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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굳뉴스] 총신의 달과 토끼
    달의 지형 차이로 생기는 그림자가 토끼를 닮았다고 해서 달과 토끼는 간혹 같은 의미로 쓰인다. 특히 달 속 그림자는 옥토끼가 전설상의 영약(靈藥)을 절구에 찧는 모습이라고 여겨져 곧잘 사람들의 상상력도 자극했다. 성어와 고사에 등장하는 토끼가 적잖다. 우선 날쌘 토끼가 죽으면 그를 잡던 사냥개는 곧 솥에서 삶긴다는 토사구팽(兎死狗烹)이 참 유명하다. 영리한 토끼는 굴을 세 개 파서 언젠가 닥칠지 모를 위기에 대응한다는 교토삼굴(狡兎三窟)의 고사도 잘 알려져 있다. 요즘 중국인들은 “토끼는 제 굴 주변의 풀은 뜯지 않는다”는 속언을 잘 쓴다. ‘제 살 깎아 먹기’를 경계하는 말이다. 토끼는 위기 대비용 플랜 B, C를 마련해두는 교토삼굴(狡兎三窟)의 영리한 동물이다. 시튼(Ernest Thompson Seton, 1860년 8월 14일 ~ 1946년 10월 23일 )의 '동물기'에 '달려라, 솜꼬리토끼' 이야기가 나온다. 여우가 토끼를 발견하고 한 끼 때우기 위해 냅다 달린다. 토끼는 낌새를 알아차리고 도망간다. 여우는 전력질주해 한걸음에 토끼를 낚아챌 찰라다. 순간 토끼가 급 좌회전해 방향을 틀어 달린다. 무제한 속도로 직진하던 여우는 미처 발견하지 못한 목장 철조망에 몸을 처박는다. 토끼는 유유히 사라진다. 그렇듯 욕심에 끌려 대장동 패거리처럼 제 꾀에 제가 넘어가는 건 늘 인간이다. 그런 부류의 인간이 간교하게 총신을 휘어잡고 총회까지 분탕질(아주 야단스럽고 부산하게 소동을 일으키는 짓)을 하려고 했다. 2020년 9월 18일 총신재단이사회는 김영우 총장 시절 개정해 총신 사태의 원인이 된 총신대 정관 제20조 <임원의 선임방법> 1항 ‘성경과 개혁신학에 투철한 목사 및 장로 중에서 선임’을 ‘본 총회에 소속된 세례교인 중에서 선임’으로 개정했다. 또한 총신재단이사회는 총장을 당연직 이사에 포함시켰다. 이런 짓을 획책한 당사자는 그 일로 총신과 총회에서 사라지는 말로(末路)를 스스로 선택했다. 현대 신앙인의 삶에서 기본 중 기본은 사실성과 합리성이다. 우리는 사실과 합리성이 창출하는 양식(良識)으로 중세의 어둠을 부수고 현대 신앙인으로 승격한다. 사실의 준엄함을 부인하면서 의인(義人)을 자처하는 사람은 중세의 포로다. 윤석열 대통령과 축구 선수 손흥민과 메시는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는 삶의 교훈을 증명한다. 화려한 개인기보다 중요한 것은 협업이고 팀플레이다. 작은 것들에 성실할 때 기본이 닦이고 큰 것이 이루어진다. 역지사지(易地思之: 처지를 바꾸어 생각하는 것)가 창조하는 사회적 신뢰와 관용이 르상티망(resentment:라틴어 집중 접두사에서 '다시 re' 그리고 '감정 느낌 sentment'을 합쳐 원한이라는 뜻을 가지게 된 프랑스어)을 치유한다. 사실과 합리성을 나침반 삼아 창공의 별을 바라볼 때 잃어버린 기쁨이 회복된다. 증오와 절망에 굴복하지 않는 것은 모든 살아남은 자의 의무다. 인간은 언제나 도상(途上)에서 고투(苦鬪)하는 존재다. 소망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 지금 그리고 여기, 우리가 하나님 은혜 속에 살아가는 일상다반사(日常茶飯事:날마다 차를 마시고 밥을 먹는 일)에 있다. 성경은 말씀한다.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오직 피차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좇으라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5:15-18 2025-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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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1-12
  • [더굳뉴스] 길자연 목사와 안개
    무진기행은 김승옥이 1975년 잡지 <사상계>에 1964년 발표한 단편 소설이다. 소설 제목에 인용된 무진(霧津)이라는 도시는 실재하지 않으며, 작가의 고향인 전남 순천을 모델로 하여 설정된 가상의 도시이다. 그 소설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무진으로 가는 버스 버스가 산모퉁이를 돌아갈 때 나는 '무진 Mujin 10km'라는 이정비(里程碑)를 보았다. 그것은 옛날과 똑같은 모습으로 길가의 잡초 속에서 튀어나와 있었다. 내 뒷좌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다시 시작된 대화를 나는 들었다. "앞으로 십킬로 남았군요.""예, 한 삼십분 후에 도착할 겁니다.""무진엔 명산물이…… 뭐 별로 없지요?""별게 없지요. 그러면서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건 좀 이상스럽거든요.""원, 아무리 그렇지만 한 고장에 명산물 하나쯤은 있어야지." 무진에 명산물이 없는 게 아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것은 안개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면, 밤사이에 진주해 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삥 둘러싸고 있는 것이었다. 무진을 둘러싸고 있던 산들도 안개에 의하여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유배당해 버리고 없었다. 안개는 마치 이승에 한(恨)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女鬼)가 뿜어 내놓은 입김과 같았다. 해가 떠오르고, 바람이 바다 쪽에서 방향을 바꾸어 불어오기 전에는 사람들의 힘으로써는 그것을 헤쳐 버릴 수가 없었다. 손으로 잡을 수 없으면서도 그것은 뚜렷이 존재했고 사람들을 둘러쌌고 먼 곳에 있는 것으로부터 사람들을 떼어놓았다. 안개, 무진의 안개, 무진의 아침에 사람들이 만나는 안개, 사람들로 하여금 해를, 바람을 간절히 부르게 하는 무진의 안개, 그것이 무진의 명산물이 아닐 수 있을까! 2023년 9월 1일 영성목회연구회(총재 길자연 목사)가 제27회 전국목회자부부수련회를 십자수기도원(길요나 목사)과 2일 대신대학교에서 연이어 개최했다. 수련회 주제는 ‘이 시대를 이끄는 영성! 강하고 담대하라!’로, 영성목회연구회 소속 목회자 부부들은 예배와 강의를 통해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영성 회복을 다짐했다. 내 뇌리에는 총회장, 총장 등의 직함보다 목사가 가장 어울리는 1998년 제83회 총회장, 칼빈과 총신 전 총장, 그리고 한기총 3연속 회장 길자연 목사의 얼굴에 회심의 미소가 감돌고 결연한 눈빛으로 차창 밖을 응시하던 모습이 아련하다. 총회의 바람과 구름을 몰고 다니던 풍운아 허활민 목사의 시절, 2016년 3월 27일 부활주일에도 담임목사가 상주하지 않는 서천읍 교회 사택 마당을 들여다본다. 누군가 마당에 꽃밭을 가꾸었나. 주인이 뜨문뜨문 들르는 그 마당에 봄이라고 꽃들이 피어 있다. 슬며시 주인 없는 교회 사택 마당에 들어가 꽃으로 서본다. 텅 빈 바람이 마음을 헤집고 가슴을 아리게 한다. 과거는 현재에 의해 다시 쓰여진다. 상처의 과거가 꽃의 현재로 치환되는 순간 주님의 몸된 교회는 꽃 천지가 된다. 주체를 바꾸고 교회를 변화시키는 것, 꽃을 피우시기 위해 부활하신 주님의 힘이다. 그의 말과 행동은 언제 한번 그의 교회와 삶에서 개혁신학을 보여 준 적이 없다. 그럼에도 총회 법과 정치에 능통한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총신총장으로서 부총회장 후보로 추대 받았지만 총회도 총신도 안개 지나가듯 다 잃은 김영우 목사가 말했었다. "하나님께서 이번에 나와 함께 하셔서 총회를 섬기게 해주신다면 총회가 개혁신학을 지킬 수 있게 하고 대내외적으로 우리 총회의 위상을 세우며 품격 있는 총회가 되도록 열과 성의를 다하겠다." "나니와(오사카의 영화)도 꿈 속의 꿈"은 일본의 통일영웅인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1537년 3월 17일 ~ 1598년 9월 18일)가 죽음을 앞두고 남긴 마지막 말로, 오사카(나니와)의 영화가 꿈속의 또 다른 꿈처럼 덧없다는 허무함과 인생의 무상함을 노래한 시다. 이는 그가 권력을 잡고 이룬 덧없는 성공과 영화(榮華)를 성찰하며 모든 것이 결국 사라지는 이슬과 같다는 심경을 표현한 것이다. 2022년 4월 19일 왕성교회에서 길자연 목사의 팔순과 <목회보감> 출판을 축하하기 위한 예배에서 증경 총회장 소강석 목사가 축시를 낭독했으며 최병남 원로목사(대전중앙교회), 박종순 원로목사(충신교회), 이영훈 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 유의웅 원로목사(도림교회), 이용남 원로목사(장석교회), 김영우 목사가 축사와 격려사를 전하고 인천만민교회 하귀호 원로목사가 행사를 위해 기도했다고 기독신문이 전한다. 그때 길자연 목사가 깊은 울림의 소리로 말했다고 한다. “돌이켜보니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항상 마음 속에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기도에 전념하는 것이 나에게 남겨진 사명입니다.” 성경은 말씀한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약 4:14 2025-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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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1-01
  • [더굳뉴스] 총회 부패 실정(失政)의 책임
    사익에 대한 열망, 독선과 결합하면 파국의 카운트다운(countdown 마지막 점검)에 들어가 총회 눈귀 흐리는 부정 부패 난제 해결 주역은 결국 신앙과 청지기 의식 교계 언론은 자체 이익보다 팩트 전해야 부정직한 직원에게 공통된 점은 권력과 사욕의 압력과 유혹 속에서 보인 ‘신앙에 대한 무시’ 위계(僞計)는 속임수나 상대방에게 오인, 착각, 부지를 일으키고 상대방의 그러한 심적 상태를 이용하여 불법한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다. 예컨대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에 있어서 ‘위계’란 행위자의 행위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상대방에게 오인, 착각, 부지를 일으키게 하여 그 오인, 착각, 무지를 이용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상대방이 이에 따라 그릇된 행위나 처분을 하였다면 이 죄가 성립한다. 납골당 18년 적폐 해결자 정금 총회장 김종준 목사 때인 2020년 3월 23일 분립 된 중앙노회(노회장:김용제 목사)는 2023년 8월 11일 서울 연지동 기독교연합회관 카페 마레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총회임원회(총회장:권순웅 목사)에 총회 행정 문서 불법 유출에 대한 공정하고 투명한 조사를 촉구했다. 본 교단 기관지 주간 기독신문은 그에 관한 기사를 다음과 같이 게재했다. 기자회견에서 중앙노회장 김용제 목사는 지난 2022년 12월 30일 총회 전체 휴무일에 “불상의 인물이 총회사무실에 침입해 총회 전산망에 접속하여 중앙노회 52회 1차 임시회(2021년 8월 31일)에서 재가입과 해벌이 결의된 이바울 목사의 개인신상 파일 화면을 불법으로 촬영해 사법에 제출했다”라며 해당 자료를 공개했다. 해당 자료는 총회 전산망에서 노회 관리에 분류된 자료 중 ‘회원 정보 등록 관리’ 카테고리 내 ‘면직/제명 등록 관리’ 페이지로 이바울 목사가 2019년 7월 30일 자로 면직 처리된 홈페이지의 캡처 화면이다. 이와 관련 중앙노회 측은 “총회 결의와 노회 간 합의를 근거로 혜린교회(이바울 목사)는 중앙노회로 가입하고 정당한 절차를 거쳐 총회 전산 등재를 요청했으나 미루는 이유는 분명하지 않으며 계속 미루다가 급기야 총회사무실 불법 침입에 개인정보 유출 사건까지 이르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총회임원회는 지난 7월 27일 제28차 임원회에서 중앙노회에서 청원한 총회 행정 문서 불법 유출 및 이바울 목사와 혜린교회 소속 확인 요청을 부서기와 부회록서기에 맡겨 확인하기로 결정했다. 2022년 12월 30일 총회 전체 휴무일에 “불상의 인물이 총회사무실에 침입해 자행한 이 범행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총회 본부의 유력한 직원들이 했을 것이라는 말이 돌고 있다. 이 사건은 세칭 워터게이트 사건(Watergate scandal) 판박이다. 이 추문은 1972년부터 1974년까지 2년 동안 미국에서 일어난 각종 일련의 사건들을 지칭하는데 미국 닉슨 행정부가 베트남전 반대 의사를 표명했던 민주당을 저지하려는 과정에서 일어난 불법 침입과 도청 사건, 이를 부정하고 은폐하려는 미국 행정부의 조직적 움직임 등 권력 남용으로 말미암은 정치 스캔들이었다. 사건 이름은 당시 민주당 선거운동 지휘 본부(Democratic National Committee Headquaters)가 있었던 워싱턴 D. C.의 워터게이트 호텔에서 유래한다. 처음 닉슨과 백악관 측은 ‘침입 사건과 정권과는 관계가 없다’라는 태도를 고수했으나 1974년 8월, "스모킹 건"이라 불리는 테이프가 공개됨에 따라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측근도 그를 떠나게 되었다. 닉슨은 탄핵안 가결이 확실시되자 탄핵으로 수감 된 박근혜와 달리 1974년 8월 9일에 대통령직을 사퇴해 사법 면탈(免脫)됐다. 이로써 그는 미 역사상 최초이자 유일한 임기 중 사퇴한 대통령이 되었다. 성경이 말씀하는 정의에 대한 열망은 사회가 발전하며 자연스레 자라난 국민의 집합적 심성(mentalite)이다. 모세 율법의 눈에는 눈 식으로 악을 응징하는 드라마며 영화가 흥행몰이를 하는 현상이 방증하듯 그 에너지는 가공할 만하다. 그 힘이 제대로 쓰일 때 우리 사회는 도약할 것이다. 하지만 그 열망이 더불어민주당처럼 내로남불식 독선, 타 집단에 대한 혐오, 제도에 대한 불신과 결합 될 때, 돌이킬 수 없는 푸틴의 러시아처럼 파국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될 수 있다. 자신을 희생하는 일에 기꺼이 나설 사람은 세상에 없다. 그러나 모두 희생을 거부한다면 공멸할 게 분명하기에 희생하는 것이다. 모두 죽는 것보다 나은 길이기 때문이다. 그걸 이끌어야 하는 게 총회 지도자들의 소명이다. 세상은 항상 변하기에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지만 바로 그렇기에 같은 일이 두 번 일어나기는 쉽지 않다. 한 번은 우연이지만 두 번은 우연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일이 두 번 일어난다면 거기엔 반드시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한 번 일어난 일은 다시 일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다. 그러나 두 번 일어난 일은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다. 한 번과 두 번은 단순한 차이가 아니라 차원이 다를 수 있기에, ‘어쩌다 한 번’ 일어날 수 있는 일이 두 번 이상 일어난다면 그냥 넘기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좋은 일이면 얼마나 좋겠는가마는 그렇지 않으니 말이다. 그러므로 차제에 총회에 불이익을 안긴 총회 지도자나 직원은 그 죄의 유무와 범위에 따라 징계를 해야 할 것이다. 알아야 할 것을 갖추지 못한 무식한 지도자는 지도자가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 그 정신을 역설적으로 표현한다면 자기 잘못을 모르는 지도자, 총회를 부패시키는 실정(失政)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 사람은 지도자가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는 뜻이다. 총회 정치인들은 모두가 총회보다는 그 알량한 권력, 정치보다는 이권의 노예같이 움직이고 있다. 생각 있는 신자이기만 해도 공동체 안에서 그 정도의 이기주의자는 아닐 것이다. 무지는 무책임이라는 한계를 넘어 나와 우리가 아니면 안 된다는 지도자까지 총회 전면에 나서고 있다. 성경의 정의는 ‘더 많은 하나님의 백성이 그 자녀다운 삶과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의무’라는 엄연한 진리를 말씀한다. 세계 역사의 공통된 정신적 정도(正道)가 있다. 진실, 자유, 인간애의 길이다. 그렇듯 총회 역사의 물줄기도 성경적 진실과 자유에 따른 윤리적 가치, 즉 선한 길을 찾아 구현하는 과정이다. 그럼에도 총회 각 회기는 그 진실과 인간애로 가는 정도를 역행하고 부정하는 편 가르기와 투쟁의 방법을 택했다. 우리 총회 지도자에게 주어진 최선의 권리와 의무는 교회 공익을 위하는 자유와 인간애의 공동체를 위한 선택과 믿음의 사회를 향한 전도의 길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였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으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께로 나서 왔음이라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니라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내 말을 들을 줄 알지 못함이로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 너희 중에 누가 나를 죄로 책잡겠느냐 내가 진리를 말하매 어찌하여 나를 믿지 아니하느냐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 하였음이로다 요 8:42-47 2025-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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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0-22
  • [더굳뉴스] 총회 정치인 목적지
    2023년 10월 7일 이스라엘 남부의 초막절 축제에서 하마스에 납치된 이스라엘 포로 20명이 2025년 10월 13일 팔레스타인 가자에서 석방됐다. 이 일에 정치력을 동원한 미국 대통령 트럼프도 이스라엘에 도착해 의회에서 연설할 예정이라고 한다. 공자가 제자들과 함께 산둥(山東)성 태산을 지날 때였다. 한 여인이 묘지 앞에서 통곡을 하고 있었다. 제자 자로(子路)가 묻기를 “부인은 무슨 일이 있기에 상심이 그리 크십니까”라고 했다. 부인이 답하길 “오래전 내 시아버지는 호랑이에게 물려 죽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전 남편도 호랑이에게 죽었지요. 그런데 이번에는 아들마저 호랑이에게 물려 죽었습니다.” 이번에는 공자가 물었다. “그렇다면 왜 이곳을 떠나지 않는 겁니까?” 부인이 답하길 “그래도 여기는 가혹한 정치는 없으니까요….” 정치라는 말은 고대 중국의 유교 경전인 “상서(尙書)”에서 ‘道洽政治’라는 문장으로 처음 등장한다. ‘정치’(政治)에서 ‘정’(政)은 바르게 하기 위해 일을 하거나 바르게 하도록 회초리로 치는 것을 뜻하는 치(治)의 합성어이다. 정(政)은 특히 자신의 부조화스러운 면을 다스려 극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치(治)는 물(水)이 넘쳐 생긴 피해를 잘 수습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치(治)는 특히 다른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부정하고 부조화한 면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정치(政治)는 자신과 다른 사람의 부조화와 부정적인 것을 바로잡아 극복하는 일이다. 이러한 의미에는 다른 사람을 지배한다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돕는다는 의미가 주를 이루고 있다. 2022년 2월 15일 제106회 총회장 배광식 목사가 총신 졸업생들에게 전한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성경 말씀 내용이 정치의 본뜻이고 유교 경전인 “상서(尙書)”의 ‘도치정치 道洽政治’라는 문장과도 통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더디고 외롭지만, 진실은 늘 누군가의 작고 단단한 발걸음을 따라온다. 세상엔 감추어진 죄악이 많다. 강한 힘으로 진실을 억누르려는 자들도 넘쳐 난다. 하지만 아무리 견고해 보이는 거짓의 성도 결국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낮과 밤, 이성과 감성, 현실과 환상의 세계를 함께 보는 능력을 ‘시(詩)’라고 한다. 속도는 더 빨라질 것이다. 거짓은 더 정교해지고, 더 많아지며, 더 요란하게 퍼질 것이다. 정신을 붙잡기란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다. 그러나 방법은 늘 그 자리에 있다. 잠시 멈추고, 조용히 되묻는 일. 1907년 9월 17일 평양 장대재교회에서 소집된 대한예수교장로회 제1회 노회(독 노회)가 열렸다. 그 때 신경과 규칙을 정식 채용한 최초의 헌장에 근거해 제정되고 공표된 총회 헌법 정치편에서 정치에 대해 이렇게 규정했다. 제1장 원리 예수교 장로회 정치의 일정한 원리 8개 조가 있으니 이것을 이해하여야 교회의 성질을 알 것이다 제1조 양심 자유 양심의 주재는 하나님뿐이시라, 그가 양심의 자유를 주사 신앙과 예배에 대하여 성경에 위반되거나 과분(過分)한 교훈과 명령을 받지 않게 하셨나니 그러므로 일반 인류(人類)는 종교에 관계되는 모든 사건에 대하여 속박을 받지 않고 각기 양심대로 판단할 권리가 있은즉 누구든지 이 권리를 침해(侵害)하지 못한다. 제2조 교회 자유 1. 전조(前條)에 설명한 바 개인 자유의 일례(一例)로 어느 교파 어느 교회든지 각기 교인의 입회 규칙과 입교인 및 직원의 자격과 교회 정치의 일체(一切)조직을 예수 그리스도의 정하신 대로 설정(設定)할 자유권이 있다. 2. 교회는 국가의 세력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오직 국가에서 각 종교의 종교적 기관을 안전 보장하며 동일시(同一視)함을 바라는 것뿐이다. 제3조 교회의 직원과 그 책임 교회의 머리 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지체된 교회에 덕을 세우기 위하여 직원을 설치(設置)하사 다만 복음을 전파하며 성례를 시행하게 하실 뿐 아니라 신도로 진리와 본분을 준수하도록 관리(管理)하게 하신 것이라. 이러므로 교우 중에 거짓 도리를 신앙하는 자와 행위가 악한 자가 있으면 교회를 대표한 직원과 치리회가 당연히 책망하거나 출교할 것이라. 그러나 항상 성경에 교훈한 법례(法例)대로 행한다. 제4조 진리와 행위의 관계 진리는 선행의 기초라 진리가 진리 되는 증거는 사람으로 성결하게 하는 경향(傾向)에 있으니 주 말씀하시되 ‘과실로 그 나무를 안다’ 하심과 같으니 진리와 허위(虛僞)가 동일(同一)하며 사람의 신앙이 어떠하든지 관계없다 하는 이 말보다 더 패리(悖理)하고 더 해로운 것은 없다. 신앙과 행위는 연락하고 진리와 본분은 서로 결탁(結託)되어 나누지 못할 것이니 그렇지 아니하면 진리를 연구하거나 선택할 필요가 없다. 총회 헌법 정치편 제1장 원리에서 규정하듯 진리를 벗어나 길을 잃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터덜거리며 걸어간 길 끝에 멀리서 다가 오시는 주님의 따뜻함을. 막무가내의 어둠 속에서 누군가 맞잡을 손이 있다는 것이 주님에 대한 얼마나 새로운 발견인지. 삶 속에서 밤을 맞아 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 삶에 갇힌 작은 믿음들이 거대한 세파보다 얼마나 큰 힘으로 어깨를 감싸 주는지. 먼 곳의 불빛은 믿음의 순례자를 쉬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걸어갈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을. 상처받지 않고 강하게 살아야 ‘잘’ 사는 세상이라니까 물러 터지고 주저하는 사람들은 ‘잘’ 살기가 참 난감할 것이다. 쉽게 잊기보다는 자꾸 뒤돌아보는 버릇이 있고, 짐을 버리기보다 짊어지는 습성이 남아 있다면 ‘잘’ 못 살고 있는 것인가 헷갈리기도 할 것이다. 난감하여 손을 만지작거리고, 헷갈려서 머리를 긁적거리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 둘 곳 없는 손을 잡아주는 대신, 쑥스러운 머리를 토닥이는 대신 다정하게 읽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 헤맨 끝에 제자들은 구원을 찾았다. 그 순례자의 지친 다리를 구원해 준 것은 ‘말씀의 불빛’이었다. ‘불빛’이 너를 안아 줄 거야, 나도 그랬으니 한번 믿어 봐. 주님은 그렇게 말씀한다. 그 말씀을 듣는 순간 보지 못했던 불빛이 보이고, 보지 못했던 불빛이 되기도 한다. 누군가는 그것을 이상향, 가치, 덕목이라고 부를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그렇게 거창한 이야기까지 갈 것도 없다. 주님의 말씀은 구원이고 사랑이다. 너를 기다리는 주님의 말씀, 나를 기다릴 주님의 말씀, 이 말씀이 총회 정치가들, 특별히 총회장 장봉생 목사와 부총회장 정영교 목사와 서기 김용대 목사의 등불이 되기를 소망한다. 특별히 그들은 무조건 달리기 보다 먼저 가는 곳이 어디인지를 알아야 할 것이다. 1907년 제정된 총회 헌법 정치편 제4조가 총회 정치인들의 목적지를 명시하고 있다. 진리는 선행의 기초라 진리가 진리 되는 증거는 사람으로 성결하게 하는 경향(傾向)에 있으니 주 말씀하시되 ‘과실로 그 나무를 안다’ 하심과 같으니 진리와 허위(虛僞)가 동일(同一)하며 사람의 신앙이 어떠하든지 관계없다 하는 이 말보다 더 패리(悖理)하고 더 해로운 것은 없다. 신앙과 행위는 연락하고 진리와 본분은 서로 결탁(結託)되어 나누지 못할 것이니 그렇지 아니하면 진리를 연구하거나 선택할 필요가 없다. 더불어 성경은 말씀한다. 도마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5-6 2025-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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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0-13
  • [더굳뉴스] 한국 빛낸 세 대통령 세 총회장
    인간은 개인, 사회와 더불어 두 거대한 정신사적 흐름과 함께 역사의 강을 계승해 왔다. 그 하나는 이성(理性)적 판단에 따르는 진실(眞實)의 가치고, 또 하나는 양심(良心)의 선택과 가치를 주관하는 자유와 그 창조성이다. 이성과 양심을 갖추지 못하면 인간다운 삶을 영유할 수 없고, 그 사회역사적 권리와 의무를 포기하면 사회와 국가는 존속하지 못한다. 인간의 본질과 사회적 질서가 그 기반 위에 존립(存立)하는 까닭이다. “별이 빛나는 밤하늘은 늘 나를 꿈꾸게 해.” 네덜란드 후기인상파 화가 고흐(1853-1890)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 쓴 말이다. 그랬다. 현실은 아프고 힘들었지만 별을 그리는 순간만큼은 꿈을 꾸는 것처럼 행복했을 터다. 화가는 비록 실패작으로 여겼지만 밤하늘에 빛나는 그림 속 별들은 21세기를 사는 우리들도 꿈꾸게 만든다. 큰일을 추진하면서도 작은 일을 챙기는 데 소홀함이 없던 만 가지 일(기미)을 친히 살핀다는 만기친람(萬機親覽)형 통치술의 이승만(李承晚1875년 3월 26일~1965년 7월 19일)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대 대통령이자 마지막 주석을 거쳐 대한민국의 제1·2·3대 대통령으로서 대한민국의 토대를 마련했다. 대한민국의 제5·6·7·8·9대 대통령 박정희(朴正熙 1917년 11월 14일~1979년 10월 26일)는 경제에 문외한이었지만 자기주도적 학습 능력을 통해 끊임없이 노력하며 단기간에 경제의 본질을 배웠다. 매일 3시간씩 대학교수로부터 1대1 강습을 받았고 수출진흥확대회의를 열어 찬반 토론을 경청한 뒤 결론을 내렸다. 유연한 정신자세, 겸손, 사심(私心)이 적은 태도도 한몫했다. 그 결과는 ‘한강의 기적’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탄탄한 권력 기반을 확보한 뒤에는 역설적으로 이 장점들의 빛이 바랬다. 1972년 유신 선포와 1974년 육영수 여사 피습 사건을 거치며 자기주도 학습은 기능을 멈췄고 특유의 자기 수정 능력도 둔화됐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은 박정희 대통령이 성장시켰다. 대한민국의 제14대 대통령 김영삼(金泳三, 1929년 1월 14일~2015년 11월 22일)은 대한민국 역대 최연소인 만 25세의 나이로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9선 의원을 지내면서 김대중과 민주 진영의 지도자로 활동하며 민주화를 이룩했다. 이승만, 박정희, 김영삼 이들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이들은 대한민국의 세 별들이었다. 그처럼 오늘의 합동 총회를 만든 세 별을 꼽는다면 누구일까.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Horace Grant Underwood, 1859년 7월 19일 ~ 1916년 10 월 12일)는 미국 장로교 선교사이다. 언더우드 선교사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한국어 이름은 원두우(元杜尤)이다. 1859년 7월 19일에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서 13세가 되던 해에 미국으로 이주하였다. 1881년 뉴욕 대학교를 졸업하였으며 같은 해부터 1884년까지 뉴브런스위크신학교에서 공부하였다. 1883년 11월 목사가 되었고 1년간 인도 선교를 위해서 의학 공부를 하면서 실력을 쌓았으며, 1884년 7월 28일 조선 최초의 장로교 선교사로 선정되었다. 하지만 조선은 개혁파들이 일으킨 갑신정변으로 사회가 혼란하였기 때문에 일본에 머물러야 했다. 그동안 조선 기독교인으로서 마가복음서를 번역한 문서선교사 이수정(李樹廷)에게서 한국어를 배우면서 조선에서의 선교를 준비하였다. 언더우드는 1885년 부활주일인 4월 5일에 제물포항에 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러와 함께 한국 선교사로 입국했다. 그러나 그는 조선 정부에서 선교 활동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제중원에서 물리와 화학을 가르치는 교사가 되었다. 그러면서 그는 조선어 문법책을 영어로 저술하였다. 그 후 성서번역위원회 초대위원장, 대한기독교서회 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한편 예수교 학당(현재 경신중고등학교), 서울 구세 학당,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학교)를 설립하였다. 또한 교회 연합 운동을 지도하는 등 한국의 종교·문화·언어·정치·사회 등 여러 분야에 많은 업적을 남겼다. 그런 그가 1912년 9월 1-4일 대한예수교장로회 제1회 총회장으로 선출됐다. 1930년대 일제는 기독교단들에게 신사참배를 강요하였다. 이에 개신교인들은 저항했으나 많은 목사들이 투옥되고 평양신학교가 휴교당했으며 결국 일제 패망까지 많은 목사와 신도들이 신사참배에 가담하였다. 1940년대 총독부의 허가를 받아 서울에 조선신학교가 생겼다. 그리고 해방 후 1947년 다시금 대한예수교장로회가 복원되었다. 1959년 제44회 총회는 선교 75주년 기념 총회로 1959년 9월 24일 대전중앙교회에서 개회된다. 총회 한 달 전에 총대들에게 통보되어야 할 총대 명단이 총대 호명 시간에 비로소 배부된다. 하지만 거기에는 경기노회 총대 명단이 빠져 있었다. 첫날 회의부터 경기노회 문제로 양측은 대립을 계속하다가 25일 경기노회 정기·임시 양측에서 3인씩 나와서 경위를 밝히고 표결 처리하기로 한다. 오후에 표결을 진행, 임시 노회 측이 124표(정기 노회 측 119표)를 얻어 회장은 임시노회 총대를 받게 됨을 선포하면서 사태는 급박하게 전개된다. 그 갈등의 결과 1959년 한국장로교회는 한국장로교 NAE 세력과 에큐메니칼 WCC 세력으로 갈리게 되었다. 1948년 루터교, 개혁교회(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성공회 등의 개신교 주류 교파들과 동방 정교회 대표 성직자들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모여서 결성한 세계 교회 협의회 WCC(World Council of Churches)를 지지하는 측은 기장 측 일부 온건파 인사들과 연합하여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총회를 만들었다. 반면 WCC를 반대하는 1942년 결성된 ‘전국복음주의자협의회’ NAE(National Association of Evangelicals)에 1953년 가입한 측은 1951년 독립해 나갔던 고신 교단과 손을 잡고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총회를 만들었다. 합동이라는 이름은 고신과 승동파가 합동하였으므로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이다. 한국장로회 NAE는 경북 NAE(박병훈), 호남 NAE(정규오), 이북 NAE(김윤찬)의 정치적 연합체였다. 이들은 박형룡을 앞세워 긴밀한 연합체를 이루었고 총회 교권과 남산 총회신학교의 주도권을 공유하고 있었다. NAE 측의 승동총회는 1959년 11월 24일에 속회하였다. 이런 과정을 통해 제110회를 맞아 한국 교회를 빛낸 합동 총회의 세 별을 꼽는다면 내 소견에 다음 세 총회장일 것 같다. 분열 이후 신앙 인격과 보수적 정치력으로 합동 총회 정체성을 확립한 제51회 총회장 박찬목 목사(1966.9.22.-27), 성장하는 교계와 교단을 아우르는 특유의 정치력으로 현재의 총신과 총회의 터전과 기틀을 확립한 제65회 총회장 이영수 목사(1980.9.25-29), 성장에 취해 그 본질을 잃은 교단의 정체성을 회복시킨 제104회 총회장 김종준 목사(2019.9.23-26) 등이다. 어떤 사람은 시간을 포도주처럼 해석한다. 풍부한 자원이거나 지금은 없더라도 은퇴하면 시간이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젊을 때와 은퇴 후 시간은 그 안에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신체적 능력과 가능성에서 차이가 나기 마련이다. 이들은 “나중에”라는 말을 자주 하며 언젠가 자신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 시도하지 않는 일을 나중에 정말 할 수 있을까. 앞으로 제110회 총회 임원들은 총회 역사에 어떤 평가를 받게 될까. 정치외로정권이나 총회만을 위한 과업이 아니다. 세상과 교회의 개혁을 위한 신자다운 삶의 가치와 질서 창출에 그 과업이 있다. 오늘은 내일을 위해 필요하듯이 현재는 정신적 미래를 정립해야 민생이 궤도에 오른다. 더 이상 신학과 이데올로기만을 위한 정신적 가치와 질서를 역행해서는 안 된다. 지금의 국회 상황과 교단 형편을 10년 후에 국민과 교인들에게 공개해 보라. 어떤 역사적 평가를 하겠는가. 성경은 말씀한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빌 3:12-14 2025-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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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0-11
  • [더굳뉴스] 목사와 교수의 대우
    들녁에 만상이 살아있다는 황금빛 영광! 예수께선 ‘들에 핀 백합을 보라! 솔로몬의 영광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다(마태복음 6:29)’ 말씀하셨다. 총신대 시절 사당동 골짜기 미완성의 1동짜리 총신대에서 허름한 옷차림으로 되뇌인 적이 있었다. “오늘은 눈이 열려 솔로몬의 영광보다 더한 영광을 이 골짜기에서 보게 하시니 감사하나이다!” 예수께선 어린이와 같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하셨다. 동심에 온유와 겸손의 도가 있다. 늘 성경을 읽는다는면 우리의 마음엔 그 진리가 벌써 자리한 것일까. 꽃을 가리키는 대표적 한자는 화(花)다. 영화(榮華)라는 단어의 각 글자는 꽃이다. 식물 형태가 목본(木本)이냐 초본(草本)이냐에 따라 ‘영’과 ‘화’를 구별할 때도 있지만 분명치는 않다. 두 글자는 어쨌든 식물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 정수(精髓)라는 우러름을 받는다. 그 맥락에서 영(英) 또한 꽃의 지칭이다. 가장 빼어난 사내를 영웅(英雄), 그런 능력의 사람을 영재(英才)로 적는 이유다. 꽃이 피었다 시드는 과정을 영고(榮枯)라 적어 성쇠(盛衰)와 흥망(興亡), 흥폐(興廢) 등의 뜻으로 새긴다. 총회선관위의 유권해석에 따라 4월에 열리는 봄 노회에서 총회 임원의 경우 목사부총회장은 장봉생 목사(서울노회ㆍ서대문교회)가 가장 유력한 후보로 나설 것이다. 장로부총회장은 김영식 장로(군산남노회ㆍ익산서두교회), 김형곤 장로(김제노회ㆍ대창교회), 박석만 장로(서수원노회ㆍ풍성한교회)가 경합했다. 부서기는 이종석 목사(동수원노회ㆍ광교제일교회)를 배정환 목사(광주노회ㆍ광주미문교회) 서만종 목사(광주전남노회ㆍ광주단비교회) 등 두 사람이 뒤쫓을 형국이다. 부회록서기는 안창현 목사(군산남노회ㆍ서광교회)와 최찬용 목사(남수원노회ㆍ대덕교회)가 경쟁했다. 회록서기는 김종철 목사(용천노회ㆍ큰빛교회), 회계는 부회계 이민호 장로(경북노회ㆍ왜관교회)가 정임원으로 올라갔다. 기관장 유력 후보는 교육개발원 이사장 송태근 목사(평양제일노회ㆍ삼일교회, 재임), 기독신문 사장 태준호 장로(전서노회ㆍ태인교회, 재임), 총회세계선교회 이사장 김장교 목사(대경노회ㆍ서성로교회), 기독신문 이사장 장재덕 목사(경동노회ㆍ서문교회) 등 이었다. 아카데미상을 휩쓴 영화 ‘오펜하이머’의 주인공인 핵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Julius Robert Oppenheimer, FRS, 1904년 4월 22일 ~ 1967년 2월 18일)는 철저한 강의 준비로 유명했다. 버클리 교수 시절엔 영감을 불어넣는 강의에 매료된 학생들이 같은 과목을 두세 번씩 수강 신청했다. 오펜하이머는 다른 교수들이 불성실하게 강의하는 것을 참지 못했다. 강의가 마음에 안 들면 수업 중인 교수를 강의실 밖으로 내쫓은 적도 있다고 한다. 강의에 대한 이런 열정은 교수직을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닌 신의 소명으로 보는 서구 대학의 오랜 전통에서 비롯됐다. ‘교수’라는 뜻의 영어 ‘프로페서(professor)’는 라틴어 pro(앞으로)와 fateri(공표하다)에서 왔다. ‘다중 앞에서 공적인 주제로 말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대학의 시초로 꼽히는 11세기 볼로냐 대학에서 처음 개설한 것은 신학이었다. 교수는 신의 진리를 많은 이에게 전하는 신성한 직업이었던 것이다. 중세 이후 교수는 출신에 관계없이 귀족 대우를 받았다. 오늘날 독일 등 중부 유럽에서 교수들이 누리는 사회적 존경에는 깊은 뿌리가 있다. 우리는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직업에 ‘사’를 붙인다. 공적인 일을 하는 판·검사에겐 ‘일 사(事)’를 쓴다. 변호사·변리사·조종사는 전문 지식을 존중하는 의미로 ‘선비 사(士)’를 쓴다. 그런 전문가 중에 특히 사회에 희생하고 봉사하는 직종엔 ‘남을 가르친다’라는 뜻의 ‘스승 사(師)’를 붙인다. 아픈 이들을 돌보는 도덕적 사명을 수행하는 의사에게 ‘師’를 쓰는 이유다. 대한의사협회에서 정한 의사윤리지침 3조에는 의사의 본분이 이렇게 적혀 있다. "의사는 고귀한 사람의 생명과 건강을 보전하고 증진하는 숭고한 사명의 수행을 삶의 본분으로 삼아…." 의사윤리지침이 정한 소명에 충실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의사라면 결국에는 죄책감의 칼날에 양심이 베일 것만 같다. 그 소명에 다가갈수록 환자를 두고 떠난 옛 기억이 그를 괴롭힐 것이다. 그 기억은 '나는 환자의 고귀한 생명을 보전하는 의사'라는 정체성과는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목사(牧師)는 개신교의 성직자이다. 개신교의 예배(禮拜)와 예전(禮典)을 집행하며 신도의 교육과 지도, 세상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 임무를 갖는다. "목사"라는 명칭은 신약성경 에베소서 4장 11-12절(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에서 발견할 수 있다. 신약성경 원문인 헬라어 단어는 "포이멘"(ποιμήν)으로 목자, 양치기이며, 이 단어의 라틴어 번역어인 "파스토르"(pastor)에서 목사를 의미하는 영어 단어 '패스터'(pastor)가 유래했다. 역사는 타이밍, 사람, 상황 그리고 우연의 복잡한 얽힘이라고 할 수 있다. 아픈 이들을 돌보는 도덕적 사명을 수행하는 의사가 의대생 숫자 늘린다고 환자가 있는 병원을 떠나 파업을 하는 시대가 됐다. 이런 상황에 우리 목사와 장로는 어떤 삶을 살고 총회를 어떻게 섬겨야 할까. 성경은 말씀한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빌 3:7-14 2025-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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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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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굳뉴스 ] 능력있는 설교의 플롯
    연설의 목적은 단순한 정보를 전달하는 것부터 사람들이 행동을 하게 동기를 유발하거나, 단순히 사람들에게 재미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까지 다양하다. 훌륭한 연설자는 단순히 정보를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청중의 감정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렇듯 설교를 하는 목사라면 그런 능력의 설교를 잘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소설이나 시나리오에서 독자나 관객의 호기심과 기대감을 충분히 만족시키는 짜임새 있는 플롯이 작품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러나 설교 준비 과정을 플롯(plot)의 측면에서 살펴보는 일이란 아주 생소한 일이다. 특히 문학의 한 기법인 플롯을 설교에 자유롭게 구사하게 되기까지 도움을 받을 만한 마땅한 책이 없기 때문이다. 설교 역시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깨우치려는 회중의 호기심과 기대감을 일으킬 수 있는 플롯을 상당히 필요로 하는 데도 말이다. 플롯이란 말은 원래 '한 조각의 땅'(a usually small piece of land that is used for a particular purpose)을 의미하는 단어에서 나왔다. 더 정확히는 설계도나 평면도 등을 가리키는 낱말의 용법에서 그 어원을 찾을 수 있다. 예컨대 설계도에는 건물과 부속 건물과 통로와 주차장 등의 배치가 설계되어 나타나 있다. 그러므로 소설이나 시나리오의 작품 속에 들어 있는 사건의 배열이 곧 플롯이라고 할 수 있다. 플롯은 사건과 사건을 결합시킴으로써 원인과 결과를 생성해낸다. 한 사건의 결과는 또 다른 사건을 발생시킨다. 이야기는 플롯을 지녀야만 결말에 도달한다. 즉 사건이 일어나게 해주는 장치가 바로 플롯이다. 회중은 이 과정을 통해 설교에 흥미를 갖는다. 그러면 좋은 플롯의 설교란 과연 무엇인가? 설교의 도입에 일어난 사건이 회중의 궁금증을 유발해 질문을 던지게 하고 클라이맥스(절정 climax: the most exciting and important part of a story, play, or movie that occurs usually at or near the end)를 거친 후 결말에 이르러 하나님 뜻이 답으로 드러나게 되는 것이 수사학적인 의미에서의 좋은 플롯의 설교일 것이다. 햄릿의 막이 오르면 관객은 얼마 지나지 않아 과연 햄릿은 아버지의 복수를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드라마는 바로 이 물음에 대한 여러 인물들의 행동을 보여준다. 클라이맥스가 지나고 나면 관객은 복수를 하지만 햄릿도 죽는구나 라는 답을 얻게 된다. 이것이 바로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시작, 중간, 마지막의 올바른 개념이다. 이러한 개념을 설교의 준비와 구성에 적용해 보려고 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설교는 선지자나 성직자의 메시지(message: a piece of information that is sent or given to someone see)이다. 설교는 성경과 신학과 도덕의 주제를 전한다. 설교는 주로 성경의 본문 안에서 신앙과 율법과 행동의 의미를 해설한다. 설교의 요소는 해석과 권면과 실제 적용을 포함한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한 아주머니가 장을 보고 돌아와 보니 집에서 기르는 진돗개가 목에 뭔가 걸려서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가 개를 동물병원에 맡기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전화벨이 울렸다. 조금 전 다녀온 동물병원의 수의사였다. 그는 소리를 지르며 말했다. “당장 집 밖으로 나가세요!” “무슨 일이에요?” 그녀가 깜짝 놀라 물었다. “”제 말대로 하시고 당장 옆집에 가 계세요. 곧 갈게요.“ 수의사는 아주머니의 질문에는 대답을 않고 그렇게 말했다. 그녀는 무슨 일인지 놀랍고 궁금했지만 수의사가 시키는 대로 이웃집으로 갔다. 그런데 그녀가 밖으로 나가자마자 경찰차 4대가 달려와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집 앞에 섰다. 경찰들이 권총을 뽑아들고 차에서 내리더니 집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그녀는 겁에 질린 채 밖으로 나와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곧 수의사가 도착해 상황을 설명했다. 그가 진돗개의 목구멍을 검사해보니 거기에 사람 손가락 두 개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아마도 그 개가 도둑을 놀라게 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경찰은 곧 피 흘리는 손을 움켜쥐고 공포에 질린 채 옷장에 숨어 있던 도둑을 잡아냈다. 숨이 막힌 진돗개 이야기는 플롯의 순수한 표본이다. 장소와 시간을 설명해주는 주어진 환경과 인물묘사는 플롯보다 뒷전으로 밀려 있고 이야기는 세 부분으로 나뉜다. 첫째 장면은 극적인 사건과 수수께끼로 시작된다. 여자가 집에 돌아와서 진돗개가 숨이 막혀 있는 것을 발견할 때다. 여자는 개를 수의사에게 데리고 간다. 둘째 장면은 여자가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전화벨이 울리면서 시작된다. 몹시 흥분한 수의사가 전화기에 대고 여자에게 집밖으로 나가라고 소리칠 때부터 위험의 요소가 느껴진다. 이야기를 듣는 이들은 직감적으로 숨이 막힌 진돗개의 수수께끼가 그 위험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낀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 연결되어 있는지 모두들 추측은 하지만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아주머니는 집 밖으로 나오면서 동시에 아직 모르는 위험으로부터 빠져나온다. 셋째 장면은 경찰의 도착으로 시작된다. 경찰이 급하게 도착함으로써 상황이 얼마나 위험한지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수의사가 도착한다. 수의사는 수수께끼의 실체를 가장 먼저 확인한 사람이다. 경찰은 도둑을 잡음으로써 개의 목구멍에서 발견된 손가락의 임자를 찾아낸다. 아무도 이 이야기가 날조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숨이 막힌 진돗개라는 그럴싸한 사건의 단서로 시작되며, 수의사의 전화를 통해 사건이 복잡하게 얽히게 된 것을 알게 되고, 피 흘리는 도둑의 소름끼치는 클라이맥스(절정)가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플롯(plot)이 있는 구성은 이야기가 제공하는 기대감을 충족시키며 발전한다. 시작, 중간, 클라이맥스(마지막)라는 플롯의 세 대목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아주머니라는 주인공과 도둑이라는 적대자가 등장하여 긴장과 갈등의 요소도 있다. 이와 같이 설교의 구성에도 그리스 철학이 현재의 서양 철학의 근본을 이루는 데에 크게 이바지한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BC 384년 ~ 322년)가 주창한 플롯의 세 대목 시작, 중간, 마지막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주인공과 적대자가 있어 긴장과 갈등을 증폭시켜야 한다. 좋은 설교는 플롯과 등장인물을 통해 탄생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회중은 그 설교에 빨려들 것이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축복이 성령의 감동으로 그 설교에 더해지게 될 것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 사과니라 잠 25:11 2025-11-14 2013-11-25
    • G.OPINION
    2025-11-14
  • [더굳뉴스] 총회 황금률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마태복음 7:12 성경의 황금률이다. 로마 황제는 이 문장을 황금으로 새겨 걸어놓고 있다가 통치의 길을 잃었을 때 바라봤다고 한다. 연인에게 전구(電球)를 선물로 주는 사람은 없다. 사랑하는 이의 가슴에 빛을 심으려는 손길은 예쁘게 포장한 양초를 건네는 법이다. 고대 이집트의 궁궐에서는 밀랍이나 동물의 기름에 갈대를 섞어 만든 양초로 불을 밝혔다고 한다. 신라와 고려의 왕궁에서도 금동수정 촛대, 청동쌍사자 촛대 등이 사용됐다. 촛불은 오랜 궁정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셈이다. 전기가 널리 보급된 오늘날에는 양초의 쓰임새가 크게 줄었지만 종교용·축제용·장식용의 촛불은 여전히 밝게 빛난다. 부활절 새벽의 촛불예배는 지금껏 이어져 오는 오랜 전통이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크리스마스트리에 맨 처음 촛불 장식을 매달았다. 촛불은 결혼식이나 송년 예배에서도 좀처럼 빠지는 일이 없다. 기껏해야 밀랍이나 파라핀에 실 심지를 꼬아 박은 원시적 조명기구, 그 구닥다리 같은 촛불이 이토록 오랜 생명력을 지니고 있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소박한 옛것에 대한 그리움, 실바람에도 가녀리게 흔들리는 순수의 이미지, 제 몸을 녹여 어둠을 밝히는 희생과 헌신의 상징성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최초의 동양인이자 인도의 시성으로 불리는 라빈드라나트 타고르(Rabindranath Tagore: 1861 ~ 1941)는 나룻배에서 촛불을 켜고 책을 읽다가 촛불과 달빛의 신비한 대조를 경험했다. “촛불을 끄자 신성한 아름다움이 나를 온통 둘러쌌다. 촛불이 꺼지는 순간, 달빛이 춤추며 흘러 들어와 나룻배 안을 가득 채웠다… 촛불 때문에 달빛이 내 안으로 들어올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듯 제 몸을 녹여 어둠을 밝히는 희생과 헌신의 빛이 되는 촛불의 기능이다. 더굳뉴스(the good news)의 '더'(the)는 한글의 '보태다' '더 많게 하다'는 뜻이 있다. 더굳뉴스의 '굳'은 뜻한 바를 굽히지 않고 밀고 나아가는 힘을 뜻하다는 '굳세다'의 '굳'이다. 영어의 'good'은 '좋다' '기쁘다'의 뜻이다. 그리고 더굳뉴스의 '뉴스'는 영어의 'news'이다. 영어 단어 'news'는 새로운 것을 뜻하는 'new'의 특별한 용도의 복수형이다. 이것은 14세기에 발전된 개념이다. 중세에는 그 단어가 'newes'로 쓰였다. 이것은 새로운 것들을 전한다는 뜻에서 소식의 뜻으로 발전되었다. 성경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말씀한다.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들을찌어다 너의 파숫군들의 소리로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일제히 노래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온으로 돌아오실 때에 그들의 눈이 마주 봄이로다 너 예루살렘의 황폐한 곳들아 기쁜 소리를 발하여 함께 노래할찌어다 이는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위로하셨고 예루살렘을 구속하셨음이라 이사야 52:7-9 저널리즘의 본질은 사실 확인의 규율이다. 사실의 규율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투명성의 정신이다. 더굳뉴스는 저널리즘의 본질인 사실 확인과 투명성의 정신을 따르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더 좋은 소식과 더 기쁜 소식을 전하는 더 좋고 더 굳센 더굳뉴스가 되고자 한다. 들추고 비판하고 죽이는 소식이 아니라 더 좋게 하고 살리는 소식을 전하는 아름다운 발이 되고자 한다. 한반도로 찬 공기가 내려오면서 당분간 초겨울 추위가 이어질 전망이다. 18일에는 수도권 일부와 서해안 등지에서 첫눈이 내릴 가능성도 있다. 기상청은 “17일 낮에 찬바람이 강하게 불면서 기온이 큰 폭으로 떨어진 데 이어 18일 아침에는 기온이 더 내려가 내륙지방을 중심으로 영하의 기온을 보이는 곳이 많겠다”고 밝혔다. 기상청은 “18일 낮 동안에도 기온이 평년보다 5~8도가량 낮고, 19일까지는 바람이 강하게 불어 체감온도는 더 떨어지겠다”고 덧붙였다. 현재 중국 북동지방 5㎞ 상공으로 영하 35도 이하의 찬 공기가 밀려와 한반도 쪽으로 찬 공기를 내려 보내고 있는 상태다. 눈(雪)의 계절 겨울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첫눈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설레임의 대상이다. 눈은 무엇일까. 구름 속의 수분이 얼어붙은 상태로 내리는 것을 ‘눈’이라고 한다. 구름에서부터 시작해 보자. 구름 속에 있는 수분은 -20℃ 이하 상태로 얼음결정과 물방울이 뒤섞인 형태다. 온도가 낮을수록 물방울보단 얼음의 양이 많아진다. 눈은 이들 중 얼음알갱이에서 시작된다. 각각의 얼음알갱이와 물방울이 구름 속의 높은 수분 밀도 속에서 서로 충돌하며 점점 덩치가 불어나 눈의 결정이 되고 이렇게 만들어진 눈결정들이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지상으로 낙하하게 된다. 눈결정의 크기는 2㎜ 정도. 눈송이는 이런 결정들이 합쳐진 것이다. 결정이 여러 개로 합쳐져 만든 눈송이의 크기는 보통 1㎝ 내외다. 하지만 내리는 도중에 눈결정이 많이 엉겨 붙을 경우엔 1㎝가 훨씬 넘는 큰 눈송이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습기가 눈의 결정을 서로 묶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물방울의 비율이 높을수록 커다란 눈송이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다. 함박눈 내리는 풍경이 한 폭의 수묵화를 연상시킨다. 함박눈의 큰 눈송이는 접착제 역할을 하는 공기 중 물방울이 눈 결정을 이어붙이면서 탄생한다. “함박눈이 내리면 따뜻하고 가루눈이 내리면 추워질 징조”라는 우리 옛말엔 과학적 근거가 있다. 실제로 함박눈은 온도가 비교적 높은 온대지방에서 주로 내린다. 반대로 가루눈은 기온이 낮은 한대지방에서 주로 내린다. 이유는 간단하다. 추운 곳에선 각각의 얼음알갱이가 그대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아주 추운 곳에선 눈의 결정이 서로 부딪쳐도 달라붙기가 어렵다. 대기 중 수분의 많은 양이 얼음알갱이로만 존재하기 때문에 ‘접착제’ 역할을 해줄 물방울이 부족해서다. 그 결과가 가루눈이다. 반대로 기온이 높은 곳에선 구름 속 물방울의 비율이 높아 눈결정들이 큰 눈송이로 성장할 수 있다. 접착제 역할을 할 물방울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눈은 온도에 따라 성질이 달라지기 때문에 온도가 낮을 때는 가루눈이 내리고 온도가 높을 때는 함박눈이 내린다고 정리할 수 있다. 추위를 많이 타는 사람이라면 고운 싸락눈이 내리는 날 외출을 피하는 게 좋다. “완전히 똑같은 눈의 결정은 단 하나도 없다.” 인류 최초로 눈의 결정 사진을 촬영한 미국의 사진가 윌슨 벤틀리(1865~1931)가 남긴 말이다. 흔히 학교에서 눈의 결정은 ‘육각형’이라고 배우지만 그렇지 않다. 눈의 결정은 육각형 모양의 단순한 얼음 결정에서부터 시작된다. 이 육각형 모양의 얼음결정은 수분이 포화상태인 대기 속에서 조금씩 성장한다. 얼음 결정에서 시작한 눈결정은 다른 얼음결정과 물방울과 계속 부딪치며 복잡하게 성장한다. 각각의 결정이 각기 다른 대기환경과 수분 포화도 속에서 성장하기 때문에 결정의 복잡한 가지가 다른 모양을 할 수밖에 없다. 눈결정을 역사상 처음으로 촬영했던 벤틀리는 미국 버몬트주의 한 농장에서 태어난 시골소년이었다. 15세 때 생일 선물로 받은 현미경으로 눈결정을 처음 관찰한 뒤 그 모습에 반해 사진을 찍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1800년대 사진기는 상당히 비싼 물건이었지만 그는 어머니의 허락을 얻어 17세 때 사진기를 구했다. 19세 때였던 1885년 그는 눈결정을 촬영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그는 46년 동안 5000점이 넘는 눈의 결정 사진을 남겼다. ‘완전히 똑같은 눈 결정은 없다’는 사실을 그는 이 사진들을 통해 세상에 알렸다. 놀라운 하나님의 창조 섭리를 외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조상들은 겨울철 내리는 눈을 보고 풍년과 흉년을 점치기도 했다. ‘눈점’을 언제부터 보기 시작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최초의 기록은 고려시대 때 것이 남아 있다. 12월(음력)에 눈이 오기를 기원하는 ‘기설제’ 풍속이 있었다는 기록도 있다. 조선시대에도 ‘12월에 눈이 많이 내려야 풍년이 온다’는 믿음이 강했다. 눈이 많이 내려야 보리 농사가 잘 되고, 5~6월 비가 많이 내린다고 여겼다. 이런 풍속은 세심한 관찰을 통해 얻어낸 유용한 지식이었다. 실제로 겨울에 눈이 많이 내리면 보리밭은 눈으로 인해 단열효과를 갖게 돼 뿌리가 썩지 않는다. 눈이 녹으면서 각종 병충해가 제거되는 효과도 있는 데다 봄까지 토양의 수분도 적당한 수준을 유지해 준다고 한다. 하지만 봄에 내리는 눈은 흉작을 가져온다고 봤다. 추운 겨울에 내리는 눈은 외부의 차가운 대기로부터 아직 제대로 자라지 않은 보리를 보호해 주지만, 봄에 내리는 눈은 외부의 높은 기온을 차단해 보리를 얼어 죽게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로마의 대정치가 키케로(Marcus Tullius Cicero, BC 106년 ~ BC 43년))는 말 잘하는 변호사이고 변론가였지만 자신의 언어 능력에 한계를 느끼고 수사학을 공부하러 그리스로 유학을 갔다. 그는 로도스 섬에 학원을 세워 수사학을 가르치는 아폴로니오스 몰론{Apollonius Molon}의 문하에 들어가 수사학의 이론과 실제를 배웠다. 카이사르{Gaius Julius Caesar}와 키케로를 가르친 몰론은 외국인으로는 전례 없이 로마 원로원에 초청되어 연설한 당대 최고의 변호사였다. 몰론은 키케로에게 이렇게 가르쳤다. “바로 핵심을 말하라. 청중을 울리고 웃겨라. 청중이 열광하면 얼른 자리에 앉아라. 눈물처럼 빨리 마르는 것이 없다.” 거기서 키케로가 두 계절 배우고 죽기 3년 전에 펴낸 Orator가 서양 사회에 오늘까지 전해지는 수사의 기본서이다. 라틴어로 웅변을 의미하는 오라티오(Oratio)의 어간(몸통)은 이성과 지성이라는 의미의 라티오(Ratio)다. 키케로는 말하는 기술의 웅변이 없으면 지식이 힘을 못 쓰지만, 지식이 없이 입으로만 하는 웅변은 쓸모없다고 가르쳤다. 로테르담의 에라스무스로 알려진 카톨릭 인문주의 신학자 에라스무스(Desiderius Erasmus Roterodamus 1466 ~ 1536)는 『어리석음의 찬미 The Praise of Folly』라는 책에서 그리스 시인 에우리피데스의 말을 소개했다. “인간은 두 개의 혀를 가졌다. 하나는 진실을 말하는 혀, 또 하나는 상황에 따라 말하는 혀다.” 몰론과 에우리피데스의 경구를 기준으로 보면 오늘 우리 일반 정치인들과 교계 정치인들의 말본새는 좀 문제가 있는 것 같다. 그들은 두 개의 혀 중에서 상황에 따라 말하는 혀만 사용할 뿐 진실과 사실 관계나 성경의 가르침은 안중에 없는 것 같다. 성경은 말씀한다.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딤후 3:13-17 2025-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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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1-13
  • [더굳뉴스] 총신의 달과 토끼
    달의 지형 차이로 생기는 그림자가 토끼를 닮았다고 해서 달과 토끼는 간혹 같은 의미로 쓰인다. 특히 달 속 그림자는 옥토끼가 전설상의 영약(靈藥)을 절구에 찧는 모습이라고 여겨져 곧잘 사람들의 상상력도 자극했다. 성어와 고사에 등장하는 토끼가 적잖다. 우선 날쌘 토끼가 죽으면 그를 잡던 사냥개는 곧 솥에서 삶긴다는 토사구팽(兎死狗烹)이 참 유명하다. 영리한 토끼는 굴을 세 개 파서 언젠가 닥칠지 모를 위기에 대응한다는 교토삼굴(狡兎三窟)의 고사도 잘 알려져 있다. 요즘 중국인들은 “토끼는 제 굴 주변의 풀은 뜯지 않는다”는 속언을 잘 쓴다. ‘제 살 깎아 먹기’를 경계하는 말이다. 토끼는 위기 대비용 플랜 B, C를 마련해두는 교토삼굴(狡兎三窟)의 영리한 동물이다. 시튼(Ernest Thompson Seton, 1860년 8월 14일 ~ 1946년 10월 23일 )의 '동물기'에 '달려라, 솜꼬리토끼' 이야기가 나온다. 여우가 토끼를 발견하고 한 끼 때우기 위해 냅다 달린다. 토끼는 낌새를 알아차리고 도망간다. 여우는 전력질주해 한걸음에 토끼를 낚아챌 찰라다. 순간 토끼가 급 좌회전해 방향을 틀어 달린다. 무제한 속도로 직진하던 여우는 미처 발견하지 못한 목장 철조망에 몸을 처박는다. 토끼는 유유히 사라진다. 그렇듯 욕심에 끌려 대장동 패거리처럼 제 꾀에 제가 넘어가는 건 늘 인간이다. 그런 부류의 인간이 간교하게 총신을 휘어잡고 총회까지 분탕질(아주 야단스럽고 부산하게 소동을 일으키는 짓)을 하려고 했다. 2020년 9월 18일 총신재단이사회는 김영우 총장 시절 개정해 총신 사태의 원인이 된 총신대 정관 제20조 <임원의 선임방법> 1항 ‘성경과 개혁신학에 투철한 목사 및 장로 중에서 선임’을 ‘본 총회에 소속된 세례교인 중에서 선임’으로 개정했다. 또한 총신재단이사회는 총장을 당연직 이사에 포함시켰다. 이런 짓을 획책한 당사자는 그 일로 총신과 총회에서 사라지는 말로(末路)를 스스로 선택했다. 현대 신앙인의 삶에서 기본 중 기본은 사실성과 합리성이다. 우리는 사실과 합리성이 창출하는 양식(良識)으로 중세의 어둠을 부수고 현대 신앙인으로 승격한다. 사실의 준엄함을 부인하면서 의인(義人)을 자처하는 사람은 중세의 포로다. 윤석열 대통령과 축구 선수 손흥민과 메시는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는 삶의 교훈을 증명한다. 화려한 개인기보다 중요한 것은 협업이고 팀플레이다. 작은 것들에 성실할 때 기본이 닦이고 큰 것이 이루어진다. 역지사지(易地思之: 처지를 바꾸어 생각하는 것)가 창조하는 사회적 신뢰와 관용이 르상티망(resentment:라틴어 집중 접두사에서 '다시 re' 그리고 '감정 느낌 sentment'을 합쳐 원한이라는 뜻을 가지게 된 프랑스어)을 치유한다. 사실과 합리성을 나침반 삼아 창공의 별을 바라볼 때 잃어버린 기쁨이 회복된다. 증오와 절망에 굴복하지 않는 것은 모든 살아남은 자의 의무다. 인간은 언제나 도상(途上)에서 고투(苦鬪)하는 존재다. 소망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 지금 그리고 여기, 우리가 하나님 은혜 속에 살아가는 일상다반사(日常茶飯事:날마다 차를 마시고 밥을 먹는 일)에 있다. 성경은 말씀한다.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오직 피차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좇으라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5:15-18 2025-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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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1-12
  • [더굳뉴스] 김관선 목사의 총회 조향장치와 제동장치
    주기철 목사와 조만식 장로를 배출한 산정현 교회의 김관선 목사는 이런 글을 썼다. 매우 오래된 일이지만 자동차운전면허 시험을 준비하면서 알게 된 것이 있습니다. 자동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동차를 빨리 달리게 하는 장치도, 멋진 외관도 아닌 조향장치와 제동장치라는 것입니다. 조향장치란 자동차의 방향을 잡아주는 것이며 제동장치는 자동차를 정지시키는 기능을 합니다. 아무리 빨리 달리는 자동차라 할지라도 원하는 방향으로 자동차가 가지 않는다면 큰일 납니다. 아무리 성능이 좋은 자동차라 할지라도 자동차를 정지시켜야 할 때 멈추지 않는다면 그것은 생명을 위협하는 위험한 흉기에 불과한 것입니다. 운전자가 아무리 핸들을 돌려도 원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거나 제동장치가 고장난 자동차는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그러기에 조향장치와 제동장치를 자동차의 가장 중요한 장치라고 하는 것입니다. 한국의 장자 교단도 그렇지 않을까. 얼마나 힘이 있는지, 또 얼마나 많은 교회가 있는지 이런 것들도 중요하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거대한 교단의 방향을 잘 잡아야 될 것이다. 힘도 있고 교세도 뛰어난데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하면 교단은 결코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아울러 어떤 교단보다 앞서가며 2만 교회를 향해 빠르게 잘 달린다 할지라도 멈춰야 할 순간 멈출 수 없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는가. 방향이 잘못되었는데 빨리 가는 교단은 그 속도만큼이나 더 잘못될 것이며 더욱이 멈출 능력조차 없다면 그 혼란과 뒷감당을 어떻게 할 것인가. 제97회 총회 후 교단은 많은 일이 있었다. 그 중에 혼란은 피했지만 논란은 여전한 총회선거법 개정은 바로 칼빈주의의 본산이고 장자인 교단의 방향성을 생각하게 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 그러나 그 문제에 대해 말들은 무성했지만 몸을 던져 거대한 교단의 제동장치 역할을 홀로 담당한 목사가 있었다. 그는 동평양노회 배광영 목사였다. 배광영 목사와 함께 선거규정효력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던 정중헌 목사는 7월 15일 소를 취하했다.그는 서울중앙법원에 총회선거규정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했다. 선거법 개정의 가장 큰 쟁점은 후보자 자격 중 총회장과 목사부총회장 후보 자격을 세례교인 500명, 기타 임원 세례교인 300명 이상 교회를 시무해야 한다는 조항 삭제 여부다. 또한 총회임원 상비부장 총회산하 기관장을 역임한 자로 경력을 강화하여 논쟁이 첨예하게 진행됐다. 선거법개정위원회(위원장:유병근 목사)는 총회 내 더 많은 인사가 임원에 입후보할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하고, 검증된 인사를 후보로 나서게 해야 한다며 이와 같은 조항을 신설하여 선거법을 개정했다. 그러나 그 속내는 특정 후보를 염두에 둔 선거법 개정이라는 의혹이 짙었다. 게다가 지난 제97회 총회에서 세례교인수 항목을 결의하여 통과하였는데 시행도 하기 전에 회기 중에 선거법을 개정하는 것은 잘못이다. 배광영 목사(동평양노회)가 제기한 총회선거규정효력정지 가처분신청에 대한 심리가 7월 17일 오후 2시 20분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 50부에서 열렸다. 이날 총회 측 변호사는 총회임원 입후보자 자격을 “세례교인 500명, 300명 이상 교회 시무자”로 한정하는 것은 총대들의 선거권을 심각하게 제한하는 것이라고 변론했다. 동평양노회 배광영 목사가 제기한 총회선거규정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이 9월 총회에 앞서 각하됐다. 이로써 제98회 총회 임원선거는 총회선거법개정위원회(위원장:유병근 목사)의 개정안대로 실시하게 되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 51부는 신청인 배광영 목사가 총대가 아님으로 가처분신청 적격자가 아니라고 보았다. 또한 설령 당사자가 적격자라 하더라도 총회 선거법 규정을 놓고 총회 내 다툼이 있지만 개정한 선거규정이 권한범위를 넘어섰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총회실행위원회에서 인준을 받아 공고가 되었기 때문에 별 무리가 없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제98회 총회에서 개정된 선거법 인준을 받은 뒤, 선거를 실시하면 모든 것이 치유될 것으로 보인다며 각하취지를 설명했다. 교단의 행보에 제동을 건 배광영 목사의 시도는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 행보에 잠시나마 한 목사가 제동을 걸었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 교단에 제동장치를 시도해 바로 잡으려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배광영 목사 개인의 용기와 인내는 희생적이고 귀감이 될 만한 일이었다. 나중에 10월 14일 개회되는 제173회 동평양노회 정기회에서 배광영 목사의 일이 논의되었다. 그 때 동평양노회 난곡제일교회 박보근 목사의 설명을 통해 알게 된 일이지만 한 목사가 교단의 힘에 맞서 소송을 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이었다. 소송에는 고비용의 변호사와 저비용의 변호사의 문제도 곁들여 있었기 때문이다. 배광영 목사가 진다면 소송비 부담은 개인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이었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배광영 목사는 굴하지 않고 버티었다. 결과는 승자와 패자를 가리기 어려운 가처분신청 각하였다.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였다. 그리고 총회 현장에서의 선거 결과도 하나님의 은혜가 드러났다. 선거법개정의 저의를 가진 측이 선거에서 참패했기 때문이다. 총회 총대들과 사람들이 소수를 제외하고 저마다 입을 모아 말했다. 다윗과 골리앗 싸움에 이적이 일어났다. 교단의 조향장치와 제어장치는 하나님의 은혜로 정상이었다. 2013-11-25 2013-11-25
    • G.OPINION
    2025-11-08
  • [더굳뉴스] 길자연 목사와 안개
    무진기행은 김승옥이 1975년 잡지 <사상계>에 1964년 발표한 단편 소설이다. 소설 제목에 인용된 무진(霧津)이라는 도시는 실재하지 않으며, 작가의 고향인 전남 순천을 모델로 하여 설정된 가상의 도시이다. 그 소설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무진으로 가는 버스 버스가 산모퉁이를 돌아갈 때 나는 '무진 Mujin 10km'라는 이정비(里程碑)를 보았다. 그것은 옛날과 똑같은 모습으로 길가의 잡초 속에서 튀어나와 있었다. 내 뒷좌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다시 시작된 대화를 나는 들었다. "앞으로 십킬로 남았군요.""예, 한 삼십분 후에 도착할 겁니다.""무진엔 명산물이…… 뭐 별로 없지요?""별게 없지요. 그러면서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건 좀 이상스럽거든요.""원, 아무리 그렇지만 한 고장에 명산물 하나쯤은 있어야지." 무진에 명산물이 없는 게 아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것은 안개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면, 밤사이에 진주해 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삥 둘러싸고 있는 것이었다. 무진을 둘러싸고 있던 산들도 안개에 의하여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유배당해 버리고 없었다. 안개는 마치 이승에 한(恨)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女鬼)가 뿜어 내놓은 입김과 같았다. 해가 떠오르고, 바람이 바다 쪽에서 방향을 바꾸어 불어오기 전에는 사람들의 힘으로써는 그것을 헤쳐 버릴 수가 없었다. 손으로 잡을 수 없으면서도 그것은 뚜렷이 존재했고 사람들을 둘러쌌고 먼 곳에 있는 것으로부터 사람들을 떼어놓았다. 안개, 무진의 안개, 무진의 아침에 사람들이 만나는 안개, 사람들로 하여금 해를, 바람을 간절히 부르게 하는 무진의 안개, 그것이 무진의 명산물이 아닐 수 있을까! 2023년 9월 1일 영성목회연구회(총재 길자연 목사)가 제27회 전국목회자부부수련회를 십자수기도원(길요나 목사)과 2일 대신대학교에서 연이어 개최했다. 수련회 주제는 ‘이 시대를 이끄는 영성! 강하고 담대하라!’로, 영성목회연구회 소속 목회자 부부들은 예배와 강의를 통해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영성 회복을 다짐했다. 내 뇌리에는 총회장, 총장 등의 직함보다 목사가 가장 어울리는 1998년 제83회 총회장, 칼빈과 총신 전 총장, 그리고 한기총 3연속 회장 길자연 목사의 얼굴에 회심의 미소가 감돌고 결연한 눈빛으로 차창 밖을 응시하던 모습이 아련하다. 총회의 바람과 구름을 몰고 다니던 풍운아 허활민 목사의 시절, 2016년 3월 27일 부활주일에도 담임목사가 상주하지 않는 서천읍 교회 사택 마당을 들여다본다. 누군가 마당에 꽃밭을 가꾸었나. 주인이 뜨문뜨문 들르는 그 마당에 봄이라고 꽃들이 피어 있다. 슬며시 주인 없는 교회 사택 마당에 들어가 꽃으로 서본다. 텅 빈 바람이 마음을 헤집고 가슴을 아리게 한다. 과거는 현재에 의해 다시 쓰여진다. 상처의 과거가 꽃의 현재로 치환되는 순간 주님의 몸된 교회는 꽃 천지가 된다. 주체를 바꾸고 교회를 변화시키는 것, 꽃을 피우시기 위해 부활하신 주님의 힘이다. 그의 말과 행동은 언제 한번 그의 교회와 삶에서 개혁신학을 보여 준 적이 없다. 그럼에도 총회 법과 정치에 능통한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총신총장으로서 부총회장 후보로 추대 받았지만 총회도 총신도 안개 지나가듯 다 잃은 김영우 목사가 말했었다. "하나님께서 이번에 나와 함께 하셔서 총회를 섬기게 해주신다면 총회가 개혁신학을 지킬 수 있게 하고 대내외적으로 우리 총회의 위상을 세우며 품격 있는 총회가 되도록 열과 성의를 다하겠다." "나니와(오사카의 영화)도 꿈 속의 꿈"은 일본의 통일영웅인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1537년 3월 17일 ~ 1598년 9월 18일)가 죽음을 앞두고 남긴 마지막 말로, 오사카(나니와)의 영화가 꿈속의 또 다른 꿈처럼 덧없다는 허무함과 인생의 무상함을 노래한 시다. 이는 그가 권력을 잡고 이룬 덧없는 성공과 영화(榮華)를 성찰하며 모든 것이 결국 사라지는 이슬과 같다는 심경을 표현한 것이다. 2022년 4월 19일 왕성교회에서 길자연 목사의 팔순과 <목회보감> 출판을 축하하기 위한 예배에서 증경 총회장 소강석 목사가 축시를 낭독했으며 최병남 원로목사(대전중앙교회), 박종순 원로목사(충신교회), 이영훈 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 유의웅 원로목사(도림교회), 이용남 원로목사(장석교회), 김영우 목사가 축사와 격려사를 전하고 인천만민교회 하귀호 원로목사가 행사를 위해 기도했다고 기독신문이 전한다. 그때 길자연 목사가 깊은 울림의 소리로 말했다고 한다. “돌이켜보니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항상 마음 속에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기도에 전념하는 것이 나에게 남겨진 사명입니다.” 성경은 말씀한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약 4:14 2025-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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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1-01
  • [더굳뉴스] 총회 부패 실정(失政)의 책임
    사익에 대한 열망, 독선과 결합하면 파국의 카운트다운(countdown 마지막 점검)에 들어가 총회 눈귀 흐리는 부정 부패 난제 해결 주역은 결국 신앙과 청지기 의식 교계 언론은 자체 이익보다 팩트 전해야 부정직한 직원에게 공통된 점은 권력과 사욕의 압력과 유혹 속에서 보인 ‘신앙에 대한 무시’ 위계(僞計)는 속임수나 상대방에게 오인, 착각, 부지를 일으키고 상대방의 그러한 심적 상태를 이용하여 불법한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다. 예컨대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에 있어서 ‘위계’란 행위자의 행위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상대방에게 오인, 착각, 부지를 일으키게 하여 그 오인, 착각, 무지를 이용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상대방이 이에 따라 그릇된 행위나 처분을 하였다면 이 죄가 성립한다. 납골당 18년 적폐 해결자 정금 총회장 김종준 목사 때인 2020년 3월 23일 분립 된 중앙노회(노회장:김용제 목사)는 2023년 8월 11일 서울 연지동 기독교연합회관 카페 마레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총회임원회(총회장:권순웅 목사)에 총회 행정 문서 불법 유출에 대한 공정하고 투명한 조사를 촉구했다. 본 교단 기관지 주간 기독신문은 그에 관한 기사를 다음과 같이 게재했다. 기자회견에서 중앙노회장 김용제 목사는 지난 2022년 12월 30일 총회 전체 휴무일에 “불상의 인물이 총회사무실에 침입해 총회 전산망에 접속하여 중앙노회 52회 1차 임시회(2021년 8월 31일)에서 재가입과 해벌이 결의된 이바울 목사의 개인신상 파일 화면을 불법으로 촬영해 사법에 제출했다”라며 해당 자료를 공개했다. 해당 자료는 총회 전산망에서 노회 관리에 분류된 자료 중 ‘회원 정보 등록 관리’ 카테고리 내 ‘면직/제명 등록 관리’ 페이지로 이바울 목사가 2019년 7월 30일 자로 면직 처리된 홈페이지의 캡처 화면이다. 이와 관련 중앙노회 측은 “총회 결의와 노회 간 합의를 근거로 혜린교회(이바울 목사)는 중앙노회로 가입하고 정당한 절차를 거쳐 총회 전산 등재를 요청했으나 미루는 이유는 분명하지 않으며 계속 미루다가 급기야 총회사무실 불법 침입에 개인정보 유출 사건까지 이르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총회임원회는 지난 7월 27일 제28차 임원회에서 중앙노회에서 청원한 총회 행정 문서 불법 유출 및 이바울 목사와 혜린교회 소속 확인 요청을 부서기와 부회록서기에 맡겨 확인하기로 결정했다. 2022년 12월 30일 총회 전체 휴무일에 “불상의 인물이 총회사무실에 침입해 자행한 이 범행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총회 본부의 유력한 직원들이 했을 것이라는 말이 돌고 있다. 이 사건은 세칭 워터게이트 사건(Watergate scandal) 판박이다. 이 추문은 1972년부터 1974년까지 2년 동안 미국에서 일어난 각종 일련의 사건들을 지칭하는데 미국 닉슨 행정부가 베트남전 반대 의사를 표명했던 민주당을 저지하려는 과정에서 일어난 불법 침입과 도청 사건, 이를 부정하고 은폐하려는 미국 행정부의 조직적 움직임 등 권력 남용으로 말미암은 정치 스캔들이었다. 사건 이름은 당시 민주당 선거운동 지휘 본부(Democratic National Committee Headquaters)가 있었던 워싱턴 D. C.의 워터게이트 호텔에서 유래한다. 처음 닉슨과 백악관 측은 ‘침입 사건과 정권과는 관계가 없다’라는 태도를 고수했으나 1974년 8월, "스모킹 건"이라 불리는 테이프가 공개됨에 따라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측근도 그를 떠나게 되었다. 닉슨은 탄핵안 가결이 확실시되자 탄핵으로 수감 된 박근혜와 달리 1974년 8월 9일에 대통령직을 사퇴해 사법 면탈(免脫)됐다. 이로써 그는 미 역사상 최초이자 유일한 임기 중 사퇴한 대통령이 되었다. 성경이 말씀하는 정의에 대한 열망은 사회가 발전하며 자연스레 자라난 국민의 집합적 심성(mentalite)이다. 모세 율법의 눈에는 눈 식으로 악을 응징하는 드라마며 영화가 흥행몰이를 하는 현상이 방증하듯 그 에너지는 가공할 만하다. 그 힘이 제대로 쓰일 때 우리 사회는 도약할 것이다. 하지만 그 열망이 더불어민주당처럼 내로남불식 독선, 타 집단에 대한 혐오, 제도에 대한 불신과 결합 될 때, 돌이킬 수 없는 푸틴의 러시아처럼 파국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될 수 있다. 자신을 희생하는 일에 기꺼이 나설 사람은 세상에 없다. 그러나 모두 희생을 거부한다면 공멸할 게 분명하기에 희생하는 것이다. 모두 죽는 것보다 나은 길이기 때문이다. 그걸 이끌어야 하는 게 총회 지도자들의 소명이다. 세상은 항상 변하기에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지만 바로 그렇기에 같은 일이 두 번 일어나기는 쉽지 않다. 한 번은 우연이지만 두 번은 우연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일이 두 번 일어난다면 거기엔 반드시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한 번 일어난 일은 다시 일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다. 그러나 두 번 일어난 일은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다. 한 번과 두 번은 단순한 차이가 아니라 차원이 다를 수 있기에, ‘어쩌다 한 번’ 일어날 수 있는 일이 두 번 이상 일어난다면 그냥 넘기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좋은 일이면 얼마나 좋겠는가마는 그렇지 않으니 말이다. 그러므로 차제에 총회에 불이익을 안긴 총회 지도자나 직원은 그 죄의 유무와 범위에 따라 징계를 해야 할 것이다. 알아야 할 것을 갖추지 못한 무식한 지도자는 지도자가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 그 정신을 역설적으로 표현한다면 자기 잘못을 모르는 지도자, 총회를 부패시키는 실정(失政)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 사람은 지도자가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는 뜻이다. 총회 정치인들은 모두가 총회보다는 그 알량한 권력, 정치보다는 이권의 노예같이 움직이고 있다. 생각 있는 신자이기만 해도 공동체 안에서 그 정도의 이기주의자는 아닐 것이다. 무지는 무책임이라는 한계를 넘어 나와 우리가 아니면 안 된다는 지도자까지 총회 전면에 나서고 있다. 성경의 정의는 ‘더 많은 하나님의 백성이 그 자녀다운 삶과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의무’라는 엄연한 진리를 말씀한다. 세계 역사의 공통된 정신적 정도(正道)가 있다. 진실, 자유, 인간애의 길이다. 그렇듯 총회 역사의 물줄기도 성경적 진실과 자유에 따른 윤리적 가치, 즉 선한 길을 찾아 구현하는 과정이다. 그럼에도 총회 각 회기는 그 진실과 인간애로 가는 정도를 역행하고 부정하는 편 가르기와 투쟁의 방법을 택했다. 우리 총회 지도자에게 주어진 최선의 권리와 의무는 교회 공익을 위하는 자유와 인간애의 공동체를 위한 선택과 믿음의 사회를 향한 전도의 길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였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으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께로 나서 왔음이라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니라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내 말을 들을 줄 알지 못함이로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 너희 중에 누가 나를 죄로 책잡겠느냐 내가 진리를 말하매 어찌하여 나를 믿지 아니하느냐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 하였음이로다 요 8:42-47 2025-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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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0-22
  • [더굳뉴스] 총회 정치인 목적지
    2023년 10월 7일 이스라엘 남부의 초막절 축제에서 하마스에 납치된 이스라엘 포로 20명이 2025년 10월 13일 팔레스타인 가자에서 석방됐다. 이 일에 정치력을 동원한 미국 대통령 트럼프도 이스라엘에 도착해 의회에서 연설할 예정이라고 한다. 공자가 제자들과 함께 산둥(山東)성 태산을 지날 때였다. 한 여인이 묘지 앞에서 통곡을 하고 있었다. 제자 자로(子路)가 묻기를 “부인은 무슨 일이 있기에 상심이 그리 크십니까”라고 했다. 부인이 답하길 “오래전 내 시아버지는 호랑이에게 물려 죽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전 남편도 호랑이에게 죽었지요. 그런데 이번에는 아들마저 호랑이에게 물려 죽었습니다.” 이번에는 공자가 물었다. “그렇다면 왜 이곳을 떠나지 않는 겁니까?” 부인이 답하길 “그래도 여기는 가혹한 정치는 없으니까요….” 정치라는 말은 고대 중국의 유교 경전인 “상서(尙書)”에서 ‘道洽政治’라는 문장으로 처음 등장한다. ‘정치’(政治)에서 ‘정’(政)은 바르게 하기 위해 일을 하거나 바르게 하도록 회초리로 치는 것을 뜻하는 치(治)의 합성어이다. 정(政)은 특히 자신의 부조화스러운 면을 다스려 극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치(治)는 물(水)이 넘쳐 생긴 피해를 잘 수습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치(治)는 특히 다른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부정하고 부조화한 면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정치(政治)는 자신과 다른 사람의 부조화와 부정적인 것을 바로잡아 극복하는 일이다. 이러한 의미에는 다른 사람을 지배한다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돕는다는 의미가 주를 이루고 있다. 2022년 2월 15일 제106회 총회장 배광식 목사가 총신 졸업생들에게 전한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성경 말씀 내용이 정치의 본뜻이고 유교 경전인 “상서(尙書)”의 ‘도치정치 道洽政治’라는 문장과도 통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더디고 외롭지만, 진실은 늘 누군가의 작고 단단한 발걸음을 따라온다. 세상엔 감추어진 죄악이 많다. 강한 힘으로 진실을 억누르려는 자들도 넘쳐 난다. 하지만 아무리 견고해 보이는 거짓의 성도 결국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낮과 밤, 이성과 감성, 현실과 환상의 세계를 함께 보는 능력을 ‘시(詩)’라고 한다. 속도는 더 빨라질 것이다. 거짓은 더 정교해지고, 더 많아지며, 더 요란하게 퍼질 것이다. 정신을 붙잡기란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다. 그러나 방법은 늘 그 자리에 있다. 잠시 멈추고, 조용히 되묻는 일. 1907년 9월 17일 평양 장대재교회에서 소집된 대한예수교장로회 제1회 노회(독 노회)가 열렸다. 그 때 신경과 규칙을 정식 채용한 최초의 헌장에 근거해 제정되고 공표된 총회 헌법 정치편에서 정치에 대해 이렇게 규정했다. 제1장 원리 예수교 장로회 정치의 일정한 원리 8개 조가 있으니 이것을 이해하여야 교회의 성질을 알 것이다 제1조 양심 자유 양심의 주재는 하나님뿐이시라, 그가 양심의 자유를 주사 신앙과 예배에 대하여 성경에 위반되거나 과분(過分)한 교훈과 명령을 받지 않게 하셨나니 그러므로 일반 인류(人類)는 종교에 관계되는 모든 사건에 대하여 속박을 받지 않고 각기 양심대로 판단할 권리가 있은즉 누구든지 이 권리를 침해(侵害)하지 못한다. 제2조 교회 자유 1. 전조(前條)에 설명한 바 개인 자유의 일례(一例)로 어느 교파 어느 교회든지 각기 교인의 입회 규칙과 입교인 및 직원의 자격과 교회 정치의 일체(一切)조직을 예수 그리스도의 정하신 대로 설정(設定)할 자유권이 있다. 2. 교회는 국가의 세력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오직 국가에서 각 종교의 종교적 기관을 안전 보장하며 동일시(同一視)함을 바라는 것뿐이다. 제3조 교회의 직원과 그 책임 교회의 머리 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지체된 교회에 덕을 세우기 위하여 직원을 설치(設置)하사 다만 복음을 전파하며 성례를 시행하게 하실 뿐 아니라 신도로 진리와 본분을 준수하도록 관리(管理)하게 하신 것이라. 이러므로 교우 중에 거짓 도리를 신앙하는 자와 행위가 악한 자가 있으면 교회를 대표한 직원과 치리회가 당연히 책망하거나 출교할 것이라. 그러나 항상 성경에 교훈한 법례(法例)대로 행한다. 제4조 진리와 행위의 관계 진리는 선행의 기초라 진리가 진리 되는 증거는 사람으로 성결하게 하는 경향(傾向)에 있으니 주 말씀하시되 ‘과실로 그 나무를 안다’ 하심과 같으니 진리와 허위(虛僞)가 동일(同一)하며 사람의 신앙이 어떠하든지 관계없다 하는 이 말보다 더 패리(悖理)하고 더 해로운 것은 없다. 신앙과 행위는 연락하고 진리와 본분은 서로 결탁(結託)되어 나누지 못할 것이니 그렇지 아니하면 진리를 연구하거나 선택할 필요가 없다. 총회 헌법 정치편 제1장 원리에서 규정하듯 진리를 벗어나 길을 잃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터덜거리며 걸어간 길 끝에 멀리서 다가 오시는 주님의 따뜻함을. 막무가내의 어둠 속에서 누군가 맞잡을 손이 있다는 것이 주님에 대한 얼마나 새로운 발견인지. 삶 속에서 밤을 맞아 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 삶에 갇힌 작은 믿음들이 거대한 세파보다 얼마나 큰 힘으로 어깨를 감싸 주는지. 먼 곳의 불빛은 믿음의 순례자를 쉬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걸어갈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을. 상처받지 않고 강하게 살아야 ‘잘’ 사는 세상이라니까 물러 터지고 주저하는 사람들은 ‘잘’ 살기가 참 난감할 것이다. 쉽게 잊기보다는 자꾸 뒤돌아보는 버릇이 있고, 짐을 버리기보다 짊어지는 습성이 남아 있다면 ‘잘’ 못 살고 있는 것인가 헷갈리기도 할 것이다. 난감하여 손을 만지작거리고, 헷갈려서 머리를 긁적거리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 둘 곳 없는 손을 잡아주는 대신, 쑥스러운 머리를 토닥이는 대신 다정하게 읽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 헤맨 끝에 제자들은 구원을 찾았다. 그 순례자의 지친 다리를 구원해 준 것은 ‘말씀의 불빛’이었다. ‘불빛’이 너를 안아 줄 거야, 나도 그랬으니 한번 믿어 봐. 주님은 그렇게 말씀한다. 그 말씀을 듣는 순간 보지 못했던 불빛이 보이고, 보지 못했던 불빛이 되기도 한다. 누군가는 그것을 이상향, 가치, 덕목이라고 부를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그렇게 거창한 이야기까지 갈 것도 없다. 주님의 말씀은 구원이고 사랑이다. 너를 기다리는 주님의 말씀, 나를 기다릴 주님의 말씀, 이 말씀이 총회 정치가들, 특별히 총회장 장봉생 목사와 부총회장 정영교 목사와 서기 김용대 목사의 등불이 되기를 소망한다. 특별히 그들은 무조건 달리기 보다 먼저 가는 곳이 어디인지를 알아야 할 것이다. 1907년 제정된 총회 헌법 정치편 제4조가 총회 정치인들의 목적지를 명시하고 있다. 진리는 선행의 기초라 진리가 진리 되는 증거는 사람으로 성결하게 하는 경향(傾向)에 있으니 주 말씀하시되 ‘과실로 그 나무를 안다’ 하심과 같으니 진리와 허위(虛僞)가 동일(同一)하며 사람의 신앙이 어떠하든지 관계없다 하는 이 말보다 더 패리(悖理)하고 더 해로운 것은 없다. 신앙과 행위는 연락하고 진리와 본분은 서로 결탁(結託)되어 나누지 못할 것이니 그렇지 아니하면 진리를 연구하거나 선택할 필요가 없다. 더불어 성경은 말씀한다. 도마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5-6 2025-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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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0-13
  • [더굳뉴스] 한국 빛낸 세 대통령 세 총회장
    인간은 개인, 사회와 더불어 두 거대한 정신사적 흐름과 함께 역사의 강을 계승해 왔다. 그 하나는 이성(理性)적 판단에 따르는 진실(眞實)의 가치고, 또 하나는 양심(良心)의 선택과 가치를 주관하는 자유와 그 창조성이다. 이성과 양심을 갖추지 못하면 인간다운 삶을 영유할 수 없고, 그 사회역사적 권리와 의무를 포기하면 사회와 국가는 존속하지 못한다. 인간의 본질과 사회적 질서가 그 기반 위에 존립(存立)하는 까닭이다. “별이 빛나는 밤하늘은 늘 나를 꿈꾸게 해.” 네덜란드 후기인상파 화가 고흐(1853-1890)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 쓴 말이다. 그랬다. 현실은 아프고 힘들었지만 별을 그리는 순간만큼은 꿈을 꾸는 것처럼 행복했을 터다. 화가는 비록 실패작으로 여겼지만 밤하늘에 빛나는 그림 속 별들은 21세기를 사는 우리들도 꿈꾸게 만든다. 큰일을 추진하면서도 작은 일을 챙기는 데 소홀함이 없던 만 가지 일(기미)을 친히 살핀다는 만기친람(萬機親覽)형 통치술의 이승만(李承晚1875년 3월 26일~1965년 7월 19일)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대 대통령이자 마지막 주석을 거쳐 대한민국의 제1·2·3대 대통령으로서 대한민국의 토대를 마련했다. 대한민국의 제5·6·7·8·9대 대통령 박정희(朴正熙 1917년 11월 14일~1979년 10월 26일)는 경제에 문외한이었지만 자기주도적 학습 능력을 통해 끊임없이 노력하며 단기간에 경제의 본질을 배웠다. 매일 3시간씩 대학교수로부터 1대1 강습을 받았고 수출진흥확대회의를 열어 찬반 토론을 경청한 뒤 결론을 내렸다. 유연한 정신자세, 겸손, 사심(私心)이 적은 태도도 한몫했다. 그 결과는 ‘한강의 기적’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탄탄한 권력 기반을 확보한 뒤에는 역설적으로 이 장점들의 빛이 바랬다. 1972년 유신 선포와 1974년 육영수 여사 피습 사건을 거치며 자기주도 학습은 기능을 멈췄고 특유의 자기 수정 능력도 둔화됐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은 박정희 대통령이 성장시켰다. 대한민국의 제14대 대통령 김영삼(金泳三, 1929년 1월 14일~2015년 11월 22일)은 대한민국 역대 최연소인 만 25세의 나이로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9선 의원을 지내면서 김대중과 민주 진영의 지도자로 활동하며 민주화를 이룩했다. 이승만, 박정희, 김영삼 이들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이들은 대한민국의 세 별들이었다. 그처럼 오늘의 합동 총회를 만든 세 별을 꼽는다면 누구일까.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Horace Grant Underwood, 1859년 7월 19일 ~ 1916년 10 월 12일)는 미국 장로교 선교사이다. 언더우드 선교사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한국어 이름은 원두우(元杜尤)이다. 1859년 7월 19일에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서 13세가 되던 해에 미국으로 이주하였다. 1881년 뉴욕 대학교를 졸업하였으며 같은 해부터 1884년까지 뉴브런스위크신학교에서 공부하였다. 1883년 11월 목사가 되었고 1년간 인도 선교를 위해서 의학 공부를 하면서 실력을 쌓았으며, 1884년 7월 28일 조선 최초의 장로교 선교사로 선정되었다. 하지만 조선은 개혁파들이 일으킨 갑신정변으로 사회가 혼란하였기 때문에 일본에 머물러야 했다. 그동안 조선 기독교인으로서 마가복음서를 번역한 문서선교사 이수정(李樹廷)에게서 한국어를 배우면서 조선에서의 선교를 준비하였다. 언더우드는 1885년 부활주일인 4월 5일에 제물포항에 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러와 함께 한국 선교사로 입국했다. 그러나 그는 조선 정부에서 선교 활동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제중원에서 물리와 화학을 가르치는 교사가 되었다. 그러면서 그는 조선어 문법책을 영어로 저술하였다. 그 후 성서번역위원회 초대위원장, 대한기독교서회 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한편 예수교 학당(현재 경신중고등학교), 서울 구세 학당,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학교)를 설립하였다. 또한 교회 연합 운동을 지도하는 등 한국의 종교·문화·언어·정치·사회 등 여러 분야에 많은 업적을 남겼다. 그런 그가 1912년 9월 1-4일 대한예수교장로회 제1회 총회장으로 선출됐다. 1930년대 일제는 기독교단들에게 신사참배를 강요하였다. 이에 개신교인들은 저항했으나 많은 목사들이 투옥되고 평양신학교가 휴교당했으며 결국 일제 패망까지 많은 목사와 신도들이 신사참배에 가담하였다. 1940년대 총독부의 허가를 받아 서울에 조선신학교가 생겼다. 그리고 해방 후 1947년 다시금 대한예수교장로회가 복원되었다. 1959년 제44회 총회는 선교 75주년 기념 총회로 1959년 9월 24일 대전중앙교회에서 개회된다. 총회 한 달 전에 총대들에게 통보되어야 할 총대 명단이 총대 호명 시간에 비로소 배부된다. 하지만 거기에는 경기노회 총대 명단이 빠져 있었다. 첫날 회의부터 경기노회 문제로 양측은 대립을 계속하다가 25일 경기노회 정기·임시 양측에서 3인씩 나와서 경위를 밝히고 표결 처리하기로 한다. 오후에 표결을 진행, 임시 노회 측이 124표(정기 노회 측 119표)를 얻어 회장은 임시노회 총대를 받게 됨을 선포하면서 사태는 급박하게 전개된다. 그 갈등의 결과 1959년 한국장로교회는 한국장로교 NAE 세력과 에큐메니칼 WCC 세력으로 갈리게 되었다. 1948년 루터교, 개혁교회(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성공회 등의 개신교 주류 교파들과 동방 정교회 대표 성직자들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모여서 결성한 세계 교회 협의회 WCC(World Council of Churches)를 지지하는 측은 기장 측 일부 온건파 인사들과 연합하여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총회를 만들었다. 반면 WCC를 반대하는 1942년 결성된 ‘전국복음주의자협의회’ NAE(National Association of Evangelicals)에 1953년 가입한 측은 1951년 독립해 나갔던 고신 교단과 손을 잡고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총회를 만들었다. 합동이라는 이름은 고신과 승동파가 합동하였으므로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이다. 한국장로회 NAE는 경북 NAE(박병훈), 호남 NAE(정규오), 이북 NAE(김윤찬)의 정치적 연합체였다. 이들은 박형룡을 앞세워 긴밀한 연합체를 이루었고 총회 교권과 남산 총회신학교의 주도권을 공유하고 있었다. NAE 측의 승동총회는 1959년 11월 24일에 속회하였다. 이런 과정을 통해 제110회를 맞아 한국 교회를 빛낸 합동 총회의 세 별을 꼽는다면 내 소견에 다음 세 총회장일 것 같다. 분열 이후 신앙 인격과 보수적 정치력으로 합동 총회 정체성을 확립한 제51회 총회장 박찬목 목사(1966.9.22.-27), 성장하는 교계와 교단을 아우르는 특유의 정치력으로 현재의 총신과 총회의 터전과 기틀을 확립한 제65회 총회장 이영수 목사(1980.9.25-29), 성장에 취해 그 본질을 잃은 교단의 정체성을 회복시킨 제104회 총회장 김종준 목사(2019.9.23-26) 등이다. 어떤 사람은 시간을 포도주처럼 해석한다. 풍부한 자원이거나 지금은 없더라도 은퇴하면 시간이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젊을 때와 은퇴 후 시간은 그 안에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신체적 능력과 가능성에서 차이가 나기 마련이다. 이들은 “나중에”라는 말을 자주 하며 언젠가 자신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 시도하지 않는 일을 나중에 정말 할 수 있을까. 앞으로 제110회 총회 임원들은 총회 역사에 어떤 평가를 받게 될까. 정치외로정권이나 총회만을 위한 과업이 아니다. 세상과 교회의 개혁을 위한 신자다운 삶의 가치와 질서 창출에 그 과업이 있다. 오늘은 내일을 위해 필요하듯이 현재는 정신적 미래를 정립해야 민생이 궤도에 오른다. 더 이상 신학과 이데올로기만을 위한 정신적 가치와 질서를 역행해서는 안 된다. 지금의 국회 상황과 교단 형편을 10년 후에 국민과 교인들에게 공개해 보라. 어떤 역사적 평가를 하겠는가. 성경은 말씀한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빌 3:12-14 2025-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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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0-11
  • [더굳뉴스] 목사와 교수의 대우
    들녁에 만상이 살아있다는 황금빛 영광! 예수께선 ‘들에 핀 백합을 보라! 솔로몬의 영광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다(마태복음 6:29)’ 말씀하셨다. 총신대 시절 사당동 골짜기 미완성의 1동짜리 총신대에서 허름한 옷차림으로 되뇌인 적이 있었다. “오늘은 눈이 열려 솔로몬의 영광보다 더한 영광을 이 골짜기에서 보게 하시니 감사하나이다!” 예수께선 어린이와 같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하셨다. 동심에 온유와 겸손의 도가 있다. 늘 성경을 읽는다는면 우리의 마음엔 그 진리가 벌써 자리한 것일까. 꽃을 가리키는 대표적 한자는 화(花)다. 영화(榮華)라는 단어의 각 글자는 꽃이다. 식물 형태가 목본(木本)이냐 초본(草本)이냐에 따라 ‘영’과 ‘화’를 구별할 때도 있지만 분명치는 않다. 두 글자는 어쨌든 식물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 정수(精髓)라는 우러름을 받는다. 그 맥락에서 영(英) 또한 꽃의 지칭이다. 가장 빼어난 사내를 영웅(英雄), 그런 능력의 사람을 영재(英才)로 적는 이유다. 꽃이 피었다 시드는 과정을 영고(榮枯)라 적어 성쇠(盛衰)와 흥망(興亡), 흥폐(興廢) 등의 뜻으로 새긴다. 총회선관위의 유권해석에 따라 4월에 열리는 봄 노회에서 총회 임원의 경우 목사부총회장은 장봉생 목사(서울노회ㆍ서대문교회)가 가장 유력한 후보로 나설 것이다. 장로부총회장은 김영식 장로(군산남노회ㆍ익산서두교회), 김형곤 장로(김제노회ㆍ대창교회), 박석만 장로(서수원노회ㆍ풍성한교회)가 경합했다. 부서기는 이종석 목사(동수원노회ㆍ광교제일교회)를 배정환 목사(광주노회ㆍ광주미문교회) 서만종 목사(광주전남노회ㆍ광주단비교회) 등 두 사람이 뒤쫓을 형국이다. 부회록서기는 안창현 목사(군산남노회ㆍ서광교회)와 최찬용 목사(남수원노회ㆍ대덕교회)가 경쟁했다. 회록서기는 김종철 목사(용천노회ㆍ큰빛교회), 회계는 부회계 이민호 장로(경북노회ㆍ왜관교회)가 정임원으로 올라갔다. 기관장 유력 후보는 교육개발원 이사장 송태근 목사(평양제일노회ㆍ삼일교회, 재임), 기독신문 사장 태준호 장로(전서노회ㆍ태인교회, 재임), 총회세계선교회 이사장 김장교 목사(대경노회ㆍ서성로교회), 기독신문 이사장 장재덕 목사(경동노회ㆍ서문교회) 등 이었다. 아카데미상을 휩쓴 영화 ‘오펜하이머’의 주인공인 핵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Julius Robert Oppenheimer, FRS, 1904년 4월 22일 ~ 1967년 2월 18일)는 철저한 강의 준비로 유명했다. 버클리 교수 시절엔 영감을 불어넣는 강의에 매료된 학생들이 같은 과목을 두세 번씩 수강 신청했다. 오펜하이머는 다른 교수들이 불성실하게 강의하는 것을 참지 못했다. 강의가 마음에 안 들면 수업 중인 교수를 강의실 밖으로 내쫓은 적도 있다고 한다. 강의에 대한 이런 열정은 교수직을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닌 신의 소명으로 보는 서구 대학의 오랜 전통에서 비롯됐다. ‘교수’라는 뜻의 영어 ‘프로페서(professor)’는 라틴어 pro(앞으로)와 fateri(공표하다)에서 왔다. ‘다중 앞에서 공적인 주제로 말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대학의 시초로 꼽히는 11세기 볼로냐 대학에서 처음 개설한 것은 신학이었다. 교수는 신의 진리를 많은 이에게 전하는 신성한 직업이었던 것이다. 중세 이후 교수는 출신에 관계없이 귀족 대우를 받았다. 오늘날 독일 등 중부 유럽에서 교수들이 누리는 사회적 존경에는 깊은 뿌리가 있다. 우리는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직업에 ‘사’를 붙인다. 공적인 일을 하는 판·검사에겐 ‘일 사(事)’를 쓴다. 변호사·변리사·조종사는 전문 지식을 존중하는 의미로 ‘선비 사(士)’를 쓴다. 그런 전문가 중에 특히 사회에 희생하고 봉사하는 직종엔 ‘남을 가르친다’라는 뜻의 ‘스승 사(師)’를 붙인다. 아픈 이들을 돌보는 도덕적 사명을 수행하는 의사에게 ‘師’를 쓰는 이유다. 대한의사협회에서 정한 의사윤리지침 3조에는 의사의 본분이 이렇게 적혀 있다. "의사는 고귀한 사람의 생명과 건강을 보전하고 증진하는 숭고한 사명의 수행을 삶의 본분으로 삼아…." 의사윤리지침이 정한 소명에 충실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의사라면 결국에는 죄책감의 칼날에 양심이 베일 것만 같다. 그 소명에 다가갈수록 환자를 두고 떠난 옛 기억이 그를 괴롭힐 것이다. 그 기억은 '나는 환자의 고귀한 생명을 보전하는 의사'라는 정체성과는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목사(牧師)는 개신교의 성직자이다. 개신교의 예배(禮拜)와 예전(禮典)을 집행하며 신도의 교육과 지도, 세상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 임무를 갖는다. "목사"라는 명칭은 신약성경 에베소서 4장 11-12절(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에서 발견할 수 있다. 신약성경 원문인 헬라어 단어는 "포이멘"(ποιμήν)으로 목자, 양치기이며, 이 단어의 라틴어 번역어인 "파스토르"(pastor)에서 목사를 의미하는 영어 단어 '패스터'(pastor)가 유래했다. 역사는 타이밍, 사람, 상황 그리고 우연의 복잡한 얽힘이라고 할 수 있다. 아픈 이들을 돌보는 도덕적 사명을 수행하는 의사가 의대생 숫자 늘린다고 환자가 있는 병원을 떠나 파업을 하는 시대가 됐다. 이런 상황에 우리 목사와 장로는 어떤 삶을 살고 총회를 어떻게 섬겨야 할까. 성경은 말씀한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빌 3:7-14 2025-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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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0-10
  • [더굳뉴스] 박용규 총무 행정력 제110회 총회 성공 기여
    예술가가 돌에 애착을 갖는 까닭은 멈춘 듯 고요하면서도 꽉 찬 밀도의 힘이 느껴지는 비범한 기운 때문이다. 생명 없는 돌도 그 내용을 알려면 그 형식도 들여다볼 수 있는 안목과 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하듯 110년 역사의 총회를 책임진 총회장이나 그 청지기 총무도 그래야 할 것이다. 미국의 소설가 필립 로스(Philip Milton Roth, 1933년 3월 19일 ~ 2018년 5월 22일)는 말했다. “영감을 기다리는 건 아마추어고 우리는 그냥 일을 하러 간다.” 그 말을 금과옥조(金科玉條)처럼 새기고 ‘영감’이 아닌 ‘마감’의 힘으로 버티는 게 총무의 일이 되어야 할 것이다. 삶의 많은 부분이 실은 이런 힘에 의해 움직인다. 하나님의 섭리는 면죄부 장삿꾼을 통해 루터의 종교개혁을 일으키게 하셨기 때문이다. 사조를 되찿는 개혁의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년 10월 15일 ~ 1900년 8월 25일)는 “소나무의 태도를 배울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소나무는 초조해하지 않고 당황하지 않고 조바심내지 않으며 아우성치지 않고 가만히 인내할 뿐이다. 척박한 바위 사이에도 뿌리내리는 소나무야말로 건너가는 자, 즉 초인(超人)이 아닐까. 총신 마당의 바위를 보고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저 돌 앞에서 누가 거짓을 말할 수 있겠나." 그런데 총회 복도에서 제109회 선거관리워원장 오정호 목사에게 이런 말을 외친 사람이 있었다. "니가 하나님이냐." 이런 난장판 가운데 총회 총무 박용규목사는 제109회 김종혁 총회장을 중심으로 제110회 총회를 성공으로 이끄는 원숙한 행정력을 발휘했다. 성경은 말씀한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약 1:15 2025-10-06
    • G.OPIN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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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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