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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42_ 교회 포기한 군대
Divi Ambrosii Episcopi Mediolanensis Omnia Opera 교회 포위한 군대 이상한 것을 이상하다고 말하면 안디는 이상한 세상이 됐다. 그래서 바름을 이야기한다고 뒤집어 이야기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덩달아 그것을 듣는 사람도 수를 더해 가고 있다. 거꾸로 사는 세상이니, 막 쪄낸 찐빵이니, 베 짜는 하나님이니 하는 변설로 진리를 낯설게 만든다. 신학교를 들어 간 사람이 갑자기 목사 될 필요성을 못 느껴 신학교를 그만두었단다. 그리고 믿음대로 살기 위해 바로 살아야 될 세상을 거꾸로 살아야 된단다. 어느 넋이 빠진 친구는 목사 안수를 받은 날 가슴이 하도 허전해 실컷 술로 채웠단다. 이따위 수작의 대가는 역시 니체였다. 그가 얼빠진 눈망울로 종종 되뇌인 말이 선한 악이니 악한 선이니였다. 성경은 말씀하신다. 악은 악이고, 선은 선이라고. 성경에서는 의적 일지매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도둑은 도둑이고 의인은 의인이다. 어찌 의로운 도둑이 있을 수 있으며 악한 의인이 있을 수 있겠는가! 암브로스는 눈살을 찌푸렸다. 세상의 가치관이 흔들리고 있었다. 많고 강한 게 판단의 가름끈이 되고 있었다. 신자들마저도 그 수가 늘어감에 따라 성경이 아니라 세상 풍조를 따르는 경향이 짙어졌다. 니케아 신앙을 지지하는 암브로스는 아리우스파에 대한 어떤 지원도 단호히 거절했다. 그는 성경대로 ‘예’와 ‘아니오’가 분명한 사람이었다. 그가 유스티나 황후의 부탁을 거절한 까닭은 솔직히 아리우스주의가 그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아리우스주의가 고트족의 신앙이었기 때문이다. 고트족은 아리우스파가 로마 제국에서 온갖 힘을 다 쓰던 시절에 파송한 선교사들이 개종시킨 야만인들이었다. 그 후 로마 제국의 대부분이 니케아 신앙을 받아들였다. 반면에 이성과 논리에 근거해 삼위일체를 부인하는 아리우스주의는 야만인들에게 전파됐다. 그 결과 아리우스주의자는 미개인이나 야만인을 의미하게 됐고 니케아주의자는 로마인을 뜻했다. 황후는 여타 야만인들로부터 로마 제국을 방어하기 위해 야만인들을 용병으로 고용하고 있었다. 아리우스 신앙을 지닌 이를 야만인 병사들을 위해 그녀는 밀란에다 예배당을 하나 마련해주고 싶었다. 암브로스는 딱 잘라 거절했고 그녀가 바랬던 교회를 그를 따르는 사람들로 채워버렸다. 화가 치밀 대로 치민 황후는 야만인 군대를 보내 그 교회를 포위하게 했다. 군인들의 동태를 예의 주시하면서 암브로스는 신자들에게 자신이 작곡한 찬송가를 부르도록 가르쳤다. 사실상 암브로스는 라틴 찬송가의 아버지로 불리운다. 병사들은 살기를 번득이며 공격 명령을 기다렸다. 온 밀란 시민이 숨을 죽이며 사태를 주시했다. 싸움의 결과는 불을 보듯 뻔했다. 유스티나 황후는 지휘봉을 손에 쥐고 교회 정문을 뚫어져라 노려보고 있었다. 암브로스 ‘네까짓 게 버텨봤자 별수 있겠어. 이제 무릎을 꿇을 거야’ 하며 그녀는 느긋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그녀는 짐짓 일그러뜨린 얼굴에 묘한 웃음까지 짓고 있었다. 그때 숨 막히는 정적을 깨고 교회에서 찬송을 부르는 회중의 힘찬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아연했다. 어찌됐던 그녀도 신자였다. 황후는 찬송부르는 회중에게 공격 명령을 내릴 심장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암브로스가 이겼다. 2021-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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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이야기 세계 교회사 32 - 쳇바퀴 세상
Sylvester I and Constantine 쳇바퀴 세상 신문을 펼쳐 든다. 날마다 그렇듯 오늘도 사건으로 지면은 그득하다. 10대 소녀가 괴성을 지르다 밟히고 밟혀 눈이 개개풀어진 사건, 미국 대통령 예비선거, 이주일 귀국, 다리 저는 국회의원이 목욕하고 나오다 칼 맞은 일, 이북에서 올까 싶은 목사들 이야기, 이스라엘 레바논 폭격으로 악명 높은 헤즈볼라의 책임자 무사위가 콩가루 된 사건. 주후 325년에 신문이 있었다면 콘스탄틴 황제가 주최한 니케아 총회를 대서특필했으리라. 한국전쟁 참전을 결의한 유엔총회에 비교가 안 되게 신문지면을 꽉 채웠을 것이다. 이런 소식이 공해로 하늘에 구멍 뚫리는 기사나 국회의원 선거 시사 나부랭이보다 얼마나 좋을 것인가. 어제와 같은 하루의 일과가 시작됐다. 로마 제국의 황제 콘스탄틴은 기지개를 펴며 침소에서 일어났다. 햇살은 밝았다. 만찬 석상에서 박해 때 눈이 뽑혀 애꾸가 된 감독의 눈 자국에 입맞춤했던 정경이 떠올랐다. 만찬장에 감동의 박수가 넘쳤다. 황제는 빙긋 웃음을 흘렸다. 니케아 총회가 파한 뒤 총대들이 콘스탄틴에게 활동결과를 보고했다. 그러나 연로한 아리우스를 비롯한 다섯 총대들은 니케아 신조에 서명을 거부했고 유배를 당했다. 이게 난관을 전부 해결해 주지는 못했다. 그리스도와 성부의 관계와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에 관한 토의는 해를 거듭해 한 시대를 넘어 계속됐다. 추방당했던 감독들이 의기양양하게 돌아왔고 반대로 아다나시우스가 유배당했다. 인생은 죽기 마련이다. 세월이 흘러 임종 무렵에 세례를 받은 콘스탄틴 황제가 숨을 거뒀다. 세 아들이 뒤를 이었다. 고구려의 독재자 연개소문이 죽은 뒤 일어났던 꼴이 콘스탄티노플에서 이미 오래 전에 본을 보이고 있었다. 황제의 아들들은 황제 자리를 놓고 아귀다툼을 했다. 어렸을 때 그리도 친했던 형제들이었는데 권력 앞에서는 모두가 철천지원수였다. 역사를 보노라면 지금의 사태는 아무 것도 아님을 느끼게 된다. 그에 곁들여 아리우스파와 니케아파의 팽팽한 신념들이 이방원의 넋두리마냥 칡넝쿨처럼 얼키고 설켜 맴돌았다. 승리한 쪽이 반대파의 감독들을 유배시켰다. 심지어는 기독교 신자끼리의 싸움을 종식시키고자 콘스탄틴(세 아들 가운데 한 사람)이 알렉산드리아에 파송했던 연로한 메신저도 유배를 당했다. 유배당한 사람은 세 아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항의를 전달했다. “나는 당신 할아버지 치하에서 박해를 받았습니다(콘스탄틴 황제의 아버지는 디오클레티안 치하 때 부황제들 가운데 하나였다). 당신이 날 박해하려고 한다면 진리를 부인하기보다는 박해를 달게 받을 것이오. 하지만 이건 분명히 기억하십시오. 당신에게는 제국을 주고 우리에게는 교회를 주신 분이 하나님이셨음을 말이오. 우리가 정권을 탈취한다면 그건 우리가 하나님을 반대하는 게 될게요. 그러나 당신이 교회에 간섭하신다면 당신은 보통 잘못을 범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이 말은 니케아파의 지도자가 아리우스파 황제에 대항해 말했다. 드디어 니케아파가 완전히 승리하는 날이 왔다. 더 이상 그런 소모성의 싸움들을 방지하기를 바라는 황제들이 삼위일체를 반대하는 자는 사형에 처한다는 칙령을 발했다. 2020-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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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강요 영어 수업 - 제육 계명 살인
Cain slaying Abel by Peter Paul Rubens Lesson XVIII제육 계명 살인Sixth Commandment Murder 2018년 3월 2일 방송된 SBS 궁금한 이야기 Y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의 변호사 인생 중 가장 한 맺힌 사건으로 알려진 엄궁동 부녀자 살인사건의 진실을 파헤쳤습니다. 지난 1990년 1월 4일, 부산 엄궁동 낙동강 주변 갈대숲에서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한 모습의 시신 한 구가 발견됐습니다. 성폭행을 당한 후 둔기로 머리를 가격당해 두개골이 함몰된 채 사망한 상태였습니다. 당시 현장에는 범인을 단정할 수 있는 어떤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피해자를 알아본 결과 인근 지역에 살고 있던 삼십대 여성 김 모 씨였습니다. 피해자와 함께 있던 그녀의 애인은 2명의 범인과 격투 끝에 도망을 쳤고 늦은 밤이어서 가해자의 인상착의 등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미제 사건으로 남을 줄 알았던 엄궁동 살인사건의 범인은 뜻밖의 사건을 통해 검거됐습니다. 1991년 11월 경찰을 사칭해 금품을 갈취했던 2인조 강도사건이 발생했는데 범행 수법과 장소가 부산 엄궁동 2인조 살인사건을 떠올리게 했다는 것입니다. 경찰은 2인조 강조를 범인으로 체포했고 그들 역시 순순히 범행일체를 자백했습니다. 그런데 27년이 지난 지금 무기징역 선고를 받았던 그들이 무죄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자백을 했던 것은 경찰의 고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거짓 자백을 했다고 밝혔습니다. 당시에 이 사건의 변호를 맡은 변호사는 문재인 대통령이었습니다. 무죄를 주장하고 있는 장동익씨는 이날 방송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변호사 시절 보낸 편지를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편지에는 “내 생각에 어떻게 해서든지 재심이 열리기만 한다면 동익씨의 억울함을 밝힐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라는 내용이 담겨있었습니다. 이들이 범인이 아니라는 증거는 바로 장동익 씨의 좋지 않은 시력상태였습니다. 장 씨는 시각 장애 1급 장애인으로 근거리의 사물을 알아보지 못할 만큼 안 좋은 시력을 지녔습니다. 불빛 하나 없는 캄캄한 밤에 강으로 사람을 끌고 가서 돌로 피해자의 머리를 가격하여 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판단입니다. 27년이 지난 지금 무죄를 주장하는 장 씨는 진실을 밝힐 수 있을까요. 21년 만에 만난 딸에게 장 씨는 말했습니다. “너는 살인자의 딸이 아니다. 너에게 평생 따라다녔을 살인자의 딸이라는 누명을 꼭 지워주겠다.” 장 씨는 또 이렇게 말을 이었습니다. “내 딸을 만나러 오는데 걸린 시간은 21년하고도 5개월, 그러나 딸은 제 방에서 나올 생각을 않습니다. 우리를 이렇게 만든 저들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 그래도 분노에 잡아먹히지 않을 것입니다. 저 아이의 상처는 내가 누명을 벗는. 거기서 치유될 것입니다.” 장 씨가 진실을 밝히고 27년 만에 무죄를 입증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하지만 대법원까지 이어졌던 재판에서 유죄 판결은 바뀌지 않았으며 결국 이 사건은 문 대통령이 변호사로 지냈던 35년 동안 가장 한스러운 사건으로 남았다고 합니다. 가인이 자신의 동생 아벨을 죽인 이후 인간은 살인을 끊임없이 저지르고 있습니다. 성경의 관점에서 볼 때 살인은 매우 넓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 살인이라는 말 자체가 누구나 죄의식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요소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산상수훈에서의 예수님의 가르침은 아주 의미심장합니다. 예수님 당시의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살인이란 단지 외적인 행동일 뿐이고 십계명도 그런 행동만을 지적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이 의미에 대해 칼빈은 『기독교강요』 제2권 제8장 39항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THOU SHALT NOT KILL. 39. The purport of this commandment is that since the Lord has bound the whole human race by a kind of unity, the safety of all ought to be considered as entrusted to each. In general, therefore, all violence and injustice, and every kind of harm from which our neighbour's body suffers, is prohibited. Accordingly, we are required faithfully to do what in us lies to defend the life of our neighbour; to promote whatever tends to his tranquillity, to be vigilant in warding off harm, and, when danger comes, to assist in removing it. Remembering that the Divine Lawgiver thus speaks, consider, moreover, that he requires you to apply the same rule in regulating your mind. It were ridiculous, that he, who sees the thoughts of the heart, and has special regard to them, should train the body only to rectitude. This commandment, therefore, prohibits the murder of the heart, and requires a sincere desire to preserve our brother's life. The hand, indeed, commits the murder, but the mind, under the influence of wrath and hatred, conceives it. How can you be angry with your brother, without passionately longing to do him harm? If you must not be angry with him, neither must you hate him, hatred being nothing but inveterate anger. However you may disguise the fact, or endeavour to escape from it by vain pretexts. Where either wrath or hatred is, there is an inclination to do mischief. If you still persist in tergiversation, the mouth of the Spirit has declared, that “whosoever hateth his brother is a murderer,”(1 John 3:15); and the mouth of our Saviour has declared, that “whosoever is angry with his brother without a cause shall be in danger of the judgment: and whosoever shall say to his brother, Raca, shall be in danger of the council: but whosoever shall say, Thou fool, shall be in danger of hell fire”(Mt. 5:22). 이 영어 원문의 대략적인 해석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육 계명 살인하지 말지니라 출 20:13 39. 이 계명의 목적은, 주께서 인류 전체에 일종의 통일성이 있도록 한데 묶어 두셨으므로 우리는 각각 전체의 안전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약하면, 이웃의 신체를 해할 일은 폭행, 상해 기타 어떤 것이든지 일체 금지하십니다. 따라서 이웃의 생명을 구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무엇이든지 충실히 이용하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들의 평화에 도움이 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하라, 해로운 것이면 막아내라, 이웃이 위험한 처지에 있으면 도와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입법자로서 이렇게 말씀하신다는 것을 상기한다면, 우리는 동시에 그는 이 원칙으로 우리의 영혼을 인도하려 하신다는 것도 생각해야 합니다. 마음속의 생각을 보시며 특히 그것을 중시하시는 분이 육체에만 진정한 의를 가르치신다면, 그것은 우스운 이야기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계명은 마음으로 살인하는 것을 금하며, 형제의 생명을 구하겠다는 마음을 가지라고 명령하십니다. 참으로 살인은 손이 낳는 것이지만, 마음이 분노와 증오심에 감염될 때에 살인을 잉태합니다. 형제에 대해서 노하면서 그를 해하려는 욕망이 치밀어 오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형제에 대해 노하지 않는다면 미워할 수도 없습니다. 증오심은 지속되는 분노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분노나 증오심이 있는 곳에는 해를 주려는 의도도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떤 수단으로도 감출 수 없고 피할 수도 없는 사실입니다. 당신이 계속 변명할지라도 성령께서는 이미 “마음속에서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라”(요일 3:15)고 선언하셨고, 주 그리스도께서는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마 5:22)고 선언하셨습니다. 칼빈의 살인에 대한 가르침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습니다. 즉 목숨을 죽이는 것만이 살인의 전부냐고 물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음과 태도도 문제를 삼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따르면 성내는 것뿐만 아니라 모욕하는 말조차 살인에 버금가는 죄가 됩니다. 라가라 하는 말의 원래 뜻은 비었습니다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라가(raca)를 사용해 욕을 하게 되면 속이 빈 놈이나 정신 나간 놈이라는 뜻으로 모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미련한 사람이라 하는 말의 원어 모로스(moros)는 바보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이 말들은 도덕적으로 바보이거나 정신 나간 사람을 의미합니다. 즉 바보짓을 하거나 정신 나간 짓을 하는 사람을 빗대는 말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들을 듣는 사람은 마음과 명예에 심한 상처를 받게 됩니다. 예수님은 누구를 비방하거나 모욕하는 것조차도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 제육 계명을 어기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우쳐주십니다. 주님의 이 가르침은 우리의 본성을 적나라하게 밝혀주십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화를 내고 투덜대고 비방하고 무시하는 말을 함부로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그러한 행위가 살인을 저지르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성향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주님께서 말씀해주십니다.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마 5:43-45 우리는 이웃 사랑과 기도로 자신을 다스려 제육 계명을 지켜야 할 것입니다. 2020-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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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세계 교회사 31 - 니케아 신조
니케아 신조 아마 직전 총회장이셨던 것 같다. 그는 두루마기 차림의 설교 중에 찬송가를 자작하여 부르시는 목사님이셨다. 우리 교단 가장 큰 교회의 목사님이시기도 했다. 그리고 바로 그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는 총회장이셨다. 그가 이제 바로 뒤를 이은 총회장한테 나무망치와 받침을 물려주고 증경 총회장이 되어 바깥으로 나오셨다. 몇 분 총대 목사님이 이 증경 총회장과 맞닥뜨렸다. 그들의 만남과 대화는 여느 청년들이 모여 노닥거리는 모양과 진배없었다. 햇병아리 신학생의 눈에는 진기한 구경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거기에는 진솔한 인간의 모습이 우러나고 있었기 때문이다.요즘의 세태처럼 권력과 부귀와 장수 나부랭이보다는 지혜를 하나님께 구한 솔로몬 왕이 이렇게 말했다. “해 아래 새것이 없다.” 그런데 주 후 325년 니케아에서 인간 역사상 유례없는 일이 발생했다. 다시 말해 해 아래 새로운 일이 일어났다. 바벨탑 이래 인간들이 모이면 쓰잘 데 없는 일을 일삼기 일쑤인데 니케아 총회에서는 전혀 달랐다. 인간들이 웅성웅성 모여 인류 최초로 신에 대한 협의와 결정을 내렸다. 니케아 총회는 부활절 날짜를 결정했다. 부활절은 봄이 시작되고 밤과 낮의 길이가 같아지는 날 이후 첫 번째 보름달이 지난 첫 번째 주일로 결정했다. 이것은 유대인과 이방인과 그리스도인의 관습이 짬뽕 된 것이었다. 의견이 분분했던 부활절이 확정됐다. 이어서 니케아 총회는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관계에 대한 논란도 종지부를 딱 찍었다. 이것은 아다나시우스의 의견을 따라서 결정되었다. 이로써 아리우스의 해괴한 주장은 빛을 잃고 불가사의한 삼위일체는 번쩍거리게 되었다. 이 내용을 담은 걸 니케아 신앙고백이라고 한다. 물론 이 신조가 몇 년 뒤에 작성되었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니케아 신앙고백이라고 하는 것은 그게 니케아 총회의 사상을 참으로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게 영국 공동기도서에 번역되어있는 걸 한글로 옮기면 이렇다. “나는 하늘과 땅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만물의 창조주 전능하신 한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독생 성자이시며 만세 전에 성부와 함께 계셨고 하나님의 하나님, 빛의 빛이시며 참되신 하나님의 참되신 하나님이신, 나셨지만 만들어지지 않으셨고, 성부와 한 속성을 지니셨고, 만물을 만드셨고, 우리 인간을 위해 우리 구원을 위해 하늘에서 내려오셨고, 그리고 동정녀 마리아의 성령을 통해서 인간이 되신 한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예수님은 본디오빌라도 치하에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고난을 받으사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사흘 만에 예수님은 성경 말씀대로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늘에 오르사 성부 오른쪽에 앉아 계시다가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기 위해 영광스럽게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의 나라는 영원할 것입니다.나는 성부와 성자에게서 나오신 생명의 주와 수여자이신 성령님을 믿습니다. 성령님은 성부와 성자와 함께 경배와 영광을 받으며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2020-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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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강요 영어 수업 - 제오 계명 효도
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 Lesson XVII제오 계명 효도Fifth Commandment Flial Duty 부모님과 함께하면 돌아보니 가시밭길 그 길이 꽃길이었습니다. 부모님과 같이 걸으면 아픈 돌팍길 그 길이 비단길이었습니다. 부모님이 옆에 계시면 캄캄해 무서웠던 길 그 길이 빛으로 나아가는 길이었습니다. 부모님과 함께한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씌어지지 않았습니다. 부모님과 같이 부르는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리지 않았습니다. 부모님이 옆에 계신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입니다. 부모님과 보고 싶은 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하지 않았고 가장 먼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불멸의 춤은 아직 추지 않았습니다. 부모님이 옆에 계시지 않을 때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별이고 무엇을 해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그때 내가 부모 되어 비로소 진정한 무엇인가를 할 수 있을까요. 부모님과 같이 걷지 않아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가 비로소 진정한 인생 여행의 시작일까요. 2016년 tvN에서 방영한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2016)는 노년의 삶을 인상 깊게 그려냈습니다. 마지막 방송이 나간 후 노희경 작가는 블로그에서 이런 소감을 적었습니다. “작가가 되어서 이렇게 잔인해도 되나. 드라마의 결말을 쓰며, 내 잔인함에 내가 소름이 돋았다. 아무리 포장해도 이 드라마의 결론은 부모님들, 자식들에게 의지하지 마세요, 우리 살기 바빠요, 그리니 당신들은 당신들끼리 알아서 행복하세요, 우리는 이제 헤어질 시간이에요, 정 떼세요, 서운해 하지 마세요, 어쩔 수 없잖아요, 그건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부모에게 쓰는 내내 끝난 후에도 참 많이 미안했다.” 독일 여성감독 도리스 되리의 영화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원제 Cherry Blossoms 벚꽃 Hanami 꽃놀이)에 이런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늘 일본에 가보고 싶었다. 후지산과 벚꽃을 그와 함께 꼭 한번 보고 싶었다. 남편없이 구경하는 건 상상할 수가 없다.” 이 영화의 첫 번째 대사이자 아내 트루디의 말입니다. 남편 루디와 함께 일본 후지산의 벚꽃을 보고 싶었다고 독백하던 아내 트루디는 남편의 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을 의사로부터 전해 듣습니다. 그래서 멀리 산다는 핑계로 한동안 보지 못했던 자식들을 볼 겸 여행을 제안하죠. 베를린에 도착한 부부는 아들 내외와 손자 손녀가 사는 집으로 갑니다. 반가움도 잠시 아이들은 각자 게임에 빠져있고, 아들 내외 그리고 뒤이어 도착한 딸은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죠. “왜 온 거야. 시간 없는데…” 그래도 오랜만에 모인 가족이니 시간을 내 시내 구경도 하고 함께 사진도 찍고 식사도 하죠. 하지만 부모는 이미 너무 커버린 자식들이 버겁고 자식은 이제 귀찮아진 부모와 같이 있는 시간이 불편합니다. 부부는 자식에게 폐 끼치는 것 같은 느낌에 자리를 뜨죠. 자식들은 그런 부모를 보며 화를 냅니다. 그러곤 돌아서서 죄책감에 눈물짓습니다.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왜 그렇게밖에 말하지 못하는지... 그들의 행동을 눈치챈 트루디는 자기들만의 여행을 바다로 가자고 루디를 보챕니다. 도착한 발트해 파도소리에 잠을 못이루겠다고 불평하는 루디. 그리고 그런 루디를 타이르며 함께 춤추고 즐기길 원하는 트루디. 그날 밤을 그렇게 지새고 어젯밤 시끄럽게 쳐대던 파도소리가 고요해졌다며 아내 트루디를 깨우던 루디. 그러나 그 파도처럼 루디는 고요하게 잠들어 버렸습니다. 이 때문에 또 가족이 모이게 됩니다. 도쿄에 거주하던 막내아들까지요. 자신을 희생해가며 가족들을 아껴봐 주던 아내였기에 루디의 슬픔은 더욱더 큽니다. 장례를 치르는 중에 바다를 보며 그는 중얼거립니다. “정말 고요하군....” 장례식에서 자식들은 이제 와 자신이 아무것도 해 드릴 수 없음에 눈물 흘립니다. 그러면서 한편 남겨진 아버지에 대한 부담을 느끼죠. 그들은 바쁘고 엄마는 이제 없고 아버지는... 아버지는 어쩌지... 아버지 루디는 하루살이의 하루의 삶은 천국 그래서 그들의 하루 비행은 행복이라는 말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그의 그런 슬픔을 자식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오히려 남아있는 것이 아버지임을 불평하고 서로에게 미루며 마치 짐이 하나 생긴 듯 행동을 취합니다. 아버지 그 이름만으로도 자녀에겐 새처럼 날개를 펴고 마음대로 날 수 있는 하늘입니다. 어머니 그 이름만으로도 자녀에겐 새처럼 날개를 접고 포근히 잠들 수 있는 보금자리인데도 말입니다. 몸빛이 검고 울음소리가 흉측하여 죽음을 알리는 새로 전 세계에 알려진 까마귀는 자기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줍니다. 그래서 까마귀를 효조(孝鳥)라고 해서 일본에서는 상당히 귀하게 여기는 까닭에 흔히 볼 수 있는 새이기도 합니다. 농경사회에서는 노쇠한 부모를 자식이 까마귀처럼 공양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현대사회에서는 그러한 의미가 좀 쇠퇴한 감이 있기는 하더라도 그 정신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부모를 공경하는 효도의 의미는 물질과 육체적인 섬김은 물론이고 부모의 뜻과 생각을 존중한다는 데 더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그 의미에 대해 칼빈은 『기독교강요』 제2권 제8장 36항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HONOUR THY FATHER AND THY MOTHER: THAT THY DAYS MAY BE LONG UPON THE LAND WHICH THE LORD THY GOD GIVETH THEE. 36. Wherefore, we ought to have no doubt that the Lord here lays down this universal rule--viz. that knowing how every individual is set over us by his appointment, we should pay him reverence, gratitude, obedience, and every duty in our power. And it makes no difference whether those on whom the honour is conferred are deserving or not. Be they what they may, the Almighty, by conferring their station upon them, shows that he would have them honoured. The commandment specifies the reverence due to those to whom we owe our being. This Nature herself should in some measure teach us. For they are monsters, and not men, who petulantly and contumeliously violate the paternal authority. Hence, the Lord orders all who rebel against their parents to be put to death, they being, as it where, unworthy of the light in paying no deference to those to whom they are indebted for beholding it. And it is evident, from the various appendices to the Law, that we were correct in stating, that the honour here referred to consists of three parts, reverence, obedience, and gratitude. The first of these the Lord enforces, when he commands that whose curseth his father or his mother shall be put to death. In this way he avenges insult and contempt. The second he enforces, when he denounces the punishment of death on disobedient and rebellious children. To the third belongs our Saviour's declaration, that God requires us to do good to our parents(Mt. 15). And whenever Paul mentions this commandment, he interprets it as enjoining obedience. 이 영어 원문의 대략적인 해석은 다음과 같습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출 20:12 36. 그렇기 때문에 주께서 여기서 한 일반적 원칙을 세우셨다는 것을 우리는 의심해서는 안 됩니다. 즉, 주의 임명으로 어떤 사람이 우리 위에 세워진 것을 알면, 우리는 그에게 경외와 순종과 감사를 드리며, 그밖에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우리의 웃어른이 이런 존경을 받을 자격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문제가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이든지 그들은 하나님의 섭리로 그 지위에 있게 된 것이며, 이 일이 우리가 그를 공경하라는 하나님의 뜻을 증거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 세상에 낳아준 우리의 부모를 공경하라고 명백히 말씀하십니다. 자연 자체도 이 일을 우리에게 가르칠 것입니다. 반항이나 고집으로 부모의 권위를 무시하는 자들은 사람이 아니라 기괴한 동물입니다. 그래서 주께서는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는 자들은 모두 사형에 처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자기를 낳아 준 분들의 노고를 인정하지 않는 자들은 인생의 혜택을 받을 자격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공경에 경의와 복종과 감사의 세 부분이 있다고 우리가 말한 것은 율법에 첨가된 여러 말씀을 보아도 분명히 올바릅니다. 주께서는 부모를 저주하는 자는 죽이라고 명령하심으로써 처음 부분인 경의를 주장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방법으로 그는 멸시와 박대를 복수하십니다. 또 순종하지 않고 반항하는 자녀에 대해서 사형을 명령하심으로써(신 21:18-21) 둘째 부분인 순종을 강조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마태복음 15장에서 부모를 후대하라는 것이 하나님의 계명이라고 하신 말씀은 존경의 셋째 부분인 감사에 관한 것입니다. 바울은 이 계명을 언급할 때마다 강제적인 복종을 요구하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존 스토트(John Stott)는 그의 저서 『그리스도인의 확신』(Confirmation)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십계명 두 판을 모세에게 주셨습니다. 첫째 돌판에는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의무가 새겨져 있습니다. 둘째 돌판에는 이웃에 대한 인간의 의무가 새겨져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부모를 공경하라는 제오 계명을 첫째 돌판에 새기셨습니다. 그 이유는 보이는 육신의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아니하는 부모이신 하나님을 공경할 수 없다는 사실을 하나님이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웃에 대한 우리의 의무는 감당하지 못하면서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의무는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온당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이웃들도 섬겨야 합니다. 하늘나라에 적합한 사람은 세상에서도 쓸모가 있어야 합니다. 제오 계명은 부모에 대한 의무를 지시할 때 다른 종류의 부모들도 내포하고 있습니다. 즉 정치적인 부모(세상의 권좌에 있는 사람들) 영적인 부모(교회의 목사들) 그리고 연륜과 경험을 통한 가르침을 받아 부모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스승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오 계명이 특별히 지적하고 있는 것은 육적인 부모입니다. 제오 계명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 20:12)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우리 위에 있게 하신 이들을 우리가 존경하고 감사하는 마음과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본질적으로 권위를 싫어합니다. 그러므로 자녀들이 부모를 공경하도록 배우지 아니하면 나중에 정당한 권위를 부여받은 대상에게도 거역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자녀들이 자신을 낳아준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다면 하나님도 경외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 22:6) 말씀합니다. 또한 부모들도 자녀들의 마땅한 공경을 받기에 합당한 부모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경 말씀을 따르는 부모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엡 6:4 2020-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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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세계 교회사 30 - 니케아 총회
니케아 총회 고풍스런 대전중앙교회에 모인 목사님들과 장로님들의 모습은 엄숙하고 경건했다. 우리 총신 신학생들은 총대들 틈에 뒤섞이니 이제 알을 깨고 나온 병아리 꼴이었다. 그렇게 높게 보이던 신학부 졸업반 전도사님들도 어설퍼 보이기는 매한가지였다. 한 목사님이 손을 쳐들고 “의자앙!”하며 사회 석 앞으로 어기적 나갔다. 마이크를 손에 쥐고 발언을 했다. “에, 우리가 이렇게 성 총회로 모였으니 어찌 입씨름만 한 대서야 하나님 앞에 면목이 서겠습니까? 낮에는 회의를 하고 밤에는 부흥사경회를 열어 은혜를 받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동의가 들어오고 왁자하니 재청이 울리고 가부를 묻는 소리가 찌렁하니 예배당을 휘감았다. 기름 부음 받는 자들의 “예”하는 소리가 초등학생들 구령처럼 장내를 울렸다. 해가 뉘였거렸다. 기름 부음 받은 분들의 즐거운 저녁밥이 자위가 돌 무렵 총회에 모인 총대들이 결의한 대로 부흥사경회가 시작됐다. 가라앉은 설교자의 음성이 성령의 열매를 강조하느라 냅다 외치는 소리에 뒤이어 쿵 하며 대전중앙교회 마룻바닥을 울렸다. 일순 장내가 조용해졌다. 너나없이 무슨 소리인가 하고 두리번거렸다. 보니 한 목사님이 몸을 앞뒤로 흔들며 주무시다가 의자 밖으로 굴러떨어지신 것이었다. 나라도 하나였고 교회도 하나였는데 그리스도인의 행습은 로마 군인들처럼 일정하지가 못했다. 교회의 가장 중요한 명절인 부활절만 해도 그랬다. 유월절을 지키는 유대인처럼 봄에 달이 꽉 찬 날을 지키는 사람도 있었다. 이를테면 부스럼 예방한답시고 키들거리며 부럼을 까는 정월 대보름을 부활절로 지키는 셈이었다. 그런가 하면 이교도들이 자연을 지배하는 신들이 기지개를 펴고 일어나는 것을 경축했던 봄의 첫날을 부활절로 지키는 사람도 있었다. 부활주간의 부활절날도 가지각색이었다. 어떤 사람은 부활절을 일요일이라고 주장했다. 삼위일체와 이런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콘스탄틴은 주 후 325년 로마의 수도 콘스탄티노플 근처에 있는 안양만 한 니케아 시에서 회집하는 총회를 소집했다. 이 모임을 니케아공의회라고 한다. 이건 전체교회의 지도자들이 모인 최초의 집회였다. 전 세계에서 감독들이 꾸역꾸역 니케아로 모여들었다. 아프리카와 시리아에서 메소포타미아와 페르샤에서 폰투스, 갈라디아, 밤빌리아, 길리기아, 프리지아, 트라키아, 마케도니아, 아가야 및 멀고 먼 스페인 등지에서 감독들이 모여들었다. 로마에서는 사제들이 왔다. 역사가는 콘스탄틴처럼 어떤 군주가 자기의 구세주한테 경의를 표하기 위하여 그토록 성대한 축제를 마련한 적이 전무후무했노라고 니케아 총회의 모임에 대해 말했다. 감독들과 사제들이 거대한 홀에 운집하여 황제를 기다렸다. 황제가 홀에 모습을 드러내자 모두 일어섰다. 그는 하늘에서 보낸 메신저 같았다. 그의 옷을 수놓은 금과 보석들이 빛을 받아 찬란하다 못해 하얗게 빛났다. 황제는 총대들을 만찬에 초대했다. 감독들과 사제들이 줄을 지어 만찬장에 들어설 때 근위병들이 양쪽에 칼을 뽑아 들고 있었다. 그것은 그들을 벌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한테 경의를 표하기 위한 것이었다. 2020-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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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히브리서Hebrews
- 베들레헴 히브리서Hebrews는 그리스도의 충만을 버리고 옛 생활의 공허 속으로 돌아가려는 유대인 신자들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구원받은 사람들은 그들의 영적 유산 가나안에 들어가 주의 평안을 누릴 특권이 있다. 이런 시가 있다. 실 _월리엄 스태포드 네가 따르는 한 가닥 실이 있다 그 실은 변화하는 것들 사이로 지나간다 하지만 그 실은 변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네가 무엇을 따라가는지 궁금해 할 것이다 너는 그 실에 대하여 설명해야 한다 그러나 사람들에게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 실을 붙잡고 있는 한 너는 길을 잃지 않는다 비극은 일어나기 마련이고 사람들은 상처입거나 죽는다 그리고 너는 고통 받고 늙어간다 시간이 하는 일을 너는 어떻게도 막을 수 없다 그래도 그 실은 절대로 놓지 말라 히브리서가 강조하는 것은 우리의 삶에서 절대 놓아서는 안 될 실 같은 '믿음으로by faith'이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받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믿음으로 살기도 해야 한다. 히브리서 1장 1절과 2절은 이렇게 말씀한다. 하나님께서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번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시고 이 마지막 날들에는 그의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은 천국에 올라가는 것의 표상이 아니다. 그것은 적을 정복하고 믿음으로 당신의 영적 유산을 요구하는 것의 비유이다. 그러나 너무도 많은 사람이 구약의 이스라엘인들처럼 불신앙의 광야에서 방황을 하고 옛 생활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스펄전 목사가 이런 말을 했다. 진리의 실들을 가지고만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그 실들을 가지고 영광의 겉옷을 짜셨다. 그는 그 옷을 입으시고 하나님의 모든 진리를 주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다. 우리는 그 말씀에 응답해야 한다. 우리의 응답이 우리가 사는 삶의 종류를 결정하고 우리가 요구하는 영적 유산의 분량을 결정한다. 이 심오한 편지를 묵상할 때 스스로 이렇게 물어야 한다. 나는 옛 생활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가. 나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나의 유산을 믿음으로 열심히 요구하고 있는가. 나는 불신앙의 광야를 방황하고 있는가. 아니면 주의 성취하신 일과 신실하신 말씀 안에서 평안을 누리고 있는가. 2025-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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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히브리서Hebr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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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 빌레몬서Philemon
- 작은 교회들 빌레몬서Philemon는 그리스도인들의 화해와 관계에 대한 편지이다. 그리스어로 쓸모 있는 뜻을 지닌 이름의 오네시모는 골로새의 빌레몬이라는 신자에게서 도망친 노예였다. 분명히 오네시모는 빌로몬의 것을 도둑질해 도망쳤을 것이다. 바울이 로마에서 가택 연금을 당하고 있을 때 오네시모를 만났다. 바울의 전도로 그는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바울은 골로새 교회에 보내는 편지와 동시에 이 편지도 썼던 것 같다. 바울은 이 편지를 오네시모가 가지고 빌레몬에게 돌아가게 했다. 바울은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그의 집안에 다시 받아들여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오네시모를 노예가 아니라 주 안의 한 형제로 받아 달라고 호소했다. 이런 시가 있다. 행복 _허영자 눈이랑 손이랑 깨끗이 씻고 자알 찾아보면 있을 거야 깜짝 놀랄 만큼 신바람 나는 일이 어딘가 어딘가에 꼭 있을 거야 아이들이 보물찾기 놀이 할 때 보물을 감춰 두는 바위 틈새 같은 데에 나무 구멍 같은 데에 행복은 아기자기 숨겨져 있을 거야 행복을 찾는 일을 보물찾기 놀이와 같은 점도 있다. 행복은 생활 주변에 숨어 있는 것으로 순수하고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찾을 수 있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바울이 오네시모를 로마의 대도시에서 만난 것도 보물을 감춰 둔 바위 틈새 같은 데서 찾은 것과 다름없었다. 사실 그것은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였다. 2025-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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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 빌레몬서Phile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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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디도서Titus
- 작은교회들 디도서Titus는 바울이 디도에게 보내는 목회서신이다. 바울이 디도가 그리스도를 믿게 전도하고 주의 일을 하게 했다. 디모데처럼 디도는 바울의 특별한 조수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바울은 그 조수들을 사도를 대리하는 사역자들로 교회들에 보냈다. 이 짤막한 편지에서 바울은 디모데전서에서 썼던 것들과 비슷한 지시들을 하고 있다. 이런 시가 있다. 해바라기 씨 _정지용 해바라기 씨를 심자 담모퉁이 참새 눈 숨기고 해바라기 씨를 심자 누나가 손으로 다지고 나면 바둑이는 앞발로 다지고 괭이가 꼬리를 다진다 우리가 눈 감고 한 밤 자고 나면 이슬이 내려와 같이 자고 가고 우리가 이웃에 간 동안에 햇빛이 입 맞추고 가고 해바라기는 첫 시약씨인데 사흘이 지나도 부끄러워 고개를 아니 든다 가만히 엿보러 왔다가 소리를 깩 지르고 간 놈이 오오 사철나무 잎에 숨은 청개고리 고놈이다 해바라기 씨를 정성껏 심은 후에 싹을 트이기 위해 보살피듯 디도도 그렇게 하기를 바울은 권면한다. 우리가 선행으로 구원받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선행은 구원을 받으면 행하게 되는 체험 가운데 하나다. 분명히 크레테의 성도들은 믿음을 실천하기보다는 믿음을 고백하는 것을 더 좋아했던 것 같다. 디모데전서에서 바울은 지교회의 지도자들에 대해 강조한다. 반면에 디도서에서 바울은 지교회의 조직에 대해 강조한다. 바울은 감옥에서 풀려난 뒤 이 편지를 고린도에서 썼던 것 같다. 디도가 이 편지를 받았을 때 크레테에서 봉사하고 있었다. 2025-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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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디도서Tit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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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디모데후서2Thimothy
- 디모데후서2Thimothy는 바울의 편지들 가운데 마지막 편지이다. 이 편지가 특별한 관심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그것이 바울의 마지막 생활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그 편지의 수신인에 대해서도 알려주기 때문이다. 이런 시가 있다. 인디언 기도문 _노란 종달새 바람 속에 당신의 목소리가 있고 당신의 숨결이 세상 모든 만물에게 생명을 줍니다 나는 당신의 많은 자식들 가운데 작고 힘없는 아이입니다 내게 당신의 힘과 지혜를 주소서 나로 하여금 아름다움 안에서 걷게 하시고 내 두 눈이 오래도록 석양을 바라볼 수 있게 하소서 당신이 만든 물건들을 내 손이 존중하게 하시고 당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내 귀를 예민하게 하소서 당신이 내 부족 사람들에게 가르쳐 준 것들을 나 또한 알게 하시고 당신의 모든 나뭇잎 모든 돌 틈에 감춰 둔 교훈들을 나 또한 배우게 하소서 내 형제들보다 더 위대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장 큰 적인 내 자신과 싸울 수 있도록 내게 힘을 주소서 나로 하여금 깨끗한 손 똑바른 눈으로 언제라도 당신에게 갈 수 있도록 준비시켜 주소서 그래서 저 노을이 지듯이 내 목숨이 사라질 때 내 혼이 부끄럼없이 당신에게 갈 수 있게 하소서 바울은 63년 봄 로마의 가택 연금에서 풀려났다. 그는 아드리아해를 건너 마케도니아로 여행했다. 그는 빌립보, 에베소, 골로새, 라오디게아 등지를 방문했다. 로마의 대화재가 64년에 발생했다. 바울은 64년과 65년에 아마도 바다로 스페인에 갔던 것 같다. 66년 여름에 그는 소아시아의 에베소로 다시 가서 디모데에게 그곳의 관리를 맡기고 떠났다. 67년 여름에 그는 마케도니아에서 디모데에게 편지를 썼고 빌립보와 고린도를 방문했던 것 같다. 그는 지중해의 섬 크레테로 가서 디도를 남기고 떠났다. 그는 67년 가을에 에베소에서 디도에게 편지를 썼다. 그리고 그는 밀레도, 드로아, 고린도 등지를 방문하고 니고볼리에 얼마 동안 머물렀다. 바울은 5년의 자유를 누리고 68년 봄 구리 세공업자 알렉산더의 고발 때문에 다시 체포되었던 것 같다. 그는 재판을 받기 위해 로마로 압송되었다. 그는 로마에서 지하 감옥의 독방에 갇혔다. 그곳에서 그는 다시 풀려나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결국 처형당했다. 그는 죽음과 그의 사역의 마지막과 그의 대부분의 친구들의 배신과 처형의 두려움을 마주하며 이 편지를 그의 사랑하는 영적인 아들 디모데에게 썼다. 이 편지는 디모데에게 주 안에서 언제나 강하게 있으라는 격려와 위험의 때를 알리는 설명과 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빨리 오라는 재촉이 담겨 있다. 아주 개인적인 사연을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편지는 교회를 돌보는 목회 사역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바울은 이제 주의 목소리를 통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알았다. 모든 희생 제사는 희생 제물의 머리에 술을 붓는 신주神酒로 시작한다. 바울은 로마의 지하 감옥에서 그 술처럼 하나님의 제단에 이미 부어진 자신의 마지막을 예감했다. 그래서 인디언 기도문처럼 저 노을이 지듯이 자기 목숨이 사라질 때를 바라보며 바울은 디모데에게 너는 겨울 전에 어서 오라 부탁한다. 이 말씀은 기회들이 우리를 언제나 기다려주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 겨울철이 일단 시작되면 디모데는 로마로 쉽게 여행할 수 없었고 그의 사랑하는 영적인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볼 수 없었다. 영원히 사라질 수 있는 기회를 당신이 오늘 무시하는 것이 있는가. 당신이 만나야 될 사람이 있고 결정해야 될 일들이 있는가. 오늘은 당신의 것이다. 내일은 너무 늦을지도 모른다. 성경은 당신에게 겨울 전에 어서 오라 말씀한다. 2025-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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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디모데후서2Thimot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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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디모데전서1Timothy
- 디모데전서1Timothy는 디모데후서와 디도서를 포함한 세 목회서신pastoral letter들 가운데 하나다. 바울은 이 목회서신에서 목사들과 교회 지도자들이 지교회에서 어떻게 행동하고 지도해야 할지를 권면한다. 첫째 바울은 진리를 설교할 것을 강조한다. 둘째 바울은 자격을 갖춘 지도자들을 임명할 것을 지시한다. 셋째 바울은 교회의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어떻게 보살펴야 할지를 가르친다. 이런 시가 있다. 종례시간 _도종환 얘들아 곧장 집으로 가지 말고 코스모스 갸웃갸웃 얼굴 내밀며 손 흔들든 너희도 코스모스에게 손 흔들어 주며 가라 쉴 곳 만들어 주는 나무들 한 번씩 안아 주고 가라 머리털 하얗게 셀 때까지 아무도 벗해 주지 않던 강아지풀 말동무해 주다 가라 얘들아 곧장 집으로 가 만질 수도 없고 향기도 나지 않는 공간에 빠져 있지 말고 구름이 하늘에다 그린 크고 넓은 화폭 옆에 너희 좋아하는 짐승들도 그려 넣고 바람이 해바라기에 그러듯 과꽃 분꽂에 입 맞추다 가라 이 시는 어느 교사가 종례시간에 아이들게 전달하는 말로 되어 있다. 하굣길에 아이들이 잘 귀가하기를 바라는 선생의 마음속에 자연 친화적인 삶의 태도와 아이들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 잘 나타난다. 지교회에서 장로들을 세우는 기초를 말하는 디모데전서는 교회의 신자들을 성직에 세우기 위한 사도의 목회지침서다. 본질적으로 디모데전서는 교회 조직과 행정을 설명하는 목회자 교범이다. 바울의 말씨는 실제적이고 영적이다. 그 주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에서 필요한 목회 지침이다. 2025-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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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디모데전서1Timot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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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데살로니가후서2Thessalonians
- 사가랴의 집 기둥 데살로니가후서2Thessalonians는 바울이 데살로니가교회에 보내는 두 번째 편지이다. 데살로니가전서를 보내고 얼마 안 있어 짧게 쓴 것 같다. 그곳의 소식이 바로 답장을 보내야만 했을 것이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신앙과 사랑에 힘을 얻고 다른 교회들에 자랑을 했다. 이런 시가 있다. 일찍 일어나는 새 _쉘 실버스타인 당신이 새라면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한다 그래야 벌레를 잡아먹을 수 있을 테니까 만일 당신이 새라면 아침에 일찍 일어나라 하지만 만일 당신이 벌레라면 아주 늦게 일어나야 하겠지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박해를 받을 때 서로 사랑하고 돌보았다. 바울은 하나님이 그들의 박해자들에게 갚아주실 것이라는 사실을 그들에게 되새겨 준다. 바울은 이 교회에서 되풀이되는 두 가지 문제들에 대해서도 권면을 했다. 첫 번째 문제는 주께서 벌써 재림하셨다는 것에 대한 그들의 관심이었다. 그래서 바울은 2장 2절에서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해서 쉽게 마음이 흔들리거나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고 권면한다. 두 번째 문제는 그들의 게으름이었다. 그래서 바울은 3장 10절에서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고 권면한다. 그러므로 아무리 믿음이 좋고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신자라도 일을 하든지 아니면 먹지 않든지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 그들이 새라면 일찍 일어나야 하고 벌레라면 늦게 일어나야 할 것이다. 2025-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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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데살로니가후서2Thessaloni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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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히브리서Hebrews
- 베들레헴 히브리서Hebrews는 그리스도의 충만을 버리고 옛 생활의 공허 속으로 돌아가려는 유대인 신자들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구원받은 사람들은 그들의 영적 유산 가나안에 들어가 주의 평안을 누릴 특권이 있다. 이런 시가 있다. 실 _월리엄 스태포드 네가 따르는 한 가닥 실이 있다 그 실은 변화하는 것들 사이로 지나간다 하지만 그 실은 변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네가 무엇을 따라가는지 궁금해 할 것이다 너는 그 실에 대하여 설명해야 한다 그러나 사람들에게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 실을 붙잡고 있는 한 너는 길을 잃지 않는다 비극은 일어나기 마련이고 사람들은 상처입거나 죽는다 그리고 너는 고통 받고 늙어간다 시간이 하는 일을 너는 어떻게도 막을 수 없다 그래도 그 실은 절대로 놓지 말라 히브리서가 강조하는 것은 우리의 삶에서 절대 놓아서는 안 될 실 같은 '믿음으로by faith'이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받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믿음으로 살기도 해야 한다. 히브리서 1장 1절과 2절은 이렇게 말씀한다. 하나님께서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번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시고 이 마지막 날들에는 그의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은 천국에 올라가는 것의 표상이 아니다. 그것은 적을 정복하고 믿음으로 당신의 영적 유산을 요구하는 것의 비유이다. 그러나 너무도 많은 사람이 구약의 이스라엘인들처럼 불신앙의 광야에서 방황을 하고 옛 생활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스펄전 목사가 이런 말을 했다. 진리의 실들을 가지고만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그 실들을 가지고 영광의 겉옷을 짜셨다. 그는 그 옷을 입으시고 하나님의 모든 진리를 주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다. 우리는 그 말씀에 응답해야 한다. 우리의 응답이 우리가 사는 삶의 종류를 결정하고 우리가 요구하는 영적 유산의 분량을 결정한다. 이 심오한 편지를 묵상할 때 스스로 이렇게 물어야 한다. 나는 옛 생활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가. 나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나의 유산을 믿음으로 열심히 요구하고 있는가. 나는 불신앙의 광야를 방황하고 있는가. 아니면 주의 성취하신 일과 신실하신 말씀 안에서 평안을 누리고 있는가. 2025-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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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히브리서Hebr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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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 빌레몬서Philemon
- 작은 교회들 빌레몬서Philemon는 그리스도인들의 화해와 관계에 대한 편지이다. 그리스어로 쓸모 있는 뜻을 지닌 이름의 오네시모는 골로새의 빌레몬이라는 신자에게서 도망친 노예였다. 분명히 오네시모는 빌로몬의 것을 도둑질해 도망쳤을 것이다. 바울이 로마에서 가택 연금을 당하고 있을 때 오네시모를 만났다. 바울의 전도로 그는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바울은 골로새 교회에 보내는 편지와 동시에 이 편지도 썼던 것 같다. 바울은 이 편지를 오네시모가 가지고 빌레몬에게 돌아가게 했다. 바울은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그의 집안에 다시 받아들여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오네시모를 노예가 아니라 주 안의 한 형제로 받아 달라고 호소했다. 이런 시가 있다. 행복 _허영자 눈이랑 손이랑 깨끗이 씻고 자알 찾아보면 있을 거야 깜짝 놀랄 만큼 신바람 나는 일이 어딘가 어딘가에 꼭 있을 거야 아이들이 보물찾기 놀이 할 때 보물을 감춰 두는 바위 틈새 같은 데에 나무 구멍 같은 데에 행복은 아기자기 숨겨져 있을 거야 행복을 찾는 일을 보물찾기 놀이와 같은 점도 있다. 행복은 생활 주변에 숨어 있는 것으로 순수하고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찾을 수 있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바울이 오네시모를 로마의 대도시에서 만난 것도 보물을 감춰 둔 바위 틈새 같은 데서 찾은 것과 다름없었다. 사실 그것은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였다. 2025-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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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 빌레몬서Phile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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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디도서Titus
- 작은교회들 디도서Titus는 바울이 디도에게 보내는 목회서신이다. 바울이 디도가 그리스도를 믿게 전도하고 주의 일을 하게 했다. 디모데처럼 디도는 바울의 특별한 조수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바울은 그 조수들을 사도를 대리하는 사역자들로 교회들에 보냈다. 이 짤막한 편지에서 바울은 디모데전서에서 썼던 것들과 비슷한 지시들을 하고 있다. 이런 시가 있다. 해바라기 씨 _정지용 해바라기 씨를 심자 담모퉁이 참새 눈 숨기고 해바라기 씨를 심자 누나가 손으로 다지고 나면 바둑이는 앞발로 다지고 괭이가 꼬리를 다진다 우리가 눈 감고 한 밤 자고 나면 이슬이 내려와 같이 자고 가고 우리가 이웃에 간 동안에 햇빛이 입 맞추고 가고 해바라기는 첫 시약씨인데 사흘이 지나도 부끄러워 고개를 아니 든다 가만히 엿보러 왔다가 소리를 깩 지르고 간 놈이 오오 사철나무 잎에 숨은 청개고리 고놈이다 해바라기 씨를 정성껏 심은 후에 싹을 트이기 위해 보살피듯 디도도 그렇게 하기를 바울은 권면한다. 우리가 선행으로 구원받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선행은 구원을 받으면 행하게 되는 체험 가운데 하나다. 분명히 크레테의 성도들은 믿음을 실천하기보다는 믿음을 고백하는 것을 더 좋아했던 것 같다. 디모데전서에서 바울은 지교회의 지도자들에 대해 강조한다. 반면에 디도서에서 바울은 지교회의 조직에 대해 강조한다. 바울은 감옥에서 풀려난 뒤 이 편지를 고린도에서 썼던 것 같다. 디도가 이 편지를 받았을 때 크레테에서 봉사하고 있었다. 2025-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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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디도서Tit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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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디모데후서2Thimothy
- 디모데후서2Thimothy는 바울의 편지들 가운데 마지막 편지이다. 이 편지가 특별한 관심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그것이 바울의 마지막 생활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그 편지의 수신인에 대해서도 알려주기 때문이다. 이런 시가 있다. 인디언 기도문 _노란 종달새 바람 속에 당신의 목소리가 있고 당신의 숨결이 세상 모든 만물에게 생명을 줍니다 나는 당신의 많은 자식들 가운데 작고 힘없는 아이입니다 내게 당신의 힘과 지혜를 주소서 나로 하여금 아름다움 안에서 걷게 하시고 내 두 눈이 오래도록 석양을 바라볼 수 있게 하소서 당신이 만든 물건들을 내 손이 존중하게 하시고 당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내 귀를 예민하게 하소서 당신이 내 부족 사람들에게 가르쳐 준 것들을 나 또한 알게 하시고 당신의 모든 나뭇잎 모든 돌 틈에 감춰 둔 교훈들을 나 또한 배우게 하소서 내 형제들보다 더 위대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장 큰 적인 내 자신과 싸울 수 있도록 내게 힘을 주소서 나로 하여금 깨끗한 손 똑바른 눈으로 언제라도 당신에게 갈 수 있도록 준비시켜 주소서 그래서 저 노을이 지듯이 내 목숨이 사라질 때 내 혼이 부끄럼없이 당신에게 갈 수 있게 하소서 바울은 63년 봄 로마의 가택 연금에서 풀려났다. 그는 아드리아해를 건너 마케도니아로 여행했다. 그는 빌립보, 에베소, 골로새, 라오디게아 등지를 방문했다. 로마의 대화재가 64년에 발생했다. 바울은 64년과 65년에 아마도 바다로 스페인에 갔던 것 같다. 66년 여름에 그는 소아시아의 에베소로 다시 가서 디모데에게 그곳의 관리를 맡기고 떠났다. 67년 여름에 그는 마케도니아에서 디모데에게 편지를 썼고 빌립보와 고린도를 방문했던 것 같다. 그는 지중해의 섬 크레테로 가서 디도를 남기고 떠났다. 그는 67년 가을에 에베소에서 디도에게 편지를 썼다. 그리고 그는 밀레도, 드로아, 고린도 등지를 방문하고 니고볼리에 얼마 동안 머물렀다. 바울은 5년의 자유를 누리고 68년 봄 구리 세공업자 알렉산더의 고발 때문에 다시 체포되었던 것 같다. 그는 재판을 받기 위해 로마로 압송되었다. 그는 로마에서 지하 감옥의 독방에 갇혔다. 그곳에서 그는 다시 풀려나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결국 처형당했다. 그는 죽음과 그의 사역의 마지막과 그의 대부분의 친구들의 배신과 처형의 두려움을 마주하며 이 편지를 그의 사랑하는 영적인 아들 디모데에게 썼다. 이 편지는 디모데에게 주 안에서 언제나 강하게 있으라는 격려와 위험의 때를 알리는 설명과 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빨리 오라는 재촉이 담겨 있다. 아주 개인적인 사연을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편지는 교회를 돌보는 목회 사역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바울은 이제 주의 목소리를 통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알았다. 모든 희생 제사는 희생 제물의 머리에 술을 붓는 신주神酒로 시작한다. 바울은 로마의 지하 감옥에서 그 술처럼 하나님의 제단에 이미 부어진 자신의 마지막을 예감했다. 그래서 인디언 기도문처럼 저 노을이 지듯이 자기 목숨이 사라질 때를 바라보며 바울은 디모데에게 너는 겨울 전에 어서 오라 부탁한다. 이 말씀은 기회들이 우리를 언제나 기다려주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 겨울철이 일단 시작되면 디모데는 로마로 쉽게 여행할 수 없었고 그의 사랑하는 영적인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볼 수 없었다. 영원히 사라질 수 있는 기회를 당신이 오늘 무시하는 것이 있는가. 당신이 만나야 될 사람이 있고 결정해야 될 일들이 있는가. 오늘은 당신의 것이다. 내일은 너무 늦을지도 모른다. 성경은 당신에게 겨울 전에 어서 오라 말씀한다. 2025-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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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디모데후서2Thimot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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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디모데전서1Timothy
- 디모데전서1Timothy는 디모데후서와 디도서를 포함한 세 목회서신pastoral letter들 가운데 하나다. 바울은 이 목회서신에서 목사들과 교회 지도자들이 지교회에서 어떻게 행동하고 지도해야 할지를 권면한다. 첫째 바울은 진리를 설교할 것을 강조한다. 둘째 바울은 자격을 갖춘 지도자들을 임명할 것을 지시한다. 셋째 바울은 교회의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어떻게 보살펴야 할지를 가르친다. 이런 시가 있다. 종례시간 _도종환 얘들아 곧장 집으로 가지 말고 코스모스 갸웃갸웃 얼굴 내밀며 손 흔들든 너희도 코스모스에게 손 흔들어 주며 가라 쉴 곳 만들어 주는 나무들 한 번씩 안아 주고 가라 머리털 하얗게 셀 때까지 아무도 벗해 주지 않던 강아지풀 말동무해 주다 가라 얘들아 곧장 집으로 가 만질 수도 없고 향기도 나지 않는 공간에 빠져 있지 말고 구름이 하늘에다 그린 크고 넓은 화폭 옆에 너희 좋아하는 짐승들도 그려 넣고 바람이 해바라기에 그러듯 과꽃 분꽂에 입 맞추다 가라 이 시는 어느 교사가 종례시간에 아이들게 전달하는 말로 되어 있다. 하굣길에 아이들이 잘 귀가하기를 바라는 선생의 마음속에 자연 친화적인 삶의 태도와 아이들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 잘 나타난다. 지교회에서 장로들을 세우는 기초를 말하는 디모데전서는 교회의 신자들을 성직에 세우기 위한 사도의 목회지침서다. 본질적으로 디모데전서는 교회 조직과 행정을 설명하는 목회자 교범이다. 바울의 말씨는 실제적이고 영적이다. 그 주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에서 필요한 목회 지침이다. 2025-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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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데살로니가후서2Thessalonians
- 사가랴의 집 기둥 데살로니가후서2Thessalonians는 바울이 데살로니가교회에 보내는 두 번째 편지이다. 데살로니가전서를 보내고 얼마 안 있어 짧게 쓴 것 같다. 그곳의 소식이 바로 답장을 보내야만 했을 것이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신앙과 사랑에 힘을 얻고 다른 교회들에 자랑을 했다. 이런 시가 있다. 일찍 일어나는 새 _쉘 실버스타인 당신이 새라면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한다 그래야 벌레를 잡아먹을 수 있을 테니까 만일 당신이 새라면 아침에 일찍 일어나라 하지만 만일 당신이 벌레라면 아주 늦게 일어나야 하겠지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박해를 받을 때 서로 사랑하고 돌보았다. 바울은 하나님이 그들의 박해자들에게 갚아주실 것이라는 사실을 그들에게 되새겨 준다. 바울은 이 교회에서 되풀이되는 두 가지 문제들에 대해서도 권면을 했다. 첫 번째 문제는 주께서 벌써 재림하셨다는 것에 대한 그들의 관심이었다. 그래서 바울은 2장 2절에서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해서 쉽게 마음이 흔들리거나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고 권면한다. 두 번째 문제는 그들의 게으름이었다. 그래서 바울은 3장 10절에서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고 권면한다. 그러므로 아무리 믿음이 좋고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신자라도 일을 하든지 아니면 먹지 않든지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 그들이 새라면 일찍 일어나야 하고 벌레라면 늦게 일어나야 할 것이다. 2025-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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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데살로니가후서2Thessaloni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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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데살로니가전서1Thessalonians
- 사가랴의 마을 데살로니가전서1Thessalonians는 디모데가 데살로니가 교회의 진행 상황을 보고한 것에 대해 바울이 고린도에서 보낸 답장이다. 데살로니가Thessalonica는 오늘의 살로니가Salonica today 라는 뜻이다. 바울 당시에 데살로니가는 마케도니아의 수도였다. 이런 시가 있다. 여행 _잘란루딘 루미 여행은 힘과 사랑을 그대에게 돌려준다 어디든 갈 곳이 없다면 마음의 길을 따라 걸어가 보라 그 길은 빛이 쏟아지는 통로처럼 걸음마다 변화하는 세계 그곳을 여행할 때 그대는 변화하리라 사도 바울은 한 마케도니아 사람이 도움을 요청하는 환상을 본 뒤에 이 중요한 로마의 항구 데살로니가로 이끌림을 받았다. 바울은 믿음의 길을 따라 걸어간 그의 제2차 선교여행 때 실라와 디모데와 함께 데살로니가에 교회를 세웠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에 교회를 세운 뒤 환상의 길을 따르는 선교여행을 위해 떠나야 했다. 바울의 데살로니가에서의 봉사 기간은 한 달 남짓 되었다. 그러나 주께서 큰일을 하셨다. 그리고 데살로니가 교회의 증언은 멀리 가고 넓게 퍼졌다. 데살로니가서는 그리스도의 오심과 그것이 우리의 삶에 나타나야 하는 실제적인 효과를 강조한다. 2024-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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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데살로니가전서1Thessaloni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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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골로새서Colossians
- 사마리아 우물마을 골로새서Colossians는 바울이 전도한 에바브라가 골로새 Colosse에 세운 교회에 보낸 편지이다. 골로새는 라오디게아에서 남동쪽으로 약 19킬로미터 떨어져 있고 에베소에서 유프라테스 강으로 가는 큰길 근처에 있었다. 골로새에 가본 적이 없는 바울은 로마에 갇혀 있는 동안 잘못된 교리들이 골로새 교회에 침투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모든 철학과 전통을 초월하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시고 모든 피조물의 장남이심을 골로새서 1:15에서 강조한다. 이런 시가 있다. 진리에 대하여 _벨포 경 우리가 최상의 진리라고 여기는 것은 절반의 진리에 불과하다 어떤 진리에도 머물지 말라 그것을 다만 한 여름 밤을 지낼 천막으로 여기고 그곳에 집을 짓지 말라 왜냐하면 그 집이 당신의 무덤이 될 테니까 그 진리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할 때 그 진리에 반박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 슬퍼하지 말고 오히려 감사히 여기라 그것은 침구를 거두어 떠나라는 신의 속삭임이니까 이 시는 진리에 대하여 말하지만 실제로는 어떤 진리도 존재하지 않는다. 뉴에이지 운동이 바로 이런 식의 논리를 주장한다. 골로새서는 오늘날의 이른바 동서양의 사상을 혼합한 뉴에이지 운동에 대한 완벽한 답변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골로새서의 주요 주제는 그리스도의 우월성이다. 거짓 교사들이 그리스도가 하나님에게서 나온 몇 실체들 가운데 한 실체라고 가르쳤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리스도교 진리를 유대의 율법주의와 동방의 신비주의와 혼합했다.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신자들은 완전하고 그들이 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충만이 있다고 확증하기 때문이다. 에베소서와 골로새서를 같은 시기에 바울이 썼기 때문에 유사한 구절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에베소서는 몸인 교회를 강조한다. 반면에 골로새서는 몸의 머리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강조한다. 그러면서 두 서신은 서로를 보완해 준다. 2024-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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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골로새서Colossi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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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빌립보서Philippians
- 바울 감옥 빌립보서Philippians는 바울이 빌립보Philippi교회에 보낸 기쁨과 감사가 넘쳐흐르는 편지다. 바울의 제2차 선교여행 때 세워진 그 교회는 바울에게 진실로 기쁨의 원천이었기 때문이다. 바울이 로마에서 죄수로 갇혀 있다는 소식을 들은 빌립보교회 신자들은 특별한 사랑의 예물을 바울에게 보냈고 바울은 감사의 편지를 썼다. 또한 바울은 빌립보교회의 메신저 에바브로디도가 늦어지는 이유와 신자들의 교회의 화합을 위한 협력을 격려하는 글도 썼다. 자신의 어려운 형편들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주 안에서 기뻐하고 그의 편지를 읽는 신자들도 그렇게 하기를 요구했다. 이런 시가 있다. 사이치에게 남은 것 _아사하라 사이치 사이치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네 기쁨에 가득 찬 심장 말고는 그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없이 모든 것이 그에게서 떠나갔네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네 아무것도 갖지 않음 얼마나 완벽한 만족인가 빌립보서의 가장 중요한 주제는 예수그리스도와 복음의 사역이다. 그리스도는 복음 사역의 본보기와 동기와 수단이 되실 뿐만 아니라 메시지이시기도 하다. 또한 빌립보서 전체에 깔려 있는 주의 기쁨은 그리스도인의 사역과 봉사의 원천이다. 그로 말미암아 신자에게 그리스도 외에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은 것은 얼마나 완전한 기쁨인가. 2024-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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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빌립보서Philippi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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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에베소서Ephesian
- 에베소의 부유한 도시 에베소서Ephesians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위한 하나님의 영원하신 구원 계획을 설명하기 위해 에베소Ephesus 주변의 교회들에 보낸 편지이다. 바울은 이것을 구속의 일로 설명한다. 구속의 일은 부활과 화해다. 에베소는 로마 제국의 중요한 도시였고 다이아나 신전의 관리자인 것을 자랑했다. 이 신전은 고대 세계의 7대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였다. 에베소는 우상숭배에 열심인 도시였다. 제2차 선교여행 때 바울은 에베소를 방문하고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를 그곳에 남겨두었다. 그는 2년 뒤 에베소에 돌아와 3년간 에베소 교회를 섬겼다. 바울이 로마에서 죄수로 몇 년 지낸 뒤 에베소 신자들에게 이 편지를 썼다. 이런 시가 있다. 비 _황인숙 아 저 하얀 무수한 맨종아리들 찰박거리는 맨발들 찰박 찰박 찰박 맨발들 맨발들 맨발들 맨발들 쉬지 않고 찰박 걷는 티눈 하나 없는 작은 발들 맨발로 끼어들고 싶게 하는 이 시는 빗방울이 땅에 떨어지는 모습을 맨발들이 찰박거리는 것에 빗대어 표현하면서 그 속에 뛰어들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그렇듯 바울은 구원의 예정과 은혜를 설명하면서 그리스도인의 삶에 뛰어들고 싶게 한다. 에베소서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교리와 의무, 그리고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 사이의 균형을 강조한다. 우리가 하나님에게 순종하면 그는 우리에게 그의 은혜를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미 받은 은혜에 대한 반응으로 하나님에게 마땅히 순종해야 할 것이다. 2024-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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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리틀메시지 _에베소서Ephesi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