/가르침-와 게마라-Gemara, 보완/보충-가 합쳐진 책이다. 미쉬나는 토라인 타낙<히브리 성경>에 대응되는 구전 토라로 AD 200년경 편집된 최초의 권위 있는 종교적 법규 모음집이다. 게마라는 미쉬나에 관한 랍비들의 논구와 해설들의 전승을 지칭하며 이 게마라가 미쉬나와 합쳐져서 탈무드를 형성)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어떤 사업가가 행복을 위해 열심히 일합니다. 돈도 많이 벌고 사회적 지위도 얻게 됩니다. 그러나 행복을 느끼지 못하다가 어느 날 중병을 얻어 눕게 됩니다. 그의 자녀들이 아버지 병을 고치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다하나 차도가 없고 점점 몸만 더 나빠집니다. 어느 날 자녀들이 랍비를 찾아가게 됩니다. 당시의 선생님을 찾아가 도움을 청합니다. 랍비가 가르쳐 주기를 '나는 정말 행븍합니다' 고백하는 사람을 만나서 그의 외투를 빌려 아버지를 덮어주라. 그러면 당신 아버지 병이 낫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온갖 곳을 찾아다닙니다. 그러나 나는 행복하다고 하는 사람을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저녁 산중의 한 수도원을 방문했는데 굴속에서 기도하는 한 수도사의 기도 소리를 듣게 됩니다. '하나님 오늘도 행복한 하루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정말 행복합니다. 이제 안식에 들겠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너무 반가워 굴에 들어가 그의 외투를 빌리려고 합니다. 그런데 수도사는 외투는커녕 걸치고 있는 옷이 속옷뿐이었습니다. 그들이 아버지의 병을 어떻게 고쳤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 자녀들이 그때 깨우친 교훈은 분명했습니다. 역시 행복은 소유에 있는 게 아니구나. 내가 가지고 있는 것 내 안에 있는 것으로 물질로 행복한 것이 아니구나 하는 것을 느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 교우들 가운데 ‘목사님 저는 행복해요’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오늘 저와 함께 읽은 마태복음 5장 1-12절의 말씀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행복론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인류를 위해 진정한 행복의 교훈을 가르쳐주신 진정한 행복은 갈릴리에 있는 소위 팔복산으로 가야 할 겁니다. 팔복산은 가버나움에서 한 10킬로 떨어진 갈릴리 북서쪽에 있는 아주 작은 산입니다. 그 산에 팔복 기념교회도 있습니다. 아름다운 교회입니다. 교회에 들어가면 둥근 천장 중앙 팔각형 안의 여덟 개 창문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창문들에는 라틴어로 팔복 말씀이 새겨져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어느 나라 사람이 이스라엘 관광을 제일 많이 가는 줄 아십니까. 우리 대한민국 사람입니다. 그래서 대한민국 사람에게 서비스하기 위해 라틴어 팔복 말씀이 한글로도 번역되어 있습니다. 창문 밖으로는 그림 같은 갈릴리 바다가 펼쳐집니다. 교회가 세워진 이 장소에서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들에게 행복의 중요한 교훈을 말씀해주셨다고 합니다. 팔복의 첫 번째 말씀은 무엇입니까.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원문 성경에 보면 ‘복이 있도다 심령이 가난한 자여’라고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참된 행복의 본질을 말씀해주시면서 제자들이 아니라 인류를 향해 진정한 행복의 본질이 무엇인가 알기를 원하셨습니다. 1절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많은 무리가 예수님에게 나왔습니다. 제자들이 나아오자 예수님이 입을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 팔복의 교훈이라는 것은 모든 사람 인류 전체에 적용되는 말씀이지만 특별히 자신을 따르는 예수님 제자들 복음을 위해 헌신하기로 작정한 사람들에게 주시는 교훈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제자들이 추구해야 할 행복의 본질이 이 말씀 속에 다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사람이 된 저와 여러분, 우리 모두가 추구해야 할 참된 행복의 본질은 무엇인가를 이 팔복에서 찾아보려 합니다. 행복은 마음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마음의 상태인 것입니다. 첫째는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요’ 심령의 상태 즉 마음의 상태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첫 번째 복, 심령이 가난한 자만 아니라 두 번째 복, 애통함도 마음의 상태, 세 번째 복 온유함도 마음의 상태, 네 번째 복, 의에 주리고 목마름도, 다섯 번째 복 긍휼히 여김도 따지고 보면 다 마음의 상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여섯 번째 복은 어떻게 시작합니까.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예수님은 철저하게 행복은 결코 외적인 상태 즉 환경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먹기에 다시 말하면 내 마음의 다스림에 있다고 말씀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떻게 삽니까. 조금만 더 돈을 벌면 행복할 것이다. 조금만 더 넓은 집을 가지게 되면 행복할 것이다. 조금만 더 출세하고 조금만 더 지위가 높아지면 행복하게 될 것이다. 그런 허상의 바램 속에서 제각각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진정한 행복은 외적인 환경에 의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너희 안에 있느니라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행복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할 것이 아니라 너희 안에 있느니라 우리 마음속에 있다고 강조해주고 계십니다. (회중 아멘) 우리의 마음이 참으로 가난해지면 마음이 청결해지면 하나님의 나라와 행복이 내 마음속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움직이고 사는 것 하나님의 선물이 아니겠습니까. (회중 아멘)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 하나님의 선물이 아니겠습니까. (회중 아멘) 우리 가운데 새벽에 늘 나오는 분이 계세요. 폐가 안 좋으신데 저하고 얘기할 때 숨을 가쁘게 쉬십니다. 그런데 매 주일 감사헌금을 내면서 ‘하나님 한 주간도 건강하게 해주셔서 감사하고 새벽기도 나와서도 감사하다고 기도하고 가십니다. 하루하루와 매시간이 하나님의 소중한 선물입니다. 그럼에도 행복해하지 못하고 불평하고 원망하고 있습니다. 참된 행복은 마음속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회중 아멘) 두 번째로 행복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때입니다. (회중 아멘) 좀 전에 말씀드린 대로 팔복은 복이 ‘있도다’ 말씀으로 시작됩니다. 성경의 축복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축복입니다. ‘복이 있도다’라는 말은 영어로 블레스(bless)입니다. 어원은 블리드(bleed) ‘피 흘리다’ 입니다. 이 단어는 피의 제사에서 유래된 단어라 볼 수 있습니다. 구약에서 제사장이 제사를 드릴 때 피 흘리는 제사를 드립니다. 제사 드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인생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을 피 흘려 드리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고 우리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 9:22) 말씀했습니다. 팔복이 바로 이런 하나님하고의 바른 관계를 가리키는 마음의 덕목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사람이 심령이 가난한 사람입니다. 애통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안목으로 자신의 깊은 내면을 성찰하고 자신이 죄지은 것 하나님 앞에서 올바르지 못한 것을 마음 아파하고 하나님 앞에 참회하는 사람입니다. 온유한 사람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아 하나님의 통치 속에 자기 자신을 절제하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하나님의 가치와 하나님의 표준만을 기뻐하고 거기서 만족을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영성을 오늘의 언어와 이야기로 풀어내는 데 탁월한 유진 피터슨(Eugene H. Peterson, 1932년 11월 6일 ~ 2018년 10월 22일)이라는 유명한 미국의 성경 번역가가 있습니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복음주의 기독교출판협의회로부터 상을 받은 책 ‘메시지 성경’(The Message: The Bible in Contemporary Language)이 있습니다. 이 성경을 풀어준 책에 첫 번째 심령이 가난한 자의 복을 이렇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벼랑 끝에 서 있는 너희는 복이 있도다. 너희가 작아질수록 하나님과 그분의 다스림은 커진다. (회중 아멘) 애통하는 자의 복, ‘가장 소중한 것을 잃었다고 느끼는 너희는 복이 있다. 그때야 너희는 가장 소중한 분의 품에 안길 수 있다.’ (회중 아멘) 두 번째,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입맛에 당기는 자는 복이 있다. 평생에 너희 음식이요 음료로다. (회중 아멘) 참 의미 있는 번역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를 위해 늘 애곡하고 하나님에 대해 더 깊이 알고 싶고 그리고 하나님 앞에 나와 그의 인생을 경험하는 것으로 세상에 아무것도 부러울 것이 없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그래서 배부름을 얻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회중 아멘)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죄인인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포기하고 주 앞에 엎드려 주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하나님을 자신의 주인으로 의지하고 거기서 경험하는 것을 영적인 만족으로 추구하는 이런 사람이 진정한 사람이라는 것을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평생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통해 진정한 만족을 경험하는 창성교회 교우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회중 아멘) 세 번째 행복의 본질은 이웃과 바른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팔복의 가장 중요한 점을 말씀하실 때 하나님과의 마음부터의 올바른 관계를 강조하시면서 동시에 팔복에는 이웃과의 관계도 말씀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성경의 가장 중요한 계명을 연상시켜 주고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가장 큰 계명이 무엇입니까.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다음에 뭐죠. (회중과 함께)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그러니까 결국 행복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다음이 이웃 사랑이 있다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아주 중요한 강조점이고 팔복의 핵심입니다. 이웃 사랑이 팔복의 핵심이라는 것입니다. 팔복에서 이웃에 대한 배려가 얼마나 많습니까. 특히 다섯 번째 복과 일곱 번째 복을 보십시오. 다섯 번째 복이 무엇입니까. 이웃에 대하여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일곱 번째 복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 성경‘에 보면 ’남을 돌보는 너희는 복이 있다. 정성을 들여 돌보는 너희는 돌봄을 받는다. 화평케 하는 자, 경쟁하거나 다투는 대신 협력하는 모습을 보이는 너희는 복이 있다. 그때 너희는 진정 자신이 누구이며 하나님의 집에서 자신의 자리가 어디인지 알게 된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나 자신의 이기적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야망을 이루어 가는 것이 아니라 거기서 행복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행복은 내 이웃을 배려해주고 섬기는 것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신앙의 선배 청교도들은 행복에 관해 이런 얘기를 자주 했습니다. 여러분 잘 아는 말입니다. 하루가 행복하려면 뭘 하라? 이발하라. 우리가 이발소나 미장원에 다녀오면 하루는 깨끗하고 멋지지 않습니까. 한 주간 행복하려면 여행해라.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들뜨고 행복합니다. 신바람이 납니다. 여행 가서 일주일 지나면 무엇이 생각납니까. 집 생각이 나죠. 한 달 행복하려면 새집으로 이사 가라. 새집으로 이사 가도 수리하고 뭐하고 해도 한 달밖에 행복하지 않다는 겁니다. 한 해 행복하려면 결혼해라. 뭐 처녀하고 총각끼리 평생 사느니 죽느니 해도 결혼하고 일 년 사니까 다 그게 그거 아닙니까. (회중 웃음) 그러나 일생 행복하려면 이웃을 섬기라는 겁니다. 그러면 일생 행복하다는 겁니다. 때로 어려움도 있지만 말로 다할 수 없는 희열과 행복이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이 그런 삶을 사시지 않았습니까. 예수님이 뭐라 말씀하셨습니까.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8). 여러분 예수님 행복하셨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무엇보다도 그는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셨습니다. 저는 예수님이 섬기시면서 자신도 무척 행복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짧은 생애를 사셨지만 우리 예수님은 행복하게 사신 겁니다. (회중 아멘) 이 땅의 사명을 완수하시면 떠나실 때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다 이루었다.’ 여러분 인간 가운데 마지막 순간 ‘다 이루었다’ 하고 떠날 사람이 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가장 탁월하게 묘사한 분이 있다면 시인 윤동주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십자가’라는 시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괴로왓든 사나이, 幸福한 예수·그리스도’ 참 잘 썼다고 생각합니다. 그분의 삶에는 고통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놀라운 행복을 누리셨습니다. 섬김에는 아픔과 고통도 따르지만, 그 섬김의 건너편에는 세상이 알 수 없는 희열과 놀라운 행복이 약속되어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팔복을 붙잡고 간다는 것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고 그를 닮아가는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회중 아멘) 예수님이야 말로 참으로 마음이 가난하셨던 분이요 인류의 죄 때문에 애통하셨던 분입니다. 그러나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셨다고 고백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참된 행복이란 무엇입니까. 여러분 예수님을 나의 구주와 주님으로 붙잡고 그분만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삶이 아니겠습니까. (회중 아멘) 행복은 우리의 가진 것에 있지 않습니다. 행복은 어떻게 옵니까. 주님을 영접할 때 옵니다. 주님만이 내 인생의 주인이십니다. 내 모든 삶도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회중 아멘) 주님께 기도하고 주님 뜻대로 살고 주님을 섬기며 내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느끼며 살아야 합니다. (회중 아멘) 저는 우리 창성교회 교우들이 팔복을 붙잡고 팔복이 주는 행복을 만끽하며 팔복의 주인공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회중 아멘) 오늘도 하나님 앞에 예배드린 여러분 한 주간 동안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내 안에 있음을 알고 행복한 그리스도인 행복한 창성교회 교우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회중 큰 아멘) 창성교회는 2026년 3월 21일 함성익 목사를 원로목사로 추대하고, 강동규 목사를 제3대 담임목사로 위임했다. 함성익 목사는1992년 제2대 담임으로 부임해 창성교회와 황해노회와 총회를 35년간 헌신했다. 함성익 목사는 답사를 통해 그 35년을 회고했다. “정년까지 사역을 완주할 수 있었던 것은 목회자이셨던 부친 함영진 목사님의 눈물의 기도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 덕분이었습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성경은 말씀한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딤후 4:7-8 2026-07-20
-
[더굳뉴스] 히에로니무스 황정길 목사의 칭의론
히에로니무스는 제1차 니케아 공의회 이후의 보편교회 신학자이자 4대 교부 중 한 사람으로서 특히 서방교회에서 중요한 신학자이다. 라틴어 번역 성경인 불가타 성경의 번역자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이름은 고대 그리스어 '히에로뉘모스(Ἱερώνυμος →신성한 사람)'에서 유래한다. 생전에 폭넓은 학식과 뛰어난 언어 능력, 그리고 빼어난 저술 실력까지 지닌 그는 종교 서적, 역사서, 에세이 등 다양한 글들을 집필함으로써 수많은 중세 신학자들과 철학자들에게 깊은 영향을 끼쳤다. 그중 대표적으로 히브리어, 그리스어, 그리고 아람어로 쓰인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해 훗날 가톨릭 라틴 예법의 국제 표준 번역 성경으로 자리 잡게 된 불가타를 탄생시켰다. 또한 그는 성별 상관없이 신앙심을 가진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인으로서 무릇 따라야 할 기본적인 윤리를 가르쳤고, 특히 배우자를 잃은 여성들에게는 성경 공부와 수도 생활 방식을 교육했다. 이러한 업적으로 그는 서방교회에서는 교부, 동방교회에서는 '존엄한 증거자'라는 칭호와 함께 많은 이들로부터 큰 존경을 받고 있다. 영어 이름으로 알려진 제롬(프랑스어권 변형인 제롬Jérôme, 라틴: Eusebius Sophronius Hieronymus; 347~ 420, 9월 30일)은 4세기 수도원 운동이 낳은 위대한 성직자이다. 제1차 니케아 공의회 이후의 초대교회 신학자이자 서방 교회의 4대 교부 중 한 사람으로서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한 불가타의 번역자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라틴어 이름 히에로니무스는 ‘신성한 사람’을 뜻한다. 성지를 순례하는 사람들이 어김없이 찾아가는 곳이 베들레헴이다. 그리고 아기 예수님이 태어나셨다는 예수탄생교회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곳이 있다. 그곳은 제롬이 성경을 연구하고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한 교회 지하의 서재이다. 그는 그곳을 평생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정신으로 성경을 연구한 목회자가 있다. 그는 서울반석교회의 황정길 원로목사이다. 그의 가르침이 지금의 한국교회에 더욱 필요하다는 생각에 그의 글을 실어 널리 전하고자 한다. 한국의 '신성한 사람' 히에로니무스 황정길 목사는 말했다. "한국교회는 그간 사도 바울의 이신칭의만 가르친 결과 삶이 없는 교인들을 양산했습니다. 믿음은 말씀의 순종을 동반한 삶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바로 이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습니다. 어거스틴과 루터로 이어지는 가르침은 법정적 칭의를 강조했습니다. 나는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이 아닌 신학의 산물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신학의 안경을 벗고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 결과 참회하는 심정으로 믿음과 순종의 삶을 전하려 합니다.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태복음 7:23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대로 살려고 몸부림을 쳐야 합니다. 구원의 확신에는 두 가지 증거가 필요합니다. 내적 증거와 외적 증거입니다. 내적 증거는 하나님이 내 구원이 되심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외적 증거는 내 옆의 사람이 이 사람은 정말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는 증언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삶으로 믿음을 나타내야 합니다. 이제 내 글이 그런 삶을 실행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진리의 말씀을 잘못 이해하여 삶(행함)이 없어도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 것으로 대다수의 성도들이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이렇게 된 것은 한국교회의 목회자들 가운데 전도를 강조하는 많은 분들이 입술의 고백 중심의 믿음에 의한 구원을 가르치는가 하면, 전도폭발이나 사영리 책자를 통해 전도를 받고 영접기도를 한 후 순간적인 입술의 고백에 의한 신앙을 통해 구원을 받은 것으로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새신자들을 위한 양육 프로그램이 있으나, 구원의 현재적, 미래적 측면이 소홀히 여겨 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의미의 전도는 진지하게 복음을 전하여 그들로 하여금 인격적으로 예수님을 만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도록 안내하고 인도하는 것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들이 인용하는 성경은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1:12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롬 10:13)란 말씀으로 누구든지 예수님을 주로 시인하고 예수님을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요 1:9ㅡ11절까지를 잘 살펴보셔야 합니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은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하고 말씀하고 있는 것을 주의하셔야 합니다. 즉 세상이 그(예수님)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은 그(예수님)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왕으로 왔으나)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않았으나 예수님을 왕(王)으로, 주(主)님으로 알아보고 그 예수님을 왕(王)으로, 주(主)로 영접하고 왕의 통치에 순종하는 백성으로 순종의 삶을 사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서 영접한다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를 왕(王)으로 주(主)로 받아드린다는 뜻이며 이를 또한 믿는다 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는다는 것은 순종한다는 것입니다. 요한 3:36절 말씀에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있느니라 이 말씀에서 믿는다는 말을 순종한다는 말로 표현한 것으로 보아 믿는다는 말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삶까지 내포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행위(순종)는 믿음과 대립되는 것이 아닌 보이지 않는 믿음을 드러내는 믿음의 결과입니다. 즉 행위로(순종으로) 자신의 믿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롬 1:5절에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케 하나니 ..... 롬 16:26절에서 모든 민족으로 믿어 순종케 하시려고 .... 라고 믿음 = 순종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상에서 살핀 대로 믿는다는 말은 단순히 입으로 고백하는 “믿습니다.” 가 아니라 자아(自我)가 주인 되어 살던 삶을 청산하고 예수님을 주(主)로 모시고 예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의(義)라하며 불순종하는 것을 불의(不義) 곧 죄(罪)라 합니다. 지금까지 아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내 뜻과 내 욕심대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의 삶을 살았던 삶을 회개하고 예수님을 주(主)로 모셔 드리고 그 뜻에 순종하며 살겠다고 고백하면서 그분의 통치 아래로 들어가서 주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언약관계에 신실한 순종의 삶은 사는 것을 믿음이라 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을 의(義)라 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반드시 행함(순종)이 동반되는 삶이지 단순한 입술의 고백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이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셨다는 지식으로 아는 입술의 고백적인 믿음만으로 구원을 얻는 것으로 생각하고 나는 구원을 얻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교리는 종교 개혁자들이 중세 타락한 가톨릭교회의 성례전 주의와 공로주의 구원론, 면죄부 판매 등 잘못된 전통을 개혁하는 개혁신학의 주제(主題)였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은 한국 교회 안에 순종하는 삶(행함)이 없이도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값싼 복음이 전파되게 하는 주범이 되고 말았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는다는 진리는 예수님과 연합의 진리와 함께 바울신학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 어느 서신에서도 순종하는 삶(행함)이 없이도 구원을 얻는다는 진리를 가르친 적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가르친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는다는 진리와 오늘날 한국교회가 믿고 있는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 진리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예수님을 주(主)라 고백하는 것은 단순히 지적 동의나 입술의 고백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예수님을 주라 고백하는 것은 예수님이 주(主)냐 로마의 황제, 가이사가 주(主)냐 하는 결단하는 문제이었습니다. 그 결단은 목숨을 건 심각한 결단이었습니다. 오늘날 모슬렘권에서 예수님을 주(主)라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 선택의 결과 공민권을 박탈당하고 공동체에서 추방을 당하고 옥에 갇히고 심지어 생명까지도 위협을 받는 순간에 선택하는 결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위협도 없고 부담도 없고 책임도 없는 지적(知的) 동의(同意) 만인 입술의 고백으로 하는 “믿습니다.” 라는 오늘의 우리의 고백과는 전혀 다른 원초(原初)적인 믿음의 고백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시 확인하거니와 믿음은 반드시 행함(순종)이 동반되는 삶이어야 합니다. 또한 신학교에서 구원론을 강의 하는 교수들 가운데 일부 교수들을 제외한 대다수의 교수들이 우리의 구원을 시간상의 순서로 칭의(稱義), 성화(聖化), 영화(榮華)로 구원의 순서(order of salvation)를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 개인이 구원을 받은 순서로 칭의(稱義) = 구원의 과거, 죄의 형벌로부터 구원. 성화(聖化) = 현재 구원, 죄의 세력으로부터 구원. 영화(榮華) =미래 구원, 죄의 오염으로부터 구원으로 보고 있습니다.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한국 장로교 신학계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친 조직신학자 (박형룡 교의신학 구원론 5권, p.279, 356)에서 “칭의(稱義)”는 신자가 구원을 받기 시작하는 시점으로 과거적 구원을 말하고 (단회적이며) “성화(聖化)”는 현재적 구원으로 구원의 지속을 뜻하며 (점진적으로 일어나며) “영화(榮華)”는 신자가 궁극적으로 도달하게 될 미래적 구원을 (미래에 일어날 일)의미 한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의 구원은 칭의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단번에 완성되고 성화는 그 이후에 점진적으로 이루어진다고 함으로써 시간상의 순서로 가르쳐왔습니다 또한 당시 한국 교회의 목회자들에게 많이 읽혀졌던 이상근 박사의 로마서 주석에서 “이 부분(롬3:21-8:39)은 바울의 구원론, 즉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대(大)진리를 설명한 곳으로 로마서의 중심부이다 ...이 부분을 대별하면 먼저 믿음으로 말미암아 순간적으로 의인(義認)의 교리를 밝히고(3:21-5:21) 의인(義認)을 받은 자가 계속적으로 힘쓸 성결(聖潔)의 생활을 강조한(6:1-8:17)후, 성도가 미래에 받은 영화에 이르고 있다.”(8:18-39)고 가르쳤고, 21세기 복음주의 조직신학자 에릭슨(M.J.Erickson)도 “칭의는 한 순간에 완성되는 순간적인 사건이지만, 반면에 성화는 완성을 위하여 전 생애를 필요로 하는 하나의 과정이다.” (복음주의 조직신학(하), p.153)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상에서 살핀 대로 칭의, 성화, 영화를 구원의 시간적 순서로 보고 칭의(稱義)는 순간적이고, 단회적이며 성화(聖化)는 점진적으로 볼 때 성화 없는, 즉 윤리적 삶이 없이도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저도 이와 같이 배웠고 죄송하게도 한 동안 이렇게 가르치고 설교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말씀을 깊이 연구하고 묵상하던 가운데 이 순서가 잘못되었으며 성경의 가르침이 아닌 신학의 산물인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참회하는 심정으로 남은 생애 이 성경 진리를 전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 잘못된 구원론으로 인하여 오늘의 한국 교회는 영원한 가치를 위한 자기 부인의 삶이 없는 기복종교로 전락하고 말았으며, 삶(행함)이 없는 구원, 윤리가 실종된 기독교로 오늘의 교회의 윤리의식의 수준은 부끄러울 정도의 수준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스텐리 존스가 지적한 대로 교회 안에 있는 자의 2/3는 회심(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 돌이킴의 삶을 사는 순종의 삶을 사는 삶)이 필요한 자들이며, 안성모씨가 지적한 대로(시사 저널, 2011년 2월23일) 오늘날의 교회는 윤리가 실종된 맛을 잃은 부패한 교회가 되어 사회의 지탄을 받는 교회가 되고 말았습니다. 속지 맙시다. 거룩함을 이루지 않고는 아무도 주님을 만나지 못할 것입니다 히12:14 그러면 과연 칭의(稱義)와 성화(聖化)가 시간적 순서이며 칭의(稱義)는 단회적(單回的)이고 순간적(瞬間的)이며 성화(聖化)는 점진적인가? 칭의(稱義)와 성화(聖化)는 분리되는 것인가?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는지를 아브라함의 예를 들어 살펴보고자 합니다. 신약 성경에서 칭의(稱義)를 말할 때 아브라함이 종종 등장하기 때문입니다(롬 3:21-4:25, 갈 3:6-14, 약 2:21-24).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믿음으로 말미암은 칭의(稱義)를 말할 때 아브라함을 등장 시키고 있습니다(롬 3:21-4:25). 바울은 롬 3:21-26절에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義)를 말하고 롬 4장에서 아브라함의 예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롬 4:3절에서 성경이 무엇이라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義)로 여겨진바 되었느니라하고 아브라함이 믿으매 하나님께 의(義)로 여겨진바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의(義)로 여겼다는 말씀은 창세기 15장6절을 인용한 말씀으로 이때 아브라함은 칭의(稱義)를 받았습니다. 창1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기를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고 말씀하시자 아브라함은 그 약속을 믿고 순종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도 자식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창 15장에 보면 하나님이 환상 중에 아브라함에게 아브람아 두려워 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고 말씀하시자 아브람이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나에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라고 말하자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밖으로 나오라 하시고 하늘의 뭇 별을 셀 수 있나 보라 하시고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고 말씀하시자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義)로 여기 셨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그 때 아브라함은 몇 살이었습니까? 아브라함이 가나안을 향해 가려고 화란을 떠날 때의 그의 나이가 75세라고 했고(창12:4)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은 때가 86세라 했으니(창16:16) 창세기 15장의 아브라함의 나이는 아마 75세와 86세의 중간 인 80세라고 가정해 보고 아브라함은 80세에 칭의(稱義)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롬 4:19-22절에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이 견고하여 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義)로 여겨졌느니라 하고 아브라함이 또 칭의(稱義)를 받는 것이 나옵니다. 이 구절은 창세기 17-18장의 내용으로 아브라함이 99세 때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행하라 하시면서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하고 내가 네 아내 사라에게 복을 주어 그가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시자 아브라함이 속으로 웃으며 백세 된 사람이 어떻게 자식을 낳을까? 사라가 90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하고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서 살기를 원하나이다. 라고 아브라함이 말하자 하나님께서 아니다 네 아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하시며 말씀을 마치시고 떠나자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자기에게 지시하신 대로 자기 집의 모든 남자에게 할례를 행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90세나 된 사라가 이삭을 낳을 것을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의(義)로 여기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은 80세에 칭의(稱義)를 받고 또 100세에 칭의(稱義)를 받으므로 두 번 칭의(稱義)를 받은 것이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칭의(稱義)를 얻는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자손을 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였는데 주시지 않다가 아브라함의 나이가 100세나 되었고 사라의 나이는 90세로 자손을 가질 수 없는, 즉 생산능력이 없는 죽은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내년 이맘때에 사라가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말씀하시자 그 약속을 믿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은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으로 죽은 태를 열어 생명을 가질 수 있게 하시는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으로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믿음을 보시고 의로 여기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롬4:23-24절에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 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우리도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시키신 능력의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부활시키신 것과 같이 예수님을 주(主)로 믿는 나도 부활시키실 것이라는 부활신앙의 확신을 가지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순종하는 믿음만이 의롭다함을 받을 수 있는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롬8:11 그리고 아브라함이 믿었던 그 믿음과 우리가 믿는 믿음이 유전자 상으로 같아야 아브라함의 자손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갈3:7 야고보 사도는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이에 성경에 이른바 하고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로 바친 내용은 창세기 22장에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모리아 산으로 데리고 가서 번제로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산으로 가서 번제로 드리려고 하자 여호와의 사자가 급히 아브라함을 부르시며 이삭에게 손을 대지 말라 하시며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 아노라 하시고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으니 천하 만민이 네 씨로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드린 행위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다고 말씀하신 것을 보아서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대한 자신의 믿음을 행함으로 나타내 보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의(義)로 여기셨습니다. 이때의 아브라함의 나이는 대략 115세로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100세에 낳았고 이삭이 번제에 쓸 나무를 지고 모리아 산으로 갔으니(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가져다가 그의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창 22:6)) 이때 이삭의 나이가 대략 15세 전후는 되었을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은 115세 때 또 칭의(稱義)를 받습니다. 종합하여 보면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창15장에서 자식이 없는 80세인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별과 같이 네 자손이 많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을 때 의롭다 여기심을 받았고, 창 17-18장에서 아브라함의 나이 100세요 사라의 나이가 90세가 되어 생산 능력이 없는 죽은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내년 이맘때 네가 아들을 낳을 것이다. 라는 말씀을 믿을 때 의롭다 여기심을 받았고, 창22장에서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라 하실 때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실 수 있다고 믿고 이삭을 제물로 드림으로 의롭다 여기심을 받았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내용으로 보면 아브라함의 생애 가운데 세 번 칭의(稱義)를 받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나이 80세,100세,115세,) 이와 같이 아브라함의 생애로 보면 칭의(稱義)는 단회적이 아니요 반복적이며 점점 더 믿음이, 즉 하나님을 신뢰하며 순종하는 삶이 깊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칭의(稱義)는 단회적(單回的)이 아닌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칭의(稱義)와 성화(聖化)는 구별된 것이 아니라 떨어질 수 없는 하나이며 시간적 순서로 볼 것이 아니라 논리적 순서로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롬 5:1절에서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라고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고 하였고, 롬6:7절에서는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하고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음으로 성화(聖化)없는 칭의(稱義)는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죄 된 생활에서 벗어나 구별된 삶(성화(聖化))을 살며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믿음)을 살 때 의롭다 하심(칭의(稱義))을 얻습니다. 그러므로 성화(聖化) 없는 칭의(稱義)는 없는 것이며 성화(聖化) 없이도 칭의(稱義) 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이론은 성경적인 이론이 아닙니다. 또한 칭의(稱義)는 종말론적입니다. 칭의(稱義)를 전문적으로 연구했던 맥그라스(A.E.McGrath)는 그의 저서 '하나님의 칭의론'(pp.45-46)에서 “바울 자료에서 칭의는 성도로서의 삶의 시작과 최종적인 완성이 모두 연관된 것이므로 과거만이 아니라 미래 또한 언급합니다(롬 2:13, 8:33; 갈 5:4-5). 마찬가지로 성화 또한 과거의 사건(고전 6:11)과 미래의 사건(살전 5:23-24)을 언급할 수 있다” 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칭의(稱義)가 과거의 어떤 한 시점만이 아니고 최종적인 종말론적인 칭의(稱義)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갈5:5절 말씀에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라고한 말씀과 같이 의의 소망을 기다리며 딤후4:6-8절 말씀에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主)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하신 말씀과 같이 주님의 부르심을 받는 그 순간까지 선한 싸움을 싸우며, 믿음을 지키며, 달려갈 길을 다 마치고 의로우신 재판장 되신 주님으로부터 최종적인 의의 선언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살전 5:23-24절 말씀에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너희를 부르신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는 말씀과 같이 우리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우리의 영혼과 육체가 거룩하고 흠 없게 보전되기를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을 믿고 오직 주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상에서 살핀 대로 칭의(稱義)는 단회적이고 즉각적인 것이 아니며 반복적이요 종말론적이며 칭의(稱義)와 성화(聖化)는 시간상의 순서가 아니라 논리적인 순서이며, 칭의(稱義)와 성화(聖化)는 분리된 것이 아닌 하나로 구원의 양면성을 말하고 있으며, 평생 칭의(稱義), 평생 성화(聖化)를 이루어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아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까지 자라나 종말론적 칭의(稱義)를 얻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제 개혁주의 신학의 중심에 서있는 칼빈은 칭의(稱義)와 성화(聖化)를 어떻게 보았는지에 대하여 그의 [기독교 강요]와 [창세기와 로마서 주석]을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성령은 죄인된 우리들을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연합시켜 믿음을 통하여 의롭다 함(칭의(稱義))과 거룩하게 됨(성화(聖化))을 얻게 하신다.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고전1:30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라 고전 6:11 그러므로 칼빈에 의하면 칭의(稱義)와 성화(聖化)는 논리적으로는 칭의(稱義)가 성화(聖化)에 앞서지만 이 두 가지는 성령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얻어지기 때문에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구별은 되지만 분리될 수 없는 성령의 이중 사역(고전 1:30, 6:11)으로 성도들 안에서 평생토록 함께 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기독교강 Ⅲ.ⅰ.1). 그것은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지체된 성도들과의 신비한 연합을 통해서 가능케 되는 것 입니(기독교강요, Ⅲ.ⅰ. 10).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칭의의 은혜를 매일 매일 평생토록 죽는 순간까지 이루어가며 가슴 깊이 감사하며 하나님 앞에서 (Coram Deo)의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칭의(稱義)와 성화(聖化)가 다 같이 상호 구별은 되나 분리될 수 없고 동시적인 것(「기독교강요」Ⅲ.ⅹⅵ .1)과, 참된 믿음은 순종의 삶으로 증명하게 된다는 것(기독교강요, Ⅲ.ⅹⅶ .12)과 그리고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자에게는 그리스도가 그 안에 항상 살아계신다 갈 2:20는 것(기독교강요, Ⅲ.ⅱ.13)을 고려할 때, 성화(聖化)와 함께 한 칭의(稱義)는 법정적 선언적인 점에서는 단번에 되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의가 회복되는 데는 한 평생이 필요한 (기독교강요, Ⅲ.ⅲ.9)것으로 칭의(稱義)는 성격상 일평생을 필요로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칭의(稱義)의 수단인 믿음과 칭의(稱義)의 근거인 그리스도와의 연합 그리고 칭의(稱義)와 불가분하고 동시적인 성화(聖化)가 평생의 과정인 점에서 칭의(稱義)는 단순히 과거적 일회적 사건이 아닌 종말론적이라는 것입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믿음을 온전히 지켰을 때 의의 면류관이 주어진다는 바울의 말씀(딤후 4:8)에 의하면 칭의(稱義)는 사실상 종말에 되어질 것이 미리 선언된 것이라는 것입니다. 칭의의 직접적인 목표는 하나님의 의로우심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요(기독교강요, Ⅲ.ⅹⅰ ⅴ.17), 구원론적인 목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 거룩하고 영화롭게 되는 것이며(롬 8:29-30), 궁극적인 목표는 하나님의 은혜의 나라에 들어가 그의 영광을 보며 즐거워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롬 5:1,2).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稱義)교리는 칼빈에게 있어서 기독교 교리의 중심점이기에 이 교리가 왜곡되는 경우 기독교의 구원론에 치명적인 결함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칼빈은 기독교강요와 창세기 및 로마서 주석 등에서 특별하고도 섬세하게 다루었습니다. 칼빈에게 있어서 칭의(稱義)와 성화(聖化)는 둘 간(間)에 구별은 있으나 분리가 있을 수 없고 사실상 동시적인 것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칼빈에게 있어서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삶을 살면서 불신앙과 육체적인 정욕과 평생토록 싸우는 것이요, 온갖 장애물들을 인하여 평생토록 연단 받는 가운데서 죽는 순간까지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의 부르심의 상을 향하여 달리는 경주였습니다. 회개는 하나님의 자비와 용서를 평생토록 구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자 열심을 다하는 것이었습니다(기독교강요, Ⅲ.ⅲ.9). 이 믿음과 회개로 말미암는 칭의(稱義)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하여 하나님 앞에서 의인이 되고 그리스도를 마음의 중심에 모시고 죽기까지 평생토록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누리며 영원히 사는 것이며 성화(聖化)는 죄에 대하여 죽고 또한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는 훈련 속에서 그리스도를 점진적으로 닮아 죽을 때까지 거룩함을 이루어 가는 것 입니다. 요약하자면, 평생 믿음과 평생 회개를 통한 평생 칭의(稱義)와 평생 성화(聖化)를 누린다는 것입니다(나용화 박사 “믿음과 칭의에 대한 칼빈의 이해 ”). 이와 같은 칼빈의 칭의론이 오늘날 교회 안에서 잘못 가르쳐져 칭의(稱義)가 법정적 선언이요 신분의 변화로서 과거적 일회적 사건이기에 시간적으로 칭의(稱義)가 완료된 이후 성화(聖化)가 점진적으로 이루어진다고 가르쳐 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왜곡된 구원론으로 인하여 말씀에 순종하는 삶(믿음)이 없어도 믿기만(지적 동의로 입술의 고백) 하면 구원을 받는다고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잘못된 구원론으로 인하여 오늘의 한국 교회는 윤리적 삶이 실종된 기복종교로 전락(轉落)했습니다. 또한 세상에 빛이 되지 못하고 거룩한 영향력을 상실한 머리털이 깎이우고 두 눈 뽑힌 삼손이 되어 한국 사회로 부터 신뢰를 상실한 부끄러운 우리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디모데에게 부탁한 말씀처럼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하신 말씀과 같이 진리의 말씀을 바로 분별하고 우리 자신이 바른 삶을 살고 바르게 가르쳐서 거룩성을 회복하여 빛의 삶을 살아 하나님의 더렵혀진 이름을 회복하는 운동이 일어나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가르치는 복음 진리의 말씀을 우리 자신의 삶이 배반하지 않도록 살아야 하겠습니다. 가르치는 자는 가르침을 받는 자의 삶의 모델이 되어야 하고 삶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교사의 영성과 성숙의 깊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하여 하나님 앞에서 묵상하는 시간의 길이와 비례합니다. 늘 말씀의 거울 앞에서 자신을 성찰하는 교사가 되어 한 말씀이라도 순종하는 삶을 살려고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며 성화(聖化)를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까지 자라가야 하겠습니다." 진정한 음악가는 음 하나로 죽을 수 있다. 비유적 의미에서라도 단 하나의 음, 단 하나의 획, 단 하나의 문장을 위해 죽을 예술가들이 있다. 그들의 창조물 앞에 기꺼이 목숨을 내놓을 찬미의 경지도 있다. 아름다움이 베푸는 감동의 믿음 안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감동의 순간 인간은 용감해진다. 몸은 죽어도, 믿음은 죽음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믿음의 목적은 ‘하나 됨(union)’이고, 믿음은 감염 능력을 발휘해 사람과 사회의 통합을 이루어낸다. 좋은 믿음일수록 감염력이 막강하다. 다른 어떤 것보다 전파력이 크고 빠른 믿음은 인간을 황홀에 빠뜨려 정신까지 마비시킨다. 믿음의 영향 아래서 우리는 자신이 느끼지 않는 것을 느끼고, 우리는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고, 자신이 못하는 것을 할 수 있게 된다. 2020-04-09 수정 2026-07-17
-
[더굳뉴스] 제55회 전국목사장로기도회 그리운 모습들
칼빈의 개혁주의 신앙으로 다시 우리 교단을 세우고 한국교회를 세워야 하나님 사랑 교회 사랑 동역자 사랑 진심 담겨 적폐 중 적폐와도 화해하고 대화하는 시대 예수님 안에서 하나 되어야 주여 하늘의 ’거룩한 완전한 태풍‘불어오게 하옵소서 남수원노회 노회장이 유독 인상 깊었던 이유는 노회 형편이 좋아 보여서가 아니라 믿음의 중심이 단단해 보이는 목사였기 때문이다. 그 노회 소속으로 문제가 된 목사 언급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리고 지금은 그 모든 일들이 다른 총대가 겪은 일인 것처럼 생소하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한 사람이 어떤 일에 대해 얼마만큼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지도 의심하게 되었다. 숭고하고 치명적이기까지 한 욕망, 위엄 따위는 없는 부패, 다른 사람들이 그랬다면 무분별하다고 생각했을 신념과 행동, 그는 이 모든 것들을 스스럼없이 행했다. 아쉽게도 모든 소임이 성공적으로 완수되지는 않는다. 인정받지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목사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필요해.” 그래서 그는 그 영문도 모른 채 정신을 차리고 성경을 들고 길을 걷거나 펼쳐놓고 말씀을 전한다. 짜릿한 겨울날 오후 슬쩍 내리는 빗방울까지도 두려워하면서 그것에 맞아 죽거나 어찌되어서는 안 되겠기에. 쨍하게 갠 날 사랑하는 사람이 그를 필요로 하면 기꺼이 필요가 되는 것이 사랑이다. 값진 필요가 되려면 온전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사랑을 확인한 그는 겁쟁이에 바보가 된다. 사랑의 바보는 난생 처음 그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귀한 존재임을 깨닫는다. 눈 오는 날 그가 눈송이조차도 사랑스러워 하니 아무렴 하나님께서 내리는 것이 무엇이든 그를 피해 내리겠지.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별이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면 서로 울던... 새가 날면 따라 웃고 새가 울면 따라 울던 얄궂은 그 노래에 봄날은 간다. 목사가 몸을 쥐어짜며 구성지게 이 노래를 부르면 회중이 울까 웃을까. 어쨌든 그의 얄궂은 그 노래가 사방에 울리는데 깨는 듯 조는 듯 겨울은 간다. 꿈인 듯 생시인 듯 추위가 가시고 말리라. 그가 시같이 읊조리고 노래같이 흘리는 해학과 열창에 사람들은 웃고 운다. 그런데 무엇보다 그의 설교에는 재능이나 학식보다 하나님 사랑, 교회 사랑, 동역자 사랑의 진심이 담겨 있다. 그리고 그 속에 성령이 주시는 태풍의 예언이 담겨 있다. 태풍(颱風, Typhoon)은 북태평양 서쪽 열대 해상에서 발생하는 열대 저기압의 한 종류로 중심 부근의 최대 풍속이 17.2m/s 이상의 강한 폭풍우를 동반하고 있는 기상 현상을 말한다. 7월~10월에 가장 많이 발생한다. 발생 지역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북태평양 동부와 북대서양 서부에서 발생하면 허리케인(hurricane) 인도양과 남태평양에서 발생하면 사이클론(cyclone)이라고 한다. 제55회 전국목사장로기도회가 2018년 5월 8일 오후 4시 김창인 목사가 충무로 언덕에 세웠다는 충현교회를 강남의 언덕 1만평 위에 세운 충현교회에서 시작됐다. 오후 7시 전국목사장로기도회 첫째 날 저녁집회가 진행됐다. 장재덕 목사(총회회록서기) 인도로 진행된 저녁집회 합심기도에 김진하 목사(예수사랑교회)가 ‘총신대학교와 교단 산하 신학교를 위해’ 뜨겁게 기도하고 회중을 성령의 감동에 젖게 했다. 이어서 새에덴교회 찬양대가 감동의 울림으로 충현교회 본당을 가득 메운 뒤 하나님의 말씀 사도행전 2:1-4 본문이 봉독됐다.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소강석 목사가 ‘하늘의 퍼펙트 스톰을 일으키라’ 제목으로 입을 열었다.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 ‘완전한 태풍’이라는 말을 아십니까. 이 퍼펙트 스톰은 위력이 크지 않은 둘 이상의 작은 태풍이 서로 충돌하면서 그 영향력이 가히 폭발적으로 커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경제, 사회 분야에서도 두 가지 이상의 악재가 겹쳐 더 큰 피해를 당할 때 쓰는 용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2000년에는 ‘퍼펙트 스톰’이라는 재난 영화가 상영되기도 하였는데요. 이 퍼펙트 스톰이 몰아치면 흔적도 없이 모든 것을 다 쓸어버립니다. 보통의 태풍은 흔적이라도 남기는데 퍼펙트 스톰은 흔적조차도 남기지 않는 완전한 폭풍이에요. 그러니 이 퍼펙트 스톰이 불어 닥치면 어마어마한 재난이 일어나는 것이죠. 그런데 지금 세계 기독교는 이 ‘완전한 태풍’ 같은 재난을 맞고 있습니다. 반기독교적인 정서와 공격들이 세계 교회 생태계를 공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그 재난의 폭풍은 지금 한국교회에 더 불어오고 있어요. 왜 그럴까요. 첫째, 우리 한국교회가 복음의 본질을 잃고 거룩의 능력을 빼앗겨 버렸기 때문입니다. ... 한국교회는 자성하고 변화를 모색했어야 하는데 안일한 자세로 자기 성(castle)만 쌓고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성장만능주의와 세속화, 교권의 욕망 때문에 도덕적, 영적, 거룩의 능력을 상실해 버리고 세상의 비난거리가 되었어요. 그런데 그 비난과 공격은 너무나 거칠고 험하게 자행되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한국교회를 향한 재난의 바람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재난의 바람이 우리 총회에도 불어 닥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둘째, 반기독교적인 사상의 흐름 때문입니다. ... 우리 사회에서도 10년 전까지만 해도 동성애를 이야기하면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금기시했지 않습니까. 완전 비정상으로 알았어요. 그런데 언론에서 끊임없이 동성애를 인권으로 포장해서 이야기하고 성소수자로 보도를 하며 미화를 시키니까 10년이 지나자 대중이 그렇게 인식을 해 버린 거예요. ... 제가 얼마 전에 미국 유학을 다녀오셔서 목회를 아주 잘하고 계시는 분과 식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옆에도 다가갈 수 없는 인격과 실력을 가지신 분입니다. 그런데 그 분이 저에게 뭐라고 충고를 한 줄 아세요. ‘소목사님, 절대로 교회생태계를 보호하는 사역이나, 교회 연합사역 같은 일을 하지 마십시오. 그거 아무리 해도 안 됩니다. 어차피 유럽과 미국에서 되어진 것처럼 우리나라도 이러한 흐름은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저 복음을 잘 전하는 일입니다. 그런 일에 절대로 힘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제가 얼마나 충격을 받아버렸는지 모릅니다... 사실 얼마나 아름다운 말입니까. 당연히 복음을 잘 전해야지요. 그러나 그러다가 영국교회나 미국교회는 반기독교 악법을 허용해 버리게 되고 목회생태계를 다 파괴시켜버리고 만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만약에 우리나라에서도 차별금지법이나 종교소득과세 등이 법으로 통과되었다면 한국교회는 재난에 완전히 쓰러지게 되었을 것입니다. 3년 전에는 하마터면 국회에서 종교인과세가 아니라 종교소득과세로 통과 될 뻔 했어요. 그런데 부족하지만 제가 그것을 뒤늦게 알고 전국 17개 광역시도 기독교연합회장들과 함께 각 지역구 국회의원들에게 설명을 하고 설득을 한 거예요. 그래서 당시 여당이 의총을 해서 종교소득과세를 종교인과세로 바꾸게 된 거예요. 만약에 그때 종교소득과세로 입법이 되어버렸다면, 한국교회 모든 선교 활동이나 목회자의 목회 활동이 완전히 위축되고 교회가 기업처럼 세무조사의 대상이 될 뻔 했어요. 그런데 다행히 종교인 과세가 되어서 최소한의 마찰을 겪으면서 연착륙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왜 교회가 성역화되어야 하느냐, 교회도 세무조사를 받아야 하지 않느냐”고 따지기도 하는데요. 교회의 본질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하는 거지요. 교회는 절대로 영리단체가 아닙니다.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 아니예요. 그러므로 교회는 종교 고유의 목적인 성경의 가치와 예수님의 진리를 실현하는 사역이 보장받아야 하는 곳입니다... 여러분, 교회가 완전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교회도 인간이 모인 곳인데 빛과 그림자가 있을 수 있는 거지요. 그런데도 어쩌다가 교회에 부정적이고 어두운 요소가 나오면 그렇게 벌떼처럼 달려드는 거예요. 그러다가 어떤 계기가 되면 이런 현상들이 엄청난 재난의 바람으로 발전할 수도 있거든요. 퍼펙트 스톰이 어떻게 일어납니까. 별로 위력적이지 않은 작은 바람이 갑자기 엉키고 충돌하면서 어마어마한 재난의 바람으로 일어나지 않습니까. 그런 것처럼 우리 총회도 방심할 수 없어요. 총신 문제가 일단락되었다고 하지만 더 큰 재난의 바람 ‘완전한 태풍’이 불어올지 어떻게 압니까. 그러므로 이러한 때 우리는 역설적으로 더 큰 하늘의 퍼펙트 스톰을 일으킬 수 있어야 합니다. 역설적으로 더 크고 더 능력 있는 거룩한 홀리 퍼펙트 스톰(Holy perfect storm)을 일으켜야 해요. 우리가 산불이 일어나면 맞불 작전을 펼치지 않습니까. 그래서 산불은 산불을 놓아 끄는 것처럼 우리도 한국교회에 불어오는 재난의 바람을 거룩한 하늘의 바람으로 잠잠케 해 버려야 합니다. 하늘의 거룩한 퍼펙트 스톰으로 이 땅에 불어오는 반기독교적 재난의 바람을 다 날려버려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오늘 본문도 그랬습니다. 당시에 예수님께서는 부활 승천을 하셨지만 유대종교로부터 강력한 핍박의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불어오는 재난의 바람이 두려워서 꼼짝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 재난의 바람으로 인해 그들의 신앙에 존폐 위기가 온 것입니다. 그런데 개역성경이 '다락방'으로 오역한 마가의 윗층방(upper room)을 향하여 하늘이 열렸습니다. 그리고 열린 하늘을 통하여 성령이 임하였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을 벌벌 떨게 하고 교회가 세워지는 것을 방해하고 있었던 그 재난의 바람들을 다 날려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거룩한 부흥의 역사가 나타난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이 임하는 모습을 오늘 본문은 “급하고 강한 바람”이라고 했어요. 이것이 바로 하늘로부터 불어온 홀리 퍼펙트 스톰이에요. 본문에서 말씀하는 ‘급하고 강한 바람’(a rushing mighty wind)은 헬라어로 “페로메네스 프노에스 비아이아스”인데 ‘파괴적인 힘을 가진 몰아치는 바람’이란 뜻입니다. 그러니까 거룩한 퍼펙트 스톰이지요. 그런데 급하고 강한 바람과 함께 불의 혀가 갈라지는 것같이 임한 거예요. 여러분, 상상해 보세요.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데 거기에 급하고 강한 바람이 불어대니 얼마나 불이 잘 번지겠습니까. 바로 이 모습이 마가 웟층방에 임한 하늘의 거룩한 퍼펙트 스톰이었어요. 그래서 당시에 교회를 태동시키지 못하게 하려고 하는 재난의 바람을 급하고 강한, 하늘의 거룩한 퍼펙트 스톰이 날려 버렸어요.” 소강석 목사는 재난의 바람 ‘퍼펙트 스톰’을 예레미야처럼 예언한 뒤 그 대비책을 이사야처럼 제안했다. “오늘 존경하는 목사님과 장로님들께서 목장기도회로 모이셨는데, 오늘 이 자리가 하늘이 열리고 하늘의 퍼펙트 스톰을 일으키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거룩한 부흥의 바람을 일으키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거룩한 하늘의 퍼펙트 스톰을 일으킬 수 있습니까. 첫째, 먼저 우리가 회개부터 해야 합니다. 성경에서 뿐만 아니라, 2000년 교회 역사를 보면 모든 부흥의 역사는 회개로부터 시작했습니다. 미스바 부흥운동, 수문 앞 광장의 부흥운동, 갈멜산의 부흥운동이 그랬습니다. 오늘 본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신대로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냥 기다리기만 했습니까. 그들은 오로지 기도에 힘썼습니다. 성경은 사도행전 1:14에서 말씀합니다.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그들은 오로지 기도에 힘썼다고 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들이 그냥 기도만 했을까요. 그들은 틀림없이 회개도 하였을 것입니다. 그들 중 대부분은 주님을 3년이나 따라다녔지만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 모두 다 도망 가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지난날 주님을 배반했던 일들을 회개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오순절의 성령 체험을 한 후에 맨 먼저 어떤 메시지를 전하였습니까. 성령을 선물로 받으려면 회개하라고 했습니다(행 2:38). 그리고 그 회개의 메시지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 죄를 회개하라는 것이었습니다(행 3:13-15). 그랬을 때, 마가 다락방 뿐만 아니라 초대교회에 위대한 부흥의 퍼펙트 스톰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도 먼저 회개해야 합니다. 특별히 우리 총신의 문제와 교단의 모든 문제를 우리 모두가 책임지고 회개해야 합니다. 그래서 요즘 저도 기도할 때마다 늘 하나님께 회개 기도부터 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저의 잘못이고 저의 책임이라고 여기며 말입니다... 둘째, 거룩한 부흥을 사모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회개한 제자들은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거룩한 성령의 임함과 부흥의 역사를 사모하며 오로지 기도에 힘썼어요(행1:14). 그들이 하루 이틀 기다리며 기도했겠습니까. 적어도 10일 동안 그들은 숙식을 같이 하면서 성령의 임함을 사모하고 거룩한 부흥의 역사를 간구했던 거예요. 그럴 때 홀연히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임한 거에요...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그렇게 엄격한 규율을 지키면서 경건하게 사는 것처럼 보이는데, 문제는 심령이 점점 컬컬하고 메말라가는 거예요. 교회에서 몇 사람만 모여도 서로를 정죄하고 비판하면서 파벌싸움을 하고 쪼그라드는 거예요. 이런 모습이 ‘주홍글씨’라는 소설에 잘 나오지 않습니까. 그러자 자기들 스스로 영적 각성을 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부흥의 절실함을 깨닫게 된 거예요... 바로 이런 영적 각성과 영적인 갈망이 미국의 1차대각성 운동을 일으키게 한 것입니다. 2차 대각성운동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랑하는 목사님, 장로님들이여, 오늘 이 자리가 그런 부흥의 자리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런 거룩한 부흥의 바람, 하늘의 폭풍이 불어오는 자리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오늘 저녁 기도하고 또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이 기도회가 끝나도 자리에 앉아서 기도하시고 숙소에 돌아가셔서도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거룩함의 능력을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가 부흥을 사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삶에서 거룩함을 회복해야 합니다. 또 우리 교회가 거룩함을 회복해야 해요. 오늘 우리 교회가 거룩함의 능력을 잃어버리면 머리카락 잘린 삼손에 불과하고 눈알 빠진 삼손에 불과해요... 그런 것처럼 한국교회가 지금 얼마나 조롱을 당하고 있습니까. 얼마나 비난을 받고 있습니까. 이대로 가다가는 언젠가 머리카락 잘린 삼손처럼 눈알이 빠져 나간 채 맷돌이나 돌리는 한국교회가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거룩함의 능력을 회복해야 해요. 그러면 거룩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분리성과 완전성으로 설명해야 합니다. 분리성은 세상, 죄와의 분리를 말하는 것이고 완전성은 우리의 도덕적, 영적인 정결의 삶을 하나님께 드림으로써 하나님의 거룩한 속성에 참여하고 그 분의 거룩한 품성을 닮아가는 온전한 삶을 말합니다... 여러분, 정말 하나님 앞에 여러분의 생각이 정결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의 주장이 정결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의 주장이 정말 양심적이고 경우에 합당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의 삶이 의롭고 정결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의 생각과 삶을 하나님께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것들을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해 놓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임한 거룩한 영성과 삶이 서로 맞닿으시기 바랍니다. 서로 합쳐지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작은 바람이 서로 합쳐져서 큰 퍼펙트 스톰을 일으킨 것처럼 오늘 여러분의 순결과 거룩의 영성이 서로 합쳐지고 맞닿아서 거룩한 폭풍을 일으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역설적인 부흥의 폭풍이 일어나는 자리가 되시기 바랍니다. 넷째, 그 거룩함의 능력을 사회적 영향력으로 확대해야 합니다. 우리가 거룩함의 능력을 회복했다면 그 거룩함의 능력을 사회적 영향력으로 확대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거룩한 행실들로 말미암아 하늘의 퍼펙트 스톰이, 이제는 시대와 사회 속으로 불어가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교회들을 해체시키려고 하는 재난의 바람들을 무색하게 할 수 있습니다. 개혁신학 정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통치와 성령의 역사를 이 세상 영역 속으로 확대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개혁주의 신앙으로 다시 우리 교단을 세우고 한국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부터 하나 되고 화해를 해야 합니다. 저 적폐중의 적폐였던 김정은 위원장과도 화해하고 화목하는 시대에 우리가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모두 이러한 목사님과 장로님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여, 우리의 소원이 무너져가는 교회를 세우는 것이 되게 하옵소서. 다시 한 번 교회의 부흥을 가져오는 것이 우리의 소원이 되게 하옵소서. 주여 이곳에 하늘의 홀리 퍼펙트 스톰 ’거룩한 완전한 폭풍‘이 불어오게 하옵소서.’ 소강석 목사가 병원과 교회를 오가는 자신에 대한 근황을 전했다. "저는 이제 조금씩 수면이 회복되어가고 있습니다. 잠드는 사이에 꿈을 꾸어도 퇴원하여 교회에 가서 설교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한 번은 꿈을 꾸었는데 미국에 집회를 가 있는 것입니다. 다시 일어나 보니 현실은 병동의 침대에 누워 있는 것입니다. 제 정신력이 살아 있는 한 저는 오로지 교회이고 설교 강단에 서는 것입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시간이 금요일인데, 두 날 밤만 지나면 교회에 가서 설교를 합니다. 이걸 생각하면 가슴이 또 설레고 밥맛이 돌아오는 것 같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제가 좀 더 잠자는 데 집중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불면의 밤과 숙면의 밤사이에 있는 제가 온전한 숙면의 밤을 맞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마치 상처 입은 독수리가 바위틈에 오래오래 쉬어 있다가 다시 비상하고 솟구치고 웅비하듯이 다시 한번 제 사역의 클라이맥스를 이룰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성경은 말씀한다.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행 1:14 2026-07-08
-
[더굳뉴스] 송태근 설교 전국목사장로기도회 천둥번개
시간은 결코 고정되어 있지 않다. 미래는 현재의 노력으로 바꿀 수 있고 과거는 현재를 기준으로 재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를 뜻하는 영어 단어 ‘present’의 다른 뜻은 ‘선물’이다. 우리에게 허락된 유일한 선물은 현재이다. 두 번의 인생은 없다. 오늘이 우리 목사장로의 가장 젊은 날이다. 프루스트(Marcel Proust, 1871년 7월 10일~1922년 11월 18일)는 말했다. “진정한 발견의 여정은 새로운 풍경을 찾는 게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가지는 데 있다.” 천둥번개는 우리를 보게 해줄 뿐만 아니라, 우리가 들이마시는 산소의 기원이기도 하다. 빛은 초속 약 30만km로 이동하지만, 소리는 초속 약 340m로 매우 느리다. 이 때문에 번쩍이는 빛(천둥빛)을 먼저 보고 얼마 뒤에 천둥소리를 듣게 된다. 가장 건강한 정신은 어떤 좋은 일에도 기뻐 날뛰지 않고 어떤 나쁜 일에도 와르르 무너지지 않는다.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를 가만히 관찰한 후 다음으로 넘어갈 뿐이다. 엄밀히 말해서 세상에 굉장한 일 같은 건 없다. 더 정확히 말하면 소소한 일상조차 실은 굉장한 것이다. 오늘은 어제 죽은 자가 그토록 바라던 내일이 아닌가. 상투적이지만 진실이다. 2026년 5월 11일 76년 살아서 송태근 목사의 그런 설교를 듣는다는 게 하나님의 천둥번개 같은 은혜와 축복처럼 느껴졌다. 제63회 전국목사장로기도회가 5월 11일 오후 2시 용인제일교회(임병선 목사)에서 개회했다. 전국목사장로기도회는 1964년 첫 번째 기도회를 시작으로 60년 넘게 교단의 영적 동력이 돼왔다. 전국에서 모인 목사와 장로들은 소속 교회와 교단, 한국교회를 하나님 앞에 내어놓고 무릎으로 하나님의 뜻과 은혜를 구했다. 이번 제63회 기도회도 ‘오로지 기도하기에 힘쓰니라’(행 2:42)라는 주제 성구 아래 2천 명이 넘는 목사와 장로들이 참석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선포되는 말씀으로 영성을 다졌다. 눈물과 통곡으로 부흥의 은혜를 받으라 첫째 날 저녁 집회 송태근 목사 하나님의 심정을 통하라(삼상 1:15) “오늘도 저와 여러분이 무슨 일로 이렇게 성소에 나와서 슬피 깊이 웁니까. ‘얘, 애. 너 낮술 했냐. 뭘 그리 중얼거리니. 하나님 앞에서. 술 취한 줄 알겠다. 주정하는 줄 알겠다.’ 여러분 영적인 지도자가 한 영혼의 깊은 고통을 모르면 이렇게 엉뚱한 소리를 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 시대의 영적인 지도자인데 한 영혼의 깊은 고통을 모르면 이렇게 엉뚱한 소리를 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 시대의 영적인 지도자인데 얼마나 성도들의 깊은 슬픔, 깊은 고통을 알고 있는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가혹한 가슴앓이를 하고 있습니다. 이제 엘리 제사장은 지나다가 성소 안을 들여다보고 아주 슬피 우는 한나가 술 먹고 주정하는 줄 알고 말합니다. ‘얘, 얘, 끊어라. 지금 대낮인데. 이게 웬일이냐.’ 그러자 한나가 꺼낸 대답이 오늘 본문입니다. ‘아니 나는 마음이 슬픈 자입니다.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 앞에 내 심정을 통한 것뿐입니다.’ 하나님과 뭘 통해요. ‘심정을 통한 것뿐입니다.’ 심정이라는 말에 대해서 거의 해외 석학들의 주석, 주해 다 찾아봐도 이 심정이라는 히브리어가 갖는 그 어휘를 정확하게 해석해 낸 주석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말은 한국 사람은 알아요. ‘심정이 통했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간단하게 말하면 내 맘 니가 알고 니 맘 내가 알았다 그 말입니다. 이것을 명징하게 해석하기는 서구 사람들의 사고 구조 가지고는 어려워요. 저는 오늘 우리 목사님들과 사랑하는 장로님들! 이 밤에 정말 우리가 기도하고자 모인 만큼 한나처럼 하나님과 심정을 통하는 기도의 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회중 아멘) 우리 전부 아멘은 하셨는데 그러면 심정을 통했다는 말이 무슨 말일까요. 제 고향이 경북 영주입니다. 영주 아세요. (회중 네.) 아주 골짜기입니다. 중앙고속도로가 개통되기 전에 어릴 적 고향을 오가다 보면 굴들이 많아요. 한번은 그 굴 뚫는 것을 오가다 본 적이 있습니다. 정확하게 측량을 해 뚫다가 가운데쯤 칠흑 같은 어둠을 걷어내고 저 굴 끝에서 햇빛이 부서져 들어오면서 펑 뚫어지면 놀랍고도 어마어마한 광경이 출현합니다. 뚫어집니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한나가 어떤 문제를 가지고 간절히 기도하다가 굴이 뚫리듯 하나님과 그런 심정이 통하는 전율이 일어난 겁니다. 그렇지 않겠어요. 우리가 목회를 하지만, 수 없이 기도하지만, 정말 언제 한번 그렇게 하나님과 심정이 통하는 기도를 한 적이 있습니까. 자, 그런데 이 이야기가 놀랍게도 바로 ‘사무엘상’ 그리고 ‘사무엘하’라는 책이 있죠. 원래는 한 권의 책입니다. 학자들이 편의상 그렇게 구분해 놓은 것뿐입니다. 그러고 보면 ‘사무엘서’라는 책은 상당히 큰 책이에요. 그런데 그 큰 책의 첫머리에 왜 하필 아이를 갖지 못하는 한 여인의 깊은 슬픈 이야기를 비통한 이야기를 성경 기자는 얹어놓았을까요. 그리고 우리는 한나의 기도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습니까. 그저 단순하게 아이를 갖지 못하던 여인이 큰 소리로 부르짖고 기도한 끝에 아이를 응답받았다는 불임의 여인의 간절한 기도가 아이의 출생으로 응답받았다는 그런 이야기일까요. 이 큰 책 첫머리에 이 한나의 불임 이야기는 그렇게 단순한 에피소드가 아닙니다. 우리는 오늘 이 한나의 붙임이 뭘 얘기하는지 그리고 한나의 그 슬픔의 기도가 이 시대의 영적인 리더들에게 뭘 말하고 싶은지를 알고자 합니다. 그 진의를 만나기 위해서 우리 수고스럽지만, 성경 자막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1절부터 한 절씩 보도록 합시다. (방송실을 향해) 1절을 좀 띄워주실까요. (성경 자막이 강대상 벽에 뜬다. 설교자가 같이 읽자며 '시작'을 외치자 회중이 읽는다.) (회중 낭독) 에브라임 산지 라마다임소빔에 에브라임 사람 엘가나라 하는 자가 있으니 그는 여로함의 아들이요 엘리후의 손자요 도후의 증손이요 숩의 현손이더라 1절에 엘가나 정도 외에는 다 낯선 이름들입니다. 그리고 낯선 이름들로 이루어진 족보가 있습니다. 이유가 있겠죠. 이 족보는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하는 것이 가장 정확한 해석이듯이 역대기라는 모든 족보를 구속사 적으로 기록한 책이 있습니다. 그 역대기에 보면 6장에 이런 설명이 붙어있습니다. 이 족보의 세 가지를 역대기가 천명합니다. 첫째, 레위 지파의 족보입니다. 당연히 무슨 직책을 평생 살았겠습니까. 제사장입니다. 제사장을 세울 때는 그중에서도 레위 지파요 제사장이요 그중에서도 하나님의 성호를 성전에서 평생 노래하는 직책을 맡은 찬송하는 가문입니다. 자 어떻습니까. 레위 지파요 제사장이요 하나님의 성호를 예배 때마다 찬양대원처럼 노래하는 지파입니다. 이건 신앙의 명문가 중의 명문가입니다. 할아버지가 순교자시요 아들이 목사요 또 그 아들도 지금 신대원에서 그 길을 가기 위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런 집안입니다. 대단하죠. 그런데 성경은 문맥과 문맥에서 매우 날카롭고도 슬픈 비결을 남겨놓습니다. 2절을 봅시다. 시작! (회중 낭독) 그에게 두 아내가 있었으니 한 사람의 이름은 한나요 한 사람의 이름은 브닌나라 브닌나에게는 자식이 있고 한나에게는 자식이 없었더라 좀 불편하신 것 같은데 그 내용이 리얼하게 소개됩니다. 목사에게 세컨드가 있다는 말입니다. (회중 웃음) 장로에게 첩이 있었습니다. 심각한 얘기입니다. 그에게 두 아내가 있었으니. 감이 오죠. 그렇습니까. 한 사람의 이름은 한나요, 한 사람의 이름은 브닌나라. 자 여러분. 문제는 이것이 아무렇지도 않았던 시대라는 겁니다. 이 사무엘서가 쓰여진 배경은 정확히 사사시대입니다. 여러분 사사시대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들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했습니다. 자 물어보겠습니다. 사사시대에 이스라엘에 왕이 있었습니까. 없었습니까. 누가 없다고 합니까. (회중 웃음) 다시 물어보겠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왕이 아니셨던 적이 있나요. 대답하세요. 있어요? (회중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왜 그렇게 기록을 남겼을까요. 언어 플레이입니다. 우리 히브리어 배울 때 워드 플레이(word play) 배웠죠. 하나님이 왕이셨습니다. 한 번도 하나님을 왕으로 공경하지 않던 시대였습니다. 그게 사사시대입니다. 그 사사시대 배경 속에 얹어진 이 사무엘서 1장을 보면 레위 지파요, 제사장이요, 예배 때마다 하나님의 성호를 멋지게 정교하게 노래하는 찬양대원의 집안인데 그에게 두 아내가 있었습니다. 제가 신대원 다닐 때 구약을 가르쳐주신 김희보 교수님이라는 분이 계십니다. 은퇴할 때쯤 되신 분들은 그분한테 배우신 기억이 있을 겁니다. 그분이 사무엘서 강의를 하시면서 이 이야기를 굉장히 아프게 하셨습니다. 성직자에게 이런 타락의 열매가 있는데 그것이 아무렇지도 않던 시대였어요. 그에게 두 아내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름 순서를 보세요. 한 사람의 이름이 누구입니까. (회중) 한나. 또 한 사람의 이름은 누구입니까. (회중) 브닌나. 자 순서를 잘 보세요. 누구 이름이 먼저 나옵니까. 첫째 부인 이름이 먼저 나왔고 두 번째 부인 이름이 그 다음에 나왔어요. 그런데 한 절이 바뀌기도 전에 이 서열이 바뀝니다. (회중 낭독) 브닌나에게는 자식이 있고 한나에게는 자식이 없었더라 바뀌었어요? 안 바뀌었어요? 순서가 바뀌어요. 그런데 문제는 저 순서가 무엇을 기준으로 바뀌었습니까. 자식이 있고 없고 기준으로 집안 서열이 바뀌었습니다. 이걸 저희를 가르쳐주신 김희보 박사님께서 이런 이야기를 하셨어요. 열매가 있어야 할 여인에게는 열매가 없고 열매를 맺지 말아야 될 여인에게는 열매가 맺어져 있습니다. 이것은 사실상 성직자들의 고발을 넘어서 백성들의 타락을 고발하는 문장들입니다. 열매를 맺어야 될 삶의 자리에는 열매가 없어요. 열매가 없어야 될 삶의 자리에는 주렁주렁 탐욕의 열매가 있어요. 욕망의 열매가 있어요. ‘브닌나에게는 자식이 있고 한나에게는 자식이 없었더라.’ 여러분, 이 짧은 구절에 그 시대의 모든 것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자 그런데 우리가 히브리어를 공부하다 보면 성경이 병치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병치 구조라는 말은 어려운 이야기가 아니고 신학교 다닐 때 다 배운 내용인데 똑같은 패턴이 반복됨으로써 메시지를 담는 방식입니다. 다시 말해 병치 구조라는 것은 똑같은 패턴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담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우리 한글 성경을 보면 그게 눈에 잘 안 들어와요. 즉 ‘브닌나에게는 자식이 있고 한나에게는 자식이 없었더라.’ 똑같은 패턴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다음 절을 올려주십시오. 시작. (회중 낭독) 이 사람이 매년 자기 성읍에서 나와서 실로에 올라가서 만군의 여호와께 예배하며 제사를 드렸는데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여호와의 제사장으로 거기에 있었더라 나옵니까 안 나옵니까. 나오죠. 자, 복습합니다. 브닌나는 자식이 있고 한나는 자식이 없고. 엘리에게는 두 아들이 제사장으로 있고. 이제 다음에 뭐가 나와야 구조가 맞을까요. 여기는 뭐가 없어야 이 구조가 맞는데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습니다. 성경은 괄호치기를 해놓았습니다. 꽁하고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의 마지막 결론이 무엇이냐 하면 이 괄호 치기를 해놓고 침묵을 해버린 여기에 누가 뭐가 없는가를 찾아내는 것이 결론입니다. 그런데 보통 학교에서 어릴 적에 괄호 치기를 하고 괄호 넣기를 하죠. 쓰잘 데 없는 것을 괄호 치기를 합니까. 아니면 중요한 걸 빈칸으로 남깁니까. 다음 절 4절을 봅시다. 시작! (회중 낭독) 엘가나가 제사를 드리는 날에는 제물의 분깃을 그의 아내 브닌나와 그의 모든 자녀에게 주고 그 다음 절은 제가 읽겠습니다. 한나에게는 갑절을 주니 이는 그를 사랑함이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니 한나에게는 얼마를 주었습니까. ‘갑절을 주니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니’ 자 본문을 그대로 두시고 제가 한 가지 여쭤볼게요. 어쨌거나 엘가나는 그래도 한나를 더 사랑했을까요 아니면 브닌나를 더 사랑했을까요. (회중 대답) 한나. 어떻게 아셨어요. (회중 대답) 갑절을 주니. 그렇죠. 물질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고 (회중 웃음) 갑절로 준 것을 보아서 틀림없이 엘가나는 누구를 더 사랑한 게 맞습니까. (회중 대답) 한나요. 그렇죠. 한나를 더 사랑한 게 맞습니다. 그런데 슬프게도 남편의 갑절의 사랑도 한나의 저 깊은 슬픔의 정체를 위로하지 못합니다. 첫 번째 저와 여러분이 밝혀야 될 것은 한나의 슬픔의 정체입니다. 애가 없어서 슬픈 거 아니야. 그럴까요. 성경은 전혀 다르게 말하고 있다는 게 문제입니다. 저 심연 밑에 즉 남편의 갑절의 사랑도 위로할 수 없었던 한나의 그 슬픔의 정체가 무엇일까요. 아이가 없어서일까요. 성경을 한번 보십시다. 방금 읽으신 말씀을 보면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니’ 거봐요. 하나님이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니까 슬퍼한 게 아니겠어요. 일단 지나갑시다. 다음 절 다 같이 시작. (회중 낭독)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므로 그의 적수인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분하게 하여 괴롭게 하더라 임신하지 못하게 했다는 말이 여기 몇 번 나옵니까. (회중 대답) 두 번. 강조법입니다. 두 번 나온다는 이 말은 한나가 아이가 없어 슬퍼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성경 어디에도 한나가 본인이 아이가 없어 너무 괴로워 너무 슬퍼 이렇게 언급된 대목이 하나도 없어요. 해석이 그렇게 한 겁니다. 그 해석 전에 성경은 뭐라고 말씀할까요.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므로. 여호와께서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므로. 여러분 그래서 우리는 이 수천 년 전 언어로 기록된, 관념으로 기록된, 통념으로 기록된 성경을 오늘 시대의 이해로 해석을 해서는 안 됩니다. 수천 년 전 히브리인들은 세 살 먹은 아이라도 아는 게 하나 있었어요. 그 시대 개념입니다. 여자가 시집을 가서 아이를 갖지 못하면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거나 그 기간이 길어지면 디스커넥션(disconnection), 하나님과 끊어진 존재로 이해를 했습니다. 그래서 그 한나를 격분시킬 수 있었던 동기가 가능했던 것이 그런 사고방식 때문입니다. 성경 어디에도 한나는 내가 아이가 없어서라는 기록을 남긴 곳이 하나도 없습니다. (어조가 높아진다) 그러면 한나의 종말은 남편의 갑절의 사랑도 위로가 안 되는 그 슬픔의 정체가 무엇일까요.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불임의 기간이 길어져서 첩마저도 한나를 공격합니다. 아니 저 여자는 뭔가 문제가 있고 죄가 있어서 하나님 징계를 받고있는 중일 거야. 5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아기가 없네. 하나님이 버리셨나. 자, 아기의 문제입니까. 하나님과의 관계의 문제입니까. (회중, 하나님과의 문제) 네. 그게 본질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한나는 성소에 들어가서 통곡하며 기도합니다. ‘오! 하나님. 저 너무 괴로워요. 너무 힘들어요. 저 정말 버리시는 겁니까. 하나님! 저 외면하셨나요.’ 그런데 엘리 제사장이 지나가다가 성소를 들여다보고 말합니다. ‘술 끊어라. 때가 어느 때인데 낮술 먹고 주정하느냐.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 한나가 대답합니다. ‘내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내 심정을 통한 것뿐입니다.’ 뭐를 통했다고요. (회중 대답) ‘심정을 통한 것뿐입니다.’ 심정을 통했다는 건 정확하게 정의를 하면 무슨 뜻이라고 했습니까. 하나님 마음을 누가 알았어요. 한나가 알았어요. 당연히 하나님은 누구의 마음을 아셨나요. (회중 대답) 한나요. 뭐 하다가요. 기도하다가. 와! 그런 기도 한번 안 해보실래요. 하늘이 열려요. 우리가 밀어 올리는 기도가 아니라 하늘 문이 열려서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잡아채시는 기도. (회중 아멘) 우리가 하나님의 심정을 알고 하나님이 우리의 눈물과 고통을 아시는 기도. (회중 숙연한 아멘) 이 기도는 어떤 기도일까. 결국, 우리는 한나의 기도 속으로 들어가 보는 것 이외에는 도리가 없죠. 그래서 지금부터 한나의 기도 속으로 들어가 보십시다. 9절 띄워주세요. 다 같이 시작. (회중 봉독) 그들이 실로에서 먹고 마신 후에 한나가 일어나니 그 때에 제사장 엘리는 여호와의 전 문설주 곁 의자에 앉아 있었더라 10절은 제가 읽습니다.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11절 다 같이 시작. (회중 봉독)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여러분 혹시 한나의 기도문 읽으시다가 뭐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대목 없습니까.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상하다. 한나는 무슨 결핍을 갖고 있습니까. 불임의 결핍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들을 주시면’이라고 기도합니다. 이 기도까지는 이상할 게 없어요. 성경을 보세요. ‘아들을 주시면’ 그런데 그다음의 기도가 이상해요.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아들을 주시면 그 아들을 뭘로 드리겠다는 겁니까. 나실인, 하나님의 종으로 드리겠다는 겁니다. 말씀의 사람으로 드리겠다는 얘기에요. 이상하잖아요. 아이가 없어서 그렇게 오랜 세월을 통곡하고 가슴앓이를 했는데. 아들 하나 있으면 게임 끝나는데 그렇게 애원하고 통곡하면서 기도했던 그 아들을 주시면 여호와께 드리고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우리 쉬운 말로 내놓을 아들을 뭐하러 그리 간구했노. 도로 내놓을 아들을. 여기에는 뭐가 있을까요. 지금부터 우리는 성경을 바탕으로 이 본문을 그림 언어로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2차원으로 읽었다면 4차원으로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도 한나는 통곡하며 기도합니다. ‘하나님 정말 저를 잊으셨나요. 저를 외면하시는 건가요. 저는 하나님과의 단절이 너무 아파요. 세상 사람들이 저를 공격하는데.’ ‘한나야 아프지. 나도 니 맘하고 똑같애. 나도 아파.’ ‘하나님 뭐가 부족해서 아파요.’ ‘얘 한나야. 너도 아들 하나 없으니까 기가 막히지. 가슴 아프지. 내가 그래.’ ‘아니 뭐가 부족해서요.’ ‘이 말씀이 끊어진 깜깜한 세상에 내 심정 하나 옳게 전달할 말씀의 사람이 없단다.’ ‘어머나. 그러세요. 그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하시려고 내게 불임의 고통을 주셨군요. 하나님 그 아들 주세요.’ 어떻게 하겠다고요. 하나님 앞에 내놓겠다는 겁니다. 이게 애 낳지 못하던 여자의 기도입니까. 애 응답받은 사건입니까.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교회의 개혁과 부흥은 숫자가 문제가 아니에요. 한 사람의 하나님과 심정을 통한 눈물의 기도가 부흥을 가져와요. (회중 아멘) 우리는 그 기도 속에서 도대체 무얼 기도해야 할까요. 저는 한 편의 설교가 역사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회중 아멘) 하나님! 말씀이 깜깜한 사사 시대에 한 여인의 눈물과 통곡의 기도를 통해서 누구를 그 시대에 주셨습니까. ‘하나님이 들으신다’라는 이름을 가진 사무엘을 주셨습니다. 그때부터 말씀이 몰락해 가던 이스라엘에 꿈결처럼 일어나는데 지엔피 4만 불로 일어납니까. 무장된 군사력으로 일어납니까. 아니예요. 사무엘 선지자가 여호와 앞에서 자라 브엘세바에서부터 단까지 백성들을 가르치기 시작하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몰락해 가던 이스라엘을 꿈결처럼 일으켰습니다. (회중 아멘) 사실 우리는 뭘 기도해야 될지도 잘 몰라요.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는 이 밤에 오 성령님! 우리의 기도를 헤집어주셔서 정말 말씀이 덮인 이 깜깜한 세상에 하나님의 말씀의 사람들이 일어나게 해주시옵소서. (회중 아멘) 믿습니까. (회중 아멘)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이 있습니다. (회중 아멘) 사람의 말재간이 지혜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닙니다. 군중을 몰고 다니는 그 군중 몰이가 시대를 바꾸는 게 아니에요. 눈물로 통곡할 수 있는 한 사람이면 족합니다. (회중 아멘) 오늘 이 밤에 사랑하는 우리 목사님들과 장로님들이 하나님과 심정이 통하는 그런 눈물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심정을 헤아리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회중 아멘) (우렁찬 박수) 목사장로회기도회 첫날 저녁 예배 때 번개가 치고 천둥이 울렸다. 하나님과 가련한 여인 한나의 심정을 전하는 송태근 목사의 천둥번개같은 말씀 외침에... 성경은 말씀한다. 너희는 먹되 풍족히 먹고 너희에게 놀라운 일을 행하신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 것이라 내 백성이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그런즉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있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되고 다른 이가 없는 줄을 너희가 알 것이라 내 백성이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같이 변하려니와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요엘 2:26-32 2026-06-12
G.CULTURE
-
[더굳뉴스] 전국대학생패션연합회 O.F.F., 창립 30주년 & 한불수교 140주년 기념 파리 패션쇼 성료
전국대학생패션연합회 O.F.F.(Off the Fixed idea of Fashion)는 지난 7월 8일과 9일 프랑스 파리에서 창립 30주년 기념 패션쇼 'Crossroads with O.F.F.'를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이번 행사는 O.F.F. 대학생들이 30년간 구축해온 패션쇼 제작 시스템과 청년 디자이너들의 창작 역량을 세계 무대에 선보이고 글로벌 협력 기반을 확대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또한 한불수교 140주년 기념 공식 행사로서 한국 청년들이 준비하고 창작한 패션쇼를 프랑스 파리의 글로벌 무대를 통해 선보임으로써, 공식 슬로건인 ‘창의, 기회, 연대’의 가치를 실현하는 양국 문화교류의 장이 됐다. 양일간 열린 행사에는 약 450명의 관람객이 참석했다. 주프랑스한국대사관과 한국문화원, 한국관광공사, KOTRA 파리지사, 멕시코와 그리스 대사관 관계자를 비롯해 디올(Dior), 샤넬(Chanel) 등 글로벌 브랜드 관계자와 인플루언서, ESMOD, Istituto Marangoni, IFM 등 파리 주요 패션학교 학생들이 함께했다. 이번 패션쇼를 계기로 출범한 오프패션문화협회는 O.F.F. 대학생 및 졸업생 140여 명이 프로젝트의 전 과정을 직접 수행하며 국내 패션계와 해외 패션·문화·예술 분야를 잇는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의 첫걸음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첫날 갈라쇼는 폭염으로 인해 국립 기메 동양 박물관 루프탑에서 크메르 전시관으로 장소를 옮겨 개최됐다. 파리에서 활동 중인 한국전통무용가·안무가 안제현의 궁중정재 ‘춘앵무’를 한국 유물에 얽힌 스토리를 담아 한국 전시관을 무대로 인스타그램 라이브를 통해 행사를 시작했다. 이어 크메르 관의 힌두교와 대승불교 문화를 담은 조각상들을 배경으로 유지영의 오프닝 패션쇼가 진행되었다. 만개한 꽃이 가장 아름답게 피어나는 순간을 모티브로 생명력과 희망,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오뜨 꾸뛰르 의상 18벌을 선보이며, 후배들의 첫 해외 무대를 축하하고 응원하는 의미를 담아 선배 디자이너로서 한국 패션의 미래와 세대 간 문화의 계승을 응원하는 상징적인 무대를 준비했다고 한다. 이어 고교패션컬렉션 출신 고등학생 디자이너와 O.F.F. 대학생 디자이너들의 작품 총 42벌이 공개됐으며, 24명의 한국 시니어 모델이 런웨이에 올라 세대와 문화를 아우르는 '조우와 계승'이라는 갈라쇼의 주제를 상징적으로 구현했다. 7월 9일 American Church in Paris에서 열린 메인 패션쇼는 'Crossroads'를 주제로 한국과 프랑스의 전통과 현대를 연결하는 무대로 꾸며졌다. 한국에서 시작된 청년 디자이너들의 꿈이 파리를 거쳐 세계로 확장되는 과정을 담아, 한국 전통문화의 미학과 현대적 감각, 프랑스 문화에서 받은 영감을 하나의 런웨이 위에 풀어냈다. 고딕 양식의 교회와 스테인드 글라스를 배경으로 총 44벌의 창작 의상이 공개됐으며, 한국 청년 디자이너들의 다양한 창작 역량을 선보였다. 현지 관람객들은 "한국의 여러 대학 학생들이 하나의 무대를 위해 협업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는 반응을 보이며 학생 디자이너들의 창의성과 완성도를 높이 평가했다. O.F.F. 출신 졸업 회원들 역시 30년 만의 첫 글로벌 패션쇼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고, 피날레 무대에 등장한 90여명의 O.F.F. 후배들을 통해 깊은 감동을 느꼈다고 전했다. 패션쇼 이후 이어진 양일간의 애프터 파티 역시 현지 관람객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기메 박물관 내 한식 레스토랑 한옥 MiSSO의 이용경 대표가 행사 케이터링을 지원하며 한국의 맛을 프랑스 현지에 소개했다. 패션쇼에서 한국의 디자인을 경험한 뒤, 한국 음식·술 문화를 함께 즐기는 프로그램이 이어지며 “패션쇼를 넘어 하나의 한국 문화 축제를 경험한 것 같다”라는 긍정적인 반응이 이어졌다. 한편 이번 프로젝트는 오프패션문화협회 주최로 한국섬유산업연합회, 한국패션협회, 재불경제인연합회, 코닥어패럴, 알리앙스 프랑세즈 강남, 자노메(JANOME), 라이온미싱, 에듀컴, 롬앤(rom&nd), 솔트앤드라이트, MY-KARE 등 국내외 기관과 기업들의 후원 및 협찬으로 진행됐다. 또한 이번 프로젝트의 성과를 기록하고 청년 디자이너들의 글로벌 활동을 이어가기 위해 오는 7월 20일까지 텀블벅 크라우드펀딩 (tumblbug.com/offparis30)을 진행 중이다. 펀딩을 통해 조성된 후원금은 프로젝트 아카이브 제작과 향후 대학생·청년 디자이너들의 국제 교류 및 글로벌 패션 프로젝트 운영에 활용될 예정이다. O.F.F.는 이번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대학생과 청년 디자이너들이 직접 기획하고 참여하는 글로벌 패션 프로젝트를 지속적으로 추진하며 국제 문화교류와 K-청년 패션의 해외 진출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이어갈 계획이다. 2026-08-06
-
[더굳뉴스] 유지영 디자이너 _한불수교 140주년 기념 패션쇼 참가
4월 30일 메이퀸 엘리아나호텔 5월 15일 워커힐 비스타홀 PGKFW 2026 S/S FRANKERS GLOBAL FASHION WEEK 7월 8일 프랑스 국립박물관 기메 HAUTE COUTURE FASHION SHOW 유지영 디자이너는 이번 컬렉션을 이렇게 표현했다. 한국의 정서를 담아낸 두 사물, ‘수세미’와 ‘항아리’에서 시작된다. 수세미는 그릇을 닦는 가장 낮은 자리의 도구이고, 항아리는 비우고 담아내는 그릇이다. 이 두 사물이 지닌 ‘비움’과 ‘반복’의 철학을 패션의 언어로 끌어올린다. 원단은 해체되어 수세미의 섬유적 질감으로 재구성되고, 패턴은 항아리의 둥근 곡선으로 완성된다. 닦고, 덜어내고, 다시 쌓아가는 과정은 단순한 제작이 아니라 형태를 완성해가는 시간의 축적이다. 가장 낮은 자리에서 시작된 사물은 이 무대 위에서 가장 높은 형태로 올라서며 화려한 빛을 받는다. 이번 작업은 보잘것없던 사물이 하나의 상징으로 전환되는 순간을 보여주는 하나의 패션적 선언이다. 이 무대는 다가오는 7월 파리에서 펼쳐질 한국적 미학의 확장을 위한 시작이다. 유지영 디자이너 동양의 샤넬, 진정한 오뜨꾸뛰르 유지영 디자이너는 "패션은 옷이 아니라, 한시대의 품격을 만드는 일이다."라고 말한다. 특히 그녀는 수십 명의 시니어 모델들을 스타일링 하며 어떻게 하면 더 우아하고 아름답게 무대 위에서 피어날 수 있는지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그들이 자기 삶을 발견하고 아름답게 만개하기를 바란다. 4월 30일부터 메이퀸 엘리아나에서 시작되는 패션쇼는 5월 15일 워커힐 비스타홀, 7월 8일 프랑스 국립박물관 기메(MUSEE GUIMET, PARIS)에서 마무리된다. 2026-04-13
-
[더굳뉴스] 제이액터스, 뷰티·헬스케어 기업 나오벨르 비액티브 홍보모델 공개 오디션 개최
- 외모가 아닌 ‘스토리와 존재감’ 중심의 모델 선발 - 일상 속 통증 케어를 위한 신개념 라이프 스타일 크림- 바르는 순간, 휴식과 회복을 동시에 경험 제이액터스(J-ACTORS)가 새로운 개념의 뷰티 모델을 발굴하기 위한 ‘비액티브 뷰티 모델 공개 오디션’을 개최했다. 이번 오디션은 기존의 정형화된 외모 중심 모델 선발 방식에서 벗어나, 개인의 삶과 태도, 내면의 아름다움을 기반으로 한 ‘비액티브(Non-Active) 뷰티’라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번 오디션에서 합격한 모델은 나노테크 기반 뷰티·헬스케어 기업 나오벨르와 후원 계약을 맺고 모델로 활동을 한다. 이번 후원 계약에 따라 모델들은 나오벨르의 기능성 스포츠·관절 케어 제품인 ‘비액티브(B:Activ) 나노 관절 스포츠크림’의 공식 홍보모델로 활동한다. 비액티브 나노 관절 스포츠크림은 나오벨르가 보유한 초미세 나노 리포좀 전달 플랫폼 기술을 적용한 제품이다. 모델들은 직접 제품 사용 경험을 바탕으로 제품의 효능과 브랜드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계획이다. 이번 제품은 단순 기능성 크림을 넘어 콘텐츠와 결합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확장 전략의 핵심 아이템으로 기획되었다. 특히, ● 시니어 라이프스타일 시장 공략 ● 라이브 커머스 기반 판매 확대 ● 브랜드 모델과 연계한 콘텐츠 마케팅 강화 를 통해 빠른 시장 확장이 기대된다. 나오벨르 관계자는 “통증 관리는 더 이상 특별한 시간이 아니라 일상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며 “비액티브 통증 마사지크림은 ‘관리하지 않아도 관리되는’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제안하는 제품”이라고 밝혔다. 2026-04-04
-
[더굳뉴스] 제이엑터스 런웨이 쇼 _글로벌 탑 모델쇼
2026-03-24
-
[더굳뉴스] 강영석 박사의 당뇨병 특효약
수련의 시절 당뇨병 치료의 명의로 소문나신 교수님의 진료실에 들어갈 기회가 있었다. 그 때만해도 대형병원이 많지 않기는 했지만 전국 방방곡곡에서 한두 달에 한 번씩 선생님을 뵙기 위해 몰려드는 환자들 때문에 진료실 앞은 발디딜 틈이 없었다. 교수님 옆에서 환자들 혈압을 재면서 틈틈이 교수님의 비방(秘方)이 무엇일까 엿보았는데, 쓰시는 약은 일반적인 당뇨약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하기야 비방이라는 것이 실제 있겠는가. 약이야 거기서 거기지. 그런데 특이한 점은 교수님께서 환자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환자들의 종아리를 일일이 주물러 보시는 것이었다. 여자 환자들의 다리를 조물조물 주무르실 때는 약간 민망한 감도 있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굉장히 중요한 진료의 한 과정이었다. 그것은 환자의 다리 근육을 측정하기 위한 것이었다. 근육은 혈당 조절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마치 경제 활동에 있어 은행 예금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된다. 밥을 먹고 혈액으로 흡수된 포도당은 바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여분의 포도당은 근육에 흡수되어 있다가 나중에 활동 시 필요하면 혈액으로 방출되어 사용되기 때문이다. 근육이 부족하다는 것은 우리가 돈을 벌어 예금하지 않고 바로바로 쓰는 것과 같다. 있을 때 흥청망청 쓰거나 버리다가 정작 필요할 때 돈이 없어 쩔쩔 매는 상황과 같은 것이다. 근육량이 적은 당뇨 환자는 많이 먹지 않아도 식사 후 혈당이 바로 확 올라가고 높은 혈당이 좀처럼 내려오지 않는다. 반대로 식사를 거르거나 활동을 좀 과하게 하면 당뇨약의 효과로 인해 혈당이 급격히 떨어지는 저혈당 증세도 자주 겪을 수 있다. 헬스클럽 같은 곳에 가 보면 체성분 분석이란 것을 해준다. 내 몸에 있는 근육과 지방량을 분석해서 좀 더 좋은 몸을 만들기 위한 조언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진료실에서 일일이 환자가 방문할 때마다 체성분 분석을 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쉽게 몸의 근육량을 측정해 보는 방법이 종아리를 만져 보는 것이다. 우리 몸 근육의 많은 부분은 엉덩이, 허벅지, 종아리 같은 하체에 많이 몰려있다. 피부가 얇고 지방이 적은 종아리 부분을 만져 보면 대략적인 체 근육량을 알아볼 수 있다. 그냥 운동 많이 하라고 말로만 하지 않고 일일이 종아리를 만져 보시면서 “왜 이렇게 약해. 운동을 많이 안했나보네. 많이 걸어요” 하셨다. 그런 선생님의 진료 방식은 굉장히 합리적이고 환자에게 운동의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치료 방법이었던 것이다. 매일 일정한 시간 걷는 것만으로도 혈당을 낮출 수 있다.필자의 환자분 중 60대 후반 여성분이 있었다. 당뇨병에 걸린 지 20년이 되었고, 여러 약제를 사용해 보았지만 몇 달 이상 혈당이 적절 수준으로 조절되지 않았다. 보통 이런 경우는 췌장에서 인슐린을 만드는 기능이 많이 떨어졌다고 보고 인슐린 주사 요법을 권유한다. 하지만 환자 분은 완고하게 인슐린 치료를 거부하고 본인이 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통해 최선을 다 해 보겠다고 했다. 하지만 필자의 경험으로는 갑자기 생활 습관을 현저하게 개선시켜서 혈당을 떨어뜨리는 것이 실제로는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다. 공부 못하던 학생이 갑자기 뜻한 바가 있어 공부에 열중해 성적이 비약적으로 오르는 경우도 있지만 실제로는 그런 경우가 매우 드문 것처럼. 그런데 3개월 정도 지난 후 그 여자 환자분의 혈당은 식전, 식후 평균 100mg/dl 정도씩 떨어졌고 적절 수준의 혈당이 지속적으로 유지되었다. 비결을 물어보았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한 두 시간씩 근처 학교 운동장을 돌았어요. 직장 다녀와서 피곤해 쓰러질 것 같아도 걸었지요. 지난번 태풍 왔을 때는 우산 쓰고 죽기 살기로 걸었구요. 무릎 관절이 아파서 운동하고 나면 눈물이 날 정도였는데, 그래도 계속 걷다보니 적응이 되었어요.” 그 분은 2년이 지난 지금까지 먹는 약으로 혈당 잘 조절되고 있고 복용하는 약의 개수도 줄였다. 종아리 근육은 나날이 탐스럽게 불어나고 단단해졌다. TV를 보다보면 인기 있는 걸그룹들의 늘씬한 다리를 보고 감탄한다. 하지만 진료실에서 그런 다리를 보면 잔소리가 튀어나온다. 필자는 당뇨병에 의한 합병증으로 투석 치료를 받는 환자분들을 많이 접하다보니 혈당 조절이 안 되는 당뇨 환자들을 보면 안타깝다. 그래서인지 어르신들 종아리를 주물러 보고 조선무 같은 탕탕한 알통이 잡히면 뿌듯한 느낌마저 든다. 당뇨병이 있다면 지금 당장 걸어보자. 시간이 없다면 시간을 만들어서라도 걸어보자. 혈당이 신통방통하게 떨어지고 건강에 자신감이 생기는 체험을 하게 될 것이다. 지속적으로 산소 마시는 달리기 신진대사 활성화, 혈압 떨어뜨린다.그러나 걷기를 더 오래, 자주 하면 달리기와 같은 효과 내지 않을까?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는 '걷기' 꾸준히 걷고, 시간 나면 뛰어라 우리는 건강을 위해 정기적으로 운동하라는 말을 숱하게 들어왔다. 달리기가 건강에 최고로 좋은 운동으로 등장한 것은 1970년대였다. 지속적으로 산소를 들이마시며 하는 운동 효과가 과학적으로 입증되고 나서부터다. 역기를 드는 것처럼 단박에 용을 쓰고 마는 것이 아니라 강도는 낮지만 산소를 계속 소모하는 운동이 신진대사를 활성화해 과잉 축적된 칼로리를 태우고 혈압을 효과적으로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규칙적으로 달리라는 권고가 나왔다. 의학은 항상 과학적 규범을 만들고 이에 따르게 하는 권력을 가지고 있다. 이후 일주일에 세 번 이상, 한 번에 최소 30분 이상 진땀나게 뛰라는 충고가 사람들 귀에 인이 박였다. 하지만 미국 하버드 의대 공중보건 분야의 일부 연구진은 달리기가 현대인에게 최적(最適)의 건강 권고안이라는 것에 의문을 가졌다. 그러고는 지난 30여 년간 걷기와 달리기를 놓고 어느 게 더 좋은지 논쟁을 벌여 왔다. 달리기가 심장 건강에 좋은 것은 변치 않는 사실이지만 걷기만으로도 달리기의 효과를 낼 수 있지 않느냐라는 궁금증에서 논쟁은 출발한다. 운동 효과 산출은 운동 강도와 지속 시간, 빈도에 의해 결정된다. 걷기가 달리기의 세기를 이길 수는 없다. 하지만 달리는 시간보다 더 오래 걷고, 더 자주 걷는다면 달리기와 같은 효과를 낼 수 있지 않을까? 이에 대한 대규모 분석이 이뤄졌다. 하버드대에는 하버드 졸업생 10만여명과 의사·간호사 등 의료인 10만여명의 건강 실험 풀(pool)이 있다. 일정 그룹을 반으로 나눠 한쪽에만 특정 조건을 주어 몇 년간 살아가게 한 후 그렇지 않은 그룹과 비교하여 어느 쪽이 건강에 더 좋은지를 알아내는 연구 시스템이다. 하버드 졸업생 1만200여명을 대상으로 20년간 이뤄진 연구에서 일주일에 9마일, 즉 약 1만4500m를 걸은 사람은 주로 앉아서 생활한 사람보다 사망률이 22%나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달리기의 효과와 유사했다. 논쟁에는 영국 런던대학이 지난 27년간 나온 걷기 효과 논문 4295개를 분석한 연구도 인용됐다. 46만명을 11년 동안 관찰하니 많이 걸은 사람에게서 심혈관 질병 위험도가 31% 줄고, 사망률은 32% 감소했다. 그들은 시속 3~4㎞ 속도로 일주일에 약 9000m를 걸었다. 중년에 평상시 생활을 반복하면 1년에 약 1㎏씩 체중이 늘어난다. 그런데 하루 걸은 시간이 총 30분이 넘으면 1년에 0.5㎏이 줄어든다는 연구도 나왔다. 이런 결과들이 체질마다 다를 수 있겠다 싶어서 하버드대는 쌍둥이에 대한 연구를 분석했다. 1만6000명의 쌍둥이를 대상으로 20년간 한 달에 여섯 번, 한 번에 30분 이상 걷게 했더니 거의 걷지 않고 산 쌍둥이 형제보다 사망률이 56%나 줄었다. 걷기 효과는 유전적 체질이 아니라 습관에 있다는 얘기였다. 달리기는 자신이 견딜 수 있는 최대 심박 수의 약 75%에 이르러야 최적 운동 효과를 낸다. 1분당 최대 심박 수는 통상 220회에서 자기 나이를 뺀 값이다. 나이가 50세면 170회가 최대 심박 수다. 그 정도까지 달리려면 워밍 업(warming-up) 시간이 필요하다. 속도를 시속 7㎞ 이상 내어야 하니 운동복으로 갈아입어야 하고, 운동화도 신어야 한다. 장소에 제한도 생긴다. 뛰고 나면 땀이 나니 쿨 다운(cool-down)이 필요하고 샤워도 해야 한다. 한 번에 30분을 달리려면 최소 1시간은 투자해야 한다. 웬만한 정성이 아니면 권고안을 지키기 어렵다. 그러다 보니 달리기를 하라는 권고안은 많은 현대인에게 죄의식을 심어줬다. 또 달릴 때 한쪽 무릎에 실리는 하중은 체중의 3배다. 이 때문에 운동 부상이 발생할 확률이 걷기보다 10~20배 높게 나온다. 반면 걷기는 참으로 편한 운동이다. 언제 어디서나 가능하다. 걸을 시간만큼만 시간을 투자하면 된다. 별도의 복장도 필요 없다. 달리는 시간보다 1.5배에서 2배 더 오래 걸으면 운동 효과도 비슷하다. 따라서 현대인의 생활을 감안한 가장 적합한 건강 교시(敎示)안은 걷기라는 것이 하버드대의 의견이다. 요즘 현대인의 삶은 포인트 생활이다. 커피 한 잔을 마셔도 포인트, 피자 한 판을 시켜도 쿠폰이 붙는다. 신용카드와 항공여행은 말할 것도 없다. 걷기에도 포인트가 있다. 하루 10분씩 세 번 걸으면 30분 효과에 버금간다. 일상의 작은 실천이 모여 누적 효과를 내는 것이다. 우리 몸에는 '미러 뉴론(mirror neuron·거울신경계)'이라는 것이 있다. 옆에 있는 사람이 하는 동작을 무의식적으로 따라서 한다. 술자리에서 옆 사람이 맥주잔을 들면 나도 모르게 잔을 들게 되는 배경이다. 당신이 걸으면 자녀도 걷고, 배우자도 걷는다. 심지어 반려견도 걷는다. 걷고, 시간이 나면 뛰어라. 당신의 신발이 유전자보다 당신의 수명을 결정하는 더 강력한 지표가 될 것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서로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따르라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15-18 2025-11-09 내과전문의 강영석
G.QT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에스겔Ezekiel
바벨론 포로들 에스겔Ezekiel은 주전 597년 바빌론으로 끌려간 포로들을 위해 사역을 했다. 반면 예레미야는 유다의 남은 사람들을 위해 사역을 했다. 이런 시가 있다. 상한 영혼을 위하여 _고정희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 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밑둥 잘리어도 새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라고 노래한 시를 읽으면 시인이 상한 영혼의 곁에 앉아 작은 목소리로 아픈 영혼들을 위로하는 것 같다. 이 시는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라는 이사야 42장 3절의 말씀과 겹친다. 시인은 하나님을 모르는 절망이라는 것이 얼마나 이쁜 우매함인가라고 노래했다. 선지자 에스겔은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잡을 손 하나 같이 오고 계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소망을 전했다. 주전 597년 느부갓네살이 유다를 두 번째 공격했다. 그때 에스겔은 10000명의 포로를 바빌론으로 강제 이송하는 무리에 섞여 끌려왔다. 예루살렘이 멸망한 5년 뒤 주전 592년 그는 하나님의 선지자로 부르심을 받았다. 예레미야처럼 에스겔도 선지자로 부르심을 받은 제사장이었다. 선지자로서 에스겔의 사명은 바빌론에서 포로로 잡혀 사는 유대인의 상한 영혼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에스겔은 하나님의 영광을 강조했고 하나님의 명예를 존중했다. 유다 백성이 하나님의 영광과 명예를 존중했다면 유대인이 그들의 적 앞에서 굴욕을 당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것이 심판이든 축복이든 하나님의 모든 일은 주의 거룩하심에서 비롯되고 주의 이름을 위하여 행해진다. 2026-10-11 교보.알라딘.예스24 전자책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 예레미야 애가Lamentations
선한 사마리아인 예레미야 애가Lamentations는 5편의 시로 된 슬픈 마음을 읊은 시가이다. 주전 586년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한 슬픔을 표현한 것이다. 슬픔으로 예레미야의 마음이 가리가리 찢어졌다. 그의 비탄은 하나님의 슬퍼하시는 마음을 드러낸다. 이런 시가 있다. 송아지가 아프면 _손동연 송아지가 아프면 온 식구가 다 힘 없제 외양간 등불도 밤내 잠 못 이루제 토끼라도 병나면 온 식구가 다 앓제 순덕이 큰 눈도 토끼 눈처럼 빨개지제 이 동시의 송아지와 토끼는 단순한 가축이 아니다. 송아지가 아프면 온 식구가 다 힘이 없다. 토끼가 병이 나면 온 식구가 함께 앓는다. 송아지와 토끼는 어린 화자의 친구이자 온 식구의 생계를 유지시켜주는 삶의 토대다. 어린이들에게 동물들은 자신들의 분신이다. 그들은 함께 아프고 함께 웃는다. 그렇듯 하나님께서도 그의 백성은 자신의 분신과 같으시다. 하나님도 그의 백성과 함께 아프시고 함께 웃으신다. 손동연 시인은 농부 아들이 보는 아버지의 모습을 이렇게 그린다. 땡볕 불볕에도 모자를 안 쓰시네 벼가 타들어간디 나 혼자만 어떻게 소낙 갈대비에도 우산을 안 쓰시네 벼가 살아나는디 이런 단빌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도 그와 같으시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징계하셔야만 했다. 그것이 하나님을 슬프시게 했다. 죄는 희생이 크다. 하나님은 죄를 벌하셔야만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는 결코 멈추시는 법이 없다. 하나님의 백성이 회개하고 돌아설 때 하나님은 그들을 구원하고 회복시키신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그의 슬픈 노래의 여기저기에서 회복의 믿음과 구원의 소망을 표현한다. 이것이 예레미야 애가의 주요 교훈이다. 2025-10-04 교보.알라딘.예스24 전자책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예레미야Jeremiah
파라오 예레미야Jeremiah는 주전 627년부터 582년까지 이스라엘의 마지막 40년간 유다에서 활동을 했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성실하게 전했다. 그러나 그는 유대 백성이 바빌론으로 사로잡혀 끌려가고 예루살렘과 성전이 파괴당하는 국가의 멸망을 지켜봐야 했다. 그는 자신의 깊은 슬픔을 예레미야 애가에서 절절하게 표현했다. 예레미야는 선지자로 부름을 받은 제사장이었다. 또한 그는 오만한 왕들과 거짓 선지자들과 위선적인 제사장들에 맞서기 위해 부름을 받은 하나님의 종이었다. 그는 용감한 사람이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마음이 가리가리 찢긴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를 눈물의 선지자라고 부른다. 예수님이 세상에 계셨을 때 사람들은 주님을 예레미야와 동일시했다. 예레미야의 삶은 쉽지 않았다. 그의 활동은 성공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에게 충실했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었다. 이런 시가 있다. 흔들리는 마음 _임길택 공부를 않고 놀기만 한다고 아버지한테 매를 맞았다 잠을 자려는데 아버지가 슬그머니 문을 열고 들어왔다 자는 척 눈을 감고 있으니 아버지가 내 눈물을 닦아 주었다 미워서 말도 안 할려고 했는데 맘이 자꾸만 흔들렸다 아이를 때리는 매를 아이에게 대는 순간 후회는 이미 부모의 몫이다. 이 시의 아버지 마음도 그러했으리라. 아버지는 아이가 공부를 하지 않고 놀기만 한다고 매를 댔다. 매 맞은 아이는 아마도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으리라.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된 얼굴로 아이는 잠을 청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얼굴을 한 채 한 아이가 잠을 청하고 있다. 아버지는 자는 척 눈을 감고 있는 아이에게 다가가 가만히 눈물을 닦아 준다. 아이는 아버지의 손길을 느끼며 미워서 말도 안 하려던 마음이 흔들린다. 매를 맞은 기억은 어느새 저만치 사라졌다. 그 어떤 것도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지울 수 있는 것은 없다. 아버지와 아들은 영원하다. 예레미야는 그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하여 많은 비유를 창안한 상상의 대가였다. 그의 예언을 읽을 때 마음의 영상을 사용하여 예레미야가 말하는 비유와 의미를 보도록 하라. 그리고 선지자의 감정을 이따금 솔직하게 털어놓는 개인적인 속말도 눈여겨보도록 하라. 하나님께서도 자신의 자녀 이스라엘 백성이 잘못했을 때 이 시의 아버지 같으셨을 것이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가리가리 찢기신 마음에 대해 설교하는 것처럼 자신의 아픈 마음을 드러낸다. 2026-09-27 교보.알라딘.예스24 전자책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_ 이사야Isaiah
이집트 노예 이사야Isaiah는 66장인데 두 언약처럼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신구약 전체 성경과 비교될 수 있다. 구약 성경은 39권으로 이루어져 있고 신약 성경은 27권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첫째 이사야 1장에서 39장까지의 옛 언약 부분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유다의 죄를 비난하고 다가올 심판을 경고한다. 둘째 이사야 40장에서 66장까지의 새 언약 부분에서 이사야는 유대 민족이 바빌론의 포로에서 풀려날 구원을 예언한다. 두 언약의 전체를 통해 이사야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왕국의 설립을 선포한다. 첫 부분은 율법과 비난을 주로 진술한다. 반면에 두 번째 부분은 은혜와 영광스러운 구속을 강조한다. 이런 시가 있다. 풀 _김수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풀은 이 세상에서 제일로 흔하다. 풀은 자꾸자꾸 돋는다. 비를 만나면 비를 받고 눈보라가 치면 눈보라를 받는다. 한 계절에는 푸르고 무성하지만 한 계절에는 늙고 병든 어머니처럼 야위어서 마른 빛깔 일색이다. 그러나 이 곤란 속에서도 풀은 비명이 없다. 풀은 바깥에서 오는 것들을 긍정한다. 풀은 낮은 곳에서 유독 겸손하다. 풀은 둥글게 휘고 둥글게 일어선다. 느리지만 처음 있던 곳으로 되돌리는 불굴의 힘을 풀은 갖고 있다. 풀은 발밑까지 누워도 발밑에서 일어선다. 바닥까지 내려가 보았으므로 풀은 이제 벼랑을 모른다. 이사야는 풀 같은 선지자였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면 그것을 전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언제나 일어섰기 때문이다. 이사야서를 읽을 때 국제적인 갈등으로 요동치고 국가의 정치적 부패와 종교 지도자들을 포함한 백성들의 종교적 부패를 냄새 맡게 될 것이다. 당시는 국제적인 긴장이 높은 시기였다. 이집트, 시리아, 바빌론, 앗수르, 북 왕국 이스라엘 등이 남 왕국 유다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유다 왕국의 지도자들은 전쟁을 피하기 위하여 아슬아슬한 줄타기 외교를 벌이고 있었다. 이사야 선지자는 유다 왕국의 지도자들에게 정치를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믿고 그의 말씀을 따르라고 경고했다. 지도자들은 듣지 않았다. 결국 유다는 바빌론에 포로로 사로잡혀 갔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방인에게 포로로 잡혀 고생하는 유대 백성들을 인도하고 위로했다. 선지자 이사야의 이름은 '주는 구원이시다' 라는 뜻이다. 선지자는 그리스도가 오시기 700년 전에 예언했다. 이사야는 종교가 인기는 있었지만 영적이고 신앙적이지는 않았던 시기에 선지자 활동을 했다. 당연히 영적인 이사야는 권력과 부를 가진 자들에게는 인기가 없었다. 전하는 말은 므낫세 왕이 이사야 선지자를 톱으로 켜 죽였다고 한다. 당시 성전에서 일하는 성직자들은 형식적일뿐이었다. 나라 전체가 타락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늘 날 하시는 것처럼 그 때도 하나님의 신실한 자들을 남겨 두셨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면 그것을 전하기 위해 언제나 일어서는 풀 같은 이사야 선지자를 본받는 주의 종들을 준비해 두셨다. 2026-09-20 교보.알라딘.예스24 전자책
-
[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아가Song of songs
아담과 하와, 뱀 아가Song of songs는 솔로몬의 노래로 알려져 있지만 본래 남녀의 사랑 시집이다. 첫 절에서 나온 이 책의 제목은 여러 개다. 노래들 중의 노래Song of Songs, 솔로몬의 노래Song of Solomon, 아가Canticles 등이다. 첫 번째 제목, 노래들 중의 노래Song of Songs 는 최상의 것을 표현하는 히브리어 방식이다. 즉 '가장 뛰어난 노래'라는 뜻이다. 두 번째 제목, 솔로몬의 노래Song of Solomon는 원작자를 표시한다. 세 번째 제목, 아가Canticles는 라틴어 번역을 따른 것으로 노래들이나 찬송가를 의미한다. 한글 성경의 제목 '아가雅歌'는 세 번째 제목을 따른 것으로 '우아한 노래'라는 뜻이다. 이런 시가 있다. 두 사람 _아파치족 인디언들의 결혼 축시 이제 두 사람은 비를 맞지 않으리라 서로가 서로에게 지붕이 되어 줄 테니까 이제 두 사람은 더 이상 외롭지 않으리라 서로가 서로에게 동행이 될 테니까 이제 두 사람은 두 개의 몸이지만 두 사람의 앞에는 오직 하나의 인생만이 있으리라 이제 그대들의 집으로 들어가라 함께 있는 날들 속으로 들어가라 이 대지 위에서 그대들은 오랫동안 행복하리라 유대교 전통은 이 책이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묘사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아가서가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타낸 것으로 본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5장 25절에서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말씀한다. 아가서의 줄거리는 비천한 시녀에 대한 솔로몬 왕의 사랑이 중심이다. 구애는 결혼으로 이어진다. 그 뒤 부부간의 사랑의 즐거움과 시련을 다룬다. 아가서는 남편과 아내의 사랑에 대한 참으로 아름다운 노래이다. 유대인은 부부생활을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선물로 생각한다. 유대인에게 부부생활은 결혼에 대한 진실한 헌신을 약속하는 거룩한 서약의 표현이다. 결혼 생활에는 부부 간의 친교를 필요로 한다. 솔로몬이 노래하는 아가서는 기독교에서 신자와 구세주의 사랑 관계를 표현하는 시이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주님과 더 깊은 친교를 나누고 즐기기 위하여 일상의 사소한 일들을 신경 쓰지 말라고 요청하신다. 이 친교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감정을 자제하는 의지가 필요하다. 그러한 주님과의 친교는 우리를 더 행복하고 거룩한 생활로 이끌어 줄 것이다. 2026-09-13 교보.알라딘.예스24 전자책
G.BOOK
-
[더굳뉴스] 한기승 배광식 박사 헌법해설서
2025년 3월 24일 헌법재판소가 한덕수 국무총리에 대한 탄핵 청구를 기각했다. 지난해 12월 27일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 주도로 탄핵소추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지 87일 만이다. 이에 따라 한 총리는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직무에 복귀했다. 헌법재판소는 24일 서울 종로구 헌재 대심판정에서 열린 한 총리 탄핵 심판에서 이같이 선고했다. 문형배, 이미선, 김형두, 정정미, 김복형 재판관 등 5명은 기각 의견을, 정계선 재판관은 인용 의견을 냈다. 정형식, 조한창 재판관 등 2명은 각하 의견을 냈다. 당초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이 나올 것이란 전망이 나왔지만 재판관들의 의견은 엇갈렸다. 각 나라 헌법을 보면 그 나라가 과거 어디서 넘어졌고 어떻게 다시 일어섰나를 짐작할 수 있다고 한다. 헌법은 역사 기록 보관소와 닮았기 때문이다. 독일은 ‘헌법’이란 말 대신 ‘기본법’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1949년 제정된 기본법 1조 1항은 ‘인간의 존엄성은 훼손할 수 없다. 모든 국가의 권력은 이를 보호할 의무를 진다’고 돼 있다. 20조는 국가의 정체(政體)·주권·권력 분립·정부 구성 원칙을 규정하고 20조 4항에선 ‘이런 국가 질서를 파괴하는 자(者)에 대해 다른 대응 수단이 없을 때 독일 국민은 저항할 권리를 가진다’고 했다. 국민 저항권을 이렇게 헌법에 확실하게 못 박은 사례는 독일뿐이다. 히틀러 나치 시대 같은 헌정(憲政) 파괴와 인권 유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이것으로도 불안했던지 ‘기본법 1조의 인간 존엄성과 20조 국가 구성 원칙 등에 어긋나는 기본법 개정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다시 자물쇠를 채웠다. 세계 1차 대전에서 독일이 패배한 후 1919년 헌법학의 세계 권위들이 머리를 맞대고 만든 게 바이마르 헌법이다. ‘노동 3권’ ‘양심적 병역 거부 권리’ ‘예술가의 저작권 보호’ 등 진보적 사상이 망라된 ‘호화로운’ 헌법이었다. 그러나 바이마르 공화국은 총리가 수시로 교체되는 정치 불안정에 시달렸고 대통령에게 부여한 헌법 48조 비상대권이 히틀러 집권의 문(門)을 열어주는 역설(逆說)을 낳았다. 기본법은 후임 총리를 먼저 선출하지 않고선 현직 총리를 불신임하지 못하도록 하는 ‘건설적 불신임 제도’를 도입해 정치 안정을 이뤘다. 독일의 경우에서 보듯 한 나라 경제 부흥은 정치 안정이 뒷받침해 가능했고, 정치 안정은 헌법의 결함을 적극적으로 보수(補修)했기 때문에 이뤄졌다. 87년산(産) 헌법을 조종할 면허와 능력을 가졌던 대통령은 노태우·김영삼·김대중으로 대(代)가 끊겼다. 그 후 대통령들은 오토바이 운전하는 2종 원동기 면허증을 따고 대형 화물 트럭을 몰았으니 나라가 성할 리 없다. 윤석열을 운전석에서 끌어내리고 이재명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나라에 헌법 전문가라곤 유진오(俞鎭午) 고려대 교수 단 한 사람뿐이었던 1948년 정부 수립 당시 제헌의회는 트럭 짐칸을 타고 출근해 아침 10시부터 자정까지 헌법 조문에 매달려 6월 1일 헌법 제정에 들어가 7월 12일 나라의 설계도인 제헌 헌법을 통과시켰다고 한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87년산 헌법으로 정쟁을 일삼는 우리 대한민국 현실은 그 헌법으로 어디로 가고 싶은지’를 물어야 할 것이다. 그렇듯 우리 총회를 위해 2019년 제106회 총회장 배광식 목사와 호남의 별 한기승 박사가 협력해 교단 헌법해설서를 저술했다. 서문에서 그 입장과 내용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본「헌법해설서」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합동) 헌법에 대한 해설서입니다. 대한예수교장로회는 웨스트민스터 헌법을 기초하여 장로교회의 표준이 되는 교회헌법을 제정하고 시행함으로 개혁교회의 특징인 헌법주의(constitutionalism)를 지향하여 왔습니다. 교회의 목양이 근육이라면 교리와 정치는 교회의 골격과 같은 것입니다. 근육과 골격이 붙어 세워져야만 온전한 몸이 되듯이 주님의 몸인 교회도 목양과 정치가 바르게 세워지고 시행되어야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중략) 한국교회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선교 초기부터 교회헌법 제정을 위해 여러모로 심혈을 기울여 왔음을 보게 됩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독노회(1907년)시에 신경과 규칙을 제정하였습니다. 그리고 만국장로회헌법을 번역하는 등 수많은 노력 끝에 드디어 제11회 총회(1922년)에서『죠선예수교쟝로회졍치』가 채용 가결되었습니다. 그 후 총회는 수차례 역동적인 헌법 개정을 통해 목회 현장을 고려한 법 적용의 적합성을 높여 왔습니다. 그런데 많은 목회자들과 교회 직원들에게 있어서 헌법의 내용은 가장 기본적인 법규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해석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중략) 본 헌법해설서는 제94회기의 헌법 해설의 방향을 기초로 하여 본 교단의 헌법 해설과 개정을 위해 노력해 오고 목회하면서 헌법을 적용해 본 경험들과 신학대학원에서 강의한 내용을 넣어, 실제적이며 학문적인 해설이 되도록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본서는 헌법의 해석을 돕는 참고 도구일 뿐입니다. 따라서 해석에 있어서 이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중략) 본서는 교회 헌법의 분류(신조, 성경 소요리문답, 성경 대요리문답, 정치, 권징조례, 예배모범)중에서『정치』와『권징조례』만을 해설하였습니다. 따라서 본서의 서명에서『헌법』이란 좁은 의미 『교회정치, 교회권징』을 의미합니다. 정치 부분은 최근까지 헌법 개정의 결과와 총회 결의를 반영하려고 노력하였으며, 권징조례의 해설은 절차법적인 성격으로 그 적용을 알기 쉽게 해설하였습니다. 헌법 전문과 함께 해설을 구분하여 편집하였으며 완역본「교회 정치문답 조례」의 문답번호를 함께 수록하여 참조 하였습니다. 권징서식을 수록함으로 실제적인 필요에 부응하였고 색인표를 통해 본서의 주요 내용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중략) 오늘날 세계 개혁교회는 순전한 칼빈주의의 신학을 갖고 성장한 한국 장로교회를 놀라운 눈으로 주목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교회 헌법을 잘 지키고 발전시키며 목회의 구조와 질서를 교회 헌법 안에서 잘 구현할 때 더욱 큰 지도력을 발휘하게 될 것입니다. 본 해설서는 2017년 9월 18일 제102회 총회에서 정치 및 권징조례 개정안과 어린이세례 관련 내용을 헌법적 규칙과 예배모범에 포함하여 개정하기로 결의하고, 전국 노회에 수의한 결과를 2018년 9월 10일에 회집된 제103회 총회에서 공포함에 따라, 2015년 5월에 발행한『헌법해설서』를 개정 증보판으로 발간하게 됐습니다. -저자서문 중에서 저자소개 배광식 박사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77회) 목회학,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교육학, 스코틀랜드 Aberdeen 대학원에서 장로교 교회사, 계명대학교 대학원에서(Ph.D) 장로교 직제를 연구하였다.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8년) 정치·헌법 강의를 하였고 대신대학교에서(10년) 강의전담 교수를 역임하였다. 전, 총회 헌법해설집 발간 위원회(서기), 총회 헌법개정 위원회 위원장, 총회 재판국장, 총신대학교 재단이사로 있었다. 현, 총회 세계교회 교류협력위원회 전문위원장, 울산 대암교회(25년) 원로목사. 웨스트민스터대학원대학교 총장 저서 | 장로교 정치 통전사(2011) 공역 | JA 하지 저. 교회 정치문답조례(2011) 공저 | 헌법해설서(2015) 개혁교회 신앙고백(2017) 한기승 목사 개신대학원 대학교 M.Div.eq (82회)와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M.Div.eq (102회)에서 목회학, 전남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조선대학교 대학원에서 (LL.D) 법학을 연구하였다. 전, 총회 헌법개정위원회 부위원장, 총회 공천부 및 정치부 서기, 총회 재판국원, 총신대학교 재단이사, 광주지방 검찰청 형사조정위원으로 있었다.광신대학교 강의전담 교수 현, 광주중앙교회 원로목사. 저서 | 비전의 사람 영광의 가문(2010), 믿음의 사람 복된 가문(2013) 공저 | 교회 법률상식(2014), 교회재판 이렇게 한다(2015), 개혁교회 신앙고백(2017) 등이 있다. 목차 저자서문 6 교회 헌법의 분류 10 헌법 서문 12 제1부 정치 교회 정치의 의의 20 헌법정치의 기본 체계 22 총론 23 제1장 원리 45 제2장 교회 60 제3장 교회 직원 71 제4장 목사 90 제5장 치리장로 115 제6장 집사 129 제7장 교회 예배 의식 137 제8장 교회 정치와 치리회 148 제9장 당회 158 제10장 노회 184 제11장 대회 206 제12장 총회 216 제13장 장로 집사 선거 및 임직 228 제14장 목사 후보생과 강도사 258 제15장 목사 선교사 선거 및 임직 276 제16장 목사 전임 307 제17장 목사 사면 및 사직 312 제18장 선교사 322 제19장 회장과 서기 327 제20장 교회 소속 각 회의 권리 및 책임 337 제21장 의회 341 제22장 총회 총대 358 제23장 헌법 개정 363 제Ⅱ부 헌법적 규칙 제1조 미조직 교회 신 설립 370 제2조 교인의 의무 372 제3조 교인의 권리와 소원 375 제4조 주일 예배회 378 제5조 학습 383 제6조 성례 384 제7조 교회의 선거 투표 387 제8조 무임집사 391 제9조 무임장로 392 제10조 권찰 394 제11조 혼 상례 395 제12조 병자에게 안수 397 제13조 문서비치 398 제Ⅲ부 권징 조례 제1장 총론 402 제2장 원고와 피고 407 제3장 고소장과 죄증 설명서 417 제4장 각 항 재판에 관한 보통 규례 421 제5장 당회 재판에 관한 특별 규례 440 제6장 직원에 대한 재판 규례 445 제7장 즉결 처단의 규례 456 제8장 증거조 규례 465 제9장 상소하는 규례 479 제10장 이의와 항의서 512 제11장 이명자 관리 규례 516 제12장 이주 기간에 관한 규례 522 제13장 재판국에 관한 규례 525 제14장 치리회 간의 재판 규례 550 제Ⅳ부 권징 사례별 해설 555 제Ⅴ부 권징 서식 675 부록 색인표 721 책 속으로 교회 헌법의 분류 실정법으로 교회 헌법은 크게 신조, 성경 소요리문답, 성경 대요리문답, 정치, 권징조례, 예배모범 등이다. [신조]는 12항목으로 구성된 대한예수교장로회의 교리적 표준으로써 교회의 직원들이 승인해야만 하는 신경과 신앙고백이다. [성경 대·소요리문답]은 성경을 문답식으로 밝히 해석한 책으로 전통적인 교회 교육의 방식으로 서구교회에서는 ‘캐터키즘’(catechism)이라고 한다. [정치]는 교회의 기본적 정치구조, 직원의 인사(人事), 교회의 조직과 관리에 관한 실체적이면서도 절차적인 법이다. [권징 조례]는 교회의 권징을 구체적으로 시행하는 소송법이다. [예배 모범]은 교회의 예배를 어떻게 드려야 하는지에 대한 개괄적이고 포괄적인 법이다. 장로교회는 성경적 교회의 권위와 질서를 중요하게 여긴다. 따라서 장로교회는 역사적으로 교회의 근간을 규정하는 법을 제정하고 그 법에 기초하여 교회를 다스렸다. 장로교회가 채택한 헌법주의(Con-stitutionalism)는 1인 독재나 개인주의와 독립주의를 통한 ‘인(人)의 지배’를 배제하고 헌법에 근거하여 교회를 다스렸다. 그러나 교회에서 말하는 헌법은 국가의 헌법(Verfassung, consti-tution)처럼 교회의 질서를 규정하는 기본법만을 규정하지 않았다. 국가의 헌법은 국민의 공동생활의 질서를 구성하는 기본법이다. 이 기본 헌법 밑에 수많은 법률과 규칙을 통해 국가의 질서와 행정을 구현하고 있다. 그 반면에 교회 헌법은 교회의 통치권을 행사하는 방법인 정체(政體, polity)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절차법 내지 행정법까지 다양하게 교회의 신앙과 사역 그리고 생활을 규율하고 있다. - 11쪽 교회 헌법의 분류 중에서 헌법서문 본 총회의 헌법은 조선예수교장로회 공의회 시대(1901~1906)에 다음과 같이 헌장에 관한 준비를 하였다. 1901년 만국장로회 헌법 번역위원을 선정하였고, 1902년에는 헌법 준비위원과 노회 규칙위원을 선정하였다. 1904년에는 웨스트민스터 헌법 중 일부를 역간하여 소요리문답 5천부를 출판하였다. 1905년에는 교회 신경을 공의회가 의정 채용하게 되었다. 그 후 1907년 9월 17일 평양 장대재교회에서 소집된 대한예수교장로회 제1회 노회(독노회)시 신경과 규칙을 정식 채용한 것이 최초의 헌장이었다. 1912년 9월 1일 평양여자성경학원에서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가 조직된 후 1917년 9월 1일(토요일) 서울 승동교회에서 회집된 제6회 총회에서 웨스트민스터 헌법 책을 번역하여 총회가 작정한 대로 편집하여 국한문으로 출판하였다. (중략) 2017년 9월 18일 익산 기쁨의교회에서 회집된 제102회 총회에서는 제101회기 헌법개정위원회가 제안한 정치 및 권징조례에 대한 개정안과, 유아세례 연구위원회에서 보고한 어린이세례 관련 내용을 헌법적 규칙과 예배모범에 포함하여 개정하기로 결의하고, 전국노회에 수의한 결과를 2018년 9월 10일 대구 반야월교회에서 회집된 제103회 총회에서 공포함에 따라, 2015년 5월에 발간한 헌법해설서를 개정 증보판으로 발간하게 되었다. 이에 그간 수고하신 분들의 노고에 감사를 드리며, 이 헌법 책이 총회 안의 모든 지교회와 기관들에서 사용될 때 하나님의 크신 은총이 내리시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 -17쪽 헌법서문 중에서 성경은 말씀한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요 13:33-34 2026-09-25
-
[더굳뉴스] 전쟁과 재난의 시대 장창수 목사의 질문
한 젊은 작가는 한 신문 칼럼에서 기도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이제 내 힘으로 어쩔 수 없을 때 기도한다. 한없이 추락하던 어느 날엔 위로를 줄 단어를 찾기 위해 기도한다. 기도의 말이 하늘에 닿기 전, 우선 내 귀와 가슴에 닿기를 원한다. 시인 ‘타고르’는 “고통을 멎게 해달라는 게 아니라 그것을 극복할 용기를 달라”고 기도했다. 성공의 은혜가 아니라 “실의에 빠졌을 때 당신의 귀하신 손을 잡고 있음”을 알게 해달라고 말이다. 나는 이제 작가로 큰 업적을 남기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는다. 대신 매일 읽고 쓸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위해 기도한다.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분별하고, 이 길이 내 길이 아니라면 다른 길로 갈 수 있는 지혜를 바란다. 그렇듯 대구 대명교회를 우뚝 세운 원숙(圓熟)한 장창수 목사는 모든 문제의 답과 해결은 하나님의 질문에 있다는 글을 썼다. 삶과 신앙의 자리를 빛내는 하나님의 열여섯 가지 질문! 모든 문제의 답은 질문에 있다. 질문하는 이의 의도를 정확히 알 때 우리 인생에 찾아온 문제의 답이 풀린다. 우리는 인생이 던지는 질문들에 유연하기보다는 주저하고 고민하며 번뇌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 “신은 존재하는가”, “왜 내게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가” 등 인간 실존에 대한 철학적 질문부터, 갑작스런 사고나 죽음과 같은 이해할 수 없는 상황들까지 끝없이 몰아치는 인생의 질문들에 넉다운되기 일쑤다. 도무지 답을 알 수 없고 같은 질문에도 매번 당황한다. 나름 최선을 다해 왔고, 똑 부러지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왜일까? 왜 답을 찾지 못하는가? 장창수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사랑하고 그 안에 담겨 있는 복음의 정수를 전하는 일에 소명을 둔 목회자요, 설교가다. 그는 변질되지 않는 원초적 복음만이 길을 잃고 방황하는 영혼들을 하나님 품으로 인도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는다. 그만큼 그의 설교 속에는 한 영혼을 향한 목자의 간절함이 배어 있다. 긴박한 순간 하나님의 질문은 이렇게 시작된다 1. 관계를 지속하는 ‘회복의 질문’ “네가 어디 있느냐”(창 3:8-10). 2. 견고한 삶을 위한 ‘믿음의 질문’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창 16:6-11). 3. 존재의 의미를 깨우치는 ‘정체성의 질문’ “네 이름이 무엇이냐”(창 32:24-32). 4. 본질을 붙드는 ‘사명의 질문’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출 4:1-9). 질문이 있다면 아직 희망이 있다 5. 절망을 이겨 내는 ‘희망의 질문’ “네가 무엇을 보느냐”(렘 1:11-19). 6. 간절함을 이루는 ‘소망의 질문’ “네가 낫고자 하느냐”(요 5:5-15). 7. 은혜를 배우는 ‘용서의 질문’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욘 4:1-11). 8. 참된 고백을 요구하는 ‘결단의 질문’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마 16:13-17). 질문하는 이를 알면 답이 보인다 9. 신실한 마음을 묻는 ‘사랑의 질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요 21:15-20). 10. 창조주를 바라보게 하는 ‘고난의 질문’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막 4:35-41). 11.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는 ‘동행의 질문’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삿 6:11-18). 12. 능력의 주를 의지하는 ‘기적의 질문’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요 2:1-11). 답은 언제나 질문 속에 숨겨져 있다 13. 하나님의 때를 이루는 ‘약속의 질문’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창 18:9-15, 21:5-7). 14. 근심을 안심으로 채우는 ‘돌봄의 질문’ “어찌 다른 일들을 염려하느냐”(눅 12:22-32). 15. 무모함을 쓸모 있게 하는 ‘확신의 질문’ “너희 마음에 무슨 생각을 하느냐” (눅 5:17-26). 16. 성숙한 믿음을 이루는 ‘긍휼의 질문’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눅 10:30-37). 하나님은 인생들이 실패하고 힘들고 도저히 불가능한 현실 속에 있을 때 찾아오신다. 이것이 어리석은 인간이 만든 세상 종교와는 다른 점이다. ‘찾아오시는 하나님’이라는 문장은 우리 기독교를 잘 표현한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절망 가운데 있거나 문제 있는 인생을 찾아와 가장 먼저 ‘질문’을 던지신다. 성경에는 하나님과 인간의 수많은 만남이 기록되어 있다. 찾아오신 하나님은 그들에게 회복과 은혜를 주기 위한 첫 단초를 질문으로 시작하셨다. 신학을 시작한 초기에는 ‘하나님의 질문’에 대해 두 가지 의구심이 들었다. 하나는,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면서 왜 질문을 하시는가’였다. 또 다른 하나는, ‘하나님은 왜 문제와 아픔을 한 번 더 확인시키며 힘들게 하시는가’였다. 그러나 성경에 대한 깊은 이해와 말씀의 묵상을 통해 하나님의 질문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나님의 질문 속에는 인간이 가진 근본적인 문제와 답이 포함되어 있으며, 참으로 따뜻한 하나님의 마음과 위로 그리고 그분의 안타까워하시는 마음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전쟁과 재난으로 충격과 절망의 시대를 살고 있다.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실까?’를 묵상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인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고민과 묵상 중에 인간의 절망의 현장에 나타나 던지신 주님의 질문에 주목하게 되었다. 그동안 바라보았던 시각과는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고, 하나님의 질문 속에서 여전히 포기하지 않으시는 측량할 수 없는 은혜와 사랑을 느끼게 되었다. 하나님이 범죄한 인간에게 가장 먼저 하신 ‘네가 어디 있느냐’는 질문은 책망과 경고의 의미가 아니다. ‘네가 내 말을 어기고 선악과를 먹었으니, 너를 찾아내어 벌을 주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어긋난 길로 가는 자녀를 향해 ‘내 품으로 돌아오라’고 외치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사랑의 음성이다.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답을 요구하시는 질문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이미 그 답을 알고 계신다. 지금까지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았든지, 앞으로는 우리와 함께하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이다. 바로 ‘내가 너와 함께하고 있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음성인 것이다. 우리는 문제나 절망 속에서 하나님에게 집중해야 한다.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하나님만을 붙잡아야 한다. 그때에야 비로소 하나님은 우리를 찾아오시고, 새로운 인생을 살게 하시고, 삶의 문제 자체를 당신의 방법으로 해결해 주신다. 이것이 바로 야곱이 만난 하나님, 곧 ‘나에게 져 주시고, 문제 있는 나를 안아 주시고, 축복해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우리에게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을 때, 그 순간이 하나님을 찾아야 하는 시간이다. 능력이 없어도, 돈이 없어도, 건강이 없어도, 나이가 많아도 문제 될 것이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출 3:12)라고 모세에게 약속해 주셨다. 전능하신 엘로힘의 하나님이 당신의 지팡이를 손에 들려주시겠다는 것이다. 신앙의 모습은 ‘산을 오르는 신앙’과 ‘방주를 짓는 신앙’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산을 오르는 신앙이란, 신앙생활을 자신의 목적을 위해 하는 모습이다. 이러한 신앙은 그 수준이 높아 보여도, 하나님의 심판 때에 아무리 높은 산이라도 물에 잠겼듯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러나 방주를 짓는 신앙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신앙의 모습이다. 맨땅에 방주를 지어도 비가 오면 방주는 떠오르듯이, 고난 가운데서 더욱 성장하는 신앙인 것이다. 우리의 형편을 이미 알고 계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우리의 삶이 절망 속에 있을지라도, 주님은 우리에게 ‘너에게 무엇을 해주기 바라느냐’고 물으신다. 우리가 이 음성을 마음에 새길 때, 희망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를 찾아오시고, 지켜보시며, 물으신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때때로 성도들은 하나님을 자신의 장신구로 전락시킬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인 존재로 여기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도 그만, 안 해도 상관없다고 여기기도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는 비록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의 생각으로는 이해되지 않더라도 ‘예’라고 대답하는 순종이 필요하다. 예수님을 거부한 사람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는 예수님의 질문에 대답할 수 없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답은 ‘네가 믿고, 네가 만나고, 네가 체험한 예수가 누구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인생의 가장 중요한 질문인 동시에 인생의 돌파구가 되는 질문이기도 하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도 이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아무리 모태신앙이고 교회에 수십 년을 출석했다 해도 결코 구원과 죄 사함을 받지 못하면 천국에 갈 수 없다. 그리스도인 중에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가장 우선으로 사랑하느냐는 것이다. 다른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우선순위에 놓을 때 하나님은 큰 은혜를 베푸신다. 인간은 절망에 빠져 하나님을 잊은 채 살아간다. 오히려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이 더 안타까워하신다. 피조물인 인간은 하나님에 대해 별 관심을 두지 않고 살아간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와 교제하기를 원하며 먼저 찾아와 주신다. 이 사실을 깨달은 성도들은 더이상 절망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자신의 어려움과 형편을 모두 아심을 믿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곁에 가까이 계심을 믿는다. 이것을 경험하면 상황은 달라진 게 없어도 삶에 기쁨이 넘치게 된다. 절망이 희망으로 변하게 된다. 2026-06-27
-
[더굳뉴스] BOOK_법 앞에 선 한국교회
2023-07-08
-
[더굳뉴스] 제자훈련을 위한 소요리문답 _제9장 주기도문의 끝 말씀
1)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우리 하나님이여 이제 우리가 주께 감사하오며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 대상 29:11-13 ••••••••••• 2)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귀를 기울이시고 행하소서 지체하지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바 됨이니이다 단 9:19 ••••••••••• 3)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계 22:20-21 작자 미상의 이런 시가 있다. 내가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셨을 때 난 당신이 내가 그린 최초의 그림에 빛을 비춰주시는 걸 보았어요. 그래서 난 또 다른 그림을 그리고 싶었어요. 내가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셨을 때 난 당신이 주인 없는 개를 보살펴 주시는 걸 보았어요. 그래서 난 동물들을 잘 대해 주는 것이 좋은 일이란 걸 알았어요. 내가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셨을 때 난 당신이 기도하시는 소리를 들었어요. 그래서 난 하나님이 존재하시며 언제나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내가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셨을 때 난 당신이 잠들어 있는 내게 입 맞추시는 걸 보았어요. 난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 내가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셨을 때 난 당신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걸 보았어요. 그래서 난 때로는 인생이라는 것이 힘들며 우는 것이 나쁜 일이 아님을 알았어요. 내가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셨을 때 난 당신이 날 염려하고 있는 걸 보았어요. 그래서 난 내가 원하는 모든 걸 꼭 이루고 싶어졌어요. 내가 보고 있지 않다고 당신이 생각하셨을 때 사실 난 언제나 보고 있었어요. 그래서 내가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셨을 때 내가 본 모든 것들에 대해 당신에게 아멘으로 감사드리고 싶었어요 하나님이 그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를 창조하셨다는 사실은 인생의 목적에 대한 바른 답을 제시해준다.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이유를 충족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즐거워할 때 하나님도 신랑이 신부를 기뻐하는 것 같이 우리를 기뻐하신다고 말씀하신다. 다시는 너를 버림받은 자라 부르지 아니하며 다시는 네 땅을 황무지라 부르지 아니하고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뿔라라 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결혼한 것처럼 될 것임이라 마치 청년이 처녀와 결혼함 같이 네 아들들이 너를 취하겠고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 같이 네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시리라 사 62:4-5 스바냐 선지자는 더욱 감동적인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모습을 전해 주고 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습 3:17 하나님이 스스로 우리와의 관계를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우리도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게”(벧전 1:8) 된다. 기도는 그리스도의 약속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요 요14:13-14 이 말씀은 우리가 어리석고 죄스러운 어떤 일들을 요구할 수 있다거나 또 그것을 얻을 수 있다는 의미도 아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기도할 때 우리는 확신을 얻게 되고,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인 실례가 있다. 1540년 루터(Martin Luther, 1483.11.10. ~ 1546.2.18.)의 절친한 친구이자 조수였던 미코니우스(Friedrich Myconius, 1491.12.26. ~ 1546.4.7.)가 병이 들어 죽음이 임박해 있었다. 그는 죽기 전에 루터에게 마지막 남은 기력을 다 모아 편지를 보냈다. 루터는 편지를 받자마자 간절한 내용을 담아 답장을 보냈다. ‘나는 아직도 교회를 개혁하는 일에 당신이 필요하다. 나는 감히 하나님의 이름으로 당신이 계속 더 살아있기를 명하고 싶다... 나는 주께서 당신을 죽게 내버려 두시지 않고 나를 위해서 당신을 살려 두시겠다는 말씀을 해주실 것이라 믿는다. 이것을 위해 나는 지금 기도하고 있다. 이것은 내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내 뜻이 이루어질 것을 안다. 그 이유는 나는 오직 하나님의 이름을 영광되게 하는 일만을 추구해왔기 때문이다. 주님의 이름으로 아멘.’ 루터의 이러한 확신에 찬 말은 그 당시 신중한 말이 요구되던 시대였던 것을 감안하면 정말 놀라운 말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 뒤 일어난 일을 보면 루터의 이 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 분명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왜냐하면 루터의 편지가 도착했을 때 미코니우스는 이미 말할 능력을 상실했다. 그러나 그는 읽어주는 루터의 편지를 듣고 곧 소생했다. 그리고 며칠 뒤에는 완전히 회복했다. 그 후 미코니우스는 6년을 더 살았다. 게다가 그는 같은 해(1546.2.18.) 죽은 루터보다 두 달(1546.4.7.) 가까이 더 살았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쳐주신 뒤 모든 내용의 마지막에 ‘아멘’을 덧붙일 것을 가르쳐주셨다. 아멘은 원래 긍정을 나타내는 히브리어로 ‘강하게 하다’(strengthen), ‘확증하다’(confirm)를 의미하는 낱말이다. 그래서 아멘은 ‘그렇게 될 것입니다’ 또는 ‘그렇게 되게 하옵소서’라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그렇게 될 것입니다’라는 의미의 아멘은 우리의 믿음이나 소원에 대한 하나님의 허락을 뜻하는 것이다. 반면에 ‘그렇게 되게 하옵소서’라는 의미의 아멘은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거나 우리의 기도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우리의 믿음과 소망을 표현하는 것이다. 즉 우리의 아멘은 하나님이 우리의 간구를 들으시기를 바라는 마음과 들으시리라 하는 확신의 증거로 말하는 것이다. 고대 유대교에서는 랍비가 성경 한 구절을 읽을 때마다 성도들이 그 구절을 따라 말하게 함으로써 성경 교육을 시켰다. 그러나 점차 구절을 되풀이해 따라 말하는 게 번거롭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성도들은 성경 구절을 따라서 반복하는 대신에 그것을 압축한 한 마디, 아멘을 말하게 되었다. 그래서 아멘이 기도나 찬송의 맺음말로 사용하게 되었다. 그리스도인들이 기도를 마칠 때마다 아멘이라고 말하는 것은 좋은 습관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이렇게 교훈한다. 그렇지 아니하면 네가 영으로 축복할 때에 알지 못하는 처지에 있는 자가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고 네 감사에 어찌 아멘 하리요 고전 14:16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할 때 간구한 내용에 대한 이해와 믿음으로 아멘을 하는 습관을 갖도록 해야 할 것이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마 6:13 [핵 심 개 념 정 리] 1. 인생의 목적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그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를 창조하셨다는 사실은 인생의 목적에 대한 바른 답을 제시해준다.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이유를 충족시키는 것이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즐거워할 때 하나님도 신랑이 신부를 기뻐하는 것 같이 우리를 기뻐하신다고 말씀하신다. 2.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한다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기도할 때 우리는 확신을 얻게 되고,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이다. 3. 어떻게 기도할 때 확신을 얻게 되는가?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쳐주신 뒤 모든 내용의 마지막에 ‘아멘’을 덧붙일 것을 가르쳐주셨다. 아멘은 원래 긍정을 나타내는 히브리어로 ‘강하게 하다’(strengthen), ‘확증하다’(confirm)를 의미하는 낱말이다. 그래서 아멘은 ‘그렇게 될 것입니다’ 또는 ‘그렇게 되게 하옵소서’라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그렇게 될 것입니다’라는 의미의 아멘은 우리의 믿음이나 소원에 대한 하나님의 허락을 뜻하는 것이다. 반면에 ‘그렇게 되게 하옵소서’라는 의미의 아멘은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거나 우리의 기도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우리의 믿음과 소망을 표현하는 것이다. 즉 우리의 아멘은 하나님이 우리의 간구를 들으시기를 바라는 마음과 들으시리라 하는 확신의 증거로 말하는 것이다. 2026-04-05 2025 개정판 전자책 출간 교보문고. 알라딘. 예스24
-
[더굳뉴스] 제자훈련을 위한 소요리문답 _주기도문의 다섯째 기도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 †시 51:1 ………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마 18:35 ………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롬 3:23-24 나치에 항거해 감옥에 갇힌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가 숨을 거두기 전에 쓴 시라고 한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그들이 종종 말하기를 내가 감방에서 걸어나올 때 마치 왕이 자기의 성에서 걸어나오듯 침착하고, 활기차고, 당당하다고 한다. 나는 누구인가. 그들이 종종 말하기를 내가 간수에게 말을 건넬 때 마치 내가 명령하는 권한이라도 있는 듯 자유롭고, 다정하고, 분명하다고 한다. 나는 누구인가. 그들이 또한 말하기를 내가 불행한 날들을 견디면서 마치 승리에 익숙한 자와 같이 평화롭고, 미소 지으며, 자연스럽다고 한다. 나는 정말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그런 존재인가. 아니면 다만 나 자신이 알고 있는 자에 지나지 않는가. 새장에 갇힌 새처럼 불안하게 뭔가를 갈망하다 병이 들고 손들이 나의 목을 조르고 있는 듯 숨 가쁘게 몸부림치고 빛깔과 꽃들과 새소리를 갈구하며 부드러운 말과 인간적인 친근함을 그리워하고 사소한 모욕에도 분노로 치를 떠는, 그리고 위대한 사건들을 간절히 고대하고 저 멀리 있는 친구들을 그리워하다 힘없이 슬퍼하고 기도하고, 생각하고, 글쓰는 일에 지치고 텅 빈, 무기력하게 그 모든 것과 이별할 채비를 갖춘 그런 존재. 나는 누구인가. 이것인가, 저것인가. 타인 앞에서는 위선자이고, 내 자신 앞에서는 경멸할 수밖에 없는 가련한 약자인가. 나는 누구인가. 이 고독한 물음이 나를 비웃는다. 그러나 내가 누구이든, 하나님은 아신다. 내가 그의 것임을.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라고 기도하는 주기도문의 다섯째 기도는 무슨 뜻인가?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행위가 하나님의 용서보다 앞선다는 뜻인가? 아니면 우리가 용서하기 때문에 용서 받을 수 있다는 것인가? 아니다. 그 반대다. 우리 자신이 먼저 용서를 받았기 때문에 용서할 수 있고 용서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요일 4:19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눅 7:47 성경은 우리가 자백만 하면 언제라도 죄를 용서받게 된다고 말씀한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일 1:9 따라서 다른 사람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태도를 본받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사랑 받은 것처럼 우리도 용서해야 한다. 베드로가 주님에게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마 18:21)라고 물었다. 예수님은 크게 생각해서 일곱 번의 용서를 말한 베드로에게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마 18:22) 하고 말씀하셨다. 신자가 타인의 용서에 대해 행해야 할 의무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의 은혜를 본받고 나타내야 한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간구하고 있다. 여호와여 주의 긍휼을 내게서 거두지 마시고 주의 인자와 진리로 나를 항상 보호하소서 수많은 재앙이 나를 둘러싸고 나의 죄악이 나를 덮치므로 우러러 볼 수도 없으며 죄가 나의 머리털보다 많으므로 내가 낙심하였음이니이다 시 40:11-12 우리가 이렇게 많은 죄를 용서받듯이 우리도 남을 용서하고 사랑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면서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라고 말씀하시고 우리의 죄를 대속하셨다. 그 은혜를 체험한 사도 베드로가 우리에게 권면한다.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벧전 2:21 그러므로 우리도 그리스도의 본을 따라 용서와 사랑을 실천해야 할 것이다. 【핵·심·개·념·정·리】 1) 주기도문의 다섯째 기도는 무슨 뜻인가? 우리 자신이 먼저 용서를 받았기 때문에 용서할 수 있고 용서해야 한다는 것이다. 2) 우리는 어떻게 죄의 용서를 받는가? 성경은 우리가 자백만 하면 언제라도 죄를 용서받게 된다고 말씀한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9). 3) 우리는 다른 사람의 죄에 대한 용서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신자가 타인의 용서에 대해 행해야 할 의무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의 은혜를 본받고 나타내야 한다. 2026-03-29 2025 개정판 전자책 출간 교보문고. 알라딘. 예스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