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럼독 밀리어네어' 대니 보일 감독, '소셜 네트워크' 아론 소킨 각본, 마이클 패스벤더 & 케이트 윈슬렛 주연으로 기대를 모으는 영화 '스티브 잡스'가 오는 10월 9일 북미 개봉을 확정 지으며, 티저 예고편을 5월 18일 전격 공개했다. 티저 예고편의 목적은 고객에게 영화의 내용을 알려주지 않고 단순히 영화가 곧 개봉될 예정이라는 것을 알리는 것이다. 티저 광고(Teaser廣告)는 요소를 고객에게 공개하지 않음으로써 관심을 끌려고 하는 상업 광고의 한 방법이다.
이번 예고편에서는 "당신은 프로그램 개발 못 해. 엔지니어가 아니잖소"라는 남자의 말에 "연주자들은 악기를 연주한다. 나는 오케스트라를 지휘한다. 난 차고에 앉아 미래를 창조했소"라는 스티브 잡스(마이클 패스벤더)로 추정되는 목소리가 이어진다. 그리고 예고편 영상은 "그 누구도 당신과 같은 방식으로 세상을 보지 않아"라는 말로 끝난다.
이어 프레젠테이션을 위해 연단으로 올라 청중을 바라보는 잡스의 모습이 그려진다.
생전에 스티브 잡스는 말했다.
“자기 자신을 보는 '눈'을 바꿔라. 사람은 애초부터 자기 자신에게 관대해질 수밖에 없는 존재다. 그래서 문제를 더 키우는 경향이 있다. 자기 자신을 냉철한 자세에서 바라볼 때 문제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경쟁회사였던 IBM이 '애플은 썩은 사과(애플)'이란 제목으로 기사를 내자 애플은 다음 날 '애플은 썩은 부분을 도려낸 사과'라고 기사를 냈고, 이때부터 세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사과를 누군가 한 입 베어 문 듯한 그림의 애플 회사 마크가 만들어졌다.
2005년 아직 건강할 때 스티브 잡스는 미국 스탠포드 대학 졸업식에서 세계를 감동시킨 자신의 모든 것이 담긴 연설을 했다.
오늘 저는,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대학의 한 곳을 졸업하면서 새 출발을 하는 여러분들과 함께하는 영광을 누리고 있습니다. 저는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습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이번이 제가 대학 졸업식이라는 곳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경우입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들에게 제 인생에 관한 세 가지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뭐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고 그저 세 가지의 이야기입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점(點)을 잇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저는 리드 대학이라는 곳을 첫 6개월 다닌 후 그만 두었습니다. 그 후 18개월 동안은 비정규 청강생으로 머물렀고 그 후 완전히 자퇴를 했습니다. 제가 왜 대학을 그만두었을까요? 이야기는 제가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됩니다. 제 생모는 젊은 미혼의 대학생이었는데, 저를 낳으면 다른 사람에게 입양을 시키기로 결심했습니다. 생모는 제가 반드시 대학을 졸업한 부부에게 입양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태어나면 바로 어떤 변호사 부부에게 입양되기로 되어있었고, 그것으로 모든 것이 다 끝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제가 태어났을 때 절 입양키로 한 부부는 마음을 바꿔, 자신들은 여자아이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저의 양부모님은 한밤중에 “우리가 예기치 않은 사내아이를 갖게 되었는데 아이를 원하느냐”는 전화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분들은 흔쾌히 입양을 수락하셨습니다. 저의 생모는 나중에야 양어머니가 대학을 나오지 않았고, 양아버지는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저의 생모는 이런 이유로 최종 입양서류에 서명을 하지 않다가 몇 달 후 양부모님이 저를 나중에 대학에 보낼 것이라는 약속을 하고서야 마음을 바꿨습니다.
17년이 지난 후 저는 정말 대학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당시에 스탠포드와 거의 맞먹는 수준의 학비가 드는 대학을 선택했고, 평범한 노동자였던 저의 양부모님은 저축한 모든 돈을 제 대학등록금에 써야 했습니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난 후 저는 그만한 돈을 쓰는 데 대한 가치를 느낄 수 없었습니다. 저는 저의 삶에서 무엇을 하길 원하는지 알지 못했고, 대학이 그것을 아는 데 어떤 도움을 줄지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저의 부모님은 전 인생을 통해 저축해놓은 모든 돈을 학비로 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대학을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저는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습니다…제가 호기심과 직관을 따라서 한 일들은 나중에 값으로 매길 수 없는 큰 가치로 나타났습니다. 한 가지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제가 다녔던 리드대학은 그 당시 미국에서 최고의 서체 교육 기관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캠퍼스 전체를 통해 모든 포스터, 모든 표지물들은 손으로 그려진 아름다운 손글씨로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정규과목들을 더 이상 들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이런 글자체들을 어떻게 만드는지를 배워 보려고 서체과목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세리프나 산세리프 활자체를 배웠고, 무엇이 훌륭한 활자체를 만드는지에 대해 배웠습니다. 그것은 과학이 알아내지 못하는, 아름답고 역사적이며 예술적인 미묘함을 갖고 있었습니다. 저는 거기에 매료되었습니다. 당시 저에겐 이런 모든 것이 제 삶에 실제로 응용될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10년 후, 우리가 최초의 매킨토시 컴퓨터를 만들 때 그 모든 것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맥 컴퓨터는 아름다운 글자체를 가진 최초의 컴퓨터가 되었습니다…물론 제가 대학에 있을 때는 미래를 내다보면서 점을 잇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후 과거를 되돌아 볼 때 그것은 너무나 분명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미래를 내다보면서 점을 이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과거를 돌이켜 보면서 점을 이을 수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여러분들은 지금 잇는 점들이 미래의 어떤 시점에 서로 연결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여러분들은 자신의 내면, 운명, 인생, 카르마, 그 무엇이든지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접근법은 저를 결코 낙담시키지 않았고, 제 삶의 모든 변화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저의 두 번째 이야기는 사랑과 상실에 관한 것입니다. 저는 인생의 이른 시기에 하고 싶은 것을 발견한 행운아였습니다. 우즈와 저는 애플을 우리 부모님의 차고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때 저는 스무 살이었습니다. 우리는 열심히 일했습니다. 10년이 지난 후 애플은, 우리 둘만의 차고에서 20억 달러에다 4000명의 직원을 가진 회사로 성장했습니다. 제 나이 29살, 우리는 최고의 작품인 매킨토시를 출시했습니다. 그러나 이듬해 1985년 저는 해고당했습니다. 어떻게 자신이 만든 회사에서 해고를 당할 수 있겠느냐고요? 당시, 애플이 점점 성장하면서, 저는 저와 잘 맞는 유능한 경영자를 데려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잡스는 애플의 성장을 위해 펩시 사장인 존 스컬리를 애플에 영입할 때, 대기업의 사장자리를 버리고 신생기업으로 가기를 망설이던 스컬리에게 "인생 끝날 때까지 설탕물을 팔겠나, 나한테 와서 세상을 바꾸겠나?"라고 하자 존 스컬리는 망설임 없이 애플로 이적했다고 한다.) 첫해는 그럭저럭 잘 되어 갔습니다. 그러나 그 후 우리들의 미래에 대한 관점에 차이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결국 내부적으로 분열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회사 이사회는 그를 지지했고, 저는 서른 살이 된 해에 그렇게 쫓겨났습니다…저는 공식적으로 실패한 사람이었고 실리콘 밸리에서 도망가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제 맘속에 무언가가 천천히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여전히 제가 하는 일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애플에서 겪었던 일들조차도 그런 마음을 꺾지 못했습니다. 저는 해고당했지만 여전히 저의 일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새롭게 출발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때는 전혀 몰랐지만, 애플에서 해고된 일은 저에게 일어날 수 있었던 일 중 최고의 사건이었습니다. 그 사건은 제가 성공의 중압감을 벗어나 초심자의 가벼운 마음을 되찾게 해줬고, 내 인생의 최고의 창의력을 발휘하는 시기로 들어갈 수 있도록 자유롭게 해줬습니다. 이후 5년 동안 저는 NeXT, 그리고 Pixar라는 이름의 다른 회사를 만들었고, 지금의 제 처가 된 여성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픽사는 세계 최초로 컴퓨터 애니메이션 영화인 토이스토리를 만들었고,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애니메이션 회사가 되었습니다. 이후 놀랍게도 애플은 넥스트를 사들였고 저는 애플로 복귀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넥스트에서 개발한 기술은 애플의 현재 르네상스의 핵심이 되었습니다. 또한 로렌과 저는 함께 한 가족을 만들었습니다. 저가 애플에서 해고되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 가운데 어떤 것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것은 쓰디쓴 약이었지만, 환자에게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인생이란 때로 여러분들을 고통스럽게 하지만, 신념을 잃지 말기 바랍니다. 저를 이끌어간 유일한 힘은, 제가 하는 일을 사랑했다는 것에서부터 나왔다고 믿습니다…
세 번째 이야기는 죽음에 관한 것입니다. 제가 열일곱 살이었을 때, 이런 구절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매일을 삶의 마지막 날처럼 산다면 언젠가 당신은 대부분 옳은 삶을 살았을 것이다.” 저는 그것에 강한 인상을 받았고, 이후 33년 동안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면서 제 자신에게 말했습니다. “만일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내가 오늘 하려는 것을 하게 될까?” 그리고 여러 날 동안 그 답이 ‘아니오’라고 나온다면, 저는 어떤 것을 바꿔야 한다고 깨달았습니다. 제가 곧 죽을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는 것은, 제가 인생에서 큰 결정들을 내리는 데 도움을 준 가장 중요한 도구였습니다. 모든 외부의 기대들, 자부심, 좌절과 실패의 두려움, 그런 것들은 죽음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진정으로 중요한 것만을 남기게 됩니다.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당신이 무엇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의 함정을 벗어나는 최고의 길입니다. 여러분은 이미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마음을 따라가지 못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약 1년 전 저는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아침 7시30분에 검사를 받았는데, 췌장에 종양이 발견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췌장이라는 게 무엇인지도 몰랐습니다. 의사들은 이것이 치료가 거의 불가능한 종류의 암이라면서 제가 길어봐야 3개월에서 6개월밖에 살수 없다고 했습니다. 의사는 저에게 집으로 가서 주변을 정리하라고 충고했습니다. 그것은 내 아이들에게 앞으로 10년 동안 해 줘야 하는 말을 단 몇 달 안에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임종 시 가족들이 받을 충격이 덜하도록 모든 것을 정리하란 말이었고 작별인사를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하루 종일 검사를 받았습니다. 그날 저녁 늦게 저는 목구멍을 통해 내시경을 넣는 조직검사를 받았습니다. 세포를 췌장에서 떼어내 조사를 했습니다. 저는 마취상태였는데 나중에 아내가 말해 주길 현미경으로 세포를 분석한 결과 치료가 가능한 아주 희귀한 췌장암으로 밝혀져 의사들까지도 기뻐서 눈물을 글썽였다고 합니다. 저는 수술을 받았고 건강해졌습니다…
제가 젊었을 때, 제 나이 또래라면 다 알만한 “지구 백과”라는 책이 있었습니다. 그 책은 이곳에서 멀지 않은 먼로 파크에 사는 스튜어트 브래드란 사람이 쓴 책인데 그는 자신의 모든 걸 이 책에 불어넣었습니다. 그 책이 나온 게 1960년대로, 그 당시에는 개인용 컴퓨터도 PC 출판도 없었기 때문에, 그 책은 타자기와 가위, 폴라로이드 사진들로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종이책 형태의 구글 같은 것이었는데, 구글이 나타나기 35년 전의 일입니다. 스튜어트와 그의 팀은 이 책을 여러 번 개정했고, 수명이 다할 때쯤에야 최종판을 냈습니다. 그것이 1970년대 중반이었습니다. 바로 제가 여러분의 나이 때입니다. 그 최종판의 뒷 표지에는 이른 아침 시골길 사진이 있었는데 아마 모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히치하이킹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지요. 그 사진 밑에는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늘 갈망하고 우직하게 나아가라(Stay Hungry. Stay Foolish).”
1976년 스티브 워즈니악, 로널드 웨인과 함께 애플을 공동 창업하고, 애플 2를 통해 개인용 컴퓨터를 대중화하고, 컴퓨터를 사용하면서 그림으로 된 화면 위의 물체나 틀, 색상과 같은 그래픽 요소들을 어떠한 기능과 용도를 나타내기 위해 고안된 사용자를 위한 GUI(그래픽 사용자 접속기:graphical user interface)와 마우스의 가능성을 처음으로 내다보고 애플 리사와 매킨토시에서 이 기술을 도입했고, 1985년 경영분쟁으로 애플에서 나온 이후 NeXT 컴퓨터를 창업하여 새로운 개념의 운영 체제를 개발했고, 1997년에는 임시 CEO로 애플을 다시 이끌게 된 이후 다시금 애플을 혁신해 2001년 아이팟을 출시하여 음악 산업 전체를 뒤바꾸어 놓았고, 2007년 아이폰 을 출시하면서 스마트폰 시장을 바꾸어 놓았고, 그리고 2010년 아이패드를 출시함으로써 포스트PC 시대를 열었던 스티븐 폴 스티브 잡스(Steven Paul "Steve" Jobs, 1955년 2월 24일 ~ 2011년 10월 5일)는 2011년 10월 5일 56세의 나이에 췌장암으로 사망했다.
스티브 잡스의 사망에 대해 애플은 공식성명을 냈다.
“애플은 명확한 비전과 창의성을 지닌 천재를 잃었습니다. 그리고 세계는 정말 놀라웠던 한 사람을 잃었습니다. 스티브와 함께 일하는 행운을 누렸던 저희는 사랑하는 친구이자 늘 영감을 주는 멘토였던 그를 잃었습니다. 이제 스티브는 오직 그만이 만들 수 있었던 회사를 남기고 떠났으며, 그의 정신은 애플의 근간이 되어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말을 실천하고 이룬 사람이었다.
날마다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면, 언젠가 당신은 아주 확실하게 바른 사람이 될 것이다(If you live each day as it was your last, someday you'll most certainly be right).
2026년 6월 3일 전국 16개 시도에서 교육감 선거가 치러진다. 문해력 저하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학생들이 족보를 ‘족발 보쌈 세트’의 줄임말로 착각한 사례는 재작년부터 화제였고, 생성형 AI가 제공하는 줄거리만 보고 책은 읽지 않는 현실도 많이 보도됐다. 그런 만큼 문해력 점수 하락이라는 결과가 나왔을 때, 교육청은 이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정책 마련에 즉각 나서야 했다. 하지만 “올해 진단검사를 실시한 뒤에 지난해 결과 공개가 가능하다”며 발표를 미루고 있다.
문해력 진단 결과를 계속 숨기는 서울을 비롯해 전국 교육감 후보들에게 제안한다. “모든 중1에 100만원” 같은 현금 살포 대신, 학생들의 문해력 향상을 실질적으로 가능하게 할 대책과 공약으로 경쟁해 달라. 지금 학생들에게 필요한 교육감은 AI 시대 생존 필수 경쟁력인 문해력을 채워주거나 그들을 위해 목사 같이 기도할 서울시 교육감 후보는 김영배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로마서 1:16-17
2026-05-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