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있잖아요
당신을 만나기 전에는 아무리 노아가 본 무지개를 잡으려 해도 잡을 수 없었거든요
근데요 이거 봐요 신비롭죠 무지개가 손에 내려와 앉았어요
당신 손에도요
한번 만져 봐도 돼요
언약의 무지개 참 따뜻한 느낌이네요
인간과 유전자가 98% 이상 일치한다는 침팬지는 다른 영장류에 비해 죽고 죽이는 잔혹한 싸움은 덜 하는 편이라고 한다. 대신 자기가 속한 집단 안에서 정치 공학적 권력 투쟁이 많다고 한다. 인간 세계와 작금의 한국 정치처럼 복잡한 동맹과 배반으로 기존 질서를 뒤바꿔버리는 수단을 동원한다는 게 침팬지 전문가들의 연구 결과다.
그러나 강한 우두머리에게 국민의힘처럼 2위가 어느 날 갑자기 치받는 경우는 드물다. 조금씩 작은 전조가 반복되는데 권력 서열 1위의 뒤에서 2위와 3위가 동맹을 맺는 방식이 가장 흔한 일이다. 재미있는 징조는 1위 침팬지가 뻔히 보는 앞에서 3위 침팬지가 2위 침팬지의 털을 골라준다면 쿠데타 전조로 봐도 된다는 것이다.

강한 것이 옳은 것을 이긴다는 ‘침팬지 정치술’이 어느 정도까지는 정치의 본질일지 모른다. 그러나 네덜란드의 수상이자 신학자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 1837년 ~ 1920년)가 이끈 반혁명당(Anti-Revolution Party, 약칭 ARP)은 가톨릭인민당에 대항해 개신교 집단이 주축이 돼 창당된 기독교 정당이었다. 카이퍼는 정치 현장에서 많이 투쟁했다. 그는 인간 중심의 세계관에서 하나님 중심의 신본주의의 전환을 강조하였다. 기독교가 개인 신앙의 차원에서 삶 전체, 우주 전체의 모든 영역으로 확장돼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하나님은 구원(救援)의 하나님이시며 또한 창조(創造)의 하나님이시다. 그 하나님은 만물을 그 종류(種類)대로 창조하셨다. 아브라함 카이퍼는 이 ‘종류대로’의 창조개념을 생물학의 영역에 그치지 않고 세상 모든 영역으로 확장했다. 마치 이사야와 예레미야의 소명이 다르고 베드로와 요한과 사도 바울의 소명이 다르듯 세상의 다양한 국면들 속에도 각각 하나님이 창조하신 고유한 주권적 영역이 있는데 아브라함 카이퍼는 이것을 ‘영역주권’(領域主權)이라 하였다. 즉 아브라함 카이퍼는 구원의 적용범위를 인간뿐 아니라 창조세계의 전 영역으로 확장하였다. 그 최종 목적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주의 총체적 회복에 있다. 그것이 바로 카이퍼가 주창한 ‘영역주권’(領域主權, Sphere Sovereignty) 사상이다. 세례 요한처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외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칼빈주의를 주창하는 우리 교단 정치를 들여다보면 이런 아쉬움이 든다.
속세 권력처럼 세력 다툼은 있는데 정치가 없다. 총회 정치 현실은 있는데 아브라함 카이퍼 같은 정치 신학까지는 아니더라도 정치 철학이 없거나 아예 정치적 도의마저 짓밟기 일쑤다. 정치 리더는 있는데 정치 리더십은 없다. 한국 정치 현실처럼 지역 파당은 있는데 교단 지도층은 없다. 칼빈주의 정치 지도자 그 모범과 기초를 놓은 제104회 정금 총회장 김종준 목사를 이어 칼빈주의 리더십을 더 발전시킬 지도자가 장봉생 목사일 가능성이 높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다.
당연히 지도자의 길은 가시밭길이다. 하지만 고난 속에서도 대개의 지도자는 책임과 헌신 그리고 희생으로 감동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패배가 뻔해도 김영삼 대통령이나 김대중 대통령처럼 불가능한 꿈을 향해 저돌적으로 돌진할 것이다. 그러면 총회와 총신을 위한 그와 같은 매진에 총회 산하 교회와 노회의 뜨거운 기도와 풍성한 협력의 지원이 뒤따르고 하나님의 칭찬과 축복을 받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모세처럼 하나님의 소명에 응하는 그런 총회 지도자의 반열에 서려면 어지러운 총회와 어려운 총신을 위한 ‘공적 헌신과 책임’을 생각하고 몸소 신앙의 모범을 보이는 칼빈주의 교단 정치의 본질 즉 하나님의 공의를 전하는 성경의 가르침으로 다시 돌아가야만 할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총회 정치 구도가 지역이나 사적 이익이나 추구하려 한다면 한동훈이나 이재명같이 ‘침팬지 정치술’에 머물고 말 것이다. 그것은 아브라함 카이퍼의 하나님의 영역주권을 벗어나는 정치적 미아가 되는 지름길에 접어들게 될 것이이다.
신앙과 힘의 모순적 복합체인 총회는 지역 지도자 간 동맹 관계와 세력 균형 위에서 총회와 노회의 평화 공존을 지향한다. 그 실례로 국가는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에 기초한 한·미·일 간 협력과 공조는 지난 반세기 이상 동북아 평화와 번영의 토대였다. 국제 평화는 이성적 국가 철학의 틀 위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게 문재인 정부가 지켜야 할 대한민국의 근본이다.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는 외부 침입으로부터의 방비이기 때문이다. 세금을 걷고 지도자에게 국정을 맡기는 이유이다.
2025년 9월 제110회 총회 선거가 기다리는 시기 윤석열 치하의 정부도 총체적 위기에 빠져있고 총회와 총신도 어렵다. 총회는 법이 서고 행정이 투명해져야 하고 경영과 신학 노선에 방만한 총신은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치러야 칼빈주의 신학자와 목회자를 키워내는 칼빈주의 모판 seminary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제109회 총회장 김종혁 목사 지도력 아래 우리 총회 모든 구성원이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으고 기도에 힘써야 할 때인 것 같다. 이 지혜는 지도층의 신앙적 헌신을 통해 두터워진다. 총대들은 총회와 총신의 미래를 개혁하는 아브라함 카이퍼 같은 정치가(statesman)를 원하지 다음 선거와 자리만 집착하는 세상 정치꾼(politician)을 고대하지 않는다. 이 난국에 '침팬지 정치술'이 제110회 총회 선거판에 끼어든다면 교단의 미래를 기약하기 어려울 것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우리 방패이신 하나님이여 주의 기름 부으신 자의 얼굴을 살펴보옵소서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시 84:9-12
2025-0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