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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옥한흠 목사 교회 갱신 은혜의 걸음
믿음에 사는 동안 다 말 못 할 말들을 믿음은 저마다의 가슴속에 품고 산다 꼭 믿어야 할 때 믿기 어려워 믿으면 주님은 침묵으로 튼튼해진 그의 두 팔을 벌려 나의 믿음을 품어주신다 주님이 별이시라면 나는 주님 옆에 뜨는 작은 별이고 싶다 주님이 노을이시라면 나는 주님 뒷모습을 비추어 주는 저녁 하늘이 되고 싶다 주님이 나무시라면 나는 주님의 발등에 덮인 흙이고자 한다 오, 주님이 이른 봄 숲에서 우는 은빛 새이시라면 나는 주님이 앉으실 수 있는 한창 물오르는 싱싱한 가지이고 싶다 판단이라는 것은 데이터와 분석뿐만 아니라 신탁(神託), 직관(直觀)까지 포함된다. 작은 일은 데이터만 가지고 판단해도 되지만 큰일은 신탁이 있어야 한다. 고대 지중해 세계에서 국가의 존망이 걸린 전쟁을 앞두고 델피 신전에 가서 신탁을 구했던 것도 고도의 의사 결정 과정이라고 보아야 한다. 트럼프나 이재명은 여러 재판 판결을 앞에 두고 점괘를 물어볼 신탁소나 점장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국가 간 전쟁은 뉴욕의 부동산 투자나 대장동 개발과는 차원이 다른 결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믿는 사람들은 주기도문에 나오는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구절을 때마다 외우지만 그때마다 깊은 믿음이 솟는 이유다. 만사가 하늘에서 먼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의 섭리와 뜻이 조짐으로 미리 나타나고 그다음에 현실 세계에서 보게 된다. 마치 일기예보와 같다. 인공위성에서 고기압과 저기압의 배치를 보고 일기를 예보한다. 예컨대 고기압과 저기압의 배치를 미리 보는 일이 '하늘에서 먼저 이루어지는 것'을 앞서 보는 일이다. 그것이 바로 징조와 계시의 하나인 것이다. 이 징조를 감지하는 일이 원래 동양에서는 국사(國師)나 왕사 또는 도사가 담당했다. 서양에서는 왕 측근의 성직자 또는 선지자나 예언자 몫이었다. 풍수도참과 주역 그리고 꿈이나 환상이 요셉이나 에스겔의 경우처럼 하늘의 조짐을 미리 짐작하게 해주는 도구였기 때문이다. 기업 경영에서 도사들의 판단을 활용하는 경영의 원조는 삼성의 이병철 전 회장이다. 대한민국을 지금의 인터넷 강국으로 만드는 기초를 놓은 이병철 회장은 도사들에게 대접도 후하게 했지만 한 사람 말만 믿지 않고 여러 도사의 점괘를 크로스 체크하는 노련함도 있었다고 한다. 그래도 인간의 생로병사는 그 누구든 피하지 못한다. 1996년 3월 7일 140명의 교단 소속 목회자들이 창립 제안자 옥한흠(玉漢欽, 1938년 12월 5일 ~ 2010년 9월 2일) 목사의 사랑의교회에서 △목회자 영성 회복 △교회갱신 △교단발전 △한국교회에서 교단의 올바른 자리매김 등을 위해 노력한다는 취지로 ‘교회갱신을 위한 목회자협의회(교갱협)’를 창립했다. 그 후 교단 내 금권선거를 뿌리 뽑기 위해 직선제를 폐하고 총회 임원 제비뽑기 선거제도를 정착시켰다. 세월이 흘러 교갱협 25주년 행사가 2020년 8월 17일 10시 30분 새로남교회에서 열렸다. 12시 20분 새로남교회 강단에 마련된 좌담회 석상에서 1명의 사회자(조성민)와 5명(고동훈, 김경원, 김찬곤, 이건영, 이재윤)의 패널 가운데 옥한흠 목사를 바로 이은 교갱협 2대 회장(2007. 8-2013. 8) 김경원 목사(서현교회 원로 2대 교갱협 대표회장 2007. 8-2013. 8)가 좌담회에서 발언하고 있었다. 주제는 ‘교갱협 25년 회고와 전망’이었다. “... 아까 교갱 있냐 없냐 말한 분이 있는데 지금 없어져도 아무도 아쉬워하는 사람 없어요. 그렇게까지 존재감이 없어져 가고 있지 않느냐 하는 위기를 저는 느끼고 있어요. 고동훈 목사가 교갱협에 대해서 얘기하면서 목회적, 목양적 견지에서 젊은이를 끌어안고 뭘 해야 되겠다, 교단 정치는 어떻게 해야 되겠다 했는데 내가 지금 말하고 싶은 이야기예요. 지금 현재도 해야 돼요. 그러나 안 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문제가 큰 겁니다. 절대적으로 변함이 없어야 할 교갱의 정신이 있습니다. 목회자 자기 갱신 교단을 세우는 갱신 이것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가져야 될 거예요. 그리고 가변적인 정신이 있어야 되요. 그것이 뭐냐, 다음 세대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 시대적인 상황 속에서 목회적인 상황 속에서 키워야 되요. 그리고 세워야 되요. 그리고 목회자 갱신을 계속합시다.(톤을 높이며) 그런 논리 아닙니까 이거. 예를 들어서 소리가 좋았다. 왜 지금은 소리 안 질러요? 왜 성명서 발표 안 해요? 미안합니다만 안 하는 건 지금 당신들 책임이야. 해야 될 건데 안 하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어요? 그렇잖아요. 교단의 큰 비리라든지 차별금지법이다 동성애다 총신 문제 많다 말입니다. 소리 질러요. 왜 안 지르느냐 이거요. 우리 스스로 지금 비판하면서 우리 존재감이 뭐냐? 소리 안 지르는데 무슨 존재감이 있느냐? 지금 그렇습니다.(사회자 한숨 쉰다) 교단의 문제도 그래요. 지금 젊은 목회자들이 비판하듯이 교갱을 정치적인 발판을 위해 도구로 삼으려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게 문제예요. 절대로 자기 정치적인 교단 안의 입지를 구축하기 위해서 교갱협을 도구나 발판으로 삼아 이용하려는 사람이 있어요. 그건 안 되는 겁니다. 그렇잖아요. 이게 옥한흠 목사님이 함께 시작했던 정신입니다. 들어가려 하지도 않았어요. 그런데 지금 그걸 이용해서 들어가려고 해요. 그래서 목회자들이 전부 실망하는 겁니다.(톤이 높아지며) 이런 건 막아야 돼요. 막았으면 좋겠습니다가 아니라 현재 있는 사람들이 막아야 됩니다. 안 막으니까 내가 답답하다는 겁니다. 옛날 이야기하면 젊은 사람들 싫어하겠지만 우리 교갱 임원들 수련회 하려고 일본까지 갔어요. 3박 4일. 제주도도 갔어요. 전부 비행기 타고. 일본 갈 때는 배 타고 왕복했지만. 설악산도 갔어요. 그런 가운데 외침이 나올 수 있었어요.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가 아니예요.(톤을 높이며) 하라는 거예요. 왜 안 합니까? 내 말은... (사회자 박수를 유도한다. 일동 박수) 존재감을 살려야 돼요. 25년 전을 다시 한번 살려보자. 어떻게 살리느냐... 살려 가지고 좀 제대로 해보자. 그런 다짐으로 하는 것이 25주년의 의미가 아니겠는가. 전도사님들 젊은 목회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교단에 두려운 존재도 되고 우리 자신의 목양적인 어떤 사명을 하고 그것은 구호가 아니라 실질적인 교갱을 통해 이루어가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사회자가 말을 받는다. “제가 볼 때는 목사님께서 원로를 떼시고 다시금 현역으로 들어오셔야 될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박수합시다. (일동 박수) (사회자 패널들을 향해) 왜 안 합니까? (김경원 목사 허허 웃는다) 하시란 말이예요. 이제 우리 김찬곤 목사님이 답변하셔야 되는데 엄청 부담이 될 것 같습니다. 바로 옆에서 보고 ‘왜 안 하느냐?’ 말씀하시기 때문에 잘 말씀해 주시기를 부탁합니다.” 김찬곤 목사(안양석수교회 5대 교갱협 대표회장 2019. 8-)가 말을 이었다. “그래서 부담입니다. (사회자 너털웃음. ‘우하하하.’) 아. 뭐. 맞습니다. 해야죠. 해야 되고 저도 이제 해야 된다 라는 당위성을 알아야 해요. 어떻게 할 것인가는 우리가 논의해야 되는 논제라고 봅니다. 아. 진짜 당부하고 같이 합의해야 할 것 중의 한 가지는 말씀드렸는지 모르지만 지금 교갱은 상임 회장이 공석입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거든요. 있을 수 없는 일이 현재 벌어져 있고 사실은 다음 차기 대표회장이 될 사람이 준비해 같이 움직여져야 하는데 이 자리가 공석이라는 자체가 그 한 가지입니다. 이것은 누구도 뭐 다른 어떤 자리들은 돈을 내고라도 나갈 수 있는 자리인데 여기는 누구도 주지도 않지만... (좌중 웃음) 나오려고 하지도 않고 하려고 하는 사람도 없다는 것... 우리 중 몇 분이라도 내가 하겠다고 해서 시켜주지도 않겠습니다만 (일부 웃음) 그래도 그런 부분에 관한 관심과 헌신을 같이 해야 되지 않겠나. 그래야지 연결 고리를 계속 내려갈 수 있지 않겠나. 사실 뭐 교갱협 대표나 임원은 보기에 굉장히 근사하지만 굉장히 힘든 자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미 있는 자리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들 중에서 오늘 총회 안 할 거 아닙니다만은 일부분 다루어져서 좀 정리가 되어지고 새로운 사람들이 세워지는 부분이 위임이 준비되어지는 과정들이 꼭 필요하고 다음 분들도 같이 혹시라도 좀 더 깊이 일하고 싶은 분이 있으면 노크를 해주십시오. 우리 그런 적 한 번도 없었지만 노크를 하면 그래도 좀 대화를 하면서 뭔가를 할 수 있지 않겠나... 아니면 대표부 쪽에서 요청을 하고 이야기를 하면 거의 대다수의 사람들이 사양을 합니다. 사양을 못하는 마음 약한 사람들만 지금 이 자리를 지키는 겁니다. 그런 부분들이 없잖아 있기 때문에 관심을 더 적극적으로 하는 우리... 김경원 목사님의 그 고언은 우리가 진짜 가슴 속 깊이 되새기면서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못해서 우리가 반성해야 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현실 속에서 우리 동역자들에게 좀 더 적극적으로 협의회에 대한 관심과 우리 내부 안에서도 좀 쓴소리가 나와져서 임원들이 좀 단단해지는 부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 누구든지 조금 더 관심을 깊이 있게 가져줬으면 합니다. 교갱협이 진짜 기준이 되고 정신이 되고 진짜 심장이 되어지는 원리가 우리 후배들에게 계속 흘러갈 수 있도록 이 자리에 계신 분이라도 힘을 모으면... 옥한흠 목사님이 10주년에 사데 교회 설교를 하시면서 얼마나 비판을 했는지 몰라요. ‘우리가 그 사데 교회 지도자들이 아니냐.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데 교회 선한 사람들이 있다’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몇 사람만이라도 힘을 모으면 이것은 절대로 문제가 되지 않고 이겨낼 수 있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옥한흠 목사님이 돌아가신 지 10주년이 됐습니다. 올해가 10주년인데 그 정신이 이어져가고 있으니까 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 더 되새겨 봅시다. 이 자리에 오신 분들은 그 심장을 가지고 오신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힘을 모아간다면 귀한 목사님의 고언이 우리 현실 속에서 열매로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사회자가 말을 이었다. “오늘 마지막 찬양은 25주년 됐기 때문에 ‘생일 축하합니다’ 이 노래보다는 ‘원할 때 바라고 기도합니다’ 찬양이 있습니다. 후렴에 보시면 ‘하나님의 성품이 성령님의 능력이’ 다시 한번 우리 교갱협에 불일 듯 일어나기를 원하는 그런 마음을 담았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도 다 일어나시죠. 일어나셔서 마지막 이 찬양을 하고 난 다음에 케이크를 절단하겠습니다.” 피아노 반주에 합창이 울렸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나의 힘을 의지할 수 없으니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 것은 주께서 참 소망이 되심이라 하나님의 꿈이 나의 비젼이 되고 예수님의 성품이 나의 인격이 되고 성령님의 권능이 나의 능력이 되길 원하고 바라고 기도합니다... 이어서 이사장 이건영 목사(인천제2교회 교갱협 3대 대표회장 2013. 8-2017. 8)의 사회로 교갱협 25주년에 걸맞는 정기총회가 진행돼 안건 및 결의사항을 처리했다. 이건영 목사는 우리 총회를 힐렐 같은 믿음과 지혜로 이끌어 가고 있는 지도자이다. 교갱협의 정신과 정관 목적에 딱 맞는 인물이고 옥한흠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의미 은혜의 걸음 은보(恩步)를 이어받은 어거스틴 같은 목회자이다. 이건영 목사 이전이나 이후 위대한 설교자나 목회자는 더러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말씀을 깨우치고 실천하는 힐렐 같은 지혜자 마음 지닌 이건영 목사 같은 지도자는 드물 것이기 때문이다. 교갱협 25주년에 그가 있어 은혜의 걸음 은보(恩步) 옥한흠 목사가 제창한 교갱협 정신이 계승되고 현현된 느낌이다. 20년 전 2003년 12월 15일 옥한흠 목사는 에스더가 이방땅에서 환난을 당할 유대인을 살린 것처럼 교단 기관지 기독신문을 살린 박에스더 국장과의 대담에서 사랑의교회 개척 25주년 회고와 은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박에스더 - 옥한흠 목사님 반갑습니다. 사랑의 교회를 개척하고 25년 동안 사역했던 사랑의교회에서 은퇴하시면서 느끼는 감회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옥한흠 목사 - 사실 지금 굉장히 행복합니다. 은혜로 달려온 25년이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일하던 동역자 가운데는 여러가지 이유로 도중 하차한 분들도 참 많은데, 이렇게 은퇴를 생각할 나이까지 목회를 할 수 있도록 지켜주신 하나님이 너무 감사합니다. 또한 사랑의교회 성도들을 보며 더욱 행복합니다. 지금 사랑의교회는 정점에 와있습니다. 오정현 목사를 후임자로 정하고 성도들의 표정이 달라졌음을 느낍니다. 더욱 활기차졌고 찬양하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몇 달 사이에 교회 평균 성장률에 비해 3000명 이상 성장하는 것을 보며 제가 은퇴하고 젊은 목회자에게 자리를 내 준 것이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박에스더 - 25년전 사랑의교회를 시작할 당시 목사님의 교회개척의 변을 지금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옥목사 - 사실 당시에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여러 선교단체들 다시 말해서 파라 처치(para-church)에 기성 교회 청년들이 흡수되어 청년부가 교회마다 지리멸렬하고 있었습니다. 교회 청년지도가 위기였고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그때 왜 청년들이 교회를 빠져나가 파라 처치로 흡수되는지 배경과 원인을 분석하고 사람 키우는 일이 중요하다고 보고 제자훈련에 착안했습니다. 젊은이들 가슴에 복음의 열정 비전을 심어주는 일이 필요하다고 본 겁니다. 미국 유학 후 돌아와 바로 제자훈련 프로그램으로 사람 키우는 일-복음의 열정을 심어주고 비전을 품게 하는 이 일이 제 목회의 본질이 된거지요. 사람을 키워 예수 제자 되어 열심히 일하도록, 열린 리더십을 갖고 평신도와 함께 일하는 풍토를 만든 겁니다. 박에스더 - 목사님께서 4반세기 동안 제자훈련과 사랑의교회 목회, 그리고 한국교회갱신운동과 한목협을 통한 연합운동의 물꼬를 튼 일들을 짚어볼 수 있습니다. 사랑의교회 은퇴라는 시점에서 지금까지 목사님이 일생을 걸고 해오신 이런 사역들이 영향을 받지 않을까요. 옥 목사 - 사랑의교회 목회는 하나님께서 제자훈련에 대한 비전과 신념을 주셨고 지역교회 하나를 맡아서 그 비전을 실천하는 평범한 목회였습니다. 이후 자의 반 타의 반 교회갱신과 교단 연합운동까지 왔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지금 물러가는 것이 70이 되어 은퇴하는 것보다 훨씬 좋다고 생각합니다. 아직은 힘이 있고 제가 사역할 마당이 있습니다. 사랑의교회 담임은 은퇴하지만 제자훈련 사역에 더욱 매진할 것이고 교갱협과 한목협 사역도 계속 이어나갈 것입니다. 이 말을 한 7년 뒤 2010년 8월 8일 새벽부터 폐렴으로 인한 고열과 호흡곤란 증세로 서울대병원 중환자실로 옮겨져 집중치료를 받았다. 그러나 2006년 폐암 진단을 받고 투병해온 옥 목사는 2010년 9월 2일 아침 8시 43분 사랑의 주님 품에 안겼다. 옥한흠 목사는 사랑의교회와 교회갱신협의회(초대 대표회장 1996. 3-2007. 8) 설립자이다. 그의 호는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의미로 은혜의 걸음 은보(恩步)이다. 코로나19와 태풍 마이삭이 제주와 원산 시내를 강으로 만든 맹위를 떨친 2020년 9월 2일이 옥한흠 목사의 10주기였다. 그는 성균관대학교 문리대학 영문학과와 1971년 2월 총신대 신학대학원(총신연구원 64회)을 졸업했다. 총신 신대원 재학시절 서울 은평교회에 전도사로 부임한 그는 100명이었던 주일학교를 500명까지 성장시켰다. 1970년 4월 김희보 목사의 요청으로 서울 회현동 성도교회 사역자로 부임하고 총신 학장으로 부임한 김희보 목사 뒤를 이은 김성환 목사의 성도교회에서 그는 그의 인생의 분수령이 된 대학부를 맡았다. 그는 성도교회에서 부목사로 대학생을 지도하던 중 제자훈련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는 교회에서 젊은이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데 비해 대학생 선교단체들엔 젊은이들이 모이는 현상을 탐구하던 중 그 비결이 제자훈련에 있음을 깨닫고 그는 대학생들이 기성 교회에서 빠져나가 선교단체로 모이는 이유에 대해 궁금해했다. 그러다 선교단체에는 있지만 기성 교회에는 없는 세 가지를 깨닫게 된다. 그것은 바로 복음, 훈련, 비전이었다. 1972년 35세에 수도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은 그는 대학생 12명과 함께 성도교회에서 ‘복음과 비전’을 갖게 하는 제자훈련을 시작해 1975년 미국 유학을 떠나기까지 당시로는 중형 교회의 신자 수에 버금가는 200여 명의 부흥을 달성했다. 1972년 총신대 재학 시절의 나도 성도교회 중등부 교사로 봉사할 때 옥한흠 전도사의 대학부 집회에 간혹 참석해 설교와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 스타일을 경험하곤 했다. 옥한흠 목사는 1975년 유학을 떠나 1977년 5월 칼빈신학교에서 신학석사 학위를 받고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로 자리를 옮겨 목회학 박사과정을 밟았다. 그리고 필라델피아 웨스트민스터 구내 서점에서 독일 출신 가톨릭 사제 신학자 한스 큉(Hans Küng, 1928년 3월 19일 ~ 2021년 4월 6일)은 스위스의 천주교회 사제이자 저명한 기독교 신학자의 ‘교회란 무엇인가(DIe Kirche)’를 발견했다. 그는 천주교 내부에서 '기존의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과연 무오류인가?(Infallible?)"라는 책을 내서 교황 무오류 교리를 비판하는 등 교권과 계속 마찰을 빚었다. 결국 1979년 12월 15일 교황청의 신앙교리성에서 공표문을 발표하여 큉은 공식적으로 천주교 신학을 가르칠 수 없게 되었다. 옥 목사는 그를 통해 평신도를 왜 제자로 키우고 깨워야 하는지에 대한 확고한 신학적 답을 얻었다고 한다. 한스 큉은 교회의 근원을 예수가 전한 하나님의 나라로 보고 있다. 즉 교회의 근원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며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신앙공동체가 교회라는 것이다. ‘교회란 무엇인가’는 총 11장으로 되어있으며 이 책은 원래 한스 큉의 ‘교회(Die Kirche)’를 짧고 이해하기 쉽게 축약하였다. 한스 큉은 이 책에서 교회의 본질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교회의 모든 역사적 양상에는 이 비본질이 마치 그림자처럼 본질을 따라다닌다. 교회의 참 본질은 비본질 안에서 나타난다. 우리는 교회의 어두운 비본질을 처음부터 고려하고 들어가야 한다. 교회의 악한 비본질을 통하지 않고서는 교회의 선한 본질을 분별할 수도 없다.” 가톨릭 내 신학적 반정통 교리적 진보파나 에큐메니컬 계열 개신교에서 관심을 보이는 신학자 한스 큉(Hans Küng, 1928년 3월 19일 ~ 2021년 4월 6일)은 교회 안에 성도가 의인이자 죄인이기에, 교회의 역사는 곧 정의의 역사이자, 죄의 역사라고 말한다. 그렇기에 교회 내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 성도들은 너무 속상할 필요가 없다. 그 비본질적인 문제를 통해 교회의 참된 본질이 밝히 드러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옥한흠 목사는 기성 교회로 가고 싶은 유혹을 끊기 위해 1978년 6월 귀국하자마자 서둘러 그해 7월 23일 주일 오후 3시 강남 서초동 유스호스텔 앞 3층 짜리 건물 2층에서 강남은평교회 창립 예배를 드렸다. 1981년 9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 4:8)라는 말씀 안에 내포된 십자가 의미를 좋아했던 그는 ‘사랑’이란 단어에 ‘의’라는 소유격을 붙여 ‘강남은평교회’를 ‘사랑의교회’로 이름을 바꾸었다. 미국에서 집중적으로 공부해 1986년 사랑의교회에서 시작한 신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아가는 신앙생활을 하도록 이끄는 첫 제자 반은 김영순 사모 혼자만 남고 실패로 끝났다. 부유하고 신앙연수만 오래된 이들에게 원색적인 말씀으로 도전하니 훈련생들은 얼굴이 빨개지며 쩔쩔매기 일쑤였다고 한다. 그러나 다시 시작한 여자 제자 반은 영적으로 큰 변화를 맛보았다. 옥 목사는 교회 밖의 모든 모임이나 집회 요청을 거절하고 제자훈련에 완전히 집중했다. 여자 제자 반이 성공하자 1979년 남자 제자 반을 처음으로 시작했다. 옥 목사의 설교와 제자훈련을 통해 배출된 순장들의 전도로 교인이 500여 명으로 증가하자 교회건축을 결의하고, 1985년 1월, 성전 입당예배를 드렸다. 그는 일주일에 제자반, 사역반 3개, 순장반 2회, 교역자 훈련, 주일설교 3회, 또 1년 3차례 돌아오는 CAL세미나 인도에 자신의 모든 진액을 쏟았다. 급기야 그는 1989년에 탈진하여 개척 12년 만에 하와이에서 1년간 안식년을 가져야 했다. 그는 1주일의 숙식훈련에 이어 목사 제자 훈련과 평신도 사역 훈련을 1년씩 하는 이 훈련을 통해 성장한 사랑의교회 교세를 알 수 있는 대담을 기독신문과 했다. “세례교인 수를 한 명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집계했습니다. 3만500여 명 재적 교인 중, 세례교인은 1만5247명이라 그대로 냅니다. 총회 본부와 총회 신학교 그리고 여러 산하 기구들이 21세기형으로 체질개선 하는데 전향 적으로 투자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총회 재정 운용의 합리성과 투명성이 확보돼야 합니다. 정책 수립과 집행에 대해 신뢰할 수 있는 체질개선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성경은 말씀한다.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그들과 결산할새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마 25:19-21 2025-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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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김종준 목사 축복 비결
1986년 그 당시 김종준 전도사 어린이 교육 선교 재원 위해 자기 피 팔아 그 경비 조달 2016년 20,000여명 등록 교인 매주일 11,000여명 출석 교회로 성장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총회장이 있다. 어디로 가야 할지는 아는데 어떻게 가야 하는지를 모르는 총회장도 있다.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다 아는데도 일을 시작할 동력(動力)을 만들지 못하는 총회장도 있다. 헤매는 목사 총회장은 크게 봐 이 3가지 분류법으로 나눌 수 있다. 이 분류법을 넘어선 총회장이 있다. 그는 제104회 정금 총회장 김종준 목사! 2000년 전 화산재에 묻혔던 폼페이의 유적들은 발굴 200년이 지나도록 현대인들을 매료시킨다. 이 비극의 고도(古都)에 가면 폼페이 시민들의 절망과 함께 그들의 일상을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일 게다. 잿빛 화산재 속에서 정지된 시간을 보낸 유적들은 당시 로마인들이 어떻게 먹고 마시며 사랑하고 슬퍼했는지 고스란히 보여 준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룬 업적을 기념하는 성공이란 한 분야에 삼십 년쯤 종사한 후에 찾아오는 것일 것이다. 그러니까 성공이란 일류대학에 입학했다거나 사법고시에 합격했다거나 땅값이 올라 큰 부자가 되었다는 따위가 아니라 김종준 목사같이 한 분야에 삼십 년쯤 종사한 후에 온다는 얘기일 것이다. 반짝 빛나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 은은하고 끈기 있고 한결같은 것 악천후도 견뎌낸 든든한 믿음 같은 것일 것이다. 죄를 벗어나 세상을 이기고 축복받는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104회 정금 총회장 김종준 목사는 제시했다. 그것은 주일성수, 십일조, 전도, 세 가지 의무를 실행하는 것이다. 전두환 시대든 문재인 시대든 윤석열의 개혁 시대든 철부지 살인자 김정은 모험이든 그것을 이기는 해결책은 하나님 명하신 주일성수, 십일조, 전도를 성실히 지켜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서 바로 살면 축복의 삶을 누리게 된다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이에게 삼십 년 복음을 전한 그 기념으로 한 교회를 개척해 삼십 년 목회한 그 기념으로 그 교회에서 온 몸으로 설교하고 기도한 삼십 년 그 기념으로 빛나는 면류관 하나씩 또 마련되는 것 아니겠는가. 그래서 오랜 세월 말없이 교회를 위해 봉사한 성도들에게도 더불어 꽃은 한 송이 또 곱게 피어나는 것 아니겠는가. 2016년 6월 25일 오전 11시 서울 상계동 꽃동산교회(김종준 목사) 본당에서 ‘창립30주년 및 임직 감사예배’를 드렸다. 본당 3개 층은 성도들과 국민의 당 대표 안철수 의원과 노원구 구청장 김성환 등의 하객들로 빈자리 하나 없이 꽉 찼다. 1부 예배에서 제100회 총회 총회장 박무용 목사는 사무엘상 19:18-24 본문에 “이런 교회가 되게 하소서!”라는 제목으로 교회의 본질에 관한 감동적인 설교를 전했다. 꽃동산교회는 1986년 6월 15일 서울 중구 신당동 402-13번지의 건물 64평을 임대해 김종준 전도사가 개척을 했다. 개척 당시 당회장이었던 서기행 목사(제89회 총회장)가 이날 3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전달한 격려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올해 창립 30년인데 제 나이 50살에 꽃동산교회 당회장이었습니다. (교인들이 감탄의 소리를 냈다.) 김종준 그 당시 전도사께서 어린이 교육 선교에 재원이 없어 자기 피를 팔아서 그 경비를 조달했다는 말을 듣고 특별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렇게 큰 교회가 되었습니다...” 이날 축사를 전한 제83회 총회 총회장 길자연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의 방법은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이제 서기행 목사는 10년 전에 은퇴하셨다고 하는데 저는 3년도 안 됐습니다. 목회를 하면서 가장 힘든 일은 사람과의 접촉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 말씀과 기도에 전무하면 성격도 변하고 생활도 변합니다. 양심적인 사람이 지도자가 되면 사회와 교회가 양심적이 됩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람이 그 자리에 서면 교회도 흔들리고 가정도 흔들리고 사회도 흔들립니다. 대한민국 목회자 가운데 가장 올바른 지표를 정하신 분이 김종준 목사입니다. 김종준 목사는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오게 생기셨습니다. (교인들 웃음) 왜 그러나 했더니 피 뽑아서. (교인들 손뼉을 치며 파안대소) 저는 오늘 축사 초청을 받고 놀랬습니다. 나를 어떻게 알고 이 자리에 초청을 했는가. 한 가지 중요한 것을 생각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객관적으로 이 교회 담임 김종준 목사를 볼 때 그는 흠이 없고 목회에 전념하는 일사각오의 목회자이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임직자 여러분과 교회 성도들이 이 목사만 따라가면 잘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지도자 목사에게 순종하고 잘 따라가면서 꽃동산교회 안에서만 사시기를 바랍니다. 밖으로 나가면 위험합니다. (교인들 웃음과 박수) 이 말로 축사를 갈음합니다.” 꽃동산교회는 30년 역사 가운데 2004년 12월 16일 김종준 목사는 학교법인 천호학원(위례정보산업고등학교, 서울외국어고등학교) 이사장에 취임했다. 그리고 2016년 6월 15일 현재 대지 700평에 지하 3층, 지상 11층, 연건평 3,300평의 성전에서 교역자 87명, 장로 47명, 안수집사 350명, 권사 752명, 서리집사 3,854명의 직분자들이 있으며, 20,000여명의 등록 교인 가운데 매주일 11,000여명이 출석하여 예배를 드리는 교회로 성장하여 어린이 선교를 통한 세계 복음화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날 임직식을 통해 꽃동산교회는 7명의 장로와 46명의 안수집사, 99명의 권사를 직분자로 세웠고 이외에 10명의 성도를 명예권사로 추대했다. 이날 장로로 장립된 김민규 장로는 임직자 대표로 인사를 하며 겸손하게 성도들과 교회를 섬길 것을 다짐했다. “직분자는 대접받기 위한 자리가 아니라 섬기는 자리에 있는 사람인 것을 알기에 가장 낮은 위치에서 섬기고 교회를 돌보며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려 합니다. 힘들지라도 여호수아와 갈렙 같은 믿음으로 기도하며 달려가겠습니다.” 이날 김종준 목사는 예배를 마치고 나눈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조그만 단칸방 같은 데서 여섯 명이 시작한 꽃동산교회가 오늘날 이렇게 크게 번창해 시대적인 사명을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저희 교회가 그동안 어린이 선교를 통해서 세계를 복음화하려는 소명을 가지고 어린이 교회로 시작을 했습니다. 어린이 전도를 열심히 하다 보니까 하나님께서 더불어 많은 장년도 보내 주셔서 큰 교회가 되었습니다. 이제 30살 먹은 청년의 교회가 되었습니다. 이제부터 더 힘 있게 남은 사역을 감당하려고 합니다. 이제는 우리 교회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곳 저곳에 꽃동산교회와 같은 비전과 신앙을 가진 많은 교회를 세워서 이 땅에 어린이선교를 실현하고자 합니다. 이미 지금도 아홉 군데 지역에 꽃동산교회 지교회를 세워 사역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지역에 꽃동산교회를 세워 죽어가는 많은 어린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데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영문학에 있어 낭만주의를 개창하는데 기여한 영국의 중요한 낭만주의 시인 워즈워드(William Wordsworth, 1770년 4월 7일 ~ 1850년 4월 23일) 그의 삶은 검소했지만 생각은 고상했다. 걷는 것은 영적인 행위라는 생각으로 구불거리는 언덕을 걸으며 풀, 꽃, 새, 냇물, 구름, 나비, 하늘과 숲을 관찰했다. 그리곤 호숫가에서 무지개를 볼 때마다 자신의 글을 하나씩 매듭을 지어 나갔다. 특히 해 질 무렵의 산책을 즐겼는데, 이는 곧 시(詩)와 연결된다고 생각했다. 시를 “평온함 속에서 회상되는 정서”라고 믿었고, 기교적인 단어를 사용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다분히 일상적인 시어(詩語)를 선택해서 사용하는 걸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렇게 평생 30만 킬로의 거리를 산책하며 지은 시 ‘나비에게’, ‘데이지에게’, 그리고 워즈워드자신의 인생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드러낸 자전적인 시 ‘서곡’(The Prelude or, Growth of a Poet's Mind; An Autobiographical Poem)은 영국 문학의 한 획을 그은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특유의 고요함 속 쓸쓸함을 더해주는 늦가을 호숫가 정취는 아름답다. 그는 어린이를 사랑한 김종준 목사처럼 '무지개'를 통해 어린이를 찬양한다. 하늘의 무지개를 볼 때마다 내 가슴은 한없이 뜁니다. 내 어릴 때 그러했고 어른이 된 지금도 그러한데, 나이 더 들어 늙어서도 그러하리라 믿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차라리 죽기를 원합니다.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입니다(The Child is a father of the Man). 따라서 내 삶이 자연의 경건함으로 채워져 매일매일 이어져나가길 바랍니다. 성경은 말씀한다. 예수께서 그 어린 아이들을 불러 가까이 하시고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눅 18:16 2024--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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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참 이스라엘 사람 윤남중 목사 기념 제9회 신학 세미나
한강 작가가 2024년 10월 10일에 노벨문학상을 받기 며칠 전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저는 언제나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그리고 산다는 게 대체 무엇인지에 대해 자꾸 생각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 고민을 매번 다른 방식의 소설들로 다루고 싶어 했습니다.” 2년 전 2022년 10월 20일 총회 양심의 버팀목 윤희원 목사가 대를 이은 전주효성교회당에서 열린 제7회 신학 세미나에서 총회를 조용히 섬기는 박재신 목사(양정교회. 제103회 회록서기)가 이런 축사를 했다. "우리 교단에 총회장님들이 많으신데 기념사업회를 하는 총회장은 없으신 것 같아요. 그러나 우리 윤남중 목사님이 총회장은 안 하셨어도 기념사업회가 있는 것은 우리 전북지역의 많은 목사에게 정신적 총회장을 하신 겁니다." 전북노회 윤남중(1920년~2015년) 공로목사는 생전에 "바른 목회를 하라. 바른 목사가 되라"고 후배 목사들에게 훈계하셨다. 그를 기리는 기념사업위원회가 2024년 11월 12일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5시까지 호남지역 개신교의 모태인 전주서문교회당(담임 김석호 목사)에서 제9회 신학 세미나를 개최했다. 개회 예배는 기념사업위원회 위원장 이영익 목사의 인도로 회계 허일 장로 기도, 감사 신경식 목사 요 19:25-27 성경 봉독, 강동현 목사 ‘당신의 아들 네 어머니’란 제목으로 설교, 전북노회장 이민규 목사 환영사, 전북신학교 이사장 서현수 목사 축사, 전북신학교 명예이사장 유웅상 목사 축사, 참 이스라엘 사람 윤남중 목사 기념사업회 장학금 수여식 후 총회의 거울 윤희원 목사가 감사 인사를 전했다. "이렇게 다시 아홉 번째 기념세미나에 참석해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벌써 시간이 10년 지났네요. 세월은 빛바래기도 하지만 빛나게 하기도 하는 것이 세월인 것을 알게 됩니다. 이 기념사업회의 많은 신학 세미나가 세월이 지나가면서 빛바랜 세미나가 아니라 빛나는 세미나가 될 수 있도록 여러분이 더 많이 기도해주시고 후원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늘 특별히 김인철 목사님을 모시고 세미나를 하는데 저는 잘하는 것이 없어요. 그런데 제가 잘하고 있는 것이 하나 있어요. 여러 책을 많이 본다는 겁니다. 김인철 목사님이 총신연구원 시절 저는 총신 대학부 학생이었습니다. 그리고 기독교문학회라는 동아리를 통해 같이 만나고 지금까지 교제를 나누고 있습니다. 김인철 목사님이 책을 많이 쓰시는 줄은 알았지만, 그 책들을 읽어보면서 생각을 했습니다. 이렇게 성경의 원어적이고 문학적이고 역사적인 것들을 동시적으로 잘 보면서 성경을 잘 해석하고 그런 지침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래서 저희 세미나에 모시게 됐습니다. 목사가 목회할 때 필요한 성경 읽기와 큐티에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는 유익한 강의가 되리라 믿습니다. 경청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전북노회장 이민규 목사의 축도로 예배를 마쳤다. 취재하러 갔다 은혜와 깨우침을 받게 된 세미나 주제는 '예레미야 애가-슬픔에서 희망을 긷는 지혜'로 김인철 목사(예수아성서연구원 대표)가 강연했다. 예레미야애가의 개요와 본문해설을 중심으로 세 차례의 강의와 질의응답이 진지하게 진행됐다. 말씀에 대한 관심과 애정에서 일어난 질문은 깊은 이해에 닿게 한다. 물음의 문을 무뚝뚝하게 닫지 않아야 될 이유다. 강사로 나선 예수아성서연구원 대표 김인철 목사는 예레미야애가에 대해 ‘뒤집어진 세상에서 부르는 노래’라고 정의하면서 운문(시)이자 지혜서로서의 성격을 유념하며 본문을 읽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실제로 본문을 읽고 체험하는 과정을 세 시간에 걸진 세 번의 강의로 머리와 마음에 쏙 박히게 진행했다. 김인철 목사는 말했다. “예레미야애가에 표현되는 참상과 이로 인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심리적 공황상태는 ‘하나님의 부재’(abscence of God)’라는 주제에서 극에 달합니다. 하나님의 부재는 정신적 기반의 붕괴를 의미하며 신학의 재정립이라는 과제를 수행하도록 뼈저린 반성을 요구합니다.” 10년째를 맞이한 이번 신학 세미나에서는 윤남중 목사의 유고 설교 세 편과 함께 장로교회의 역사와 직제(윤희원 목사·전주효성교회), 성경 묵상(QT)의 문제점과 한계 그리고 개선방안에 대한 제안(임진남 목사·한국개혁신학연구원 총무), 성경 속의 애굽과 성경 밖의 애굽 역사와 문화(최용만 목사·이서제일교회)에 대한 논문을 교재에 함께 수록해 배부했다. 그 교재에 생전에 윤남중 목사께서 요한복음 1:47-51 본문으로 '참 이스라엘 사람'에 대해 이렇게 설교하셨다. "예수님은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십니다.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예수님은 나다나엘이 가장 이스라엘 사람다운 사람이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는 '예수'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21에 보면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말씀하십니다. 메시아이신 예수를 기다리고 사는 자가 참 이스라엘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메시아 대망 신앙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요 지금으로 말하면 참 신자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신앙, 그 대망의 신앙이 없으면 참 신자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대망의 신앙을 가진 자는 정직한 자라서 간사한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새날을 주셨습니다. 우리 모두 살랑살랑 간사함으로 꼬리 치며 유혹하는 사탄으로 살지 말고 기둥 같은 정직함으로 바위 같은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며 믿음의 싸움을 정직함으로 싸우면서 삽시다." 그런 사람이 이 세상에서 알곡이고 고귀한 인류이고 영원한 빛이고 다름 아닌 목사라고...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반발한 의대생 대부분이 휴학한 가운데 본과 4학년이 내년 1월 치르는 의사 국가시험 필기시험에 304명만 접수했다고 한다. 의사의 일반적 윤리 제3조(의사의 사명과 본분)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의사는 고귀한 사람의 생명과 건강을 보전하고 증진하는 숭고한 사명의 수행을 삶의 본분으로 삼아 모든 의학 지식과 기술을 인류의 복리 증진을 위하여 사용하여야 한다. 그런데 모자라는 신규 의사 증원 정책에 대한 반발로 매년 3000명가량 배출되던 신규 의사가 의사 파업 투쟁으로 내년에는 10분의 1 수준만 배출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윤리강령 규정을 무시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도둑이 도리어 매를 든다'는 적반하장(賊反荷杖)의 표현을 우리는 이런 경우에 쓸 수도 있겠다. 어쨌든 무슨 일을 하든 인생이란 매번 흔들리면서도 나만의 중심을 찾는 과정이다. 의사와 의학도들의 본분이 아닌 이권에 집착하는 것 같은 근자의 행태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간사한 것이 없는 참 이스라엘 사람을 전하고 가르치고 실천하신 윤남중 목사의 설교가 세상이나 우리 교계에 새삼 절실해지는 시절이다. “저는 언제나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그리고 산다는 게 대체 무엇인지에 대해 자꾸 생각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라는 한강 작가의 말처럼... 성경은 말씀한다. 하늘에 올라갔다가 내려온 자가 누구인지 바람을 그 장중에 모은 자가 누구인지 물을 옷에 싼 자가 누구인지 땅의 모든 끝을 정한 자가 누구인지 그의 이름이 무엇인지 그의 아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너는 아느냐 잠 30:54 2024-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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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전주서문교회 역사관과 총회 생존 목적
호남지역 개신교의 모태인 전주에서부터 전북지역 투어는 시작된다. 호남 최초의 교회인 전주서문교회 역사관은 초창기 미국남장로교선교부의 호남선교가 어떤 모습으로 전개됐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1893년 교회 설립에 전력하다 1908년 1월 2일 43세로 소천한 전위렴(W.M. Junkin)을 기리는 예배당 앞마당의 종탑 안내문은 놓치지 말아야 할 대목이다.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서는 ‘민주주의’라는 대담한 실험이 시도된다. 왜 민주주의가 ‘대담한’ 실험이었다는 걸까? 인간은 이기적 유전자를 따르지만, 동시에 다른 이들과의 협업을 통해서만 생존이 가능한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서로 역설적인 두 가지 본능을 가진 인간에게 민주주의는 너무나도 어려운 방식이라는 말이다. 신석기시대 농사와 정착을 시작으로 다양한 시도들이 시작된다. 가장 힘센 자가 모든 결정을 독점하는 방식, 힘센 여러 명의 공동 정권, 신의 선택을 받은 자의 지배…. 결과적으로 모두 극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고대 아테네의 민주주의만은 달랐다.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 것이 아닌, 다수의 결정을 통해 공동체의 미래를 결정하자는 놀라운 방식이었다. 물론 문제도 많았다. 여성과 노예는 투표할 수 없었고 비효율적이었다. 51%의 ‘다수’가 49% ‘소수’의 의견을 무시할 수 있었다. 우유부단(優柔不斷)한 김종혁의 제109회 총회는 목회자 70세 정년 연장보다 장기적으로 반드시 필요한 불편한 선택보다는 당장 편한 선택만을 추구하는 적당주의가 판치기도 했다. 진리는 절대적이고 유일하다고 여기기 쉽지만 마치 코끼리와 같아서 수많은 다른 면을 보여준다. 우리가 어떤 부분을 만지느냐에 따라 코끼리의 형태를 이해하는 한계가 있듯이 어떤 사고방식도 진리 전체를 모두 파악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니 어쩌면 각각의 사고방식 한계를 인정하고 진리를 찾고자 한다면 복잡한 세계를 이해하기에 지금보다 조금은 더 낫지 않을까 싶다. 현대 신학은 여전히 어두운 방에서 진리를 찾아 헤매고 있고 신학자는 나름대로 구원의 의미를 성경으로 보여주는 구도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고대로부터 마치 다시 태어나듯 허물을 벗는 뱀은 치유와 지혜의 상징이었다. 마태복음에 따르면 예수께서도 제자들에게 뱀처럼 지혜로울 것을 주문하셨다. 자기를 바로 보며 반성하면 성찰이고 도취하면 허영이다. 영리한 머리를 남을 위해 쓰면 지혜가 되나 자기만을 위해 쓰면 교활해진다. 총회 전체 측면에서도 일상의 행정을 넘어 새로운 것들을 지속적으로 실행해보는 조직을 두어야만 생존의 위기를 넘을 수 있다. 이것이 자연에서 배우는 초 생존의 원리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어느새 1000일. 겨울 닥친 전선에서 벌이는 피의 소모전, 한 계절 더 돌지는 않기를... 성경은 말씀한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사람들을 삼가라 그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그들의 회당에서 채찍질하리라 마 10:16-17 2024-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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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오범열 목사 ‘경찰 수호성인’
많은 전쟁을 치른 이스라엘의 행복 지수가 높고, 출산율 또한 높은 이유는 신앙 덕분이다. 종교는 공동체를 형성하고 사람들에게 소속감을 주며 외로움 또한 치유한다. 인간의 삶에 신앙이 꼭 필요한 이유다. 가톨릭에서 기리는 ‘크리스토포로스’라는 성인이 있는데 '크리스토폴'이라 하기도 한다. 이름은 고전 그리스어 크리스토스와 포로스가 합쳐진 것으로 '그리스도를 어깨에 짊어진 사람'이라는 뜻이다. AD 251년경의 인물로 추측되고 실제 이름은 '레프로보스'였다고 한다. 그는 원래 힘센 거인이며 이교도였다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자기보다 힘센 자를 만나면 섬기기로 하고 처음에는 왕, 다음에는 악마를 찾아갔으나 실망하고, 악마도 구세주를 두려워하니 그리스도가 가장 힘이 센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도를 섬기기 위해 그가 있는 곳을 찾아다녔다. 그러다 홀로 산속에서 수행하던 한 수도자를 만났다. 그는 수도자에게서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이런 말을 들었다. “그리스도의 진정한 강함은 가난하고 약한 이들을 돕는 데 있습니다. 당신도 그렇게 사세요.” 그 말에 따라 단순한 레프로보스는 강가에서 돈이 없어 배를 타고 가지 못하는 순례자나 여행객들을 자기 어깨에 올려 태우고 건네주는 일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어린아이를 어깨에 얹고 강을 건넜다. 그러나 그는 그 아이가 점점 무거워져 도저히 강을 건널 수가 없었다. 마치 온 세상을 짊어지고 가는 것같이 무거워서 그 힘센 레프로보스마저도 평소에는 쓰지도 않던 지팡이에 의지하며 간신히 강을 건널 수 있었다. 레프로보스가 이상하게 생각하며 아이를 강 건너에 내려놓고 나서 말했다. “그것참! 그동안 많은 사람을 짊어지고 강을 건너면서 이렇게 무거운 경우는 없었는데... 너 참 무겁구나.” 그러자 그 아이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레프로보스야, 잘했다. 너는 지금 온 세상을 옮긴 것이다. 나는 바로 네가 찾던 세상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라네.” 그 말이 끝나자 물에 닿은 레프로보스의 지팡이에 푸른 잎이 돋아나고 땅에 뿌리를 내려 나무가 되는 기적이 일어났다고 한다. 그 이후 레프로보스는 그리스어로 ‘그리스도를 짊어진 사람’을 뜻하는 ‘크리스토포로스’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 이름에서 유래한 남성 영어 이름이 크리스토퍼(Christopher)라고 한다. 축일은 가톨릭의 경우 7월 25일, 동방정교회의 경우 5월 9일이며, 예수를 모시고 강을 건넜으므로 여행자들과 운전자들의 수호성인이며 짐꾼들과 육체 노동자의 수호성인이기도 하다. 이후 기독교인으로 살다 순교한 크리스토포로스는 오늘날에도 가난한 여행자들의 수호성인으로 여겨진다. 물 위를 걸으실 수 있는 예수께서 굳이 그의 어깨를 빌려 강을 건너셨으니 이보다 믿음직한 수호성인이 또 있겠는가. 바로 그런 인물이 한국 교회의 ‘그리스도를 업은 크리스토포로스’로 ‘경찰 수호성인’이 된 오범열 목사이다. 경찰은 국민의 생명 신체 및 재산의 보호와 범죄의 예방 진압 및 수사, 치안정보의 수집, 교통의 단속 기타공공의 안녕과 질서유지를 그 임무로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이런 중요한 임무를 부여받은 경찰조직은 원활한 임무 수행을 위하여 효율적인 인사제도 및 조직을 구성하여 발전되어 왔다. 경찰 마크는 1987년 6월 5일 제작된 것으로 국립경찰의 표상인 참수리와 태극을 감싸고 있는 무궁화 꽃과 잎의 조화 속에 ‘중앙’이라는 글자를 넣어 국가를 보위하고 올바른 법 집행으로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경찰조직을 상징하고 있다. 해방 후 미 군정 시기에는 경무국장(警務局長)이라 불렸고 경무부장(警務部長)으로 호칭이 바뀌었다가 정부 수립이 되면서 내무부 치안국장(治安局長)이 되었다. 그러다 1974년에 치안본부장(治安本部長)이 되었고 1991년에 경찰청이 외청(外廳)으로 독립하면서 경찰청장이 되었다. 그 조직의 수장 경찰청장은 수사기관의 특성상 검찰총장과 마찬가지로 임기는 2년으로 보장되며 중임할 수 없다. 경찰청장의 2년 임기가 2003년 도입되고 임기를 마치고 퇴임한 역대 경찰청장은 13대 이택순, 19대 강신명, 20대 이철성, 21대 민갑룡, 23대 윤희근 총 5명이다. 이어서 2024년 7월 17일, 차기 24대 경찰청장 후보자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조지호(趙志浩, 1968년 4월 30일~) 서울경찰청장을 임명 제청했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경찰청장 임명 제청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조지호 대한민국의 제24대 경찰청장 후보자가 현장 치안은 물론 기획과 인사, 정보 등 정책 총괄 기능을 갖춘 적임자라고 소개했다. 56세의 그는 뛰어난 업무 추진력과 높은 조직 장악력으로 정평이 나 있다. 강력한 리더십과 기획력을 바탕으로 정권 후반기를 안정적으로 책임질 적임자로 평가받았다는 해석이 나온다. 2024년 7월 30일, 국회에서 조지호 후보자의 청문보고서가 채택되었고 8월 10일, 윤석열 대통령으로부터 경찰청장으로 최종 임명받고 치안총감으로 승진하여 제24대 경찰청장으로 취임하였다. 제23대 경찰청장 윤희근 제24대 경창청장 조지호를 만나 10월 7일 축복 기도한 ‘경찰 수호성인’ 오범열 목사가 2024년 10월 21일 경찰의 날에 ‘경찰조직 활성화와 복음화를 위한 공로’로 대통령 훈장과 표창을 받았다. 17개 광역시 227개 시군 기독교총연합회 대표 총회장 오범열 목사의 15만 경찰 선교를 목적으로 설립된 교회와경찰중앙협의회(교경협)의 경찰행정업무 지원을 통해 국가 사회 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야곱은 바로 왕을 처음 만났을 때 축복하고 돌아서 나오면서도 축복했다. 놀라운 것은 야곱이 이집트 제국 지배자 바로에게 아무런 부탁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마디도 요구하는 것이 없었다. 오범열 목사도 그 누구에게나 축복을 하지만 부탁이나 요청을 하지 않는다. 그런 오범열 목사가 17광역시도 227개 시군구 기독교총연합회 대표 총회장으로서 전국교회와 성도에게 동성애 관련 악법 저지를 위한 2024년 10월 27 오후 2시 광화문 대회 참석 요청을 했다. 천千일의 연습을 단(鍛)이라 하고, 만萬일의 연습을 련(鍊)이라 한다. 이 단련(鍛鍊)이 있어야 능력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오범열 목사의 축복기도는 바로 그런 단련을 거친 축복을 지닌 능력의 기도일 것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활 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적개심을 가지고 그를 쏘았으나 요셉의 활은 도리어 굳세며 그의 팔은 힘이 있으니 이는 야곱의 전능자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네 아버지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깊은 샘의 복과 젖 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리로다 창 49:22-25 2024-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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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박헌성 목사 LA 칼빈
어둠 속에 나뭇짐을 부려 놓고 요셉이 돌아왔을 때 마리아는 무화과 한 쪽을 예쁘게 깎아 내었다. 말할 힘조차 없는지 무화과 한 쪽을 받아 든 채 아궁이 앞에 털썩 주저앉는데 환히 드러난 요셉의 흘러 난 진땀 마르지 않고 있었다. 화염검이 두루 도는 동산 너머 어두워진 길에서 후들거리는 발끝걸음으로 어둠길 가늠했겠지. 불타는 소리 물 끓는 소리 다시 이어지는 어머니의 도마질 소리 그 모든 소리들 한데 어울려 아버지를 감싸고 있음을 아들은 보았다. 나성(羅城). 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한자 표기다. 이런 표기를 음차라고 하는데 70년대에는 이 음을 그대로 써서 LA를 나성이라 불렀다. 낯설법한데도 거부감은 덜 하다. 실제로 로스앤젤레스에 가면 ‘나성열린문교회’ 같은 한글 간판을 볼 수 있다. 1978년 발표된 ‘나성에 가면’이란 노래 때문이다. 원곡은 ‘LA에 가면’인데 박정희 시대 당시 영어를 못 쓰게 하는 규정 때문에 심의에 걸렸다. 노래를 만든 길옥윤 선생이 고심 끝에 ‘나성’으로 고쳐 발표한 곡이다. 일제강점기 당시에 한국인들이 미국에서는 그나마 가까운 LA로 많이 이주를 했는데 그때는 편지로만 소식을 전할 수 있었다. 나성에 가면, 그러니까 로스앤젤레스에 가게 되면 ‘잘 도착했다’, ‘나 잘 살고 있다’, ‘건강하다’ 이런 안부편지를 보내달라는 사연이 담긴 노래가 ‘나성에 가면’이다. 안타까운 사연을 담고 있지만 1978년 ‘세샘트리오’가 당시에는 생소했던 셔플리듬으로 부르면서 이 노래는 발표되자마자 국민가요로 등극하게 된다. 나성에 가면 편지를 띄우세요, 나성에 가면 소식을 전해 줘요. 이런 가사가 반복되고 있는 이노래. 외로운 날도, 즐거운 날도, 둘이 함께한 시간을 기억해 달라면서 아주 오래 못 볼 거 같은 애잔함을 담고 있는 노래다. 그러나 이제 2019년 칼빈주의를 따르는 우리 교단 목사들은 나성에 가면 LA의 칼빈 박헌성 목사가 새벽 6시 설교하는 ‘나성열린문교회’에 가보기를 바란다. 그러면 성경을 하나님 말씀으로 전하는 제네바 칼빈의 정수를 전달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토요일 나성의 허리우드에 가면 깃발을 들고 차이니스 극장 앞에서 그리고 주변을 돌며 영어로 전 세계 관광객과 미국인에게 외치고 전도지를 나눠주는 ‘추창효 목사 노방전도단’을 만나 뜨거운 전도의 열정을 느끼게 될 것이다. 추창효 목사는 박헌성 목사의 ‘나성열린문교회’ 협동 목사이다. 지난 1월 31일부터 2월 15일까지 비 내리는 나성에서 아내랑 묵으면서 겪고 은혜 받아 혼자만 간직하기에 아쉬워 전한다. 이제 우리 교단 목사들이 ‘나성에 가면’ 함께 못가서 정말 미안해요 하는 슬픈 사연의 편지를 띄우지 말고 LA의 칼빈 박헌성 목사가 새벽 6시 설교하는 ‘나성열린문교회’에서 은혜 받고 토요일 나성의 허리우드의 차이니스 극장 앞에 가서 ‘추창효 목사 노방전도단’의 뜨거운 전도의 열정을 느끼기를 바란다. 2024년 9월 23-27 제109회 총회에 참석한 박헌성 목사는 LA 소재 국제신학대학(학장 박헌성 박사)을 총대들에게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2024-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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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한기승 목사와 나사로
- 성령 불 들어간다. 아궁이에 들어간 참나무 불더미에 피어나는 불티인 듯 잦아드는 잉걸불 사이 기다랗고 말간 장작 하나, 저 환한 것, 저 따뜻한 것, 손목 괴고 불이나 쪼여볼까. 불 앞에서 털끝만한 그늘 한 점 없이 오직 따뜻할 뿐. 주님 몸 된 성도들, 성령 불로 타들어가 성화의 길 간다. 성령 불 들어간다고 알린들 성화되지 않은 몸이 대답할 리가 있나. 믿음의 깊이는 말로 잴 수 없다. 그래서 주님의 은혜만 있다는 깊은 말씀이 믿음에 온기를 더한다. 영화감독이자 작가인 베르너 헤어초크(Werner Herzog Stipetić; 1941~)는 1974년 11월, 파리에 있는 친구에게서 전화 한 통을 받는다. 대학생 때 만난 평생의 은사이자 전후 독일 영화의 정신적 지주인 영화평론가 로테 아이스너(Lotte H. Eisner; 1896년 3월 5일, 베를린 ~ 1983년 11월 25일, 파리1896~1983)가 위독하니 어서 그녀가 입원한 파리의 병원으로 오라는 이야기였다. 당시 일흔여덟 살의 그녀의 병세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헤어초크는 생각했다. "안 된다, 그녀가 지금 죽을 순 없어, 안 돼.' 서둘러 짐을 싸던 헤어초크는 갑자기 움직임을 멈추고 생각에 잠긴다. 그 순간, 그는 깨달았거나 계시를 받았던 것이다. 그는 자신이 이곳 뮌헨에서 파리까지 걸어간다면 아이스너가 죽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헤어초크는 최소한의 짐과 돈만 챙긴 채 1974년 11월 23일에 뮌헨을 떠나 춥고 습한 중부 유럽의 겨울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걸어가서 12월 14일에 파리에서 아이스너를 만난다. 그 22일간의 여정을 기록한 책이 바로 ‘얼음 속을 걷다 ’이다. 말 그대로 얼음 속을 걸어 파리로 걸었던 이야기. 내가 걸을 때면, 한 마리 들소가 걷는 것이다. 내가 쉴 때면, 하나의 산이 쉬는 것이다. 그런 그의 걸음이 신비로웠던 건 죽음이 아니라 삶이었다. 죽음에 맞서 걸었고, 수많은 삶을 목격했고, 그것을 기록했다. 누구나 언젠가는 삶과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삶도 아름다워야 하고 죽음도 아름다워야 한다. 수많은 삶의 모습이 우리들 곁에 머물것이며 그 순간을 느끼며 또 지나가는 한 순간이다. 오직 자신만을 위해 산다면 별다른 의미가 없는 삶일 것이다. 정신적 지주를 위해서 의리를 지킬 수 있는 삶, 곧 죽음을 맞이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마지막 희생 정신, 아름다운 삶이다. 자신 또한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그 누군가 자신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마지막까지 사랑을 쏟아줄 사람이 있다면 보람이 있을 것이다. 아름다운 언덕이 펼쳐진 풍경. 숲은 풍성하고 세상은 고요하다. 매의 울음소리. 내 뒤에 있는 노변 십자가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아침 일찍 존재했던 것은 밤이 오기 전에 쉬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동안 나는 이 세상에서 살며, 끊임없는 죽음의 위험 속에 살아갑니다. 나의 하나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 간구하오니 나의 종말을 편안하게 하소서.' 시간은 영원을 향해 흐른다. 그는 무작정 파리로 향하는 최단 거리의 도로를 걷기 시작했다. 여행길이지만 마땅한 장비도 없이 그저 걷기 시작한 순례에 가까운 여정이었으므로 험난할 수밖에. 게다가 제목처럼 추위가, 눈보라가, 얼음 같은 바람이 불어닥친다. 그렇게 걸어 마침내 도착함으로써 어쩌면 헤어초크는 그 마음, 그저 그 먼 길을 걸어 결국 닿는 그 마음이 아이스너의 병을 어떻게든 치유해주기를, 기이한 방식으로 믿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11월 23일부터 12월 14일까지의 기록과 그 이후의 글이 실렸다. 짐도 제대로 챙기지 않고 무작정 나선 여정은 “오늘밤은 어디서 자야 할까?”라는 의문으로 이어진다. “또 눈, 진눈깨비, 눈, 진눈깨비… 천지창조를 원망한다. 그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나는 흠뻑 젖은 채 사람들을 피하여 진창 같은 풀밭을 가로질러 걸어갔다.” 그는 3주 동안 독일 남부와 프랑스 동부의 이름 없는 마을들을 거치며 800여㎞를 걷는다. 겨울의 텅 빈 평원을 걷고, 버려진 헛간이나 빈집에서, 때로는 축사에서 잠을 청했다. 사람 한 명 마주치지 않는 날도 있었다. 강풍과 폭설과 겨울비와 우박을 다 겪고, 낯선 주막에 들어가면 동네 사람 사람들의 눈총을 받았다.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바라보며 자신의 행동이 무의미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들었지만, 차라리 무의미함을 모두 실천해버리겠다고 생각했다. 빠르고 편리한 것만이 옳고, 계산으로 모든 것을 결정하는 세상에서 얼어붙은 겨울 들판을 걷는 행위는 무모하고 무의미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유불리를 따지지 않고 하나의 소망을 위해서 순수한 열정으로 마음과 육체를 쏟아보았던 적이 언제였던가. 헤어초크 같은 태도가 진정한 예술이며, 그런 심장이 세상을 만든 게 아닐까. 이윽고 헤어초크가 파리의 병원에 도착했을 때, 아이스너는 아직 살아있었다. 누군가 얼음 속을 걸어 그녀에게 가는 헤어초크 이야기를 해주어 그녀는 그를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누가 더 쇠약한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초췌해진 두 사람이 병실에서 마주하였다. 그녀는 그를 쳐다보며 그윽하게 미소 지었다. 헤어초크가 혼자 걸어왔고 보호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그녀가 알았기 때문에 이해하는 듯했다. 그런 그녀를 신비롭게 쳐다보며 헤어초크가 말했다. “창문을 열어주세요. 며칠 전부터 저는 날 수 있게 되었답니다.” 왜 당장 가장 빠른 차편으로 파리로 가지 않고 도보 이동을 선택했을까. 그 길 위에서 헤어초크는 순례객이었으니까. 그가 기꺼이 자신의 육체를 고난에 빠뜨리는 동안, 청컨대 그 사람의 생명이 누군가를 기다리다 회생의 말미를 얻기를 바랬을지도 모른다. 어쨋든 그는 얼음 속을 걸어 마침내 그를 기다리고 있는 아이스너 앞에 앉았다. 그리고 그 날 이후 실제로 그녀는 8년을 더 살았다. 그 후 아이스너가 1983년 11월 25일 죽기 1년 전 1982년 독일 영화계의 공로상인 헬무트 코이트너상이 제정되자, 첫 수상자로 아이스너가 선정되었다. 헤어초크는 그녀를 위한 수상 축하 연설에서 말했다. “제가 당신에게서 날개를 얻은 유일한 사람은 아닙니다.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아끼는 누군가가 죽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그를 들소로도, 산으로도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 간절한 마음이 없다면 아무리 잘난 인간도 한낱 미물에 지나지 않겠지. 어느 한 목사의 아픔을 전하는 나에게는 저런 경험이 없음에 못내 부끄러움을 느낀다. 2018년 12월 1일 오후 2시 광주광역시 운암동 소재 광주중앙교회(한기승 목사)가 장로 장립 20명을 비롯한 139명의 임직 및 은퇴식을 가졌다. 이날 임직 및 은퇴 감사예배에는 증경총회장 중의 증경총회장 서기행 목사의 설교와 제103회 무지개 총회장 이승희 목사의 축사가 임직식을 한껏 빛냈다. 이날 30여명의 교단 지도자들과 박주선, 천정배 국회의원, 김기현 울산시장 등 정계 지도자들까지 순서를 맡아 축하와 격려를 더한 것은 한기승 목사의 교계와 사회에서의 목회 능력을 입증해주었다. 아울러 그는 이 시대의 기인, 그리고 광대 소강석 목사의 절친(切親)이기도 하다. 그런 한기승 목사가 나사로처럼 위중하다. 한기승 목사를 아는 총회의 모든 믿음의 사람들은 나사로를 향한 주님의 능력의 부르심을 위해 기도해주시기를... 성경은 말씀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요 11:39-44 2025-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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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한기승 목사와 나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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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옥한흠 목사 교회 갱신 은혜의 걸음
- 믿음에 사는 동안 다 말 못 할 말들을 믿음은 저마다의 가슴속에 품고 산다 꼭 믿어야 할 때 믿기 어려워 믿으면 주님은 침묵으로 튼튼해진 그의 두 팔을 벌려 나의 믿음을 품어주신다 주님이 별이시라면 나는 주님 옆에 뜨는 작은 별이고 싶다 주님이 노을이시라면 나는 주님 뒷모습을 비추어 주는 저녁 하늘이 되고 싶다 주님이 나무시라면 나는 주님의 발등에 덮인 흙이고자 한다 오, 주님이 이른 봄 숲에서 우는 은빛 새이시라면 나는 주님이 앉으실 수 있는 한창 물오르는 싱싱한 가지이고 싶다 판단이라는 것은 데이터와 분석뿐만 아니라 신탁(神託), 직관(直觀)까지 포함된다. 작은 일은 데이터만 가지고 판단해도 되지만 큰일은 신탁이 있어야 한다. 고대 지중해 세계에서 국가의 존망이 걸린 전쟁을 앞두고 델피 신전에 가서 신탁을 구했던 것도 고도의 의사 결정 과정이라고 보아야 한다. 트럼프나 이재명은 여러 재판 판결을 앞에 두고 점괘를 물어볼 신탁소나 점장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국가 간 전쟁은 뉴욕의 부동산 투자나 대장동 개발과는 차원이 다른 결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믿는 사람들은 주기도문에 나오는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구절을 때마다 외우지만 그때마다 깊은 믿음이 솟는 이유다. 만사가 하늘에서 먼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의 섭리와 뜻이 조짐으로 미리 나타나고 그다음에 현실 세계에서 보게 된다. 마치 일기예보와 같다. 인공위성에서 고기압과 저기압의 배치를 보고 일기를 예보한다. 예컨대 고기압과 저기압의 배치를 미리 보는 일이 '하늘에서 먼저 이루어지는 것'을 앞서 보는 일이다. 그것이 바로 징조와 계시의 하나인 것이다. 이 징조를 감지하는 일이 원래 동양에서는 국사(國師)나 왕사 또는 도사가 담당했다. 서양에서는 왕 측근의 성직자 또는 선지자나 예언자 몫이었다. 풍수도참과 주역 그리고 꿈이나 환상이 요셉이나 에스겔의 경우처럼 하늘의 조짐을 미리 짐작하게 해주는 도구였기 때문이다. 기업 경영에서 도사들의 판단을 활용하는 경영의 원조는 삼성의 이병철 전 회장이다. 대한민국을 지금의 인터넷 강국으로 만드는 기초를 놓은 이병철 회장은 도사들에게 대접도 후하게 했지만 한 사람 말만 믿지 않고 여러 도사의 점괘를 크로스 체크하는 노련함도 있었다고 한다. 그래도 인간의 생로병사는 그 누구든 피하지 못한다. 1996년 3월 7일 140명의 교단 소속 목회자들이 창립 제안자 옥한흠(玉漢欽, 1938년 12월 5일 ~ 2010년 9월 2일) 목사의 사랑의교회에서 △목회자 영성 회복 △교회갱신 △교단발전 △한국교회에서 교단의 올바른 자리매김 등을 위해 노력한다는 취지로 ‘교회갱신을 위한 목회자협의회(교갱협)’를 창립했다. 그 후 교단 내 금권선거를 뿌리 뽑기 위해 직선제를 폐하고 총회 임원 제비뽑기 선거제도를 정착시켰다. 세월이 흘러 교갱협 25주년 행사가 2020년 8월 17일 10시 30분 새로남교회에서 열렸다. 12시 20분 새로남교회 강단에 마련된 좌담회 석상에서 1명의 사회자(조성민)와 5명(고동훈, 김경원, 김찬곤, 이건영, 이재윤)의 패널 가운데 옥한흠 목사를 바로 이은 교갱협 2대 회장(2007. 8-2013. 8) 김경원 목사(서현교회 원로 2대 교갱협 대표회장 2007. 8-2013. 8)가 좌담회에서 발언하고 있었다. 주제는 ‘교갱협 25년 회고와 전망’이었다. “... 아까 교갱 있냐 없냐 말한 분이 있는데 지금 없어져도 아무도 아쉬워하는 사람 없어요. 그렇게까지 존재감이 없어져 가고 있지 않느냐 하는 위기를 저는 느끼고 있어요. 고동훈 목사가 교갱협에 대해서 얘기하면서 목회적, 목양적 견지에서 젊은이를 끌어안고 뭘 해야 되겠다, 교단 정치는 어떻게 해야 되겠다 했는데 내가 지금 말하고 싶은 이야기예요. 지금 현재도 해야 돼요. 그러나 안 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문제가 큰 겁니다. 절대적으로 변함이 없어야 할 교갱의 정신이 있습니다. 목회자 자기 갱신 교단을 세우는 갱신 이것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가져야 될 거예요. 그리고 가변적인 정신이 있어야 되요. 그것이 뭐냐, 다음 세대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 시대적인 상황 속에서 목회적인 상황 속에서 키워야 되요. 그리고 세워야 되요. 그리고 목회자 갱신을 계속합시다.(톤을 높이며) 그런 논리 아닙니까 이거. 예를 들어서 소리가 좋았다. 왜 지금은 소리 안 질러요? 왜 성명서 발표 안 해요? 미안합니다만 안 하는 건 지금 당신들 책임이야. 해야 될 건데 안 하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어요? 그렇잖아요. 교단의 큰 비리라든지 차별금지법이다 동성애다 총신 문제 많다 말입니다. 소리 질러요. 왜 안 지르느냐 이거요. 우리 스스로 지금 비판하면서 우리 존재감이 뭐냐? 소리 안 지르는데 무슨 존재감이 있느냐? 지금 그렇습니다.(사회자 한숨 쉰다) 교단의 문제도 그래요. 지금 젊은 목회자들이 비판하듯이 교갱을 정치적인 발판을 위해 도구로 삼으려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게 문제예요. 절대로 자기 정치적인 교단 안의 입지를 구축하기 위해서 교갱협을 도구나 발판으로 삼아 이용하려는 사람이 있어요. 그건 안 되는 겁니다. 그렇잖아요. 이게 옥한흠 목사님이 함께 시작했던 정신입니다. 들어가려 하지도 않았어요. 그런데 지금 그걸 이용해서 들어가려고 해요. 그래서 목회자들이 전부 실망하는 겁니다.(톤이 높아지며) 이런 건 막아야 돼요. 막았으면 좋겠습니다가 아니라 현재 있는 사람들이 막아야 됩니다. 안 막으니까 내가 답답하다는 겁니다. 옛날 이야기하면 젊은 사람들 싫어하겠지만 우리 교갱 임원들 수련회 하려고 일본까지 갔어요. 3박 4일. 제주도도 갔어요. 전부 비행기 타고. 일본 갈 때는 배 타고 왕복했지만. 설악산도 갔어요. 그런 가운데 외침이 나올 수 있었어요.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가 아니예요.(톤을 높이며) 하라는 거예요. 왜 안 합니까? 내 말은... (사회자 박수를 유도한다. 일동 박수) 존재감을 살려야 돼요. 25년 전을 다시 한번 살려보자. 어떻게 살리느냐... 살려 가지고 좀 제대로 해보자. 그런 다짐으로 하는 것이 25주년의 의미가 아니겠는가. 전도사님들 젊은 목회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교단에 두려운 존재도 되고 우리 자신의 목양적인 어떤 사명을 하고 그것은 구호가 아니라 실질적인 교갱을 통해 이루어가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사회자가 말을 받는다. “제가 볼 때는 목사님께서 원로를 떼시고 다시금 현역으로 들어오셔야 될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박수합시다. (일동 박수) (사회자 패널들을 향해) 왜 안 합니까? (김경원 목사 허허 웃는다) 하시란 말이예요. 이제 우리 김찬곤 목사님이 답변하셔야 되는데 엄청 부담이 될 것 같습니다. 바로 옆에서 보고 ‘왜 안 하느냐?’ 말씀하시기 때문에 잘 말씀해 주시기를 부탁합니다.” 김찬곤 목사(안양석수교회 5대 교갱협 대표회장 2019. 8-)가 말을 이었다. “그래서 부담입니다. (사회자 너털웃음. ‘우하하하.’) 아. 뭐. 맞습니다. 해야죠. 해야 되고 저도 이제 해야 된다 라는 당위성을 알아야 해요. 어떻게 할 것인가는 우리가 논의해야 되는 논제라고 봅니다. 아. 진짜 당부하고 같이 합의해야 할 것 중의 한 가지는 말씀드렸는지 모르지만 지금 교갱은 상임 회장이 공석입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거든요. 있을 수 없는 일이 현재 벌어져 있고 사실은 다음 차기 대표회장이 될 사람이 준비해 같이 움직여져야 하는데 이 자리가 공석이라는 자체가 그 한 가지입니다. 이것은 누구도 뭐 다른 어떤 자리들은 돈을 내고라도 나갈 수 있는 자리인데 여기는 누구도 주지도 않지만... (좌중 웃음) 나오려고 하지도 않고 하려고 하는 사람도 없다는 것... 우리 중 몇 분이라도 내가 하겠다고 해서 시켜주지도 않겠습니다만 (일부 웃음) 그래도 그런 부분에 관한 관심과 헌신을 같이 해야 되지 않겠나. 그래야지 연결 고리를 계속 내려갈 수 있지 않겠나. 사실 뭐 교갱협 대표나 임원은 보기에 굉장히 근사하지만 굉장히 힘든 자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미 있는 자리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들 중에서 오늘 총회 안 할 거 아닙니다만은 일부분 다루어져서 좀 정리가 되어지고 새로운 사람들이 세워지는 부분이 위임이 준비되어지는 과정들이 꼭 필요하고 다음 분들도 같이 혹시라도 좀 더 깊이 일하고 싶은 분이 있으면 노크를 해주십시오. 우리 그런 적 한 번도 없었지만 노크를 하면 그래도 좀 대화를 하면서 뭔가를 할 수 있지 않겠나... 아니면 대표부 쪽에서 요청을 하고 이야기를 하면 거의 대다수의 사람들이 사양을 합니다. 사양을 못하는 마음 약한 사람들만 지금 이 자리를 지키는 겁니다. 그런 부분들이 없잖아 있기 때문에 관심을 더 적극적으로 하는 우리... 김경원 목사님의 그 고언은 우리가 진짜 가슴 속 깊이 되새기면서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못해서 우리가 반성해야 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현실 속에서 우리 동역자들에게 좀 더 적극적으로 협의회에 대한 관심과 우리 내부 안에서도 좀 쓴소리가 나와져서 임원들이 좀 단단해지는 부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 누구든지 조금 더 관심을 깊이 있게 가져줬으면 합니다. 교갱협이 진짜 기준이 되고 정신이 되고 진짜 심장이 되어지는 원리가 우리 후배들에게 계속 흘러갈 수 있도록 이 자리에 계신 분이라도 힘을 모으면... 옥한흠 목사님이 10주년에 사데 교회 설교를 하시면서 얼마나 비판을 했는지 몰라요. ‘우리가 그 사데 교회 지도자들이 아니냐.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데 교회 선한 사람들이 있다’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몇 사람만이라도 힘을 모으면 이것은 절대로 문제가 되지 않고 이겨낼 수 있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옥한흠 목사님이 돌아가신 지 10주년이 됐습니다. 올해가 10주년인데 그 정신이 이어져가고 있으니까 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 더 되새겨 봅시다. 이 자리에 오신 분들은 그 심장을 가지고 오신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힘을 모아간다면 귀한 목사님의 고언이 우리 현실 속에서 열매로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사회자가 말을 이었다. “오늘 마지막 찬양은 25주년 됐기 때문에 ‘생일 축하합니다’ 이 노래보다는 ‘원할 때 바라고 기도합니다’ 찬양이 있습니다. 후렴에 보시면 ‘하나님의 성품이 성령님의 능력이’ 다시 한번 우리 교갱협에 불일 듯 일어나기를 원하는 그런 마음을 담았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도 다 일어나시죠. 일어나셔서 마지막 이 찬양을 하고 난 다음에 케이크를 절단하겠습니다.” 피아노 반주에 합창이 울렸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나의 힘을 의지할 수 없으니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 것은 주께서 참 소망이 되심이라 하나님의 꿈이 나의 비젼이 되고 예수님의 성품이 나의 인격이 되고 성령님의 권능이 나의 능력이 되길 원하고 바라고 기도합니다... 이어서 이사장 이건영 목사(인천제2교회 교갱협 3대 대표회장 2013. 8-2017. 8)의 사회로 교갱협 25주년에 걸맞는 정기총회가 진행돼 안건 및 결의사항을 처리했다. 이건영 목사는 우리 총회를 힐렐 같은 믿음과 지혜로 이끌어 가고 있는 지도자이다. 교갱협의 정신과 정관 목적에 딱 맞는 인물이고 옥한흠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의미 은혜의 걸음 은보(恩步)를 이어받은 어거스틴 같은 목회자이다. 이건영 목사 이전이나 이후 위대한 설교자나 목회자는 더러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말씀을 깨우치고 실천하는 힐렐 같은 지혜자 마음 지닌 이건영 목사 같은 지도자는 드물 것이기 때문이다. 교갱협 25주년에 그가 있어 은혜의 걸음 은보(恩步) 옥한흠 목사가 제창한 교갱협 정신이 계승되고 현현된 느낌이다. 20년 전 2003년 12월 15일 옥한흠 목사는 에스더가 이방땅에서 환난을 당할 유대인을 살린 것처럼 교단 기관지 기독신문을 살린 박에스더 국장과의 대담에서 사랑의교회 개척 25주년 회고와 은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박에스더 - 옥한흠 목사님 반갑습니다. 사랑의 교회를 개척하고 25년 동안 사역했던 사랑의교회에서 은퇴하시면서 느끼는 감회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옥한흠 목사 - 사실 지금 굉장히 행복합니다. 은혜로 달려온 25년이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일하던 동역자 가운데는 여러가지 이유로 도중 하차한 분들도 참 많은데, 이렇게 은퇴를 생각할 나이까지 목회를 할 수 있도록 지켜주신 하나님이 너무 감사합니다. 또한 사랑의교회 성도들을 보며 더욱 행복합니다. 지금 사랑의교회는 정점에 와있습니다. 오정현 목사를 후임자로 정하고 성도들의 표정이 달라졌음을 느낍니다. 더욱 활기차졌고 찬양하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몇 달 사이에 교회 평균 성장률에 비해 3000명 이상 성장하는 것을 보며 제가 은퇴하고 젊은 목회자에게 자리를 내 준 것이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박에스더 - 25년전 사랑의교회를 시작할 당시 목사님의 교회개척의 변을 지금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옥목사 - 사실 당시에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여러 선교단체들 다시 말해서 파라 처치(para-church)에 기성 교회 청년들이 흡수되어 청년부가 교회마다 지리멸렬하고 있었습니다. 교회 청년지도가 위기였고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그때 왜 청년들이 교회를 빠져나가 파라 처치로 흡수되는지 배경과 원인을 분석하고 사람 키우는 일이 중요하다고 보고 제자훈련에 착안했습니다. 젊은이들 가슴에 복음의 열정 비전을 심어주는 일이 필요하다고 본 겁니다. 미국 유학 후 돌아와 바로 제자훈련 프로그램으로 사람 키우는 일-복음의 열정을 심어주고 비전을 품게 하는 이 일이 제 목회의 본질이 된거지요. 사람을 키워 예수 제자 되어 열심히 일하도록, 열린 리더십을 갖고 평신도와 함께 일하는 풍토를 만든 겁니다. 박에스더 - 목사님께서 4반세기 동안 제자훈련과 사랑의교회 목회, 그리고 한국교회갱신운동과 한목협을 통한 연합운동의 물꼬를 튼 일들을 짚어볼 수 있습니다. 사랑의교회 은퇴라는 시점에서 지금까지 목사님이 일생을 걸고 해오신 이런 사역들이 영향을 받지 않을까요. 옥 목사 - 사랑의교회 목회는 하나님께서 제자훈련에 대한 비전과 신념을 주셨고 지역교회 하나를 맡아서 그 비전을 실천하는 평범한 목회였습니다. 이후 자의 반 타의 반 교회갱신과 교단 연합운동까지 왔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지금 물러가는 것이 70이 되어 은퇴하는 것보다 훨씬 좋다고 생각합니다. 아직은 힘이 있고 제가 사역할 마당이 있습니다. 사랑의교회 담임은 은퇴하지만 제자훈련 사역에 더욱 매진할 것이고 교갱협과 한목협 사역도 계속 이어나갈 것입니다. 이 말을 한 7년 뒤 2010년 8월 8일 새벽부터 폐렴으로 인한 고열과 호흡곤란 증세로 서울대병원 중환자실로 옮겨져 집중치료를 받았다. 그러나 2006년 폐암 진단을 받고 투병해온 옥 목사는 2010년 9월 2일 아침 8시 43분 사랑의 주님 품에 안겼다. 옥한흠 목사는 사랑의교회와 교회갱신협의회(초대 대표회장 1996. 3-2007. 8) 설립자이다. 그의 호는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의미로 은혜의 걸음 은보(恩步)이다. 코로나19와 태풍 마이삭이 제주와 원산 시내를 강으로 만든 맹위를 떨친 2020년 9월 2일이 옥한흠 목사의 10주기였다. 그는 성균관대학교 문리대학 영문학과와 1971년 2월 총신대 신학대학원(총신연구원 64회)을 졸업했다. 총신 신대원 재학시절 서울 은평교회에 전도사로 부임한 그는 100명이었던 주일학교를 500명까지 성장시켰다. 1970년 4월 김희보 목사의 요청으로 서울 회현동 성도교회 사역자로 부임하고 총신 학장으로 부임한 김희보 목사 뒤를 이은 김성환 목사의 성도교회에서 그는 그의 인생의 분수령이 된 대학부를 맡았다. 그는 성도교회에서 부목사로 대학생을 지도하던 중 제자훈련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는 교회에서 젊은이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데 비해 대학생 선교단체들엔 젊은이들이 모이는 현상을 탐구하던 중 그 비결이 제자훈련에 있음을 깨닫고 그는 대학생들이 기성 교회에서 빠져나가 선교단체로 모이는 이유에 대해 궁금해했다. 그러다 선교단체에는 있지만 기성 교회에는 없는 세 가지를 깨닫게 된다. 그것은 바로 복음, 훈련, 비전이었다. 1972년 35세에 수도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은 그는 대학생 12명과 함께 성도교회에서 ‘복음과 비전’을 갖게 하는 제자훈련을 시작해 1975년 미국 유학을 떠나기까지 당시로는 중형 교회의 신자 수에 버금가는 200여 명의 부흥을 달성했다. 1972년 총신대 재학 시절의 나도 성도교회 중등부 교사로 봉사할 때 옥한흠 전도사의 대학부 집회에 간혹 참석해 설교와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 스타일을 경험하곤 했다. 옥한흠 목사는 1975년 유학을 떠나 1977년 5월 칼빈신학교에서 신학석사 학위를 받고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로 자리를 옮겨 목회학 박사과정을 밟았다. 그리고 필라델피아 웨스트민스터 구내 서점에서 독일 출신 가톨릭 사제 신학자 한스 큉(Hans Küng, 1928년 3월 19일 ~ 2021년 4월 6일)은 스위스의 천주교회 사제이자 저명한 기독교 신학자의 ‘교회란 무엇인가(DIe Kirche)’를 발견했다. 그는 천주교 내부에서 '기존의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과연 무오류인가?(Infallible?)"라는 책을 내서 교황 무오류 교리를 비판하는 등 교권과 계속 마찰을 빚었다. 결국 1979년 12월 15일 교황청의 신앙교리성에서 공표문을 발표하여 큉은 공식적으로 천주교 신학을 가르칠 수 없게 되었다. 옥 목사는 그를 통해 평신도를 왜 제자로 키우고 깨워야 하는지에 대한 확고한 신학적 답을 얻었다고 한다. 한스 큉은 교회의 근원을 예수가 전한 하나님의 나라로 보고 있다. 즉 교회의 근원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며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신앙공동체가 교회라는 것이다. ‘교회란 무엇인가’는 총 11장으로 되어있으며 이 책은 원래 한스 큉의 ‘교회(Die Kirche)’를 짧고 이해하기 쉽게 축약하였다. 한스 큉은 이 책에서 교회의 본질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교회의 모든 역사적 양상에는 이 비본질이 마치 그림자처럼 본질을 따라다닌다. 교회의 참 본질은 비본질 안에서 나타난다. 우리는 교회의 어두운 비본질을 처음부터 고려하고 들어가야 한다. 교회의 악한 비본질을 통하지 않고서는 교회의 선한 본질을 분별할 수도 없다.” 가톨릭 내 신학적 반정통 교리적 진보파나 에큐메니컬 계열 개신교에서 관심을 보이는 신학자 한스 큉(Hans Küng, 1928년 3월 19일 ~ 2021년 4월 6일)은 교회 안에 성도가 의인이자 죄인이기에, 교회의 역사는 곧 정의의 역사이자, 죄의 역사라고 말한다. 그렇기에 교회 내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 성도들은 너무 속상할 필요가 없다. 그 비본질적인 문제를 통해 교회의 참된 본질이 밝히 드러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옥한흠 목사는 기성 교회로 가고 싶은 유혹을 끊기 위해 1978년 6월 귀국하자마자 서둘러 그해 7월 23일 주일 오후 3시 강남 서초동 유스호스텔 앞 3층 짜리 건물 2층에서 강남은평교회 창립 예배를 드렸다. 1981년 9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 4:8)라는 말씀 안에 내포된 십자가 의미를 좋아했던 그는 ‘사랑’이란 단어에 ‘의’라는 소유격을 붙여 ‘강남은평교회’를 ‘사랑의교회’로 이름을 바꾸었다. 미국에서 집중적으로 공부해 1986년 사랑의교회에서 시작한 신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아가는 신앙생활을 하도록 이끄는 첫 제자 반은 김영순 사모 혼자만 남고 실패로 끝났다. 부유하고 신앙연수만 오래된 이들에게 원색적인 말씀으로 도전하니 훈련생들은 얼굴이 빨개지며 쩔쩔매기 일쑤였다고 한다. 그러나 다시 시작한 여자 제자 반은 영적으로 큰 변화를 맛보았다. 옥 목사는 교회 밖의 모든 모임이나 집회 요청을 거절하고 제자훈련에 완전히 집중했다. 여자 제자 반이 성공하자 1979년 남자 제자 반을 처음으로 시작했다. 옥 목사의 설교와 제자훈련을 통해 배출된 순장들의 전도로 교인이 500여 명으로 증가하자 교회건축을 결의하고, 1985년 1월, 성전 입당예배를 드렸다. 그는 일주일에 제자반, 사역반 3개, 순장반 2회, 교역자 훈련, 주일설교 3회, 또 1년 3차례 돌아오는 CAL세미나 인도에 자신의 모든 진액을 쏟았다. 급기야 그는 1989년에 탈진하여 개척 12년 만에 하와이에서 1년간 안식년을 가져야 했다. 그는 1주일의 숙식훈련에 이어 목사 제자 훈련과 평신도 사역 훈련을 1년씩 하는 이 훈련을 통해 성장한 사랑의교회 교세를 알 수 있는 대담을 기독신문과 했다. “세례교인 수를 한 명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집계했습니다. 3만500여 명 재적 교인 중, 세례교인은 1만5247명이라 그대로 냅니다. 총회 본부와 총회 신학교 그리고 여러 산하 기구들이 21세기형으로 체질개선 하는데 전향 적으로 투자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총회 재정 운용의 합리성과 투명성이 확보돼야 합니다. 정책 수립과 집행에 대해 신뢰할 수 있는 체질개선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성경은 말씀한다.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그들과 결산할새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마 25:19-21 2025-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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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MI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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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김종준 목사 축복 비결
- 1986년 그 당시 김종준 전도사 어린이 교육 선교 재원 위해 자기 피 팔아 그 경비 조달 2016년 20,000여명 등록 교인 매주일 11,000여명 출석 교회로 성장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총회장이 있다. 어디로 가야 할지는 아는데 어떻게 가야 하는지를 모르는 총회장도 있다.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다 아는데도 일을 시작할 동력(動力)을 만들지 못하는 총회장도 있다. 헤매는 목사 총회장은 크게 봐 이 3가지 분류법으로 나눌 수 있다. 이 분류법을 넘어선 총회장이 있다. 그는 제104회 정금 총회장 김종준 목사! 2000년 전 화산재에 묻혔던 폼페이의 유적들은 발굴 200년이 지나도록 현대인들을 매료시킨다. 이 비극의 고도(古都)에 가면 폼페이 시민들의 절망과 함께 그들의 일상을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일 게다. 잿빛 화산재 속에서 정지된 시간을 보낸 유적들은 당시 로마인들이 어떻게 먹고 마시며 사랑하고 슬퍼했는지 고스란히 보여 준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룬 업적을 기념하는 성공이란 한 분야에 삼십 년쯤 종사한 후에 찾아오는 것일 것이다. 그러니까 성공이란 일류대학에 입학했다거나 사법고시에 합격했다거나 땅값이 올라 큰 부자가 되었다는 따위가 아니라 김종준 목사같이 한 분야에 삼십 년쯤 종사한 후에 온다는 얘기일 것이다. 반짝 빛나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 은은하고 끈기 있고 한결같은 것 악천후도 견뎌낸 든든한 믿음 같은 것일 것이다. 죄를 벗어나 세상을 이기고 축복받는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104회 정금 총회장 김종준 목사는 제시했다. 그것은 주일성수, 십일조, 전도, 세 가지 의무를 실행하는 것이다. 전두환 시대든 문재인 시대든 윤석열의 개혁 시대든 철부지 살인자 김정은 모험이든 그것을 이기는 해결책은 하나님 명하신 주일성수, 십일조, 전도를 성실히 지켜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서 바로 살면 축복의 삶을 누리게 된다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이에게 삼십 년 복음을 전한 그 기념으로 한 교회를 개척해 삼십 년 목회한 그 기념으로 그 교회에서 온 몸으로 설교하고 기도한 삼십 년 그 기념으로 빛나는 면류관 하나씩 또 마련되는 것 아니겠는가. 그래서 오랜 세월 말없이 교회를 위해 봉사한 성도들에게도 더불어 꽃은 한 송이 또 곱게 피어나는 것 아니겠는가. 2016년 6월 25일 오전 11시 서울 상계동 꽃동산교회(김종준 목사) 본당에서 ‘창립30주년 및 임직 감사예배’를 드렸다. 본당 3개 층은 성도들과 국민의 당 대표 안철수 의원과 노원구 구청장 김성환 등의 하객들로 빈자리 하나 없이 꽉 찼다. 1부 예배에서 제100회 총회 총회장 박무용 목사는 사무엘상 19:18-24 본문에 “이런 교회가 되게 하소서!”라는 제목으로 교회의 본질에 관한 감동적인 설교를 전했다. 꽃동산교회는 1986년 6월 15일 서울 중구 신당동 402-13번지의 건물 64평을 임대해 김종준 전도사가 개척을 했다. 개척 당시 당회장이었던 서기행 목사(제89회 총회장)가 이날 3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전달한 격려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올해 창립 30년인데 제 나이 50살에 꽃동산교회 당회장이었습니다. (교인들이 감탄의 소리를 냈다.) 김종준 그 당시 전도사께서 어린이 교육 선교에 재원이 없어 자기 피를 팔아서 그 경비를 조달했다는 말을 듣고 특별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렇게 큰 교회가 되었습니다...” 이날 축사를 전한 제83회 총회 총회장 길자연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의 방법은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이제 서기행 목사는 10년 전에 은퇴하셨다고 하는데 저는 3년도 안 됐습니다. 목회를 하면서 가장 힘든 일은 사람과의 접촉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 말씀과 기도에 전무하면 성격도 변하고 생활도 변합니다. 양심적인 사람이 지도자가 되면 사회와 교회가 양심적이 됩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람이 그 자리에 서면 교회도 흔들리고 가정도 흔들리고 사회도 흔들립니다. 대한민국 목회자 가운데 가장 올바른 지표를 정하신 분이 김종준 목사입니다. 김종준 목사는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오게 생기셨습니다. (교인들 웃음) 왜 그러나 했더니 피 뽑아서. (교인들 손뼉을 치며 파안대소) 저는 오늘 축사 초청을 받고 놀랬습니다. 나를 어떻게 알고 이 자리에 초청을 했는가. 한 가지 중요한 것을 생각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객관적으로 이 교회 담임 김종준 목사를 볼 때 그는 흠이 없고 목회에 전념하는 일사각오의 목회자이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임직자 여러분과 교회 성도들이 이 목사만 따라가면 잘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지도자 목사에게 순종하고 잘 따라가면서 꽃동산교회 안에서만 사시기를 바랍니다. 밖으로 나가면 위험합니다. (교인들 웃음과 박수) 이 말로 축사를 갈음합니다.” 꽃동산교회는 30년 역사 가운데 2004년 12월 16일 김종준 목사는 학교법인 천호학원(위례정보산업고등학교, 서울외국어고등학교) 이사장에 취임했다. 그리고 2016년 6월 15일 현재 대지 700평에 지하 3층, 지상 11층, 연건평 3,300평의 성전에서 교역자 87명, 장로 47명, 안수집사 350명, 권사 752명, 서리집사 3,854명의 직분자들이 있으며, 20,000여명의 등록 교인 가운데 매주일 11,000여명이 출석하여 예배를 드리는 교회로 성장하여 어린이 선교를 통한 세계 복음화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날 임직식을 통해 꽃동산교회는 7명의 장로와 46명의 안수집사, 99명의 권사를 직분자로 세웠고 이외에 10명의 성도를 명예권사로 추대했다. 이날 장로로 장립된 김민규 장로는 임직자 대표로 인사를 하며 겸손하게 성도들과 교회를 섬길 것을 다짐했다. “직분자는 대접받기 위한 자리가 아니라 섬기는 자리에 있는 사람인 것을 알기에 가장 낮은 위치에서 섬기고 교회를 돌보며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려 합니다. 힘들지라도 여호수아와 갈렙 같은 믿음으로 기도하며 달려가겠습니다.” 이날 김종준 목사는 예배를 마치고 나눈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조그만 단칸방 같은 데서 여섯 명이 시작한 꽃동산교회가 오늘날 이렇게 크게 번창해 시대적인 사명을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저희 교회가 그동안 어린이 선교를 통해서 세계를 복음화하려는 소명을 가지고 어린이 교회로 시작을 했습니다. 어린이 전도를 열심히 하다 보니까 하나님께서 더불어 많은 장년도 보내 주셔서 큰 교회가 되었습니다. 이제 30살 먹은 청년의 교회가 되었습니다. 이제부터 더 힘 있게 남은 사역을 감당하려고 합니다. 이제는 우리 교회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곳 저곳에 꽃동산교회와 같은 비전과 신앙을 가진 많은 교회를 세워서 이 땅에 어린이선교를 실현하고자 합니다. 이미 지금도 아홉 군데 지역에 꽃동산교회 지교회를 세워 사역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지역에 꽃동산교회를 세워 죽어가는 많은 어린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데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영문학에 있어 낭만주의를 개창하는데 기여한 영국의 중요한 낭만주의 시인 워즈워드(William Wordsworth, 1770년 4월 7일 ~ 1850년 4월 23일) 그의 삶은 검소했지만 생각은 고상했다. 걷는 것은 영적인 행위라는 생각으로 구불거리는 언덕을 걸으며 풀, 꽃, 새, 냇물, 구름, 나비, 하늘과 숲을 관찰했다. 그리곤 호숫가에서 무지개를 볼 때마다 자신의 글을 하나씩 매듭을 지어 나갔다. 특히 해 질 무렵의 산책을 즐겼는데, 이는 곧 시(詩)와 연결된다고 생각했다. 시를 “평온함 속에서 회상되는 정서”라고 믿었고, 기교적인 단어를 사용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다분히 일상적인 시어(詩語)를 선택해서 사용하는 걸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렇게 평생 30만 킬로의 거리를 산책하며 지은 시 ‘나비에게’, ‘데이지에게’, 그리고 워즈워드자신의 인생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드러낸 자전적인 시 ‘서곡’(The Prelude or, Growth of a Poet's Mind; An Autobiographical Poem)은 영국 문학의 한 획을 그은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특유의 고요함 속 쓸쓸함을 더해주는 늦가을 호숫가 정취는 아름답다. 그는 어린이를 사랑한 김종준 목사처럼 '무지개'를 통해 어린이를 찬양한다. 하늘의 무지개를 볼 때마다 내 가슴은 한없이 뜁니다. 내 어릴 때 그러했고 어른이 된 지금도 그러한데, 나이 더 들어 늙어서도 그러하리라 믿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차라리 죽기를 원합니다.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입니다(The Child is a father of the Man). 따라서 내 삶이 자연의 경건함으로 채워져 매일매일 이어져나가길 바랍니다. 성경은 말씀한다. 예수께서 그 어린 아이들을 불러 가까이 하시고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눅 18:16 2024--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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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김종준 목사 축복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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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참 이스라엘 사람 윤남중 목사 기념 제9회 신학 세미나
- 한강 작가가 2024년 10월 10일에 노벨문학상을 받기 며칠 전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저는 언제나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그리고 산다는 게 대체 무엇인지에 대해 자꾸 생각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 고민을 매번 다른 방식의 소설들로 다루고 싶어 했습니다.” 2년 전 2022년 10월 20일 총회 양심의 버팀목 윤희원 목사가 대를 이은 전주효성교회당에서 열린 제7회 신학 세미나에서 총회를 조용히 섬기는 박재신 목사(양정교회. 제103회 회록서기)가 이런 축사를 했다. "우리 교단에 총회장님들이 많으신데 기념사업회를 하는 총회장은 없으신 것 같아요. 그러나 우리 윤남중 목사님이 총회장은 안 하셨어도 기념사업회가 있는 것은 우리 전북지역의 많은 목사에게 정신적 총회장을 하신 겁니다." 전북노회 윤남중(1920년~2015년) 공로목사는 생전에 "바른 목회를 하라. 바른 목사가 되라"고 후배 목사들에게 훈계하셨다. 그를 기리는 기념사업위원회가 2024년 11월 12일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5시까지 호남지역 개신교의 모태인 전주서문교회당(담임 김석호 목사)에서 제9회 신학 세미나를 개최했다. 개회 예배는 기념사업위원회 위원장 이영익 목사의 인도로 회계 허일 장로 기도, 감사 신경식 목사 요 19:25-27 성경 봉독, 강동현 목사 ‘당신의 아들 네 어머니’란 제목으로 설교, 전북노회장 이민규 목사 환영사, 전북신학교 이사장 서현수 목사 축사, 전북신학교 명예이사장 유웅상 목사 축사, 참 이스라엘 사람 윤남중 목사 기념사업회 장학금 수여식 후 총회의 거울 윤희원 목사가 감사 인사를 전했다. "이렇게 다시 아홉 번째 기념세미나에 참석해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벌써 시간이 10년 지났네요. 세월은 빛바래기도 하지만 빛나게 하기도 하는 것이 세월인 것을 알게 됩니다. 이 기념사업회의 많은 신학 세미나가 세월이 지나가면서 빛바랜 세미나가 아니라 빛나는 세미나가 될 수 있도록 여러분이 더 많이 기도해주시고 후원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늘 특별히 김인철 목사님을 모시고 세미나를 하는데 저는 잘하는 것이 없어요. 그런데 제가 잘하고 있는 것이 하나 있어요. 여러 책을 많이 본다는 겁니다. 김인철 목사님이 총신연구원 시절 저는 총신 대학부 학생이었습니다. 그리고 기독교문학회라는 동아리를 통해 같이 만나고 지금까지 교제를 나누고 있습니다. 김인철 목사님이 책을 많이 쓰시는 줄은 알았지만, 그 책들을 읽어보면서 생각을 했습니다. 이렇게 성경의 원어적이고 문학적이고 역사적인 것들을 동시적으로 잘 보면서 성경을 잘 해석하고 그런 지침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래서 저희 세미나에 모시게 됐습니다. 목사가 목회할 때 필요한 성경 읽기와 큐티에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는 유익한 강의가 되리라 믿습니다. 경청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전북노회장 이민규 목사의 축도로 예배를 마쳤다. 취재하러 갔다 은혜와 깨우침을 받게 된 세미나 주제는 '예레미야 애가-슬픔에서 희망을 긷는 지혜'로 김인철 목사(예수아성서연구원 대표)가 강연했다. 예레미야애가의 개요와 본문해설을 중심으로 세 차례의 강의와 질의응답이 진지하게 진행됐다. 말씀에 대한 관심과 애정에서 일어난 질문은 깊은 이해에 닿게 한다. 물음의 문을 무뚝뚝하게 닫지 않아야 될 이유다. 강사로 나선 예수아성서연구원 대표 김인철 목사는 예레미야애가에 대해 ‘뒤집어진 세상에서 부르는 노래’라고 정의하면서 운문(시)이자 지혜서로서의 성격을 유념하며 본문을 읽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실제로 본문을 읽고 체험하는 과정을 세 시간에 걸진 세 번의 강의로 머리와 마음에 쏙 박히게 진행했다. 김인철 목사는 말했다. “예레미야애가에 표현되는 참상과 이로 인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심리적 공황상태는 ‘하나님의 부재’(abscence of God)’라는 주제에서 극에 달합니다. 하나님의 부재는 정신적 기반의 붕괴를 의미하며 신학의 재정립이라는 과제를 수행하도록 뼈저린 반성을 요구합니다.” 10년째를 맞이한 이번 신학 세미나에서는 윤남중 목사의 유고 설교 세 편과 함께 장로교회의 역사와 직제(윤희원 목사·전주효성교회), 성경 묵상(QT)의 문제점과 한계 그리고 개선방안에 대한 제안(임진남 목사·한국개혁신학연구원 총무), 성경 속의 애굽과 성경 밖의 애굽 역사와 문화(최용만 목사·이서제일교회)에 대한 논문을 교재에 함께 수록해 배부했다. 그 교재에 생전에 윤남중 목사께서 요한복음 1:47-51 본문으로 '참 이스라엘 사람'에 대해 이렇게 설교하셨다. "예수님은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십니다.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예수님은 나다나엘이 가장 이스라엘 사람다운 사람이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는 '예수'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21에 보면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말씀하십니다. 메시아이신 예수를 기다리고 사는 자가 참 이스라엘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메시아 대망 신앙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요 지금으로 말하면 참 신자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신앙, 그 대망의 신앙이 없으면 참 신자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대망의 신앙을 가진 자는 정직한 자라서 간사한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새날을 주셨습니다. 우리 모두 살랑살랑 간사함으로 꼬리 치며 유혹하는 사탄으로 살지 말고 기둥 같은 정직함으로 바위 같은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며 믿음의 싸움을 정직함으로 싸우면서 삽시다." 그런 사람이 이 세상에서 알곡이고 고귀한 인류이고 영원한 빛이고 다름 아닌 목사라고...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반발한 의대생 대부분이 휴학한 가운데 본과 4학년이 내년 1월 치르는 의사 국가시험 필기시험에 304명만 접수했다고 한다. 의사의 일반적 윤리 제3조(의사의 사명과 본분)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의사는 고귀한 사람의 생명과 건강을 보전하고 증진하는 숭고한 사명의 수행을 삶의 본분으로 삼아 모든 의학 지식과 기술을 인류의 복리 증진을 위하여 사용하여야 한다. 그런데 모자라는 신규 의사 증원 정책에 대한 반발로 매년 3000명가량 배출되던 신규 의사가 의사 파업 투쟁으로 내년에는 10분의 1 수준만 배출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윤리강령 규정을 무시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도둑이 도리어 매를 든다'는 적반하장(賊反荷杖)의 표현을 우리는 이런 경우에 쓸 수도 있겠다. 어쨌든 무슨 일을 하든 인생이란 매번 흔들리면서도 나만의 중심을 찾는 과정이다. 의사와 의학도들의 본분이 아닌 이권에 집착하는 것 같은 근자의 행태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간사한 것이 없는 참 이스라엘 사람을 전하고 가르치고 실천하신 윤남중 목사의 설교가 세상이나 우리 교계에 새삼 절실해지는 시절이다. “저는 언제나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그리고 산다는 게 대체 무엇인지에 대해 자꾸 생각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라는 한강 작가의 말처럼... 성경은 말씀한다. 하늘에 올라갔다가 내려온 자가 누구인지 바람을 그 장중에 모은 자가 누구인지 물을 옷에 싼 자가 누구인지 땅의 모든 끝을 정한 자가 누구인지 그의 이름이 무엇인지 그의 아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너는 아느냐 잠 30:54 2024-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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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참 이스라엘 사람 윤남중 목사 기념 제9회 신학 세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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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전주서문교회 역사관과 총회 생존 목적
- 호남지역 개신교의 모태인 전주에서부터 전북지역 투어는 시작된다. 호남 최초의 교회인 전주서문교회 역사관은 초창기 미국남장로교선교부의 호남선교가 어떤 모습으로 전개됐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1893년 교회 설립에 전력하다 1908년 1월 2일 43세로 소천한 전위렴(W.M. Junkin)을 기리는 예배당 앞마당의 종탑 안내문은 놓치지 말아야 할 대목이다.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서는 ‘민주주의’라는 대담한 실험이 시도된다. 왜 민주주의가 ‘대담한’ 실험이었다는 걸까? 인간은 이기적 유전자를 따르지만, 동시에 다른 이들과의 협업을 통해서만 생존이 가능한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서로 역설적인 두 가지 본능을 가진 인간에게 민주주의는 너무나도 어려운 방식이라는 말이다. 신석기시대 농사와 정착을 시작으로 다양한 시도들이 시작된다. 가장 힘센 자가 모든 결정을 독점하는 방식, 힘센 여러 명의 공동 정권, 신의 선택을 받은 자의 지배…. 결과적으로 모두 극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고대 아테네의 민주주의만은 달랐다.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 것이 아닌, 다수의 결정을 통해 공동체의 미래를 결정하자는 놀라운 방식이었다. 물론 문제도 많았다. 여성과 노예는 투표할 수 없었고 비효율적이었다. 51%의 ‘다수’가 49% ‘소수’의 의견을 무시할 수 있었다. 우유부단(優柔不斷)한 김종혁의 제109회 총회는 목회자 70세 정년 연장보다 장기적으로 반드시 필요한 불편한 선택보다는 당장 편한 선택만을 추구하는 적당주의가 판치기도 했다. 진리는 절대적이고 유일하다고 여기기 쉽지만 마치 코끼리와 같아서 수많은 다른 면을 보여준다. 우리가 어떤 부분을 만지느냐에 따라 코끼리의 형태를 이해하는 한계가 있듯이 어떤 사고방식도 진리 전체를 모두 파악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니 어쩌면 각각의 사고방식 한계를 인정하고 진리를 찾고자 한다면 복잡한 세계를 이해하기에 지금보다 조금은 더 낫지 않을까 싶다. 현대 신학은 여전히 어두운 방에서 진리를 찾아 헤매고 있고 신학자는 나름대로 구원의 의미를 성경으로 보여주는 구도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고대로부터 마치 다시 태어나듯 허물을 벗는 뱀은 치유와 지혜의 상징이었다. 마태복음에 따르면 예수께서도 제자들에게 뱀처럼 지혜로울 것을 주문하셨다. 자기를 바로 보며 반성하면 성찰이고 도취하면 허영이다. 영리한 머리를 남을 위해 쓰면 지혜가 되나 자기만을 위해 쓰면 교활해진다. 총회 전체 측면에서도 일상의 행정을 넘어 새로운 것들을 지속적으로 실행해보는 조직을 두어야만 생존의 위기를 넘을 수 있다. 이것이 자연에서 배우는 초 생존의 원리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어느새 1000일. 겨울 닥친 전선에서 벌이는 피의 소모전, 한 계절 더 돌지는 않기를... 성경은 말씀한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사람들을 삼가라 그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그들의 회당에서 채찍질하리라 마 10:16-17 2024-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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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전주서문교회 역사관과 총회 생존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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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굳뉴스] 오범열 목사 ‘경찰 수호성인’
- 많은 전쟁을 치른 이스라엘의 행복 지수가 높고, 출산율 또한 높은 이유는 신앙 덕분이다. 종교는 공동체를 형성하고 사람들에게 소속감을 주며 외로움 또한 치유한다. 인간의 삶에 신앙이 꼭 필요한 이유다. 가톨릭에서 기리는 ‘크리스토포로스’라는 성인이 있는데 '크리스토폴'이라 하기도 한다. 이름은 고전 그리스어 크리스토스와 포로스가 합쳐진 것으로 '그리스도를 어깨에 짊어진 사람'이라는 뜻이다. AD 251년경의 인물로 추측되고 실제 이름은 '레프로보스'였다고 한다. 그는 원래 힘센 거인이며 이교도였다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자기보다 힘센 자를 만나면 섬기기로 하고 처음에는 왕, 다음에는 악마를 찾아갔으나 실망하고, 악마도 구세주를 두려워하니 그리스도가 가장 힘이 센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도를 섬기기 위해 그가 있는 곳을 찾아다녔다. 그러다 홀로 산속에서 수행하던 한 수도자를 만났다. 그는 수도자에게서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이런 말을 들었다. “그리스도의 진정한 강함은 가난하고 약한 이들을 돕는 데 있습니다. 당신도 그렇게 사세요.” 그 말에 따라 단순한 레프로보스는 강가에서 돈이 없어 배를 타고 가지 못하는 순례자나 여행객들을 자기 어깨에 올려 태우고 건네주는 일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어린아이를 어깨에 얹고 강을 건넜다. 그러나 그는 그 아이가 점점 무거워져 도저히 강을 건널 수가 없었다. 마치 온 세상을 짊어지고 가는 것같이 무거워서 그 힘센 레프로보스마저도 평소에는 쓰지도 않던 지팡이에 의지하며 간신히 강을 건널 수 있었다. 레프로보스가 이상하게 생각하며 아이를 강 건너에 내려놓고 나서 말했다. “그것참! 그동안 많은 사람을 짊어지고 강을 건너면서 이렇게 무거운 경우는 없었는데... 너 참 무겁구나.” 그러자 그 아이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레프로보스야, 잘했다. 너는 지금 온 세상을 옮긴 것이다. 나는 바로 네가 찾던 세상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라네.” 그 말이 끝나자 물에 닿은 레프로보스의 지팡이에 푸른 잎이 돋아나고 땅에 뿌리를 내려 나무가 되는 기적이 일어났다고 한다. 그 이후 레프로보스는 그리스어로 ‘그리스도를 짊어진 사람’을 뜻하는 ‘크리스토포로스’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 이름에서 유래한 남성 영어 이름이 크리스토퍼(Christopher)라고 한다. 축일은 가톨릭의 경우 7월 25일, 동방정교회의 경우 5월 9일이며, 예수를 모시고 강을 건넜으므로 여행자들과 운전자들의 수호성인이며 짐꾼들과 육체 노동자의 수호성인이기도 하다. 이후 기독교인으로 살다 순교한 크리스토포로스는 오늘날에도 가난한 여행자들의 수호성인으로 여겨진다. 물 위를 걸으실 수 있는 예수께서 굳이 그의 어깨를 빌려 강을 건너셨으니 이보다 믿음직한 수호성인이 또 있겠는가. 바로 그런 인물이 한국 교회의 ‘그리스도를 업은 크리스토포로스’로 ‘경찰 수호성인’이 된 오범열 목사이다. 경찰은 국민의 생명 신체 및 재산의 보호와 범죄의 예방 진압 및 수사, 치안정보의 수집, 교통의 단속 기타공공의 안녕과 질서유지를 그 임무로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이런 중요한 임무를 부여받은 경찰조직은 원활한 임무 수행을 위하여 효율적인 인사제도 및 조직을 구성하여 발전되어 왔다. 경찰 마크는 1987년 6월 5일 제작된 것으로 국립경찰의 표상인 참수리와 태극을 감싸고 있는 무궁화 꽃과 잎의 조화 속에 ‘중앙’이라는 글자를 넣어 국가를 보위하고 올바른 법 집행으로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경찰조직을 상징하고 있다. 해방 후 미 군정 시기에는 경무국장(警務局長)이라 불렸고 경무부장(警務部長)으로 호칭이 바뀌었다가 정부 수립이 되면서 내무부 치안국장(治安局長)이 되었다. 그러다 1974년에 치안본부장(治安本部長)이 되었고 1991년에 경찰청이 외청(外廳)으로 독립하면서 경찰청장이 되었다. 그 조직의 수장 경찰청장은 수사기관의 특성상 검찰총장과 마찬가지로 임기는 2년으로 보장되며 중임할 수 없다. 경찰청장의 2년 임기가 2003년 도입되고 임기를 마치고 퇴임한 역대 경찰청장은 13대 이택순, 19대 강신명, 20대 이철성, 21대 민갑룡, 23대 윤희근 총 5명이다. 이어서 2024년 7월 17일, 차기 24대 경찰청장 후보자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조지호(趙志浩, 1968년 4월 30일~) 서울경찰청장을 임명 제청했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경찰청장 임명 제청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조지호 대한민국의 제24대 경찰청장 후보자가 현장 치안은 물론 기획과 인사, 정보 등 정책 총괄 기능을 갖춘 적임자라고 소개했다. 56세의 그는 뛰어난 업무 추진력과 높은 조직 장악력으로 정평이 나 있다. 강력한 리더십과 기획력을 바탕으로 정권 후반기를 안정적으로 책임질 적임자로 평가받았다는 해석이 나온다. 2024년 7월 30일, 국회에서 조지호 후보자의 청문보고서가 채택되었고 8월 10일, 윤석열 대통령으로부터 경찰청장으로 최종 임명받고 치안총감으로 승진하여 제24대 경찰청장으로 취임하였다. 제23대 경찰청장 윤희근 제24대 경창청장 조지호를 만나 10월 7일 축복 기도한 ‘경찰 수호성인’ 오범열 목사가 2024년 10월 21일 경찰의 날에 ‘경찰조직 활성화와 복음화를 위한 공로’로 대통령 훈장과 표창을 받았다. 17개 광역시 227개 시군 기독교총연합회 대표 총회장 오범열 목사의 15만 경찰 선교를 목적으로 설립된 교회와경찰중앙협의회(교경협)의 경찰행정업무 지원을 통해 국가 사회 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야곱은 바로 왕을 처음 만났을 때 축복하고 돌아서 나오면서도 축복했다. 놀라운 것은 야곱이 이집트 제국 지배자 바로에게 아무런 부탁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마디도 요구하는 것이 없었다. 오범열 목사도 그 누구에게나 축복을 하지만 부탁이나 요청을 하지 않는다. 그런 오범열 목사가 17광역시도 227개 시군구 기독교총연합회 대표 총회장으로서 전국교회와 성도에게 동성애 관련 악법 저지를 위한 2024년 10월 27 오후 2시 광화문 대회 참석 요청을 했다. 천千일의 연습을 단(鍛)이라 하고, 만萬일의 연습을 련(鍊)이라 한다. 이 단련(鍛鍊)이 있어야 능력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오범열 목사의 축복기도는 바로 그런 단련을 거친 축복을 지닌 능력의 기도일 것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활 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적개심을 가지고 그를 쏘았으나 요셉의 활은 도리어 굳세며 그의 팔은 힘이 있으니 이는 야곱의 전능자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네 아버지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깊은 샘의 복과 젖 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리로다 창 49:22-25 2024-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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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남 종교개혁 500주년
- 구텐베르크 인쇄술 덕에 루터의 글들은 저렴하고 빠르게 복사되기 시작독일 전역 두 주간유럽 전역 두 달 만에 전파 칼빈은 스물다섯에 모든 교회의 기초 교리의 근간 ‘기독교강요’ 집필 스물일곱에 출판 이른 저녁 내리는 눈발은 교회 마당에 흩날린다. 이른 저녁 내리는 눈발은 교인 신발에 흩날린다. 이른 저녁 내리는 눈발은 교인 기도에 흩날린다. 이른 저녁 내리는 눈발은 변두리 교인 지붕만 다니며 흩날린다. 이른 저녁 내리는 눈이 그립고 우리와 같이 살던 교회 마당과 그 변두리 교인 지붕이 그립다. 변두리 동네는 교인들의 둥지였다. 새벽은 밤을 꼬박 지새운 자에게만 온다. 바람에 떠밀려 새날이 온다. 일어나 또 가자. 나이테의 중심처럼 믿음은 중심이 있다. 사람들아 촛불이나 태극기가 아닌 믿음으로 모여라. 그리고 가자 저 믿음의 중심으로. 살아서 가자. 살아서 여럿이 얽매인 삶에서 믿음과 자유의 교회로... 지난해 말 발표된 ‘2015 인구주택총조사’ 결과에는 종교 관련 내용이 포함됐다. 신자 수에서 개신교(967만6000명 19.7%)가 불교(761만9000명 15.5%)를 앞서 1위로 발표됐다. 종교가 없는 국민(56.1%)이 처음으로 50%를 넘었다. 1945년 광복 당시 2500만 인구 중 종교가 있는 비율은 4~6%에 불과했다. 한국전쟁 당시 루터교를 믿는 미국 병사들이 많이 참전했다. 한국의 추운 겨울 날씨를 이겨낼 수 있는 병력 자원을 5대호 지역에서 구할 수 있었는데 마침 그 지역은 루터교 신자들이 밀집한 곳이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루터교는 신자 수가 현재는 5000~6000명 정도다. 올해는 종교개혁 500주년이다. 마르틴 루터(1483~1546)는 1517년 10월 31일 오후 2시 독일 비텐베르크 성(城) 교회 대문에 면죄부(免罪符 indulgence)의 문제점을 지적한 ‘95개 논제’를 붙였다. 많은 사람이 동의하고 분노하던 내용이었다. 하나도 중요한 문제는 아니지만 ‘망치로 붙였다’ ‘접착제로 붙였다’는 설과 함께 아예 그런 일은 없었다는 설도 있다. 확실한 것은 루터에게 불굴의 용기가 있었다는 점이다. 1439년 구텐베르크는 유럽 첫 금속활자를 발명하고 1492년 콜럼버스는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다. 상상을 초월하는 일들이었다. 중세기 책 한 권 가격은 오늘날 차 한 대 값과 비슷했지만 구텐베르크 인쇄술 덕에 루터의 글들은 저렴하고 빠르게 복사되기 시작했다. 독일 전역은 두 주간 유럽 전역은 두 달 만에 전파됐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건전한 교회를 위한 총회 개혁에 뜨거운 마음을 가진 오정호 목사는 총회 산하 노회 가운데 처음으로 2월 19일 새로남교회에서 종교개혁500주년기념대회를 서대전노회(노회장:김헌섭 목사)가 개최하도록 앞장섰다. 기념대회가 열린 새로남교회 본당 아래 윗 층이 가득 찼다. 개혁주의자 오정호 목사가 종교개혁500주년기념대회 깊은 울림의 소리로 선포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나 같은 죄인은 구주를 높이고 595장 찬송하시겠습니다.” 나 맡은 본분은 구주를 높이고이후에 주님 뵈올 때 상 받게 하소서 전국장로회 부회장 강의창 장로가 기도했다. “고맙고 감사하신 아버지 하나님. 하나님 귀하신 뜻이 계셔서 서대전노회를 통해 새로남교회에서 종교개혁500주년 기념예배로 하나님께 영광 올리게 됨을 감사를 드립니다. 이곳에 세우신 하나님의 몸 된 교회가 하나님에게 헌신하는 교회가 되게 하소서 한국교회에 본이 되게 하시고 죽어가는 많은 영혼을 구원하는 구원의 방주가 되게 하소서. 특별히 오정호 목사님을 주셨습니다. 말씀 전하실 때마다 크신 능력이 나타나게 도와주시옵소서(회중 아멘). 주님 나라가 매우 어렵습니다. 혼란합니다. 공의와 정의가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주님 용서하여 주옵시고 하루 빨리 이 나라에 간섭해 주소서. 정부와 위정자와 정치인들에게 지혜와 명철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나라를 사랑하고 헌신할 수 있게 해주소서. 은혜를 내려주시옵소서. 이 일을 위해 믿는 백성이 기도하게 하시고 은혜가 임하게 해 주소서. 이 시간 말씀을 전하실 정성구 목사님 주의 오른손으로 붙잡아 주시어 아직도 끝나지 않은 교회 개혁이라는 말씀이 우리 삶에 푯대가 되고 칼빈의 종교개혁의 삶을 깨닫는 시간되도록 은혜를 내려주소서. (회중 아멘) 또한 이 시간 찬양대를 세워 찬양으로 영광 올리오니 우리 하나님 영광 받아주소서. 그리고 우리에게 은혜의 시간 되게 역사하여 주소서. 모든 걸 우리 주님께 의지하오며 그리스도 예수 이름 받들어 감사하며 간절히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오정호 목사 깊은 바리톤으로 선창했다 찬양하라 내 영혼아 찬양하라 내 영혼아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찬양하라 “이 시간 새로남교회찬양대에서 ‘내 주는 강한 성이오’ 찬양해 주겠습니다.” 장엄한 찬양이었다. “우리 함께 한 마음 한 입술로 봉독합니다.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이 시간 아직도 끝나지 않은 개혁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실 목사님은 전 총신대 총장을 역임하시고 현재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칼빈주의연구원 원장이신 정성구 박사님이십니다. 서대전노회 목사님들의 스승이시기도 할 겁니다. 귀한 목사님을 우리 강단에 허락하신 은혜를 박수로 환영하겠습니다.” (긴 박수) 정성구 목사 소년처럼 입을 열었다. “감사드립니다 제가 오늘 말씀을 전하기 전에 오정호 목사님에게 아주 작은 선물을 하나 가져왔습니다. 하나가 아니라 둘입니다. (웃음) 이것은 아주 정교하게 가져왔는데 교회 개혁이라는 말은 사실은 성경에 기초하고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뜻입니다. 구약에 모세오경을 토라라 했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토라 (포장을 버벅대며 푼다 회중 큰 웃음) 이게 양가죽 구약 토라입니다. 한국에 목사님이 많이 계십니다. 아주 정교하게 가져왔습니다. (보자기를 푸니 포장이 되어 있다. 다 벗기니 탄성이 나온다. 투명한 플라스틱 판에 검은 색 히브리어 문자가 새겨진 누런 양피지가 드러났다.) 한국에 목사님이 많이 계시지만 오 목사님처럼 교회 역사에 관심이 있는 분 없습니다. 제가 총회역사박물관 전시장에 맨처음 들어가야 할 토라 한 페이지를 목사님께 드립니다. (큰 박수) 우리가 교회 개혁을 말할 때 솔라 그라티아를 씁니다. 그냥 공짜라는 말입니다. (큰 웃음 박수) 교회 개혁기념을 위해서 드리는 겁니다. 이걸 가격으로 따지면 한 천 만원 됩니다. 그것도 오늘 뜻 깊은 날에 목사님에게 드립니다. (박수) 목사님에게 제가 부탁 받은 것은 40분 설교입니다. 저는 두 시간이고 개의치 않습니다만 맞추겠습니다. (큰 웃음) 제 시계로 지금 8시 10분 전입니다. 그러니까 8시 30분까지 정확하게 맞추겠습니다. 제가 교단에 선 지 금년 오십 년입니다. 1967년에 대학 강단에 섰으니 말입니다. 딴 건 몰라도 시간 하나는 정확합니다. (웃음) 오늘 오 목사님을 비롯해 서대전노회 모든 목사님들 장로님들 그리고 이 새로남교회 성도 여러분 특별히 오늘 청년들 중고등부 학생들 저는 청년을 제일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평생을 청년들에게 강의를 했기 때문입니다. 복되고 아름다운 기억의 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주최 측에서 순서를 맡아달라기에 설교를 할까요 강의를 할까요 했더니 그냥 두루뭉수리로 설교 겸 강연을 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설교는 설교이고 강의는 강의입니다. 어쩔 수 없이 오늘은 기념일이고 노회원들이 다 모였기 때문에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 강단에서 할 수 있는 건 세 가지 뿐입니다. 첫째 말씀 선포를 할 수 있고 둘째 성경과 기독교 교육을 할 수 있고 셋째 당회나 노회나 총회가 사회를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첫째와 둘째를 할 것입니다. 끝까지 다하면 시간이 부족합니다. 그냥 하는 데까지 하겠습니다. 그러나 여덟 시 반이면 딱 마치겠습니다. 여러분 알다시피 기독교가 어디서 왔느냐 결국은 하나님 말씀에서 왔습니다. 그러면 성경의 핵심이 뭐냐. 성경의 핵심이 세 가지인데 하나는 창조 그리고 인간의 타락 마지막으로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속 즉 창조 타락 구속 세 가지가 있습니다. 어쩌다가 이렇게 생겨난 것이 아니고 영원 전부터 계신 하나님께서 천지와 그 가운데 있는 모든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거이 성경의 위대한 선포입니다. 창세기 일 장 일 절에서 계시록 마지막 절까지 하나님은 창조자이십니다. 그 다음은 인간은 허물과 죄로 타락해 소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인간이 구속을 받을 수 없음을 아시고 위대한 구원의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인간 스스로 구원을 받을 수 없으니 중보자를 세우는 것입니다.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 계획입니까. 새로남교회 건물이 어느 날 일어나니 세워진 게 아니고 설계사가 아주 정교하게 설계를 하고 소용될 재료를 정확하게 계산하고 시공을 해서 이 건물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같은 죄인들을 속량해 주시기 위해 구원의 프로젝트를 세우셨습니다. 그래서 구약의 핵심은 제가 토라 한 페이지를 드렸는데 세상 민족 가운데 가장 가난하고 변방에 있 유목민을 계시의 바통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계시해 주셨습니다. 성경의 핵심은 장차 우리의 중보자이신 메시아가 오신다는 것입니다.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내용이 바로 이것입니다. 때가 되매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시고 그가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것을 기록한 성경을 우리에게 주시어 교회가 세워지게 하셨습니다. 교회가 이렇게 세워진 겁니다. 여기 학생들이 2층에 많이 왔다는데 예수님 제자들의 제자들이 또 그들의 제자들의 제자들이 뭘 말해 줄까요. 결국은 예수의 고난과 죽으심과 부활을 정확하게 전파를 할 것입니다. 오순절 성령을 보내주셔서 교회를 세우게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세워진 겁니다. 그 제자들의 제자들이 무엇을 말했을까요. 예수의 고난과 죽으심과 부활을 정확하게 전달했습니다. 그러면 또 그 제자들은 무엇을 말했을까요. 그들 역시 예수의 고난과 죽으심과 부활을 외쳤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교회사적으로 말하면 폴리캅 이후 어거스틴까지 430년을 보통 교부시대라고 합니다. 교부라는 말을 쉽게 말하면 교회의 어버이입니다. 초기 430년까지 귀한 교부가 많았습니다. 그걸 제가 오늘 다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 당시는 이단도 많았고 말하자면 이상한 운동들이 많아서 그것을 변증하기 위해 책을 많이 썼습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을 강해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저는 평생 50년 동안 여기에 매달렸습니다. 그래서 우리 칼빈박물관에는 폴리캅에서 어거스틴까지의 모든 자료들이 다 있습니다. 서양학자들도 와서 깜짝 놀랍니다. 어떻게 코리아에 이런 것이 다 있느냐는 것입니다. 저는 계속 칼빈의 자료를 영어로 출판을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세계 앞에 리더가 될 수 없습니다. 전부 영어로 집필해야 미국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에 우리가 앞장서서 선교할 수 있습니다. 당시는 박해가 너무 심해 예수 믿으면 죽였습니다. 어떻게 죽였는냐. 톱으로 켜 죽이고 기름 가마에 튀겨 죽이고 아주 잔인하게 죽였습니다. 왜 그렇게 됐느냐. 로마인은 로마가 최고라고 생각하는데 로마인들은 시저가 최고인데 예수쟁이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말하기를 지저스 크라이스트 이즈 더 킹 오브 킹스 예수 그리스도는 왕 중 왕이라고 합니다. 이러니까 로마의 가장 큰 걸림돌이 기독교인이 된 겁니다. 박해를 심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박해를 해도 죽지 않았습니다. 복음이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대전광역시 시장님이 와 계시는데 도로는 새로 닦고 난 다음에 아스팔트가 깔리는데 아마 옥천 가는 길 같은데 비포장도로가 있을 겁니다. 아스팔트 틈 사이로 풀이 올라옵니다. 왜 그렇습니까. 생명은 죽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복음은 생명이기 때문에 아무리 밟아도 죽지 않습니다. 아무리 박해를 하고 짓밟아도 복음은 죽지 아니하고 계속 퍼져나갑니다. 그때 313년 콘스탄틴 대제가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를 공인했습니다. 이제 로마인들이 우리는 망했다 말합니다. 전부 다 예수 믿어라 하니 말입니다. 여기서부터 옛날에는 박해받던 사람들이 교회가 오픈되니까 귀족들 요즘 말로 장군들 도지사 시장 고위층들이 전부 다 교회로 다 옵니다. 뿐만 아니라 옛날 이교도들 쉽게 말하자면 태앙신 숭배자들 그리고 여신 숭배하는 사람들도 다 교회 나오게 됩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을 안심시키려고 교회에다 여신상을 대신해 마리아상을 만든 겁니다. 여기서도 너희들 신앙생활 할 수 있다는 겁니다. 벽을 뚫어 빛이 들어오게 해 태양신을 여기서도 섬길 수 있다 했죠. 한마디로 비빔밥이 된 겁니다. 그러니까 혼합주의 종교가 된 겁니다. 성경이 아니고 이렇게 이방종교들하고 뒤섞이게 된 겁니다. 얼마나 오래 가느냐 8년 동안 그렇게 되니까 이건 완전히 사도들이 세운 예수님이 세우신 기독교하고는 관계가 없는 이방 종교 다른 종교 이걸 영어로 슈도 크리스티애니티 pseudo Christianity 라고 하죠. 가짜 기독교라는 겁니다... 가톨릭을 큰집 우리를 작은 집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기톨릭에 뿌리를 둔 종교가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 성경과 교부들의 신학에 근거한 종교임을 확실하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를 프로테스탄트 아니냐 하는데 그 용어도 절대 쓰시지 말기 바랍니다. 우리 오늘 집회 종교개혁이라고 했는데 자료를 아무리 뒤져도 루터나 칼빈이 종교를 개혁했다는 말은 단 한 줄도 없습니다. 교회를 개혁했다고 했지 종교를 개혁했다는 말은 없습니다. 다신교를 신봉하는 일본인들의 영향으로 그렇게 번역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개혁 500주년이라고 말해야 합니다. 면죄부는 대사(大赦)로 바뀌어야 합니다. 오백 년 전인 1517년에 종교개혁 시작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그보다 더 앞선 200년인 1300년경부터 개혁이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마르틴 루터가 교회개혁을 만천하에 알리게 된 것은 여러분 아시는 대로 1440년경 구텐베르크가 인쇄술을 개발했기 때문입니다. 매스컴이라는 게 참 놀라운 겁니다. 그것이 말하자면 95개조 요즘말로 대자보 붙였습니다. 그거 확 뜯어버리면 그만입니다. 그런데 당대에 유럽 공통어 라틴어로 인쇄되어 전달되었기 때문에 유럽이 뒤집어 진 겁니다. 당시 라틴어 이해 가능한 사람이 20퍼센트 가량이었다고 합니다. 그 사람들에게 95개조가 전달되어 역사기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이백 년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느냐.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 존 위클리프 교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당시 종교가 거짓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면서 영어로 성경을 번역했습니다. 교황 제도는 성경에 없는 거짓 제도라고 그는 비판했습니다. 면죄부는 사기라고 설교했습니다. 그리고 성상숭배는 우상숭배라고 질타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700년 전에 존 위클리프가 우상숭배는 안 된다고 외쳤습니다. 그는 죽은 지 30년 뒤 무덤을 파헤쳐 그의 뼈를 한 번 더 불에 태웠습니다. 그리고 갈아서 강에 뿌렸습니다. 다시 그것을 체코의 후스가 외쳤습니다. 프라하에 가면 베들레헴교회에서 설교 했습니다. 1415년 로마 교황청이 그를 장작더미 위에서 화형 시켰습니다. 그는 불더미 속에서 찬송을 부르며 옆의 지스카 장군에게 말하기를 ‘생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진리를 지키세요’ 한 마디를 남기고 순교했다고 합니다. 그로부터 백 년 후 그리고 지금부터 오백 년 전 마르틴 루터가 그 후스의 사상과 정신을 받아 교회개혁을 외치게 된 것입니다. 카톨릭이 믿는 신학과 신앙은 전혀 기독교가 아닙니다. 전혀 복음이 아니고 우리와 상관이 없습니다. 요한을 들먹이고 마리아를 말해도 예수님을 내세워도 철저히 거짓 기독교인 것입니다. 그것을 즉 가톨릭은 거짓 종교라는 것을 밝히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면 개혁을 외친 이후 어떻게 되었습니까. 마르틴 루터는 가슴이 뜨거운 사람이라 약점이 논리가 좀 부족합니다. 그러나 논리가 뛰어난 사람은 가슴이 뜨겁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십 년 뒤 칼빈을 준비해 두셨습니다. 칼빈은 스물다섯 나이에 모든 교회의 기초 교리의 근간 기독교강요를 집필했습니다. 그리고 이 년 뒤 스물일곱에 그것을 출판했습니다. 이것을 쓴 네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첫 째 칼빈은 어학의 천재였습니다. 히브리어 헬라어 라틴어 등에 능했습니다. 당대 최고의 학자였습니다. 그래서 루터는 성경 번역왕이고 칼빈은 성경 주석왕이라고 하는데 사실 칼빈은 성경 번역왕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성경번역도 라틴어로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학과 신앙의 기준은 오직 성경뿐입니다. 그러므로 개혁하는 교회가 새로남교회이고 개혁하는 노회가 서대전노회입니다. 두 번째 칼빈은 그것이 어떻게 가능했느냐. 성경을 깊이 연구하고 해박한 성경지식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칼빈은 독서광이었습니다. 그는 당시 폴리캅에서 어거스틴까지 구덴베르크 이후 인쇄된 방대한 책을 독파했습니다. 그는 단 한 번도 로마 가톨릭과 논쟁해 진 적이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칼빈은 레토릭 즉 수사학의 천재였습니다. 이것은 기원전 3세기부터 유럽에 유행했습니다. 신학과 신앙의 계보를 말씀드렸습니다. 여기까지 30분이 딱 됐습니다. (웃음) 약속은 지켜야 되는데 5분만 더 주십시오. 가 하시면 예 하십시요. (웃음과 박수) 벨직신앙고백서 하이델베르그교리문답 도르트신경 웨스터민스터신앙고백 등이 기독교강요를 근거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교회개혁이 이루어지자 카운터 리포메이션 즉 반동종교개혁이 대두합니다. 이것은 이그나티우스 로욜라가 일으켰습니다. 제슈이트 즉 예수회가 앞장서서 기독교와 성도들을 배멸하고자 하는 운동이었습니다. 우리와 같은 신앙을 가진 프랑스 신자들을 위그노라고. 했습니다. 위그노파 수장이 폴리니 제독이었습니다. 그런데 1572년 성 바돌로매 축일에 위그노 삼천 명을 죽였습니다. 프랑스 전역에서 두 달 사이 칠만 여명을 죽였습니다. 여러분 이거 아세요. 오늘 이 시간 ‘내 주는 강한 성이요’ 찬송하고 기념예배. 한번 드리면 될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솔라 스크립투라 성경대로 산다고 해놓고 우리가 지금 성경대로 살고 있습니까. 성경을 제대로 믿기나 합니까. 목사님들 설교가 미국의 번영 신학에 물들어 적극적인 사고방식을 가지면 된다는 건 복음이 아닙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고약한 사상에 오염되어 있습니다. 성경의 구속사적인 깊은 진리를 깨닫지 않고 인생은 내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생각하는 것은 복음을 믿는 게 아닙니다. 솔라 피데 오직 믿음으로만 삽니까. 솔라 그라티아 우리가 정말 하나님 은혜를 제대로 알고 있습니까. 솔루스 크리스투스 우리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높이고 있습니까. 솔리 데오 글로리아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립니까. 저는 이 메시지를 1977년부터 40년 동안 우리 교단 목사님들에게 외치고 발을 구르며 호소했지만 변화가 없다는 것입니다. 약속대로 제가 마치려고 합니다. 여러분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그리고 축복이 넘치시기를 소원합니다. 오늘 이 놀라운 밤을 통해서 교회와 교단이 새롭게 변화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박수) 오정호 목사가 사회석에 섰다. “순서를 바꾸어 합심 기도드리겠습니다.” 서대전노회원들의 주제 기도에 따라 새로남교회는 교회가 새로 나는 개혁의 기도로 뜨거워졌다. 새로남교회는 종교개혁 아니 교회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는 메달을 제작해 참석자 모두에게 나누어주었다.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그리스도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이 금색 동에 새겨져 있었다. 세계역사를 바꾼 칼빈의 기독교 교리 교범 ‘기독교강요’에 대한 칼빈연구소 원장의 소개는 정작 약했다. 종교개혁의 주제는 루터나 칼빈이 아니라 칼빈의 ‘기독교강요’에 대한 깊이 있는 소개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래야 그것에 정통하고 그 사상이 누구나 아는 믿음이 될 때 교회가 개혁되고 그 개혁을 유지하고 사회를 발전시킬 것이다. 진정한 칼빈주의자 위그노가 있는 곳이 그랬고 우리도 그랬던 것처럼... 2017-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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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MI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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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남 종교개혁 50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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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선교사와 미자립교회
- 중화권 선교사 언어훈련을 익힌 뒤 1997년 미국자치령에서 유창한 중국어로 교회 개척 100여명 출석 교회로 성장시켜 좋은 업적을 남긴 오정현 총회 목사가 되기 위한 절차를 다시 밟고 다시 시작해야 그 자리에 있는 것은 자유 모든 일은 기록과 역사에 남아 이번에는 정말 오만과 거짓 허울은 벗어야 그것은 김선규 총회장에게도 똑같이 적용돼 12월 6일 아침 카톡으로 메시지가 들어왔다. 평생 중화권 선교에 전념하는 K 선교사에게서였다. 안녕 하세요! ... 횃불신학교에서 “Conversion Study of the Chinese students in Korea :factors, process, and types”(한국의 중국 학생들의 회심 연구 : 회심의 요소들과 진행과 유형)이란 제목의 연구를 7년간 연구하고 금년에 은혜로 마쳤습니다. 미국 Pastoral Psychology(목회 심리학) 학술지 게재요청과 미국에서 책 출판 제안을 받았 습니다. 중국어로도 번역을 시작했습니다. 중국선교시대의 주인공이 될 해외유학생 사역에 조금이나마 기여하려고 시작했는데 근저이론으로 연구하는 후학들에게도 방법론에 도움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성원에 감사드리며 복된 성탄 되시기를 바랍니다!^^ K 선교사 드림 총회 파송 K 선교사는 2001년 공식적인 선교의 문이 닫혀있는 중국을 향한 효과적인 선교모델이 되어 주목을 받았었다. 그는 언어훈련을 익힌 뒤 1997년 선교지에서 유창한 중국어를 구사하며 “태평양 화인교회”를 세워 100여명이 출석하는 교회로 성장시켰다. 교회의 성도들은 낮에 무더운 작업환경 속에서 땀을 흘리는 노동자들이면서도 매일 저녁 교회에 나와 기도회에 참석하고 성경공부와 제자훈련을 받았다. K 선교사가 사역하던 지역에는 당시 2만여 명의 중국인들이 있었다. 이 지역은 미국의 자치령으로 무관세 및 물량 제한 없이 미국으로 수출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어 한국의 업체를 비롯해 대만 홍콩 미국 등의 약 40개 봉제업체가 진출해 수많은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중국 선교 열정에 불타던 K 선교사는 말했다. “그동안 중국 내에서의 선교만을 중국선교로 인식하려는 경향이 있고 중국 밖에서의 중국 선교는 매우 소외되어 왔습니다. 중국 개방 이후 수많은 근로자와 유학생 및 이민자들이 전 세계로 진출하고 있어 우회적이기는 하나 저들을 통해 직접 중국 선교의 효과를 크게 도출해 낼 수 있습니다.” 20여년의 세월이 흘러 2016년 현재 K 선교사는 99년간 화교들의 마음과 정신을 위로해 온 터전 인천에서 교회를 7년간 섬기고 있다. 현재 인천에 사는 화교들은 3천 명 정도로 추산한다. 이들 중 인천 차이나타운에는 5백 명 정도가 모여 산다. 30~60년대까지만 해도 차이나타운과 신포동에 사는 화교 수가 2만 명이 넘었다. 이들은 130년 전 인천항을 통해 인천에 들어왔고, 사업이나 상업에 종사하면서 인천에 뿌리를 내렸다. 외국이라는 이질적 환경에 적응 하고 정착해야하는 어려움에 처해 있어 이들에게도 정신적 위안이 필요했다. 중국 북성동 차이나타운 안에 있는 교회는 이런 배경에서 탄생했다. 그 교회는 99년간 화교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면서 오늘을 잇고 있다. 인천 유일의 그 교회는 1917년 설립되어 99년째를 맞고 있다. 국내 7개 화교교회 중 하나인 이 교회는 100여 년간 한 자리를 지키면서 한국사회에 동화되지 못한 채 살아온 중국인들에게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하는 정신적 위안을 주는데 힘을 써왔다. 인천 중구 북성동 3가 5에 위치한 이 교회는 서양 감리교 선교사인 맥클라렌 여사와 중국인으로 기독교 신자인 손래장((??章)씨가 1917년 6월 1일 개인집을 예배당으로 임대해 화교들을 대상으로 포교를 한 것이 시초다. 현재 인천의 유일한 중국교회인 이 교회는 세계의 중화인의 선교 본부로 일을 하기 위해 인천의 새 개발지역으로 옮길 계획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사실은 2015년 당시 부총회장 김선규 목사와 혼탁한 것을 맑게 바꾼 GMS 이사장 김재호 목사와 이 교회를 방문해 들었다. 이제 총회장이 된 김선규 목사는 세계선교보다 국내미자립교회 후원을 위한 밑 빠진 독 채우기 사업에 자기 코가 석자인 오정현과 매진할 모양이다. 오정현은 불완전한 서류만으로 총신을 입학하고 졸업한 사실이 드러나 훌륭한 업적이 있음에도 총회 목사 자격이 있느냐의 문제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게다가 그는 편목과정을 이수하는 과정에서 조차 출석이나 시험을 치른 적도 없다고 한다. 그럼에도 부산 동아대 출신의 총신 교수 김정우는 세 과목의 출석과 학점을 이화여대의 최순실 딸 담당 교수처럼 출석 참석 체크도 해 주고 점수도 다 주었다고 한다. 이 점에 대해 사랑이 많은 사랑의교회 관계자에게 이래도 되느냐고 물었더니 이런 대답을 들었다. “비난받을 일이긴 하나 책임질 일은 아닙니다.” 나 자신도 총회 전도국장 8년을 지낸 경험이 있는 사람이다. 예나 지금이나 또 앞으로도 미자립교회 문제는 그 교회 교역자의 자질과 기도의 문제이지 돈이 모자라 자립하지 못한 것이 아니다. 더욱 기막힌 사실은 전도국장 재직 시 통계를 낸 미자립교회에 대한 자립 교회의 후원 현황에는 교회 자립보다는 후원금 챙기는 데 발군의 실력을 발휘한 미자립교회 목사들이 아주 많은 게 드러났다. 그 자료를 당시 돈 뿌리고 당선된 길자연에게 보여 주었더니 거들떠보지도 않고 총회장 공약으로 내세운 농어촌 교회 후원금을 한 푼도 내지 않은 채 총회 돈으로 지금도 못 쓰고 있는 염곡동 부지를 많은 의혹 가운데 사들이는 데 혈안이었다. 그렇듯 그는 투자한 것 이상으로 돈을 거둬들이는 데 탁월한 재능을 보이는 걸물(傑物)이다. 그런 그의 재주 덕인지 총신 음악과 교수 채용 이력서 하나가 결재를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그것은 길자연을 닮아 부친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전 칼빈대 교수 길한나의 것이라고 했다. 총신 음악과 교수가 김영우 사퇴 시위가 한창인 2016년 11월 총신 로비에서 격한 음성으로 그 사실을 들려주었다. 길자연은 사임 압박을 받고 있는 그 와중에 그의 잔여 임기 후임자 김영우와 자신의 딸 임용 문제에 대해 무슨 말을 나누고 이력서를 내게 했을까. 미국 대통령의 임기는 4년이다. 그런데 취임 후 6개월 안에 해야 할 일을 처리하고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면 나머지 대통령 임기를 허송하게 된다고 한다. 총회장의 임기는 1년은커녕 10개월 남짓이다. 그러므로 임기 시작 3개월 그러니까 12월 안에 처리할 일과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면 그걸로 신년과 부활절과 목사장로기도회를 치르는 것으로 끝날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12월 8일 총회회관에서 교회자립개발원(이사장 오정현) 창립감사예배를 드리고 교회자립개발원 사무실은 총회본부 사무국 안에 두고 사무국 총무까지 선임할 모양이다. 그간 총회는 총회 운영의 비효율을 개선하기 위해 구조조정을 단행해 오고 있다. 그런데 또 다시 다른 조직을 총회 안에 두고 총무 급 인원을 채용할 모양이니 총회장이 제 정신인지 고개가 흔들린다. 이런 비효율과 비리의 파행을 우리는 오랜 세월 총회선교국에서 떨어져 나간 GMS를 통해 보아왔다. 총회전도국이 있는데 무슨 이유로 또 독립된 기구와 안원이 필요한가. 김선규와 오정현은 자기 코가 석자인 자기들 교회나 제대로 자립하기 바란다. 두 교회 다 많은 부채로 허덕이고 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김선규와 오정현은 중화권 선교의 일인자 K 선교사와 개척 미자립교회 성장의 산 증인 총회 뉴 스파크 권순웅 목사나 유쾌한 목사 소강석에게서 조언을 듣기를 바란다. K 선교사는 중국교회 발전을 위해서는 송도로 이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옛날엔 개항지가 인천항이었기에 중구 차이나타운이 인천의 중심이었지만 지금은 송도가 제2의 개항지로 부상하고 있다는 것. 현재 송도에는 200여개의 교회가 있지만 중국교회는 하나도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송도에 중국교회가 있어야 할 이유로 중국 유학생과 송도신항이 생기면서 크루즈를 타고 인천으로 들어오는 중국관광객들의 증가를 들었다. 또 인천글로벌캠퍼스 뿐만 아니라 연세대 인천대 중국학술원 등에 이미 중국 유학생들이 많이 다니고 있고 앞으로 칭화대가 들어올 예정이기 때문에 중국교회가 하나쯤은 이곳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2017년이면 중국교회 건립 100주년이 된다. 100주년을 맞아 송도에 중국어로 예배를 드리는 예쁜 중국교회가 생기면 중국관광객은 물론 유학생들이 자주찾는 명소가 되고 교회 발전의 발판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K 선교사는 현재 중화기독교교회와 송도국제도시 내 종교부지의 맞교환을 제안했다고 한다. 현재 북성동 인천중화기독교 교회의 예배시간은 일요일 오전 10시 30분 중국어 설교, 오후 2시 한국어 설교로 이뤄지며 주말에만 동시통역으로 진행된다. 수요일은 오전 11시 예배 및 기도회, 금요일 저녁 9시부터 기도교회가 열린다. 이제 총회장이 되었으니 약속한 대로 그 교회를 다시 찾아 선교의 정신을 다시 다듬기를 바란다. 그리고 오정현은 무슨 일이든 총신 출신이 아니니 총회와 관계된 일을 맡으면 안 된다. 제발 좋은 자질과 좋은 풍모를 지녔고 그에 어울리는 좋은 업적을 남긴 오정현은 총회 목사가 되기 위한 절차를 다시 밟고 다시 시작하고 그것에 대한 사과를 박근혜 대통령만큼이라도 해야 할 것이다. 말이 난 김에 하는 말인데 사실 박근혜 대통령은 “비난받을 일이긴 하나 책임질 일은 아닌” 일로 탄핵까지 받은 처지다. 오정현이 총신 졸업 의혹을 안은 채 그 자리에 있는 것은 자유이나 모든 일은 후일 다 기록과 역사에 남으니 명심하기 바란다. 그래서 이번에는 정말 오만과 거짓 허울은 벗고 제대로 바로 하길 바란다. 그것은 김선규 총회장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일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내년 제102회 총회는 늘 그렇듯 순식간에 당도할 것이다. 살아 있으면 어김없이... 2016-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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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선교사와 미자립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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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 진주방송 개국
- 그는 요령을 흔들어 돈 200원을 받으면 어머니를 기쁘시게 하려고어머니에게 갖다드렸다 그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전 세계와 전국의 교회를 누비며 온 마음과 몸과 뜻 그리고 돈까지 다해 복음을 전해 진주소싸움은 삼국시대 전쟁에서 승리한 전승(戰勝)기념 잔치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을 정도로 그 유래가 깊다. 예전에는 진주의 "큰판(소싸움)"은 남강 백사장이었다. 소싸움이 벌어지는 며칠 동안은 싸움소가 일으킨 뿌연 모래 먼지가 백사장을 뒤덮었으며, 수만 군중의 함성은 하늘을 찔렀고 수백 개의 차일(遮日)이 백사장을 온통 뒤덮었다고 한다. 진주라 천리 길이 대진고속도로 개통으로 짧아진 시간 덕에 새에덴교회 봉고차로도 4시간만에 진주성남교회에 도착했다. 김문기 장로는 차 안에서도 복음송 반주를 들으며 노래연습을 했다. 성남교회에서 추천하는 진주산청각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값은 싸고 음식은 풍성하고 맛났다. 2016년 11월 17일 저녁 7시 30분 진주성남교회(양대식 목사)에서 소강석 목사의 부흥집회가 아니라 경남CBS진주방송 개국감사예배가 있었다. 윤기화 장로(경남CBS본부장)의 사회로 시작된 예배는 허영학 목사(동진주교회/설립추진위원장)의 개국감사 인사 기도 황성진 장로(진주삼일교회/설립추진부위원장) 경남CBS권사합창단의 합창이 박정렬 권사 지휘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렸다. 전도에 헌신적인 소강석 목사는 본문 사도행전 16:6-10을 근거해 “이 세상의 유일한 소망 예수”를 열정적으로 전했다. 그는 메시지를 전하는 가운데 하모니카를 불기도 하고 상여가 나갈 때 喪輿꾼들이 뒷소리를 받아 하는 요령을 요령잡이처럼 능숙하게 흔들기도 했다. 소강석 목사는 상여꾼들이 상여를 메고 가면서 부르는 구슬픈 상엿소리를 요령을 흔들며 불렀다. 요령은 강대상 밑에 준비되어 있었다. 어이~야 디이~야 이~제~가면 어~디~가나~어이~야 디이~야 아멘은 아무나 하나 노래하며 아멘을 유도하고 서편제 창도 구사하는 그의 다양한 몸짓과 소리와 메시지에 회중은 넋 놓고 빠져들었다. 그의 하모니카 재주는 형의 등 너머로 배운 것이고 요령잡이는 초등학교 시절 그의 어머니를 기쁘게 하기 위한 알바였다고 한다. 그가 요령을 흔들면 동네 어른들이 그에게 수고비를 주었던 모양이다. 그는 그 돈을 받으면 어머니에게 갖다드렸다고 한다. 이제 그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전 세계와 전국의 교회를 누비며 온 마음과 몸과 뜻 그리고 돈까지 다해 복음을 전한다. 건강까지 해칠 정도로 걱정스러운 그의 복음의 열정을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하나님께서 그를 지켜주시기를 바라고 다만 기도할 뿐이다. 2016-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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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 진주방송 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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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 제일 미션스쿨 숭일학원
- 숭일(崇一)이라는 학교 이름은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는 학교라는 의미 광주지방 최초로 근대문화를 접할 수 있었던 곳 배유지 목사가 설립한 학교 하나님의 나라 일꾼을 양성하는 학원이 되도록 제 모든 역량을 다 할 것 1895년 2월 12일 오세아닉(Oceanic)호를 타고서 샌프란시스코 (San Francisco) 항을 출발하였던 배유지 목사 부부는 2개월 여의 여행을 마치고 1895년 4월 9일(화요일)에 서울에 도착하였다. 광주지방 최초로 근대문화를 접할 수 있었던 곳은 배유지 목사가 설립한 두 남녀미션학교였다. 1908년 교육의 중요성을 느낀 배유지 목사는 자국 선교부의 협력을 얻어 양림동에 최초로 고층 건물을 신축하였다. 1908년 고종 황제로부터 숭일(崇一) 고등 소학교로 인가가 나자, 설립자 배유지 목사는 1909년 광주시 양림동 66번지에 종각이 있는 3층(지하실 포함)으로 된 학교 건물을 착공하여 이듬해 1910년 여름에 완공하였다. 그리고 그때까지 배유지 목사의 사랑방에서 가르치던 학생들을 새 건물로 옮겨 서구식 학교의 면모를 갖추고 성경, 영어, 산술, 법제, 역사 등을 가르쳤다. 숭일(崇一)이라는 학교 이름은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는 학교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광주 숭일학원이 자리하고 있는 일곡지구는 북구 일곡동과 삼각동의 일부가 포함된 지역을 말한다. 광주광역시 북구 모룡대길 40 일곡동에 가면 숭일학원의 광주 숭일고등학교가 있다. 일곡지구에서 가장 인기 있는 학교는 숭일고다. 광주광역시에서 또 다른 교육특구로 꼽히는 일곡지구에 있는 살레시오고는 2007학년도에 서울대 입학생을 6명 배출했고 숭일고의 경우 7명의 서울대 입학생을 배출했다. 국제고 6명, 고려고는 5명의 서울대 입학생을 배출했다. 특히 숭일고의 경우 올해 2016년 서울대(6명), 연대(4명). 고대(5명), 이화여대(5명), 사관학교(8명), 한양대 (26명 중 의예과 6명)을 보냈다. 2013년 3월 26일 제 18대 이사장에 한기승 목사(광주 신일교회 담임) 취임 이후 숭일학원의 양과 질에서의 괄목할 발전을 꾀하고 있다. 그는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의 확충과 우수 교사의 보완과 근속 교사를 우대함으로 학생들과 교사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남장로회 선교사 배유지 목사가 세운 숭일학원이 이제 108주년을 맞이했다. 그 건학이념과 신앙을 계승하려 힘쓰는 이사장 한기승 목사는 학생과 교사들의 신앙 성장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수업이 시작되기 전 반마다 설치된 TV에 윤형주 작사 작곡의 경쾌한 숭일의 노래가 2분간 흐르면 학생들은 아침 경건의 시간을 준비한다. 10분간 드리는 아침의 경건은 찬송과 성경봉독과 설교로 학생들의 마음과 정신을 하나님 중심으로 바꾼다. 그리고 수요일마다 오전 11시 40분부터 12시 40분까지 1시간 동안 전교생이 모여 예배를 드린다. 가정 형편이 어렵거나 집이 너무 먼 학생들을 위한 기숙사 시설과 지원은 전국 최고다. 남학생 30명 여학생 50명을 수용하는 기숙사는 비용이 11만 5천원으로 저렴해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와 생활 안정에 큰 도움을 주고 있는 숭일고의 자랑이다. 냉난방 시설, 샤워 시설, 급식 환경 등이 전국 최고의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광주 숭일고등학교의 서글서글한 임인호 교장은 숭일고의 비전을 이렇게 밝힌다. 1907년 배유지 선교사가 설립한 광주 최초의 사학 광주숭일고등학교는 기독교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겨레와 인류사회에 이바지하는 인재를 기르는데 100여년의 세월 동안 공헌을 해왔습니다. 앞으로도 광주숭일고등학교는 학생들이 사랑하는 학교,학부모와 지역사회가 신뢰하는 학교, 교사들의 자존심과 자긍심이 지켜지는 학교로 거듭나면서 세계무대에서 활약할 유능한 인재양성이라는 시대적 책무를 다할 것을 약속합니다. 학생들이 인사가 밝고 왕따가 없는 숭일(崇一) 학원 학생들은 수업 마지막 끝 종이 울리면 책들을 차곡차곡 가방에 넣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 외운 성구 한 절 오늘 배운 찬송 한 곡 오늘 드린 기도로 불룩한 책가방을 들고 교실 창 밖을 보면 벚나무에 새 한 마리가 앉아 유일하신 하나님의 영광과 2016년 2월 5일 제65회 졸업식(365명 누계: 24,322명)의 기록을 을 노래할 것이다. 108년의 역사와 전통이 있는 호남의 명문 숭일학원의 제 18대 이사장으로서 세워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본 학원의 건학이념과 미션스쿨의 정체성을 지켜 학원복음화에 앞장서는 것은 물론이고, 지역사회와 민족중흥, 나아가 인류번영에 이바지하는 학원으로 발전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사장의 직무를 수행함에 하나님의 은혜와 동료 이사님들의 협력, 그리고 교직원 여러분들의 헌신이 합쳐지면 우리 학원은 국내 최고의 학교로 우뚝 설 것이라 확신합니다. 학교법인 숭일학원 이사장 한기승 2016-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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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MISSION
- G.MI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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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 제일 미션스쿨 숭일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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쉐마학당 설립자 설동주 목사
- 부모가 아이를 가르치는 ‘쉐마교육’ 다음세대의 교회교육 대안신약의 지상명령이 복음전파라면, 구약의 지상명령은 신앙전수부모가 자녀들의 신앙교육을 책임쳐야 부모와 아이들과의 소중한 데이트 시간-쉐마학당 전두환 시절 1984년 5월 1일 개원한 과천시 막계동의 서울대공원보다 4개월 앞선 1월 7일 과천시 별양동 43-3호 지하에서 설동주 전도사(총신 87회)가 과천약수교회 개척을 시작했다. 2000년 10월 31일 별양동 18-17의 주택을 매입하고 개척 23년만인 2006년 12월 24일 새성전을 완공하고 입당을 했다. 설동주 목사가 유대인의 쉐마교육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2010년 과천약수교회 교육부서가 처한 상황 때문이었다. 당시 설 목사는 여느 목회자들처럼 주일학교와 중고등부서가 줄어드는 현상을 고민했다. 지원을 하고 노력을 해도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다. 어느 날 교육부서 재정사용 내역을 본 설 목사는 교육부서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그는 그것을 이렇게 말했다. “교육부서 재정의 60%를 먹이고 노는데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아이들 간식비와 놀이기구 대여비 등에 많은 재정이 들어가고, 실제 성경을 가르치기 위한 교육은 시키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다음세대를 위한 교육 방안을 찾기 시작했고, 유대인의 자녀교육 방법인 쉐마에서 대안을 발견한 것입니다. 신약의 지상명령이 복음전파라면, 구약의 지상명령은 신앙전수입니다. 그러므로 부모가 자녀들의 신앙교육을 책임쳐야 합니다.” 이같은 교육 철학에 근거하여 설동주 목사는 2011년부터 교회 내에 쉐마학당연구원을 설립하여 교육프로그램을 가동해 왔다. 쉐마학당연구원의 프로그램은 교회와 함께 학부모가 자녀의 신앙교육을 책임지는 총체적 신앙교육으로써 이 프로그램의 기본은 부모와 자녀의 친밀한 대화에 있다. 쉐마 이스라엘(이스라엘아 들으라)는 신명기 6:4-9, 11:13-21, 민수기 15:37~41에 나오는 성경 구절인데 쉐마는 히브리어로 ‘들으라’는 뜻이다. 유대인들이 매일 아침저녁으로 예배 때에 읊는 기도 구절이다. 이스라엘 사람의 하나님에 대한 열렬한 믿음과 사랑을 표명하는 세 절(節)로 되어 있고, 유대교 신앙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유대인들에게는 아이들에게 이러한 내용을 가르치는 것이 의무로 규정되어 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라는 쉐마를 통해서 받는 교훈은 예배의 대상자는 오직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은 유일하신 분으로서 우리의 구원자이시고 우리의 주권자이시라는 것을 교훈하고 있다. 학당(學堂)은 고려 말기부터 설치되었던 학교이다. 이 제도는 중국에도 없었던 것으로 고려 말 유학 진흥의 현실적 요청에서 설치하여 조선 시대에 발전을 보았던 기관이다. 조선에 들어와서도 고려의 제도를 답습하여 서울을 동·서·중·남·북의 5부로 나누고 여기에 각각 학교를 하나씩 설치하여 5부 학당이라고 하였다. 처음에는 학사(學舍 : 학당 건물)가 없어서 대부분은 사원(寺院)을 이용하였으나, 1411년(조선 태종 11)에 처음으로 남부 학당이 세워지는 것을 계기로 이후 나머지도 모두 건물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북부 학당(北部學堂)은 여러 차례 설치하려고 하였으나 끝내 설치를 보지 못하고, 1445~6년(세종 27~8)경에 폐지되어 4부 학당(四部學堂)만이 존속을 보았다. 보통 이를 4학(四學)이라고도 한다. 학당의 입학 자격은 양반과 서인의 자제로, 학령(學令)은 소학(小學)으로 정하여, 입학하면 소학부터 암송케 했으며 5일마다 시험을 치렀다. 예조에서는 달마다 시험을 치르고, 1년의 성적을 왕에게 보고하였다. 성적이 우수한 생도는 성균관에 진학시키는 것이 교육 목표였으나, 때로는 학당에서 생원시(生員試)·육월회시(六月會試)·알성시(謁聖試)를 통하여 직접 생원·진사시의 회시(會試)에 갈 수도 있어서 뚜렷한 계통은 없었다. 학생 수는 백 명이었다. 임진왜란 때 학당이 불타서 그 뒤 다시 건물을 세웠으나 학생 수가 격감되어 사실상 유명무실하게 되었다. 고종의 대한제국에서도 공립교육이 부진하자 외국인이 사학(私學)을 세웠을 때 이 이름을 따라 배재학당·이화학당이라고 했다. 이들은 후에 학교로 개칭되었다. 설동주 목사가 자녀 성경교육을 위해 창시한 세계 유일의 쉐마학당 이름은 이스라엘과 조선의 학교 명칭이 합쳐진 유래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2010년 4월 9일 시작한 토요쉐마학당을 2016년 2월 20일 참관했다. 36가정이 참여한 성경공부와 행사는 놀랍고 감동적이었다. 다른 두 교회에서도 참관을 했다. 사무실에서 차를 한잔 나누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들은 언제부터 성경을 외울 수 있나요. 5세까지는 뇌 구조가 악기라든가 공을 가지고 노는 게 좋고 6세부터는 언어 훈련쪽으로 들어가니까 외우는 것이 가능합니다. 그 때부터는 뇌구조가 암송을 받아들이기가 좋게 되어 있어요. 강의할 때 뇌에 대한 것부터 다 말합니다. 몇 살부터 언어를 습득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을 강의합니다. 3살 이전에는 뇌의 형성이 80프로 된답니다. 5살되면 90프로 6세부터는 100프로 됩니다. 중교등부 때는 외우려고 하지를 않습니다. 사춘기이기 때문이죠. 후두엽이 발달하기 때문에 연예인들 사진을 집에 붙이는 겁니다. 자라면서 뇌의 발달 시기에 따라 아이들이 사는데 부모들은 놀래 쟤가 뭐가 될 거냐 하는 겁니다. -전두엽 때는 그런데 관심이 없는 거군요. 전두엽 때가 가장 좋은 때인데 게임가지고 놀아버리면 전두엽이 망가져 버립니다. 사람을 죽일 수 잇습니다. 죽이는 것만 하니까요. 게임으로. 그래서 게임 중독 아이들이 56만 명이라는 겁니다. 일본 사람들이 쉐마를 무척 좋아합니다. 그들은 매뉴얼화 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사람들은 함부로 안 해요. 이번에도 일본의 그리스도 교단이 가장 큰데 총회장이 왔어요. 미국에서 공부한 아들과 딸도 데려왔어요. 자기 교단에 실시하려고 말입니다. -어떻게 그들에게까지 알려지게 됐죠. 어쨌든 한국 쉐마가 어떤 루트를 통해서인지 그들에게도 알려진 겁니다. 일본에서는 센세이셔널한 모양입니다. 그들 이야기가 부산에 있는 수영로교회의 정필도 목사에게 교회 성장을 배우러갔더니 다음 세대를 위해서는 쉐마를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는 거예요. -정필도 목사가 교훈을 주는 게 있습니까. 교회 성장에 대해 외국인들에게 전하는 세미나가 있는 모양입니다. 여러 군데서 강의 요청이 와서 여기저기 갑니다. 이번에 327명이 등록해서 사랑의교회 안성수양관에서 제 강의를 들었습니다. 수양관 지배인이 그래요. 제일 많이 모였다고. 요즘 사람들이 잘 안 모인대요. 제자훈련보다 더 많이 모였대요. -수강료가 얼마죠. 2인실은 29만원, 6인실은 25만원입니다. -교회에서 얼마나 지원이 됩니까. 지원 없습니다. 그거면 되니까요. 오히려 거기서 남는 이익금을 우리 노회 어려운 교회에 100만원씩 지원했습니다. -몇 교회나. 열 교회를 돕습니다. 그리고 2월 21일 3부 11시 주일예배를 과천약수교회에서 드렸다. 예배 후 설동주 목사를 만났다. -예배 분위기가 성경 중심적입니다. 우리는 성경 구절을 영상으로 띄우질 않아요. 찬송가 가사만 띄우죠. -네, 참 좋은 것 같습니다. 말씀을 영상으로 띄우면 아무도 성경을 펼치지 않아요. 그렇게 습관이 들어 성경으로 말씀을 보지 않으면 잊어버려요. -그런 관행을 여러 교회에 전하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저희 교회 특징 가운데 매일새벽기도회가 네 번 있고(1부 5시 20분, 2부 6시, 3부 7시, 4부 8시), 매일저녁9시기도회가 있고 9그리고 저희는 주일저녁예배가 있다는 게 좋아요. 주일 저녁예배를 드려 보면 분위기가 너무 좋아요. 새벽 예배, 낮 예배 저녁 예배 분위기가 각기 틀려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하여튼 새벽에는 정말 차분하고 저녁에는 저녁 나름대로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 은혜가 달라요. 한국교회 저녁 예배가 없어지고 있어요. 다 오후 예배를 드리죠. 그런데 저희 교회가 저녁 예배를 드리니까 다른 교회 교인들도 참여하는 사람이 많아요. -심령이 갈급하고 허전해서 그렇겠죠. 그렇죠. 저희 저녁 예배 특징 가운데 하나는 아이들이 성가대에 서요. 아이들이 엄마 따라 쉐마학당하다 보니 그렇게 되더군요. -말씀만 가르치는 박영선 목사의 남포교회 가보니까 삼일 저녁인데 아래위로 꽉 차요. 모니터도 없어요. 그리고 성경만 가르치는 겁니다. 2층에만 티비 모니터 하나 있어요. 그런 이야기가 한국 교회에 전달이 돼야 합니다. 그래서 쉐마학당을 배우러 온 이들에게 가장 먼저 할 일은 목회자의 의지가 제일 중요합니다.. 다시 말해 쉐마교육을 실시하기 위해서는 ‘목회자 자신이 준비’가 먼저 되어야 합니다. 쉐마교육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프로그램만 따라하면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제9기 쉐마학당 세미나 스케치 쉐마학당연구원이 주최한 제9기 쉐마학당세미나가 지난 2월 15일(월)부터 17일까지 사랑의교회 안성수양관에서 열렸습니다. 그동안 9기까지 진행되어 오면서 많은 목회자들과 교육 종사자들의 관심을 받아온 쉐마학당 세미나였지만 이번 세미나만큼은 어느 때보다 짧은 시간에 많은 인원이 등록하였다. 무려 327명이나 되는 분들이 등록했다. 세미나 당일 오후 1시부터 시작된 접수는 금세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등록자들로 인해 붐볐지만 과천약수교회 성도들로 이루어진 접수팀과 안내팀의 도움을 받아 순조롭게 접수가 진행되었다. 접수팀과 안내팀뿐 아니라 간식팀, 의전팀, 도서팀, 중보기도팀, 차량봉사팀 등으로 이루어진 과천약수교회의 세미나 도우미들은 능숙한 솜씨로 세미나에 참가한 분들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였다. 수양관 직원이 쉐마학당 세미나 주강사로 섬기고 있는 쉐마학당연구원장 설동주목사(과천약수교회 담임)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이곳에서 수많은 세미나가 열리지만 쉐마학당 세미나만큼 많은 분들이 참여하는 세미나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쉐마학당 세미나 기간에 우리 직원들은 할 일이 별로 없습니다. 과천약수교회에서 오신 많은 봉사자들이 섬겨주셔서 직원들이 해야 할 일이 거의 없습니다.” 첫날 강의는 쉐마교육이 이 시대에 왜 필요한지에 초점을 맞추었다. 2천년 세계교회사 속에서 왜 한때는 부흥했던 교회들이 세대를 거듭하면 소멸되는지, 그리고 현재 한국사회의 청소년문제는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영상을 곁들인 강의를 통해 문제의식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하나님의 명령인 쉐마교육이 결국 해법임을 제시하기 위한 사전 토양작업이었다. 저녁 9시까지 진행된 첫날 일정에 멀리서 오느라 피곤하고 지칠 법도 한데 세미나에 참가한 분들은 하나라도 더 담으려고 신경을 곤두세우고 필기하느라 바빴다. 둘째날 강의는 ‘쉐마교육과 뇌 발달’이라는 강의로부터 시작되었다. 쉐마교육이 무엇인지, 그리고 각 교회에서 쉐마교육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을지에 초점을 맞추고 둘째날 강의는 진행되었다. 이날 오후에 고려대학교 심리학과 한성렬교수의 특강이 있었다. 심리학자로서 쉐마교육이 이 시대에 왜 필요한지, 그리고 쉐마교육이 어떻게 한국교회 다음세대 문제의 대안이 되는지 학자의 입장에서 설득력 있게 제시하였다. 첫째날과 둘째날 많은 강의가 있었지만 중간 중간에 간증 및 사례발표의 시간도 있었다. 교사 간증과 학부모 간증, 그리고 쉐마교육을 모범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은진교회의 사례발표가 세미나에 참가한 분들에게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었고, 실제적인 도움을 제공하였다. 이뿐 아니라 쉐마학당이 실제로 진행되는 것과 똑같이 쉐마학당에 참여하고 있는 가정이 나와 시연하는 시간도 있었다. 시연을 통해 쉐마학당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그리고 부모가 자녀에게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는지 실제적인 이해를 높이는 시간이었다.마지막날 마지막 강의 시간에는 ‘쉐마교육 매뉴얼’이라는 제목으로 쉐마교육의 시작과 진행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하면 좋은지 매뉴얼처럼 정리해서 전달해주었다. 세미나에 참여한 분들에게 실제적인 도움을 주는 강의였다. 마지막날 마지막 강의 때까지 세미나에 끝까지 참여한 분들이 대부분이었고 강의를 듣는 분들의 몰입도가 끝까지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었다. 모든 강의를 마치고 폐회예배 때 다함께 부른 ‘부흥’ 찬양은 많은 사람들을 흐느끼게 했고 회개하게 했다. 그동안 하나님이 기성세대에게 맡긴 다음세대에 관한 책임을 다하지 못한 죄를 회개하고, 가정에서도 하나님이 자녀를 부모에게 맡겨주셨는데 그들의 신앙에 관한 책임을 다하지 못한 죄를 자복하는 시간이었다. 2박 3일간 진행된 쉐마학당 세미나는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주관하심 속에서 많은 분들에게 새로운 깨달음과 도전을 준 세미나였다. 토요쉐마학당 체험기 아이들과의 소중한 데이트 시간-쉐마학당(과천약수교회)주 동 진 처음 아내에게 약수교회에서 쉐마학당을 시작한다는 말을 들었고, 가족이 함께 참여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의무감에 신청서를 제출하였다. 그 때까지만 해도, 유일하게 집에서 쉴 수 있는 토요일 오후를 반납해야 한다는 아쉬움과 더불어 아이들의 신앙 교육에 참여해야 한다는 아버지로써의 무거운 의무감에 눌려 썩 즐거운 마음만은 아니었다. 또한 아이들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잠깐의 주말 시간을, 아빠로서 아이들에게 유쾌하고 즐거운 시간으로 채워주고 싶은 마음이 더 컸기에 토요일 오후의 쉐마 교육 시간이 썩 내키는 것은 아니었다. 또 한편으로는 언제 응급 수술이 발생해서 불려나갈지 모르는 상황 때문에 스스로에게 ‘내가 얼마나 꾸준히 많은 시간을 아이들에게 할애할 수 있겠나?’ 싶어 선뜻 쉐마학당이라는 곳에 발을 들여놓기가 꺼려졌던 것이 사실이다. 신청서를 내 놓고 까맣게 잊고 지내던 중에, 전날의 응급수술로 지친 몸을 이끌고 토요일 오후 집에 돌아오니 쉐마학당에 가야 할 시간이라고 아내가 분주히 아이들 외출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지친 몸과 마음으로 별 기대감 없이 쉐마학당의 첫 시간을 맞이하였다. 첫 날은 미국의 유태인들이 토요일에 회당에 모여 함께 탈무드와 모세오경을 공부하는 영상을 먼저 보여주셨다. 여러 테이블이 놓여있고 각 테이블 마다 가족 단위로 모여 일대일로 탈무드를 공부하고 토론하는 모습을 보면서 유태인들의 저력의 근간이 무엇인지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2000년 전 열두 살의 예수님도 그 부모가 애타게 찾는 줄도 모른 채 저렇게 예루살렘 성전에서 랍비들과 토론하고 있었을 것만 같았다. 영상물 상영 이후 담임 목사님의 쉐마 학당에 대한 비전에 찬 눈동자와 목소리를 느끼면서 이것이 그냥 형식적으로 진행하는 일회성의 행사가 아니라는 분위기가 온 몸으로 전해졌고, 앞으로의 쉐마 교육이 기대되기 시작하였다. 모태신앙으로 어려서부터 너무나도 익숙하게 접해온 성경, 그와 관련된 수 많은 공부와 제자교육, 전도 훈련…. 첫 주에 시작될 교안을 받아 들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내가 아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나의 이러한 교만함은 그 다음주부터 시작된 쉐마 학당의 첫 시간부터 여지없이 무너졌다. 여섯 살 배기 큰 딸과 이제 막 두 돌이 지난 둘째, 그리고 태어난 지 두 달 밖에 안된 막내를 데리고 쉐마 학당을 시작하였다. 막내는 아내의 무릎에 누워 잠을 청했고, 주로 큰 아이와 둘째 아이를 대상으로 되도록 쉬운 언어로 표현하려고 노력하였지만, 꼬마 숙녀들과 성경을 함께 읽고 천지창조의 과정을 토론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주위를 둘러보았더니 대화와 토론이 가능한 나이의 아이들은 제법 진지하게 부모들과 토론도 하고 성경도 함께 읽는 모습이었다. 그러한 분위기 때문이었는지, 그래도 고마운 것은 몸을 베베 꼬면서도 1시간 30분 가량의 긴 시간 동안 꾹 참고 아빠의 말을 들어준 우리 집 꼬마들이다. 두 번째 주의 십계명에 관한 토론은 나를 더욱 힘들게 하였다. 시중에 나와 있는 많은 영상 자료들을 동원해 볼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지만, 아버지의 말이 아이들의 상상력을 통해 머리 속에 새겨지고 오직 순수한 말씀으로 채워지는 것이 쉐마 학당의 진정한 목적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순간의 편의를 위한 도구는 사용하지 않기로 하였다. 수 천년 동안 그 똑똑하다는 유태인들조차도 멀티미디어를 활용하지 않고 과거의 전통대로 말씀을 상고하고 묵상하고 토론하는 모습에는 이유가 있었으리라. 그러다 보니 많은 내용을 깊이 있게 다루지는 못하게 된다. 하지만, 토요일 오후 예배당에 모여 가족들이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상고하며 그 신앙을 전수하는 시간이라고 생각을 하니 쉐마 학당에 대한 그 동안의 중압감과 한 편으로는 귀찮음이 기대감과 소망함으로 변하는 것을 느꼈다. 우리 가족뿐만 아니라 다른 가족들과 함께 한 공간 안에 있다는 것, 또 그들의 열정적인 모습을 보면서 그 분위기 속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슴 벅차 오르는 시간이 되어가고 있다. 분주함을 핑계로 많이 나태해있던 나의 신앙도 돌아보게 되고 다시금 하나님 말씀의 위엄 앞에 엎드리게 된다. 돌이켜 보면, 지금은 신앙적으로 많이 퇴보하였지만, 그래도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는 어릴 적 어머니로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던 성경 이야기, 성경 암송이 내 신앙의 근간이 되었으리라. 이제 막 시작한 쉐마 학당이지만, 이러한 쉐마 교육을 통해 우리 아이들에게 살아 있는 말씀으로 전달 될 것이고, 또한 아이들의 영과 혼, 그들의 두뇌를 바꾸어 어느 곳에서든지 지식보다는 지혜롭게, 편협한 생각보다는 넓은 아량을 베푸는 리더로서의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쉐마 하면, 신명기 6장의 말씀을 떠 올린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이스라엘 민족이 그토록 오랫동안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가죽끈을 달아 팔목과 이마에 붙이고 다녔듯이, 우리 아이들도 이 말씀을 마음판에 새기고, 그들의 삶 속에 말씀의 능력을 드러내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어려서부터 철저하게 뼛속까지 말씀이 스며드는 삶을 살게 될 약수교회 쉐마 학당의 아이들에게서 이 나라의 미래 소망과 변화의 물결을 보았다면 지난친 상상일까? 이러한 소중한 시간을 마련해 주신 하나님과 목사님께 다시 한 번 글을 빌어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2016-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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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MISSION
- G.MI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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쉐마학당 설립자 설동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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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개혁대신학대학원
- International Reformed University and Seminary국제개혁대학교 신학대학원 역사국제개혁대학교 신학대학원은 1977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설립되어 지난 38년 동안 이민교회에 필요한 개혁주의 지도자를 배출, 양성해 왔다. 총신대 총장을 지낸 김의환 목사를 초대 교장으로, 이진태 목사를 초대 학감으로 시작된 국제개혁대학교는 1987년 캘리포니아 주정부로부터 정식학위 (B.A., M.A., M.Div., D.Min.)를 줄 수 있는 학교로 인가를 받았고, 1997년 미국 국토안보부로부터 F-1 비자를 발급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다. 또한 2013년 2월에는 연방정부교육부가 인정하는 신학대학 인준기관인 ABHE로부터 정회원 인준을 받았다. 2016년 2월달에는 연방정부 교육부 인준기관인 ABHE로부터 BACM (교회음악 학사) MACM (교회음악 석사) MAC (상담학 석사) 학위과정을 인가받았다. 현재는 총장에 박헌성 박사가 섬기고 있다. 신앙고백 국제개혁대학교는 신구약 성경이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이며, 성도의 신앙과 생활에 정확 무오한 법칙인 것을 믿는다. 또한 본교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대소요리 문답에 나타난 개혁주의 신학이 성경에서 가르치는 진리의 체계인 것을 받아들인다. 사명국제개혁대학교의 사명은 기독교 대학으로서 로스엔젤레스를 중심한 북미서부지역 나아가 전 세계에 산재한 신앙 공동체의 회원들에게 장래 사역자 및 평신도 지도자들로 하여금 세계한인 이민교회들 뿐만 아니라 모든 하나님의 교회 안에서 사역을 감당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준비과정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군으로 인정된 자들로 바르게 교육하여 그들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는 자로 육성함에 있다. 교육전략국제개혁대학교는 개혁주의 신학과 성경이 지향하는 신학을 교회와 세상에 가르침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성취함에 있다. 본교는 칼빈주의 유산인 하나님 주권, 하나님 중심적 예배, 성경중심적 교육과 교회중심적인 사역에 그 근거를 두고 있으며, 전 세계에 열린교육을 통하여 개혁주의 신학을 가르침으로 실질적인 사역의 능력을 갖춘 사역자와 평신도 지도자로 하여금 세계선교에 이바지함에 있다. 학위과정캘리포니아 주정부 교육국 BPPE (Bureau for Private Postsecondary Education)와 연방정부 USDE (U.S. Department of Education) 및 고등교육기관 CHEA (Council on Higher Education Accreditation) 산하 기독대학인준 기관인 ABHE (Association for Biblical Higher Education)로부터 다음과 같은 학위를 인준 받았다. · 목회학 박사 (D.Min.) · 목회학 석사 (M.Div.)· 기독교학 석사 (M.A. in Christian Studies)· 기독교학 학사 (B.A. in Christian Studies) 교회음악 학사(BACM ) 교회음악 석사(MACM) 상담학 석사(MAC) · 유치원원장 자격증 과정· 유치원교사 자격증 과정· ESL 교육과정 학교주소 및 웹싸이트 주소:125 S. Vermont Ave. Los Angeles, CA 90004 Tel: 1-213-381-0081 Fax:213-381-0010 홈페이지:www.irus.edu이메일:office@irus.edu 국제개혁대신학대학원은 미국 연방정부교육부에서 수여하는 학위와 학교 운영 시스템을 갖춰 수준을 인정받고 있다. 한인 신학교 최초 ABHE에서 D.Min 박사과정 인준1977년 설립 후 한인 디아스포라 인재 양성에 진력 LA 소재 국제개혁대학교 신학대학원(IRUS, 이사장:김남을 목사, 총장:박헌성 목사)이 지난해 총회 인준 신학교로 인준 받은 후 한국교회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것은 국제개혁신학교 신학대학원(이하 국제개혁대학교)이 한국 장로교의 신학과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을 뿐 아니라 미 연방교육부에서 인정하는 우수한 학위와 시스템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다방면으로 미국 사회에 진출할 수 있는 ESL(Englsh as a second Language) 교육 인가를 받으면서 탄력을 받고 있다. 국제개혁대학교는 1977년 9월 총신대 총장을 역임한 김의환 목사와 이진태 목사, 이상근 목사 등 총신 출신 목회자들이 주도해 이민교회를 위한 목회자 양성을 목적으로 시작됐다. 38년의 세월 속에서 어려움이 적지 않았지만 무리하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내 딘 행보가 지금의 국제개혁대학교를 만들었고 지난해 한국 최대 교단인 본교단의 인준 신학교로 승인되면서 더욱 전망을 밝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제개혁대학교는 1998년 국제기독대학교와 통합하고 두 번의 학교 이전을 거쳐 2007년 다운타운 버몬 스트리트에 있는 현재 건물을 구입하면서 기반을 구축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국제개혁대학교가 앞서 있는 것은 학위 부분이다. 미국 교육제도의 경우 주정부(BPPE) 교육국 승인을 받은 학교가 있고 나아가 연방정부 교육부(USDE) 및 고등교육기관(CHEA) 산하 기독대학인준기관인 ABHE 정회원이 되어 수여할 수 있는 학위가 있다. 물론 인준 받는 조건과 절차는 주정부교육국보다 연방정부교육부 인가가 훨씬 더 어렵고 복잡하다. 국제개혁대학교는 1987년 캘리포니아 주정부로부터 정식 학위(B.A, M.A., M.Div., D.Min.)와 유치원 원장 및 교사 자격 인가를 받았고, 1987년 주정부 D.Min을 받았다. 그리고 1997년 미국 국토 안보부로부터 F-1 비자 승인을 받았고, 2013년 미 연방교육부(U.S. Department of Education)와 고등교육기관(Council for Higher Education Accreditation) 산하 기독대학인준기관인 ABHE(Association for Biblical Higher Education)의 인준을 받았는데 미국 개혁주의 장로교 신학교로는 유일하다. 특히 지난해 플로리다 올랜도에서 열린 ABHE 연차 총회에서 미국에 있는 한인 신학교 중 최초로 D.Min 박사학위 인가를 받아 가장 앞서가는 신학교가 됐다. 거기에 금년 초 인가 받은 ELS 교육과정은 영어권 유학생들을 유치 할 수 있는 획기적인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특히 SEVIS I-20(유학생비자) 발행 인가를 받아 유학생들이 안심하고 공부할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으로 꼽히고 있다. 국제개혁대학교는 태동부터 지금까지 한국 장로교 개혁신학과 전통을 고수하고 있다는 것을 자부심으로 여기고 있다. 김남을 이사장은 국제개혁대학교의 사명이 “미주지역 개혁주의 신학의 요람으로 발전시켜 교포사회의 신앙과 신학을 바르게 이끌고 능력 있는 한인 디아스포라 지도자를 양성하는데 있다”며 터를 닦고 집을 세웠으니 이제 양육하고 거두는 일에 매진해 나갈 것“이라고 다짐을 밝혔다. 국제개혁대학교가 미국에서 교단 인준 신학교로 선택된 것도 긍정적인 영향을 발휘하고 있다. 2년 전 미주노회 복구위원회와 총신 관계자가 미주 지역 여러 신학교를 돌아보고 국제개혁대학교를 선택했을 때 우려하는 시각도 없지 않았으나 인준 이후 학교 분위기가 살아나고 주변의 인식도 변하고 있다. 무엇보다 한국교회가 국제개혁대학교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고 있다. 이광훈 교무처장은 “근래 혼탁한 세상을 변화시킬 대안으로 개혁주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국제개혁대학교에 대한 기대가 높아졌다. 또한 개혁주의를 표방하는 한인 신학교 중 ABHE에서 인정하는 D.Min. 박사학위 인가를 받으면서 이에 대한 문의가 한결 많아졌다”고 말했다. 국제개혁대학교는 세계의 신학과 선교의 중심국가인 미국에서 한국교회의 전진기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면서 세속화 된 세상에서 말씀을 바로 배우고 실천하는 초대교회의 모형을 세워가는 개혁주의 신학 명문이 되기 위해 묵묵히 나갈 것을 다짐하고 있다. 2016-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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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MI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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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개혁대신학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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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자립지원 전진대회
- 전진대회의 표어는 “샛강의 기적 함께하는 기쁨”샛강 미자립교회가 성장해 본래의 큰 강 총회에 합쳐지는 것을 상징오정현 목사는 이 행사가 용두사미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다짐 제100회 총회 중점사업 가운데 하나인 2016 교회자립지원 전진대회가 2016년 2월 18일 오후 1시 사랑의교회당에서 교회자립지원위원회(위원장 김선규 목사) 주관으로 열렸다. 총회 임원을 비롯해 전국에서 노회장과 노회교회자립위 임원, 자립위 간사 등 500여 명이 참석했다. 참석한 노회 숫자도 93곳에 달했다. 교회자립지원 전진대회의 표어는 “샛강의 기적 함께하는 기쁨”이다. 샛강이란 큰 강의 줄기에서 한 줄기가 갈려 나가 중간에 섬을 이루고, 하류에 가서는 다시 본래의 큰 강에 합쳐지는 강을 이른다. 샛강 미자립교회가 성장해 본래의 큰 강 총회에 합쳐지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다. 1부 예배에 이어 2부 공감의 시간에는 총회교회자립지원위원회 실행위 서기 박성규 목사의 다이내믹한 사회로 사례발표와 총회장 박무용 목사의 칭찬과 격려의 시간을 갖고 교회자립 지원 제도 시행 우수노회 및 미자립교회 격려 시상을 했다. 사례발표 가운데 감동을 안겨준 사례는 예수마을교회를 일가족 5명으로 시작해 3년 만에 100명의 교인으로 자립시킨 간증이었다. 그 교회의 성공의 기틀을 잡아준 공은 목사 가족으로 구성된 밴드였다고 한다. 그리고 총회의 지시에 따라 2011년 노회교회자립위를 구성한 성남노회는 재정 지원 외 목회 지원 사례에 대한 현상민 목사의 발표가 주목을 받았다. 3부 나눔의 시간에는 총회교회자립지원위원회 실행위원장 오정현 목사의 말 가운데 이 행사가 용두사미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다짐이 귓전을 때렸다. 마지막으로 아쉬웠던 것은 전진대회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교회자립 지원선언문’ 낭독에는 전국 7개 권역 중 경기권역위원장 소강석 목사와 호남권역위원장 이상복 목사만 참석해 “약속한다”는 표어를 펴들고 외치는 참석자들을 아쉽게 했다는 것이다. 2016-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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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MI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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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자립지원 전진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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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피노의 사도 김상윤
- 사도 바울은 로마 교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말했다.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이는 곧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케 하여 저희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 로마서 11:13-14 이방인의 사도 바울처럼 나눔의교회 김상윤 목사는 이방인 가운데 특별히 필리피노의 사도이다. 그가 필리핀 선교를 결심한 건 극동방송에 출연한 한 선교사가 필리핀 선교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듣고서였다. “극동방송에서 필리핀에 있다 나온 선교사님이 필리핀 선교는 끝났다하는 겁니다. 그때 한참 그런 말이 돌았어요. 그런데 내가 생각하기에 예수님이 아직 안 오셨는데 어떻게 선교가 끝났다고 선교사가 말할 수 있느냐. 그래서 필리핀에 가보자 하고 갔습니다. 가보니까 여기는 사람들이 이렇게 친절하구나. 우리나라는 접촉점 때문에 세미나 사탕 화장지 별걸 다 동원하는 거예요. 그런데 필리핀은 접촉점이 필요 없는 나라입니다. 한국 사람이라는 이미지 하나만 가지고 접촉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왜 이걸 못하느냐...” 지난 세월을 술회한 그는 자신의 몸에 필리피노의 DNA가 있는 모양이라고 했다. 아니면 영국의 작가 서머싯 몸(William Somerset Maugham, CH, 1874년 1월 25일~1965년 12월 16일)의 프랑스 화가 고갱을 모델로 한 작품 《달과 6펜스》에서 언급된 격세유전(隔世遺傳, atavism) 탓일지도 모른다고 내가 말했다. 필리피노(Filipino)는 필리핀 사람을 의미한다. 필리핀(필리핀어: Pilipinas 필리피나스, 영어: Philippines 필리핀스)은 서태평양에 있는 동남아시아의 섬나라이다. 7,107개의 섬으로 구성되어 있는 필리핀은, 크게 루손 섬, 비사야 제도, 민다나오 섬의 세 지역으로 나뉜다. 필리핀 민족은 지리적 문화적으로 지역에 따라 구별되며 각 지역적 집단은 상이한 풍습과 방언을 통해 구별할 수 있다. 북부 지역의 일로카노 주 지역 주민은 강건하고 검소하며. 중부 평야지대의 따갈로그 주민은 근면하다. 중부지역 섬으로부터 비사야의 주민들은 낙천적이며 민다나오 지역에는 각색의 원주민과 무슬림들이 거주하고 있다. 인구는 1억 명으로 세계에서 12번째로 인구가 많은 나라이다. 또한 약 1,100만 명의 필리핀인들이 해외에 살고 있다. 이들의 송금으로 요즘 필리핀 경제가 활성화되고 있다고 한다. 필리핀에는 다양한 민족과 문화가 존재한다. 선사시대에 필리핀에 거주했던 사람들 중에는 네그리토가 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오스트로네시아어족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정착했고, 말레이인의 문화와 힌두교, 이슬람교 등이 전래되었다. 또한 무역으로 중국 대륙의 문화가 필리핀에 영향을 끼쳤다. 1521년 페르디난드 마젤란이 필리핀에 도착한 이후 스페인이 필리핀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고, 결국 스페인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식민 지배 동안에 마닐라는 아카풀코와의 무역 연결점이 되었으며, 필리핀에 가톨릭이 널리 전파되었다. 19세기 말에 필리핀 혁명이 일어나고, 짧은 기간 동안 유지된 필리핀 제1공화국이 세워졌다. 그리고 뒤를 이어 미국-스페인 전쟁과 필리핀-미국 전쟁이 일어났다. 전쟁 이후, 미국의 지배가 시작되었고,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필리핀이 독립을 할 때까지 일본군이 점령했던 기간을 제외하고는 미국이 필리핀의 주권을 가지고 있었다. 미국의 지배를 계기로 영어와 서양 문화가 필리핀에 전해졌다. 필리핀은 1950년대부터 1970년대 초까지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으로 경제 사정이 좋은 나라였으나, 마르코스 정권의 독재와 부패, 과도한 빈부 격차로 인해 경제적으로 몰락했다. 수도는 마닐라이며, 공용어는 필리핀어와 영어이다. 필리피노(필리핀어)라고 명명된 그 표준형은 국어이자, 영어와 더불어 필리핀에서 공식어로 사용하고 있다. 필리핀어(Filipino)는 헌법에 정해진 국어로서의 명칭이며, 실질적으로 따갈로그어와 거의 같다고 생각해도 좋다. 따갈로그어는 f와 p의 구별을 가지지 않기 때문에 이 언어는 필리피노어(Pilipino)라고 명명되었지만 1972년 헌법에서 필리피노(Filipino)로 개칭되었다. 필리핀 국민의 특성은 실제로 모든 문화가 조금씩 섞여 있다. 필리핀인들의 유명한 친족 정신은 말레이족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며, 긴밀한 가족 관계는 중국인으로부터 전해진 것이다. 경건한 신앙심은 16세기 가톨릭을 전파한 스페인 사람들로부터 물려받았다. 오늘날 대부분의 필리핀 사람들은 서구화된 보편적인 평상복을 주로 입지만, 중요한 자리에는 항상 필리핀 전통 상의인 바롱 따갈로그를 즐겨 입는다. 필리핀에서 축제나 기념식, 결혼식 같은 경우에 바롱 따갈로그를 입은 남자를 쉽게 볼 수 있다. "따갈로그 지방의 옷"(Baro ng Tagalog)이라는 뜻이다. 오늘날 실제로는 줄여서 바롱이라고 말한다. 처음 2개의 단어(Baro ng)가 변해 Barong으로 변했는데, " ~의 옷"이라는 뜻이다. 바롱은 4세기에 걸쳐 변천해 왔다. 그 과정에서 아직도 옛날의 특징이 남아 있다. 우선은 얇고 투명한 천을 사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입을 때는 바롱 안에 셔츠를 필히 입고 바깥에 바롱을 입는다. 또 바롱의 하단을 바지 안으로 넣지 않고 항상 바깥으로 내놓은 채 입는 것이 전통적인 특징이다. 바롱을 바깥으로 내놓고 입는 것은 필리핀의 더운 기후 때문으로 풀이되지만, 스페인 식민정책의 유산이라는 설도 강하게 어필하고 있다. 그것은 스페인 식민통치자들이 옷을 통해 쉽게 구별하기 위해 원주민들에겐 바롱을 입을 것을 강요했다고 한다. 그리고 투명한 천을 사용하게 한 것은 옷속에 무기를 감추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고, 주머니를 만들지 못하게 한 것은 도둑질을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이란다. 필리핀 원주민 사이에서도 장사를 해서 돈을 벌거나 농사를 크게 짓는 등 성공한 중산층이 차츰 생겨났지만 원주민이라는 이유로 항상 바롱을 입어야 했다. 이러한 식민통치에 대한 반발로 이들은 원래의 바롱에는 없었던 전면의 다양한 장식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긴소매 앞부분 상단에 단추를 달고 입고 벗을 때 단추를 끌를 수 있게 만들어져 있다. 주로 흰색의 천을 사용했으나 요즘은 색상이 조금씩 다양해지는 추세다. 이번 선교여행에서 김상윤 목사도 바롱을 잘 다려 입고 필리피노 목사들과 교인들에게 설교를 했다. 필리핀의 교통에서는 해운이 지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선박의 항행으로 국토가 이어지고 통일되기 때문이다. 육상 교통으로는 철도가 루손 섬, 파나이 섬에서 경영되고 있다. 자동차 도로도 루손 섬을 중심으로 해서 발달해 있다. 대중교통으로는 지프니, 버스, UV 익스프레스, 택시, 트라이시클(삼륜차) 등이 있는데, 버스는 노선은 정해져 있지만 정류장은 없어 사실상 어디서나 타고 내릴 수 있으며, 차종도 가지각색이다. 필리핀은 에스파냐의 영향으로 대부분 로마 가톨릭 신자(83%)이며, 그 외 필리핀 성공회(The Episcopal Church in the Philippines), 개신교(9%)가 있다. 필리핀 성공회는 미국 성공회(The Episcopal Church of USA) 선교사들의 선교활동으로 전래되었으며, 로마 가톨릭 교회가 전래되지 않은 산간지역에서 선교활동을 했다고 전해진다. 필리핀 이슬람은 민다나오 섬에 많이 살고 있다. 이는 에스파냐 식민지 시절 로마 가톨릭 신자를 이주시키는 종교적인 이주정책으로 이슬람교도들이 살 곳이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1960년대 말부터 모로민족해방전선, 모로이슬람해방전선 등의 독립 요구로 이어졌다. 대구의 제100회 총회 끝나고 2015년 9월 23일 199,000원 내고 예약한 패키지여행 상품에 실려 마닐라에 도착했다. 저녁 먹고 버스 타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비가 내렸다. 저물 무렵 소나기를 만난 마닐라 거리 사람들은 무표정했다. 차가 막힌 길에 배수로가 힘에 겨워 물을 게워내자 길가는 개울이 되었다. 차가 다니는 차창 밖 흐르는 그 개울에 아이들이 남녀가릴 것 없이 한 여름 뚝섬 야외 수영장처럼 뛰어들어 물놀이했다. 그 빗물은 하늘에서 그들을 위로하기 위해 쏟아지는 눈물일지도 모른다. 땅에서 그들의 기쁨을 위해 괴는 눈물일지도 모른다. 그때 쏟아지는 소나기를 바라본 사람들은 안다. 비가 새는 집에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참기 힘든 걱정이라는 것을 그 소나기에 가슴을 적신 사람이라면 안다. 그런데 이 필리핀 마닐라의 아이들은 지붕이 없는 거리가 그들의 집이고 빗물은 그들의 샤워기다. 그래서 비가 새는 집이 없는 그들은 비오는 날이면 즐거워하는 모양이다. 작년 11월 계룡시의 나눔의교회 김상윤 목사를 인터뷰할 때 그의 남다른 필리핀 선교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금년 1월 나눔의교회 교인들의 선교여행 4박 5일을 동행 취재하는 특별한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2016년 1월 10일 오후 5시 인천공항 필리핀 항공 카운터에서 계룡 나눔의교회와 화순나눔의교회 40여명의 교인들의 단체 좌석배정과 선교지에서 쓸 많은 수하물 탁송의 탑승수속으로 2시간이 넘게 걸렸다. 그 카운터 앞에서 70년대 총신대학 시절의 소탈한 모습 그대로의 이무종 목사를 근 43년 만에 만나게 되었다. 그는 김상윤 목사와 같은 황동노회 회원으로 가까운 사이였다. 오후 8시 20분 만석의 필리핀 항공 비행기는 인천공항을 이륙했다. 우리보다 1시간 늦은 시차의 마닐라 공항에 자정 무렵 비행기가 착륙했다. 마닐라 공항 밖은 새벽인데도 더위가 느껴졌다. 짐은 두 대의 지프니에 싣고 사람은 대절 버스에 실려 따가이따이의 CCT 수양관에 하루가 바뀐 1월 11일 새벽 4시에 도착했다. 여호수아관의 숙소배정을 받고 3시간 정도 눈을 붙인 뒤 일어나 8시 두툼한 돼지비계 요리와 김칫국 같은 필리핀 수프로 아침식사를 했다. 따가이따이는 서늘한 지역이라 필리핀인들의 고급 별장지대였다. 이곳 30만평에 자리 잡은 CCT(Centre for Community of Transformation) 수양관은 본래 필리핀 노숙자 20만 명을 관리하는 필리핀 기업인 중심의 NGO 단체였는데 김상윤 목사의 영향으로 기독교 정신으로 활동하는 단체가 되었다고 한다. 1월 11일 월요일 오전 8시 아침식사. 일반 교인들은 김치를 담그는 등 선교집회 진행을 위한 준비를 했다. 찬양팀은 부목사 이준의 지휘 하에 악기 설치와 음정을 맞추는 리허설을 했다. 교회 설립 10년이 좀 넘은 나눔의교회 교인들은 잘 훈련된 군인들처럼 헌신적으로 움직였다. 각기 휴식을 취한 뒤 12시 30분 점심식사 후 오후 2시부터 집회가 시작됐다. 필리핀 전국에서 참가비를 내고 모여든 170여명의 필리피노 교역자와 교인들을 위한 선교집회가 시작되었다. 찬양팀 리더 이준 목사의 인도로 청중 모두가 일어서 손뼉을 치며 찬양했다. 찬양 리듬을 타는 필리피노들의 몸놀림은 리드미컬했다. 찬양 영어 가사의 리드는 청중석에서 필리피노 에이젤(Eizel Madamba)이 맡았다. 그녀는 필리핀 대학교(University of Philippine) 출신 교사였는데 5년간 한국에서 김상윤 목사의 집에 머물며 신학 공부를 하고 한국어를 익힌 재원이었다. 김상윤 목사는 필리핀 선교를 위한 현지 사역자들을 사심 없이 헌신적으로 준비했다. 힘찬 찬양이 CCT 강당을 흔들었다. 천정 철골 사이로 새들이 날았다. "Everlasting God" Strength will rise as we wait upon the Lord...The everlasting GodYou do not faintYou won't grow weary...You're the defender of the weakYou comfort those in needYou lift us up on wings like eagles 김상윤 목사의 설교 전에 나눔의교회 안진 권사의 대단한 특송이 이어졌다.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마음 속에 그리어볼 때하늘의 별 울려퍼지는 뇌성 주님의 권능 우주에 찼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주 하나님 지으신 모즌 세계 내 마음속에 그리어 볼 때하늘의 별 울려퍼지는 뇌성 주님의 권능 우주에 찼네 두 곡의 찬양이 한 곡처럼 메들리로 섞여 강당을 메웠다. 김상윤 목사가 영어로 설교를 시작했다. 썰리나(Serlina) 목사(나눔의교회가 후원해 세운 웰스 스프링 초중고 교장)가 필리핀 원어 따갈로그로 통역했다. 영어로 읽은 성경본문은 레위기 23:4-8이고 제목은 ‘유월절’이었다. 기한에 미쳐 너희가 공포하여 성회로 삼을 여호와의 절기는 이러하니라 정월 십사일 저녁은 여호와의 유월절이요 이 달 십오일은 여호와의 무교절이니 칠일 동안 너희는 무교병을 먹을 것이요 그 첫날에는 너희가 성회로 모이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찌며 너희는 칠일 동안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 것이요 제 칠일에도 성회로 모이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찌니라 김상윤 목사의 한국어 설교를 필리피노 썰리나 목사의 따갈로그 통역으로 듣는 필리피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에 강하게 호응했다. 김상윤 목사의 주제는 유월절 신앙을 회복하고 믿으면 믿고 기다리는 자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살 가나안은 약속의 땅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김상윤 목사는 신자는 성경을 믿고 반드시 가지고 다녀야 한다. 가지고 다니지 않으려면 성경을 외워 다녀야 한다고 말해 청중의 웃음을 자아냈다. 설교를 마친 후 설교자를 포함해 모두 무릎을 꿇고 통성기도를 했다. 축도 후 예배를 마치니 오후 3시 40분이었다. 오후 5시 30분 저녁식사에는 나눔의교회 사모와 교인들이 함께 담은 김치가 뷔페 식탁에 진열돼 필리피노들과 코리언들의 입맛을 돋우었다. 오후 6시 30분 나눔의교회 교인들은 유니폼을 입고 안내를 맡았다. 집회석 뒤에는 간식과 차가 마련되어 있었다. 연단 위의 찬양팀은 예배에 참여한 사람들의 심령과 몸을 달구었다. 나눔의교회 김현주 권사가 수화 찬양과 필리피노 썰리나 목사의 통역으로 간증을 했다. 김현주 권사는 장애가 있는 쌍둥이 아들을 위한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것이 그녀의 삶의 목적이고 꿈이라고 증언했다. 오후 8시 40분 필리피노들의 교회 별 분반토의가 진행됐다. 1월 12일 오전 5시 한가로운 새벽 공기 속에 CCT 강당 천정 강철 기둥 사이로 새들이 푸드득 날아다녔다.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을 한 뒤 성경본문 레위기 23:15-22 제목 ‘부활절의 신앙’을 김상윤 목사가 전했다. 초실절은 부활절을 상징한다. 부활 신앙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100원 짜리 은혜만 있어도 그 은혜를 잊지 않고 감사하는 신앙이 있어야 한다. 오전 11시 집회는 필리피노들의 간증 집회가 있었다. 김상윤 목사는 여호수아관 미팅룸에서 따로 필리피노 교역자 그룹을 위한 꿈을 가진 리더십 강의와 토의를 했다. 오후 2시 20분에는 이번 선교여행의 총진행 관리를 한 윤은애 집사의 간증이 있었다. 오후 7시 이준 목사 찬양팀의 찬양고 무릎 꿇은 통성기도 후 나눔의교회 이경섭 장로(맛나감자탕 대표)의 부인 김복희 권사의 간증이 있었다. 이 부부는 신혼 10개월 동안 닭고기를 한 번 먹고 6만원 월세 밀려 셋방에서 쫓겨난 가난뱅이였다. 2002년 청주에서 잘 되던 생선 장사를 정리하고 천안에서 김상윤 목사의 권면을 따라 감자탕 식당을 시작했다. 감자탕 요리법은 김상윤 목사가 가르쳐 준 것을 따라했다. 감자탕이 너무 맛있어 잘 될 줄 알았는데 하루 5그릇 팔았다. 그 때 김상윤 목사님 아침저녁으로 다른 목사님들과 찾아오셨다. 감자탕 1인분 값만 가지고 오셔서 서너 목사님이 먹고 가셨다. 그런데 그렇게 목사님들을 대접한 뒤 장사가 잘 되기 시작했다. 2년 뒤에는 손님들이 줄을 서 기다리다 감자탕을 먹게 되었다. 하루 5만 원 매출이 2백만 원이 되었다. 그녀의 신앙은 모든 일에 하나님을 먼저 내세우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 부부는 많은 눈물을 흘리며 어려움을 딛고나니 이제는 환상의 콤비가 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교회일 때문에 부부가 한 번도 다툰 적이 없다. 날마다 가난한 과부의 기름 단지처럼 하나님이 채워주시고 그들을 사용해 주시는 것에 감사드린다. 지금은 맛나감자탕 체인점을 통해 1년 매출이 100억에 이른다. 그들 부부의 소원은 나눔의교회를 위한 맛나감자탕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다. 그들은 돈의 욕심으로 하나님과 멀어져 배달사고가 나지 않도록 기도한다. 김복희 권사는 올해 맛나감자탕 115호점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그리고 필리핀을 위해 하나님이 주신 물질로 학교를 세우고 작은 교회를 돕고 싶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필리피노 교인들에게 두 손을 맞잡고 권면했다. “사랑하는 하나님을 위해 교회와 목사님에게 순종하세요. 물질을 아끼지 마세요. 우리는 자신 있게 바칩니다. 하나님을 심는 대로 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부부는 그 축복의 경험자입니다.” 청중들이 아멘을 외치며 박수를 쳤다. 오후 9시 49분에 마쳤다. 1월 13일 오전 6시 새벽폐회예배. 하늘은 어둡고 비올 것처럼 바람이 불어 유리창의 블라인드를 들썩거렸다. 반주 없는 찬양이 새벽 공기를 채웠다. 청중석에서 에이젤이 가사를 리드했다. There is none like You,No one else can touch my heart like You do,I can search for all eternity LordAnd find, there is none like You....I can search for all eternity Lord,There is none like You. God is so good,God is so good,God is so good,He’s so good to me!...I praise His Name,I praise His Name,I praise His Name,He’s so good to me! 김상윤 목사는 성경본문 레위기 23:33 제목 ‘감사절의 신앙을 회복하자’ 제목으로 선교집회 마지막 설교를 전했다. 그는 성경의 절기들 유월절, 오순절, 나팔절 등을 설명하며 신랑을 기다리는 등불을 든 처녀처럼 성경을 통해 주님 재림하시는 나팔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한 신앙을 가진 사람을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이든 그걸 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실천한다. 김상윤 목사는 예수님에게 충성하고 교회에 충성하고 전도에 힘쓰고 감사의 신앙이 회복되는 신앙인이 되기를 축복했다. 필리피노들이 아멘으로 화답했다. 축도로 마치니 오전 7시 55분이었다. 하늘이 맑게 개고 바람은 잦아들었다. 그 다음 일정은 CCT 수양관을 떠나 CCT 고아원과 직업훈련원을 방문한 뒤 나눔의교회가 세운 10학년 과정까지 인가를 받은 웰스스프링(Well's Spring)과 달리다굼(Dalidagum) 두 학교를 방문했다. 웰스스프링은 썰리나 목사가 교장이고 기숙사까지 갖춘 달리다굼은 김진주 선교사가 교장이었다. 두 학교 다 나눔의교회가 후원했지만 명의는 필리피노들의 것이다. 웰스스프링은 고등학교 과정이 완결되는 12학년까지 인가를 받고 교사를 증축할 예정이고 달리다굼은 대학교와 신학교까지 세울 생각을 하고 있는 학교다. 그 외 두 원주민 교회를 방문했다. 마지막으로 김상윤 목사가 후원하고 강의하는 보스턴 신학교(Boston Theological School)를 방문했다. 신학교 교무처장이 대접한 필리핀 음료 할로할로를 마셨다. 이 음료가 교인들 다수의 배탈 원인이 되기도 했다. 새벽 3시경 전화벨이 울렸다. 잠시 뒤 눈을 떠 옆자리를 보니 김상윤 목사가 일어나 잠자리에서 기도하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식사 때 이야기를 들으니 밤중에 교인들의 심한 배탈로 김진주 선교사의 차로 병원에 실려 갔었다고 한다. 마닐라 공항까지 오는 길은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그 모든 과정에 김상윤 목사가 세심하고 침착하게 대응했다. 공항은 여전히 붐볐다. 선교팀 교인 모두 비행기에 탑승하고 오후 7시 30분 인천공항에 내렸다. 침묵에 든 겨울 숲, 그러나 곧 새싹의 소곤거림이 시작될 것이다. 빈 몸에 새 옷을 입고 나올 나무들을 바라본다. 믿음이란 그 숲 속의 연못으로 가 그 연못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사슴 같은 것이라고 보면 어떨지 모르겠다. 저녁을 아내와 햄버거로 때우고 공항철도를 타고 돌아오는 철로 아래 바다가 보이는데 물은 다 빠져나가 검은 갯벌만이 드넓게 드러나 있었다. 마치 인생의 죽음이 그러하다는 듯이. 이방인의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인들에게 말씀한다.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군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번 죽을뻔 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번 맞았으며 세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고린도후서 11:23-28 필리피노의 사도 김상윤 목사는 말한다. “...마닐라 시립대학으로 다시 갔어요. 역사학을 공부하겠다고 하니 무시험으로 들어가게 됐습니다. 대학이 800개나 되는데 그 대학은 상위권에 속하는 괜찮은 학교입니다. 그 과정을 통해 따갈로그와 영어를 익히게 됐습니다. 아무튼 이 사람들이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는가. 내가 어떻게 접근해야 되겠는가 하는 것을 공부했습니다. 그래서 나름 제대로 필리핀 선교를 하게 된 거죠.” 2016-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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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MI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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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피노의 사도 김상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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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0회 총회의 영광
- 빛나기만 하다면─그것은 영광이 아니다. 바람에게 말했다, 나를 성령에게 밀어 올려 달라고. 그래서 나는 새들과 어울려 기도하는 것을 배웠다. 그 기도로 나는 총회를 향해, 100년의 세월을 건너 날아올랐다. 총회의 정치는 너무 빨리 우리의 소망을 시들게 한다. 그럼에도 고백하지만, 나는 몸서리치게 주님의 몸 된 교회의 찬란한 빛을 사랑했다. 그 찬란한 빛을 총회의 영광이라 부르자. 교회의 빛. 그리고 총회의 영광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차라리 그 속 깊이 간직한 새로운 100년의 소망을 찾자. 그러면 총회의 영광으로. 그 빛이 빛날 때 주님의 몸 된 교회가 빛을 얻을 것이다. 한때는 그토록 찬란했던 빛이었건만 이제는 덧없이 사라져 돌이킬 수 없을지라도 말이다. 다시는 찾을 길 없더라도 결코 후회하지 말자. 우리는 여기 총회에 굳세게 남아 하나님의 영원함을 티 없는 가슴에 품고 총회의 모순을 티 없는 믿음으로 달래며 다시 100년의 세월 속에 소망하자. 제100회 총회의 영광을 기념하는 감사예배와 축하행사가 제100회 총회 셋째 날인 9월 16일 대구 반야월교회에서 열렸다. 총회서기 이승희 목사 사회로 시작된 감사예배는 반야월교회 연합찬양대의 찬양, 총회장 박무용 목사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신 말씀’이라는 제목의 설교, 부총회장 김선규 목사 축도로 진행됐다. 이어 아나운서의 사회로 축하행사가 이어지고 모든 참석자들이 다함께 일어나 주기도송을 부르는 것으로 이날 예배와 기념행사는 마무리되고 총회의 새로운 100년의 영광이 시작되었다. 2015-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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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0회 총회의 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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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에 대한 헌법적 통일 연구
- 12월 14일 오후 6시 30분 서초동 사랑의교회(오정현 목사) 5층 바나바홀에서 종교법학회(회장 유장춘 박사)는 ‘한반도 통일에 대한 기독교적 대안’이라는 주제로 제2회 세미나를 가졌다. 이날 세미나에는 황규학 박사(법과 교회 편집인)와 유장춘 박사가 발제자로 나섰다. 소재열 박사(리폼드뉴스 발행인)의 사회로 시작된 세미나의, 첫 발제자 황규학 박사는 “독일과 예멘에 있어서 헌법적인 통일에 대한 연구”라는 제하의 강의에서 1. 동서독의 법제 통일 2. 남북 예멘의 법제 통일 3. 남북한의 법제 통일 등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독일이나 예멘 정부는 헌법 전문에 통일을 포함시켰고,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동독이나 남예멘은 모두 스스로 사회주의를 포기하고 헌법에 막스-레닌주의를 삭제하거나 사회주의 체제를 정정하고 자유민주주의 통일로 가기 위해 통일 헌법을 마련했다. 남한도 북한과 통일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양국의 공동통일헌법 위원회를 만들어 양국의 헌법수정에 앞장서야 하고, 북한의 헌법에 있는 주체사상을 폐기하게 해야 한다. 주체사상의 폐지 없이는 통일은 없다... 우리도 독일처럼 시민연합단체를 조직해 통일 헌법을 구축해야 한다. 기독교인들이 북한과 민간 외교를 펼치면서 남북한 통일헌법을 위한 시민연합단체를 구성하고 법제통일의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특히 기독교 국회의원들도 앞장서서 남북한 법제통일위원회를 만드는데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진정한 통일을 논하기 전에 통일에 대한 규범적 접근 논의가 활성화 될 필요가 있다.” 이어서 발제한 유장춘 박사는 “한반도 통일을 위한 실천 가능한 대안”이라는 제하의 강의에서 1. 통일 현주소 2. 기독교화 주체사상 등의 고찰을 통해 남북한의 현실 및 기독교와 주체사상의 유사성을 살펴보며 마태복음 28:19-20의 예수님의 지상명령을 수행하기 위한 한국기독교계의 실질적인 대안을 제시했다. “남한의 자유민주주의와 북한의 주체사상에 근거한 일인, 일가족 세습독재는 본질적으로 양립할 수 없는 구조이기에 합의통일은 사실상 어려운 일이다. 혹여 정치적인 통일이 된다 하더라도 더 어려운 것은 사상적인 통일이다. 통일 전후 북한 동포가 사상적인 붕괴 상태에서 벗어나도록 돕기 위해서는 전혀 다르지만 매우 비슷한 기독교신앙과 주체사상의 차이를 우리가 먼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독교는 국가의 일원으로서 공공성을 회복하기 위해서 앞장서야 할 때이고, 이 사명완수를 위해서 개혁할 부분은 개혁하면서 실천해야 할 때이다.” 두 사람의 발제가 끝난 후 발제자들과 청중들과의 질의응답 시간이 있었다. 질의자 가운데에는 박원영 목사(나들목교회)도 있었다. 2015-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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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MI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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