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로 문학’이란 첼로의 깊고 풍부한 음색을 인간의 감정과 삶을 표현하는 문학적 도구로 활용하는 것을 의미하며, 첼로가 등장하거나 첼로 소리 자체를 주제로 한 시, 소설, 수필 등을 포함한다. 악기가 낼 수 있는 음색과 표현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려, 마치 문학 거장의 작품처럼 인간의 삶과 감정, 사상 등 깊은 주제를 탐구하고 전달하는 초월적 힘을 지닌 곡에 붙이는 헌사다.
19세기 말 스페인 카탈루냐의 교회 음악가 겸 목수 아버지에게서 피아노와 오르간, 성악을 배우며 성장한 파블로 카잘스(Pablo Casals, 1876.12.29~1973.10.22)는 9세 무렵 마을에 온 극단 광대가 켜던 현악기 소리를 처음 듣곤 금세 매료된다. 아버지는 커다란 박을 다듬어 첼로처럼 만든 악기를 어린 아들에게 선물했고, 아이는 활을 움직여 현을 울리는 그 섬세하고도 직관적인 연주법을 독학으로, 자유분방하게 체득해갔다. 1888년 12세가 된 그는 바르셀로나에서 본격적인 첼로 공부를 시작했다. 한 고서점에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악보를 만난 것도 알려진 바 그즈음(일부 기록엔 1889년)이었다.
박-첼로로 주법을 익힌 어린 카잘스에겐 그 악보의 여백이 자유-해방의 무대였을지 모른다. 연주자가 개입할 수 있는 해석의 공간. 게다가 스승의 커리큘럼이 없어 간섭도 없던 ‘독학 연습곡’이었다. 곡을 스스로 해석하고, 새로운 주법을 창조하다시피 하며 그는 약 12년 동안 자기 버전의 ‘바흐’를 연마했다. 20세기 초 대중 앞에서 처음 연주했다는 그 곡이 오늘날 ‘첼로 문학(Cello Literature)의 정수’ 또는 ‘첼로의 구약성서’라 불리는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이다.
우리 목사들 고향은 믿음으로 태어나 자란 총신. 그리고 말하기 뭐해서 보여줄 곳은 대치동 총회밖에 없지 않을까. 그런 총회가 안전하지 않다며 개조가 아니라 옮겨야 한다고 울산 기도 바위 배광식 목사는 말했다. 총회가 좁고 총신은 넓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2019년 11월 26일 오전11시 새안양교회당(김한욱 목사)에서 총회규칙부(부장 조병수 목사) 실행위원회가 열렸다. 개회예배에서 규칙부 서기 김한욱 목사가 본문 다니엘 5:13 제목 '그 다니엘이냐'로 설교하고 실행위원 울산 기도바위 배광식 목사의 축도로 마쳤다.
이어서 부장 조병수 목사의 사회로 회원점명 후 안건심의에 들어가 '제104회 총회 결의사항 통지', 수임사항 확인의 건을 다루었다.
12시가 되어 새안양교회가 정성껏 마련한 점심 식사를 했다. 오후 1시 서기 김한욱 목사의 사회로 강의 시간을 가졌다. 강사는 부총회장 소강석 목사, 규칙부장 조병수 목사, 전 회록서기 진용훈 목사, 울산 기도 바위 법통 배광식 목사 등이었다.
마친 뒤 이어진 찻집에서의 소강석 목사와 법학자 배광식의 격 높은 신학 토론과 총회 이전에 대한 의견 교환으로 뜨거웠다. 하릴없이 국장까지 지낸 총회를 사랑해온 총회 정치가들은 꽤 오랫동안 이런 열정 상태로 살아온 것 같았다. 어느 날 라디오에서 들었다. 출연자는 말했다.
"저는 늘 포기하고 싶어요. 어제도 포기하고 싶었고 오늘 아침에도 포기하고 싶었어요.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조금 더 강할 뿐이죠. 365일 중 65일은 그만둔다고 속으로 소리치면서도 300일은 버텨요."
그렇다. 65일은 도망가고 300일은 버티는 마음. 보통 사람인 우리도 그 마음으로 산다. 좋아하는 일을 잘하고 싶어서 버틴다. 중국 용정의 윤동주 시인의 비석엔 꽃도 있고 찾아온 흔적이 있는데 그 옆에 송몽규 선생 비석은 풀만 무성했다고 한다.
우리 모두 사는 동안 쓸모 있고 싶어 한다. 동시에 ‘쓸모 있는 인간'으로 인정받기 위해선 대체 얼마만큼의 눈물을, 시간을 갈아 넣어야 할까, 불안에 몸을 떤다. 그렇게 작은 걱정이 집채만 한 파도로 덮쳐올 때 억압의 강도를 슬쩍 낮추고 굽어보시는 주님을 생각한다. 저지르고 후회하고 반성하는, 알고 보면 누구에게나 곁을 주는 꽤 ‘쓸 만한 믿음의 인간'을 보살펴주시는 분을.
나이먹은 자신을 골똘히 생각하며 자신을 돌아보면 아주아주 깊은 수렁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러나 수렁에 빠져보니 세상 문제처럼 고민한다고 해결되지 않았다. 바뻐서 그것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는 그런 문제 관계자들의 삿대질까지 곁들인 변명에 아등바등한다고 좋아지지도 않을 것이다. 원하는 방향으로 쉽게 갈 수도 없다. 그러니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도 될까… 그렇다고 될 만한 일만 찾아다닐 수는 없다. 왜냐하면 모든 선택의 기준은 오직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사람을 통해 이루어질 뿐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그렇듯 시인 윤동주(尹東柱, 1917년 12월 30일~1945년 2월 16일)가 고종 사촌형이자 평생의 벗이었던 송몽규(宋夢奎, 1917년 9월 29일 ~ 1945년 3월 7일)를 대상으로 지은 시 ‘자화상’은 울산 기도바위 배광식 목사의 밤을 새우는 기도처럼 속삭인다.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성경은 말씀한다.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 보라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빌 3:17-21
2025-12-30
